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조건에 의해 어떤 감각을 느끼고, 그것을 '아름다움'이라고 여기게 되는가'의 문제는 비트겐슈타인의 말대로 매우 복합적인 원인의 결과인 것은 맞지만, 그 복합성의 정도가 비트겐슈타인의 말처럼 과학적 접근이 무의미한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됩니다. 이건 정신분석학이 비과학적이고 무의미하다고 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실질적으로는 '인간'이라는 기계에 대한 문명의 이해도를 크게 높인 것과 같습니다. "빨간색은 인간에게 어떤 감각을 불러일으키나?"에 대한 답은 비트겐슈타인의 말대로 매우 여러가지 맥락 속 가능성들 중 하나만 정의하는 게 되겠지만, 이러한 단면들이 축적되면 그 안에서 매커니즘을 도출해낼 수 있습니다. 그것은 단기간에 한 개인에 의해 발견되지는 않겠지만, 통상적으로 현대 과학에서 연구 가치를 인정하는 여타 분야랑 비교했을 때 특별히 불가지의 영역에 있는 주제는 아니라고 생각됩니다.. 그리고 현대 미술 작품들의 성격은 '아름다움에 대한 현대적인 접근'이 아니라 사실 시장 논리의 산물인 측면이 크다고 생각합니다. '예술 작품에 돈이 묻고 타락했다' 같은 비판의식을 말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현대 미술'도 모든 예술 분야가 그렇듯 필연적으로 하나의 산업 분야이기도 한데, 문제는 그 산업 분야의 구조적 특성이 다른 예술 산업(음악, 영화,문학)에 비해서 '종교 사업'과 너무 닮아있습니다. 무슨 말이냐하면, 지금 시점의 현대미술은 이해관계자들과 맹목적인 신자들이 '작품의 개념적 가치가 세련되고 고귀한 가치이고 그것을 현대미술 소비자들은 아는 것'이라고 말하는 것과 달리, 실상은 종교 사업에 가깝다고 보입니다. (미술의 개념적 접근 자체에 제가 반대하는 것은 아닙니다.) 교회가 있고, 신도들은 교회에 자기 돈, 인생, 존경심, 몸까지 꽤 상당한 것들을 갖다 알아서 바쳐주는데, 이때 신도들은 아무 생각 없이 그 많은 것들을 바치는 것이 아니라, "아름다움"이라고 믿고 있는 '가치'에 바치는 것이잖아요? 그런데 그 돈,인생,존경,몸까지 가져오는 값비싼 "아름다움이라는 가치"를 생산할 수 있는 자는 종교에서 '신의 목소리를 대신 하는 사람'과 같은 개꿀 개혜자 권위를 누리게 되죠. 예술 산업에서 그 권위는 크게 셋이 나누어 가지잖아요. 작가 vs 업계인(평론가,큐레이팅,에이전시,건물주,언론사 등등) vs 대중 영화나 음악과 같은 대중 사업은 셋 모두 '가치를 만들어 내는 데'에 큰 결정권을 발휘하잖아요? '물리적 작품 자체가 아니라 작품에 담긴 개념이 고귀한 것'"으로 여기는 것은 현 시점에 와서는 사실상 산업구조의 정치적인 이데올로기라고 생각됩니다. 미술 업계에 이 작품이 고귀한 것인지 그렇지 않은 것인지 "의미를 부여할 구조적 힘을 가진 사람"에게 그 힘이 몰빵되어 있는 접근논리이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어떤 영화'를 평론가와 업계가 아무리 밀어줘도, 수익 구조에 있어서 가장 주요한 유형의 관객들은 그것에 대한 감상(가치 부여)과 소비를 자기 주관대로 합니다. 평론가가 뭐라고 하던, 그것이 고귀한 가치가 있건 없건, "재미 없던데" 하나로 그 작품의 산업적인 권위는 붕괴됩니다. 그에 반면 현대미술산업에서는 핑크색 똥에다가 업계 권위자들이 입 모아서 에다가 '평등의 기원'이라는 의미와 모순 없는 내적 논리를 부여하면, 그 부여된 의미 자체가 곧 소비자들의 즐길거리가 되는 구조이기 때문에, 애초에 작가는 언제든 대체될 수 있습니다.=물론 ip산업이 그렇듯, 대체할 때는 감수해야 될 것들이 있기는 합니다.) 그런데 '세상 자유분방하고 평등을 추구하고 반권위적인 것처럼 보이던 미술계 사람들에 의해 그게 어떻게 유지되냐?' 그래서 '종교 사업'이라는 겁니다. 실상 그 '권위' 자체에 대한 선망을 가지고 있고, 그 '권위'에 종속되는 것을 즐기며, 그 '권위'를 획득하고 싶어하고, 획득한 사람은 계속 그 권위를 지키려고 위의 논리를 과대평가해서 선전합니다. 심지어 단순히 권위만이 아니라, 가치를 정의할 정도의 입지를 가지게 된 후에는, 생계 또한 이 현대미술이라는 종교에 묶여버리게 되어서, 목숨 걸고 기만하고 지켜야합니다. 이때 기만할 대상은 신도들이나 보통 사람들만이 아니라 자기 자신도 포함되죠. '세상 자유분방하고 편견에 맞서고 평등을 추구하고 반권위적인' 현대미술계의 주류 작품들이 과연 다양한 메세지를 내놓고 있는가? 사실 현대미술에 대한 환상을 내려놓고 본다면, 그냥 정치인들이 표심 싸움에서 하는 어젠다들, 또는 기성세대 삼류 자기계발 도서에서 하는 촌스러운 내용들이 대다수라는 것을, 그리고 그것들을 자기들은 대단한 초월적 접근인 것처럼 포장해 띄우고 있다는 것을 쉽게 발견할 수 있습니다.
