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나기전에 몰살당하지 않았습니다. 귀화당시 조건중하나가 자신이.귀화했다는것을 들키지 않는 것이었고 (일본에 있는 가족들에게 해가 가지않게)임진왜란 당시 일본은 사야가가 귀화한줄은 전혀 몰랐다고 합니다. 이사실은 조선 정부에서 계속 숨겨오다가 광해군 집권 시기쯤(?)에 사야가와 김충선은 동일인물이라고 언급한거 같습니다
'사야가' 명칭이나 유래에 대해 통일된 설이 없어서 그 이후 행적에 대해 불명확 합니다. 본래 오다노부가 계열이기에 처음부터 도요토미와 적대 세력이었다는 설, 가문 전체가 성과 이름을 바꾸고 도쿠가와에 의탁했다는 설, 사야가라는 명칭 자체가 가문이나 이름이 아니라는 설등
제 생각에 김충선 그는 군인이기전에 사람였다고 생각합니다. 와키자카와 비슷한 사람으로 생각합니다 . 2차대전으로 가자면 롬멜과 비슷한 군인이면서 사람인 사람들 . 어느 시대나 어떤 상황에도 어느 국가라도 인간은 인간답다고 생각해요 . 쉽진 않겠지만 명령보다 인간으로서 옳고 그름에 따르는 사람들이죠 .
일본인들도 전국시대를 겪으면서 지쳐있었고 고니시나 대마도 영주와 같은 장수들은 물론 대다수가 조선과 싸우기 싫어했습니다. 싸우면서도 계속 고향에 돌아가서 가족들 보고 싶다는 기록도 있구요. 또한 당시 조선은 대다수가 피지배층이고 옆집이 도망가면 대신 조세를 내야했고 죽은사람 조세까지 내는등 개, 돼지 보다 못한 삶을 살았고 양반이라고 해도 서얼들은 차별을 받았기 때문에 오히려 일본군을 환영한 백성들도 많았습니다. 드라마 보면 명나라군이 깽판치는 장면도 많이 나오는데 조선은 도로가 정비가 되어 있지 않아서 식량을 나르기 어려웠고 그래서 화폐를 지급했는데 화폐가 사용이 안 되서 배고파 죽을라고 했다는 기록들이 있습니다. 또한 명황제 만력제는 조선인들 먹으라고 쌀을 9만톤 보내고 은화 700만냥을 보냈습니다.
역사를 중립적으로 보면서 느끼는건 그들도 똑같은 사람이다. 우리도 여진족에게 정말 잔인한 짓 많이 했고 베트남 또한 마찬가지고 우리도 반성을 해야되며 분명 역사를 배우면서 고마워해야 할 부분도 많고 애국심보다는 인류애가 가치있고 지배층이 만들어내는 갈등에 무고한 사람들이 서로 싸우지 말고 평화롭게 지내는게 앞으로 좋은 세상을 만드는데 도움이 되는 것 같습니다
어째 말이 좀 비딱하게 들린다? 권율도 김시민도 곽재우 장군도 훌륭한 장군이고 이름없이 싸우다 죽은 병사들 모두 존경받을 위인이지 이순신 장군 하나만 생각해?? ㅉㅉ 욕할 가치가 없다, 이 자식아... 그리고 이순신 장군 그럴 자격있어! 당신이 이순신 장군에 대해 뭘 알아?
