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인 유인촌 장관이 MC로 있던 '역사스페셜'에서 다뤘죠. 노ㅁ현 정권 당시에 5팔6들이 '역사스페셜'을 대표적인 우익 방송이라고 폐지하고 유인촌장관을 잘라 버리면서 현재와 같은 상황이 도래하였죠. 참.... 한국인들은 정말 대단합니다. 이런 상황에서도 '베트남 공산화에 희열을 느꼈다.' 라는 역사 조작꾼들 방송을 들으며 오히려 임용환 박사 같은 정통 역사학자가 분석하는 6.25의 각종 전투에 대한 것을 우익방송이라고 ㄲr대고 있으니....
지도에 보이지만 지금은 없어진 ㅠ 노도부대 2사단 17연대 육군 중에 한국전쟁 당시에 인천상륙작전에 참전하고 화령장, 웅진반도 전투 등에서 활약하고 한국전쟁 이후 강릉대침투 등을 한 부대 출신인데. 당시 참전하셔서 저 지도에 보이는 장소에서 전사하신 걸로 알고 있는 큰외할아버지가 생각나는 밤이군요. 개전 초에 준비 안된 군이라도 훌륭한 지휘관과 거기서도 나름 준비된 군과 민간이 얼마나 중요한지 보여주는군요. 다음 내용이 기대가 됩니다.
@@inkyuchoi8189 김종오 장군이 부임하자마자 춘천 인근에 참호파고 장병들 휴가 없이 훈련시켰다고 합니다. 포병이 중요하디고 군의관한테도 포사격 교육을 시켰다고 합니다. 부임하고 두 주 뒤에 전쟁이 터졌는데 김종오 사단장의 선견지명과 유비무환의 자세는 정말 훌륭하지요.
GPS 이용 안하던 시절에 지도와 나침반만 가지고 원하는 위치에 찾아가기 힘들죠. 예전에 우리 사단이 야외 기동 훈련했을때, 옆 군단에 있는 70x 특공연대가 대항군으로 왔었죠. 두돈반 트럭에 소령분이 선탑으로 병들 인솔해서 오셨는데. 지도를 제대로 못봐서 집결지를 못 찾아가시더라고요. 우리가 옆에서 "이 산이 아닌가벼". 하면서 놀렸는데. 이런분이 보통이고, 잘 찾아가는 분들이 대단한거겠죠.
북한은 남북한 정부가 만들어지기 이전부터 전쟁을 준비했고, 중국과 소련으로부터 전차와 군사고문단을 통해 대대적인 전면전 준비를 해 왔었죠. 국공내전에 병력을 파견하기까지 했었습니다. 남한의 경우에는 미국이 2차대전 승전과 함깨, 이미 국민 여론이 중요한 민주주의 체제 하에서 국민들에게 이미 너무 많은 출혈과 세금부담을 강요했기 때문에 핵무기를 믿고 바로 군축에 들어갔고 한반도에서 북한에 대응할 재래식 병기조차 부족했었죠. 그런 상황에서 소련이 미국내 스파이로부터 핵무기 개발정보를 빼돌려 핵무기를 만드는 것에 성공했고, 미국과의 대결에 자신감이 생겨 남한에거 미군이 철수하는 시점을 노린 김일성의 무력통일방안을 승인합니다. 그렇게 시작된 전쟁은, 정치나 명분이 아닌 전쟁 그 자체에 대한 준비와 전문성의 영역이었고 미군조차도 장갑차와 대전차포 정도가 전부였기 때문에, 피와 살을 갈아넣어도 잠시 발을 묶는 것이 한계인 잔혹사를 겪은 것이죠. 이후 UN이 북한의 침공임을 조사단을 파견해 확인하고 유엔사를 세우고 다국적군을 파견합니다. 물론 주 전력은 미국이었죠. 미국이 남아있던 재래식 병기, 전차, 전투기 폭격기를 모아 투입하고 인천상륙작전으로 김일성조차 전의를 상실할 만한 반격에 성공하고 북진하나, 국공내전으로 뛰어난 보병전 실력을 키워 온 다수의 중공군 - 표면상으로는 의용군이 비밀리에 한반도로 넘어와 또 반격에 성공하며 말 그대로 수라장이 됩니다. 이 와중에도 정말로 많은 대한민국 청년과 소년들이 엄청나게 열악한 조건에서 산화하고 남녀노소 가족을 잃고 굶주리는 전란의 고통을 겪는데, 대한민국을 수놓은 빼곡한 산들, 고지들이 모두 방어거점으로서 피를 강요하였죠. 당시에 막 식민지에서 해방된 나라의 내전이라기에는 너무나도 많은 화력이 사용되고 밀도높은 살육전이 벌어졌던 것이죠.