현대 미술을 대단히 미시적으로 해석하시는 듯 합니다. 이래서 비트겐슈타인이 말 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 침묵해야 한다고 한 것이겠죠? 우선 처음에 상정하신 전제 자체가 현대미술에만 속하는 개념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슈톡하우젠과 펜데레츠키같은 현대 음악가들과 수많은 독립영화들, 그리고 율리포와 같은 현대 문학들이 존재하고 현대 미술과 유사한 지위를 가지는 것을 보면 본인이 말씀하신 것들은 현대미술이 가지는 개별적인 속성이 아니라 현대예술 전체에 보편적으로 적용될 수 있는 테제죠. 또한 다 설명해드리긴 어렵지만 현대미술 산업 자체가 그렇게 생각하시는 것만큼 돈에 의해 굴러가지 않습니다 :) 국립이라고 하긴 하지만 우리나라 현대 미술을 가장 주도하는 국현의 성격만 봐도 알 수 있지 않나요? 전 국민의 20~30 퍼센트 비율의 해당하는 관객들이 부합하는 조건에 따라 어떤 전시든 무료 관람이 가능합니다. 유료관람을 한다 해도 5000원 가량입니다. 말씀하신 것처럼 기만하고 목숨 걸고 지켜야 한다는 목적 자체가 부합하지 않는 거죠. 순수예술과 인문학의 위기인 것으로 모두 동의하는 현 시대상황에서 시장의 흐름을 대단히 자의적으로 해석하고 계신 것 같습니다. 대표적으로는 라디오헤드의 조니 그린우드와 펜데레츠키가 그렇듯이 한 시대를 대표하는 대중음악의 대가, 특히 새 시대를 열었다고 평가되는 음악가들을 살펴보면 근현대 현대 음악가들에게 영향 받고 그 색채를 본인의 대중음악의 풀어놓은 작푼들이 많습니다. 물론 미술과 영화도 마찬가지구요. 이렇게 유기적으로 얽혀있는 현대예술을 부정하는 것은 곧 대중예술의 부정과도 연결되는 부분인데 왜, 어떻게, 그 둘을 이분법적으로 구분해서 평가할 수 있는지도 궁금합니다.
영상을 보고나니 주호민 작가님의 "재즈가 뭐라고 생각하세요?"가 떠오르네요 ㅋㅋ 비트겐슈타인의 이런 무지반적 논제들을 회의주의나 신비주의로 해석하는 학자들도 많지만, 저는 충코님처럼 비트겐슈타인이 아주 소박하고, 상식적인 이야기를 했다고 느낍니다. 충코님 영상 잘 보았습니다!
비트겐슈타인의 이야기를 듣고보니, "아름답다" 라는 단어는 화자가 대상에 대해 가지는 경탄의 느낌을 객관화하여 의식의 표층으로 끌어올렸을때 사용가능 한 말이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따라서 미추 판단은 이성적 논리로는 따지고 들어갈 수 없는, 인간의 생물학적 문화적 유전자에 따라 형성된 무의식 속에서 이루어지는 감정의 발현이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그뒤로 그 감정을 어떤 식으로 설명하는 가는 또 다른 문제겠고) 사람의 무의식적 동의를 이끌어내는, 심리학적인 규칙들에 더 주목한다면, 미학적 판단에 대한 보편 기준들을 탐구하는데 도움이 될 거 같습니다. 생각할 기회를 만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예전에 시니피앙과 시니피에 사이에서 계속 미끄러짐 현상이 발생한다는 걸 본적이있는데, 비슷하거나 동일한 말을 비트겐쉬타인이 말했던 것 같네요. 의미전달에 있어서 글짜보다 사람의 감탄하는 행위(감탄사) 제스처 표정 눈동자등이 더 정확한 의미를 하는 매개체일 수 있다는 거... ^^)// 좋아요 누르고 구독 들어갑니다. ^^)
비트겐슈타인에게 미학은 윤리학과 마찬가지로 '말할 수 없는 것' 입니다. 무엇이 미적으로 타당하다고 생각하더라도 이를 말로 표현하면 반복될 수 있는 사실을 말할 수 밖에 없는데 비트겐슈타인이 말했듯 '말할 수 있는 것'은 이미 세계 내에 존재하므로 무엇을 더하지 않습니다. 비트겐슈타인이 말할 수 없다고 하면서도 미학 그리고 윤리학을 중요하다고 생각한 이유는 그것만이 가치와 연결되기 때문입니다. 요약 하자면 말해질 수 있는, 반복되는 것만으로는 세계가 바뀌지 않으니 가치가 없고 말로 설명되어질 수 없는, 가치있는 새로운 것으로 세계를 바꿀 수 있다고 할 수 있고 비트겐슈타인은 미학과 윤리학은 그러므로 가르쳐질 수 없고 수련될 수 밖에 없다고 했습니다. 그것은 인간의 존재 가치로 연결됩니다. 비트겐슈타인은 단순히 언어를 이야기한 철학자가 아니지요.
