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신주 박사 강의가 처음엔 조금 거칠게 느껴졌지만 책은 느낌이 많이 다르더라구요. 책은 보들보들 친절합니다^^ 10년 넘게 강신주 박사 강의와 책을 봐 온 사람 입장에서 보자면 철학이나 인간에 대한 애정이 있어서 저렇게 열을 내고 때론 큰 소리 내며 강의하는 거 같아요 ㅎㅎ 어떤 사람들은 왜 화를 냐고 혼을 내냐고도 하더라구요 ㅋ 이젠 익숙해져서 조용히 말하면 뭔가 서운할 거 같아요 😅
그게 말과 글의 차이 몰랐나 듣기엔 거북할 수도 있지만 그만큼 열정이 있고 답답해서 그런거다 하여간 의도와 맥락도 파악 못하는 병신들 답답하다 상태가 안 좋긴 하다 목소리가 톤이 높아지고 찢어지는 거 보면 도올을 닮아가는 것 같고 극단적인 표현을 많이 하지 일부러 그러는거다 세게 얘기해야 들을 거 같으니까 전략적인 선택
왜 우리가 크고 대단한 존재인지 강하게 말씀하시면, 성격이 약한 사람들은 철학자님의 강권한 스타일에 이끌려 감성적 공감이 될지는 모르겠으나.. 이 영상만 봐서는 도무지 왜 우리 각자가 크고 대단한 존재인지 잘 공감이 되지 않았습니다. 공부가 부족한 탓이겠지만.. 굉장이 이성적이고 냉철하신 분인데 갑자기 감정에 호소하시니 조금 갸우뚱 했습니다.
장자의 시적 웅변(실연당한 시인) vs 기독교적 리얼리즘(다각형은 원이 아니다) "바다 안에 여전히 머물러 있는 나머지 곤이?" 현전하는 것-제가 볼 때 이것은 내다보기- 자체는 가능적 현실성입니다. 내다보는 현실성이 우연한 기회에 부정될 때 사람은 기존의 가치 체계에 의문을 갖게 됩니다. 그리고 대상 세계를 고착화시키지 않고 가능적 현실성의 현전으로 보게 됩니다. 이는 쉽게 말해서 7살짜리 어린아이에게서는 아이슈타인, 일론머스크, 빈라덴, 유영철 등 무엇이든 나타날 수 있는 것이죠. 물론 이것은 아리스토텔레스의 확고부동한 가지계의 씨앗(유한성)은 아닐 것입니다. 반대로 무한한 가능성이죠. 이 무한한 가능성은 현전하는 것 자체로 보기-있는 그대로 보기, 무상- 입니다. 비현실성이죠. 이것을 보다 명료하게 하기 위해서는 세계 포기적 태도가 일관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현실적으로 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이 세계포기적 태도는 도리어 세계의 새로운 질서를 위한 끌어당김 - 희생염소, 가치 전도를 위한 폭력- 으로 사회적 힘을 나타냅니다. 이런 점에서 무한한 가능성의 무차별화의 차이는 기존 사회를 초월할 수 없다고 봅니다. 대자적 존재는 즉자적 존재의 터 위에 군림할 수밖에 없는데, 이것은 인간이 유한성인 탓이겠습니다. 유한성의 불가능성은 현전하는 것-가능적 현실성- 을 통하여 가닿기 위한 힘을 발휘합니다. 또는 수동적으로 그렇게 내몰립니다. 이 과정에서 차이는 유한성의 불가능성으로 다채로운 세계의 빛(실재들)을 감지하지만 그것이 무한성 그 자체가 아니기에 어떤 애수(여전한 어떤 균열)를 느낍니다. 그런데 이 애수가 오히려 주체를 독려하여 영웅이 될 수 없는 어떤 실연 또는 절망으로 유한성의 무한한 가능성(불가능성)을 웅변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웅변에 현실적 폭력은 은폐되어 있습니다. 이를테면 강신주 선생의 예화에서 "바다 안에 여전히 머물러 있는 나머지 곤이?들" 말입니다. ruclips.net/user/shorts47e8U6hwiT0?si=SVxh_9ZFItYr6ZUz
@@silvakim173 현전하는 것-제가 볼 때 이것은 내다보기- 자체는 가능적 현실성입니다. 내다보는 현실성이 우연한 기회에 부정될 때 사람은 기존의 가치 체계에 의문을 갖게 됩니다. 그리고 대상 세계를 고착화시키지 않고 가능적 현실성의 현전으로 보게 됩니다. 이는 쉽게 말해서 7살짜리 어린아이에게서는 아이슈타인, 일론머스크, 빈라덴, 유영철 등 무엇이든 나타날 수 있는 것이죠. 물론 이것은 아리스토텔레스의 확고부동한 가지계의 씨앗(유한성)은 아닐 것입니다. 반대로 무한한 가능성이죠. 이 무한한 가능성은 현전하는 것 자체로 보기-있는 그대로 보기, 무상- 입니다. 비현실성이죠. 