이거 천일야사에 나왔었는데 거기에선 일본인으로 나왔는데 전쟁을 가기 싫다고 하니까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아내와 딸을 볼모로 잡아서 어쩔 수 없이 전쟁에 갔는데 이 전쟁이 쓸모없다고 느껴져서 오히려 화약만들고 조총을 쏘는 방법을 알려주고 병자호란, 이괄의 난 등 많은 공을 세웠다고 하더라구요 아무리 전쟁이 쓸모없다고 느껴져도 대부분이 그냥 싸울텐데 나서서 빼앗긴 성을 되찾아주고 하는게 쉽진 않았을텐데
조총때문에 초반에 밀리니 마니 하는건 무리인것 같아요. 1분에 2발정도 쏠 수 있고 삼단사법이라는 유명한 전술로 그 단점이 커버된다고는 하는데 조총이 가진 장점이 있기나한가 라고 생각할 정도로 단점이 너무많습니다. 게다가 1분에 2발을 쏠 수 있다고 해도 연속으로 5발쯤 쏘면 겁나 뜨거워져서 사용을 못하고 삼단사법도 첫번째 1열이 먼저 총을쏘면 2열 3열은 1열에서 내뿜은 연기 때문에 살상력 자체는 떨어지는게 확실한것같습니다. 게다가 삼단사법은 임진왜란이전 삼국시대에도 조총이아닌 화살로 이미 존재하던 전술입니다. 그러니까 조선은 조총때문에 밀린것이다 또는 신립장군의 기병대가 조총 삼단사법에 졌다라고 많이들 얘기하지만 조총 유효사거리는 50m정도라서 삼단사법 대열로 조총병들이 진형을 갖추어도 조총을 1~2번쏘고나면 그 후 기병대가 조총병들의 진형을 휩쓸어버릴겁니다. 그러니까 조총이쎈게 아니라 조선군이 너무 약하고 일본군이 너무 잘 싸웠다가 정설이죠
초딩 아닙니다 ㅡ.ㅡ 저기 아래의견에 조선시대때 ak소총 있었으면 하는 의견있어서 첨언 한것이지요 당시 산업능력으로 현대식소총 1분대 이상 보급하기 어렵고, 임진전 당시 일본으로 부터 초석 수입하는 입장이라 조선시대때 실재 나타나도 실전 불가능함 실재 유럽도 쿠바 초석광산 개발전 까지 화승총 사용이 전병과의 4분1이상 넘지못했음 심지어 하버가 암모니아 합성할때 까지 화약은 부족했기에 소변에서 채취하는것과 자연에서 채취하는것에 의존 해야했음 즉 화약량은 유지한채로 다른 생산 요소를 추가하고 가장 적절 한것이 드라제 소총이라고 생각함 강선을 세길 필요 없고,단발식이지만, 후장식소총 이라 조총 보다 재장전이 빠르며,기계적 요소는 스프링을 제외하면 그나마 간단함 그뿐만 아니라 의병이라고 하지만 사실상 농부인 저숙련병들이 배우기 쉽고 확실한 화력을 보장함 따라서 드라제 소총을 추천한것임 물론화약을 아예 먹지않는 지란도니 소총이 있고 제식화될정도로 우수한편이긴했지만 한계가 명확해서 추천하지 않음 그리고 소총은 일본이 화승총 전래 한 이후 개인이 들수 있으면 소총 못들면 대총 분류한것이 일제강점이후 우리가 흔히 쓰는 소총의 의미가 됨 즉 저 당시때 소총이라는 개념은 존재함 단발식 화승총이지만 여담으로 별상관 없는 이야기 이지만 임진왜란이전 당시 조선은 포와총이명확하지 않음 그이유는 공용 화기였던 기존 화기가 개인화기으로 쓸수있는 개념으로 넘어 가는 과도기 였다고함
김충선장군의 후손입니다. 저희 외가쪽 조상님이신데 너무 자랑스럽고 관련영상볼때마다 가슴이 벅차올라요 이런거 많이 찾아봐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정말 자랑스러운 조상을 두셨습니다. 영화를 통해 알게 되었는데 많은 분들이 알았으면 좋겠고 영화로도 나왔으면 좋겠습니다.
사야가 가문이 없어졌다면 임진왜란 끝나기도 전에 몰살당했나보네요. 그걸 알고도 귀화해서 조선 영웅으로 크게 활약한 김충선 장군도 대단하지만 얼마나 마음이 아프셨을지...
