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사력 최강! 하지만 고구려가 삼국통일에 실패한 이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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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Опубликовано: 10 янв 2025

Комментарии • 272

  • @아메-r5z
    @아메-r5z 3 месяца назад +6

    일단 고구려의 전선이 너무 넓었고 표면적으로보이는 영토로는 백제,신라가 약해보이지만 실질적으로는 한반도 남부의 곡창지대를 장악하고 있었기때문에 생산력과 인구가 고구려에 크게 밀리지는않는 끈끈한국가였기때문에 고구려라해도 단기간에 삼국을통일하기에는 한계가 있었다고봅니다

  • @LeeJun8338
    @LeeJun8338 3 месяца назад +13

    연남생 밉다 미워.
    해도 되는 게 있고 절대 하지 말아야 하는 게 있죠.
    연남생은 선을 넘었죠.
    연남건과 연남산과 연정토가 권력 다툼을 하는 것도 싫지만요.
    졌으면 승복하고 하나로 뭉쳐서 부강한 나라로 만들어야죠.
    당나라의 첨병 역할을 하는 게 말이 되는지. 어휴.
    세세히 알려주셔서 고마워요.

    • @y310017
      @y310017 3 месяца назад

      저는 백제 장군 예식진이 더 미운데, 당나라와 신라가 동맹을 맺고, 백제를 침략했을때 예식진이 의자왕을 잡아 당나라에게 갖다 받쳤음. 그래서 백제 멸망 백제 무너지니, 고구려가 당나라, 신라 공격을 막아내기에는 힘이 부족 했을거고 예식진은 나라를 팔아먹고 당나라에서 아주 잘 먹고 잘 살아요!! 매국노 예식진... 당나라 승리로 한반도 영토는 줄고 이 시기부터 아시아는 중국 중심으로 굴러갑니다. 짜증나죠!!

    • @킬-방원
      @킬-방원 2 месяца назад

      저 시대에 정변을 진압 못하고 졌으면 목숨까지 내놔야 합니다. 승복하고 하나로 뭉쳐라?당장 연남생 아들 연헌성도 자기 엄마(즉 연남생의 아내)랑 형(연남생의 큰아들)이 삼촌(남건,남산)의 군대에게 목 썰려 죽는 와중에 탈출해서 아무것도 모르고 국토순시 중이던 연남생한테 간 겁니다. 그런데 연남생이 남건,남산한테 승복하면 남건,남산이 남생이한테 살아서 우리 도와달라 그러겠습니까? 연남생이 두 동생에게 승복하자마자 두 동생은 바로 연남생과 연헌성의 목을 베어다가 저잣거리에 효수했을 겁니다. 그냥 정변 일으킨 연남건,연남산 형제가 미친놈들인 거고 그 때문에 당나라에 투신한 연남생,연헌성 부자도 미친놈들인 거죠. 그냥 애초에 연개소문이 정권을 보장왕에게 돌려주고 죽었어야 됐어요. 무리하게 아들들한테 정권을 물려주다가 그 사달이 난 거라고 봅니다.

    • @jeonggeunkim6002
      @jeonggeunkim6002 2 месяца назад +2

      한국 사람들이 모르는 것이 있는데 삼국시대 고구려는 그렇게 강한 나라가 아닙니다 일단 인구가 많아야 하는데 고구려의 인구는 신라나 백제와 비슷했으며 신라 백제 고구려
      모두 전성기 시절이 있었습니다 고구려는 중국의 삼국지시대( 위 오 촉이 서로 다투는 조조 유비 손권의 시대) 만 하더라도 맨날 위나라와 만주에 있던 한나라의 제후중 하나인
      공손찬 (공손연) 세력에 얻어 터지고 당하던 시기였으며 동천왕 시기에는 위나라의 관구검 이라는 장수가 데려온 오환 및 선비족 병사 1만명에게 동천왕이 전병력 2만명을 동원
      하여 방어를 하다 처음에는 잘싸웠으나 점차 패하면서수도가 함락되고 수도에 살던 고구려 백성 1만명이 도륙을 당하고 동천왕은 가족과 부하 일부만 데리고서 두만강까지 도망
      을 갑니다 당시 옥저가 있었지요 옥저에 겨우 몸과 가족및 소수의 부하들을 의탁할 정도 였지만 사마의와 자식들이 세운 서진이 중국의 3대악녀라 불리우는 가황후로 인해서 8왕
      의 난이 일어나서 망한후 중국이 오랑캐라 부르는 5호 (흉노.강.저.갈.선비) 가 강대해지고 중국이 5호16국 시대로 쪼개어져 약화되자 그때부터 조금씩 살아나기 시작해서 장수왕
      시절부터 광개토왕 까지 강해집니다 5세기에서 6세기쯤입니다 고구려의 최고 왕중 하나인 장수왕 시절에도 북위에 수도없이 조공과 공녀를 바치면서 공격을 막고 내치를 다지면
      서 변방의 소수민족들을 공격하여 영토를 넓혔습니다 남쪽을 신경쓸 틈도 없었습니다 평양천도도 장수왕 시절 중국이 통일되거나 몽골지역쪽의 흉노나선비 침략을 피하기 위해서
      수많은 신하들의 건의로 옮긴 것이였습니다 그래서 수나라와 당나라시절 수문제나 당태종 이세민의 공격을 수도를 중국에서 멀리 한반도 깊숙이 옮겨서 살아남을수 있었던 것
      이었죠 그리고 고구려내에도 영토를 넓히는 과정에서 다른 민족들을 흡수해서 말갈족 저족 강족 습족 해족등이 포함되어 있었고 5부 연나 환나 비류 관노 계류 등이 갈등이 매우
      커서 단합이 잘안되었습니다

    • @단통이
      @단통이 2 месяца назад

      ​@@jeonggeunkim6002광개토 대왕 시절에. 가야 신라가 일본 합작품 백제를 멸하기에 공격함 백제가 고구려 한테 sos. 살려달라고 5만 병력으로 신라 가야. 왜국 다 물리침 신라 백제 고구려 한테 조공 바침

  • @dharmadoyaji
    @dharmadoyaji 3 месяца назад +9

    여러 전문가분들이 말씀하신 가장 중요한 사항은 신라나 백제 하나를 상대하기에는 넘치는 힘을 가졌지만 둘 다를 상대하기에는 모자란 힘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통일은 불가능 했음
    고구려가 다른 세력에 그리 친화적인 세력도 아니라 일단 둘이서 하나 상대하자가 될리도 없고

    • @jeonggeunkim6002
      @jeonggeunkim6002 2 месяца назад +3

      한국 사람들이 모르는 것이 있는데 삼국시대 고구려는 그렇게 강한 나라가 아닙니다 일단 인구가 많아야 하는데 고구려의 인구는 신라나 백제와 비슷했으며 신라 백제 고구려
      모두 전성기 시절이 있었습니다 고구려는 중국의 삼국지시대( 위 오 촉이 서로 다투는 조조 유비 손권의 시대) 만 하더라도 맨날 위나라와 만주에 있던 한나라의 제후중 하나인
      공손찬 (공손연) 세력에 얻어 터지고 당하던 시기였으며 동천왕 시기에는 위나라의 관구검 이라는 장수가 데려온 오환 및 선비족 병사 1만명에게 동천왕이 전병력 2만명을 동원
      하여 방어를 하다 처음에는 잘싸웠으나 점차 패하면서수도가 함락되고 수도에 살던 고구려 백성 1만명이 도륙을 당하고 동천왕은 가족과 부하 일부만 데리고서 두만강까지 도망
      을 갑니다 당시 옥저가 있었지요 옥저에 겨우 몸과 가족및 소수의 부하들을 의탁할 정도 였지만 사마의와 자식들이 세운 서진이 중국의 3대악녀라 불리우는 가황후로 인해서 8왕
      의 난이 일어나서 망한후 중국이 오랑캐라 부르는 5호 (흉노.강.저.갈.선비) 가 강대해지고 중국이 5호16국 시대로 쪼개어져 약화되자 그때부터 조금씩 살아나기 시작해서 장수왕
      시절부터 광개토왕 까지 강해집니다 5세기에서 6세기쯤입니다 고구려의 최고 왕중 하나인 장수왕 시절에도 북위에 수도없이 조공과 공녀를 바치면서 공격을 막고 내치를 다지면
      서 변방의 소수민족들을 공격하여 영토를 넓혔습니다 남쪽을 신경쓸 틈도 없었습니다 평양천도도 장수왕 시절 중국이 통일되거나 몽골지역쪽의 흉노나선비 침략을 피하기 위해서
      수많은 신하들의 건의로 옮긴 것이였습니다 그래서 수나라와 당나라시절 수문제나 당태종 이세민의 공격을 수도를 중국에서 멀리 한반도 깊숙이 옮겨서 살아남을수 있었던 것
      이었죠

    • @ruvoluble
      @ruvoluble 2 месяца назад

      ​@@jeonggeunkim6002내용 중 일부는 근거가 필요합니다

  • @정의는승리-j1g
    @정의는승리-j1g 3 месяца назад +3

    똑똑하시고 고우신 다지샘 좋은 강의 잘 보고 배우고 갑니다. 즐거운 주말 보내세요~~

  • @nephemaeosly
    @nephemaeosly 3 месяца назад +8

    현실을 바탕으로 과거를 추리하고 추론해야 하지만 현실에만 갇혀 있으면 그 한계를 벗어 나지 못하는 것도 있는듯 합니다~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참고 할께요^^건강하고 예쁘십니다~

