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약 25년 전 독일에서 거주 하였을 때 교포분들이 한국남해에 독일 마을이 생긴다고 좋아 하셨고 남해 땅을 분양 받을지에 대해 고민하였습니다. 이 영상을 보니 그때가 생각이 나고, 아름다운남해에 독일교포분과 독일분들이 거주하는 행복한 영상이 평온함을 줍니다. 독일에서는 한국을 알린 교포분들, 한국에서는 독일을 알려주세요. 당신들은 애국자 입니다.
독일에 파견되었던 간호사.광부여러분의 힘들고 뼈아픈 노고덕택에 우리나라가 이만큼 발전하고 살기 좋아졌읍니다 그냥 간호사일이 아니라 간호원이 가장 하기 싫어하고 꺼리전 일을 한국간호사님들이 하셨단것을알고 마음아팠고 그것을 꿋꿋이 이겨내셔서 그다음에 전원 재계약하시고 대단히 훌륭하시고 존경스럽습니다 이제는 고국에서 건강하고 행복하시기를 늘 기도하겠읍니다 여행사 카다록에 독일마을방문이 있던데 꼭 가보고 싶고 가겠읍니다 ☆♡♡♡♡♡♡♡☆
저도 그리 생각했었지요.근데 막상 친정엄마 까지 돌아가시고 한국서 2달 지내고 보니 한국서도 이방인 이 되더군요.뭐든지 어색하고,특히 미국있는 애들이 보고 싶어서 더이상 은 한국에 있지를 못하겠더군요. 부모 가 살아생전엔 잘몰랐었는데 모두 떠나시고 나니까 자매들도 어색해지더이다. 많이 그리우시면 한국 가셔셔 두달 만 계시다 오세요.전 다신 가고 싶은 마음 이 없어지더군요.
@@kyumgpark6980 조선족들 툭하면 자기 조상들이 만주에서 독립운동 했다고 우김. 그런데 중국인들 한테 물어보면, 조선족들은 일제시대 일본이 만주점령했을때, 일본인 꽁무니 따라와서 일제의 앞잡이질 했다고 함. 그래서 일본인들 앞잡이로 방망이 들고 중국인 때렸다고 빵쯔 라고 부른다고. 누구 말이 맞을까? 잠깐 생각해보면, 50만 만주진출 조선인들이 죄다 독립운동을 했다면, 스스로의 힘으로 독립을 하고도 남았겠다. 그러니 중국인 주장이 맞다고 볼 수 밖에.
@@davidjacobs8558 만주로 간 조선족들이 전부 독립운동했다면, 36년간 일제치하 당했을까요. 만주로간 실제 독립군들도 제가 알기로 눈치밥먹으면서 숨어살며 독립운동 하다가(물론 한국에서보다는 자유로웠겠지만) 일본이 만주국이라는 괴뢰군 만들어 독립군들 소탕했을때는 러시아나 더 중국 더 몽골쪽으로 이동해서 독립운동 하다가 그마져도 러시아가 사할린으로 강제 추방했죠. 어느정도 활발했던기간은 1919년 3.1독립운동 후부터 10여년간 정도였다해요. 3.1운동보고 중국에서 우리나라를 좀 이용할 가치가 되겠구나 했었는지 지원좀 해주고 그랬다해요. 그덕에 10여년간은 봉오동 전투 청산리 전투를 비롯해 중국군과 크고작은 무력 투쟁 항쟁의 절정기였죠. 그러다가 뜸하다 터진게 1932년 윤봉길 의사 도시락폭탄 사건이였고 그 사건후 거의 이렇다할 독립운동이 없었고, 홍범도장군도 1937년 러시아땅에서 중앙아시아로 강제이주 당했고 1939년 2차세계대전 발발후 중국과 함께 연합국에 가서 정규군 훈련 받다가 1944년 영국군과 버마에서 첫 참전 본격적으로 제대로된 무력 투쟁 벌일려고 하다가 1945년 광복~ 이게 우리나라 대강의 독립운동사 여기에 조선족이 끼어들었다면 3.1운동직후 10여년간 무력투쟁 시기에 조금 끼어들었을까..
