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천에서 나고자란 50대로서 고증 제대로 했네요 우리 부모님 세대들이 50~60년대 태극도 보고 욌다는 썰은 진작에 알고있었는데 이렇게 영상으로 보니 감회가 새롭네요 ㅎㅎ 제 경험담을 하자면 국민학교때까지는 같은 감천말을 쓰는 친구끼리 학교를 다녀서 몰랐는데 중학교로 올라가면서 다른지역( 괴정 신평 장림 아미동 구평등) 의 친구들과 섞여 지내며 부산 사투리를 그때서야 들었던 기억이 있네요 ㅎㅎ 영상에서도 나오듯 부모님들이 대부분 충청도 전라도 강원도가 주류고 경상도는 마이너리티 라고 보시면 됩니다 참 재미있는 동네라고 볼수있습니다 참고로 우리부모님들이 감천으로 이주하게 된 비하인드 스토리를 풀자면 어머님은 충남 천안출신이고 아버님은 아산 출신...어머님이 애둘(저한테는 큰형님 큰누님 ) 을 데리고 아버님한텐 태극도 믿으러 간다는 말만 남기고 감천으로 오셨다는군요 ㅎㅎ 아버님은 마지못해 따라오신 경우고 ... 영상을 보니 재현을 너무 리얼하게 해서 두번 놀랬습니다 제작진 여러분들의 노고에 감사인사 드립니다
어릴때 2동 아랫쪽 살다 1동으로 이사가고 그뒤 고등학교 서면쪽으로 다닐때 친구들이 말투 이상하다 해서 그때 알았었네요. 아~내 말투가 짬뽕 이구나. . . 서울말도 아닌것이 부산말도 아니고. . 주위에서 다 그렀게 써서 몰랐었는데. . 이사가고 30년 가까이 되어가는 지금도 말하는 중간중간 감천말투 나오네요. 밖에나가서 밥때 되면 부르던 엄마목소리. 친구랑 줄넘기. 구술놀이. 했던 그 시절. . 너무 그립네요
감천옆 괴정 살았다 신촌이라고 불렀던 괴정2동에서 만화가게했지 서울 살다가 국민학교 1학년때 괴정으로 이사해서 중2때 다시 서울로왔지 서울온지 50년이 넘네 서울내기 다마내기 맛 좋은 고래고기 이렇게 놀림 받았지 그래도 어린 시절 보낸곳이라고 가끔 괴정가는데 옆집이 평화약국 세인의원 기억나네 건재상하던 종규네 쌀집하던 성수네 수도가 없어서 물 사먹고 그랬는데 양지마을도 있었고 싸리골이라는 작은계곡에서 여름에는 시원한 샘물길어다 오이 냉국도 해먹고 가재도 잡고 그랬는데 세인의원 아들은 4학년때 반장선거에서 나한테 지고는 대신동으로 전학갔지 6학년때 잡부금 받으면서 돈 못내는 애들 때리고 벌주던 변용비라는 못된 선생 국제신문 기자한테 일러서 짤리게 만들고 그 선생은 그 담임은 본인의 마지막 성적표에 내 성적을 올 미로 메겼지 항상 올 수였는데 치졸한 복수였지 그인간 선생 계속했으면 어린 학생들 얼마나 울렸을까 내가 사하국민학교 50회졸업생이니 지금은 105회 정도겠구나
감천에서 나고자란 50대로서 고증 제대로 했네요
우리 부모님 세대들이 50~60년대 태극도 보고 욌다는
썰은 진작에 알고있었는데 이렇게 영상으로 보니 감회가
새롭네요 ㅎㅎ 제 경험담을 하자면 국민학교때까지는
같은 감천말을 쓰는 친구끼리 학교를 다녀서 몰랐는데
중학교로 올라가면서 다른지역( 괴정 신평 장림 아미동 구평등)
의 친구들과 섞여 지내며 부산 사투리를 그때서야 들었던
기억이 있네요 ㅎㅎ 영상에서도 나오듯 부모님들이 대부분
충청도 전라도 강원도가 주류고 경상도는 마이너리티 라고
보시면 됩니다 참 재미있는 동네라고 볼수있습니다
참고로 우리부모님들이 감천으로 이주하게 된 비하인드
스토리를 풀자면 어머님은 충남 천안출신이고 아버님은 아산
출신...어머님이 애둘(저한테는 큰형님 큰누님 ) 을 데리고
아버님한텐 태극도 믿으러 간다는 말만 남기고 감천으로
오셨다는군요 ㅎㅎ 아버님은 마지못해 따라오신 경우고 ...