    • @jeonggeunkim6002
      @jeonggeunkim6002 2 месяца назад +1

      한국 사람들이 모르는 것이 있는데 삼국시대 고구려는 그렇게 강한 나라가 아닙니다 일단 인구가 많아야 하는데 고구려의 인구는 신라나 백제와 비슷했으며 신라 백제 고구려
      모두 전성기 시절이 있었습니다 고구려는 중국의 삼국지시대( 위 오 촉이 서로 다투는 조조 유비 손권의 시대) 만 하더라도 맨날 위나라와 만주에 있던 한나라의 제후중 하나인
      공손찬 (공손연) 세력에 얻어 터지고 당하던 시기였으며 동천왕 시기에는 위나라의 관구검 이라는 장수가 데려온 오환 및 선비족 병사 1만명에게 동천왕이 전병력 2만명을 동원
      하여 방어를 하다 처음에는 잘싸웠으나 점차 패하면서수도가 함락되고 수도에 살던 고구려 백성 1만명이 도륙을 당하고 동천왕은 가족과 부하 일부만 데리고서 두만강까지 도망
      을 갑니다 당시 옥저가 있었지요 옥저에 겨우 몸과 가족및 소수의 부하들을 의탁할 정도 였지만 사마의와 자식들이 세운 서진이 중국의 3대악녀라 불리우는 가황후로 인해서 8왕
      의 난이 일어나서 망한후 중국이 오랑캐라 부르는 5호 (흉노.강.저.갈.선비) 가 강대해지고 중국이 5호16국 시대로 쪼개어져 약화되자 그때부터 조금씩 살아나기 시작해서 장수왕
      시절부터 광개토왕 까지 강해집니다 5세기에서 6세기쯤입니다 고구려의 최고 왕중 하나인 장수왕 시절에도 북위에 수도없이 조공과 공녀를 바치면서 공격을 막고 내치를 다지면
      서 변방의 소수민족들을 공격하여 영토를 넓혔습니다 남쪽을 신경쓸 틈도 없었습니다 평양천도도 장수왕 시절 중국이 통일되거나 몽골지역쪽의 흉노나선비 침략을 피하기 위해서
      수많은 신하들의 건의로 옮긴 것이였습니다 그래서 수나라와 당나라시절 수문제나 당태종 이세민의 공격을 수도를 중국에서 멀리 한반도 깊숙이 옮겨서 살아남을수 있었던 것
      이었죠 그리고 고구려내에도 영토를 넓히는 과정에서 다른 민족들을 흡수해서 말갈족 저족 강족 습족 해족등이 포함되어 있었고 5부 연나 환나 비류 관노 계류 등이 갈등이 매우
      커서 단합이 잘안되었습니다

    • @jilim9349
      @jilim9349 2 месяца назад

      @@jeonggeunkim6002장문충 ㅈ되네

  • @고대경-b6d
    @고대경-b6d 3 месяца назад +3

    고구려가 삼국통일을 하지 못한 이유는 지정학적으로 고구려는 특정 지역에 군사력과 국력을 집중시키지 못하는 불리한 위치에 있었고 인구와 경제력, 농업 생산력에서 백제와 신라를 압도 하지 못했던 것과 태왕과 귀족, 평양을 근거로 한 신세력, 국내성을 근거한 구세력의 갈등, 수당 이라는 중국의 거대한 통일왕조의 등장이 고구려가 삼국 통일을 하지 못한 이유죠.
    그리고 고구려 입장에서는 한반도의 백제와 신라를 멸망시키는 것 보다는 북방유목 제국인 유연과 돌궐, 북중국을 통일한 북위, 중국 통일왕조인 수당으로 부터 만주와 요동을 지키고 한강유역을 완전히 차지하고 백제와 신라의 북진을 견제하는 것이 중요했다고 봅니다.

  • @leedaum
    @leedaum 3 месяца назад +11

    선생님 더 이뻐지셨어요❤❤ 오늘도 유익한 영상 감사합니다 😊

    • @mskwon1564
      @mskwon1564 3 месяца назад +2

      공부나 열심히 해. 선생님 넘보지 말고 (* 선생님은 내가 벌써 -침발라뒀··- 찜 해뒀음) 😕
      고구려 때엔 후연, 북위 때문에 통일 못하고, 6.25 때는 중공군 땜에 통일 못하고 ··· ㅠ.ㅜ
      그래서 중국을 천년의 원수라고 한다는 것 정도나 알아두세요. 😕

    • @princ2024
      @princ2024 3 месяца назад

      @@mskwon1564 换个叫法2千年的主人,中国是朝鲜半岛的宗主国

    • @공정분배-f8v
      @공정분배-f8v 2 месяца назад

      @@princ2024
      1890년대 까지 한반도 중국 연해주는 고려.
      이후 국력이 줄어들어
      1909년 까지 공식적으로 한반도 만주 연해는 고려.
      그래서 홍범도 장군이 소련 공산당 가입 목적을 고려독립이라고 기재.
      1930년대 까지 미국 3개주는 우리말 사용 ㅡ 다음 검색
      이또 히로부미는 왜 백인일까요?
      명성황후는 미국에서 살해 당했다 경복궁은 ㅡ 다음 검색

    • @공정분배-f8v
      @공정분배-f8v 2 месяца назад

      @@princ2024
      중국에 한족은 없다 유전자 조사 발표 ㅡ 다음 검색

    • @중년양치기
      @중년양치기 2 месяца назад

      👍👍👍​@@mskwon1564

  • @user-gorgeous9
    @user-gorgeous9 Месяц назад

    선생님 강의 아주 좋아요👍

  • @해오름-m7m
    @해오름-m7m 3 месяца назад +1

    멋진 선생님 강의 잘시청했습니다 엄지척👍👍👍

  • @user-nabear
    @user-nabear 3 месяца назад +1

    휴~~ 요즘 바빠서 좋은 강의를 못봐서 어지럽습니다. ㅎㅎ 오늘부터 정주행 하겠습니다. ^.^;;

  • @해적단-g3g
    @해적단-g3g 2 месяца назад

    선생님 오랜만에 잘 배우고 갑니다!

  • @gjrngjsskf-f5z
    @gjrngjsskf-f5z 2 месяца назад +1

    고구려가 삼국 통일 국력이 안되었던거지. 수 당 전에 선전 했던거는 길고긴 수송로때문이고 나중에 신라랑 연합하면서 군 물자 보급이 쉬워진거고.
    고구려 위치가 모든 국력을 남으로 쏟기에는 위쪽이 부담되고 광개토대왕때 북진 정책을 하엿지만 장수왕때 남진 정책을함 고구려가 땅은 넓지만 인구는 생각보다 많지 않음 거기서 위기를 느낀 신라와 백제가 동맹을 맺고 저항하니 결국 패하고 밀려난거고

  • @princessseona
    @princessseona 3 месяца назад +2

    쌤 우씨왕후 이야기도 영상으로 제작해주세요❤

  • @youngsinchang112
    @youngsinchang112 Месяц назад +2

    고구려가 통일되었어야 했다.

  • @gooddr.710
    @gooddr.710 3 месяца назад +7

    반 만년의 유구한 우리의 역사
    그러나
    영토에 대한 운은 없었다

    • @모라가고
      @모라가고 2 месяца назад +1

      역사 전문가입니다. 고조선을 한국의 역사라고 보기는 좀 애매한 부분이 있습니다. 따라서 한반도 5천년 역사니, 반만년 역사니 하는건 허황된 소리입니다.

  • @LeeYoungHeun
    @LeeYoungHeun Месяц назад +1

    고구려가 통일했다면, 이후 역사에서 중국이나 북방민족으로부터 멸망했을 가능성이 많이 높아진다. 특히 다민족 국가였기때문에 표음문자인 한글보다 표의문자인 한자가 유용했을 것이다. 중국에 흡수될 위험이 컸다. 그걸 극복하고 하나의 민족으로 살아남으려면 세종이나 이순신급의 영웅이 고구려에서 계속 나왔어야 한다. 가능성이 낮다고 본다

  • @제우스-q5v
    @제우스-q5v 3 месяца назад

    유익하고 이뻤어요 😅

  • @usaterraqua
    @usaterraqua 2 месяца назад

    쌤 제스처가 넘 귀여우심요ㅎㅎㅎ 😍😍😍

  • @johnny0320
    @johnny0320 3 месяца назад +1

    고구려가 아무리 강해도 인구가 300만 정도이고 통일을 이룰만한 경제력도 안되고 그나마 중국 위진 남북조시기를 이용해 광개토왕때
    비려의 소금과 말을 이용해 반짝 컸으나 수를 비롯한 중국통일왕조와의 대결에서 밀려서 소금과 기병전력 유지위해 필수적인 초지를 상실

  • @nr5005
    @nr5005 2 месяца назад

    아몰랑 다지쌤 너무 이뻐용❤

  • @kkkorea-q6c
    @kkkorea-q6c 2 месяца назад +2

    안녕하세요 참역사운영자입니다.구려(고려원래이름)시대는 연방시대(12국 벽화.일본서기등 참고)였기때문에 당시 고구려시대였으므로 고구려가삼국통일ᆢ이란 주제는 사실에 어긋납니다.즉,조선중심 현재국사내용 자쳬가 잘못된사실을 알려드립니다.감사합니다.

    • @김우주-b7c
      @김우주-b7c Месяц назад

      구려사람도 고구려 또는 고려사람이라고 불렸습니다

    • @김우주-b7c
      @김우주-b7c Месяц назад

      그리고 고구려는 전성기때 연방체제 아니였서요

  • @ICEMAN-o3y
    @ICEMAN-o3y 3 месяца назад +1

    지리적으로 샌드위치 상황이라 하고 싶어도 못했을듯합니다. (역사학자들의 말을 빌리자면 애시당초 고구려 역대왕들도 할 의지가 없었다고들 하더군요. 삼한통일이라는건 그냥 사극에서나 나오는 대사이고....?? ) 그리고 고구려의 인구와 백제, 신라의 인구 이런게 불확실한데 백제가 영토는 작았어도 힘좀 쓰던 나라였다고들 하니 쉽게 먹지는 못했을듯 합니다. 의자왕도 물론 갑자기 해안에서 당나라군이 동쪽에서 신라군이 쳐들어오니 백제 혼자 손쓰기도 버거웠겠지만 요즘에는 '의자왕 =삼천궁녀를 거느렸던 타락한 군주' 이쪽보다는 지방 호족들과 사이가 원만치 못해서 지방 호족들이 원병을 안보내줘서 계백장군의 5천 결사대라는게 의자왕의 직속 친위부대였다라는 설이 더 힘을 받더군요. 멸망 몇년전만해도 신라 대야성을 함락시키고 신라를 바람앞의 촛불신세까지로 밀어붙였던 백제였는데 그 군대가 죄다 없어지고 고작 5천만 남았다는거 부터가 이치상 맞지 않다고 봅니다..고구려는 거기대로 중국 수나라의 침략과 당태종 침공때 쓰였던 청야전술이 부메랑으로 돌아와서 적들의 대군을 겨우 물리쳤지만 역으로 고구려에게도 심한 타격을 줘서 혹자들은 연개소문의 아들들이 분열이 안됐더라도 오래 못갔을거라 예상을 하더군요. 지금이야 농업기술의 발달로 북한과 만주 지역에서도 농사가 되지만 그 시기 부여와 고구려의 영토가 땅만 컸지 실질적으로 쓸만한 땅이 얼마나 있었는지도 의문이긴 합니다. (특히 부여는 지금도 농경국가였는지 반농반유목이었는지 사료가 너무 적어서 알수는 없는데 그 지역은 위도상 지금도 농사짓고 살기에는 부적합한한 곳이라는데...) 영토작은거에 불만들이 많이들 있으신데 저도 이해는 가는 바인데 (기왕이면 큰게 좋으니까요) 남한땅만 떼서 유럽에 가져다놔도 오스트리아나 스위스보다 큰 재법 그럴듯한 면적이더군요. 참고로 20세기초까지 나름 대국이었던 오스트리아인들중 "고토를 회복하자" 그런 얼토당토하는 주장을 하는 사람은 없다더군요. 유럽국가들은 되려 국토가 작아져도 지역감정이 심한 탓인지 분리주의자들이 스페인,이탈리아,벨기에, 영국에서는 분리독립주장의 소리가 높다고 합니다.

