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그땐 그런 시절이었다. 그땐 자기들도 어쩔 수 없었다. 시대가 다 그렇게 우리가 그러도록 만들었다. 그러지 않는 교사들만 욕먹었다.등등.. 핑계도 가지각색입니다. 교무실에서 동료교사로 만나서 그때 얘기하면 스승의 은혜를 저버리는거니~ 그런 니가 어찌 교사가 됐냐니 저만 욕하는 현실..
1974년생입니다. 빠퀴님 영상은 언제나 재밌고, 그 때의 향수를 느끼게 해줍니다. 많은 생각이 드네요~1930년생 저희 아버지가 나중에 국가유공자가 되셨지만, 어릴때부터 갖은 전쟁에 상사로써 총알을 3방 맞으시고, 한 알은 빼냈지만, 몸 속 깊숙히 있던..그 때의 의료기술로는 남은 총알 2알을 빼내질 못했죠. 아버지는 제가 고1때 돌아가셨어요..슬프지만 기쁜 추억도 많은 영상입니다. 빠퀴님 영상 덕분에 많은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항상 재밌게 잘 보고 있어요~
92년생인데 영상에서 나온거만큼 세세하게 조사하진 않았으나 초등학교 다닐적엔 집평수 방갯수 형제수 컴퓨터 유무 부모님직업 부모님학력 집안형편 이런걸 조사한다는 명목으로 손을 들라고 하거나 적어서 내기도 했던게 생각나네요 고등학교때는 그나마 좀 덜했지만 부모님직업은 그렇다쳐도 부모님 학력이나 집평수 방갯수는 왜 궁금했는지 의문입니다.....
83년생과 같이학교 다녔습니다. 지역 특성 + 신생학교 여서 인근 중학교에 선배정 되는 조건으로 5학년때 전학갔습니다. 전학간 학교에서 5학년때는 2개 학급에 1반에 80여명, 6학년때는 4개 학급에 한반에 70여명이었습니다. 6학년 담임선생님께서 가위바위보를 잘해서 전학생을 다른반으로 보냈다는 말에 애들이 환호 할 정도 였습니다. 전학간 학교는 전학 당시 2층이였는데 5학년1학기가 마칠무렵에서 3층으로 5학년 2학기가 마칠무렵 4층으로 6학년때 5층올라가는거 아니냐 했는데 4층이 한계라서 옆으로 늘어났습니다. 수업시간에 그라인더와 드릴소리 들으며 공부했습니다. 졸업 전날 까지 전학온 애들이 있어서 얼굴도 모르는 동창도 있습니다.
우리 아버지 국민학교 다닐 때 육성회비 봉투 받으면 12개월치(당시 월 300원, 12개월 3,600원) 한번에 다내고 할머니 치맛바람 대단하셔서 선생님 촌지를 한달치 월급에 해당하는 돈 드리고 (70년대 촌지 10만원) 담임이 여선생님이면 해외갔다고 들어 올 때 화장품 사서 선물 드리고, 남선생님이면 양담배나 양주로 선물했다고 함
지역마다 다를껍니다. 제가 살던 지역처럼 갑자기 인구가 유입되는 신도시 지역은 학교 짓는 속도가 못 따라왔거든요. 저는 이사 안가고도 국민학교를 3번이나 옮겼습니다. 국민학교가 초등학교 될때는 45명까지 떨어졌습니다. 인구가 빠져나가는 시골은 오히려 널널했을꺼라 생각됩니다.
사친회비는 몰라도 육성회비는 전혀 부담스럽지 않았어요. 못 내는 사람도 못 낼 이유도 없었거든요. 85년 기준 한달에 500~600원 정도였네요. 짜장면값이랑 같아요. 그것도 못 내면 공책이랑 연필도 못 사겠죠. 못 낸 아이, 다그치는 선생 본 적도 없고 진짜 형편상 못 낸다고 해서 불이익을 주지도 않았어요. 수업료가 아니니까요. 다만 당시엔 초등까지 의무교육이라 싫어도 학교에 보내야 했는데 그러려면 국가가 교육비 전체를 부담해야 한다는 원칙은 있었으니까 육성회비도 없애야 한다는 방향성이 논의되었고 그러다 보니 육성회비에 대한 기억이 별로 안 좋아진 거죠.
옛날 부터 10여년 전까지 저 기간동안 애들 두들겨패는 일부 이상한 선생들 때문에 지금 교권이 추락하고 학부모 갑X이 일어나고 있는데 조사 해서 저 당시 이상한 선생들 연금 몰수 시켜야됩니다...
