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주가 되자, 건물주가 아니다/ 좋은 건축가를 만나서 함께 집을 짓어라. 대체불가능한 사용가치가 높은 집을 지어라. 건물주의 삶은 척박하다. 조금 더 사랑하는 삶이고 관계여야 한다. 어디서든 이런 좋은 집은 지을 수 있다. 유토피아란? 유+토피아 없는 땅/ 실재하지 않는 이상향 플라톤 이데아론은 현실이 가짜이고 진짜가 따로 있다고 봄. 식민지 개척이 유토피아 실재화 백색 공간에 대한 열망 이에 대한 반성이 현재 철학 미셸 푸코의 말과 사물 장소에 대한 얘기. 순백의 중립공간에 살지 않는다. 헤테로토피아 다른, 이질적인 장소 바로 그곳이 숨구멍이다. 그 자각이 공간 생산 능력이다. 아토피아 아토포스 대체할 수 없는, 불안하기도 하고 설레기도 한 것. 매일 봐도 처음 본 사람같이. 확정되지 않은 비물리적 공간에서 아토포스 같은 설렘이 중요.
친자연적인 건축이면 좋겠습니다 자연풍경을 액자처럼 감상할 수 있는 창틀 달밤의 경치를 느낄 수 있는 넓은 창 근사한 원목이 아니어도 괜찮은 나무소재 김제 트리하우스 보고 싶네요 갑자기 든 생각 그 분은 굴러다니는 재목들을 모아 만드셨다고 하더군요 따님이 예술을 전공했다는데 아버님이 부럽다 하니 따님 왈 아빤 이미 예술가신걸요 라고 했다네요 대체불가능한 공간을 이미 선물로 받았다고 고백한 셈이죠
建=건=1.세우다 2.일으키다 3.아뢰다(말씀드려 알리다) 건 자 입니다 物 물건(物件) 2. 만물(萬物) 3 사물(事物)4.보다 5.살피다, 변별하다.헤아리다, 견주다(어떠한 차이가 있는지 알기 위하여 서로 대어 보다) 물 이라는 글의 뜻입니다. 즉 건물은 세우는 걸 살피는 일, 살피면서 세우는 일 결국 철학도 건물 입니다. 헤아려서 세우는 일 우리는 너무 고상한 명사와 그렇지 않은 명사로 나누어요. 물건을 세우는데 규칙을 가지 않으면 위험하죠? 다만 우리는 너무 이성적인 단어와 그렇지 않은 단어로 우리를 포장해 왔어요. 중요한 것을 건물의 한자 자체를 보면 뜻이 이와 같습니다. 이념도 건물이에요. 살펴서 세우는 것. 헤아려서 세우는 것. 이니까요. 이 문제는 제가 말하는 게 아니에요. 건물의 건 자의 뜻이 이렇습니다. 물의 뜻이 그래요! 사물을 마구잡이로 보는 것이 아니라 살펴서 세우는 모든 것은 건물이에요. 그 한자의 뜻이 그런 걸 어떻게 합니까? 물건을 헤아려 보는 것. 즉 관찰하고 사유하는 것도 건물이에요. 박구용 교수의 표현을 나무라는 것이 아니라 건물주라 할 때 건물을 가지고 재화를 늘린다는 인식이 비하이니까 건축으로 쓰자에요! 건물의 뜻 자체를 보면 문제 있나요? 우리가 사물 그리고 고차원의 무언가 이론을 세우고 학설을 세우는 건 대단하다는 1차 의식. 건물을 짓는 노동자 근로자는 노가다꾼이라고 해서 낮춰보거나 이론이나 학설을 세우는 분들과의 분별심! 이에요. 건축 디자이너는 우리 인식에 와! 노가다 꾼은? 우리의 인식이 그 사회의 이익에 맞게 과평가되고 더평가된 문제에요! 뛰어난 건축 디자이너가 있는데 건축물을 지을 일꾼 노동자가 없다면 그 어떤 경우에도 도면만 존재합니다. 그런데 우리 인식 안에서 이것은 좋고 저것은 않좋고가 깔려 있는거에요. 도덕성의 안에 있다면 흔히 노가다 꾼이 뭐 어때서요? 그분들이 없다면 그 어떤 건축설계도 건축이라는 형태로 현실에서 세워질 수 없습니다. 즉 우리의 인식이 도덕성을 담보하고 있다면 건축 디자이너는 우와! 이고 건축 노동자는 힘들일 하는데! 여기에서 우리 의식 안에서 차별을 한다는 겁니다. 무엇을 쫒아가니까? 지위와 명예! 의사는 와! 변호사는 와! 노가다꾼은 더울 때 더운데서 일하고 추울 때 추운데서 힘들게 일하는 사람? 