@@davidjacobs8558 데이빗 제이콥스씨 만주로 간 우리 조상이 다 독립운동을 하진 않았겠죠. 하지만 아시아의 원흉 일본놈들 상대로 그 먼 타지에서 독립운동 하신 분들도 많습니다. 저의 큰할아버지도 만주에서 활동하다 총각때 그곳에서 사망하셨어요. 꼭 언젠간 우리가 만주땅을 찾아서 우리 대한민국땅으로 만들날이 오길.....
마을의 역사, 독일생활을 보여주는 작은 박물관(2층 구조)이 있으면 좋겠습니다. 박물관은 독일 가정집 스타일로 짓고, 1층에서 커피와 음료를 팔고, 2층은 박물관 겸 독일 수제맥주랑 독일 소세지를 시음하는 장소로 만들면 좋을 것 같아요. 각자 갖고 있는 사진 가운데 추억할만한 사진을 골라내서 크게 확대하여 액자에 담아 벽에 걸어두고요. 독일문화와 전통을 보여주는 기념품, 가정용품을 곳곳에 진열해 두면 좋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특정 요일이나 기념일에는 독일 가곡이나 독일 음악을 직접 연주하는 날로 정해두면 관광객이 이걸 보려고 많이 찾을 것 같습니다. ^^
몇해전에 남해를 한바퀴 돌면서 독일마을을 알게 되었답니다 붉은색 지붕이 한눈에 확 들어왔어요 지금도 아쉬운점은 남의집이라 들어 갈수 없었다는것 차라리 숙박이 되는 댁에서 하룻밤 묵었더라면 자세히 집안 뜰도 구경 했을텐데 지금도 아쉬움으로 남는 답니다 독일 파견 광부,간호사님들께서는 대한민국을 위한 큰일꾼들 이셨습니다 참으로 수고 많으셨습니다 다음 기회 되면 독일마을에서 하룻밤 묵고 싶답니다 오래동안 건강하시고 행복 하십시요 감사 합니다.
이 다큐가 벌써 12년 전 제작된거니 그후로 이분들 어찌 지내시는지 궁금하네요... 건강들 하신지? 혹 이분들중에 안타낍게도 벌써 유명을 달리하신 분들이라도 있는지... 그동안에 새로 전입하시거나 전출등 주민구성에 변화가 있는지... 등등 모두 여전히 편안한 여생들을 보내고 계시길 바랍니다...
저도 미국에서 23년 살다간 직장 문제로 한국에 왔는데... 태어나고 자란 땅임에도 불구하고 낯설습니다. 예전 친구들도 너무 변했죠. 공감대가 형성되지 않아요. 아마도 문화 차이? 저분들도 한국에 살면서도 독일이 그리울거라 생각이 드네요. 저는 은퇴하면 미국가서 살지 않을까 싶네요. 어디든 만족함을 주지는 못한 것 같네요.
옛날에 우리나라에서 외화를 벌기 위해 독일로 많은 분들이 간호사, 광부로 파견 갔다고 들었습니다. 이 분들의 노고가 있었기에, 우리나라가 더 발전 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항상 그 사실에 감사하며 살고 있습니다. 앞으로는 고국에서 건강하고 오래토록 편히 사셨으면 좋겠습니다. 우리나라를 위해 애써주신 분들을 보여주는 영상 정말 감사합니다.
독일 파견 여성 간호사들. 탄광노동자들!
이 분들의 노고에 고개가 절로 숙여 집니다. 이제 고국에서의 생활을 건강하게 오래토록 사십시오
독일고향이 좋으실텐데
남편분이 대단하신분 입니다
남은여생 독일마을 행복
하세요~♡
우리누님 두분도 한분은
남해독일마을에 살고계시고
한분은 독일사시고...
고생들 많이 하셨습니다
3만명이 72년도 독일에 광부로 또는 간호사로 가신분들에게 고생 많이 하셨다고 감사의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제가 약 25년 전 독일에서 거주 하였을 때 교포분들이 한국남해에 독일 마을이 생긴다고 좋아 하셨고 남해 땅을 분양 받을지에 대해 고민하였습니다. 이 영상을 보니 그때가 생각이 나고, 아름다운남해에 독일교포분과 독일분들이 거주하는 행복한 영상이 평온함을 줍니다. 독일에서는 한국을 알린 교포분들, 한국에서는 독일을 알려주세요. 당신들은 애국자 입니다.
