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사람들도 있죠. 하지만 여기서 말하려는건 이 장군이 나라를 떠나 진정으로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믿고 자기나라도아닌 죄없는 조선의 백성을 위해 싸웠다는데 있죠. 노잼인간님의 댓글은 다른 사상을 가진걸 말하는데 일정부분 맞지만 일제시대때이니 남과 북으로 갈라지기 전이라 같은 나라의 사람이고 이 장군은 다른 국적인 일본에다 전쟁을 일으킨 나라의 장수가 자신의 국적을 버리고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것에 자신의 일생을 조선의 장수로 살았다는것이 큰 차이가 있습니다. 전 그 부분에서 멋진 장수라 생각합니다.
일본에서 전국시대 당시 히데요시랑 사이는 그닥 안좋았음 무력에 굴복했을뿐.. 그러다 조선 정벌나섰고 피난하는 조선인 남자가 자기 아비를 업고 강을 건너는거보고 많은 생각에 잠겼음. 일본과 다른 공경하는 문화 . 뭐 다른 한국의 선진문물과 문화의 가치를 알고 있었고.. 그래서 일본을 배신하고 조선군에 와서 싸우는법 조총만드는것과 전술을 가르쳤음.
맞는말입니다. 실제 히데요시에게 반감이 큰 다이묘들도 상당 수 있었고 조선과 전쟁을 하는 것에 반대하는 입장들도 적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사야가와 마찬가지로 반강제적으로 전쟁에 나가야했던 사람들도 적지 않았구요.. 아니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이 속으로는 불만들이 있었겠죠. 그래서 조선으로 출병한 다이묘들의 구성도 대부분 전국시대에 이름난 다이묘들보다는 히데요시 라인의 사람들이나 새로운 기회를 잡아야했던 이들이 대부분입니다. 다만 단순히 그런 불만때문에 그런 선택을 했다고 하기엔 좀 그런 것이.. 일단 사야가가 가토군의 선봉장이었고 꽤나 중요한 직책과 역할을 맞았던만큼 어느정도 명망높은 가문의 인물이었을 것은 확실한데.. 지금은 그의 일본본토의 있을 당시 기록을 찾기가 굉장히 어렵다고 합니다. 역사학자들에 의하면 아마도 조선에 투항이 후 가문이 멸족되었을거라는 의견들이 있구요.. 그정도 위치에서 전국시대를 살았던 사야가가 그의 가문이 그렇게 될 것을 모르지도 않았을겁니다. 그럼에도 패배할게 뻔했던 나라에 투항했다는건 뭔가 나름에 큰 신념이 있었겠지요. 실제로 그는 전국시대를 뚫고 지나온 당시 일본의 풍토와는 다르게 '문'과 '문화'를 숭상해왔다고 합니다. 실제 남아있는 그의 글들에서 남아있는 느낌들을 보면 확실히 무사의 느낌과는 다르긴 합니다. 무튼 조선에 입장에서는 큰 수확이고 이익이었고 역사적으로도 그 것은 위대한 결단이었으나 한사람의 인생으로, 누군가의 가족으로서 본다면.. 과연 그가 스스로의 결정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면서 살았을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실제로 난 이 후에도 조용히 하사받은 땅에 살면서 후손들에게는 큰욕심 부리거나 관직에 욕심부리지 말고 살아가라고 했다고하니.. 알 순 없지만 개인에게는 평생의 큰 짐이 아니었을까요?
@@caradoguetocoreano8484 댓글 잘 봤습니다. 이로써 사람이라는 존재가 가족과 국가를 뛰어넘어 인간이 가져야할 근본적인 도리로서 세계적이어야하고 여기엔 나라가 따로 없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네요. 우리 민족끼리나 한국인이라는 정체성도 좋지만 사람이라는 더 큰 가치를 가지고 모든 사람을 대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은 만고의 진리인 것 같습니다. 내 나라를 위하는 것이 세계 인류 공영에 반한다면 선택하지 않을 수 있는 그것이 더욱 고귀하다는 생각이 드는 영상이었습니다. 임진왜란에서 이순신장군은 항상 포커스에 있었는데 이렇듯 오히려 원수일 수도 있었던 일본의 적장이 승리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는 사실로 일본인이라고 미워해서도 안된다는 점을 깨달을 수 있는 좋은 야사였습니다.
