고수 고당 전쟁시 고구려 평양성을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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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Опубликовано: 11 ноя 2024

Комментарии • 68

  • @국익대한
    @국익대한 Год назад

    응원합니다 박사님!!^^ 감사합니다!

  • @날아라중년
    @날아라중년 Год назад +2

    드디어 찾으섰네요. 축하드립니다.

    • @박동-h4p
      @박동-h4p  Год назад +2

      감사합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 @gn.l3762
    @gn.l3762 11 месяцев назад +1

    고구려에는 평양 3경이 있어습니다.ㅡ 낙랑군 평양은 하북성 베이징시 일대이고 평양 동황성은 북한 평양이며 장수왕이후 옮겨간 평양성 장안성은 요령성 요양이라봅니다 요양의 북쪽에 지금도 장안이 있답니다.

    • @박동-h4p
      @박동-h4p  11 месяцев назад +1

      네 그럴 수 있다고 봅니다^^ 그런데 수당이 고구려를 쳐들어 올 때 평양성은 북경시 동북쪽 밀운구에 있었습니다.

    • @gn.l3762
      @gn.l3762 11 месяцев назад +1

      근데 수.당의 수군이 왜 지금의 요동반도 끝의 대련시 당시 비사성으로 상륙했을 까요.ㅡ 래호아의 수군도 이곳에 상륙해 고구려 수비병과 싸워 이긴후 곧장 평양성으로 진군 했다고 했습니다.ㅡ 베이징 일대 밀운구가 고구려가 도읍한 평양이라면 수.당의 수군이 영정하나 조백하 쪽으로 상륙 해야 하지 않나요.

    • @박동-h4p
      @박동-h4p  11 месяцев назад +1

      @@gn.l3762 당연히 조백하 일대에서 전쟁이 있었는데, 지금 엉터리로 요동반도 일대로 주장하는 겁니다. 비사성만해도 자치통감에는 이 성을 지나지 않고서는 배를 타고 평양성으로 갈 수 없다고 했습니다.

    • @박동-h4p
      @박동-h4p  11 месяцев назад +1

      대련에 비사성이 있었다면 북한 평양 가는 길은 수도 없이 많죠~

  • @gaebingdo18nomparkU
    @gaebingdo18nomparkU Год назад +4

    감사합니다

    • @박동-h4p
      @박동-h4p  Год назад +1

      시청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 @sslow2rhkr623
    @sslow2rhkr623 Год назад +4

    평양성의 정확한 위치를 비정하는 것만으로도 대단한 일을 하신 겁니다

  • @문창훈-w5e
    @문창훈-w5e Год назад +3

    박지님과
    박동님
    대동하고
    현장답사
    현장토론
    하고싶다

    • @박동-h4p
      @박동-h4p  Год назад +1

      어다로 가실까요?

    • @문창훈-w5e
      @문창훈-w5e Год назад +1

      평양성 입니다
      순천만해룡성고택은
      저의 한옥입니다

    • @박동-h4p
      @박동-h4p  Год назад +2

      @@문창훈-w5e 어짜쓰까요. 저는 이번에 갔다 와부러서. 딴 데 말씀해주세요. 순천에 함 들려야 겠네요~

    • @박동-h4p
      @박동-h4p  Год назад +1

      제 이멜로 전번 알려주시랑께요~~

  • @박동-h4p
    @박동-h4p  Год назад +2

    이번에 장안성과 평양성 관계까지 제대로 파악했습니다. 평양성 옆에 증축한 성이 장안성 입니다.
    그리고 패수와 평양성이 남쪽에 임하고 있다는 조건을 맞추는 곳은 이 외에는 찾을 수 없습니다.~
    바로 밀운구 밑에 안시라는 지명이 존재합니다~~
    조백하는 건널 수 없는 거대한 강입니다. 거기다 늪이 존재합니다~
    조백하가 패수이면서 난하 동쪽에 평양성을 비정하는 오류를 더 이상 방치할 수 없습니다~

    • @user-damdokk-qr17
      @user-damdokk-qr17 Год назад +1

      밀운구 아래 안시라는 지명이 , 한자가 安市 이것이 맞는지와 ,구글지도에 표시된다면 , 그 한자와 대충의 좌표를 알려주시면 고맙겠습니다. 북경와 밀운 사이에 천축지구 ( 天竺地区, 天竺镇, 天竺村 )''라는 곳이 있습니다. 천축이라는 지명을 쓴 왕조는 동이족 중에서 어느 왕조의 것으로 보시는 지 궁금합니다.

