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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버드 미술관 전문가가 말 한 한국인들이 오래전부터 이어온 독특한 특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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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Опубликовано: 9 окт 2022
  • #한국 #백의민족 #강의
    미국의 한 미술관에서 한국 역사의 흐름에 따른 도자기 강의가 있었습니다.
    강의를 하던 동양미술 전문가가 한국인들은 도자기와 의복에도
    한국의 얼이 깃들어 있다며 설명하기 시작하는데요
    어떤 강의 일 지 같이 보시죠

Комментарии • 60

  • @ftc7777
    @ftc7777 Год назад +28

    우리만 옷에 흰색염료를 썼던이유... 정말 간단하다... 동아시아에 어떤나라도 흰색염료를 만들 기술이 없었거든...

  • @migik3241
    @migik3241 Год назад +21

    그리고 흰색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제사장 계급이 입었던 색깔이죠 그리고 종교에 대해 좀더 열린 근본적인 가치와 정신을 추구하던 전통이 있죠

  • @sjk3898
    @sjk3898 Год назад +13

    백의 민족이죠.

  • @highfive2580
    @highfive2580 Год назад +4

    하얗게 입기 위한 노동력이 엄청났다고 함. 나중에도 좋은날 멋부린 옷이 새하얀 풀먹인 한복.

  • @yaeilik0760
    @yaeilik0760 Год назад +41

    심지어 강아지도 흰색 개의 수요가 제일 높아요.
    그리고 오해가 있는데-일제의 악의적 선전탓도 있고- 퓨어한 흰색은 염색으로 구현하기 쉽지 않습니다. 염색 기술이 떨어져서 색깔옷을 안 입은게 아니라 염색하기도 어렵고 관리도 까다로운 흰색옷을 굳이 입은게 한민족이에요
    왜냐면 걍 그게 좋으니까....🫠

  • @findingnemo9535
    @findingnemo9535 Год назад +8

    '동이전'에는
    "나라에서는 옷을 입을 때 흰색을 숭상하여, 흰색 포목으로 만든 통 큰 소매의 도포와 바지를 입고 가죽신을 신는다."

  • @rjsgmlsmsckdsu
    @rjsgmlsmsckdsu Год назад +27

    드라마에서 서민들은 거의 찟어지고 낡은 누런 옷 입혀놨던데, 우리 조상들은 희고 흰 옷에 바느질도 정교하게 한 옷을 입었다
    걸레쪽 같은 옷 입혀서 드라마 촬영 하지 마라

  • @miclelee4086
    @miclelee4086 Год назад +18

    한국 도자기 역사는 청자에서 분청사기를 거쳐 백자로 넘어갑니다. 자연스런 현상입니다.
    백자에도 청화백자 같은 코발트빛 그림이 그려진 백자 등 좀더 다양한 백자류가 조선 중기 이후 등장합니다.

  • @mnm-q9u
    @mnm-q9u Год назад +11

    3:31 this taste for austerity in the Joseon...이건 소박한 취향이 아니라 엄격엄숙함, 정제되고 간결함, 절제적 미 등으로 이해해야 할 듯 합니다. 유교정신의 표현이죠. 가끔 외국인들이 이 조선시대 양식에서 미니멀리즘을 느낀다고 하는걸 봤습니다.

  • @user-tr3gt7cm7w
    @user-tr3gt7cm7w Год назад +14

    백의민족ㅡ 우리민족은 북두칠성을 숭배해왔고 은하수를 상징하는 백색을 오래전부터 높게생각했고 늘 입어왔다 너무 흰색만입는다고 고려시대부터 나라에서 흰옷금지령까지 내릴지경이었다 그래도 늘 흰옷을 즐겨입었는데 1960년대 사진을보니 한복도 흰색한복을 많이들 입었던 모습을 봄 ㅎ 나도 흰색파 울차 도 흰색

  • @user-yx1ut8zk6k
    @user-yx1ut8zk6k Год назад +7

    자연의 흰색은 아이보리 라고 부르는 상아색이다
    명주를 실로 잣게 되면 순백색이 나오지 않음 목화도 마찬가지고
    흰색은 고도화된 염료 기술이 없으면 나올 수 없는 색이다

  • @user-ok3qb7py5k
    @user-ok3qb7py5k Год назад

    흰색은 빛을 의미하는 색이기도 합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고대로부터 흰 옷을 입는 이유는
    무엇보다도 우리가 하늘의 자손, 배달민족 백의의 민족이라는 것을
    드러내기 위한 것이라고 합니다.