@@JasonPark-b3x 그게 한국인들의 불행이자 팔자가 사납다고 하는 이유입니다. 이 좁아 터진 한반도가 계란의 노른자 위라서 미국, 일본, china, 러시아가 언제가 점령하려고 아둥바둥 대니. 그것도 듣보잡 국가들도 아니고 명색이 세계 4대 강국들이 몰려 들고 있으니...
아직은 너무 이른 질문이겠지만, 이토록 결사적이고 용맹한 면모가 있었던 군대가, 중공군 공세를 받을 당시 너무나 맥없이 무너지는 모습과 괴리감 느낄 때가 있어서, 군대의 심리적 분위기적인 측면에서 원인이 무엇인가 궁금하더군요. 이게 그저 전반부에 용맹한 군인들이 전사해버려서 그런 것인지... 훗날 미국의 장교양성 시스템을 도입하면서 어느정도 해결은 되었다고 하는데, 단순히 장교 부사관이 부족해서 그랬던 것인지...
춘전전투 아니었으면 6.25는 진짜로 일주일만에 끝났을 걸요. 춘천 전투에서 벌어준 시간에 국군이 한강 방어선에서 병력 재구성하고 미군 지상군이 참전하고 오산에서 첫 전투를 하면서 미군이 개입하고 유엔군도 참전하고 낙동강 전선 형성되거든요. 인천상륙작전이 갑자기 짠하고 나온 게 아니에요.
맥아더는 이 종심 타격 전술을 역으로 이용하여 판을 키워서 인천을 타격하면서 낙동강 전선에 고립된 조선인민군에 대한 보급/수송로를 차단하여 조선인민군을 전멸시키죠. 인천 상륙 작전 이후에 북진하면서 조선인민군 병력은 대부분 전멸하고 1개 사단 병력도 안되는 상황이었습니다.
춘전전투 아니었으면 6.25는 진짜로 일주일만에 끝났을 걸요. 춘천 전투에서 벌어준 시간에 국군이 한강 방어선에서 병력 재구성하고 미군 지상군이 참전하고 오산에서 첫 전투를 하면서 미군이 개입하고 유엔군도 참전하고 낙동강 전선 형성되거든요. 인천상륙작전이 갑자기 짠하고 나온 게 아니에요.
춘천에서 북한군2군단 40프로전력이 소멸되었는데 북한군입장에서는 개전초기 예상밖의 큰 피해로 계획에 큰 차질을 빚었고 덕분에 국군은 후퇴하면서도 반격할시간을 벌어줬으며 미군 유엔군이 참전할 시간도 벌었고 맥아더장군이 전쟁에 참전할것인가 수원비행장에 시찰을온날이 6.29일 만약 6사단이 춘천에서 패했다면 맥아더장군이 수원비행장에 시찰도 못했고 낙동깅방어전을 준비하는 시간도 못벌었으며 훗날 인천상륙작전도 없었을것이며 북한군계획에따라 전쟁은 쉽게 끝났을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사단이 군단을 저지하면서 동시에 순차적 후퇴를 성공한 덕에 국군 주력이 포위 섬멸되는 위기를 피했죠...