그렀잖아여 갔차우면 더욱더 아주 작은 일로 서로시기 하지만 머러지면 더욱더 보고싶어 짐이 ... 한일 관계가 었저면 그런겄 같기도해요
끝나기전에 몰살당하지 않았습니다. 귀화당시 조건중하나가 자신이.귀화했다는것을 들키지 않는 것이었고 (일본에 있는 가족들에게 해가 가지않게)임진왜란 당시 일본은 사야가가 귀화한줄은 전혀 몰랐다고 합니다. 이사실은 조선 정부에서 계속 숨겨오다가 광해군 집권 시기쯤(?)에 사야가와 김충선은 동일인물이라고 언급한거 같습니다
'사야가' 명칭이나 유래에 대해 통일된 설이 없어서 그 이후 행적에 대해 불명확 합니다.
본래 오다노부가 계열이기에 처음부터 도요토미와 적대 세력이었다는 설,
가문 전체가 성과 이름을 바꾸고 도쿠가와에 의탁했다는 설,
사야가라는 명칭 자체가 가문이나 이름이 아니라는 설등
@@alyim0520 간자에 의해 김충선 장군의 귀화사실이 알려지고
그것으로 김충선 장군의 일본 가족과 가문이 몰살 당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게 아니고서는
가문 자체가 기록에도 안남을정도로 깨끗히 지워지지는 않았을듯
@@alyim0520 ㅋㅋㅋ 저기요 사야가는 선봉부대의 일선이고 약 2000명이나 지휘하던 장수인데 그런 사람이 귀화를 했는데 그걸 일본에서 몰랐다는게 말이됩니까 ㅋㅋ
이순신장군만큼이나 위대한명장 성웅 김충선장군님 지금의한국을 존재하게 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그냥 그때 일본에 점령되었다면.. 일본사람으로 선진국 반열에서 하하호호하며 살고있을건데
대조영 한국도 선진국이고 대부분 하하호호 하면서 삽니다.
@@tlo2664 우리나라도 선진국이어도 일본보다 아직 많이 차이나요ㅎㅎ
@@markus5254 이차대전후 소련에게 동독처럼 분할되었다가 소련해체때 일본으로 돌아가지만 아이누 오키나와 처럼 차별 받고 있겠지요 이것도 우리가 아~~무것도 안하고 가만히 있다면
허준호 저 일본 살아요.
김충선 장군님 존경합니다..
달성 가창의 녹동서원 근처 한일우호관은 코로나 전에는 일본인이 한 해 천 명 정도 찾는 곳이 였죠. 김충선 장군을 모시고 있고 녹동서원이 있어서 직접 가보니 여행하기 좋았습니다.
당신 덕분에 지금의 조선이 있을 수 있었습니다. 정의를 위해 힘 쓴 당신을 절대 잊지 않겠습니다.
당시 일본에도 선의를 중시하는 진짜 사무라이정신을 가진 의로운 사람도 많았습니다.
한국에 있으면서도 고향 일본을 평생 그리워했다고합니다.
대구시 가창면 녹산서원에 그의 무덤이 있고 한일교류 우호관같은 것이 있습니다
드라마로 제작하면 좋게습니다 요즘나온 드라마는 볼게없음 역사드라마는 시청율이 좋은듯 예전 대장금 허준 동이 이산 등등 명작 드라마 ㅎㆍㅎ김충선 역사 드라마 볼만할것같음
우록 김씨가 사야가장군의
후손들입니다.
경북 청도에 집성촌이 있지요.
사야가 장군의 후손이라구요?
김충선! 잊지않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후손들까지 착하다
사람자체가 선하게 태어나 저런 장면들을보고 선한감정과 선한 생각을 할수있는거 김충선장군 일본이름 사야가라는 인물은 정말 존경받아 마땅하다
김충선 장군 님 아주 고맙습니다
김충선 장군에 대해 더 널리 알려지고 연구되길 기원합니다
전쟁의 각 나라의 집권세력이 이익을 위해 행하는 행동이라고 생각합니다.
