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산 상남동 )육호광장 변천사[구마산역-구락부운동장-육호광장 로터리-교차로-3.15상징 조형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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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Опубликовано: 24 сен 2024
  • 일본은 세계화로 발돋음 하기위해 일본식 제국주의의 온상을 한반도에 건설해
    진해에 주둔기지를 설치하고 일본인들을 위해 마산일대를 발전시키므로
    마산은 전국구 도시로 거듭났다.
    일제는 마산만 일대에 신도시를 형성하고 전국각지에서 모이는 수송물들을 운송하기 편하게
    신마산 으로 들어오는 교통의 요지에 놓인 용마산을 깎아 둘로 나눠 마산역으로의 운송에 월활함을 더했고
    그 입구 한켠에 북마산역과 구마산역을 신설함으로 각기다른 노선으로 활용해
    전국에서 들어오는 물자를 마산항으로 모아 일본으로 수송했다.
    그중 구마산역은 많은 마산인들이 이용하는 문화의 중심가로 성장했는데
    이곳에 사람들이 많이 모이다보니 항일의 의미를담아 국민들이 자발적으로 성금을모아 역한켠에 야구장을 건립하게 되었다.
    그렇게 형성된 구락부 운동장은 개인이나 국가가 관리하지 않고 공유재산으로 마산사람들이 활용했다는 점이
    커다란 역사적 의미와 가치가 높은 이유이다.
    하지만 공유재산으로 관리되어야하는 운동장이 어느 한 개인의 행위로 일본인에게 매각되면서 구락운동장의 기록은
    더이상 찾을수 없게 되었다고한다.
    해방이후 거듭되는 마산의 발전과 늘어나는 자동차 교통량을 대비해 마산의 3역사를 통합하기위해 합성동으로 이전하였고
    구마산역사 자리는 이곳으로부터 원형로터리를 형성해 창원과 경계지점인 구암동까지 8차선 도로로 신설되었다.
    그렇게 형성된 6개의 출입구로 만들어진 육호광장 원형로터리는 수출자유지역으로의 도로가 신설되며
    되려 교통혼란을 가중시킨다는 여론으로 광장식 로터리를 없애 교차로로 변경하면서
    일대에 3.15정신을 계승한 조형물을 비치하므로 전진과화합 상징을 이은 공원으로 자리매김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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