아내의 나라에 살아보겠다고 큰 용기를 가져준 독일남편분들 참으로 멋지십니다~오래오래 건강하게 아름다운 남해에서 살아주세요 ..분명 독일이 그리우실텐데…다행히 주변에 독일분들이 많고 아름다운 주변 환경때문에 휴가 온 기분으로 잘 지내실수 있을것 같네요
독일할아버지 진짜 스윗하시다...
독일에 파견되었던 간호사.광부여러분의 힘들고 뼈아픈 노고덕택에 우리나라가 이만큼 발전하고 살기 좋아졌읍니다 그냥 간호사일이 아니라 간호원이 가장 하기 싫어하고 꺼리전 일을 한국간호사님들이 하셨단것을알고 마음아팠고 그것을 꿋꿋이 이겨내셔서 그다음에 전원 재계약하시고 대단히 훌륭하시고 존경스럽습니다
이제는 고국에서 건강하고 행복하시기를 늘 기도하겠읍니다
여행사 카다록에 독일마을방문이 있던데 꼭 가보고 싶고 가겠읍니다
☆♡♡♡♡♡♡♡☆
전 미국에 40년째 살고 있는 이민자 입니다. 나이가 먹어갈수록 그리워지는 고국이라 한2년안에 한국으로 가서 한2 ~3년 살고 싶은데 지금영상보니 영구 귀국 할수도 있겠네요. 나이가 들면 귀향본능 이 생긴다더니 그말이 맞는말인것 같아요.
너무들 고우셨네요…젊은 청춘 바치셔서 우리나라를 살만한 나라로 만들어 주신거 정말 감사합니다.늘 건강 하세요 ^^
아...... 해외사는데 너무 공감간다 정말...... 진짜 가슴에 뭔가 뻥 뚫려있는거같은 뭔가 한부분이 비어있는 기분.. 진짜 시민권자여도 나는 항상 외국인이라는말 너무 공감간다...
저도 그리 생각했었지요.근데 막상 친정엄마 까지 돌아가시고 한국서 2달 지내고 보니 한국서도 이방인 이 되더군요.뭐든지 어색하고,특히 미국있는 애들이 보고 싶어서 더이상 은 한국에 있지를 못하겠더군요.
부모 가 살아생전엔 잘몰랐었는데 모두 떠나시고 나니까 자매들도 어색해지더이다.
많이 그리우시면 한국 가셔셔 두달 만 계시다 오세요.전 다신 가고 싶은 마음 이 없어지더군요.
저분들 교육수준도 상당히 높군요
그당시 고등학교 졸업이면 한국에서도
귀한 인재 지요. 고생 많으셨습니다.
참 대단한 아들 딸들이었습니다.
진짜 애국자들이고 영웅들입니다
얼마나 고생하셨을까요 겉으로 들어내지 않아도
지금보다 많은 차별속에서 힘드셨을텐데 거기다 오랜기간 타향살이를 하시면서
고향이란 단어가 신기루처럼 느껴지셨을거 같습니다 10년전 다큐라 아쉽지만
모두 건강하시구 감사합니다
이방송을 이제서야 처음 봤는데 참 반가운 분들이 나오시네요 저당시 즈음 남해마을 갔을때 밖에서 구경하던 저희를 집안으로 초대해 따뜻한 커피와 빵을 내어주시고 파독시절 얘기를 들려주셨던 우춘자 할머니와 빌리 앵겔 프리드 할아버지 항상 건강하고 행복하시길 바랍니다
우촌자여사님두분다별세했어요
우춘자여사님 건강해 보이시고 젊은데 두분다 돌아가셨다니 너무 안타깝네요 공기좋은곳에서 오래 더 사셨으면 좋았을텐데
고생하셨고 부디 좋은곳에서
편안히 영면하시기를ᆢ
@@김지은-h7v8w 아직 젊으시고 너무 건강해보이는데.....돌아가셨군요
삼가고인의명복을빕니다
@@토닥토닥-t9u ..
@@쩡-q7d 영상이 13년됐으니깐...