    • @jeonggeunkim6002
      @jeonggeunkim6002 2 месяца назад +1

      한국 사람들이 모르는 것이 있는데 삼국시대 고구려는 그렇게 강한 나라가 아닙니다 일단 인구가 많아야 하는데 고구려의 인구는 신라나 백제와 비슷했으며 신라 백제 고구려
      모두 전성기 시절이 있었습니다 고구려는 중국의 삼국지시대( 위 오 촉이 서로 다투는 조조 유비 손권의 시대) 만 하더라도 맨날 위나라와 만주에 있던 한나라의 제후중 하나인
      공손찬 (공손연) 세력에 얻어 터지고 당하던 시기였으며 동천왕 시기에는 위나라의 관구검 이라는 장수가 데려온 오환 및 선비족 병사 1만명에게 동천왕이 전병력 2만명을 동원
      하여 방어를 하다 처음에는 잘싸웠으나 점차 패하면서수도가 함락되고 수도에 살던 고구려 백성 1만명이 도륙을 당하고 동천왕은 가족과 부하 일부만 데리고서 두만강까지 도망
      을 갑니다 당시 옥저가 있었지요 옥저에 겨우 몸과 가족및 소수의 부하들을 의탁할 정도 였지만 사마의와 자식들이 세운 서진이 중국의 3대악녀라 불리우는 가황후로 인해서 8왕
      의 난이 일어나서 망한후 중국이 오랑캐라 부르는 5호 (흉노.강.저.갈.선비) 가 강대해지고 중국이 5호16국 시대로 쪼개어져 약화되자 그때부터 조금씩 살아나기 시작해서 장수왕
      시절부터 광개토왕 까지 강해집니다 5세기에서 6세기쯤입니다 고구려의 최고 왕중 하나인 장수왕 시절에도 북위에 수도없이 조공과 공녀를 바치면서 공격을 막고 내치를 다지면
      서 변방의 소수민족들을 공격하여 영토를 넓혔습니다 남쪽을 신경쓸 틈도 없었습니다 평양천도도 장수왕 시절 중국이 통일되거나 몽골지역쪽의 흉노나선비 침략을 피하기 위해서
      수많은 신하들의 건의로 옮긴 것이였습니다 그래서 수나라와 당나라시절 수문제나 당태종 이세민의 공격을 수도를 중국에서 멀리 한반도 깊숙이 옮겨서 살아남을수 있었던 것
      이었죠 그리고 고구려내에도 영토를 넓히는 과정에서 다른 민족들을 흡수해서 말갈족 저족 강족 습족 해족등이 포함되어 있었고 5부 연나 환나 비류 관노 계류 등이 갈등이 매우
      커서 단합이 잘안되었습니다

    • @ICEMAN-o3y
      @ICEMAN-o3y 2 месяца назад

      @@jeonggeunkim6002 그냥 큰 영토에 대한 로망과 철갑으로 무장한 개마무사들... 멋은있지요. 사극에서도 멋있게들 표현이 됩니다. 그런데 예나 지금이나 먹고사는 문제가 가장 중요한건데 백제가 차지하고 있는 호남평야, 나주평야...이거 심으면 이거 나오고 저거 심으면 저거나오는 최고의 농지라는데 지금 현대에도 그렇지만요. 식량생산이 풍부했던 백제의 인구가 적을수가 없다고 개인적으로는 생각이 됩니다. 경남지역은 안가봤지만 경북쪽은 바위산들이 많더군요. (특히 문경). 로마제국 멸망이후 왜 프랑스가 가장 빨리 유럽에서 힘이 강한 나라가 됐던 이유가 질좋은 농지가 가장 주요 이유라고들 학계에서는 말하더군요. (인구의 증가면에서만 보면 영국을 훨씬 능가했었습니다. 근데 왜 백년전쟁초반에 프랑스의 인구가 훨씬 많았다는데 얻어터지는거보면 인구가 다는 아니었나 봅니다. 나폴레옹때도 프랑스의 인구가 영국보다더 많았다고 하는데 의외로 오스트리아도 대제국이었고...얘들은 헝가리, 발칸반도국가까지 합쳐져서.... 독일은 그냥 이합집산으로 분리되 있었고....) 제가 미국에서 Prep Military School을 다녀서 '전쟁사'라는 과목이 별도로 있었는데 서양권에서도 유일하게 한국에서 벌어진 고대전쟁 두개를 가르치는데 하나는 고수전쟁(인류역사상 그런 병력이 동원된건 첨이라고 합니다. 페르시아 제국 백만대군설은 뻥이라고들 합니다) 그리고 영국과 스페인이 벌인 칼레해전과 더불어 본격적인 함대전(함포사격)으로 적을 박살낸 '한산대첩' 이 두개는 선생님이 가르치셨는데 쫌 아쉬워던건 고수전쟁때는 나라이름이 '고구려'가 아니라 '고려'여서 그냥 '코리아'라고 했으면 제가 더 국뽕을 맞았을텐데...ㅋㅋ

  • @이진호-i5l
    @이진호-i5l 2 месяца назад

    그거는 대륙쪽의 대규모 침공에 주력
    해야하기 때문에 병력을 후방쪽 신라
    와 백제쪽으로 분산한다는 건 위험이
    따르기에 통일을 염두에 두지 몾했죠

  • @moony9403
    @moony9403 3 месяца назад

    잘 배우고 갑니다.

  • @대막리지-연개소문
    @대막리지-연개소문 2 месяца назад

    구독박고 가겠습니다.^^

  • @루아루아키
    @루아루아키 2 месяца назад +2

    한반도의 분열은 중국에는 호재, 중국의 분열은 우리에게 호재입니다. 이건 역사의 진리입니다. 그래서 중국이 기를 쓰고 북한을 도와주는 거죠.

    • @jeonggeunkim6002
      @jeonggeunkim6002 2 месяца назад +4

      한국 사람들이 모르는 것이 있는데 삼국시대 고구려는 그렇게 강한 나라가 아닙니다 일단 인구가 많아야 하는데 고구려의 인구는 신라나 백제와 비슷했으며 신라 백제 고구려
      모두 전성기 시절이 있었습니다 고구려는 중국의 삼국지시대( 위 오 촉이 서로 다투는 조조 유비 손권의 시대) 만 하더라도 맨날 위나라와 만주에 있던 한나라의 제후중 하나인
      공손찬 (공손연) 세력에 얻어 터지고 당하던 시기였으며 동천왕 시기에는 위나라의 관구검 이라는 장수가 데려온 오환 및 선비족 병사 1만명에게 동천왕이 전병력 2만명을 동원
      하여 방어를 하다 처음에는 잘싸웠으나 점차 패하면서수도가 함락되고 수도에 살던 고구려 백성 1만명이 도륙을 당하고 동천왕은 가족과 부하 일부만 데리고서 두만강까지 도망
      을 갑니다 당시 옥저가 있었지요 옥저에 겨우 몸과 가족및 소수의 부하들을 의탁할 정도 였지만 사마의와 자식들이 세운 서진이 중국의 3대악녀라 불리우는 가황후로 인해서 8왕
      의 난이 일어나서 망한후 중국이 오랑캐라 부르는 5호 (흉노.강.저.갈.선비) 가 강대해지고 중국이 5호16국 시대로 쪼개어져 약화되자 그때부터 조금씩 살아나기 시작해서 장수왕
      시절부터 광개토왕 까지 강해집니다 5세기에서 6세기쯤입니다 고구려의 최고 왕중 하나인 장수왕 시절에도 북위에 수도없이 조공과 공녀를 바치면서 공격을 막고 내치를 다지면
      서 변방의 소수민족들을 공격하여 영토를 넓혔습니다 남쪽을 신경쓸 틈도 없었습니다 평양천도도 장수왕 시절 중국이 통일되거나 몽골지역쪽의 흉노나선비 침략을 피하기 위해서
      수많은 신하들의 건의로 옮긴 것이였습니다 그래서 수나라와 당나라시절 수문제나 당태종 이세민의 공격을 수도를 중국에서 멀리 한반도 깊숙이 옮겨서 살아남을수 있었던 것
      이었죠 그리고 고구려내에도 영토를 넓히는 과정에서 다른 민족들을 흡수해서 말갈족 저족 강족 습족 해족등이 포함되어 있었고 5부 연나 환나 비류 관노 계류 등이 갈등이 매우
      커서 단합이 잘안되었습니다

    • @노을길
      @노을길 2 месяца назад

      중국 러시아가 북을 돕는 것은 미국 때문임! 미국의 세계 패권이 중국 러시아 입장에선 같은 편이 필요하니,

  • @곰발바닥-h6u
    @곰발바닥-h6u 2 месяца назад +1

    낙수와 낙양이 하남에 도착
    (대명여지도 중중기본,중중초본)
    황하가 大河에 도착 (중초본)
    장강이 大江에 도착. (대명여지도 중중기본)
    출발지의 삭제는 중중초본

  • @너구리-g2q
    @너구리-g2q 2 месяца назад

    전선을 남쪽으로 집중가능했으면 가능했지만 윗쪽 에 60퍼이상 아래쪽 40퍼정도 병력 두었을거예요

  • @shinepark3004
    @shinepark3004 2 месяца назад +1

    글쎄 고구려가 통일 했어도 그 땅을 유지 할 수 있었을까? 북방민족이 독립했을 수 도 있고 중국과 앞뒤 안가리고 적대 하다가 중국에 먹혔은 수도 있고 고구려 땅이 민족 역사에서는 가장 넓다고는 하지만 옆에 중원에 비교하면 또 엄청 큰건 아니라 그 땅을 기반으로 중국을 씹어 먹었을 거라 보기도 힘들고 그닥 비옥한 땅도 아니라 더 많이 굶지 않았을까? 진짜 역사에 만약에라는 말은 1도 의미가 없는듯 하다