개전 초 가장 유명한 전투라고 생각합니다.
현재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인 유인촌 장관이 MC로 있던 '역사스페셜'에서 다뤘죠.
노ㅁ현 정권 당시에 5팔6들이 '역사스페셜'을 대표적인 우익 방송이라고 폐지하고
유인촌장관을 잘라 버리면서 현재와 같은 상황이 도래하였죠.
참.... 한국인들은 정말 대단합니다.
이런 상황에서도 '베트남 공산화에 희열을 느꼈다.' 라는 역사 조작꾼들 방송을 들으며
오히려 임용환 박사 같은 정통 역사학자가 분석하는 6.25의 각종 전투에 대한 것을
우익방송이라고 ㄲr대고 있으니....
@@테스트-v7i 님 죄송합니다만 정치적인 댓글은 자제를 부탁드립니다.
예전 군생활때 춘천대첩 행사하느라 북한군복입었던 기억이 떠오르네요!
지형지물을 잘 파악하고
적을 얕보지 않고
지피지기 백전불패
이산들라나 전투가 생각나네요
지도에 보이지만 지금은 없어진 ㅠ 노도부대 2사단 17연대 육군 중에 한국전쟁 당시에 인천상륙작전에 참전하고 화령장, 웅진반도 전투 등에서 활약하고 한국전쟁 이후 강릉대침투 등을 한 부대 출신인데. 당시 참전하셔서 저 지도에 보이는 장소에서 전사하신 걸로 알고 있는 큰외할아버지가 생각나는 밤이군요. 개전 초에 준비 안된 군이라도 훌륭한 지휘관과 거기서도 나름 준비된 군과 민간이 얼마나 중요한지 보여주는군요. 다음 내용이 기대가 됩니다.
지금은 17여단으로 여전히 그자리를 지키고있습니다
10년도 6중대 출신이라 반갑네요 ㅎㅎ
한국전쟁의 운명을 바꾼부대 = 미군부대. 임용한 박사님 존경합니다. !
춘천! 전투가 결정타였네요. 대한민국이 살수있는 결정타..! 신의 한수.!. 그것도 간발의 차이로...
역사를 전사기록은 저도늦게 공부하게 해주신것 감사합니다
춘천 전투.. 상대적으로 정말 잘 알려지지않는 전투죠. 초기 북괴의 적화통일 야욕을 저지한 굉장한 전투라 생각합니다.
@@inkyuchoi8189 김종오 장군이 부임하자마자 춘천 인근에 참호파고 장병들 휴가 없이 훈련시켰다고 합니다. 포병이 중요하디고 군의관한테도 포사격 교육을 시켰다고 합니다. 부임하고 두 주 뒤에 전쟁이 터졌는데 김종오 사단장의 선견지명과 유비무환의 자세는 정말 훌륭하지요.
만이 알려졌을 껄요? KBS '역사 스페셜'에서 90년대에 다뤘는걸요.
배결설명을 꼼꼼히 해주신 덕분에 몰입해서 봤어요
감사합니다.
GPS 이용 안하던 시절에 지도와 나침반만 가지고 원하는 위치에 찾아가기 힘들죠.
예전에 우리 사단이 야외 기동 훈련했을때, 옆 군단에 있는 70x 특공연대가 대항군으로 왔었죠.
두돈반 트럭에 소령분이 선탑으로 병들 인솔해서 오셨는데. 지도를 제대로 못봐서 집결지를 못 찾아가시더라고요.
우리가 옆에서 "이 산이 아닌가벼". 하면서 놀렸는데. 이런분이 보통이고, 잘 찾아가는 분들이 대단한거겠죠.
그 시절이나 지금이나 독도법은 지휘관의 필수 능력입니다.
물론 지도가 잘못되는 불쌍사가 있었을 수는 있지만
자신의 부대를 원하는 방향으로 진군시키는 것도 지휘관의 역할입니다.