세계사에서 배우는 큰줄거리안에 아마 우리가 모르고 있는 자기만의 정의를 위해
전쟁을 반대하거나, 사람을 구하거나, 전투를 피하거나등등... 여러가지 휴먼스토리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오 맞아요
국가가 전쟁도구임을 간파하고, 가족애를 넘어 인류애를 선택한 비범한 사람이 400년 전에는 있었네요. 400년이 지난 오늘날에는 많은 사람들이 천박하게 돈 몇푼으로 사람기분을 저울질하고 있지요. 정말 훌륭한 분입니다.
사야가 이가 김수에게 투항해 사야가는 김충선이라는이름을갔게되고임진왜란과병자호란에영웅이다.
사야가 이는 김수장군에게 투항하여 김충선이란 이름을 하사받게 되고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의 영웅 이시다
섬에 있는 가족들은 어찌되었나요~~!!ㅜㅠ
태왕사신기 ost가 귀에 박힌다
존경스럽기도 하지만, 그냥 대단하신 것 같습니다....
1627 정묘호란 1636 병자호란 제발...좀
김충선(사야가)하고 이준사는 정말 당시 일본군중에서 보기 극히 굉장히 드물게 조선에, 귀화하여 우리나라식 이름까지 받은 불과 몇 않되는 장군들이였죠.ㅎ
근데 그냥 다 대단한 분있것갔음
준사와 사야가 대단한 인물이죠
제 생각에 김충선 그는 군인이기전에 사람였다고 생각합니다. 와키자카와 비슷한 사람으로 생각합니다 . 2차대전으로 가자면 롬멜과 비슷한 군인이면서 사람인 사람들 . 어느 시대나 어떤 상황에도 어느 국가라도 인간은 인간답다고 생각해요 . 쉽진 않겠지만 명령보다 인간으로서 옳고 그름에 따르는 사람들이죠 .
와끼쟈까와 비교되는건 조금 아닌듯요...
와끼쟈까가 군인으로서 용맹하고
가또 기요마사같은 놈들과 비교하면 나름 인간적인 면모도 있었지만
결국 부당한 주군의 명을 거스르지 못하고 따른 살인마의 졸개에 불과합니다
언제 영화로 나왔으면 하네요
일본인들도 전국시대를 겪으면서 지쳐있었고 고니시나 대마도 영주와 같은 장수들은 물론 대다수가 조선과 싸우기 싫어했습니다. 싸우면서도 계속 고향에 돌아가서 가족들 보고 싶다는 기록도 있구요. 또한 당시 조선은 대다수가 피지배층이고 옆집이 도망가면 대신 조세를 내야했고 죽은사람 조세까지 내는등 개, 돼지 보다 못한 삶을 살았고 양반이라고 해도 서얼들은 차별을 받았기 때문에 오히려 일본군을 환영한 백성들도 많았습니다. 드라마 보면 명나라군이 깽판치는 장면도 많이 나오는데 조선은 도로가 정비가 되어 있지 않아서 식량을 나르기 어려웠고 그래서 화폐를 지급했는데 화폐가 사용이 안 되서 배고파 죽을라고 했다는 기록들이 있습니다. 또한 명황제 만력제는 조선인들 먹으라고 쌀을 9만톤 보내고 은화 700만냥을 보냈습니다.