아름답다가 생각보다 일상과 거리가 먼표현이라고 하셨지만 저는 충코님 영상이 아름답다고 말하고 싶어요! WW1시를 읽고 에세이 쓰는중에 프랑스시인이 쓴 FETE 시에서 전쟁속에서도 끊임없이 아름다움을 찾아서 아름다움이란 무엇인가가 궁금했는데 정말 도움이 많이 되었습니다! 감사해요🍓🍓🍓
어떤 사람은 사과를 보고 빨강, 둥글다를 떠올릴 수 있다. 어떤 사람은 빨강, 사과주스, 풋사과, 맛있다를 떠올릴 수 있다. 그러나 사과를 보고 아--무런 판단도 하지 않을 수는 없다. 사과를 보고 빨강과 둥글다만을 떠올리게 되는 선입견, 경향성을 제거하고싶다면 ' 사과 -> 빨강 '을 제거해야할까? 아니다. ' 선입견을 아예없앨수는 없지만 줄일수는 있다 '는 말은 참인데, 왜 그럴까? 생각을 단순히 제거하려 하지 말고 다른생각들로 생각의 범위를 넓혀야한다. 없애버리는게 아니라 오히려 다른것들로 더욱 다양하게 하는 것만이 창의성을 키우는 방법이였다. 나는 이걸 왜 몰랐을까? 감상이 편견의 집합으로 생기는 활동일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을 해봤었는데 오늘 해결된 것 같다. 감상은 '편견을 만들어주는 부재' 의 집합으로 생기는 활동이고, 그 부재가 많아질 수록 편견은 줄어든다. 편견이 늘어나는 진짜 원인은 생각의 폐쇄성이니까.
수박 겉핱기. 진실에 다가가기에는 아직도 우리는 모르는 것이 너무 많다. 내가 뭔가를 보기는 보았는데... 그것을 기술하려면 일생을 바쳐야 하지. 그런데 그런 것으로 일생을 바치기 싫어. 그러나 서양은 그러한 것에 일생을 보낸 사람들이 많지. 그것이 서양의 발전을 이끌어냈어. 그러한 노예가 하는 듯한 일들을 한 사람들의 결과가 현대 문명을 이루었고. 그러나 동양뿐만 아니라 서양도 어느 정도는 그러한 경향이 있었어 , 약간의 차이가 있지. 서양도 그 그리스에서 이집트까지의 발전에서 문명의 암흑기는 바로 그러한 경향으로 오랜 ...
예전에 칸트의 순수이성비판, 실천이성비판, 판단력 비판이 진 선 미에 해당한다는 글을 본 적이 있는데요. 칸트가 보는 미와 비트겐슈타인의 미가 무엇이 다른가요? 칸트는 미에 대한 선험이 있다고 보는가한 반면, 비트겐슈타인은 후행적 경험에 의해 생긴다고 보는건가요? 칸트가 바라보는 미도 한번 다뤄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영상 초반 파인아트는 고급미술이라기보다 순수미술이라 표현 합니다. 파인다이닝과 같은파인의 뜻으로 쓰이지않습니다. 순수미술은 아름다움을 추구하지만 아름다움이 그 자체로 표현되어야 합니다. 예를들어 미술관에 소변기를 전시하고 샘 이라고 표현해도 아름다움 이라는것입니다. 아름답다라,영어 뷰티풀 은 말은 입밖으로 잘 내뱉지는 않지만 그런 감정,느낌,생각을 하며 감탄사던 다른 표현을 합니다. 결국 그감탄사가 아름답다라는 느낌을 표현하는 도구가 되는것입니다. 만약 좋은여행지가서 연인이 저녁노을을 보며 와....정말 아름답다... 라고한다면 오롯이 미적 경험이 공유되는것 입니다.