이것을 보다 명료하게 하기 위해서는 세계 포기적 태도가 일관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현실적으로 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이 세계포기적 태도는 도리어 세계의 새로운 질서를 위한 끌어당김 - 희생염소, 가치 전도를 위한 폭력- 으로 사회적 힘을 나타냅니다. 이런 점에서 무한한 가능성의 무차별화의 차이는 기존 사회를 초월할 수 없다고 봅니다. 대자적 존재는 즉자적 존재의 터 위에 군림할 수밖에 없는데, 이것은 인간이 유한성인 탓이겠습니다. 유한성의 불가능성은 현전하는 것-가능적 현실성- 을 통하여 가닿기 위한 힘을 발휘합니다. 또는 수동적으로 그렇게 내몰립니다. 이 과정에서 차이는 유한성의 불가능성으로 다채로운 세계의 빛(실재들)을 감지하지만 그것이 무한성 그 자체가 아니기에 어떤 애수(여전한 어떤 균열)를 느낍니다. 그런데 이 애수가 오히려 주체를 독려하여 영웅이 될 수 없는 어떤 실연 또는 절망으로 유한성의 무한한 가능성(불가능성)을 웅변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웅변에 현실적 폭력은 은폐되어 있습니다. 이를테면 강신주 선생의 예화에서 "바다 안에 여전히 머물러 있는 나머지 곤이?들"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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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 수 없다면 바람을 타서라도 날아라. 듣고 싶었던 말이라 눈물이 나네요 감사합니다 선생님
강신주 박사 강의가 처음엔 조금 거칠게 느껴졌지만 책은 느낌이 많이 다르더라구요. 책은 보들보들 친절합니다^^ 10년 넘게 강신주 박사 강의와 책을 봐 온 사람 입장에서 보자면 철학이나 인간에 대한 애정이 있어서 저렇게 열을 내고 때론 큰 소리 내며 강의하는 거 같아요 ㅎㅎ 어떤 사람들은 왜 화를 냐고 혼을 내냐고도 하더라구요 ㅋ 이젠 익숙해져서 조용히 말하면 뭔가 서운할 거 같아요 😅
그게 말과 글의 차이 몰랐나 듣기엔 거북할 수도 있지만 그만큼 열정이 있고 답답해서 그런거다 하여간 의도와 맥락도 파악 못하는 병신들 답답하다 상태가 안 좋긴 하다 목소리가 톤이 높아지고 찢어지는 거 보면 도올을 닮아가는 것 같고 극단적인 표현을 많이 하지 일부러 그러는거다 세게 얘기해야 들을 거 같으니까 전략적인 선택
고맙습니다.
ㅠㅠ 살아계셔서 ㅠㅠ
저답게
무소의 뿔ㆍ사자 ㆍ바람처럼
걸어가려합니다
선생님 배웁니다
감사합니다 ♡
고맙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어른의 모습으로 살고 계시는 것 같아서 감명적이네요
정말 눈물나게 위로되는 말이네요…
그렇게 날아라! 너는 크다!
부산을 혼자 20대때 외롭게 타지에서 보냈는데 일이 무척 힘들어 매일 강신주박사님 벙커강연 틀어놓고 잠을잤어요
자장가처럼ㅋㅋ 나중에 다외웠음ㅋㅋ지금은35살에 고향에 와서살지만 여전히 목소리 좋으시네여😊
항상 건강하시고 행복하세요 ~~
자본의 노예로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뒤통수 제대로 때려주고 임팩트 있는 강의 감사합니다.
언젠가 적실한 때에 속박되었다 느끼실 삶에서 벗어나실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교수님 명강의 속이 시원합니다 감사합니다
퇴근하고나면 강신주를 찾는다. 회사 밖에서 만큼은 온전한 내가되기위해
출근길에 보다가 너무 좋아서 퇴근하고 엄마한테도 보여줬어요
저 이 강의 듣고 많이 울었어요 더듣고 싶어요.. 많이 눈물나구 위로가 됩니다 감사합니다
교수님. 최근의 모습에서 예전의 그 에너지가 느껴지는 것 같아서 너무 반갑습니다. 제가 곤이 붕이되는 이 이야기로 작년부터 너무 많이 자유스러워졌습니다. 정말 감사할 따름입니다.
선생님 많이 건강해지셔서 목소리에 힘이 있어요!
너는 곤이다. 바람을 타고서라도 날아라. 깊이 새기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그렇게 날아라 너는 크다!!
