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사랑 5분 말씀묵상] 218. “저항의 탄식"(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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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Опубликовано: 5 фев 2025
- 글 : 한문덕 목사
목소리 : 조민지 성도
반주 : 박지형 집사
저항의 탄식
욥기 30장 23-24절
나는 잘 알고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나를 죽음으로 몰아넣고 계십니다. 끝내 나를 살아 있는 모든 사람들이 다 함께 만나는 그 죽음의 집으로 돌아가게 하십니다. 주님께서는 어찌하여 망할 수밖에 없는 연약한 이 몸을 치십니까? 기껏 하나님의 자비야 빌어야 하는 것밖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보잘 것 없는 이 몸을 어찌하여 그렇게 세게 치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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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욥이 말한 대로 살아 있는 모든 사람이 다 함께 만나는 곳은 ‘죽음’이라는 집입니다. 존재하는 모든 것은 소멸하고, 태어난 모든 것은 자라고 늙고 사라지기 마련입니다. 죽음이라는 것은 돌이킬 수 없다는 점에서, 죽음 이후 이전의 관계를 다시 회복할 수 없다는 점에서 인간의 유한성을 가장 극명하게 보여 줍니다.
하늘이 주신 목숨을 다하고 죽음에 이르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고, 그래서 호상(好喪)이라는 말도 있습니다. 그러나 죽음의 불가역적 성격과 인생의 여한(餘恨) 때문에 모든 사람은 죽음 앞에서 깊은 슬픔에 잠깁니다.
필연적으로 자연스레 다가오는 죽음도 수용하기 어려운 우리는 뜻하지 않은 불행으로 찾아온 죽음이나 사회적 불의로 당한 죽음 앞에서 울부짖지 않을 수 없습니다. 특별히 옳은 일을 하다가 고통을 당한다면 더욱 그렇습니다. 범죄 행위나 잘못으로 인한 결과는 마땅히 책임을 지고 수용해야 하지만, 원인 모를 고난과 불의에 의한 박해에는 맞서 싸워야 합니다.
그런 면에서 욥의 탄식과 저항은 옳습니다. 의인이 당하는 고난에 대하여 하나님께 따지고 묻는 일은 마땅히 해야 할 일입니다. 하나님이 없다 하는 사람은 불의한 세상의 모습을 보고도 그냥 체념할 수도 있지만, 하나님을 믿고 따르는 사람은 불의를 보고 하나님께 묻고 따져야 합니다. 하나님은 정의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이 그러했고, 욥이 그러했습니다. 묻고 따지고 고치려고 행동해야 합니다. 탄식은 체념이 아니라 저항입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오늘날 많은 이들이 죽음의 세력, 어둠의 그늘 아래에서 탄식합니다. 부당해고 된 노동자, 재개발로 인해 땅을 뺏긴 사람들, 차별로 시들어가는 이들, 경쟁 속에서 쪼그라드는 삶들이 있습니다. 저항하는 기도, 목소리를 낼 수 있게 용기와 힘을 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