명나라가 그렇게 많이 지원해 줬는데 당시 조선인들은 명뽕 맞을만한 상황이였고 광해군은 드라마나 영화 때문에 너무 과대평가 되어 있습니다
역사를 중립적으로 보면서 느끼는건 그들도 똑같은 사람이다. 우리도 여진족에게 정말 잔인한 짓 많이 했고 베트남 또한 마찬가지고 우리도 반성을 해야되며 분명 역사를 배우면서 고마워해야 할 부분도 많고 애국심보다는 인류애가 가치있고 지배층이 만들어내는 갈등에 무고한 사람들이 서로 싸우지 말고 평화롭게 지내는게 앞으로 좋은 세상을 만드는데 도움이 되는 것 같습니다
자기 살겠다고 자기만 도망가지 않코 어머니를 안고 피난가는 조선인을 보고 예의지국의 백성이 되겠다는 얘기도 있습니다
자 이제 님들이 그렇게 잘 알고 있는 이순신장군님만 생각하지말고 김충선장군님도 생각하죠~^^
어디 장수들 뿐이겠습니까?
이순신 장군의 정계에 적힌 노비. 중. 절의 노비 등등은 그래도 영광입지요.
조선의 모든 장졸. 의병.
나아가 독립의병까지 잊지말아얍지요!
어째 말이 좀 비딱하게 들린다? 권율도 김시민도 곽재우 장군도 훌륭한 장군이고 이름없이 싸우다 죽은 병사들 모두 존경받을 위인이지 이순신 장군 하나만 생각해?? ㅉㅉ 욕할 가치가 없다, 이 자식아... 그리고 이순신 장군 그럴 자격있어! 당신이 이순신 장군에 대해 뭘 알아?
김충선 장군님 고맙습니다.
요즘에 와서야 빛을봐서 그렇지 임진왜란과 이후 이괄의난 병자호란등 대단한 활약을 한 인물임..
노년에는 대구에 터를 잡고 낙향해서 지금도 그 후손들이 살고있다함..
임란이후 항왜들의 활약은 더 알려져야함.
양심있는 장군이었고, 도요토미라이벌이라서 전쟁선봉에 섯을 듯합니다.도요토미를 무너뜨리고싶어했겠조..암튼 지조와 명분이 있고 승장이니 영웅입니다.
김충선 장군은 내치지 않았는데 대체 왜 이순신 장군은 그렇게까지 괴롭힌건지 선조는 진짜
백성들이 자신보다 이순신을
더 좋아해서 그랬습니다.
+짐엘리엇 질투심과 시기심, 그리고 굉장히 심하고 많은 의심등으로ㅋ
이순신 장군의 충심 을 알아보지 못하는 소인배와같은 그릇때문이기도 하죠
남 잘나가는 꼬라지 못보는거죠 ㅋㅋㅋㅋㅋㅋ
선조가 정치 인재등용 (부패가 없는 선발)에서 졸라잘했는데 책임감없고 질투가 많았음 한마디로 찌질해서 원래는 조선중기의 중심 왕이라고도 할 수 있는데 똥을 거하게 싸놔서 병자호란 임진왜란의 주역으로 찌질왕으로 등극됨
김충선 장군 명대사 "조또마떼!"
타국이었던 조선을 동경하여 전쟁에서 조국을 버려야했던 마음이었을 것 같다.
감사합니다
김충선님이 만약에 안계셨다면 한국이란 나라가 없어졌을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 일본에서는 당연히 매국노라고 불리우겠지만 가슴이 아픕니다
진정 인간다움을 갖춘 인간이었군요. 감사합니다. 국가가 시켜 사람이 사람을 죽이는것은 참으로 역겨운 일이죠.
이거 천일야사에 나왔었는데 거기에선 일본인으로 나왔는데 전쟁을 가기 싫다고 하니까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아내와 딸을 볼모로 잡아서 어쩔 수 없이 전쟁에 갔는데 이 전쟁이 쓸모없다고 느껴져서 오히려 화약만들고 조총을 쏘는 방법을 알려주고 병자호란, 이괄의 난 등 많은 공을 세웠다고 하더라구요 아무리 전쟁이 쓸모없다고 느껴져도 대부분이 그냥 싸울텐데 나서서 빼앗긴 성을 되찾아주고 하는게 쉽진 않았을텐데
나도 자기나라를 버리고 조선에서 대활약을 펼치신 영웅 이라고 생각하지만
일본에서는 우리나라 이완용하고 같은 인물이라고 생각할 수 있을것 같다.........