오 불행한 사람 세계와 행복한 사람 세계는 다르다 와 대박인데
강신주철학자님을 통해 내 삶이 이만하면 괜찮구나라고 느낍니다. 명강의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철학의 깊이가 남다른분이시네요.
멋지십니다!!!!!❤
사람들에게 자유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강신주 작가님 최고
점차 선생님의 말씀이 이해가 됩니다
감사합니다
강신주선생님 감사합니다
쌤존경함니다.건강하셔요😊
너무좋다 ㅠㅠ
와 감사합니다..정말 감사합니다
넷플구독 멈추고 일단 클래스이 구독합니다 두달 동안 누려보겠습니디
신주쌤 말씀을 유툽으로, 책으로 만난지 십년이 넘었는데 아직 계속 혼나는 이 기분~~크아~~좋지않나요?😂
내가 이세계가 더럽다고 생각하면 더러운 세계가 되는거고 깨끗하다고 생각하면 깨끗한 세계가 되는것이다. 내가 내생각에 내가 하는말에 내가 하는 행동에 달린것이다.
장자가 좋아요 무위자연 있는 그대로 인위는 싫고 난 나에요 내 삶 자체가 좋아 행복해요
지금 이 강의동영상이 좋네요
3:42
감사합니다 눈물이 나네요..
일론머스크 생각난다 얼마나 지구가 좁다고 생각했으면 모든 인류가 화성에 데려갈 생각을하네
대붕처럼 날아오르는것을 실천으로 옮기는..
많이 이프신가보네요.. 회복되시기를
화내시는데 내용은 좋네요
크 그렇구나
1-2월 달에 강신주 선생 이런 강의가 없나요 ?
크고 소중한데
돈이 없다
공감가기도 하지만... 요즘은 피곤합니다... 피곤해요... 지쳐요. 그냥...
그런데 세계를 부수기가 너무 무서워요.. 그냥 내 몸을 작게 맞추는 게 편해요..
공감요.
사실 그 속에서 어쨌든 난 행복하거든요...
왜 우리가 크고 대단한 존재인지 강하게 말씀하시면, 성격이 약한 사람들은 철학자님의 강권한 스타일에 이끌려 감성적 공감이 될지는 모르겠으나.. 이 영상만 봐서는 도무지 왜 우리 각자가 크고 대단한 존재인지 잘 공감이 되지 않았습니다. 공부가 부족한 탓이겠지만.. 굉장이 이성적이고 냉철하신 분인데 갑자기 감정에 호소하시니 조금 갸우뚱 했습니다.
왜 크고 대단한 존재인지 논하는 파트가 아니에요. 책을 읽거나 풀영상을 보면 아실 수 있을겁니다.
장자의 시적 웅변(실연당한 시인) vs 기독교적 리얼리즘(다각형은 원이 아니다)
"바다 안에 여전히 머물러 있는 나머지 곤이?"
현전하는 것-제가 볼 때 이것은 내다보기- 자체는 가능적 현실성입니다. 내다보는 현실성이 우연한 기회에 부정될 때 사람은 기존의 가치 체계에 의문을 갖게 됩니다. 그리고 대상 세계를 고착화시키지 않고 가능적 현실성의 현전으로 보게 됩니다. 이는 쉽게 말해서 7살짜리 어린아이에게서는 아이슈타인, 일론머스크, 빈라덴, 유영철 등 무엇이든 나타날 수 있는 것이죠. 물론 이것은 아리스토텔레스의 확고부동한
가지계의 씨앗(유한성)은 아닐 것입니다. 반대로 무한한 가능성이죠. 이 무한한 가능성은 현전하는 것 자체로 보기-있는 그대로 보기, 무상- 입니다. 비현실성이죠. 이것을 보다 명료하게 하기 위해서는 세계 포기적 태도가 일관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현실적으로 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이 세계포기적 태도는 도리어 세계의 새로운 질서를 위한 끌어당김 - 희생염소, 가치 전도를 위한 폭력- 으로 사회적 힘을 나타냅니다. 이런 점에서 무한한 가능성의 무차별화의 차이는 기존 사회를 초월할 수 없다고 봅니다. 대자적 존재는 즉자적 존재의 터 위에 군림할 수밖에 없는데, 이것은 인간이 유한성인 탓이겠습니다. 유한성의 불가능성은 현전하는 것-가능적 현실성- 을 통하여 가닿기 위한 힘을 발휘합니다. 또는 수동적으로 그렇게 내몰립니다. 이 과정에서 차이는 유한성의 불가능성으로 다채로운 세계의 빛(실재들)을 감지하지만 그것이 무한성 그 자체가 아니기에 어떤 애수(여전한 어떤 균열)를 느낍니다. 그런데 이 애수가 오히려 주체를 독려하여 영웅이 될 수 없는 어떤 실연 또는 절망으로 유한성의 무한한 가능성(불가능성)을 웅변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웅변에 현실적 폭력은 은폐되어 있습니다. 이를테면 강신주 선생의 예화에서 "바다 안에 여전히 머물러 있는 나머지 곤이?들" 말입니다.
ruclips.net/user/shorts47e8U6hwiT0?si=SVxh_9ZFItYr6ZUz
나.그냥 메추라기로살면 안돼나요
자발적 노예를 벗어나라
드럽게 크고 소듕한
나 🫶
백합화
가능성과 불가능성의 차이를, 무엇이 선행하는지 구분하십쇼.