키스를 글로 배운 소리네....모니카 벨루치 리즈시절을 보아라... 아름답지 않은 것이 어딨냐?? 얼굴, 몸매...아름답지 않다 말할 수 있는가?? 아름답지 않다 말할 수 없다면 침묵하라!! 이것이 미학의 시작이다...침묵할 수 밖에 없는 이들은 침묵하고 찬양할 사람들은 찬양하면 되는 것이다.
'어떤 조건에 의해 어떤 감각을 느끼고, 그것을 '아름다움'이라고 여기게 되는가'의 문제는 비트겐슈타인의 말대로 매우 복합적인 원인의 결과인 것은 맞지만, 그 복합성의 정도가 비트겐슈타인의 말처럼 과학적 접근이 무의미한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됩니다. 이건 정신분석학이 비과학적이고 무의미하다고 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실질적으로는 '인간'이라는 기계에 대한 문명의 이해도를 크게 높인 것과 같습니다. "빨간색은 인간에게 어떤 감각을 불러일으키나?"에 대한 답은 비트겐슈타인의 말대로 매우 여러가지 맥락 속 가능성들 중 하나만 정의하는 게 되겠지만, 이러한 단면들이 축적되면 그 안에서 매커니즘을 도출해낼 수 있습니다. 그것은 단기간에 한 개인에 의해 발견되지는 않겠지만, 통상적으로 현대 과학에서 연구 가치를 인정하는 여타 분야랑 비교했을 때 특별히 불가지의 영역에 있는 주제는 아니라고 생각됩니다..
그리고 현대 미술 작품들의 성격은 '아름다움에 대한 현대적인 접근'이 아니라 사실 시장 논리의 산물인 측면이 크다고 생각합니다.
'예술 작품에 돈이 묻고 타락했다' 같은 비판의식을 말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현대 미술'도 모든 예술 분야가 그렇듯 필연적으로 하나의 산업 분야이기도 한데, 문제는 그 산업 분야의 구조적 특성이 다른 예술 산업(음악, 영화,문학)에 비해서 '종교 사업'과 너무 닮아있습니다. 무슨 말이냐하면, 지금 시점의 현대미술은 이해관계자들과 맹목적인 신자들이 '작품의 개념적 가치가 세련되고 고귀한 가치이고 그것을 현대미술 소비자들은 아는 것'이라고 말하는 것과 달리, 실상은 종교 사업에 가깝다고 보입니다. (미술의 개념적 접근 자체에 제가 반대하는 것은 아닙니다.)
교회가 있고, 신도들은 교회에 자기 돈, 인생, 존경심, 몸까지 꽤 상당한 것들을 갖다 알아서 바쳐주는데,
이때 신도들은 아무 생각 없이 그 많은 것들을 바치는 것이 아니라, "아름다움"이라고 믿고 있는 '가치'에 바치는 것이잖아요?
그런데 그 돈,인생,존경,몸까지 가져오는 값비싼 "아름다움이라는 가치"를 생산할 수 있는 자는
종교에서 '신의 목소리를 대신 하는 사람'과 같은 개꿀 개혜자 권위를 누리게 되죠.
예술 산업에서 그 권위는 크게 셋이 나누어 가지잖아요. 작가 vs 업계인(평론가,큐레이팅,에이전시,건물주,언론사 등등) vs 대중
영화나 음악과 같은 대중 사업은 셋 모두 '가치를 만들어 내는 데'에 큰 결정권을 발휘하잖아요?
'물리적 작품 자체가 아니라 작품에 담긴 개념이 고귀한 것'"으로 여기는 것은 현 시점에 와서는 사실상 산업구조의 정치적인 이데올로기라고 생각됩니다.
미술 업계에 이 작품이 고귀한 것인지 그렇지 않은 것인지 "의미를 부여할 구조적 힘을 가진 사람"에게 그 힘이 몰빵되어 있는 접근논리이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어떤 영화'를 평론가와 업계가 아무리 밀어줘도, 수익 구조에 있어서 가장 주요한 유형의 관객들은 그것에 대한 감상(가치 부여)과 소비를 자기 주관대로 합니다.
평론가가 뭐라고 하던, 그것이 고귀한 가치가 있건 없건, "재미 없던데" 하나로 그 작품의 산업적인 권위는 붕괴됩니다.
그에 반면 현대미술산업에서는 핑크색 똥에다가 업계 권위자들이 입 모아서 에다가 '평등의 기원'이라는 의미와 모순 없는 내적 논리를 부여하면,
그 부여된 의미 자체가 곧 소비자들의 즐길거리가 되는 구조이기 때문에, 애초에 작가는 언제든 대체될 수 있습니다.=물론 ip산업이 그렇듯, 대체할 때는 감수해야 될 것들이 있기는 합니다.)
그런데 '세상 자유분방하고 평등을 추구하고 반권위적인 것처럼 보이던 미술계 사람들에 의해 그게 어떻게 유지되냐?'