물론 부임한지 1~2일 밖에 안되는 문제가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지도가 제대로 되어 있다면 그걸 못찾으면 지위관 자격이 없지요.
사관학교에서 기본적으로 배우는 독도법을.... 것참!
지금도 특수부대는 GPS없이 지형찾는 훈련을 꼭합니다, 미군 특수부대도 작전투입때 비닐코팅된 종이지도를 꼭지참하는 이유는 유사시 GPS나 통신이되는 '행운'이 100% 계속될수 없기 때문입니다.
박사님 추석연휴 마지막 잘 보내세요 😊
06:35 임부택 중령 13:20 군복
중요한 생존 전투기 감사합니다.
아오 빨리 다음화나와라 못참겠다
서울~수원~천안~대전간 지연 작전도 좀 다루어 주시기 바랍니다.
한국전쟁 초기 4대 대첩
1ㆍ춘천전투
2ㆍ대한해협 해전
3ㆍ강릉 육전대 격퇴
4ㆍ동막리 전투
개인적으로 대한해협 해전 정말 말도 안되는 천운이라 생각하네요.. 단 한척, 그것도 미국 쓰다가 퇴역시키고 실습선으로 쓰던걸 손원일 제독이하 해군분들이 우여곡절 끝에 겨우 들여온 배로 레이더, 사통장치도 변변치 않은 상태로 북한 수송선 격침
지도부는 패했을지 몰라도 앞으론 참전용사분들에겐 패잔병이란 말을 쓰면 안되겠네요 ㅠ
북한은 남북한 정부가 만들어지기 이전부터 전쟁을 준비했고, 중국과 소련으로부터 전차와 군사고문단을 통해 대대적인 전면전 준비를 해 왔었죠. 국공내전에 병력을 파견하기까지 했었습니다. 남한의 경우에는 미국이 2차대전 승전과 함깨, 이미 국민 여론이 중요한 민주주의 체제 하에서 국민들에게 이미 너무 많은 출혈과 세금부담을 강요했기 때문에 핵무기를 믿고 바로 군축에 들어갔고 한반도에서 북한에 대응할 재래식 병기조차 부족했었죠. 그런 상황에서 소련이 미국내 스파이로부터 핵무기 개발정보를 빼돌려 핵무기를 만드는 것에 성공했고, 미국과의 대결에 자신감이 생겨 남한에거 미군이 철수하는 시점을 노린 김일성의 무력통일방안을 승인합니다. 그렇게 시작된 전쟁은, 정치나 명분이 아닌 전쟁 그 자체에 대한 준비와 전문성의 영역이었고 미군조차도 장갑차와 대전차포 정도가 전부였기 때문에, 피와 살을 갈아넣어도 잠시 발을 묶는 것이 한계인 잔혹사를 겪은 것이죠. 이후 UN이 북한의 침공임을 조사단을 파견해 확인하고 유엔사를 세우고 다국적군을 파견합니다. 물론 주 전력은 미국이었죠. 미국이 남아있던 재래식 병기, 전차, 전투기 폭격기를 모아 투입하고 인천상륙작전으로 김일성조차 전의를 상실할 만한 반격에 성공하고 북진하나, 국공내전으로 뛰어난 보병전 실력을 키워 온 다수의 중공군 - 표면상으로는 의용군이 비밀리에 한반도로 넘어와 또 반격에 성공하며 말 그대로 수라장이 됩니다. 이 와중에도 정말로 많은 대한민국 청년과 소년들이 엄청나게 열악한 조건에서 산화하고 남녀노소 가족을 잃고 굶주리는 전란의 고통을 겪는데, 대한민국을 수놓은 빼곡한 산들, 고지들이 모두 방어거점으로서 피를 강요하였죠. 당시에 막 식민지에서 해방된 나라의 내전이라기에는 너무나도 많은 화력이 사용되고 밀도높은 살육전이 벌어졌던 것이죠.