역사 안 배웠습니까. 조선은 왜의 아버지의 나라 입니다. 중국으로 부터 배운 문물과 기술을 조선이 주었습니다. 적국이라니요. 조선이 책을 든 인간들이 권력을 잡았다면 일본은 칼로 사람을 죽이는 깡패들이 권력을 잡고 있던 나라입니다. 그냥 미개햇다는 말 입니다. 전국을 하나로 묶고 부하들에게 나누어줄 영토가 없자, 조선을 치고 명나라 까지 처야겠다고 시작된게 임진왜란이고, 통신사 까지 보내 일본에게 문무를 가르처 주던 조선이었는데 명분이 없는 전쟁입니다. 원래 일본 사회는 배신과 약탈 살인이.종특인 사회였고요. 그런 우리를 부하들의 전리품 때문에 넘어와 님같은 일개 국민 개돼지를 학살 한겁니다. 식민지시절부터 조선총독부 앞잡이.신문사로 활약한 적패친일쓰레기 조중동은 언제나 일본을 미화하고 일본 자민당 한국지부 홍보사 라고 불립니다.(채널a는 동아일보,jtbc는 중앙일보)이딴거 보고 감동느끼지 마시는 게 좋을 듯 합니다.
무엇이 옳고 그른가 명분인가 무고한 희생인가 순간의 승리를 위해 지나쳐온 수많은 붉은 강 통곡의 소리와 뼈아픈 외마디 혼을 빼놓는구나 사람인가 짐승인가 괴물인가 도저히 믿기지 않는구나 한 평생 자라온 고국을 떠나 한 평생 사랑한 사람을 잃어도 한 나라의 운명을 바꾸기위해 날카로운 칼날을 죄없는 자가 아닌 광기어린 자에게 향하라 훗날 후세에 어떠한 비난을 받더라도 나의 명분은 숭고한 생명이니 꺼내든 칼을 부끄럽지않게 치켜세우며 어린 영혼을 지키리라 - 김충선
명분도 이유도 없는 무차별적인 살육으로인해 자신의 국가에 진절머리가 난거겠죠. 우리가 이유도 명분도 없이 타국에 쳐들어가 노인,여자,아이 할것 없이 죽이고 코나 귀를 잘라가서 그것으로 전량품받아간다고 생각해보세요.. 실제로 그랬었고 저 같아도 국가에 환멸을 느꼈을꺼 같네요
사야가에 귀화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설이 있습니다. 본래 도요토미 히데요시에 적대적인 큐슈지역의 다이묘의 가신이었다가 주인이 도요토미에게 멸망 or 귀순으로 인해 도요토미 히데요시를 섬기게 되었고, 이를 원치 않았기 때문에 전쟁이 시작하자마자 조선으로 넘어갔다는 설도 있고, 본래 용병집단인 사이카슈 소속이었으나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강요로 전쟁에 참가하게 되어 이를 원치 않아 귀화했다는 설도 있지요.
안녕하세요.~
저도 후손입니다.~^^
오래전 대구 달성군 우록동에 기념관에 견학하고 왔습니다. 귀한영상 감사히 잘 보았습니다.~~
모두건강하시고 행복하시길 기원합니다.~~~
혹시 김충선 장군님의 후손이신가요..
무고한 희생자를 한 명이라도 더 줄이시려하는 숭고한 마음에 조상께 감사를 드립니다
앗! 저도 후손 입니다.
김충선 장군님 감사합니다 하늘에서 편하십쇼
오늘날 호사카 유지 교수님이 지금의 사야가 장군과 같은 위치에 계신 분임.