  • @user-mk1rb4nb9m
    @user-mk1rb4nb9m Год назад +10

    원래 염색보다 표백이 더 힘든기술임

  • @user-kk9kh1ib8w
    @user-kk9kh1ib8w Год назад +14

    실제로 외국인들이 한국에 오면
    도로에 흰색, 검정, 회색, 은색 차들 밖에 없어서 놀란다고 합니다. 😊

  • @user-qs7fb9mc2f
    @user-qs7fb9mc2f Год назад +12

    재밌게 보았어요 역사책에 도자기의 우수성 에 대해 나오지만 와닿지않았는데 이제 이해하게 되네요

  • @CJ-Soloist
    @CJ-Soloist Год назад +8

    단순하게 생각해도
    흰색 유지하는게 얼마나 빡센데

  • @user-ix2qe6sc6f
    @user-ix2qe6sc6f Год назад +3

    흰티셔스가 얼마나 관리하기 힘든데…..

  • @hjw5279
    @hjw5279 Год назад +28

    예전에 미학시간에 교수님이 우리나라 자연환경에 색이 많아서(가을기준으로 파란하늘 노란황금색 논 빨간단풍 등등) 의복색이 흰색으로 오히려 단순화했다고 말씀하셨던 생각이 나네요.

  • @user-gx5sf4fm3h
    @user-gx5sf4fm3h Год назад +4

    무채색을 좋아하는 한민족의 특징은 사라지지 않는다. 길에 다니는 차를 보면 거의 다 무채색이다.

  • @jujahyung
    @jujahyung Год назад +6

    관세음보살님 그림의 흰옷은 백의 관음을 나타내는 그림이에요 관세음보살님은 항상 흰옷을 입고 나타난다는 말이 있고 고려는 불심 깊은 나라였으니 흰색이 유행한게 아닐까 하는 그런 생각해봤어요

  • @junichoi7743
    @junichoi7743 Год назад +7

    잊지말자! 제발!
    오늘날 일부 일본이 한류를 받아들이고 좋아한다한들
    이것과는 무관한 일이지요
    그리고 누가 좋아해 달라고 했나요?
    일본과 가까이해서 좋았던 역사가 없음! 중국도 그렇고
    오히려 멀리해야하는 한반도구만!
    지극히 갠적인생각인데 남북통일이 빨리 되었음 좋겠어!
    경쟁난의 격차도 얼마든 극복할수 있으리라 믿어요

    • @ahh1892
      @ahh1892 Год назад +2

      옳소~!!!!!

  • @user-zc1oj1fn6f
    @user-zc1oj1fn6f Год назад +7

    사람들이 고려청자의 화려한 무늬기법때문에 더 고도의기술이 들어갔다 흔히들 착각하는데 순백색을 내려면 더 높은 가마니 온도를 유지해야되기 때문에 더 어렵다. 즉 백자가 청자보다 더 발달된 도자기인데 단지 무늬기법때문에 그런 취급을 받는건 억울한일. 백자에 화려한 무늬는 어울리지도 않아.

  • @user-vf7ei2zy7p
    @user-vf7ei2zy7p Год назад +11

    그렇읍니다 우리민족이 입은 흰옷은 대한민국
    의 정채성을 나타내는것 입디다

  • @naiadk
    @naiadk Год назад

    정체성?한국 모든 전통적이고 순수한 고유의 양식은 지금도 얼마나 천대받고있나?모든 풍속과 양식은 유행은 쓰레기라도 무조건 서구것으로 대체해야 된다는 의무감

  • @laputau3816
    @laputau3816 Год назад +6

    왕의 나라인 사대주의 조선 보다 황제국가였던 고려시대의 화려함과 기개를 우리는 다시 계승 되어야 한다.

    • @migik3241
      @migik3241 Год назад +1

      왜요? 전 자유민주 대한민국이 좋은데요
      개인의 독립과 표현과 종교의 자유가 보장된 나라에서 살고 싶어요

    • @laputau3816
      @laputau3816 Год назад +5

      @@migik3241 체제를 말하는게 아니고 문화 양식요. 백의민족으로 미화된 단조로운 조선시대 의복이나 건축물들보다 중국원나라시절 고려양이라 불리고 따라했을만큼 고려시대의 화려하고 세련된 아름다웠던 선진 문화를 되살리자는 취지였습니다.
      조선시대 백자보다 고려청자가 훨씬 우월한건 사실입니다.

    • @-vn1ln
      @-vn1ln Год назад

      그 화려함 속에 백성들 배 곯아 죽지

  • @user-he7by3cy2w
    @user-he7by3cy2w Год назад +3

    도로에 자동차가 흰색 검정색이 절반이 넘는게 누천년 내려 온거군여 ㄷㄷㄷㄷ

  • @naiadk
    @naiadk Год назад

    정말 흰색만 좋아했을까?염색을 하려면 돈이 더 들고 비싸고 노동력이 더 들고 양반이 아닌 자들은 화려한 색의 옷을 못입게 하지 않았을까?