@@JasonPark-b3x 그게 한국인들의 불행이자 팔자가 사납다고 하는 이유입니다.
이 좁아 터진 한반도가 계란의 노른자 위라서 미국, 일본, china, 러시아가 언제가 점령하려고 아둥바둥 대니.
그것도 듣보잡 국가들도 아니고 명색이 세계 4대 강국들이 몰려 들고 있으니...
아 진짜 나라를 온 몸으로 지킨 당시 이 나라 용사님들께 너무나 감사하고 존경합니다!@@JasonPark-b3x
6사단 청성부대
개전초기 춘천 홍천전투에서 북한군2군단을 상대로 4배의 전력차이를 극복하고 기적같은 승리로 북한군을 방어해 국군이 포위섬멸당할위기를 모면했으며
춘천전투의 승리로 유엔군및 미군이 참전할 시간도 낙동강방어선을 구축할 시간도 벌었고 후퇴중에 충주 동락리전투에서 북한군연대급부대를 대대급부대로 기습공격하여 섬멸 한국전쟁최초의 공격에의한 승리로 대한민국 군대창설후 대통령부대표창 1호수여 반격작전시 평안도개천에서 패주하여 도망치는 김일성의 자동차도 노획 압록강초산에 국군최초로 돌파 태극기를 꽂아 압록강물을 수통에담아 이승만대통령에게 헌수 한국전쟁최대의 승리라 불리우는 용문산전투에서 중공군3개사단을 물리치는데 결정적인 역활을 했으며
한국전쟁중 크고작은 최다전투150여회 최다적사살 9만여명 아군전사 2만여명
구국의사단 청성부대
영원하라
청성훈
하나 우리는 천하에 제일가는 청성의
용사다
하나 우리는 압록강 물을마신 청성의
용사다
하나 우리는 싸우면 필승하는 청성의
용사다
하나 우리는 조국을 수호하는 청성의
용사다
시작을 하지도 않고 끝나네요
...결전 싸워줘서 고맙습니다 선대전우분들
김용배 대대장님도 이야기해주세요~
👍👍👍👏
오늘도 잘 들었습니다. 그리고 박사님 티셔츠 어디서 살 수 있는지 ㅎ
에어로 이탈리아 제품인데 미국에 사는 친한 멤버분이 선물로 보내준 겁니다. 국내에서는 구하기가 쉽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어요 인터넷 구입은 가능한지 한번 검색해 보시기 바랍니다.
- 맨 주먹. 붉은 ,피로, 원수를 막아낸 것이죠~~!!!????,
저 용사들 제대로 포상이 이뤄졌는지 궁금하네요
소양1교 교각엔 총탄자국이 아직도 남아있고 그 강가 주변이 피바다여서 강물이 핏색이였다고함
안녕하세요 ❤❤❤
아직은 너무 이른 질문이겠지만, 이토록 결사적이고 용맹한 면모가 있었던 군대가, 중공군 공세를 받을 당시 너무나 맥없이 무너지는 모습과 괴리감 느낄 때가 있어서, 군대의 심리적 분위기적인 측면에서 원인이 무엇인가 궁금하더군요. 이게 그저 전반부에 용맹한 군인들이 전사해버려서 그런 것인지... 훗날 미국의 장교양성 시스템을 도입하면서 어느정도 해결은 되었다고 하는데, 단순히 장교 부사관이 부족해서 그랬던 것인지...
중공군이 잘했음 후에 화력으로 해결 그래서 우리나라가 지금도 그교훈으로 포방부가됨
이 강좌를 책으로 쓰시면 좋겠네요.
부임 한지 2 주만에 개전... 그전에 진지 공사등 전쟁준비는 전임이해놓은 것 아닌 가?