  • @victorshinepostsjs
    @victorshinepostsjs 3 месяца назад +1

    (⁠ ⁠˘⁠ ⁠³⁠˘⁠)⁠♡💝💖🐑🤍🍧🍧🍡👀
    참으로 아름답구려~🌺

  • @BLGJeongIlSu
    @BLGJeongIlSu 2 месяца назад

    고구려 최대판도는 문자명왕
    발해도 정복전쟁 활발했고 장문휴 등주 공격, 마도산 전투도 있음 ㅋㅋ 교과서 내용 말고는 모르시는분

  • @kkt9719
    @kkt9719 3 месяца назад +3

    선생님 전 역사에 문외한이긴 한데 늘 궁금한게 있어요. 물어볼 사람도 없고 아마 제 질문에 답할 사람도 없을건데요. 참 희한하다고 생각합니다. 당태종 이세민이 고구려와의 전쟁에서 패해 연개소문을 피해 달아나서 우물에 숨어서 겨우 목숨을 부지해서 나중에 기념탑을 세웁니다. 몽롱보탑(朦朧寶塔)이라고 하지요. 전 그 위치가 대충 북경근처이겠지 했는데 나중에 찾아보니 강소성 염성시 즉 위치를 보면 현재 제주도와같은 위도더라구요. 거기까지 고구려군대가 이세민을 죽이려 내려왔다고 최소 1,000km이상? 추격했다고??중간에 각종 성이나 당나라 군대를 제끼고? 둘 중하나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봅니다. 몽롱보탑(朦朧寶塔) 즉 이세민이 거짓말을 했거나 현재 우리가 배우는 역사가 거짓말을 했을겁니다. 정말 그당시 고구려의 영역은 어디까지 였을까요?

    • @김상중-b5f
      @김상중-b5f 3 месяца назад

      @@kkt9719 대군을 움직이려면 성을 쳐야 보급할수 있고 후방의 위험도 사라지지만 추격하는것만 하면 굳이 성을 안거쳐도 충분히 할수 있죠 성은 그야말로 조그마한 영역이고 95%이상은 성밖일텐데요 그리고 대군을 징집했기에 내륙지역 성에는 군사가 얼마나 있겠습니까? 거기서 병사들이 나와서 도와준다? 그럴수도 있겠지만 굳이 성을 안친다면야 그들도 성안에 있지 뭐하러 밖에 나와서 싸웁니까? 그리고 영역이라는게 성을 지배해야 그 일대라도 지배하는거지 추격했다고 다 영역이 되나요? 실질적인 지배가 저정도됐다고 추정하는거지 정확하지는 않죠 그렇다고 중국본토까지 지배했다는건 오버죠

    • @JKJ0509
      @JKJ0509 3 месяца назад +1

      고대의 요동은 북경 인근지역임 따라서 고구려와 당나라의 국경선은 북경 인근이었음
      수나라와 당나라가 고구려를 침략할때 군대가 집결한 지역은 북경 근처의 탁군임
      만약 한국 군대가 북한으로 처들어간다면 군대가 휴전선 근처에서 집결해서 북한으로 가지 목포나 부산에서 집결해서 북한으로 가지는 않을것임
      또한 고구려의 평양성은 현재의 평양이 아니라 대륙에 있었음
      이렇게 이해하면 연개소문이 이세민을 추격해서 대륙 깊숙히 들어갈수 있었던 것도 설명이 가능해짐
      요동 지역을 현재의 관점으로 보고 평양성을 현재의 북한 평양으로 보면 설명이 불가능함

    • @kkt9719
      @kkt9719 3 месяца назад

      @@김상중-b5f 그러니깐 몇백키로라면 가능했겠는데 지금의 안시성에서 강소성까지 거리가 가까운거리도 아니고 지금처럼 고속도로가 있는것도 아니고 그게 가능했냐하는거죠. 물론 비스무리한게 병자호란때 청나라 기마 수백기가 조선의 성 제끼고 한양까지 몇일만에 쳐들어온거는 이해가 가도 고구려시대때 그게 가능했을까? 그것도 중국대륙을 관통해서? 그게 상식적으로 가능했을까?

    • @공정분배-f8v
      @공정분배-f8v 2 месяца назад +1

      단군이 부족들을 모아 세계 최초로 국가향태인 조선을 건국.
      이후 삼한이 나눠 세계를 다스리다 신라가 전세게를 통일.
      고려가 이어받고
      조선이 이어받아 고종때까지 전세게를 다스림.
      명성황후는 미국에서 살해 당했다 경복궁은 ㅡ 다음 검색
      이토 히로부미는 왜 백인일까요?

    • @미제드론
      @미제드론 2 месяца назад

      ​@@김상중-b5f대꾸할 가치가 없는건 그냥 내버려 두세요.

  • @오리온-d1t
    @오리온-d1t 2 месяца назад +1

    고구려 주도 통일 좋았을 것이다 그것은 영토 관점의 이상 바램, 그게 현실이었다면 좋은데 고구려의 능력 한계 아닐까.

  • @alex500029
    @alex500029 3 месяца назад

    ㅎㅎ 더 아름다워지셨어요

  • @이정후-w2k
    @이정후-w2k 2 месяца назад +1

    고구려가 삼국 통일에 실패한 이유는?? 배용준 혹은 이태곤 씨한테 물어보면 답이 나올 거라 생각합니다~~ ㅎㅎㅎ

  • @박지현-h4o3r
    @박지현-h4o3r 2 месяца назад

    다음에도 좋은 강의 올려주세요

  • @정균한-d8v
    @정균한-d8v 2 месяца назад

    기후영양때문이네요
    👊🙏👏🫰😍😎
    ❤️🧡💛💚💙💖

  • @im9822
    @im9822 2 месяца назад

    통일은 한족이 아닌 이민족의 관점의 개념임. 진나라, 수나라, 당나라, 원나라, 청나라 모두 이민족 국가임. 한나라는 진나라 체제를, 명나라는 원나라 체제를 답습함.

  • @tva6445
    @tva6445 2 месяца назад

    고구려는 통일 못했고 고려는 어떻게 통일했을까? 고구려가 삼국통일 못한건 필연이다 고려왕건이 후백제 견훤과 전쟁하는데 온 국력을 쥐어짜서 후백제 내분으로 고려에 결정타였고 신라는 걍 항복 무엇보다 북쪽에 발해는 거란에20만
    기병을 막아주는 방파제 하지만 고구려는 고려하고 상황이 달랐다. 아무리 군사력이 강했다 해도 통일중국 수 당나라를 상대하는데도 전력이 부족하고 후방에 백제 신라를 신경쓸 겨를이 없음

  • @최우삼-z1t
    @최우삼-z1t 3 месяца назад

    열심히 하세요

  • @양자리-c7f
    @양자리-c7f 3 месяца назад

    서북쪽 중국세력이 주적이었죠
    남정에 주력부대를 다 빼올수도 없고 그냥 신라랑 백제가 서료 견제 하게 상황을 먄드는게 최선이 아니었나 싶어요

  • @이준-f5d
    @이준-f5d 2 месяца назад

    이다지도 그리울수가

  • @equalizer9511
    @equalizer9511 3 месяца назад

    원래 1인자는 견제세력이 많아서 힘듦.
    삼국지에서도 초한지에서도.....

  • @성만현-g2b
    @성만현-g2b 3 месяца назад +2

    평양성이. 북에 있는 평양이 맞아요??!!!

    • @킬-방원
      @킬-방원 2 месяца назад

      네. 일단은 주류사학계 입장은 그렇습니다. 그리고 다지쌤은 역사학자가 아니라 역사 강사입니다. 강사는 어디까지나 주류 학계의 입장을 따를 수밖에 없습니다.

  • @장원석-c7k
    @장원석-c7k 3 месяца назад

    우와 똑똑하세요

  • @즐겁게살자-v1y
    @즐겁게살자-v1y 2 месяца назад

    역사에 IF는 없다

  • @정창운-k8y
    @정창운-k8y 2 месяца назад +1

    고구려가 세계에서 젤 땅이 커는데 시베리아 캐나다 까지임

  • @HANSHINLEE-yf5jj
    @HANSHINLEE-yf5jj Месяц назад

    고구려가 삼국을 진짜 통일하지 못한이유??
    정답: 다지 쌤이 예뻐서..

  • @임홍섭-h2m
    @임홍섭-h2m 3 месяца назад

    예쁘용~^^

  • @jayjo8731
    @jayjo8731 2 месяца назад

    고구려 위에 있는 국가들 입장에서는 백제 신라 가야가 남아있어야 고구려가 견제가 되어서 정복하게 놔두지 않았을 듯해요 ㅎㅎ

  • @김태순
    @김태순 2 месяца назад

    금관가야도 사실상 먹지

  • @명동남자
    @명동남자 3 месяца назад +1

    오늘 처음알았어

  • @오창언-y4n
    @오창언-y4n 2 месяца назад

    다지쌤

  • @user-yo4om3ol6b
    @user-yo4om3ol6b Месяц назад

    중국인 접경국인데 어떻게 통일을함.. 진짜 통일하고 싶었으면 중국 혼란기까지 국방에 몰빵했다가 시기왔을때 빠르게 통일 했어야함

  • @대상-p7h
    @대상-p7h 2 месяца назад

    우리민족은 삼한인데
    고구려즉부여족은 엄밀한의미에서 만주족임

  • @오이팅구
    @오이팅구 Месяц назад

    연개소문 당나라 전적 28전 4승 24패 이게 우리나라 현실이였음

  • @김태순
    @김태순 2 месяца назад

    너무땅이컷고 그리고 중국의 잦은침입으로 인한 국력의 약화죠

  • @절식남-g1w
    @절식남-g1w Месяц назад

    고구려와 백제는 중앙집권체제가 아니라서

  • @Sndjj23324
    @Sndjj23324 2 месяца назад +1

    조선보다 땅덩이가작은데 역사를 제대로아시고 해야될것같네요, 조선건국할때 가로로 2천리 세로로4천리라했습니다, 이성계가 북경에서 조선을 창설했습니다😂😂😂

  • @관심법-f5p
    @관심법-f5p 3 месяца назад

    후연도 신성 일대만 치고 돌아갔는대 그걸 제대로 간파 못하고 다음해에 그 일대 회복하고 담덕이 후연 으로 쳐들어 가서 그래요....

  • @미솔로지-u6u
    @미솔로지-u6u 2 месяца назад

    백제, 왜, 가야 동시에 뚜까패고 후연 멸망까지 시킨 광개토인데 안한게 맞지..고구려의 천하관이 있으니까

  • @김명곤-l7q
    @김명곤-l7q 2 месяца назад

    삼국 통일이 아니라 삼한 일통입니다.