서로 입장의 차이죠ㅠㅠ
이괄의 난때 항왜 사냥하고
서아지 사사문 지옥으로 보낸거
보면 제법 쓸만한 인물인건 확실
고로 이제 배신자라는 말은 쓰지말자
소름..
난 일본을 드럽게도 싫치만
김충선 장군님은 들어보았죠 근데 그분의 국적이
일본인이였어!?! 개충격......
조총때문에 초반에 밀리니 마니 하는건 무리인것 같아요.
1분에 2발정도 쏠 수 있고
삼단사법이라는 유명한 전술로
그 단점이 커버된다고는 하는데
조총이 가진 장점이 있기나한가 라고
생각할 정도로 단점이 너무많습니다.
게다가 1분에 2발을 쏠 수 있다고 해도
연속으로 5발쯤 쏘면
겁나 뜨거워져서 사용을 못하고
삼단사법도
첫번째 1열이 먼저 총을쏘면
2열 3열은 1열에서 내뿜은 연기 때문에
살상력 자체는 떨어지는게 확실한것같습니다.
게다가 삼단사법은 임진왜란이전
삼국시대에도 조총이아닌 화살로 이미 존재하던
전술입니다.
그러니까 조선은 조총때문에 밀린것이다
또는 신립장군의 기병대가 조총 삼단사법에 졌다라고 많이들 얘기하지만
조총 유효사거리는 50m정도라서
삼단사법 대열로 조총병들이
진형을 갖추어도
조총을 1~2번쏘고나면
그 후 기병대가 조총병들의 진형을
휩쓸어버릴겁니다.
그러니까 조총이쎈게 아니라
조선군이 너무 약하고
일본군이 너무 잘 싸웠다가 정설이죠
대단하십니다
오류가있네요 1627년은 병자호란이 아니라̆̈ 정묘호란인데...
일본인도 우리를도와준 장군사야가(김충선)존경합니다
병자호란은 1636년 입니다만 영상 내에선 1627년으로 되어 있네요. 1627년은 정묘호란이 일어난 해 입니다. 엄연히 다른 두 사건을 혼동했네요.
총병부대 지휘관이네 존경하다 죽은 아내와 딸이 죽은지 안됐다
동영상에 나오는 사야가의 딸 엄청 예쁘지 않나요?
틀림없다 김충선 어른의 뿌리는 백제일것이다
저도 그런 생각을 했어요. 그리고 성웅 이순신은 전라도의 수군장수였죠. 전라도는 바로 백제의 땅이었습니다.
5:11 오류가 있네요 1627년은 병자호란이 아니라 정묘호란입니다. 병자호란은 1636년
내가 김해김 김충선 12대손이다. 푸하하하
오랜 일본 내전인 전국시대가 드디어 끝나서 고향으로 가나 했더니...이번에는 타국 침략....................
1627년에 일어난건 병자호란이아니고 정묘호란임다 5:17
도요토미는 자국인부하 그것도 일본의 그놈의 주인밖에 모르는 무사도로도 이해되지않는 인성을 가진 놈이었구나
반전... 같은 인물이라니!!!
오타아마 병자호란과 정묘호란 거꾸로 쓴듯
그럼 아내와딸은 어떻게 됐나요?
1627년이면 정묘호란 아닌가요 ? 1636년이 병자호란인데 ,,
와우, 구독과 좋아요,댓글로 응원합니다~ // 항공역사를 만들어 가는 비차(飛車,비거)를 꿈꾸며 날아 왔어요. "난다 난다 비 비차 진주성에 가 보자, 비차 비차 비차다 진주성에 가보자" //이런 기록이 있네YO ~ 1451년 문종화차(火車)가 출현=>1592년 진주대첩 비밀병기인 세계최초의 비차(飛車) 비행기도 출현했다네YO~ // 이런 역사적,문헌적 사실들을 집대성하고 재창출한, 장편소설 김동민의 이 핵폭탄 콘텐츠로 뜨고 있네YO~
흥미롭습니다~ 비차비행기, 비차택시, 비차드론, 비차초소형위성, 비차비선, 비차열차, 비차콥터...