저도 십오년 전쯤 남해 독일마을 하이디 하우스에서 하룻밤 숙박하며 주인 우춘자씨와 남편분의 따뜻한 호의을 아직도 늘 잊지않고 감사하고 있습니다.
그때 남편분 건강이 않좋으시다고 걱정하셨는데 괜찮으신지요. 그곳은 참 아름답고 역사적이 곳이였어요.
고생 많이 하셨으니 한국에서
행복하고 건강하게 사시길 기원합니다.
아 다들 정말 아름답고 젊으셨던 청춘들이셨네요~
그 어린 나이에 경쟁뚫고 그
먼 타국에 가서 힘들게 번돈을 가족에게 다 보내고 휴.....정말 열심히 잘 사셨다고 박수를 보냅니다. 다들 건강하게 오래 오래 사시길 바랍니다
독일마을 간호사분들은 대한민국 애국자들 입니다. 모두존경해야할 분들입니다.
광부도여..
해외동포가 아무도 신경쓰지 않는 남해를 저렇게 멋지게 꾸며주시다니 정말 감사할 따름입니다.
조선족들은 자갈위에 무릎꿇고 반성해야 할것입니다. 대림동 꼴이....휴~
@@kyumgpark6980 조선족들 툭하면 자기 조상들이 만주에서 독립운동 했다고 우김. 그런데 중국인들 한테 물어보면, 조선족들은 일제시대 일본이 만주점령했을때, 일본인 꽁무니 따라와서 일제의 앞잡이질 했다고 함. 그래서 일본인들 앞잡이로 방망이 들고 중국인 때렸다고 빵쯔 라고 부른다고. 누구 말이 맞을까? 잠깐 생각해보면, 50만 만주진출 조선인들이 죄다 독립운동을 했다면, 스스로의 힘으로 독립을 하고도 남았겠다. 그러니 중국인 주장이 맞다고 볼 수 밖에.
@@davidjacobs8558 만주로 간 조선족들이 전부 독립운동했다면,
36년간 일제치하 당했을까요.
만주로간 실제 독립군들도 제가 알기로 눈치밥먹으면서 숨어살며 독립운동 하다가(물론 한국에서보다는 자유로웠겠지만)
일본이 만주국이라는 괴뢰군 만들어 독립군들 소탕했을때는 러시아나 더 중국 더 몽골쪽으로 이동해서 독립운동 하다가 그마져도 러시아가 사할린으로 강제 추방했죠.
어느정도 활발했던기간은 1919년 3.1독립운동 후부터 10여년간 정도였다해요. 3.1운동보고 중국에서 우리나라를 좀 이용할 가치가 되겠구나 했었는지 지원좀 해주고 그랬다해요. 그덕에 10여년간은 봉오동 전투 청산리 전투를 비롯해 중국군과 크고작은 무력 투쟁 항쟁의 절정기였죠.
그러다가 뜸하다 터진게 1932년 윤봉길 의사 도시락폭탄 사건이였고 그 사건후 거의 이렇다할 독립운동이 없었고,
홍범도장군도 1937년 러시아땅에서 중앙아시아로 강제이주 당했고
1939년 2차세계대전 발발후 중국과 함께 연합국에 가서 정규군 훈련 받다가 1944년 영국군과 버마에서 첫 참전 본격적으로 제대로된 무력 투쟁 벌일려고 하다가 1945년 광복~
이게 우리나라 대강의 독립운동사
여기에 조선족이 끼어들었다면 3.1운동직후 10여년간 무력투쟁 시기에 조금 끼어들었을까..
@@davidjacobs8558 데이빗 제이콥스씨 만주로 간 우리 조상이 다 독립운동을 하진 않았겠죠. 하지만 아시아의 원흉 일본놈들 상대로 그 먼 타지에서 독립운동 하신 분들도 많습니다. 저의 큰할아버지도 만주에서 활동하다 총각때 그곳에서 사망하셨어요. 꼭 언젠간 우리가 만주땅을 찾아서 우리 대한민국땅으로 만들날이 오길.....