뇌피셜로 선동하는사람이 김충선과동급?ㅋㅋ 웃기지도않다
@@SJ-vf6yb 뭔 개소리여
그냥 한국에대한 개인적인 호감으로 귀화까지 하신분하고는 다르다고봐야죠. 사야카는 내부숙청을 피해서 조선으로의 망명을 택했을 가능성이 가장 높습니다.
@쪽발짱깨척살KimJH 그렇게 한국을 좋아해서 귀화하신 분이 이름은 왜 아직도 일본식?
참 보기드문 충신이네 자기 나라는 아니지만 나라를 떠나서 명분없는 전쟁으로 죄없는 조선인이 죽는것을 보고만 있을수없다니 존경스럽다
대구 파동에가면 김충선 사당이 있다. 명분없는 전쟁은 살육일뿐이다. 일본후지산 기운은 강력한 火기다. 지금은 그지기가 뽑혀서 지금의 남의 나라를 침략하는기운이 약하다.
일제시대에도 사회주의자들이나 자유주의자들이 한국독립에 협조했음
그런 사람들도 있죠. 하지만 여기서 말하려는건 이 장군이 나라를 떠나 진정으로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믿고 자기나라도아닌 죄없는 조선의 백성을 위해
싸웠다는데 있죠. 노잼인간님의 댓글은 다른 사상을 가진걸 말하는데 일정부분 맞지만 일제시대때이니 남과 북으로 갈라지기 전이라 같은 나라의 사람이고 이 장군은 다른 국적인 일본에다 전쟁을 일으킨 나라의 장수가 자신의 국적을 버리고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것에 자신의 일생을 조선의 장수로 살았다는것이 큰 차이가 있습니다. 전 그 부분에서 멋진 장수라 생각합니다.
일본에서 전국시대 당시 히데요시랑 사이는 그닥 안좋았음 무력에 굴복했을뿐..
그러다 조선 정벌나섰고 피난하는 조선인 남자가 자기 아비를 업고 강을 건너는거보고 많은 생각에 잠겼음.
일본과 다른 공경하는 문화 . 뭐 다른 한국의 선진문물과 문화의 가치를 알고 있었고..
그래서 일본을 배신하고 조선군에 와서 싸우는법 조총만드는것과 전술을 가르쳤음.
그러게요
아 감동과 존경...그 어려운 길을 가셨군요.
진심으로 고개숙여 감사합니다.
후손입니다 이런 컨텐츠 만들어 주셔셔 감사합니다~!
확실함?
@@히든북스-q3n 확실합니다 전 우록 김씨거든요
저도 후손입니다 저도 우록 김씨예요.
김해 김씨 하사 받지 않았나
누규?
귀화해서 마냥 좋지만은 않았겠지만 참 고마운 사람이다
감사합니다 충성심은 잊지 않겠습니다
우리모두 김충선 님을 잊지 맙시다
너무 감사한 분이네요ㅠ가족들도 함께 오셨다면 좋았을텐데
와.. 대단하네요.
부인이 얼마나 그리웠을까..
놀랍네요..
이런 비극적 한일 역사를 영화로도 제작되면 좋겠습니다
김충선님이 일본사람이셨다니..ㅠㅠ감사합니다 당신같은 사람덕분에 우리나라가 발전하는거군요,.ㅠㅠ요즘 나라상황때문이 더 뭉클하다..ㅠㅠ
사실 항왜출신 조선군들이 워낙에 잘싸우니까 전투시에 항상 맨앞에서 싸우게 했다죠.
사야가 다이노 후계자 였으나 히대요시 인해 가문의 몰락. 처자식을 인질로 잡고 출병을 요구 했으나. 어쩔수 없이 응하다 선봉장 으로 출전 명분없는 전쟁에 투항 왜란.병자호란 참전 이후에 은둔생활.
사야가 배우 연기 잘하네요
머리가 아닌 가슴이 시키는 데로..
김충선.