@@명탐정꿍꿍이 God bless you
무엇이 선행합니까? 선생님?
@@silvakim173
현전하는 것-제가 볼 때 이것은 내다보기- 자체는 가능적 현실성입니다. 내다보는 현실성이 우연한 기회에 부정될 때 사람은 기존의 가치 체계에 의문을 갖게 됩니다. 그리고 대상 세계를 고착화시키지 않고 가능적 현실성의 현전으로 보게 됩니다. 이는 쉽게 말해서 7살짜리 어린아이에게서는 아이슈타인, 일론머스크, 빈라덴, 유영철 등 무엇이든 나타날 수 있는 것이죠. 물론 이것은 아리스토텔레스의 확고부동한
가지계의 씨앗(유한성)은 아닐 것입니다. 반대로 무한한 가능성이죠. 이 무한한 가능성은 현전하는 것 자체로 보기-있는 그대로 보기, 무상- 입니다. 비현실성이죠. 이것을 보다 명료하게 하기 위해서는 세계 포기적 태도가 일관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현실적으로 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이 세계포기적 태도는 도리어 세계의 새로운 질서를 위한 끌어당김 - 희생염소, 가치 전도를 위한 폭력- 으로 사회적 힘을 나타냅니다. 이런 점에서 무한한 가능성의 무차별화의 차이는 기존 사회를 초월할 수 없다고 봅니다. 대자적 존재는 즉자적 존재의 터 위에 군림할 수밖에 없는데, 이것은 인간이 유한성인 탓이겠습니다. 유한성의 불가능성은 현전하는 것-가능적 현실성- 을 통하여 가닿기 위한 힘을 발휘합니다. 또는 수동적으로 그렇게 내몰립니다. 이 과정에서 차이는 유한성의 불가능성으로 다채로운 세계의 빛(실재들)을 감지하지만 그것이 무한성 그 자체가 아니기에 어떤 애수(여전한 어떤 균열)를 느낍니다. 그런데 이 애수가 오히려 주체를 독려하여 영웅이 될 수 없는 어떤 실연 또는 절망으로 유한성의 무한한 가능성(불가능성)을 웅변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웅변에 현실적 폭력은 은폐되어 있습니다. 이를테면 강신주 선생의 예화에서 "바다 안에 여전히 머물러 있는 나머지 곤이?들" 말입니다.
어찌지나치나
오랫만에 뵙는데 왜이렇게 마르셨는지요?
다이어트 하신거 아닐까요?
어떤 깨달음이 있으셨던건 아니실까요?
그래도 얼마전보단 조금 살찌신듯하네요
@@user-jcvzmxkfjzskdeoc 아~네~
사연이 있으시지 싶습니다
우리 선생님 다시 돌아오셨네 살만 좀 더 찌시면 진짜로 크아 더 혼내주세요! 하앍
지금 샤프하고 되게 보기좋으신데
살찌니 마니 좀 쓸데없는 소리좀 하지 마세요
@@bear_clay제가 하고 싶은 말이라 공감 박고 가요. 제발 남의 외모에는 관심을 끄세요. 정말 쓸데없고 무례한 짓입니다.
이 뭔개ㅅㄹ...
살 쪘다는 말만 기분 나쁘고 무례한 게 아니에요. 말랐다는 듯한 살찌라는 말도 스트레스가 될 수 있어요😢
소중이가 크다는줄
MZ세대는 자본에 찌들어서
돈잇음 기세당당하고
돈없음 시무룩해
이 분 가족분들이 암으로 돌아가시지 않았나요?
이전 영상과 다르게 말도 안되게 살이 뻐지셨는데 정밀검진 필요해보이네요
중년 이후네 계획적인 다이어트 아닌 이상 급격한 체중 감소는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겁니다.
가족까지 건드리네 이 미친 가족이 거기서 왜 나와 니 가족이나 신경 써라 말을 들어야지 왜 체중에 꽂혀서는 ㅉㅉ
다 아는얘기예요
뭔 황당한 소리를 지껄여 ㅋㅋ
누가 아름다운데?
구독취소..존나 하수임. 그냥 다수로 영입되는게 목표인 지극히 가련한 인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