영상을 보니 재현을 너무 리얼하게 해서 두번 놀랬습니다
제작진 여러분들의 노고에 감사인사 드립니다
부산은 정말 다 품고 살았군요
전혀 모르던 부산 감천동의 역사를 재밌게 알 수 있어 좋았습니다~시간이 지나 다 잊혀지기전에 이렇게 기록해 놓으니 좋습니다~
신기하네요. 부산의 이런 저런 흥미로운 사실들을 알게 되서 재밌고 좋습니다. ^^이런 프로그램이 많아지길...!
어릴때 2동 아랫쪽 살다 1동으로 이사가고 그뒤 고등학교 서면쪽으로 다닐때 친구들이 말투 이상하다 해서 그때 알았었네요. 아~내 말투가 짬뽕 이구나. . . 서울말도 아닌것이 부산말도 아니고. . 주위에서 다 그렀게 써서 몰랐었는데. . 이사가고 30년 가까이 되어가는 지금도 말하는 중간중간 감천말투 나오네요. 밖에나가서 밥때 되면 부르던 엄마목소리. 친구랑 줄넘기. 구술놀이. 했던 그 시절. . 너무 그립네요
아하 고딩때 감천살던친구가 있었는데 이제 이해되네요 그친구말투 😊
저도 고딩때 2년정도 살았어요그리고 군대감 80년후반인가 친구가[김재환] 위쪽꼭대기 부근에 살고 저는 17번종점부근 살았어요 서울말 비슷했어요
ㅋㅋ감천산다그러면 그 말투이상한동네? 이랫죵ㅎ 그땐 감천말이 따로 있었어요ㅎ
부산 감천 출신이지만,. 부산사투리 잘안쓰고있네요. 부산 살때만 해도 제주위에 경상도 사투리 쓰는 사람들이 많지가 않았죠. 충청도로 전학왔지만 친구들이 사투리 써봐라 하는데, 쓰는 말투가 부산 사투리인줄 알았더니 아니더라고요 ㅎㅎ 그게 감천의 매력인듯 합니다.
감천2동 살다가 94년도에 중학교 1학년 마치고 2학년때 영도 동삼1동으로 이사, 전학갔는데 친구들한테서 별명이 서울놈이었어요 ^^
저는 감천1동 사는데요. 탑마트근처오시면 댓글달아주세요. 시원한 음료수대접하겠습니다.
유림삽니다
17번 감천 화흥타워 사는데 가면 주나요
움료수 먹고 싶어요
부산대 병원 옆에 살아요
지금 사람들 많이찿으면
뭐하노 입장료받는것도
아니고 말짱 도루묵입니다
그나저나 참 고생들
많으셨습니다 태극도
믿으시고 행복하셨습니까?
무교가 상팔자입니다
형님 고맙습니다
감천2동 미광슈퍼 근처에서 살고있는데 이사가고싶다 ㅠ
부산역 화재가 크긴 컷던 모양입니다 영도 청학동도 그때 이재민들이 넘어와서 생겼다고 들었거든요
감천2동 저의 외가친척집이자 고향...늘 그립습니다.
함경도, 평안도, 강원도, 경기도, 충청도, 전라도, 갱상도 짬뽕 동네입니다.
오잉? 우리 엄니가 저바로 옆동네 엎어지면 코닿을 아미동에서 사셨는데 종종 사람들이 대구나 다른곳에서 왔냐고 물어보는데
설마 저 영향? 엄니도 어릴적 일하실때 다양한 지방사람들이 모여서 일해서 그말투가 묻어난거 같다하긴 하던데ㅎㅎ
나도 가~끔 딴데서 왔냐고 물어보던디~~ㅎ
신기 하구만유~~
잘봤습니다.