인간이기 때문에 이런 선택을 또한 할 수 있다.
다른 여자와 양다리 걸치는건 그렇지만 일본인이면서도 이순신장군님 못지 않는 큰 용맹과 활약덕에 조총까지 무장시켜 승승장구 해주신 분....ㅠㅠ
끝에 가족이 얼마나 그리워 했으면 같이 데려올걸요....ㅠㅠ
사야가의 가문이 도요토미에 의해 재산과 목숨을 일부뺏겨서 반감이 있었던 덕도 있음
그건맞죠
맞는말입니다. 실제 히데요시에게 반감이 큰 다이묘들도 상당 수 있었고 조선과 전쟁을 하는 것에 반대하는 입장들도 적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사야가와 마찬가지로 반강제적으로 전쟁에 나가야했던 사람들도 적지 않았구요.. 아니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이 속으로는 불만들이 있었겠죠. 그래서 조선으로 출병한 다이묘들의 구성도 대부분 전국시대에 이름난 다이묘들보다는 히데요시 라인의 사람들이나 새로운 기회를 잡아야했던 이들이 대부분입니다. 다만 단순히 그런 불만때문에 그런 선택을 했다고 하기엔 좀 그런 것이.. 일단 사야가가 가토군의 선봉장이었고 꽤나 중요한 직책과 역할을 맞았던만큼 어느정도 명망높은 가문의 인물이었을 것은 확실한데.. 지금은 그의 일본본토의 있을 당시 기록을 찾기가 굉장히 어렵다고 합니다. 역사학자들에 의하면 아마도 조선에 투항이 후 가문이 멸족되었을거라는 의견들이 있구요.. 그정도 위치에서 전국시대를 살았던 사야가가 그의 가문이 그렇게 될 것을 모르지도 않았을겁니다. 그럼에도 패배할게 뻔했던 나라에 투항했다는건 뭔가 나름에 큰 신념이 있었겠지요. 실제로 그는 전국시대를 뚫고 지나온 당시 일본의 풍토와는 다르게 '문'과 '문화'를 숭상해왔다고 합니다. 실제 남아있는 그의 글들에서 남아있는 느낌들을 보면 확실히 무사의 느낌과는 다르긴 합니다. 무튼 조선에 입장에서는 큰 수확이고 이익이었고 역사적으로도 그 것은 위대한 결단이었으나 한사람의 인생으로, 누군가의 가족으로서 본다면.. 과연 그가 스스로의 결정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면서 살았을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실제로 난 이 후에도 조용히 하사받은 땅에 살면서 후손들에게는 큰욕심 부리거나 관직에 욕심부리지 말고 살아가라고 했다고하니.. 알 순 없지만 개인에게는 평생의 큰 짐이 아니었을까요?
@@caradoguetocoreano8484 우와~지식이 어마어마하십니다
@@caradoguetocoreano8484 누구...... 진짜 지식이 많군요 역사에 대한 직업이신 가요?
@@caradoguetocoreano8484 댓글 잘 봤습니다.
이로써 사람이라는 존재가 가족과 국가를 뛰어넘어 인간이 가져야할 근본적인 도리로서
세계적이어야하고 여기엔 나라가 따로 없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네요.
우리 민족끼리나 한국인이라는 정체성도 좋지만 사람이라는 더 큰 가치를 가지고
모든 사람을 대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은 만고의 진리인 것 같습니다.
내 나라를 위하는 것이 세계 인류 공영에 반한다면 선택하지 않을 수 있는 그것이 더욱 고귀하다는
생각이 드는 영상이었습니다.
임진왜란에서 이순신장군은 항상 포커스에 있었는데
이렇듯 오히려 원수일 수도 있었던 일본의 적장이 승리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는
사실로 일본인이라고 미워해서도 안된다는 점을 깨달을 수 있는 좋은 야사였습니다.