    • @박동-h4p
      @박동-h4p  Год назад +1

      @@user-damdokk-qr17 밀운구 아래쪽에 안시가 바로 안시성이 있었던 현입니다. 이제 다 알아서 찾으시네요.

    • @user-damdokk-qr17
      @user-damdokk-qr17 Год назад +1

      @@박동-h4p 천진시의 서북부에 북경 가까운 곳에 , 安施电子 ( 안시 전자 ) 말씀 하신 건가요 , 안시성

    • @박동-h4p
      @박동-h4p  Год назад +1

      @@user-damdokk-qr17 东魏元象元年(538年),安州及所属之密云郡、安乐郡、广阳郡以及所属之8县(密云、要阳、白檀、安市、土垠、燕乐、方城、广兴(大兴))寄治幽州北界渔阳县境内。其中密云为北魏皇始二年(397年)置,县治原址在今丰宁县大阁镇东北南关村。县南15千米余有高山,常年云雾缭绕,名密云山,即今之云雾山。县名来自山名。
      北齐,废渔阳县入密云;废广阳郡,将大兴、方城二县并入燕乐县;废密云郡,将要阳、白檀二县并入密云;又废土垠入安市。密云地区为安州安乐郡之密云、燕乐、安市三县分辖。北周,改安州为玄州(元州),废安市入密云。密云地区为玄州安乐郡之密云、燕乐二县地。

    • @user-damdokk-qr17
      @user-damdokk-qr17 Год назад +1

      @@박동-h4p 알겠습니다 安乐庄

  • @아사리판과객
    @아사리판과객 Год назад +4

    드디어 뒤집어지는군요.
    통쾌합니다. 보고 또 보렵니다.
    이병도 이놈과 잔당들 …호정이, 기백이, 태돈이 등등 목을 쳐
    서울대 본관에 효수시켰네요.
    고생하셨습니다, 선생님.

  • @woodycho888
    @woodycho888 Год назад +4

    ❤잘 배웠습니다.❤❤

  • @hyugi-papa
    @hyugi-papa 7 месяцев назад +1

    위치 비정을 좀더 서쪽에 하셔야 할 듯합니다. 서쪽 세력은 태행산맥을 넘기가 어렵습니다. 태행산맥 동쪽은 북경에서 보정시, 석가장시를 거쳐 한단시를 지나 황하이북까지 먹지 않을 이유가 없습니다. 그렇다면 수도를 북경이나 보정시 일대에 두는 것이 훨씬 유리합니다.

    • @박동-h4p
      @박동-h4p  7 месяцев назад +1

      평양성은 패수에 임해 있는 왕험성입니다. 조백하 상류의 백하 옆에 있어요. 제가 그곳에 갔다 왔어요 ^^

  • @박동-h4p
    @박동-h4p  Год назад +1

    바이두에서 밀운구(密雲區)를 치면 다음과 같이 안시(安市)에 대한 기록이 나옵니다. 밀운 백단촌의 평양성 남쪽에 안시성이 있었던 것입니다. 东魏元象元年(538年), 安州及所属之密云郡、安乐郡、广阳郡以及所属之8县(密云、要阳、白檀、安市、土垠、燕乐、方城、广兴(大兴))寄治幽州北界渔阳县境内。其中密云为北魏皇始二年(397年)置,县治原址在今丰宁县大阁镇东北南关村。县南15千米余有高山,常年云雾缭绕,名密云山,即今之云雾山。县名来自山名。
    北齐,废渔阳县入密云;废广阳郡,将大兴、方城二县并入燕乐县;废密云郡,将要阳、白檀二县并入密云;又废土垠入安市。密云地区为安州安乐郡之密云、燕乐、安市三县分辖