우리 사회가 아무리 뛰어난 건축 디자이너 건축 설계자가 있다고 해도 그 노동의 고달픔으로 의사보다 월급 두배 이상 주면요! 잘나가는 변호사의 수입보다 노가다꾼의 수입이 두배 이상 높다면요! 즉 잘나가는 변호사가 한달에 600만원을 버는데 노가다꾼이 한달에 1200만원 번다면요! 우리의 인식이 바뀔 수도 있는 문제라는거에요. 도덕섬 안에 있는데 누구는 칭송받고 누구는 하대 천대시 한다는 문제! 이 문제는 그 사회가 특정 누군가들의 집단에 명예와 권위를 준 탓이에요! 건축 노동자가 도덕적인 잘못이 없는데 왜 의사나 변호사에 비해 노가다꾼이라고 낮춤의 대상이 되어야 하는가? 의사도ㅈ변호사도 건축노동자도 도덕성에는 다 결함이 없다고 할 때 어떤 직업은 와! 가 되고 어떤 직업은 노가다 꾼이에요! 이말이 낮춰지는 말이니까 건축 노동자라고 하는 겁니다. 우리는 그냥 건물의 한자적 뜻을 위에 소개했죠. 우리는 허아려 세우면 되요! 건물은 한자이고 건물의 한자적 뜻에는 세우다 헤아려서의 뜻이 담겨 있으니까! 즉 우리는 헤아려서 세우고 세우는 일을 해아리는 것.의사나 변호사는 와! 인데 건축노동자는 노가다꾼. 이때 우리는 무엇을 헤아려 세웠는가?
ㅋㅋ 난 장농 속에 숨다가 잠든 적도 있었는데 ᆢ
다락방도 좋아해요
케케한 곰팡이냄새로 그득한 그 곳은
내가 아닌 다른 생명체들이 우글우글 할것같은 묘한 이질적 세계에 들어선듯한 아틀란티스
철학자는 세상에 필요해! 설레는 불안함^^
너무 좋은 강의 들으며 행복하네요 ^^
두 분 케미 진짜 대박이에요😂😂😂
교수님 여러번 만나더니 진행자가 좀 달라졌네요. 다행이예요.😊 교수님의 힘!
한달에 한번 듣는걸루 모자랐는데 유쾌한 최장군님과 시원한 철학 너무 재밌어요~~
참 저는 명상을 통해 양자장에 접속하여 우주를 느낄 때 물질세계에서 쌓인 것들이 정화되는것 같아요~~! ㅎㅎ
ㅣㅣ
구용팍 ㅋㅋㅋㅋㅋㅋㅋㅋㅋ
건축주가 되자, 건물주가 아니다/ 좋은 건축가를 만나서 함께 집을 짓어라. 대체불가능한 사용가치가 높은 집을 지어라.
건물주의 삶은 척박하다.
조금 더 사랑하는 삶이고 관계여야 한다.
어디서든 이런 좋은 집은 지을 수 있다.
유토피아란? 유+토피아
없는 땅/ 실재하지 않는 이상향
플라톤 이데아론은 현실이 가짜이고 진짜가 따로 있다고 봄.
식민지 개척이 유토피아 실재화
백색 공간에 대한 열망
이에 대한 반성이 현재 철학
미셸 푸코의 말과 사물
장소에 대한 얘기.
순백의 중립공간에 살지 않는다.
헤테로토피아
다른, 이질적인 장소
바로 그곳이 숨구멍이다.
그 자각이 공간 생산 능력이다.
아토피아
아토포스
대체할 수 없는, 불안하기도 하고 설레기도 한 것.
매일 봐도 처음 본 사람같이.
확정되지 않은
비물리적 공간에서
아토포스 같은 설렘이 중요.
교수님 넘 잘 들었읍니다~
정신적 사랑,, 플라토닉 러브
두분캐미 아주 좋아요
♡
친자연적인 건축이면 좋겠습니다
자연풍경을 액자처럼 감상할 수 있는 창틀
달밤의 경치를 느낄 수 있는 넓은 창
근사한 원목이 아니어도 괜찮은 나무소재
김제 트리하우스 보고 싶네요
갑자기 든 생각
그 분은 굴러다니는 재목들을
모아 만드셨다고 하더군요
따님이 예술을 전공했다는데
아버님이 부럽다 하니
따님 왈 아빤 이미 예술가신걸요
라고 했다네요
대체불가능한 공간을 이미 선물로 받았다고 고백한 셈이죠
내 고향 사투리~
아주좋아!!!!
대체불가능 은 4시 ,,,최장군이죠
상상의 세계지도
建=건=1.세우다
2.일으키다
3.아뢰다(말씀드려 알리다)
건 자 입니다
物 물건(物件)
2. 만물(萬物)
3 사물(事物)4.보다
5.살피다, 변별하다.헤아리다, 견주다(어떠한 차이가 있는지 알기 위하여 서로 대어 보다)
물 이라는 글의 뜻입니다.