일본에도 저런분이있다니 좋은영상올려넘감사합니다 ^-^
충신 중의 충신 임란이후 이괄의 난에서 잡기 어려웠던 항왜를 직접 잡고 병자호란에서 노장으로 조선군이 각종 등신 짓 할 때 청군 500기를 잡고 인조가 항복하자 분개하며 낙향한 장군
사야가장군이 우리나라 금수강산의 아름다움에 감동해서 눌러않은곳이 대구.달성군 가창면입니다.
100년이나 이어져온 피비린내나는 전국시대에 사무라이로 태어나서, 저렇게 정의로운 마음을 가졌다는거 자체가 대단한거다. 죽고 죽이는게 당연한 시대였는데 말이지.
사야가 포함 해서 도요토미 에게 원한을 가진 항왜들이 많았음...본인이 보는 앞에서 가족들의 팔 다리를 짤라 버리는 경우도 많았다 함..이러니 원한이 쌓여 전쟁 일어나자 마자 항복하는 항왜들이 많았음..주 적을 조선인이 아닌 같은 왜인으로 봤다는 뜻..
죄가 있다면 도요토미에게 있을뿐이지...😡
일본인라 다 나쁜 사람은 아니라는거죠...
자기들도 하고 싶어서 하는게 아니고요ㅠㅠ
대단하고 존경스럽다
사야가는 자신이 도래인의 후손이라는 이야기를 알았기에 조선으로 가고자하는 열망이 강했을수도 있었죠
호사카 교수님 이런분들 정말 존경스럽다~♡
인류애가 넘쳤던 분이네
일본 장군 사야가도 조선을 돕다니, 우와 존경받아 마땅한 분
피가 다르고 적국의 나라인데도
자신의 나라를 원망해 침략받고 있는 적국에 편을들어서 같이 싸운다라 뭔가 멋지네요
역사 안 배웠습니까. 조선은 왜의 아버지의 나라 입니다. 중국으로 부터 배운 문물과 기술을 조선이 주었습니다. 적국이라니요. 조선이 책을 든 인간들이 권력을 잡았다면 일본은 칼로 사람을 죽이는 깡패들이 권력을 잡고 있던 나라입니다. 그냥 미개햇다는 말 입니다. 전국을 하나로 묶고 부하들에게 나누어줄 영토가 없자, 조선을 치고 명나라 까지 처야겠다고 시작된게 임진왜란이고, 통신사 까지 보내 일본에게 문무를 가르처 주던 조선이었는데 명분이 없는 전쟁입니다. 원래 일본 사회는 배신과 약탈 살인이.종특인 사회였고요. 그런 우리를 부하들의 전리품 때문에 넘어와 님같은 일개 국민 개돼지를 학살 한겁니다. 식민지시절부터 조선총독부 앞잡이.신문사로 활약한 적패친일쓰레기 조중동은 언제나 일본을 미화하고 일본 자민당 한국지부 홍보사 라고 불립니다.(채널a는 동아일보,jtbc는 중앙일보)이딴거 보고 감동느끼지 마시는 게 좋을 듯 합니다.
샤야가 기억할께요
무엇이 옳고 그른가
명분인가 무고한 희생인가
순간의 승리를 위해
지나쳐온 수많은 붉은 강
통곡의 소리와 뼈아픈 외마디
혼을 빼놓는구나
사람인가 짐승인가 괴물인가
도저히 믿기지 않는구나
한 평생 자라온 고국을 떠나
한 평생 사랑한 사람을 잃어도
한 나라의 운명을 바꾸기위해
날카로운 칼날을 죄없는 자가 아닌
광기어린 자에게 향하라
훗날 후세에 어떠한 비난을 받더라도
나의 명분은 숭고한 생명이니
꺼내든 칼을 부끄럽지않게 치켜세우며
어린 영혼을 지키리라
- 김충선
명분이란 한자는 정말 싸움에 있어서 필수불가결 이지요.... 일본은 그 명분 없는 전쟁을 몇번을 해온 나라인지... 역사에 이런 나라 찾기도 힘듭니다.