그래서 '종교 사업'이라는 겁니다. 실상 그 '권위' 자체에 대한 선망을 가지고 있고, 그 '권위'에 종속되는 것을 즐기며, 그 '권위'를 획득하고 싶어하고,
획득한 사람은 계속 그 권위를 지키려고 위의 논리를 과대평가해서 선전합니다.
심지어 단순히 권위만이 아니라, 가치를 정의할 정도의 입지를 가지게 된 후에는, 생계 또한 이 현대미술이라는 종교에 묶여버리게 되어서,
목숨 걸고 기만하고 지켜야합니다. 이때 기만할 대상은 신도들이나 보통 사람들만이 아니라 자기 자신도 포함되죠.
'세상 자유분방하고 편견에 맞서고 평등을 추구하고 반권위적인' 현대미술계의 주류 작품들이 과연 다양한 메세지를 내놓고 있는가?
사실 현대미술에 대한 환상을 내려놓고 본다면, 그냥 정치인들이 표심 싸움에서 하는 어젠다들, 또는 기성세대 삼류 자기계발 도서에서 하는 촌스러운 내용들이 대다수라는 것을,
그리고 그것들을 자기들은 대단한 초월적 접근인 것처럼 포장해 띄우고 있다는 것을 쉽게 발견할 수 있습니다.
여기는 댓글도 거의 교수급ㄷ ㄷ
현대 미술을 대단히 미시적으로 해석하시는 듯 합니다. 이래서 비트겐슈타인이 말 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 침묵해야 한다고 한 것이겠죠?
우선 처음에 상정하신 전제 자체가 현대미술에만 속하는 개념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슈톡하우젠과 펜데레츠키같은 현대 음악가들과 수많은 독립영화들, 그리고 율리포와 같은 현대 문학들이 존재하고 현대 미술과 유사한 지위를 가지는 것을 보면 본인이 말씀하신 것들은 현대미술이 가지는 개별적인 속성이 아니라 현대예술 전체에 보편적으로 적용될 수 있는 테제죠.
또한 다 설명해드리긴 어렵지만 현대미술 산업 자체가 그렇게 생각하시는 것만큼 돈에 의해 굴러가지 않습니다 :) 국립이라고 하긴 하지만 우리나라 현대 미술을 가장 주도하는 국현의 성격만 봐도 알 수 있지 않나요? 전 국민의 20~30 퍼센트 비율의 해당하는 관객들이 부합하는 조건에 따라 어떤 전시든 무료 관람이 가능합니다. 유료관람을 한다 해도 5000원 가량입니다. 말씀하신 것처럼 기만하고 목숨 걸고 지켜야 한다는 목적 자체가 부합하지 않는 거죠. 순수예술과 인문학의 위기인 것으로 모두 동의하는 현 시대상황에서 시장의 흐름을 대단히 자의적으로 해석하고 계신 것 같습니다.
대표적으로는 라디오헤드의 조니 그린우드와 펜데레츠키가 그렇듯이 한 시대를 대표하는 대중음악의 대가, 특히 새 시대를 열었다고 평가되는 음악가들을 살펴보면 근현대 현대 음악가들에게 영향 받고 그 색채를 본인의 대중음악의 풀어놓은 작푼들이 많습니다. 물론 미술과 영화도 마찬가지구요. 이렇게 유기적으로 얽혀있는 현대예술을 부정하는 것은 곧 대중예술의 부정과도 연결되는 부분인데 왜, 어떻게, 그 둘을 이분법적으로 구분해서 평가할 수 있는지도 궁금합니다.
어떤 것에 대해 정의하려면 그것을 잘 알아야 합니다. 솔직히 말씀하시는 내용을 보면 예술이라는 것과 그 시장에 대해 미흡한 이해를 가지신 것 같습니다.
아름답다는 결국 사랑의 종착점인거같음 그냥 이유도 없이 좋아하는..나도 내가 짝사랑하는 이와 사귀면서 그런 경험을 느꼇지만 과학적으로 설명할수가 없는게 당연하다 생각함
아름다움 -> 행복 -> 사랑
대박이란 말을 써 본 적이 없는 사람입니다.
근데 지금 이 영상에 딱 맞는 말인 듯 해서 써 봅니다.
"와~~대박~~!!"
언어는 그 자체가 추상적이고 관념적인 개념이지 사물의 실체가 아니다.
그래서 언어를 사용하는 인간은 사물과 사태를 직접 인식할 수 없다.
다만 대부분은 인어가 실체이고 사실이라고 착각하며 산다.
오랜만에 좋은 강의 감사합니다.
따라서 생각은 적게 감각는 크게 할수록 객관적인 인간상을 만들수 있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잠깐 쉴때 철학을 탐구하기에 정말 좋은 채널인 것 같습니다. 계속 영상 올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당.