//하늘을 나는 유더카 - youthecar예요~~~
//자주 들러 주세요~"구독과 좋아요,댓글도 부탁드려YO~~"
오다
오다
오다
비차타러 오다...
사야가의 딸 불쌍하다.
뭔가 잘못 된게 있다 어떻게 병자호란이 1627년은 아닌데
임진왜란끝나고 20년도안되서 병자호란 일어남 틀린거없음
@@codi6108 병자호란은 1636년이다
임진왜란 도토리 때부터 일본은 사무라이 정신을 버리기 시작했구나.
와 동일인물 충격
1627년은 병자호란이 아니라 정묘호란인데요;;
일본 4대 악마 쓰레기
1.도요토미 히데요시
2.이토 히로부미
3.도조 히데키
4.아베 신조
??? ??? 걍점다1위합시다
변현진 순위가 아닙니다
??? ??? 일본에서는 영웅
잘봤다 그들 나라의 영웅은
한국의 원수다
??? ??? 천적으로는 도요토미 히데요시:이순신.권율.김시민.곽제우.사명당.서산대사.이토히로부미:안중근
Chewrizo awm 히데요시가 통일한 것 까지는 영웅인데 임진왜란만큼은 일본인들도 이상하게 여긴다네요
태왕사신기 ost 나오네
사야가의 딸은 어떻게 됐을까?
1627년 정묘호란이죠
병자호란은 1636년...
일본인이 싫어합니다.
특히우익단체가.......
아니지 화교 십새끼들하고 조선족이 겁나게 싫어하지..정작 일본인들은 별 관심이 없음.,
아~ ㅇㅈ
그러면 사야가 가족들은 히데요시한테 죽음??
mbc만 빡대가리인줄 알았더니 ebs마저.... 1627년은 병자호란이 아니라 정묘호란입니다. 김충선(사야가) 장군이 활약한 건 맞구요.
궁예 정묘호란이1627년에 일어난게맞지만 1636년에 일어난 병자호란 까지 포함해서 서술하는게 대부분입니다 임진왜란도 정확히 1592년이고 정유재란은 1597년인데 포괄하여 임진왜란이라고 하듯이 말이죠 둘중하나를 큰틀에 맞춰서 말하는것이죠
더 깊게 배우심이 좋으실 듯
정묘호란은 후금 병자호란은 청 나라의 침략이니 구분하는게 좋을것 같은데요..
5:03 저기요 E채널......병자호란은 1636년이거든요???1627년에 일어났던건 정묘호란입니다.,....진짜 모르는건가? 실수겠지
흠...김충선 장군 일본쪽 가문은 볼것도 없이 보복으로 멸문지화 당했겠는데...그건 또 그것대로 비극이고 그 사람들 입장에선 굉장히 원망했을듯
물론 우리나라 입장에선 최고의 충신인건 맞음 ㅇㅇ...
병자호란 1636년인데요...
이분존경
가선부대가 뭐죠?
가선대부라고... 조선시대에 큰 공을세운 신하에게 주는 칭호에요 명예적인 관직
그때탱크10대만있으면세계지배가능했을듯
+민석이 전차상륙함도
ㅇㅈㅋㅋㅋㅋㅋ
탱크 10대 세계지배 ㅎㅎㅎㅎㅎㅎㅎㅎ 긔여워요
지금 우리군 1000명만 보내도 세계재페가능
탄도안쓰고 그냥 기름만붓고진격하고밟으면됨
김충선 장군 후손 : 랄로
김충선 장군님 정말 고맙습니다... 잘보고 갑니다 코로나 조심하시고 예수님 믿고 구원 받으세요
선조역할 한사람 태조왕건에서 능애 아닌가
끄떼 조선군이 ak47만 가졋다면....