  • @shopark2202
    @shopark2202 Год назад +2

    유튜버 책보고님 영상보시면 지도로 다 나옵니다

  • @강명구-k9f
    @강명구-k9f 19 дней назад +1

    고수전 당시 수나라와 고구려의 국경선 그리고 고당전 당시 국경선을 대륙의 지도로 그려 보시죠ㆍ

    • @박동-h4p
      @박동-h4p  19 дней назад +1

      @@강명구-k9f 북경시 동쪽의 조백하와 상류의 백하가 국경선이에요

  • @수구리suquri
    @수구리suquri Год назад +1

    고구려는 하북성/산서성 중부부와 만주 전역, 한반도 북부가 영토였습니다 명나라가 쌓은 지금의 만리장성을 진시황의 만리장성으로 알고, 하북성 중부 호타하 남쪽에 있었던 ■■■유주와 전국시대 연나라 위치를 ■■■하북성 북부와 북경 지역으로 잘못 알고 있으니 ♥중국에게 동북공정을 당하는 것이지요♥

    • @수구리suquri
      @수구리suquri Год назад

      1) 지금의 하북성 북부지역의 장성인 산해관에서 시작된 만리장성은 명나라 서달 장군이 쌓은 명나라 장성이고 2) 대동시 지역의 장성은 북제가 쌓은 북제장성이고, 3) 음산산맥의 장성은 유연의 침입을 막기위한 북위장성이고, 4) 섬서성 북쪽의 장성은 동돌궐 침입을 막기 위해 수양제가 쌓은 수나라 장성.

    • @수구리suquri
      @수구리suquri Год назад

      ♥사마천 사기 진시황본기에♥ 진나라 북쪽경계가 만리장성을 나타내는데 地 東至海暨朝鮮, 西至...,南至..., 北據河為塞, 并陰山至遼東에서 『北』자 이후는 세부분으로 나누어서 해석해야 합니다

    • @수구리suquri
      @수구리suquri Год назад

      北 據河為塞, 并陰山, 至遼東 ① 據河為塞 섬서성 북서 방향인 감숙성(흉노) 경계, ② 并陰山 섬서성 북쪽 방향인 오로로스(임호) 경계, ③ 至遼東 섬서성 북동 방향인 하북성(동호=고조선) 경계를 표현했습니다

    • @수구리suquri
      @수구리suquri Год назад

      ① 據河為塞(황하에 의지하여 요새를 삼고) 섬서성 북서 방향인 감숙성(흉노) 경계는 남에서 북으로 흐르는 서쪽 황하를 설명한 내용이고,

    • @수구리suquri
      @수구리suquri Год назад

      ② 并陰山(음산과 병행하여 나란히) 섬서성 북쪽 방향인 오로로스(임호) 경계는 음산산맥 아래의 서에서 동으로 흐르는 황하 남쪽인 섬서성과 오도로스 사이를 설명한 내용이며,

  • @갈기-c1e
    @갈기-c1e Год назад +1

    발해, 발해
    듣기 지겹습니다.
    당나라에서 불러준 발해 명칭보다는,
    스스로 지칭한 고리(고려), 하다못해
    진국이라 하면 안 될까요? 발해라는 명칭이 워낙 귀에 익기는 하지만요.

    • @박동-h4p
      @박동-h4p  Год назад +1

      발해는 밝은 바다라는 것으로 한민족 밝족 지명입니다.^^

  • @jipark_2373
    @jipark_2373 Год назад

    중국의 통일왕조인 수, 당을 상대로 국가의 존망을 걸고 싸웠던 고구려의 수도가 적국의 국경선 바로 옆에 있었다는 것인가요... 너무 상식에 어긋나지 않은가요... 연개소문이 쌓았던 천리장성은 어디에 있었나요... 설사 초기 고구려의 수도가 거기 있었다고 하더라도 강력한 적을 상대로 좀더 안전한 곳으로 이주하지 않았을까요... 고구려 초기 한나라와 숱하게 영토싸움을 하였던 고구려의 수도가 한나라 국경 근처에 있었을까요... 요동 천리밖에 고구려가 있었다는 사료 기록은 무시하는 것인가요... 고구려의 전체 영토를 봤을때 최소한 현재의 선양과 요양 근처쯤에 수도를 두는 것이 여러 측면에서 합당하다고 봅니다... 오늘날의 상식이 과거의 상식과 크게 다르지는 않을거라고 생각되네요... 합리적인 사고방식으로 역사를 해석해야 진실을 알수있게 됩니다... 중국의 사서는 상반되는 기록들이 많아서 특정사서들의 단편적인 기록만으로 단정하여 위치를 정할수는 없다고 봅니다

    • @박동-h4p
      @박동-h4p  Год назад

      북경에 가셔서 확인해보세요. 수도가 국경에 위치해야 군사들이 죽기살기로 싸우는 것입니다. 임금은 안전지대에 있고 병사들만 전선에 배치하면 누가 목숨을 걸고 싸울까요?