미학 강의 감사합니다. '아름다움이 고정적인 것을 가리킨다고 생각하지 말자.' 문득 이런 질문이 떠오르네요. '아름다움을 느끼는 것은 아름다울까요? 그렇다면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이를 통해 아름다움이란 무엇인지에 접근해볼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물론 아름답습니다.
아름답게 느끼는 감정 자체가 눈에 보이지 않는 아름다움입니다. 그러니 동일한 예술이 있어도 일어나는 감정이 똑같지 않습니다. 그 아름다움은 여러가지 통합적 요인으로 만들어질테니까요.
결론까지 정말 깔끔하네요 쉽게 설명하지 못하는 사람은 내용을 제대로 이해한 것이 아니라고 하는데 제대로 된 이해가 바탕이 된 정리라는 것이 잘 느껴졌습니다
즉각적인 욕망과 충동그리고 감각에 복종하십시요
쉽게 설명해주셔서 너무 좋아요
감사합니다~^^
비트겐슈타인과 현대미술 사이에 이런 접점이 있을 줄 몰랐네요
귀에 쏙쏙 들어오는 강의에 감사합니다
이 영상은 저의 관점에서는 엄청난 양질의 컨텐츠이군요...^^
감사히 보겠습니다 ^^
영상을 보고나니 주호민 작가님의 "재즈가 뭐라고 생각하세요?"가 떠오르네요 ㅋㅋ 비트겐슈타인의 이런 무지반적 논제들을 회의주의나 신비주의로 해석하는 학자들도 많지만, 저는 충코님처럼 비트겐슈타인이 아주 소박하고, 상식적인 이야기를 했다고 느낍니다. 충코님 영상 잘 보았습니다!
샵!밥! 두비두바
두비두비두바
뭐래
맞아요 비트성격에 소박하고 상식적인게 더 맞는것 같아요 저도 ㅎㅎ 공감합니다!
대박. 40대인데, 중학생조카가 무슨 말을 듣고 ''대박'' 이라고 하던데, 같이 있던사람들의 대화를 듣고 대박이 그런식의 의미구나 하고 생각했음. 대박을 소리로 들었을때 좀 놀랬음
12
0
영상 잘 봤어요. 인문학 문외한인 저에게 관심을 갖게 해준 채널! 구독자 10만 축하드리고 앞으로 더 흥하시길 기원합니다!
진짜 귀에 쏙쏙 들어오는 강의 잘 들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충코 교수님 ㅎㅎ
이 채널 너무 감사드려요, 큰 도움 받습니다 -
감사드리며 환절기 건강하시길......
비트겐씨가 확실히 똑똑하시네.. 잘봤습니다..
기독교인이 성당을 바라보는 것과 비기독교인이 성당을 바라보는것은 같습니다
하지만 서로 다른 문화때문에 다른 아름다움을 생각하겠죠 이처럼 인간는 서로다른 생각과 의견으로 서로 다툴지언정 자신들의 감각만큼은 의심의 여지 없이 믿는 존재이지요 ㅎㅎ
좋은 채널 알아 좋네요. 재밌고 듣고 구독 합니다
비트겐슈타인의 이야기를 듣고보니, "아름답다" 라는 단어는 화자가 대상에 대해 가지는 경탄의 느낌을 객관화하여 의식의 표층으로 끌어올렸을때 사용가능 한 말이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따라서 미추 판단은 이성적 논리로는 따지고 들어갈 수 없는, 인간의 생물학적 문화적 유전자에 따라 형성된 무의식 속에서 이루어지는 감정의 발현이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그뒤로 그 감정을 어떤 식으로 설명하는 가는 또 다른 문제겠고) 사람의 무의식적 동의를 이끌어내는, 심리학적인 규칙들에 더 주목한다면, 미학적 판단에 대한 보편 기준들을 탐구하는데 도움이 될 거 같습니다. 생각할 기회를 만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세상에? 이 책 저도 읽어봤었는데 이렇게 만나니 새삼 반갑네요 🔥
그렇군요ㅎㅎ 영상을 올리고 보니 cause와 motive의 차이에 대한 이야기를 조금 더 할 걸 그랬다 하는 생각이 듭니다. 길어질까봐 뺐는데 어차피 이렇게까지 길어질 거... 되게 중요한 이야기인데 말이죠
@@chungco_phil 아하 ㅋㅋ 개인적인 호기심인데, 충코님은 대학원에서 어떤 연구를 하고 계시나요?
@@junwoochoi9844 지금 실존주의에서의 본래성, 유교, 불교, 사랑을 주제로 연구를 하고 있습니다ㅎㅎ
@@chungco_phil 오..! 재밌는 주제들을 공부하시네요 :D
비트겐슈타인과 관련된 양질의 영상들이 구독하고 있는 채널에서 올라오니 너무 좋습니다.