  • @바신라
    @바신라 2 месяца назад

    고구려가 삼국통일 할 일도 없고 명분도 없습니다 고구려 입장에선 삼국이란 게 존제하지도 않습니다

  • @빠생-s2h
    @빠생-s2h 2 месяца назад

    내부의 적때문

  • @대한대현
    @대한대현 3 месяца назад

    고구려는 대신 백제 신라를 제후국으로 삼았죠

  • @검-o6b
    @검-o6b Месяц назад

    실패아니고 안했다고

  • @나일권-h4r
    @나일권-h4r 2 месяца назад

    신라가 더강해서 입니다
    공산당이 문제다 우리는 식민사관이 문제다 역사는역시 책보고 네이버가 책보고 고소했다

  • @antenna..
    @antenna.. 2 месяца назад +1

    다지님 백두산은 원래 중국것?인가요?

  • @2345pok
    @2345pok 3 месяца назад

    고구려가 주위국 견제를 많이 받은거같더라구영

    • @jeonggeunkim6002
      @jeonggeunkim6002 2 месяца назад +1

      한국 사람들이 모르는 것이 있는데 삼국시대 고구려는 그렇게 강한 나라가 아닙니다 일단 인구가 많아야 하는데 고구려의 인구는 신라나 백제와 비슷했으며 신라 백제 고구려
      모두 전성기 시절이 있었습니다 고구려는 중국의 삼국지시대( 위 오 촉이 서로 다투는 조조 유비 손권의 시대) 만 하더라도 맨날 위나라와 만주에 있던 한나라의 제후중 하나인
      공손찬 (공손연) 세력에 얻어 터지고 당하던 시기였으며 동천왕 시기에는 위나라의 관구검 이라는 장수가 데려온 오환 및 선비족 병사 1만명에게 동천왕이 전병력 2만명을 동원
      하여 방어를 하다 처음에는 잘싸웠으나 점차 패하면서수도가 함락되고 수도에 살던 고구려 백성 1만명이 도륙을 당하고 동천왕은 가족과 부하 일부만 데리고서 두만강까지 도망
      을 갑니다 당시 옥저가 있었지요 옥저에 겨우 몸과 가족및 소수의 부하들을 의탁할 정도 였지만 사마의와 자식들이 세운 서진이 중국의 3대악녀라 불리우는 가황후로 인해서 8왕
      의 난이 일어나서 망한후 중국이 오랑캐라 부르는 5호 (흉노.강.저.갈.선비) 가 강대해지고 중국이 5호16국 시대로 쪼개어져 약화되자 그때부터 조금씩 살아나기 시작해서 장수왕
      시절부터 광개토왕 까지 강해집니다 5세기에서 6세기쯤입니다 고구려의 최고 왕중 하나인 장수왕 시절에도 북위에 수도없이 조공과 공녀를 바치면서 공격을 막고 내치를 다지면
      서 변방의 소수민족들을 공격하여 영토를 넓혔습니다 남쪽을 신경쓸 틈도 없었습니다 평양천도도 장수왕 시절 중국이 통일되거나 몽골지역쪽의 흉노나선비 침략을 피하기 위해서
      수많은 신하들의 건의로 옮긴 것이였습니다 그래서 수나라와 당나라시절 수문제나 당태종 이세민의 공격을 수도를 중국에서 멀리 한반도 깊숙이 옮겨서 살아남을수 있었던 것
      이었죠 그리고 고구려내에도 영토를 넓히는 과정에서 다른 민족들을 흡수해서 말갈족 저족 강족 습족 해족등이 포함되어 있었고 5부 연나 환나 비류 관노 계류 등이 갈등이 매우
      커서 단합이 잘안되었습니다

  • @MESSI_win
    @MESSI_win 6 дней назад

    역사의 진실은 역시 유튜브 책보고 채널

  • @김병철-g8e
    @김병철-g8e 2 месяца назад

    우와.. 살발하게 생겼네.. 여기서 끄,ㅌ

  • @프로테스탄트-p3y
    @프로테스탄트-p3y 2 месяца назад

    한강하고 이미지가 이렇게 다른가. 한강은 문학소녀.

  • @아이누-q8g
    @아이누-q8g 3 месяца назад

    안녕하세요. 저는 2020년 수능으로 동아시아사를 선택하고 강사님 인강을 듣던 학생입니다. 덕분에 좋은 성적을 거두고 지거국 상경계열로 입학하여 현재 막학기 재학중입니다. 비록 상경계열이지만, 이런 대체역사에도 관심이 많습니다. 현재 대체역사 웹소설도 많이 즐겨보는 편이구요. 저의 의견을 말하자면, 장수왕이 국내성에서 평양성으로 천도했다는 사실이 국내성파 vs 평양성파 구도의 대립을 야기했다는 의견이 있습니다. 이것이 7세기 즈음에 극대화되어 연개소문 정변이 터지고 태왕파 vs 연씨파 구도로 이어진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수도 천도에는 그럴만한 목적이 있겠지만, 그에 따른 부작용도 이어지기 마련이라고 봐요. 천도 이전 기존의 수도에 거점을 두던 세력들의 반발이 그 예라고 할 수 있구요.

  • @mojito_origin953
    @mojito_origin953 3 месяца назад

    중국 예나지금이나 졸라 짜증남

  • @Sくん-o5p
    @Sくん-o5p 2 месяца назад

    신라가 통일한게 천만다행이라고 봅니다

    • @jilim9349
      @jilim9349 2 месяца назад

      친구는 있으세요….?

    • @Sくん-o5p
      @Sくん-o5p 2 месяца назад

      @@jilim9349 왜그런말씀을하시나요?

    • @너구리-g2q
      @너구리-g2q 2 месяца назад

      그게 통일일까요

    • @Sくん-o5p
      @Sくん-o5p 2 месяца назад

      @@너구리-g2q 그럼 먼가여

  • @장성진-q9f
    @장성진-q9f 2 месяца назад

    재미가..

  • @오랜지-n9m
    @오랜지-n9m 3 месяца назад +3

    당시 고구려의 관심은 밑에 조그만한 백제 시라 가야보단 거대한 중국의 세력을 견제하는게 우선이었기때문에 백제 신라만큼 삼국통일에 크게 매달리지 않았슴ㆍ만주만 다 차지해도 백제 신라 가야 다 차지한것보다 더 큰것이었기에 관심이 중국에 있었던것임

  • @klklkl4949
    @klklkl4949 3 месяца назад

    백제도 해주세요? 백제가 통일했으면 일본이 우리의 속국이 됬을가요?

    • @김상중-b5f
      @김상중-b5f 3 месяца назад

      @@klklkl4949 백제가 통일했다면 중국 조선처럼 백제가 사대받는 나라이지 속국은 아니지 조선을 중국속국이라고 하지 않자나 그리고 다 상상이라고해도 고구려처럼 조금 가능성이라도 있어야지 백제가 통일하는건 당신이 로또 여러번 당첨될 확률.. 그러니 백제는 아무도 안 다루지

    • @klklkl4949
      @klklkl4949 3 месяца назад

      @@김상중-b5f 하긴 속국은 너무 나가긴 하긴 했네요. 그래도 일본이 조공 받치고 해상강국이 된 역사도 재미 있었을듯 해요. 상대적으로 가장 약한 신라가 삼국 통일 한것도 역사적 아이러니 같아요. ㅎㅎㅎ

    • @김상중-b5f
      @김상중-b5f 3 месяца назад

      @@klklkl4949 상황이 사람을 변하게 한다고 백제는 한반도에서 가장 비옥한 토지를 가지고 있으니 여기만 지켜도 대대손손 먹고살지만 신라는 그곳을 벗어나야만 살 수 있으니 의지의 차이가 그런 결과를 나았다고 봄 고구려도 북쪽나라들과 잠깐 화친맺거나 땅을 조금 빼앗기더라도 청나라가 배후를 없애기위해 조선을 친것처럼 백제 신라를 먹고 다시 북쪽에 집중했음 광개토태왕이나 장수왕때 통일도 가능했으리라보는데 의지가 없었다고 보는게 맞다고 봄 황해도랑 한강주변만 있어도 먹고살수 있으니

    • @공정분배-f8v
      @공정분배-f8v 2 месяца назад +1

      중국에 한족은 없다 유전자 조사 발표 ㅡ 다음 검색

    • @공정분배-f8v
      @공정분배-f8v 2 месяца назад +1

      경상도 사투리로 제사지내는 일 왕실 기미가요는 ㅡ 다음 검색

  • @군침이싸악도노-q2b
    @군침이싸악도노-q2b 2 месяца назад

    엉터리 역사지만 예뻐서 봄

  • @하이슛팅
    @하이슛팅 2 месяца назад

    당나라가 더 강하지 않았나
    개다가 신라와 연합

  • @seongtaimoon1473
    @seongtaimoon1473 2 месяца назад

    랩하는줄.

  • @김민지-n6b2h
    @김민지-n6b2h Месяц назад

    고구려 중국역사 아닙니꽈?편입된걸로 아는뎅..

  • @houseon4178
    @houseon4178 3 месяца назад +2

    고구려가 삼국 통일 했다면 지금 한반도는 중국땅이고 우리는 중국의 소수 민족이 되었겠지..고구려보다 수백배 넓었던 인류 역사상 가장 넓은 땅을 지배했던 몽고 봐라. 이후 대부분은 중국에 흡수되고 지금은 극히 일부 소수의 인구가 몽고를 최약소국으로 겨우 유지하고 있다.