66세때 전쟁나가서 500명 목을 벨정도면...대단하신분
토요토미 히데요시가 임진왜란을 일으켰을 때, 사아갸처럼 반강제로 출병한 군벌들이 많았음.
심지어는 졸병들 중에서도 가족과 생이별한 자들도 있었다네요... 전쟁이란 결국 아무 죄없는 백성들만 피해를 입네요... 전쟁을 일으킨쪽이나 침략을 당한쪽이나...
@세로본능 그래서 심유경과 국제사기극을 벌임. ㅋㅋㅋㅋㅋㅋㅋ
이사람 이순신장군하고 싸울때 첩자로변신해서 이순신 도움
일본분이저런분도있었다니
감동이네요
프로필 오우야
예전에 알던 이야기인데 또보니 좀더확실히 알게 되었네요
김충선 장군님 감사합니다 영원히 기억하겠습니다
김충선 장군을 주인공으로 한 드라마도 나올 때가 되었는데...
이거 김충선 장군 이야기가 드라마로 나왔으면 좋겠다
일본이나외국에서도 한국을돕다 많이참사 하였습니다
실제로 도요토미가 임진왜란을 일으킬때 대부분의 다이묘들은 반대하는 입장이였음. 100년 넘게 치고박고 싸우다가 겨우 통일 했는데 뭔 조선 정벌이냐고 대부분 반대했음.
김충선(사야가)는 그냥 배신이아님
전쟁을 싫어하기때문에 조선으로 귀화한거임.
전쟁을 싫어서 귀화했는데 조선에도 전쟁이 계속되었죠. 일생동안 큰사건인 이괄의 난, 정묘호란, 병자호란까지 겪었으니
그렇고서는 일본군이랑 싸웠는데 그냥 내가 보기에는 권력욕으로 전향한거 같은데
@@tongtongba 저당시에는 조선이 이길거라고 생각하는 사람 별로 없었음
하지만 그 시대에선 전쟁앖는 나라가 어디도 없는지라..
명분도 이유도 없는 무차별적인 살육으로인해
자신의 국가에 진절머리가 난거겠죠.
우리가 이유도 명분도 없이 타국에 쳐들어가 노인,여자,아이 할것 없이 죽이고 코나 귀를 잘라가서 그것으로 전량품받아간다고 생각해보세요..
실제로 그랬었고 저 같아도 국가에 환멸을 느꼈을꺼 같네요
지키려는 자는 명분이 있기에 강하다...이번 전쟁은 조선이 이긴다...작금의 상황과도 맞아떨어지는군요
이 김충선으로 인해 조선도 본격 적으로 열병기 시대 로 접어 들게 되죠
이전에는 대포 같는 중화기 위주로 싸웠다면 김충선 이후로는 개인화기화가 되었죠
일본인 이었지만 양심있는 사람이었음
사야가는 비록 일본인 이였지만 존경스럽다!
적어도 명예로운 군인은 본받을수있어야한다
이런 분들이야 말로 진짜 일본에서 몇 안되는 진짜 사람이다!
이게 실화라면 영화로 나와도 좋을법한데 김충선은 들어봤지만 사야가라는 일본인인건 처음알았네요
@성이름 아직 역사시간에 재대로 나온적이없어서 저인물을 잘몰랐었네요
저때 조선은 일본보다 좋지못했었는데 훨신잘살았던 자신의 조국을 버리면서 까지 정말 대단한 장군인것같습니다
@@user-zi1qt3wv9c 일제강점기 때 후손들이 일본인들 에게 매국노 라면서 괴롭힘을 많이 당했다네요.
저분이 진정한 백제인이다
뭐라는거야, 당시 백제 멸망한지 수백년이 지났는데
@@Ryung_Gu 그런뜻이 아니라
백제 멸망 이전에 일본이랑 친하게
지내고 사후 조선땅에 한 예의를 지켜
아마 백제 충신 이라고 한것같습니다...