혹시 읽어보셨을수도 있습니다만, , 라는 책들도 있는데 혹 일전에 영상에서 다루신 적이 있을까요..?
혹시 오늘 영상의 책 제목이 무엇인지 알 수 있을까요?
그냥 보고 가요.~~
오 재밋을 거 같아요 잘 보겟습니다
예전에 시니피앙과 시니피에 사이에서 계속 미끄러짐 현상이 발생한다는 걸 본적이있는데, 비슷하거나 동일한 말을 비트겐쉬타인이 말했던 것 같네요. 의미전달에 있어서 글짜보다 사람의 감탄하는 행위(감탄사) 제스처 표정 눈동자등이 더 정확한 의미를 하는 매개체일 수 있다는 거... ^^)// 좋아요 누르고 구독 들어갑니다. ^^)
재미있습니다.
우와 정말.. 쉬운 해설 감사해요
이분 얼굴이 미학이다. 뭐 이렇게 잘 생겼냐.
놀리는 겁니까?
@@uguraatistosiska9119 충코님 잘생기지 않았나요??
비트겐슈타인 강의에서 이런 댓글을 보니까 재미있군요ㅋㅋㅋㅋㅋㅋㅋ
비트겐슈타인 잘 생겼다는거 아니에요?
미학에 대해서 새로운 철학을 들은 것 같네용. 정말 재밌었습니당~
어렵고 부족해도 열심히 설명하는 모습이 좋아요.
비트겐슈타인에게 미학은 윤리학과 마찬가지로 '말할 수 없는 것' 입니다. 무엇이 미적으로 타당하다고 생각하더라도 이를 말로 표현하면 반복될 수 있는 사실을 말할 수 밖에 없는데 비트겐슈타인이 말했듯 '말할 수 있는 것'은 이미 세계 내에 존재하므로 무엇을 더하지 않습니다. 비트겐슈타인이 말할 수 없다고 하면서도 미학 그리고 윤리학을 중요하다고 생각한 이유는 그것만이 가치와 연결되기 때문입니다. 요약 하자면 말해질 수 있는, 반복되는 것만으로는 세계가 바뀌지 않으니 가치가 없고 말로 설명되어질 수 없는, 가치있는 새로운 것으로 세계를 바꿀 수 있다고 할 수 있고 비트겐슈타인은 미학과 윤리학은 그러므로 가르쳐질 수 없고 수련될 수 밖에 없다고 했습니다. 그것은 인간의 존재 가치로 연결됩니다. 비트겐슈타인은 단순히 언어를 이야기한 철학자가 아니지요.
아름답다가 생각보다 일상과 거리가 먼표현이라고 하셨지만 저는 충코님 영상이 아름답다고 말하고 싶어요! WW1시를 읽고 에세이 쓰는중에 프랑스시인이 쓴 FETE 시에서 전쟁속에서도 끊임없이 아름다움을 찾아서 아름다움이란 무엇인가가 궁금했는데 정말 도움이 많이 되었습니다! 감사해요🍓🍓🍓
어떤 사람은 사과를 보고 빨강, 둥글다를 떠올릴 수 있다.
어떤 사람은 빨강, 사과주스, 풋사과, 맛있다를 떠올릴 수 있다.
그러나 사과를 보고 아--무런 판단도 하지 않을 수는 없다.
사과를 보고 빨강과 둥글다만을 떠올리게 되는 선입견, 경향성을 제거하고싶다면 ' 사과 -> 빨강 '을 제거해야할까? 아니다.
' 선입견을 아예없앨수는 없지만 줄일수는 있다 '는 말은 참인데, 왜 그럴까?
생각을 단순히 제거하려 하지 말고 다른생각들로 생각의 범위를 넓혀야한다. 없애버리는게 아니라 오히려 다른것들로 더욱 다양하게 하는 것만이 창의성을 키우는 방법이였다.
나는 이걸 왜 몰랐을까?
감상이 편견의 집합으로 생기는 활동일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을 해봤었는데 오늘 해결된 것 같다. 감상은 '편견을 만들어주는 부재' 의 집합으로 생기는 활동이고, 그 부재가 많아질 수록 편견은 줄어든다. 편견이 늘어나는 진짜 원인은 생각의 폐쇄성이니까.
아름답다. 이 말을 하면 또 그 상황,인물,물건에 대한 더 이상의 감탄을 못하게 될 듯한 기분을
가지게 될거야... 라는 역설적인
생각 ?
적지 않은 철학교수들이 지적 허영심으로 철학을 오히려 비비 꼬아놓는 경우도 많은데 충코님은 잘 풀어주고 있군요.
도서관에서 그런책은 5페이지 읽고 다시 꼽아놓습니다. 어려운 내용일 수록 최대한 단순하고 쉽게 접근해야합니다.