즉 건물은 세우는 걸 살피는 일, 살피면서 세우는 일
결국 철학도 건물 입니다.
헤아려서 세우는 일
우리는 너무 고상한 명사와 그렇지 않은 명사로 나누어요.
물건을 세우는데 규칙을 가지 않으면 위험하죠? 다만 우리는 너무 이성적인 단어와 그렇지 않은 단어로 우리를 포장해 왔어요. 중요한 것을 건물의 한자 자체를 보면 뜻이 이와 같습니다.
이념도 건물이에요. 살펴서 세우는 것. 헤아려서 세우는 것. 이니까요. 이 문제는 제가 말하는 게 아니에요. 건물의 건 자의 뜻이 이렇습니다.
물의 뜻이 그래요!
사물을 마구잡이로 보는 것이 아니라
살펴서 세우는 모든 것은 건물이에요. 그 한자의 뜻이 그런 걸 어떻게 합니까?
물건을 헤아려 보는 것.
즉 관찰하고 사유하는 것도 건물이에요.
박구용 교수의 표현을 나무라는 것이 아니라 건물주라 할 때 건물을 가지고 재화를 늘린다는 인식이 비하이니까 건축으로 쓰자에요! 건물의 뜻 자체를 보면 문제 있나요? 우리가 사물 그리고 고차원의 무언가 이론을 세우고 학설을 세우는 건 대단하다는 1차 의식.
건물을 짓는 노동자 근로자는 노가다꾼이라고 해서 낮춰보거나 이론이나 학설을 세우는 분들과의 분별심! 이에요. 건축 디자이너는 우리 인식에 와! 노가다 꾼은? 우리의 인식이 그 사회의 이익에 맞게 과평가되고 더평가된 문제에요!
뛰어난 건축 디자이너가 있는데 건축물을 지을 일꾼 노동자가 없다면 그 어떤 경우에도 도면만 존재합니다.
그런데 우리 인식 안에서 이것은 좋고 저것은 않좋고가 깔려 있는거에요.
도덕성의 안에 있다면 흔히 노가다 꾼이 뭐 어때서요? 그분들이 없다면 그 어떤 건축설계도 건축이라는 형태로 현실에서 세워질 수 없습니다. 즉 우리의 인식이 도덕성을 담보하고 있다면 건축 디자이너는 우와! 이고 건축 노동자는 힘들일 하는데! 여기에서 우리 의식 안에서 차별을 한다는 겁니다. 무엇을 쫒아가니까? 지위와 명예! 의사는 와! 변호사는 와! 노가다꾼은 더울 때 더운데서 일하고 추울 때 추운데서 힘들게 일하는 사람?
우리 사회가 아무리 뛰어난 건축 디자이너 건축 설계자가 있다고 해도 그 노동의 고달픔으로 의사보다 월급 두배 이상 주면요! 잘나가는 변호사의 수입보다 노가다꾼의 수입이 두배 이상 높다면요! 즉 잘나가는 변호사가 한달에 600만원을 버는데 노가다꾼이 한달에 1200만원 번다면요! 우리의 인식이 바뀔 수도 있는 문제라는거에요.
도덕섬 안에 있는데 누구는 칭송받고 누구는 하대 천대시 한다는 문제!
이 문제는 그 사회가 특정 누군가들의 집단에 명예와 권위를 준 탓이에요! 건축 노동자가 도덕적인 잘못이 없는데 왜 의사나 변호사에 비해 노가다꾼이라고 낮춤의 대상이 되어야 하는가? 의사도ㅈ변호사도 건축노동자도 도덕성에는 다 결함이 없다고 할 때 어떤 직업은 와! 가 되고 어떤 직업은 노가다 꾼이에요! 이말이 낮춰지는 말이니까 건축 노동자라고 하는 겁니다. 우리는 그냥 건물의 한자적 뜻을 위에 소개했죠. 우리는 허아려 세우면 되요! 건물은 한자이고 건물의 한자적 뜻에는 세우다 헤아려서의 뜻이 담겨 있으니까!
즉 우리는 헤아려서 세우고 세우는 일을 해아리는 것.의사나 변호사는 와! 인데 건축노동자는 노가다꾼. 이때 우리는 무엇을 헤아려 세웠는가?
한가할 시간이 있는 사람이면 마음이 여유로운사람임
보수 건물지어 계속 해먹어서 시민들 건축에 알레르기!
여성은 여성으로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여성으로 길러진다
시몬느 드 보브아르
속이 풀이네~~~역시 구라파 이하생략
부부싸움ㆍ자녀와 갈등을 하는 이유에 대해 얘기해주세요
제 2의 성
건물. 갔고있슈?
빡구용
배설이지 말이 아니듯
듣지 마세요~
너의 배설을 우리가 볼 이유는 없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