울머할아버지 아이들한테 독일어 가르치실 때 들떠계시는 모습 너무 귀엽다. 😀
얼마나외롭고힘들엇을까요.우리나라.애국자이심니다.고맙슴니다
11년전 방송이니... 아무도 저 분들 중 먼 곳으로 떠나셨을 분이 있을 거란 생각을 하니 마음이 아프네요
독일 남편 분들 참 존경스럽습니다.
좋은 방송 감사합니다.
10여년전의 영상이네요
모든분들 평안하고 여유로운 노년을 보내시고 항상 건강하시길 바랍니다
여름휴가로 아내와 다녀왔는데 정말 멋진 곳 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
같은 동포이긴한데 독일인 마을과 대림동 연변마을은 하늘과 땅 차이죠. 호기심에라도 대림동은 가지마세요.
진짜 눈 썩습니다.
@@kyumgpark6980 중국연변은 무얼했죠?한국을 위해
진정 애국자님들..감사합니다
이분들덕분에 우리경제가발전했습니다.감사하고또감사합니다~~
당신들의 노고가 오늘날의 우리들을 있게하였습니다
마을의 역사, 독일생활을 보여주는 작은 박물관(2층 구조)이 있으면 좋겠습니다. 박물관은 독일 가정집 스타일로 짓고, 1층에서 커피와 음료를 팔고, 2층은 박물관 겸 독일 수제맥주랑 독일 소세지를 시음하는 장소로 만들면 좋을 것 같아요. 각자 갖고 있는 사진 가운데 추억할만한 사진을 골라내서 크게 확대하여 액자에 담아 벽에 걸어두고요. 독일문화와 전통을 보여주는 기념품, 가정용품을 곳곳에 진열해 두면 좋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특정 요일이나 기념일에는 독일 가곡이나 독일 음악을 직접 연주하는 날로 정해두면 관광객이 이걸 보려고 많이 찾을 것 같습니다. ^^
당신들의 피땀흘린 노고에 선진국 지금의 대한민국이있습니다
선진국??
@@joecho7777 그럼 후진국긴가요??
@@joecho7777 쯧
@@ferozah2022 bebe 꼬였냐
@@sonnie-tn1mk 너?
영화 '국제시장'
주인공들을 떠오르게
합니다.
파독 광부와
파독 간호사 분들의
노년이 평화롭고 행복해 보입니다.
아름다운 남해의 독일마을!
저도 그곳에 가서 살고싶네요~🍀
감동입니다 이런프로젝트는 많이해야합니다
더많은 가정들이 입주하면 좋겠네요~
역시 독일남성들의 생각이 열렸네요~ 👍👍
당신들의 노고에 감사를 드립니다.
한 번 다녀 왔는데
너무 예쁜 마을 이었습니다.
건강하세요. ^^
고향에 오신것을 축하드립니다.
국내서 국외서 그렇게 저렇게 고생하며 세운 대한민국 세계10대 경제대국으로 성장했습니다 젊은이여 조금더 노력하여 완전한 경제 문화대국으로 성장합시다
정말 감동입니다!
저희 세대의 아팠던 부분
절대적빈곤.. 직장이
없고, 가족은 많고 그분들의 파와땀이
조국의번영에 마중물이 된것을 잊어서는 안될것입니다.^^
훌륭하신분들 이네요
이런 역사를 알게 되니
독일 마을이 진짜 자랑스럽게습니다
방문한적이 있는데
그냥 겉으로만 훝고 왔거든요
적극적으로 그리고 진심으로 독일마을 축제를 응원합니다. 여러분이 진정한 애국자 입니다. 감사합니다.
ㅋ 아예 전국을 독일마을로 만들지 그랴?
작년 가을 독일마을에 놀러갔었습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고)우춘자 할머니의 집 "하이디하우스"를 설명해 놓은 푯말을 봤던 기억이 있었는데 여기서 우연히 할머니의 모습을 뵈어서 뭔가 뭉클하네요..! 2019년에 별이 되신 할머니, 생전 모습이 참 고우셔요.
존경스런 간호사 선생님 행복하세요.
선생님들 덕분에 오늘의 대한민국이 있습니다. 울머할아버지 한국어 배우시는 모습이 넘 귀여우세요. 간호사 선생님, 광부선생님 여러분은 정말 고마운 애국자십니다. 감사합니다.사랑합니다. 존경합니다.