    • @kkt9719
      @kkt9719 3 месяца назад

      역사의 가정이 없지만 가장 긍정적인 회로를 돌리면 지금의 동북3성은 한족이 점령한 적은 없어. 청나라였지. 그전엔 후금, 금, 여진족(숙신,말갈), 몽골, 발해, 고구려의 땅이 었지. 고구려가 삼국을 통일하고 신라, 백제의 힘으로 일본을 정복하던지 굴복시키고 민족의 방어선을 요동, 요서만 잡고 있었으면 세계사가 바뀔 수도 있지. 중국에 흡수?당나라 빼곤 한반도에 진출한 중국왕조는 없었어 그것도 신라와 통수맺고 그런거고

    • @jeonggeunkim6002
      @jeonggeunkim6002 2 месяца назад

      한국 사람들이 모르는 것이 있는데 삼국시대 고구려는 그렇게 강한 나라가 아닙니다 일단 인구가 많아야 하는데 고구려의 인구는 신라나 백제와 비슷했으며 신라 백제 고구려
      모두 전성기 시절이 있었습니다 고구려는 중국의 삼국지시대( 위 오 촉이 서로 다투는 조조 유비 손권의 시대) 만 하더라도 맨날 위나라와 만주에 있던 한나라의 제후중 하나인
      공손찬 (공손연) 세력에 얻어 터지고 당하던 시기였으며 동천왕 시기에는 위나라의 관구검 이라는 장수가 데려온 오환 및 선비족 병사 1만명에게 동천왕이 전병력 2만명을 동원
      하여 방어를 하다 처음에는 잘싸웠으나 점차 패하면서수도가 함락되고 수도에 살던 고구려 백성 1만명이 도륙을 당하고 동천왕은 가족과 부하 일부만 데리고서 두만강까지 도망
      을 갑니다 당시 옥저가 있었지요 옥저에 겨우 몸과 가족및 소수의 부하들을 의탁할 정도 였지만 사마의와 자식들이 세운 서진이 중국의 3대악녀라 불리우는 가황후로 인해서 8왕
      의 난이 일어나서 망한후 중국이 오랑캐라 부르는 5호 (흉노.강.저.갈.선비) 가 강대해지고 중국이 5호16국 시대로 쪼개어져 약화되자 그때부터 조금씩 살아나기 시작해서 장수왕
      시절부터 광개토왕 까지 강해집니다 5세기에서 6세기쯤입니다 고구려의 최고 왕중 하나인 장수왕 시절에도 북위에 수도없이 조공과 공녀를 바치면서 공격을 막고 내치를 다지면
      서 변방의 소수민족들을 공격하여 영토를 넓혔습니다 남쪽을 신경쓸 틈도 없었습니다 평양천도도 장수왕 시절 중국이 통일되거나 몽골지역쪽의 흉노나선비 침략을 피하기 위해서
      수많은 신하들의 건의로 옮긴 것이였습니다 그래서 수나라와 당나라시절 수문제나 당태종 이세민의 공격을 수도를 중국에서 멀리 한반도 깊숙이 옮겨서 살아남을수 있었던 것
      이었죠 그리고 고구려내에도 영토를 넓히는 과정에서 다른 민족들을 흡수해서 말갈족 저족 강족 습족 해족등이 포함되어 있었고 5부 연나 환나 비류 관노 계류 등이 갈등이 매우
      커서 단합이 잘안되었습니다

  • @ko5to1uz5d-x1m
    @ko5to1uz5d-x1m 3 месяца назад

    남쎄이가 헛짓거리 해서 가족들이 형제손에 죽어도 니라를 팔아먹어

  • @pangpanglove2296
    @pangpanglove2296 3 месяца назад +8

    중국을 통일했어야 했는데..

    • @명동남자
      @명동남자 3 месяца назад +2

      @@pangpanglove2296
      통일 X
      멸망 O

    • @조코비
      @조코비 3 месяца назад +6

      무슨 힘으로요? 인구수, 경제력 차이가 너무 나는데 불가능하죠.

    • @검정색-s1z
      @검정색-s1z 3 месяца назад

      통일했으면? 마냥 중국 싫다고 그냥 생각없이 처말하고 있네
      제대로 다스리지도 못할 거 억지로 처먹다가 토해서 분열되고 지금의 한국이랑 완전 딴판이 될 수도 있는데

    • @green_._tea
      @green_._tea 3 месяца назад +2

      그랬으면 고구려는 한국역사가 아니라 중국역사 되는건데?

    • @이희곤-r3d
      @이희곤-r3d 3 месяца назад +2

      ​@@조코비청나라

  • @Park-rt3hn
    @Park-rt3hn 3 месяца назад +4

    못한게 아니라 그냥 안 한거... 지금 보니 한반도 머 단일민족 개념이지만 그 당시엔 그런 개념이 없었음. 그냥 북방오랑캐와 다름 없는 남방 오랑캐가 신라와 백제임. 삼국통일 이런 개념은 지금에 와서 보니 그런거...ㅎ

    • @user-mx4hj7nu9t
      @user-mx4hj7nu9t 3 месяца назад +1

      못한 거.. 고구려는 요서 세력에 항상 양잡 잡혀 있었고, 국력을 한 방면으로 쏟기 어려웠음.

    • @하트호야-d5h
      @하트호야-d5h 3 месяца назад

      안한게 아니라 못한거

    • @공정분배-f8v
      @공정분배-f8v 2 месяца назад +2

      중국에 한족은 없다 유전자 조사 발표 ㅡ 다음 검색

  • @integritasong
    @integritasong 3 месяца назад +2

    혼인은 했는지?

  • @jeonggeunkim6002
    @jeonggeunkim6002 2 месяца назад +1

    한국 사람들이 모르는 것이 있는데 삼국시대 고구려는 그렇게 강한 나라가 아닙니다 일단 인구가 많아야 하는데 고구려의 인구는 신라나 백제와 비슷했으며 신라 백제 고구려
    모두 전성기 시절이 있었습니다 고구려는 중국의 삼국지시대( 위 오 촉이 서로 다투는 조조 유비 손권의 시대) 만 하더라도 맨날 위나라와 만주에 있던 한나라의 제후중 하나인
    공손찬 (공손연) 세력에 얻어 터지고 당하던 시기였으며 동천왕 시기에는 위나라의 관구검 이라는 장수가 데려온 오환 및 선비족 병사 1만명에게 동천왕이 전병력 2만명을 동원
    하여 방어를 하다 처음에는 잘싸웠으나 점차 패하면서수도가 함락되고 수도에 살던 고구려 백성 1만명이 도륙을 당하고 동천왕은 가족과 부하 일부만 데리고서 두만강까지 도망
    을 갑니다 당시 옥저가 있었지요 옥저에 겨우 몸과 가족및 소수의 부하들을 의탁할 정도 였지만 사마의와 자식들이 세운 서진이 중국의 3대악녀라 불리우는 가황후로 인해서 8왕
    의 난이 일어나서 망한후 중국이 오랑캐라 부르는 5호 (흉노.강.저.갈.선비) 가 강대해지고 중국이 5호16국 시대로 쪼개어져 약화되자 그때부터 조금씩 살아나기 시작해서 장수왕
    시절부터 광개토왕 까지 강해집니다 5세기에서 6세기쯤입니다 고구려의 최고 왕중 하나인 장수왕 시절에도 북위에 수도없이 조공과 공녀를 바치면서 공격을 막고 내치를 다지면
    서 변방의 소수민족들을 공격하여 영토를 넓혔습니다 남쪽을 신경쓸 틈도 없었습니다 평양천도도 장수왕 시절 중국이 통일되거나 몽골지역쪽의 흉노나선비 침략을 피하기 위해서
    수많은 신하들의 건의로 옮긴 것이였습니다 그래서 수나라와 당나라시절 수문제나 당태종 이세민의 공격을 수도를 중국에서 멀리 한반도 깊숙이 옮겨서 살아남을수 있었던 것
    이었죠 그리고 고구려내에도 영토를 넓히는 과정에서 다른 민족들을 흡수해서 말갈족 저족 강족 습족 해족등이 포함되어 있었고 5부 연나 환나 비류 관노 계류 등이 갈등이 매우
    커서 단합이 잘안되었습니다

    • @blueming.sunday4910
      @blueming.sunday4910 2 месяца назад +1

      장수왕이 광개토대왕보다 후손일텐데...왜 장수왕부터 광개토대왕까지인거죠?

  • @재성전-f8v
    @재성전-f8v 3 месяца назад +1

    굴복시키고도 같은 조선의 후예라고, 고조선식의 제후국으로 살려놓았다가 뒤통수 거하게 맞은거지

    • @공정분배-f8v
      @공정분배-f8v 2 месяца назад +1

      1890년대 까지 한반도 중국 연해주는 고려.
      이후 국력이 줄어들어
      1909년 까지 공식적으로 한반도 만주 연해는 고려.
      그래서 홍범도 장군이 소련 공산당 가입 목적을 고려독립이라고 기재.
      1930년대 까지 미국 3개주는 우리말 사용 ㅡ 다음 검색
      이또 히로부미는 왜 백인일까요?
      명성황후는 미국에서 살해 당했다 경복궁은 ㅡ 다음 검색

  • @김수민-q3e9o
    @김수민-q3e9o 3 месяца назад +3

    고구려가 통일했다면 지금의 대한민국은 없고 중국일 가능성이 높을꺼 같은데.. 고구려의 북방땅을 수백년동안 과연 지킬수 있을지.. 당나라 거란 금나라 원나라를 상대로 고구려 북방을 지킬수 있었을지 장담 못하죠
    예전 고구려의 영토를 가졌던 발해도 거란한테 순식간에 멸망 당하는데..
    고구려가 수백년동안 그 넓은 영토를 지키기 매우 힘들듯..

    • @공정분배-f8v
      @공정분배-f8v 2 месяца назад +1

      중국에 한족은 없다 유전자 조사 발표 ㅡ 다음 검색

    • @킬-방원
      @킬-방원 2 месяца назад

      참고로 백제도 나당연합군 침략 8일만에 멸망했습니다.(발해는 거란 침략으로부터 약 15일만에 멸망.)

  • @검-o6b
    @검-o6b Месяц назад

    디질래 깐족깐족

  • @Lovevery-z5d
    @Lovevery-z5d 3 месяца назад +2

    백제 신라를 완전히 폐망시키고 없애버렸어야 했다. 그럼 수당을 물리친후 중원을 도모할수 있었다. 패착은 백제 신라를 정벌하고도 그대로 군신관계만 맺고 살려둔게 패착이였다.