원래 그땐 그런 시절이었다. 그땐 자기들도 어쩔 수 없었다. 시대가 다 그렇게 우리가 그러도록 만들었다. 그러지 않는 교사들만 욕먹었다.등등..
핑계도 가지각색입니다. 교무실에서 동료교사로 만나서 그때 얘기하면 스승의 은혜를 저버리는거니~ 그런 니가 어찌 교사가 됐냐니
저만 욕하는 현실..
허이참! 나는 잘못했을때 엉덩이 빳따맞으며 지냈지만 그때 선생님들 전혀 원망안하는데 허이참! 그대가 과민반응 하는거요😂😂😂
@@雪山飛虎-g5h 그런선생들이 정작 교장 교감승진해서 젊은교사들한테는 학생 민원들어오면 내가 학생존중하라고 하지않았냐? 부모님께 사과하고 대충 넘어가자고 개지랄을 떤다는게 함정입니다. 그걸 시대가 그리 변해온걸 자기들이 어쩌겠냐고 한심한 변명만 늘어놓고있고요~ 그런걸 선생님이 너에대한 사랑이고 관심이라 생각할수있을때 니가 참교사가 될수있다나 뭐라나 ㅡ
1974년생입니다. 빠퀴님 영상은 언제나 재밌고, 그 때의 향수를 느끼게 해줍니다. 많은 생각이 드네요~1930년생 저희 아버지가 나중에 국가유공자가 되셨지만, 어릴때부터 갖은 전쟁에 상사로써 총알을 3방 맞으시고, 한 알은 빼냈지만, 몸 속 깊숙히 있던..그 때의 의료기술로는 남은 총알 2알을 빼내질 못했죠. 아버지는 제가 고1때 돌아가셨어요..슬프지만 기쁜 추억도 많은 영상입니다.
빠퀴님 영상 덕분에 많은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항상 재밌게 잘 보고 있어요~
4:50 실제로는 1959년부터 초등학교에선 무상교육을 시행한걸로 압니다
저때는 너무 많이 낳아서 문제
요즘은 너무 적게 낳아서 문제
남아선호 사상에 의해 낙태된
여아들만 불쌍하네ㅋ
아 난 8:00 가쿠란 교복이 더 좋아보였는데 😂 더멋지고 학생같고 거기다 남학생은 교복모자까지 모자 멋지던데요 가방도 그렇고요 2004년 중학교 입학하면서 83년도에 그런교복을 왜없에고 86년도부터 왜 교복을 양복처럼 했는지요…..😢 이생각을 하곤했죠 😊 그교복이랑 모자 써보고 싶었죠 중고등학교 시절 내내요 😊 그러자 졸업후 잊다가 드디어 인사동 정독도서관근처에서 교복 전시된걸 채험으로 써볼수 있었죠😂 그거 쓰고 셀카까지 😂
일제강점기 잔재라서 그럴거에요
92년생인데 영상에서 나온거만큼 세세하게 조사하진 않았으나 초등학교 다닐적엔 집평수 방갯수 형제수 컴퓨터 유무 부모님직업 부모님학력 집안형편 이런걸 조사한다는 명목으로 손을 들라고 하거나 적어서 내기도 했던게 생각나네요 고등학교때는 그나마 좀 덜했지만 부모님직업은 그렇다쳐도 부모님 학력이나 집평수 방갯수는 왜 궁금했는지 의문입니다.....
육성회비라는 학교에내는 교육비
선정때문아닐까요?
나다닐땐 잘사는집아이는 600원
다음 450원 300원등 구분해서낸걸로 기억됨니다
집에 TV 라디오 있는지도 적어냈어요
2:43 와... 이런것들이 우리나라는 60년대지민 북한은 지금 현재도 하고 있다능...😮 징짜 놀랍다...;;; 사람 인분도학교에 가져가야한다던데...;;;;;;우리아빠 국민학교때 들었던건데 와우
83년생과 같이학교 다녔습니다. 지역 특성 + 신생학교 여서 인근 중학교에 선배정 되는 조건으로 5학년때 전학갔습니다. 전학간 학교에서 5학년때는 2개 학급에 1반에 80여명, 6학년때는 4개 학급에 한반에 70여명이었습니다. 6학년 담임선생님께서 가위바위보를 잘해서 전학생을 다른반으로 보냈다는 말에 애들이 환호 할 정도 였습니다. 전학간 학교는 전학 당시 2층이였는데 5학년1학기가 마칠무렵에서 3층으로 5학년 2학기가 마칠무렵 4층으로 6학년때 5층올라가는거 아니냐 했는데 4층이 한계라서 옆으로 늘어났습니다. 수업시간에 그라인더와 드릴소리 들으며 공부했습니다. 졸업 전날 까지 전학온 애들이 있어서 얼굴도 모르는 동창도 있습니다.