지금은 아주 많이 변했고
과거의 독일마을의 향기는 많이 변했습니다.
지자체에서 좀 제대로 접근을 해줘야겠어요
모든 분들이 넘무 넘무 행복 행복해보여서 부럽습니다 👍 감사합니다 건강하세요 ~
우리부부도. 일본에. 생활한지 33년째입니다.
이젠 나이도 먹고. 더늙기전에. 한국으로 돌아가고싶고. 준비중입니다. 독일마을 보니. 그곳에서. 살고싶은. 생각이드네요
몇해전에 남해를 한바퀴 돌면서 독일마을을 알게 되었답니다 붉은색 지붕이 한눈에 확 들어왔어요
지금도 아쉬운점은 남의집이라 들어 갈수 없었다는것 차라리 숙박이 되는 댁에서 하룻밤 묵었더라면 자세히 집안 뜰도 구경 했을텐데 지금도 아쉬움으로 남는 답니다
독일 파견 광부,간호사님들께서는 대한민국을 위한 큰일꾼들 이셨습니다 참으로 수고 많으셨습니다 다음 기회 되면 독일마을에서 하룻밤 묵고 싶답니다 오래동안 건강하시고 행복 하십시요 감사 합니다.
네 이해가갑니다
저도 일본시집을가서
40년이되었는데
늘한국잊은생각이없어요
우리형부도 연세대학 나오셨는데 독일탕광에
가셔서손가락을다쳤는데
돌아가실때까지 손가락이
이상했어요
외국에가면누구도
애국자가됩니다
그래도독일마을이있어서
한번구경가야겠어요
여기에 반대를 누른 227명은 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랬을까?
이런 다큐에 반대를 누르다니 어이가 없다.
열등 컴플렉스에 쩐 부정적 인간들이겠죠. 역사의식도 사회연대 의식같은게 있을리 없는..
봄에 다녀 왔는데 관광지로 변모해서 시끌벅적하더군요. 원래 살던 분들 중 얼마나 남아 있을까 궁금합니다.
이 다큐가 벌써 12년 전 제작된거니 그후로 이분들 어찌 지내시는지 궁금하네요...
건강들 하신지? 혹 이분들중에 안타낍게도 벌써 유명을 달리하신 분들이라도 있는지...
그동안에 새로 전입하시거나 전출등 주민구성에 변화가 있는지... 등등
모두 여전히 편안한 여생들을 보내고 계시길 바랍니다...
독일광부 독일파견간호사 이분들이 대한민국 성장의 기여한 애국자들 이십니다
참 대견합이다..
그때는 한국에도 얼마나살기힘들어서요ᆢ지금 생각하면 꿈같은세월이네요 고생많이하셨어요 ᆢ
노후에라도 고국에서 행복하시길...
동포도 동포나름...조선족들은 고국이 아닌 중국에서 행복하시길 바랍니다.
독일 남편 두분 다 인상이 좋으시네요. 그리고 와이프 생각해주는 마음도 너무 좋네요.
아내가 고향이 그리워도 선뜻 살던 곳 떠나기 쉽지 않은데..
맞습니다. 외국은 언제나 외국입니다.
가까운 일본에 1985년에 와서 아직 살고 있지만. 언젠가 돌아가려고 합니다.
미우나 고우나 자기나라가 최고 입니다.
매우 잘된 일입니다. 우리나라가
자랑스럽습니다. 독일인들까지
한국에 오셔서 거주를 하고 계시군요.
아름다운 독일 마을, 그리고 오랫만에 듣는 유열씨 음성 반갑습니다.
독일 간호사.독일광부.
월남 파병군인.
여러분들은 애국자입니다.
여러분들의 피 땀.눈물과 박정희대통령의 탁월한 리더쉽이 오늘날의 대한민국을 만들었읍니다.
노후를 편히 쉬십시요.
즐기며 사십시요.
젊어서 외화획득하셔서나라살림보태시더니
연세드셔셔는 예쁜 독일마을 만드셔서 관광지로도 만들어 주시니.
참 존경스럽습니다.
저도 미국에서 23년 살다간 직장 문제로 한국에 왔는데...