  • @foodandcooking2300
    @foodandcooking2300 Год назад +1

    흰색 맑고 깨끗한 선을 추구

  • @user-gg2qv3ql4z
    @user-gg2qv3ql4z Год назад +7

    충일파가 대통령과 문화체육부장관, 서울시장을 하고 있는 지금 이 순간 나레이터의 지적대로 우리 문화의 정체성을 잃어가는 속도가 가속화될 것으로 우려됨.

  • @user-ro6qb4ru8z
    @user-ro6qb4ru8z Год назад +3

    좋은 영상 잘 봤습니다.
    하지만 6:31 의 자막에서 "일부 우익"이라는 표현은 매우 부적절합니다.
    은근히 우익을 나쁘게 인식할 수 있는 표현이라고 생각합니다("일부 좌익"은 없을까요?).
    차라리 "반국가행위자" 또는 "부(附)일파"라고 하는 것이 가장 적절할 것 같습니다.

  • @user-sh8lg5xd2n
    @user-sh8lg5xd2n Год назад +14

    일본 & 중국 놈들의 ............열등감에 역사 왜곡!!.. ....흰옷 입어 봤으면 알겠지만 관리가 얼마나?....지금도 그런되 이전 시대에 흰옷을 관리 하려면?..( 이런 영상을 많은 국민이 봤으면.)

  • @user-xc5wf3qt8q
    @user-xc5wf3qt8q Год назад +2

    아닌데 고려 귀족 사회이후로 화려함이 없지만 단아함 흰색이 아니라 일반은 더 컬러풀 해졌는데

  • @migik3241
    @migik3241 Год назад +1

    조선시대는 색깔로 계급을 분류했죠
    남녀 결혼 여부 벼슬 등등 하지만 흰색은 계급 없이 누구든 입었죠

  • @user-uy1tx6ld5p
    @user-uy1tx6ld5p Год назад +2

    흰색? '흰'이라 적고, 왜 '힌'이라고 발음할까?
    글자를 '힌'으로 바꾸든지, 발음을 진짜 '흐+인=흰'으로 하든지,
    왜 바로잡지 않는 걸까?