87년생 아재입니다. 초딩시절 한 반에 40~45명이었고 반은 11~14반까지 있었던 걸로 기억합니당. 중고딩때는 한 반에 35~40명씩 10반까지 있었던 것 같습니당.
4:12 쥐꼬리 학교 소리 듣는 게 좋은 거야 나쁜 거야 ㅋㅋㅋㅋㅋㅋㅋ
너무나 효과적이었던 60,70,80년대 출산 정책... 지금까지 효과가 있다고 한다...
저때 학교다녔던 세대들이 ptsd 제대로 겪어서 내 자식만큼은 콩나물교실에 보내지 말자는 뜻으로 적게 낳기 시작한듯..
60년대 학교 모습이면 사실상 조부모님 세대네요...
60년대가 조부모면 최소한 초등학생? 난 엄마가 59년생이라
조부모님면 2024년 기준에 할머니,할아버지 정도??
저희 큰이모 56~58년생이라
저희 엄마는 53년생.. 초등학교 졸업만 하고 말았대여
@@박세준-d2tㄴㄴ 조부모가 40년대생이여도 60년대에 학창시절 겪음
우리 아빠시대 인구가 많았던 걸 확 체감한 순간, 아빠 기계공고 졸업앨범에 3학년 21반이라고 써 있는 거 봤을때 대충 20명이라 치면 한 학년이 400명😨
저 정도까지는 아니었어도 8,90년대 학교도 애들이 꽉 차서 공부했지
오전 오후반에 반 번호가 50번이 넘었고 .. 진짜 예날 이야기네 ㅋㅋㅋ
전쟁중에 태어나 저렇게 컸다, 선생들의 구타가 제일생각난다, 그놈의 사친회비,
우리 아버지 국민학교 다닐 때 육성회비 봉투 받으면 12개월치(당시 월 300원, 12개월 3,600원) 한번에 다내고
할머니 치맛바람 대단하셔서 선생님 촌지를 한달치 월급에 해당하는 돈 드리고 (70년대 촌지 10만원)
담임이 여선생님이면 해외갔다고 들어 올 때 화장품 사서 선물 드리고, 남선생님이면 양담배나 양주로 선물했다고 함
한반에 140명 ~캬
학교종 하면 어릴적 아이들 사이에서 떠돌았던 우스개소리가 생각남
학교에 아이를 찾아온 엄마가 "얘 종철아!!"하니까 졸던 선생님이 깜짝 놀라 학교종을 쳤다는 이야기.
요새 출산율이 낮아진 이유를 알겠다.. 저때 학교다닌 세대들이 ptsd 트라우마 때문에 애를 많이 낳고 싶었겠냐 싶다...
80년대 후반에 국민학교=초등학교를 다녔었는데 그때는 한반에 육십여명 정도 있었다는...
한 반에 140명ㄷㄷ
저 분들이 현 203040 부모님들이라니......저희 아부지도 50년대 어머니는 60년대생이심. ㅎㅎ
새신발 분실... 그건 사실상 훔쳐서 신고 간 것이겠죠
그 거지근성이 지금까지 다른형태로 쭉 이어진 것 같아 한편으론 씁쓸합니다
트릭스터m 좋아하는 미코 프사
기영이는 정말 잘 사는 아이였구나ㅋㅋ
어릴때 석탄가지러 창고가던 장면만 아직도 제 머리속에 있네요ㅎ
저 당시 중고등학생분들이 지금은 70대 중후반 되죠
84년생입니다. 초딩 한반이 50명이었습니다.
88년생인데 50명까지 간 적은 없었네요. 42명~45명 정도. 55년/59년생 저희 부모님한테는 아주 쾌적한 환경인 별세계였을 듯...
저두 84년생 저희동넨 초딩때 한반 평균 35명 이었어요 ㅋㅋ
지역마다 다를껍니다. 제가 살던 지역처럼 갑자기 인구가 유입되는 신도시 지역은 학교 짓는 속도가 못 따라왔거든요. 저는 이사 안가고도 국민학교를 3번이나 옮겼습니다. 국민학교가 초등학교 될때는 45명까지 떨어졌습니다. 인구가 빠져나가는 시골은 오히려 널널했을꺼라 생각됩니다.
항상잘보고 갑니다 1등출석행복한 일요일 보내세욤`(*>﹏﹏
2000년대까지도 부모님 월급 얼마인지 적어냈던거로 기억하는데 이제는 안그러겠죠?