태어나고 자란 땅임에도 불구하고 낯설습니다. 예전 친구들도 너무 변했죠. 공감대가 형성되지 않아요. 아마도 문화 차이? 저분들도 한국에 살면서도 독일이 그리울거라 생각이 드네요. 저는 은퇴하면 미국가서 살지 않을까 싶네요. 어디든 만족함을 주지는 못한 것 같네요.
40여년전 독일에서 일하며 어려운 고국을 위해 희생하신 여러분들께 감사의 말씀 전합니다. 모두 행복하세요~
남편듷이 착하시다 나이를 먹으면 본인이 태어난 곳이 제일 좋은 것 같으네요
얼마전 독일 시장에서 파독 간호사 할머니를 만났어요.
50년간 독일에 살아 한국말을 거의 잊어버리셨다며 조금씩 한국어로 말씀하시는데 울컥하더라구요 ㅠㅠ 그분들이 있기에 지금 대한민국이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참으로 훌륭한 애국자십니다. 내~건강하시고 행복하세요 ^^^
독일마을 민박집에 3살 딸 데리고 놀러간 2010년 촬영이네요. 돈없어도 딸 애교에 아내의 사랑에 행복했던 그때가 그립네요. 지금은 atm 이 되버렸네요
괜스래 눈물이 납니다: 얼마나 고생하시고 가족과 나라를 위해 사시느라 반평생이 훌적 지나고 계십니다: 내조국이 얼마나 그리우셨을 텐데 모진 바람 다 받아가시면서 훌륭하고 장하십니다:부디 건강 하십시요:
수십년 살던 독일을 떠나
고국에 오신 분들ᆢ
얼마나 그리웠으면ᆢ
나 같으면 오지 않는다
독일이 그리울것 같아서
국회의원들보다도 위대한 사람들입니다
한국에 정착을 축하드림니다.
언제나 행복 하시고 건강하세요~~^^
저희 엄마도 언젠간 꼭 한국으로 돌아가고싶다며 그냥 전화기 들어서 한국말로 은행업무보고 내 나라말 하면서 살고싶다고 하십니다.
물건리아름다운곳입니다낚시는별로지만
ㅅ
이분들의 피땀어린 노고가 있어 지금의 선진국 대한민국이 존재 하는 것입니다
고향에 대한 그리움으로 버텨온 세월 얼마나 힘드셨을까요. 남해에서 행복하게 지내십시오.
13:34 ㅠ꽃시절..
73년 3월의 사진보니 나조차 눈물이 나네요.
거의 50년전 사진..예쁘십니다~
저는 미군으로 17세 독일 파병 나가서 70년대 간호사 누나들 만나서 향수를 달랬죠. 한국 음식도 얻어먹고요. 누나들도 이잰 나이가 많이 드셨네요. 저도 이재 6학년이네요.
저분들에 힘으로 대한민국 경제부흥에
초석이되었죠 살아있는 약사에 교육현장입니다
여생을 독일마을에서 행복하게 사세요❤
옛날 사람들 고생 많이 했지요
무척이나 부럽고 존경스럽습니다.
아기들 이름이 둘다 백합이네요.
나리는 순 우리말 이고
릴리는 영어식 표현이고
백합은 한자어 입니다.
셋다 같은 뜻 입니다.
조경시험 이나 화훼장식 시험에
자주 나와요..
한국의어려운시절에
주어진삶을 열심히 사신분들ㅡ존경합니다ㅡ
예전에 고 박정희대통령 내외분께서 독일가셨을때 장가보내달라고 외친광부의 사연이 많은 파독광부간호사 부부를 만든 역사가 된거지요.
열심히 살아온 분들께 고개숙여 감사를 드립니다.
감사합니다. 건강하시고 행복하세요~
독일어배우고싶네요 가까히있다면!! 와 ! 울머씨!!
주인님!!좋으실것같아요 한국생할이
간호사님 광부님들 정말로 수고 하셨습니다
국위선양 하신분들입니다,
고국땅 또한 이방인 되신 분들
진심으로 사랑합니다
오래도록 건강하시고 해복하세요.
내고향 남해구나ㅡ외국에 살고있지만...애들 다 크면 고향으로 돌아가고싶다...