  • @bleee1
    @bleee1 Год назад

    고려에서 조선으로 가면서 기술적으로 퇴색된것은 객관적으로 맞지

  • @holicsoo4431
    @holicsoo4431 Год назад +4

    펌글
    1925년 한참 대륙을 석권하던 시절 왜는 동시에 일본열도에 나라를 세우고 있었다.
    이때 대규모로 대륙 동부지역 사람들이
    유구제국을 그 훨씬 이전 시대에 제압한 것은
    일본열도로 들어가기 위함이었고
    일본열도 자체가
    유구국의 영역에 속하는 땅이었기에
    왜제국은 유구국을 합병한 것이다.
    이때 당시 유구왕국은 환태평양문화권과 조선의 유교문화가 공존하는 나라였다.
    페리제독이 왜에 개항을 요구할 때 먼저 유구국을 거쳤다고 나온다.
    당시까지만 해도 유구국은 독립 국가였다고 페리제독은 증언하고 있다.
    왜가 지금의 남경에서 가장먼저 한일이 유구국 침공이었다.
    그 점령은 곧 일본열도로의 진군을 의미하는 것이다.
    유구제도를 이용해
    일본열도로 들어가게 되는 통로가 열리고
    이때 일본열도에 본격적으로 진출하여 토착민들을 포섭 제압하는 과정에서
    일본열도의 사무라이 집단과의 전쟁을 묘사한 사건이
    ‘라스트 사무라이’의 영화 내용이다.
    대륙의 근대화된 왜 제국군과,
    아직 활 쏘고 칼 휘두르는 전쟁문화를 가진
    일본열도 토착민들을 제압하는 과정을 그린 것으로서
    결코 근대화된 왜 제국군은 일본열도에서 자생한 군대가 아니다.
    이 왜 제국군들은
    복건성 일대에서 발흥하여 대만에서도 호응을 하여
    이것이
    왜 제국의 근간이 되었고,
    이때 산동성의 왜 세력은 없어지게 되었다.
    산동성의 왜는
    임진왜란 이후 토요토미 가문이 덕천가문에 의해 붕괴되어
    왜의 중심지는 남경 덕천가문의 중심지로 옮겨지고
    산동성의 왜 세력은 거의 없어지고
    조선의 영역으로 넘어가게 된다.
    덕천가강이 왜 이렇게 했을까?
    덕천가강은 조선의 충실한 신하였다.
    그래서 임진왜란 때도 군대를 보내지 않았다.
    자신의 중심지였던 남경을 에도라고 발음하는 것도 현대 일본어이고
    당시 강도 江都라 불린 지역이 이 남경이었다.
    1912년 지금의 북경에 중화민국이 들어서고
    중화민국의 남쪽수도를 남경이라고 지칭할 때
    일본열도로 아주 일본이 옮겨졌다.
    에도막부의 에도는 오도吳都에서 나왔으며
    고또江都와 에도吳都를 같이 썼다.
    오나라수도가 에도이며
    왜는 오나라를 기반으로 한 나라였고
    이들이 역사상의 왜이며 왜였고
    왜 지역을 침공한 동아시아 바다를 떠돌아다니던 해적들이
    왜구들이었으며
    이들을 제압하고 다스리라는 뜻으로
    막부에게 평남대장군이라는 직함을 조선에서는 보냈던 것이며,
    이 직함 하나로 강호 지역을 평정하게 되니
    우리가 중국 무협지에서 강호를 평정했다고 하는 것은
    이 일본장군이
    그 지역 무사들을 제압하고 우두머리가 되어 조선조정에 충성한 것을
    후에 무협지 작가들이 중국의 옷을 입혀서 써낸 소설이다.
    강호를 떠돌았다고 하는 무협지의 이야기는
    미야모토 무사시 등의
    일본무사들의 이야기와 매우 비슷하다.
    강호의 무사들은 왜 무사들이었고
    이것을 일본열도로 옮긴 왜 세력들은
    일본열도를 배경으로 새롭게 각색한 이야기인 것이다.
    이들이 남색을 즐겼다는 기록이
    결국 대륙에서 있었던 남색열풍에 편승한 성 풍조였고
    이 왜의 성 풍조는 후에 일본열도로 옮겨져 역사가 된 것이다.
    당시 대륙 동남부 사람들은
    혼도시를 하고 다녔다는 기록이 있으며
    우리가 알고 있는 그 왜
    사무라이 머리는 대륙남부 사람들의 풍속이었다.
    원래 왜구들은 머리를 산발한 해적들이었다.
    그러나 대륙 왜 사람들은 조선의 풍속을 따라서 상투를 틀었고
    그것을 투구를 쓰는데 편리하게 변발 비슷한 앞머리를 깎아 낸 것이다.
    왜가 대륙에 있었기에 자연스럽게 그런 머리를 했던 것이다.
    왜 무사의 그 상투 머리는
    대륙의 풍속이었고 상투는 조선의 풍속,
    그리고 앞머리를 깎아 버리는 것은
    대륙조선 북쪽 올랑해의 풍속이었다.
    이들이 이런 상투를 잘라버린 것은
    조선을 버리고 서구열강에 들어가겠다고 하는 선언이었으며
    메이지 유신 때 상투를 제거하였다.
    중국에 새로운 혁명정부가(1911년 신해혁명) 들어서자
    메이지정권은
    대륙의 일부지역과 대만을 남겨둔 채
    일본열도에서 본격적으로 일본시대를 열게 된다.
    이 영향으로 대만은 친일국가가 된다.
    대만의 1.21사태는
    이런 친일토착민들이 대륙의 중국정권에 대해 반기를 든 사건이며
    이때 대륙국민당군대는
    학살을 하여 전에 왜인이었던 사람을 제압한다.
    그런 분위기가 남아 있어서 대만사람들이
    비록 대륙식 이름을 가지고 있지만
    그전에는 왜식 이름을 더 많이 가지고 있었고
    지금도 대만은 친일국가이다.
    대만은 유구왕국의 일부였으며
    장개석이 대륙에서 쫓겨 오기 전까지는 왜 땅이었다.
    일본이 패망한 이후
    미국 주도 하에 국민당 정부가 대만에 들어서게 된 것이다.
    이런 배경이 있었기에
    이등휘 총통이 퇴임 후 야스쿠니 신사에 참배를 했던 것이다.

  • @jedoros
    @jedoros Год назад

    청자와 백자의 원조는 중국이고, 시기적으로 고려 청자와 조선 백자를 이어주는, 조선 초기에 만들어진 분청사기가 우리 민족자기라 할 수 있습니다.

  • @gogogo31sion81
    @gogogo31sion81 Год назад +4

    친일매국노들이 압도적으로 많은 지역...아베 2중대 독립군 때려잡았던 경쌍도

  • @insookim3640
    @insookim3640 Год назад

    뭔소리여......? 청자제작기법이 없어져서 못만드는건데 지금껏 청자재현에 많은 도공들이 노력해도 성공 못했어 .안되니까 변한거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