저 감천 근처에 장평중학교 출신인데 감천사는 애들 이상한 말투 쓰는거 이상하게 여기다가 커서야 그 이유를 알게 됐지.
오 동문~
옛 삼성중학교죠 ㅡ ㅎ
감천사람들 말투가 경기도 비슷한것 같기도 하고 좀 이상한걸 마흔살이 되도록 모르고 있다가 20년 전 쯤에야 알게되었죠
잘보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전 감천여중 나왔어요 ^^반갑습니다
@@tod7907 은희야 사랑해
장평출신이자 감천출신으로 어릴때 친구들한테 그런소리
허구한날 들었음 ㅎㅎ 어디서 왔노 ? 말투가 와 그모양이고 ..ㅋ
이 영상 실제 촬영년도 좀 알수있을까요?
우리 친가댁도 감천인데 친할머니가 충청도출신임ㅇㅇ
나도 부산인데 이런데 있는 줄 몰랐네 ㅎ
나이가 어린가봐요?
17번 구.종점 근처 군요.
17번 종점 조금위엔 지금은 없어진 60번 종점이 있었습니다 얼마전까지
아직도 공터가 남아있던데 ᆢ
다대포-괴정 사람인데 개꿀잼
나는 남포동 근처 어디 였는데 이북말씨 쓰는 할아버지들 모여서 술 드시는거 봄
이프로 어떤영상에서도 625이후에 남포동 국제시장 자갈치
근처로 이북에서 피난오신분들 많이 살았다고 합니다 실제
저 어릴때 국제시장이나 자갈치 가면 북한말투 쓰는 어른들
심심잖개 볼수있었습니다
직접살아 봐~어릴때 생각하면 끔찍하다 한국이아닌 북한표현이 맞음
어릴 땐 주변이 다 저러니 그러려니 하고 살았죠.
지금 살아라하면 못살겠지만
가끔 어릴 때 생각하면 그때가 그립기도 합니다.
한 달 정도 그 시절로 돌아가서 살아보고도 싶습니다.
부모님이랑 어린 언니 오빠들이랑.
부산감천동 사람들 말투가 다르나보네 ㅋㅋ 처음 알았다.
저렇게 힘들게 살았던 과거를 잊지말고 지금의 풍요를 항상 감살줄 알기를…
장미여관 육중완의 본가
어머니 아버지가 저동네 산다
6.25 전쟁통에 피난민들이 정착한 동네인줄 알았는데 왠 태극도???? 장평중학교 졸업해서 잘 안다고 생각했지만 이제사 알게된 사실이네요
태극도 행사할때 꽤 크게 했죠. 흰색 한복입고 태극도 불 환하게 켜고 뭔가 했던걸 친구집 옥상에 올라가서 봤었는데. . .10년뒤 인가 지나가다 봤는데 어떤문제로 땅도 일부 팔고 신도들도 줄었다는 소문 들었는데. . . 문화마을 갈일 있을때 구경해봐야 겠네요
피난민들은 영주동 보수동 수정동 연산동 이런곳에 살았고
감천은 태극도교인들이 대다수이죠 시기도 50년대부터해서
60년대도 많았고
웬
잘볼께요^^ 부산광역시 사상구 감천동이네요 ㅎㅋㅎㅋㅎㅋ
사하구,,
사상구는 감전동이고, 꼭지하나차이란다.
부산 출신인 나도 전혀 몰랐던 내용
충청도 사람들이 살았다고 들었는데
황령산 물만골 사람들도 말투가 다르다든데.. 경기도 말씨
연산 물만골도 감천과 비슷한 케이스입니다
@@BlueRidge_K 네 저희 아버지가 얘기 하시기로도 물만골도 서울지역 피난민들이 많이 거주하던 지역이라 하셨어요.