다좋은데 고증오류가 너무 심한것 아닙니까 ㅋㅋ 임진왜란 시기에 왠 일장기 ㅎㅎ 가문고유의 문장깃발 이라면 몰라 ㅋㅋ
그리고 충무공 이순신과 사야가(김충선) 사이에 서신 보낸 기록은 있어도 직접 만난적은 없는데요 ㅎㅎ
ㅋㅋ 임진왜란시기에 일장기가 있었다는 자체가 왜곡인데 저걸 그대로 내보내는지..... 저때는 각 다이묘의 문장과 기가 따로 있었는데..
그럼 일본인이 한국어 한다고 뭐라 또 지적하셈 ㅋㅋㅋㅋㅋ
영웅 사야가♥
일제강점기때 김충선장군같은사람이 있어으면......
그당시일본은 항공모함 전투기 같은무기소지하고있어서 사람의힘으로 어떻게할수없슴 아무리사야가같은분이 10만명조선으로귀화해봤자 맨몸으로 전투기랑 어떻게해볼라고?
@@madara7068 있으면 뭐해 태평양 전선에서 미국 항공모함 상대하느라 빼오지도 못할텐데
이런개색기노예같은조선색기들
우리 무타구치 렌야 센세가 있자너 ㅋㅋ
이가영 없지는 않았어요. 관동대지진 후 일본 자경단의 조선인 학살을 저지한 경찰도 있었고 억울한 일을 당한 조선인들이나 독립운동가들을 적극적으로 변호한 변호사 등... 잘 알려지지 않았을뿐이죠.
네덜란드의 벨테브레는 사야가만큼 대접받지 못한것이 안타까워요.ㅠㅠㅠㅠ
벨테브레는 박연이라는 이름까지 직접 하사받고 조선여인과 결혼, 훈련도감에서 대포 등의 각종 화기를 만드는 벼슬까지 제수 받습니다 벨테브레도 사야가(김충선 장군)만큼 아니라는 건 좀 어패가 있는 말이라서 ^^; 훈련도감 근무시에는 직접 효종이 지시한 일도 했습니다
그러고보니 갑옷들이 전부 불멸의 이순신에서 나왔던 갑옷들이네요... 사야가의 뿔달린 투구는 와키자카 야스하루 꺼...
일재애서도 조선시대에서도 자세히보면 외국사람들이 돕다많이참사하였습니다
막 일본인 목사님도 우리나라한테 사과하고 그리고 전직 일본 총리도 사과했는데 아베는 사과를 안해
대구광역시 달성군 가창면 우록리에 가보면 그 곳에서 여생을 보냈다는 안내문(?) 등등이 있던데...
대구에 가면 기념관에 가보겠습니다 김충선 장군님 존경합니다 후세들이 더욱 발전하시길 기원합니다
일본정치인들 사야가처럼 저런 양심이 있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저분이름으로군함 뽑으면좋겠습니다
ㅋㅋㅋㅋ 일본애들 개ㅈㄹ할듯
호사카센세 존경합니다!
나는 솔직히 김충선 아내분도 대단하다고 생각함... 원망 많이 했을텐데 그런건 없고 오로지 남편의 제 2의 삶을 응원했다는게..ㅜ
고마운 분이시네 총 까지 전수해 주시고
저 사야가 역할맡은분 연기 잘하시네
워 울엄마 조상님이시넹 멋있당
선조때 우리 나라로 귀화한 사람 김충선
하필 이승만 튀튀원조 선조새끼
@@구독하면프사주움 공부좀해라
@@구독하면프사주움 ?
촉한의 강유와 좀 비슷하셨다 보면 될까요
당시 전황이 조선에 유리하지않았는데도
자신의 신념과 대의를 위해 올바른선택을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나라를 구해주신 충의를 잊지않겠습니다
영화 명량에서 료헤이가 맡았던 쌍검장수가 김충선인가?