    • @jipark_2373
      @jipark_2373 Год назад

      북위 사료에 장수왕 사망시 북위의 황제가 동쪽을 보고 배례를 하였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수천리 떨어져있어 직접 가지는 못하고 그렇게 예를 표하였다 라고 기록되어 있죠... 북위의 수도가 북경지역이었는데 수천리 떨어져 있다면 그곳은 어디일까요... 특정사료만 보고 역사를 단정해서는 안됩니다.. 중국 정사들간에도 서로 모순되는 기록들이 많아요

    • @박동-h4p
      @박동-h4p  Год назад

      @@jipark_2373 북위 수도가 낙양이 아니고 북경이라고요?

    • @jipark_2373
      @jipark_2373 Год назад

      ​@@박동-h4p 장수왕 사망 당시 북위의 수도는 북경에서 조금 떨어진 평성이었습니다

    • @jipark_2373
      @jipark_2373 Год назад

      @@박동-h4p 당시 북위의 수도에서 수천리 떨어진 지점이라면 대략 지금의 요하 근처로 보이네요... 지금의 평양일수도 있다고 생각되는데 그건 단정할수 없습니다... 당시 가장 적합한 고구려의 수도는 요양 부근으로 추정됩니다

  • @에스카노르-i8j
    @에스카노르-i8j Год назад +4

    아니 수나라 당나라 대규모 수군을 이용해서 평양성 공격 했다는것만 봐도
    평양성은 중국 대륙과 커다란 바다가 있다는건데.
    저런 강에 무슨 대규모 수군을 이용한다는거임??
    그리고 수나라 당나라가 요택을 건넜다는 기록도 있고
    저 위쪽으로 가는거면 요택을 왜 건너감??
    그리고 과거에 거리 기준 지금하고 완전 다름.
    그때 당시 몇 천리하는게 지금 기준으로 맞을거 같음??ㅋㅋ
    측량도 제멋대로 하고 그것도 맞지 않았던게 옛날 거리 측정임.
    대충 몇 천리 하면 멀다지.
    그리고 평양성이 저기 있음. 바로 평양성 처들어가지.
    안시성 요동성을 왜 공격함?
    최대 영토는 고구려 고조선이 북경까지 진출 했다는 이해 되나.
    밑도 끝도 없이.
    그리고 후연 멸망하면서 북경 부근 통제권은 북위에 넘어갔어.
    장수왕때 이미 북경은 통제권 잃었다는거임.

    • @gaebingdo18nomparkU
      @gaebingdo18nomparkU Год назад +1

      황하를 바다라 했습니다 그리고 군 병력이 백만이 넘으니 대규모죠
      요택 비정을 잘 하세요 북경 가기전에도 커다란 요택이 있습니다
      본인 말씀대로라면 항공모함 50척은 필요할 겁니다
      당나라군은 바다에 나온적 이 없어요 바다를 모르죠 바다의 파도에 맞서는 배가 아닙니다
      중고생때 당에게 조선술을 배웠다는 얘기 생구라 입니다
      그냥 지도만보고 중얼거리면 안됩니다 여러가지를 생각하세요
      황하와 지류인 패수를 거쳐 올라가거나 황하 요동성(요주)를 따라 올라간 겁니다
      소정방 얘기도거짓입니다

    • @jipark_2373
      @jipark_2373 Год назад

      ​@@gaebingdo18nomparkU 연개소문이 쌓은 천리장성은 어디에 있었나요

    • @hyugi-papa
      @hyugi-papa 7 месяцев назад

      태행산맥 기준으로 동쪽은 고구리, 서쪽은 선비, 선비의 동쪽은 화하족.
      선비족들이 고구리를 침공할 때는 태행산맥을 넘어 공격하고, 화하족은 황하를 따라 공격함.
      호태왕 시기 선비족이 고구리에 밀려 산서성 서쪽 황하를 건너 화하족의 땅으로 쫓겨남. 선비족이 화하족의 땅에서 수,당을 세우고 고구리를 공격한 것은 산서성 고토회복 전쟁이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