❤33가구에 신의 축복이 ~❤
어제 다녀왔는데 다시는 가고 싶지 않았어요
상업화 된 곳은 너무 실망스러워서
아이들에게 독일 마을에 대한 설명만 해주고 점심 먹으러 들어간 곳에서
후회하고 나왔습니다 예쁜 곳인데 그런 곳이 발전 없이 그렇게 방치된 느낌이 아쉬웠어요
대단히 감사드립니다
남해 독일마을 지나가봤는데여
집이 이쁘더라고여~~이렇게 보니 신기하네여~~
독일남편분 한국말 잘 하시네여~~ 독일맥주 마셨는데여ㅜㅜ 저하고는 안맞았어여
그런데 독일마을 이쁜거 같아여~~ ^^
남해 공기좋고 아름다운곳 인거 같아좋아용~^^
존경합니다
그 시절에 모던 분들께
2010년 독일마을
2021년 새로운 모습을 보고 싶어요♡
아직
2020년 출연자분들이 건강히 잘 살고 계신지?
Kbs 다큐 제작진분께 부탁 드려요
ㄱㄹ
감사해요
행복하세요~💝
독일과한국의
날씨가 비슷하다고
하던데
잘 적응해 살아가시는거
보니 좋아보여요~
모든분들 건강하세요
늘지금처럼 건강하시고
행복하세요!
참고로 한국정부에서 독일인들 정착지원한다고 해놓고
지원을 거의 안해줘서
독일 분들 평생모은 적금 연금 다 쏟아부어서 만든 마을임
근데 자기여자를 위해 모국을 등지고 타국에 여생을 보낸다는 게 너무 스윗함ㅠㅠ
한국정부가.미국.독일의.
지원을생각하면..그리.소홀할수가 없는것인데.
안타깝고 미안할 일입니다
허위주장입니다.
당시 남해군 사업으로
택지조성/분양까지 군에서
지원, 관리한 지금까지도
성공사례로 소개되는 사업입니다.
입주민 주 소득이 독일연금입니다.
뭘 쏟아부어요.
80년도에 독일에 갔었는데 대다수 열심성실히 사시는데 개중에는 허세에 물들어 허세건달같은 동포도 있어서 마음아팠답니다
어렵게 번돈으로 흥청 망청 허영 도박 이런간호사 광부들 보며 분노 했답니다
둑일마을에서 민박 했던 좋은 추억이 생각 납니다.각 지자체에 독일 마을 많이 만들어 주길 ..
언니가 70년대 독일에 간호사로 가서 결혼해서 자식낳고 손자손녀 보며 아직까지 그곳에 살고 있습니다. 동영상 보면서 감동의 눈물이 납니다. 보는 내내 울컥울컥 서러움과 그리움이 올라옵니다.
빌리할아버지 굉장히 어색하신데😂😂 그래도 춤 따라하시는 거 귀여우심 ㅋㅋ
썰렁하던 산언덕 그 마을 ~.독일마을. 파독간호사가 될뻔했던 기억이 새록새록 돋게 하는 그 푸른 마을~
건강들 하세요! 사랑합니다!!!^^
두 분 멋집니다....
옛날에 우리나라에서 외화를 벌기 위해 독일로 많은 분들이 간호사, 광부로 파견 갔다고 들었습니다. 이 분들의 노고가 있었기에, 우리나라가 더 발전 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항상 그 사실에 감사하며 살고 있습니다. 앞으로는 고국에서 건강하고 오래토록 편히 사셨으면 좋겠습니다. 우리나라를 위해 애써주신 분들을 보여주는 영상 정말 감사합니다.
애국자님들 존경합니다 건강 하세요
내 나라에서 먹고사는것도 참힘든데 고생들 많으셨습니다 이제 편히 쉬시면서 여유롭게 보내시길 한국어배우는 모습이 귀여우시네요
나도2020년 가을 어느10월에 아버지.동네 어머님.아버님 모시고 놀러 가섰지ㅎㅎ
원조 카렌스 몰고ㅎㅎ
참 좋은 하루 였습니다~~~^^
그것보세요 여기 와도 힘들지요
오래 살던 곳이 고향입니다
늙어서 자녀 자주 보고 사는게
최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