쓰는 방법을 몰라서..
근데 그 총이 밀수되서 도리어 당할수도....
rpg는 어떨까?
+죽창 ㅋㅋㅋㅋ왜다 개판이야ㅋㅋ
차라리 스텔스를 써 ㅋㅋ
박준혁 핵을써야지
오스트리아제 공기총도 괜찮긴하지만...
안녕하세요??^^
5:38
병자호란 1636년인데
아랍어권 국민과 이슬람교를 사랑한 왜장 사야가 장군을 긍휼한 전국시대에는 칼날이편하다.
근데 다 좋은데 개신교와 뭔 상관?
+므나헴 이때쯤 개신교가들어왔을꺼에요 아마
기리시독을 전파한 일본군 장수는 시야가 가 아니라 소서행장으로 알고있는데 ...
개소리 ㄴㄴ 일제에들어옴
탄환유지 안됨수고 차라리 드라제소총이 나음
초딩 아닙니다 ㅡ.ㅡ 저기 아래의견에 조선시대때 ak소총 있었으면 하는 의견있어서 첨언 한것이지요
당시 산업능력으로 현대식소총 1분대 이상 보급하기 어렵고, 임진전 당시 일본으로 부터 초석 수입하는 입장이라 조선시대때 실재 나타나도 실전 불가능함
실재 유럽도 쿠바 초석광산 개발전 까지 화승총 사용이 전병과의 4분1이상 넘지못했음 심지어 하버가 암모니아 합성할때 까지 화약은 부족했기에 소변에서 채취하는것과 자연에서 채취하는것에 의존 해야했음
즉 화약량은 유지한채로 다른 생산 요소를 추가하고 가장 적절 한것이 드라제 소총이라고 생각함
강선을 세길 필요 없고,단발식이지만, 후장식소총 이라 조총 보다 재장전이 빠르며,기계적 요소는 스프링을 제외하면 그나마 간단함 그뿐만 아니라 의병이라고 하지만 사실상 농부인 저숙련병들이 배우기 쉽고 확실한 화력을 보장함 따라서 드라제 소총을 추천한것임
물론화약을 아예 먹지않는 지란도니 소총이 있고 제식화될정도로 우수한편이긴했지만 한계가 명확해서 추천하지 않음
그리고 소총은 일본이 화승총 전래 한 이후 개인이 들수 있으면 소총 못들면 대총 분류한것이 일제강점이후 우리가 흔히 쓰는 소총의 의미가 됨 즉 저 당시때 소총이라는 개념은 존재함 단발식 화승총이지만
여담으로 별상관 없는 이야기 이지만 임진왜란이전 당시 조선은 포와총이명확하지 않음 그이유는 공용 화기였던 기존 화기가 개인화기으로 쓸수있는 개념으로 넘어 가는 과도기 였다고함
댓글에 대해 비판한건 감사하지만 상호 오해가 있다고 생각합니다.그냥 아래 글에대한 첨언이에요ㅡ.ㅡ
궁금한거 있으면 답글 주세요 성심것 답변해드리겠습니다.
이돈규 후장식 소총은 19세기 후반에 나온 개념인데 갑자기 1592년인 임진왜란에 왜 등장하죠?
애초에 당시 일본이나 포르투칼외 다른 유럽국가에서 한정적으로 생산하던 무기인 조총 자체가 최신 무기인데 갑자기 드라제는 왜나오는지 이해불가입니다
@Disney Walt 제가 말한건 그게 전혀 아닙니다.. 드라제 소총에 대해 말하는건데 드라제는 한참 후에나 나오는거라 지적한겁니다
시바가나옴
근데 참 독하고 이기적이다 가장으로선 최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