    • @김정균-h4v
      @김정균-h4v 3 месяца назад +2

      이다지 쌤께서 그게 불가능했다고 말씀하시잖아요. 그리고 백제, 신라 패망시키는 거 아마 신라처럼 다른 나라한터 손벌렸어야 했을 겁니다

    • @하트호야-d5h
      @하트호야-d5h 3 месяца назад

      살려둔게 패착이 아니라 죽이지를 못한거라고 등신아

    • @jeonggeunkim6002
      @jeonggeunkim6002 2 месяца назад +1

      한국 사람들이 모르는 것이 있는데 삼국시대 고구려는 그렇게 강한 나라가 아닙니다 일단 인구가 많아야 하는데 고구려의 인구는 신라나 백제와 비슷했으며 신라 백제 고구려
      모두 전성기 시절이 있었습니다 고구려는 중국의 삼국지시대( 위 오 촉이 서로 다투는 조조 유비 손권의 시대) 만 하더라도 맨날 위나라와 만주에 있던 한나라의 제후중 하나인
      공손찬 (공손연) 세력에 얻어 터지고 당하던 시기였으며 동천왕 시기에는 위나라의 관구검 이라는 장수가 데려온 오환 및 선비족 병사 1만명에게 동천왕이 전병력 2만명을 동원
      하여 방어를 하다 처음에는 잘싸웠으나 점차 패하면서수도가 함락되고 수도에 살던 고구려 백성 1만명이 도륙을 당하고 동천왕은 가족과 부하 일부만 데리고서 두만강까지 도망
      을 갑니다 당시 옥저가 있었지요 옥저에 겨우 몸과 가족및 소수의 부하들을 의탁할 정도 였지만 사마의와 자식들이 세운 서진이 중국의 3대악녀라 불리우는 가황후로 인해서 8왕
      의 난이 일어나서 망한후 중국이 오랑캐라 부르는 5호 (흉노.강.저.갈.선비) 가 강대해지고 중국이 5호16국 시대로 쪼개어져 약화되자 그때부터 조금씩 살아나기 시작해서 장수왕
      시절부터 광개토왕 까지 강해집니다 5세기에서 6세기쯤입니다 고구려의 최고 왕중 하나인 장수왕 시절에도 북위에 수도없이 조공과 공녀를 바치면서 공격을 막고 내치를 다지면
      서 변방의 소수민족들을 공격하여 영토를 넓혔습니다 남쪽을 신경쓸 틈도 없었습니다 평양천도도 장수왕 시절 중국이 통일되거나 몽골지역쪽의 흉노나선비 침략을 피하기 위해서
      수많은 신하들의 건의로 옮긴 것이였습니다 그래서 수나라와 당나라시절 수문제나 당태종 이세민의 공격을 수도를 중국에서 멀리 한반도 깊숙이 옮겨서 살아남을수 있었던 것
      이었죠 그리고 고구려내에도 영토를 넓히는 과정에서 다른 민족들을 흡수해서 말갈족 저족 강족 습족 해족등이 포함되어 있었고 5부 연나 환나 비류 관노 계류 등이 갈등이 매우
      커서 단합이 잘안되었습니다

  • @울림-n5l
    @울림-n5l 3 месяца назад

    왜 계속 이쁘시지..

  • @wsk-k2i
    @wsk-k2i 2 месяца назад

    나가던 (구)세계사 덕후로서 나누기를 해보면,
    1. 역사 초중딩은 면적(넓이)만 보일 뿐, 그 토질은 보지 못함. 현대 이전에 농업 국가는 ***토질(기후, 수량 포함)***이 훠~씬 중요하며, 만주와 한반도를 통틀어 최고의 농토는 신라 경주분지를 포함하여 삼한 지역에 분포하였슴. 현 김해평양, 김제평야는 존재하지도 않았슴(이건 지리 지식이 필요한데, 역시나 초중딩 레벨은 이해도 못하고 가르쳐 줘도 이해할 수 없다는 건 이해함-초중딩들은 어른이 되고 대학교 쯤 다니다 보면 돌아와서 이 것이 뭘 의미하는 지 성장하고 나서야 이해가 될 것임). 즉, 신라와 백제를 합한 국가가 고구려보다 훨씬 좋은 조건의 국가임.
    2. 고구려는 다민족 국가로서 600년 이상을 갔지만, 역시나 다민족 정체성을 그대로 유지한 채로 멸망했고 그래서 말갈과 고구려인으로 각자 집단을 따로 꾸림. 600년이 지났어도 여전히 당제국이 고구려군을 격파하고 수 만명을 포로로 잡은 뒤 말갈과 고구려인들을 구별할 수 있을 정도였슴. 반면에 신라는 고구려를 멸한 뒤에, 중앙군에 말갈인 부대와 고구려인 부대를 편성하면서 나중에 신라인으로 녹여냄. 그래서, 신라가 멸망했을 때에도 말로만 고구려나 백제를 내거는 사람은 있었어도 실제는 신라본토인과 구별할 수 없는 신라인이 되어있었슴. 신라는 이걸 단 200여년 만에 해낸 것이고, 고구려는 600년 넘게 말갈과 함께 살면서도 해내지 못했고, 이건 신라의 문화력이나 중앙집중력이 고구려보다 월등하게 좋았슴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볼 수 있슴.
    3. 고구려 최강기마군단썰은 사실이 아님, 각종 유튜버들과 심지어 공영방송인 KBS에서 조차 국뽕 편집을 했었고, 사실이 아닌걸 사실인 것처럼 한국사를 조작하는 과정에서 과장된 것임. 당시 중국이 동북공정이란 역사 왜곡 사업을 중공정부차원에서 추진하던 때라, 이에 대응해서 KBS라는 국영방송을 동원해서 한국사 왜곡 콘텐츠를 만들어 뿌렸다고 보면 됨. 사실은 고구려 기마군단은 동북아 최약체였다고 보면됨. 선비족 기마군단에 썰리고 고구려 수도가 불탔으며, 가장 큰 피해는 고구려 속국이던 옥저가 불타고 완전 멸망해서 역사에서 지워졌었고, 위나라 군단에 썰리고, 당제국과 벌판에 고구려철기병 수 만으로 큰 싸움을 벌렸다가 당제국에 대패함. 고구려가 거둔 승리는 거의 대부분 중국 보병들이 오기전에 먼저 고구려의 땅위의 집을 불태우고 식량도 불태우고 우물에 독을 뿌린뒤, 산위의 산성에서 버티며 상대방이 지쳐서 돌아갈 때 나와서 뒤통수를 때리는 방어전이었슴. 같은 만주 지역 기반이면서도 말갈(여진)은 두 번이나 중원을 정복했고, 거란도 한 번, 몽골도 한 번, 각 종 유목민족들이 한 번씩은 중국을 상당 부분을 점령하고 제국을 세웠으나, 산성 위주의 방어전에만 강했던 고구려는 600년이나 제 자리(만주)에 있으면서도 단 한 번도 중원을 제패해보지 못한 최약체 국가임.
    4. 고구려인의 인구 자체가 얼마 되지 않았슴. 역사적으로 나라가 멸망했어도 인종청소를 하지 않은 한 그 민족 자체는 그 자리나 그 근처에 살아남게 되어있슴. 하지만, 고구려는 멸망한 뒤에 잠깐 저항운동을 하다가 역사속에서 싸그리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림. 무려 668년 이상 만주 한 곳에서 살았다던 고구려인들이 지금 만주에 몇 명이나 살까? 답은 단 한 명도 없다임. 그럼, 고구려인들과 함께 고구려를 구성하던 말갈(여진)인들은 얼마나 만주에 살고 있는가? 정답은 지금도 1천만명 이상 살고 있슴. 즉, 간단하게 말하면,고구려인은 워낙 소수라 멸망 후 그냥 대다수 였던 말갈인들 사이에서 녹아 없어져 버린 것임. 그럼, 어떻게 소수(고구려인)가 다수(말갈인)를 600년이나 지배했을 까?... 이에 대한 답은 세계사를 아는 사람이면 질문 같지도 않는 질문이라는 걸 단번에 알 것임. 이유는 그런 경우가 너무도 많이 차고 넘치기 때문임.
    5. 지도로 보면 땅은 넓은 것 같지만, 고구려인 인구 자체는 많지 않았고, 추워서 농사도 잘 안되니 식량도 넉넉하지 않았고, 그렇다고 맨날 고기먹어서 체력/체격이 좋았던 이웃 기마민족처럼 고구려인 개개인의 힘과 체력이 좋은 것도 아니었고, 기병 전투를 할려고 보니 활쏘기와 기마술에서 유목기마민족들보다 잘 하는 것도 아니었고, 뭘 할려고 해도 춥고 배고파서 인구도 많지 않으니 뭘 하나 특출하게 잘 하는 것도 없고...이게 고구려의 실상이었슴. 당시엔 내가 말 좀 타고 활 좀 쏜다하면 중원으로 쳐들어가서 중원에서 생산되던 각종 꿀을 빠는게 전통이자 공식이었으나 600년 넘게 중원 옆에 있으면서도 이걸 못한 나라는 고구려가 유일함(고구려가 중원 주변 민족들 중 최약체였다는 근거).
    6. 고구려가 못 살면서도, 힘을 키우려고 해도 그럴 수 없었던 증거는 오늘날에도 볼 수 있는데, 북한(북조선이 정식 국호임)은 지금도 농사가 잘 안되서 겨우 인구 2천 5백만명이 살고 그 대부분의 인구가 굶주리고 영양실조에 걸려서 몸이 제대로 크질 않아, 북조선 일반 어른의 체격이 한국의 중학생만함. 북한 수도 평양이 고구려 수도였고, 그래도 북조선은 현대에 존재하는 나라라서 밖에서 기계와 석유라도 수입해서 농사를 지어서 그 정도이지만, 그 것도 없던 고구려는 훨씬 더 식량 사정이 좋지 않았음.
    7.춥고 농사가 잘 안 되고 인구의 대다수는 말갈인이고 공격력이 강하지 못했던 고구려는 그 전성기 때, 한성백제 수도를 뺏었고 충주까지 밀어붙였지만(누구나 전성기는 한 번씩 있었슴), 더 이상 내려 올 수는 없었슴. 내려올려고 하면 할 수록, 신라군과 백제군에 계속졌슴 그렇게 지다가 한강을 잃고 백제가 신라에게 요청해서 평양을 점령하고 고구려를 멸망시킬 기회라고 하자, 신라 측에서 백제의 견제를 위해 고구려와 밀약을 하고 거절해버림.
    요약: 중공의 동북공정에 맞서 KBS라는 국영방송을 동원한 당시 한국 정부(박근혜 때였던가... 그럼)의 대중국 국뽕 맞불 작전... 즉 중국의 역사 왜곡에 맞서 한국의 역사 왜곡으로 맞서겠다는 당시로서는 극소수 국뽕주의 한국 사람들이 호응했던 그 역사 왜곡의 후유증이 지금도 유령처럼 남아 역사 이해 수준이 낮은 중등, 고등생이 아직도 수 십 년 째, 새로이 중고딩이 생길 때 마다 무한 반복되는 듯한 이 역사 왜곡의 후유증이 치료되는 그날이 아직도 먼 것 같으며, 한국사를 대학교에서 가르치는 사람들과 한국사 교과서를 쓰는 사람들은 이런 후유증을 반성해서 자신들은 당시의 정치인들과 공모한 선배 역사 교수들과 역사책 저자들이 싸지른 이 문제를 수 십년 지난 오늘 날에도 치우느라 고생하면서도 나는 역사 왜곡을 역사 왜곡으로 대응한다는 이 방법이 얼마나 잘 못 된 것인가를 알기를 바란다.