감천1동 살았지만 감천2동 하고 편갈랐지 ㅋㅋ
근처 문둥이 마을도 있었던데
거긴 현재 구평 가구단지 쪽입니다
@@박태억-y5d 옛날엔 반도끝이라, 그랬지요
현 구평 가구농장.. 그쪽
장림
군대가면 전국의 말투 다 배운다
왜 저런 곳을 매력이라고 포장을 하는지 잘 모르겠다 그냥 저런 곳 보면 한숨만 푹푹 나옴
한번 들어가서 살면
이삿짐 차도 못들어가겠네요
사람마다 다른거지 그게 무슨 포장일까
왜한숨이 나오나요?
@Dm K 그건 니 생각이시고요
산다고 하면 좀 갑갑할거같긴한데 관광지로서는 직접 가본사람으로서 진짜진짜 예쁘다고 생각함
감천옆 괴정 살았다 신촌이라고 불렀던 괴정2동에서 만화가게했지 서울 살다가 국민학교 1학년때 괴정으로 이사해서 중2때 다시 서울로왔지 서울온지 50년이 넘네 서울내기 다마내기 맛 좋은 고래고기 이렇게 놀림 받았지 그래도 어린 시절 보낸곳이라고 가끔 괴정가는데 옆집이 평화약국 세인의원 기억나네 건재상하던 종규네 쌀집하던 성수네 수도가 없어서 물 사먹고 그랬는데 양지마을도 있었고 싸리골이라는 작은계곡에서 여름에는 시원한 샘물길어다 오이 냉국도 해먹고 가재도 잡고 그랬는데 세인의원 아들은 4학년때 반장선거에서 나한테 지고는 대신동으로 전학갔지 6학년때 잡부금 받으면서 돈 못내는 애들 때리고 벌주던 변용비라는 못된 선생 국제신문 기자한테 일러서 짤리게 만들고 그 선생은 그 담임은 본인의 마지막 성적표에 내 성적을 올 미로 메겼지 항상 올 수였는데 치졸한 복수였지 그인간 선생 계속했으면 어린 학생들 얼마나 울렸을까 내가 사하국민학교 50회졸업생이니 지금은 105회 정도겠구나
신평은 전라도지
밥 먹었어?
북한에서는 저걸 하모니카주캑이라고 하지
지금은 빈집 많은동네 윽수로 가난한 동네지
부산에는 부산사람이 8프로밖에 없습니다
그렇게따지면 미국에 미국사람은1프로도 안됨
서울 부산같은 대도시는 외지인들이 많을수밖에
없지요 먹고살려고 시골에서 올라오는 사람들이
몰리는곳이 대도시니...우리가 공부더하기 위해 미국이나
유럽을 가듯
부산의 대표적 양아치 깡패 동네, 감천 2동, 영도 ㅋㅋㅋ
ㄴㄴ 반송이랑 영도 아입니까?ㅋㅋㅋㅋㅋ
자성대 가기전
예전 고가도로옆동네도
마찬가지
그 양아치깡패 다 독립해서 타지로 다 떠남
감천2동보단 1동에 삼성중 부일전자공고 감천중 동아공고 이쪽라인이 양아치레전드였지 ㅋㅋ
영도다리만 건너면 남포동이랑 충무동 국제시장등 접근이 쉬워서 나름 매럭적.
부산이 여름에 시원한데
영도는 더 시원해서 좋았어요.
영도 출신의 유명인도 꽤 있어요.^^
@@한산-s1m감천은 내륙인데요 흰여울마을이랑 헷갈리셨나보네요
히발 토박이 부산사람에 감천초 장평 감천출신인대 랏같네 그동네 살지도마라 아는척도 엮이지도 마라 인간들아
여기 영화대사에서 나온 동네 아님? "느그 서장 감천동살제 이잉?"
ㄴㄴㄴ 남천동임 감천동 아님
청렴한 서장이라면 감천동 살 수도 있을듯 ㅎㅎ
ㅋㅋ감천동이 아니고 남천동임.ㄴ을 ㄱ으로 탈바꿈
남천동이야 ㅋㅋㅋ 남천동은 부자동네
ㅋㅋㅋㅋ서장이 감천동살정도로 정직하면 최익현이랑 밥도먹고 사우나도 가고 했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