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문헌상 기록된 최초의 민란은 무엇일까? 정부를 향한 민초들의 반란 한국 민란사 1부. 원종·애노의 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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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Опубликовано: 25 дек 2024

Комментарии • 13

  • @이동연-c6d
    @이동연-c6d Месяц назад +1

    6:28 청화수에 따르면 원종과 애노의 난을 견훤의 아버지 아자개가 진압 혹은 이들을 자신의 세력으로 흡수 시켰을거라고 하네요.

  • @이윤성-s3w
    @이윤성-s3w 3 месяца назад +2

    재미있습니다.

  • @세진-k5n
    @세진-k5n 3 месяца назад +6

    백제와 고구려에서도 민란이 있었나요 기록이 없어서 알수가없나요 궁금하네요

    • @01dmxufkfj
      @01dmxufkfj 3 месяца назад +3

      기록이 없다고 해도 그런 일이 아예 없었다고 하기도 힘들 것 같네요...

    • @gunholee584
      @gunholee584 3 месяца назад

      백제가 고구려 신라 폭동,반란,쿠데타 합친것보다 반란이 더 많음

  • @2-st1mj
    @2-st1mj 3 месяца назад +3

    토지제도와 수취체제도 같이 다뤘으면 좋겠네요

  • @ptahoteff
    @ptahoteff 3 месяца назад +2

    일본에서 천황 정치와 율령제가 문란해지고 부시들이 성장한 이유가 이걸 보니 체감되네요.

  • @천일조-b3q
    @천일조-b3q 3 месяца назад +1

    이영 감사드립니다

  • @virinsensatus2001
    @virinsensatus2001 3 месяца назад

    어느 분의 추측이고 제가 타당성 있다고 생각하는 가설이 있는데, 원종과 애노 중 한 명이 아자개가 아닐까 하는 겁니다. 견훤의 설화 중 견훤이 어릴 때 부모가 농사를 지었다는 것을 볼 때, 견훤이 어릴 때 그 집안이 상당히 한미했었다고 생각되는데, 성장 후에 지방의 유력 호족이라고 합니다. 그 것도 반란 직후에 말이죠. 만약 반란 진압이 불가능했던 신라 정부가 반란군의 수장을 그 지역 유력 호족으로 만들며 타협했고, 그 사람이 아자개라는 겁니다. 말하자면 원종과 애노 중 한명이 아자개라는 설이죠.
    그 설의 내용은 이렇습니다. 원종과 애노가 힘을 합체 난을 일으켜 중앙 정부 군대를 격파했는데, 신라 정부는 그들에게 벼슬을 주어 회유했고, 둘 사이에 내분이 일어나 한 명만 남았는데 그가 이후 반란을 일으킨 상주 지역의 호족이 된다는 겁니다. 낮은 신분이니 주는 지역의 강등시켜야 했고요.

  • @수집쟁이드라하카
    @수집쟁이드라하카 3 месяца назад

    근데 신라의 족내혼은 고려까지 이어지는 풍습이고
    그거 자체는 문제가 안되지만 문제는 정치 자체를 제대로 못한다는게 문제죠
    김위홍이 죽고 망연자실하게 산게 큰 문제였죠
    뭐, 솔직히 말해서
    신라 37대 선덕왕 치세 삐걱이더니
    신라 41대 헌덕왕 치세 끼리끼리 정치가 막장으로 가면 어떻게 되는지,
    이후 고려와 조선이 종친불사 원칙을 왜 만드는지 알수 있죠
    이때부터 나라가 쇠퇴하고 신라 51대 진성왕 치세 그 모든 문제점이 터진거라 볼수도 있죠

  • @박정훈-b9q
    @박정훈-b9q 3 месяца назад

    최고 벼슬인 각간더러 비선실세라니..😅

  • @Slayer-x4j
    @Slayer-x4j 3 месяца назад

    원종..........?원.........종.......? 어어 칼은 내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