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한국사 I 096 독립협회, 만민공동회와 이완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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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Опубликовано: 5 фев 2025
  • 1898년 3월 5일자 독립신문에는 독립협회 2대 회장에 선출된 이완용의 근황이 실려 있다. 이완용은 창립위원장까지 맡아 독립협회 결성을 주도한 핵심 인물이었다. 국제정세가 요동치던 1896년 7월, 이완용 등은 독립협회를 조직했다. 그리고 조선이 자주독립국임을 알리기
    위해 청 사신을 맞이하던 영은문이 헐고 그 자리에 독립문을 세운다. 독립문 주춧돌을 놓는 정초식 행사에는 이완용의 이름으로 초대한 5,000여 명이 참석했다.
    1898년 3월 11일, 이완용은 전북관찰사로 발령을 받았다. 좌천이었다. 독립협회가 주관한 만민공동회가 열린 다음날이었다. 독립신문에는 만민공동회가 열린 첫날, 러시아의 내정간섭을 반대하는 대중토론이 벌어졌다는 사설이 실렸다. 만민공동회에 대한 대중적 열기가 높아지자 애국계몽단체로 출발한 독립협회의 성격도 점점 달라졌다. 이완용의 의도와는 달리 정부의 잘못된 정책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이완용이 처음으로 마주친 정치적 위기였다. 이완용은 전북관찰사로 부임한 지 닷새 만에 직무태만으로 감봉됐다. 공금 횡령죄로 파직의 위기를 맞기도 했다. 급기야 독립협회에서도 제명됐다.
    #독립협회#2대회장 #이완용#독립문건설#만민공동회 #정부정책비판목소리

Комментарии • 5

  • @poang45
    @poang45 5 лет назад +8

    개화기때만 해도 명석한 재능을 보였고 을사늑약이후에도 행보를 보면 세계의 정세와 판도를 볼 줄 아는 안목이 있었다. 자신을 활용할 줄 아는 제대로된 리더와 시대를 만났더라면 큰일을 할 사람이었지만 그러지 못하였고 재능을 반대로 썻으니...

  • @종필천
    @종필천 2 года назад +2

    이것이 국왕이라니! 거짓말을 능사로 하는 배신적인 어떤 비겁자라도 대한의 대황제보다 더 천박한 일을 하지 못할 것이다 - 윤치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