내가 이해하지 못한다고해서 그것이 비비 꼬여져있다고 생각하는가. 나의 사고, 나의 이해력이 객관적인 기준이 되는가. 충코의 컨텐츠에 대한 칭찬인가, 철학적 사유를 위해 평생을 바쳤던 학자들에 대한 모욕인가.
@@Withsunnyfamily 일부 페미니즘 철학이나 프랑스 구조주의류 철학(쏘칼 사건)에 간혹 보이는 경향을 이야기한 겁니다. 한남유충 논문 표현과 문장도 우스웠고요.
@@Withsunnyfamily 많은 정보량과 추상적 사고와 복잡한 논리를 다루다 보니 어쩔 수 없이 어려워지는 철학에 대해서 비난하려는 마음은 1도 없습니다.
진짜 개소리다..
수박 겉핱기. 진실에 다가가기에는 아직도 우리는 모르는 것이 너무 많다. 내가 뭔가를 보기는 보았는데... 그것을 기술하려면 일생을 바쳐야 하지. 그런데 그런 것으로 일생을 바치기 싫어. 그러나 서양은 그러한 것에 일생을 보낸 사람들이 많지. 그것이 서양의 발전을 이끌어냈어. 그러한 노예가 하는 듯한 일들을 한 사람들의 결과가 현대 문명을 이루었고. 그러나 동양뿐만 아니라 서양도 어느 정도는 그러한 경향이 있었어 , 약간의 차이가 있지. 서양도 그 그리스에서 이집트까지의 발전에서 문명의 암흑기는 바로 그러한 경향으로 오랜 ...
비트겐슈타인의 주된 논제는 형이상학의 철학적 거부이지 미학을 그의 이론 중 전면에 내세운 것은 아니지요. 그러므로 모든 예술이론이 그의 지론에 영향을 받을 필요는 없다는 점 동의합니다 땡큐
예전에 칸트의 순수이성비판, 실천이성비판, 판단력 비판이 진 선 미에 해당한다는 글을 본 적이 있는데요. 칸트가 보는 미와 비트겐슈타인의 미가 무엇이 다른가요? 칸트는 미에 대한 선험이 있다고 보는가한 반면, 비트겐슈타인은 후행적 경험에 의해 생긴다고 보는건가요? 칸트가 바라보는 미도 한번 다뤄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놀랄만큼,그럭저럭 아름다운 쌩얼,몸냄새,목소리,항문/생식기/질/클리도리스맛,피부의 가로,세로,높이는 몇cm이고 이마,눈썹,눈,속눈썹,코,입,입술,귀,볼,턱,관자놀이,미간,인중의 형태?
12:50
설명방식이 비트겐슈타인적이네요
결국 예술이란 정확한 견본이 없다는게 결론인거 같네요. 경험에 따라 다 다른 공감기능을 할텐데 보편적 예술이란 불변의 법칙이 아니라는건 생각해 보면 당연한것도 같습니다.
영상 감사합니다.
문화 - 맥락 - 무늬...
데리다가 차연으로 설명하는 언어의 불완전함일까요
비트겐슈타인의 후기철학!
언어 자체가 불완전한 것이 아니라 언어의 맥락에 따라 의미가 바뀐다는 거네요
아름다움도 그 맥락에 따라 감상이 달라지겠죠
그래서....학부 리포터??
광인 그자체인 사람.
영상 초반 파인아트는 고급미술이라기보다
순수미술이라 표현 합니다.
파인다이닝과 같은파인의 뜻으로 쓰이지않습니다.
순수미술은 아름다움을 추구하지만 아름다움이 그 자체로 표현되어야 합니다.
예를들어 미술관에 소변기를 전시하고 샘 이라고 표현해도 아름다움 이라는것입니다.
아름답다라,영어 뷰티풀 은 말은 입밖으로 잘 내뱉지는 않지만 그런 감정,느낌,생각을 하며 감탄사던 다른 표현을 합니다.
결국 그감탄사가 아름답다라는 느낌을 표현하는 도구가 되는것입니다.
만약 좋은여행지가서
연인이 저녁노을을 보며
와....정말 아름답다...
라고한다면 오롯이 미적 경험이 공유되는것 입니다.
숀 팬+로버트 듀발+매튜 매커너히 섞어 놓은 느낌 =비트겐슈타인..
아름다움이란
개취의 교집합이다.
키스를 글로 배운 소리네....모니카 벨루치 리즈시절을 보아라... 아름답지 않은 것이 어딨냐??
얼굴, 몸매...아름답지 않다 말할 수 있는가?? 아름답지 않다 말할 수 없다면 침묵하라!!
이것이 미학의 시작이다...침묵할 수 밖에 없는 이들은 침묵하고 찬양할 사람들은 찬양하면 되는 것이다.
왜 어색하다고 생각할까? 얼마든지 아름답다라고 말할 수 있는데. 동양엔 없는 서양만의 미학은 과연 분석이 가능할까. 말할 수 없는 것을 말하니 자기모순이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