난60년묵은해병.80살인디.육군.김종오.장군님.백선엽.장군님존경한다.저승가마.의장병.본연.임무로장군실근무할겨.😊😊😊😊
19 2대대 출신인데 재밌네
19연대 2대대가 육탄11용사를 조직해 포탄을 안고 적탱크로 돌진해 산화하셨죠
그래서 19연대 2대대가 육탄돌격대대 입니다
@@한방인생-q5r 맞아요 훈련병들 단체로 버스로 싣고 가서 다 구경 시켜줍니다 모를수가 없죠
현장을 모르는 높으신 분들이란....
그래서 사단장/군단장은 야전 경험이 있거나
야전군을 직접 통솔해 본 경험이 있어야 한다는 거죠.
김종오 장군
절단신공 잉잉
Gteat!
가슴에 독일군마크에요?
글면 인천작전은 전쟁을 크으으게 바꾼 작전인가 ㅋㅋㅋ
춘전전투 아니었으면 6.25는 진짜로 일주일만에 끝났을 걸요.
춘천 전투에서 벌어준 시간에 국군이 한강 방어선에서 병력 재구성하고
미군 지상군이 참전하고 오산에서 첫 전투를 하면서
미군이 개입하고 유엔군도 참전하고 낙동강 전선 형성되거든요.
인천상륙작전이 갑자기 짠하고 나온 게 아니에요.
북조선 인민군의 전략/전술을 역으로 생각해 보면 크게 바꾼게 맞습니다.
조선인민군이 김포/춘천을 돌아서 수원을 점령하여 주력 섬멸을 시키는 전략
이것은 소련군 최고 사령관인 게오르기 주코프가 즐겨 사용하던 종심 타격 전술입니다.
맥아더는 이 종심 타격 전술을 역으로 이용하여 판을 키워서 인천을 타격하면서
낙동강 전선에 고립된 조선인민군에 대한 보급/수송로를 차단하여 조선인민군을 전멸시키죠.
인천 상륙 작전 이후에 북진하면서 조선인민군 병력은 대부분 전멸하고 1개 사단 병력도 안되는 상황이었습니다.
이때 모택동의 인민해방군이 압록강/두만강을 넘지 않았다면
더글라스 맥아더의 주장대로 한반도는 자유 민주 공화국으로 통일되었을 것입니다.
어차피 교과서 암기 유튜버
처 보지나 마라.니는 저때 저기 있었냐?이 콘텐츠 까는골 보니 너 민주지?
교과서에 이런게 나와요? 신기...
목소리가 힘이 없어 보인다.
춘천전투는 6.25의 결정적 전투가 아니라고 보는데요..
춘전전투 아니었으면 6.25는 진짜로 일주일만에 끝났을 걸요.
춘천 전투에서 벌어준 시간에 국군이 한강 방어선에서 병력 재구성하고
미군 지상군이 참전하고 오산에서 첫 전투를 하면서
미군이 개입하고 유엔군도 참전하고 낙동강 전선 형성되거든요.
인천상륙작전이 갑자기 짠하고 나온 게 아니에요.
1사단빠일듯
제가 볼 때에는 김포전투와 춘천전투가 없었다면 불가능한 거 같은데요?
김포/춘천에서 승전하지 못했다면 한국군은 진짜 전멸하였을 것이고
미군은 한반도에 투입되기도 전에 부산항이 점령되었을 것입니다.
???
춘천에서 북한군2군단 40프로전력이 소멸되었는데 북한군입장에서는 개전초기 예상밖의 큰 피해로 계획에 큰 차질을 빚었고 덕분에 국군은 후퇴하면서도 반격할시간을 벌어줬으며 미군 유엔군이 참전할 시간도 벌었고 맥아더장군이 전쟁에 참전할것인가 수원비행장에 시찰을온날이 6.29일 만약 6사단이 춘천에서 패했다면 맥아더장군이 수원비행장에 시찰도 못했고 낙동깅방어전을 준비하는 시간도 못벌었으며 훗날 인천상륙작전도 없었을것이며 북한군계획에따라 전쟁은 쉽게 끝났을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아저씨, 아제씨는 식민(강단사학) 사학자이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