이걸 보니까 기영이가 ㄹㅇ중산층인게 느껴짐
예전 학교라면 초중고..싹다 깡패 선생님들만 기억난다.어찌나 폭력이 심했던지 학교가기 싫은날도 있었음..그리고 보면 학교마다 다들 미틴개라는 선생님들 있지 안았나?
미친개 독사 아니면 대부분 체육교사는 호랑이
기억나는 선생님들 있나요?
저는 초딩 2학년때 확대기 들고있는 나이많은 선생님 기억나네요 한.. 70대정도 같아요
저당시 애가 너무 많다보니 사람의 가치가 낮아서 저런식으로 된거지...
쥐: 내 젊었을땐 정말 끔찍했었지 주위에 꼬랑지 없는 친구들이 수두룩했었어... 한국인들은 참 악날해~
햄스터 키우고 싶다니까 아빠가 쥐잡아서 키우라고 옛날 쥐 많이 잡았다고 쥐 잡아준다고
절때로 저시대로 돌아가지않기 위해서라도 저출산은 유지되어야함 1명대로
일단 앞으로 출산률이 높아서 문제 생길일은 없을듯...
@@handycraft8070출산률 높아졌나요??
제일 궁금한게
만약 저출산으로 안이어지고 오히려 출산율이 지금까지 쭈욱 올랐으면 지금 즈음 어땠을까?
@@seaweeDumb 저때 ptsd 겪은 세대들이 잘도 많이나 낳을려고 할까요?
4:38 여담으로, 미국 뉴욕은 아직도 쥐가 돌아다니죠.
4:48 헌법은 국민의 의사를 묻는 국민 투표로 바꾸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한국의 쾌도홍길동 신창원이 육성회비로 인해 선생님한테 많이 혼났었지
저 시대엔 선생들이 곧 법이자 통치였죠. 그래서 학생들 지네 기분과 생각, 마음대로 패고 무시하고 차별하고... 게다가 쥐잡기 운동으로 쥐약을 너무 살포하는 바람에 그나마 우리 땅에 남아있던 표범, 늑대, 여우가 멸종했죠.
육성회비 못내면 바로 교실에서 쫒겨나서 복도에서 책펴고 공부했습니다.
그리고 지나가는 선생님마다 꿀밤 먹이고 갔던 시절😢😢😢
60년대 교복 부럽다 약간 간지남
요즘은 저출산이고 사람들이 애기를 안낳아서 학교가 패지되는데도많은데 옛날에는 애 낳는게 풍년이네
저때 학교다닌 어르신 세대들이 ptsd 트라우마 제대로 겪어서 애를 안낳기 시작했다는게 학계의 정설이죠...
우리때도 오전반 오후반있었는데
만화 검정고무신이 떠오른다.
우리부모님 개고생하셧네ㅠㅠ
검정고무신에 나오는 거 다 나오네
바리깡 04년 05년 중1 중2때도 당했습니다
사친회비는 몰라도 육성회비는 전혀 부담스럽지 않았어요. 못 내는 사람도 못 낼 이유도 없었거든요. 85년 기준 한달에 500~600원 정도였네요. 짜장면값이랑 같아요. 그것도 못 내면 공책이랑 연필도 못 사겠죠. 못 낸 아이, 다그치는 선생 본 적도 없고 진짜 형편상 못 낸다고 해서 불이익을 주지도 않았어요. 수업료가 아니니까요. 다만 당시엔 초등까지 의무교육이라 싫어도 학교에 보내야 했는데 그러려면 국가가 교육비 전체를 부담해야 한다는 원칙은 있었으니까 육성회비도 없애야 한다는 방향성이 논의되었고 그러다 보니 육성회비에 대한 기억이 별로 안 좋아진 거죠.
70년대 육성회비는 부담이었어요 일년내내 못내는 애들도 많았어요
누군가에게는 부담일수있는겁니다. 획일화 금지
6학년때 육성회비 못 냈다고 선생님한테 혼 나던 친구를 본적이 있었어요 점심 도시락도 못 싸오던 친구였는데요...
이렇게 편협하고 옹졸한 마인드로 중년이 되셨으니 인생 헛사셨구만 ㅋㅋ
영상 제대로 본 거 맞나ㅋㅋㅋㅋ
하 그시절이 새록새록 하네.
대부분 이 연탄때던시절.
덮어놓고 낳다보면 거지꼴을 못면한다
지금이 낫네요
저기서 권위에 복종하고 사람 등급나누는것을 배우겠죠
지금도 회사에서는 권위에 복종하고 사람등급 나누는것을 배우는데
1762삐?
재밌다
(아직 안봄)
딱 검정고무신 내용이네
으으으, 쥐꼬리...
1빠
2
6빠
한 반에 140명 ㄷ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