  • @edwardwonghaupepelutivrusk6666
    @edwardwonghaupepelutivrusk6666 3 месяца назад

    고구려가 삼국을 통일 못했다고 아쉬울게 뭐가 있나? 고구려가 삼국을 통일했다면 현대 한국인은 사라지고 지금 이 땅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다른 존재들일텐데.

    • @dream8220
      @dream8220 3 месяца назад

      아무리 말해줘도 몰라요. 그저 남의 조상을 우리 조상인양 착각하면서 자위하고 사는거지..정작 자기의 친조상은 멸시하면서..그래서 대한민극을 배은망덕한 나라라고 하는거죠.

  • @김정균-h4v
    @김정균-h4v 3 месяца назад

    사실 고구려가 통일을 한다 해도 신라처럼 다른 강국의 힘을 빌리지 않고는 절대 불가능했을 겁니다.

  • @강치우-c3s
    @강치우-c3s Месяц назад

    공부나 좀 해라. 중공책이나. 읽어라

  • @안성현-d3g
    @안성현-d3g 3 месяца назад

    고구려가 삼국통일 했다면 몽골시조 칸 칭기즈칸은 어떻게 태어났을까?

  • @kkt9719
    @kkt9719 3 месяца назад

    동영상보면서 몇가지 걸리는게 있어서 적어요. 고구려 왕은 대왕이 아니라 "태왕"입니다. 조선시대나 위대한 왕을 대왕이라고 하지 고구려의 왕은 "태왕"입니다. 그리고 광개토태왕비에 나오는 "왜"가 정말 현재의 일본인지 의문입니다. 그냥 한반도 남부와 일본 일부 세력이 아닌지 하는 학설입니다. 왜=일본은 6세기에 성립된 걸로 알고 있습니다. 4세기초에 건립된 태왕릉비가 현재의 일본이라기 보다 일부 세력으로 봅니다.
    고구려과 삼국통일하지 못한 이유
    1. 광개토태왕때 아신왕을 죽이않고 살려두었다는 점 그러면 쉽게 백제와 신라, 가야까지 통일되지 않았을까 생각됩니다. 살려둔 이유는 백제와 신라를 속민에서 신민으로 삼았기 때문입니다.
    2. 장수왕때 개로왕을 죽이지만 나제동맹의 영향이 크죠.
    3. 천재적 군사재능이 지닌 광개토태왕이 단명(39세)에 영면했기 때문에 그 아들 장수태왕은 내치, 외교에 힘을 쏟을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죠.
    또한 장수왕때 고구려군대가 신라에 주둔했었고, 백제만 정복하면 충분히 통일도 가능했으나 장수왕은 능력이 없었다기 보다 의지가 없었다고 봅니다. 기타 동영상에 나오는 내용은 충분히 공감합니다.

    • @라칸-q3n
      @라칸-q3n 3 месяца назад +1

      이미 장수왕 이전인 200년대 중국 위나라 조비시절에 친위왜왕이라고 왜라는 칭호 썼음

    • @kkt9719
      @kkt9719 3 месяца назад

      @@라칸-q3n 그게 현재 일본이라는 증거가 있음?

    • @라칸-q3n
      @라칸-q3n 3 месяца назад

      @@kkt9719 친위왜왕은 그시절 일본지배국인 야마타이국 히미코여왕이 위나라조비한테 보낸거임 그게 증거가 안된다면 그시절 한반도패자인 고구려도 현한국이랑 아무 관련이 없는 나라라는말이 되는거임

    • @공정분배-f8v
      @공정분배-f8v 2 месяца назад +1

      @@라칸-q3n
      경상도 사투리로 제사지내는 일 왕실 기미가요는 ㅡ 다음 검색

    • @기고기고기고
      @기고기고기고 2 месяца назад

      왕을 죽이고 백제 그대로 밀고나갔다고해서 쉽게 통일되지않았을까라는생각은 아닌것같아요.
      요동쪽에 힘을 계속 빼놓고 남방원정을 장기간하기 부담스럽고
      설령 했더라도 금방 다시 찢어졌을거라 생각됩니다.
      당시 한반도,만주를 동시에 중국의 공격을 막으며 내치해내는건 불가능하죠
      고대국가는 귀족들의 힘이 너무 강했습니다(마음에 안들고 중앙에 힘이없고 땅이 쓸데없이크면 군벌화되거나 반란일어나기 너무 쉽죠)
      후대 고려조차 거란침공때 왕이 피난갈떄 그길이 얼마나 힘들었는지 보면 알수있죠.
      신라백제 연합하는순간부턴 정말 뚫기힘들죠 영토가 크고 군사력은 강했지만 관리하는데 효율이 떨어지고 인구,생산력을 압도하지못하고
      2:1은 커녕 1:1로도 비슷하니까요
      중원이나 만주같이 평원이라 한성뚫으면 수백키로 뚫고나갈수있는것도 아니고 여기저기 산지인 한반도에서 2:1은 진짜 너무 힘들었을겁니다.
      세계사에 영토를 넓힌 많은 정복군주들이 있지만
      정복한 영토를 제대로 내치해내기란 정말 쉽지않은일입니다.
      정복전쟁부터가 엄청난 국가재정이필요하기도합니다.
      흉노를 몰아낸 한무제때조차 정복전쟁으로 국가재정 거덜나고있었고
      청나라영토를 최대로넓힌 강희제떄마저 정복전쟁으로 국가재정은 힘들었고
      장수왕시기역시 영토를 넓힌이후 내치에 신경을 써야할수밖에 없었을겁니다.
      더군다나 천도까지 했으니말이죠.
      따로 약탈을하는 부대를 만들어 현지에서 조달하고 정복지에서 군대를 수급했던
      몽고,거란같은국가 정도아니면 영토를 넓힐때 국가재정안흔들린 국가가 거의 없었습니다.
      조선을 식민지화하려 청일전쟁승리하고 러일전쟁승리한 일본마저 러일전쟁 승리직후 재정난으로 허덕였고요
      역사적으로 영토확장-->곧바로 국력,경제력이 강화 되던시기는 군장국가수준까지 국가였을때밖에 없었죠
      한반도 삼국시기는 약간 예외의경우가 존재합니다만 특이케이스죠
      각국가 영토확장을 한강유역을 향해했기떄문에 당시 선진문물을 바로 교류하기 편해졌고
      그래서 영토확장이 되자마자 바로 국력신장에 도움이 많이됬죠
      물론 고구려 철강산지확보, 소금산지라던지 여러 특산물산지확보도 국력신장에 도움이 되긴했겠지만
      영토가 넓어진만큼 수로가 없는지역은 국가세수를 걷는것도 비효율적이게되서 관리가 어려웠죠
      고구려멸망후 발해 발해멸망후 그땅에서 발해를 잇는다는 수많은국가들이 일어났었고
      백제 신라지방에서 반란일어나는데 통일중국을 막아낸다는건...
      점령을 했다고 끝이 아닙니다. 내치가 무리없이 가능해야합니다.
      고려의 동북9성 철수(산악지형 샛길떄문에 막기어려웠다지만 어쩄든 철수)
      고려의 요동점령후철수(화재때문이라지만 당시 고려국력으로 명나라가 오면 안뺏겻을까요?)
      당시 한반도에서 물자를 대줘야했던점이 있기때문에도 철수한점이있고
      세종시대의 4군6진개척 고려의 동북9성을 교훈삼아 방어가 쉬운 지형을따라 국경을 넓혔지만
      그지역이 안정화 되는데만 200년걸렸습니다. 나중에 6진은 포기하기도했고요.
      전쟁에 이겨 한번 점령했다고 끝이 아닙니다.
      통일 중국의 공격을 버티며 그지역에 반란이 일어나지않게 내치까지 할수있어야죠.
      그런점에서 만주+한반도를 전부 그당시에 다스리기는 어려웠습니다.
      그보다 몇백년이상 한국가로 통일왕조가되서 있었으면 괜찮았겠죠
      하지만 이제막 백제신라 멸망시키고 제대로 한국가 한민족화 되지도못했는데
      중국이처들어오면 바로 남부지방 반란일어나겠죠.
      설령 그걸 다 진압하고 막아냈다고해도
      고구려가 수,당을 어떻게 막아냈습니까
      처들어올떄마다 밭에 곡식이고 집이고 전부부시고 다태워서 자기 뼈를깎아 겨우겨우 막아냈죠
      그러니 고수전쟁승리 이후에도 나라존립에 위협을느끼고 수나라에 계속 화친을 청했죠
      수나라 침공중 한번은 수나라에서 반란안일어났으면
      처음으로 비사성함락에 요동성함락에 위험해질뻔했었습니다.
      그거말고도 수양제가 본인에게 무조건 보고하라는 명령때문에 요동성도 함락직전 계속 위기를 면한것도있었고
      아무리 요서뻘밭에 중국측 보급이 힘들다할지언정
      전후 경제회복력자체가 달랐기에 우리가 중원을 치고들어가지않는한 만주지방은 언젠가 뻇겼겟죠
      그만큼 중국상대로 한반도와 만주를 같이 지키는건 너무도힘듭니다.
      이런점때문에 많은 세계역사학자들이 중국옆에서 중국이 되지않은 한국을 놀라워했죠.(사실 그안엔 많은이유가있지만요)
      비슷한 이유로 만주일대에서 흥기한 많은 유목민족국가들이 한반도부터 밟아놓고 중원으로 진출했죠
      한반도에서 자기쪽을 건드릴수없도록
      사실 지금에야 대한민국이 발전된국가지만
      대부분 산지라 진군루트뻔하고 지나가는성마다 다함락하지않으면 보급끊켜서 공격도 힘들어 제대로 공격하기도힘든데
      얻을건 중원에비해 별로없던땅이라
      중원쪽으로 진출하려고들했고 그전에 한반도국가들이 못나오게 눌러놨죠
      무튼 당시에 그렇게 통일을했어도 중국 공격이시작되거나 국가가 조금이라도 중앙에 힘이없어지면 반란이일어난다거나
      해서 다시 찢어지던지
      만주지방정도 중국에 뻇기던지 어떤국가가 통일을 했건 고구려,백제,신라의 영토를 합친채로 온전히 유지하긴힘들었을겁니다.
      관리도 어렵고

  • @코르누코피아-z3u
    @코르누코피아-z3u 2 месяца назад

    엥 뭐지 화장이 너무 진해서 그쪽 종사자인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