그건 준사
니게하지에서 처음봣는데 명량 나왔다대서 깜놀.. ㅋㅋ
사야가 맞는말 하네 일본놈들 전투에서 지니까 맨날 학살하지 근대화 만 빨리 하고
ㅋㅋㅋㅋ 조선 후손이 할말인가
뭔 개소리? 전투 다 이겨 압록강까지 간거 역사적 사실을 왜곡하지 맙시다 추해요
성우 구자형님이다!
와우 판타스틱
김충선 김해김씨였구나
마지막 장면 너무 슬프다..ㅠㅠ
양심 있는 인물도 있었구나
당시 본토 사람들도 전쟁 반대 했던 사람들도 많았음 심지어는 안나가면 처자식 죽이겠다고 볼모로 잡고 있을 정도 였는데....
어느 시대나 양심있는 사람들은 늘 있어 왔지요.
어느 나라든지 평화를 바라고 불의를 위해 싸우는 사람이 있다..ㅎㅎ
왕에겐 과분한 신하네
저때 일본 국기 저거였나
조선기술자들은 일본에 정착. 일본무인들은 조선에 정착 결론은 잘하는게 있어야한다
선조때 영웅들이 정말 많이 있었네요...감사할뿐
선조때 전쟁이 일어나서 영웅이 많아 보이는거지 전쟁이 없었을 때도 영웅은 있었을거임ㅋㅋ
어머그래요전혀몰라서요
저당시 충무공께서는 사야가를 만난적이없음. 자신의 통제영에서 식량확보및 군사훈련에 여념이 없었지.
청나라 황제가 아니라 황제의 대표라는 장수지 않았나요. 그건도 얼음판위에서.
저런분도 계시는데 부끄럽지 않게 살아야겠습니다.
사야가에 귀화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설이 있습니다. 본래 도요토미 히데요시에 적대적인 큐슈지역의 다이묘의 가신이었다가 주인이 도요토미에게 멸망 or 귀순으로 인해 도요토미 히데요시를 섬기게 되었고, 이를 원치 않았기 때문에 전쟁이 시작하자마자 조선으로 넘어갔다는 설도 있고, 본래 용병집단인 사이카슈 소속이었으나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강요로 전쟁에 참가하게 되어 이를 원치 않아 귀화했다는 설도 있지요.
오
참고로 저 당시 이순신,사야가는 정2품으로 동급이었음
임진왜란으로 사야가 같은 장수가 없었다면 지금쯤 한국은 없었을뜻
일본인 중에서도 저런 훌륭한 개념을 가진 인물이 있었다니 대단하네.
명분없는 침략으로 조선인들을 살육하는 조국에 회의를 느껴 조선에 귀화를 하다니…
아베 족속들이라면 절대 하지 못할 행동이지. 저분의 후손들은 자랑스러워 할 만한 위인이다.
한국말 개잘해
잘보십시오 일본중에도 힌극을도우다참사하였습니다
5:22 빨간 갑옷 장수 누구에요?
사이하
@@단통이 이름 있는 장군이었나요??
참고 고니시는 조선 고아 여자아이를 자기아이로 거두어 키웠다고 하였습니다.
이름이 고니시 마리아 이지요
그리고 사야가는 혼자만 귀화한것 같지만 그의 병력들과 함께 항복하고 귀화했지요
그리고 그의 병력들과 싸워서 이겨 조총 기술을 조선에 가르쳤죠
스파이게릴라군 오다 마리아 이예요
무조건 일본인에 대한 혐오 절대 옳은길이 아니다
극우 성향인 아베가 나쁜거지 일본에 선량한 시민들 많다 ㄷ
이런 사실은 처음 알았습니다
다초
영상에 나오는 이순신장군은 충무공이신가요???
이순신장군은 2명이었음 동명이인
충무공이시겠죠.
@@TV-gb7bo 무의공 방답첨사 이순신 말씀하시나보네요ㅎㅎ
연기잘하네
후후후후후후후후손입니다
사야가 사람이 김충선이 되었다
다음 이순신 시리즈 영화 개봉하면 한번 나왔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