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자전] 계유정난 공신이 되었지만 주색을 즐기다 요절한 익현군(翼峴君) 이관(李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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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Опубликовано: 18 дек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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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현군(翼峴君) 이관(李璭)은 세종의 14남이자 서7남인데 어머니 신빈 김씨에게는 4남이 되며 세종 19년인 1437년에 7세의 나이로 익현군으로 책봉되었습니다.
어려서부터 자질이 범상치 않고 학문이 출중해 세종은 총애를 했는데 1455년 세조 등극 때 계양군과 같이 공을 세워 공신열에 들어 수충위사 동덕 좌익 1등공신이 되었습니다.
부인은 평양조씨로 첨지중추원사 찬성 철산의 딸이며 김제군부인에 봉해졌고, 1남 1녀를 두었는데 아들 지(漬)는 괴산군에 봉해졌고 괴산군이 후사가 없어 의창군 공의 손 사산군의 차남 해를 입계해 화산군에 봉했습니다.
화산군은 사직령 송호의 딸인 여흥현부인과의 사이에 3남 1녀를 두었는데 장남은 성안정 정이며 차남은 달성도정 제이고, 3남은 풍성령 지입니다.
다른 형제들과 마찬가지로 계유정난 당시 수양대군의 편에서 도와 수양대군이 세조로 즉위한 후 좌익공신 1등에 책록되었는데 세조는 익현군을 매우 아껴 단서철권과 토전장획을 주고 총애했다고 합니다.
세조는 단종을 보호하거나 단종복위를 도모하다 처벌받은 이들의 가산을 적몰하고, 이를 종친과 공신에게 나누어 주었는데, 익현군도 여러 차례 ‘역적(?)’의 집과 토지 등을 하사받았습니다.
1456년 3월 금성대군의 여흥에 있는 집과 토지를 하사받아 익현군 이곤이 세조가 계유정난을 일으키고 왕위에 오르는 데 공을 세웠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보다 앞서 1454년 8월 동복형 계양군 이증이 영천위 윤사로와 함께 수양대군에게, 금성대군이 의심스럽다고 밀고할 때 수춘군과 익현군의 말을 인용해 이것도 익현군이 수양대군을 도운 결과가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