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초(伐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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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Опубликовано: 21 окт 2024
  • 벌초(伐草)
    벌초(伐草)는 조상을 모신 묘에 자란 잡초들을 정리하는 작업을 말한다.
    금초라 부르기도 한다.
    벌초의 기원은 뚜렷하게 밝혀지지 않으나 유교의 관혼상제에서 시제와 묘제를 언급하고 있고, 특히 성리학에서 묘제를 중시하는 부분 등이 있는 점을 고려하면 아마도 대한민국 사회에 유교가 보급되면서 벌초를 하는 관습도 같이 들어온 것이 아닐까 추측하고 있다. 실제 성리학이 보급된 조선시대에는 조상들의 묘에 잡풀이 무성한것 자체도 불효로 인식했다.
    벌초를 하는 시기는 봄, 가을 2번하는 것이 보통으로 봄은 한식, 가을에는 추석 때 벌초를 한다. 허나 가을의 경우 딱히 추석 당일이 아니더라도 추석 몇 주 전에 미리 벌초를 하는 경우가 있다. 벌초의 대상이 되는 묘는 가깝게는 부모와 조부모, 더 올라가면 선산에 모셔진 모든 조상들을 포함하게 된다. 이로 인해 오래 전부터 특정 성씨의 집성촌을 이루고 가문의 선산이 오래된 경우에는 많은 수의 묘를 벌초해야 된다. 그로 인해 보통 여러 가족들이 모여 직계조상의 묘만 분담하는 형태가 일반적이다.
    과거에는 상술했듯 특정 성씨 집단이 집성촌을 이루고 있었고, 보통 3대 이상이 함께 사는 대가족인 경우가 많았으므로 벌초를 하는 것 자체는 크게 문제될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현대 한국 사회에서는 가까운 친척이라 해도 멀리 떨어져 살고 있고, 핵가족화가 진행된 상태라 벌초 자체를 안 할 수는 없는데 또 그렇다고 적은 머릿수로 하기에는 부담스러운 상황이 됐다. 보통은 도시로 떠나지 않고 여전히 해당 지역에 남아있던 문중의 사람들이 벌초를 책임지고, 일가 친척들은 이에 대한 감사를 뜻하는 의미에서 벌초비를 주는 형태가 많았다. 하지만 이것도 1980년대 ~ 90년대 중반까지 이야기이고, 이후로는 시골에 있던 분들도 대부분 늙으신 까닭에 직접 벌초를 못 하게 되자 돈으로 사람을 고용해서 벌초를 맡기는 쪽으로 넘어갔다. 초창기에는 그냥 마을에서 그나마 좀 젊은 사람들한테 술값이나 밥값 좀 쥐어주고 맡기는 형태가 많았으나 전문적으로 하는 벌초를 대행해주는 전문업체도 생겨났고, 코로나19 범유행 이후로는 벌초대행업체에 맡기는 쪽이 많이 늘어났다. 또한 시간이 없어서 벌초할 여유가 없는 사람들도 많아지고 있고 마찬가지로 벌초를 대행해주는 전문 업체를 많이 이용하고 있다고 한다 왕릉 같은 경우는 문화재로 분류되기 때문에 문중에서 벌초를 담당하지 않고 나라에서 일용인부와 공공근로자를 동원해 하고 있다.
    *가을 들판에 서서*
    가을 들판에 서서,
    예초기와 낫,
    갈퀴와 톱,
    형제의 손에 쥐고 조상님께 다가가네.
    잡초는 무성하게 자라났지만,
    우리의 손길로 정성스레 다듬어가네.
    예초기의 소리,
    들판에 울려 퍼지며,
    형제의 손길이 바쁘게 움직이네,
    나무 그늘 아래,
    밤나무가 지켜보는 가운데.
    갈구리를 끌며,
    풀잎을 모아내는 손길,
    낫으로 잔풀과 나무가지를 정리하며,
    개구리와 사마귀,
    메뚜기가 뛰노는,
    매뚱에서 땀방울을 닦아내네.
    삽으로 땅을 고르고,
    조상의 묘를 정성껏 다듬으며,
    형제의 웃음소리가 들판에 울려 퍼지네,
    이 순간, 우리의 마음이 하나 되어.
    나무 그늘 아래,
    아낙들의 모습이 보이네,
    손수건으로 땀을 닦으며,
    서로의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
    그늘 속에서 피어나는 미소들.
    가을 들판의 모든 순간들이
    한 장의 그림속
    수채화 같은 풍경 펼쳐지네요.
    2024년 9월 8일
    石田 김경배
    *벌초의 향기*
    가을의 문턱에서,
    긴 겨울을 준비하는 땅,
    이른 아침, 벌초의 향기가 가득하다.
    부드러운 풀잎 사이로 스며드는
    솔잎의 향기와 함께,
    지난해의 기억이 녹아들고,
    기억의 구석구석까지 닿는다.
    땅 속 깊이 묻혀 있던
    과거의 흔적들을 살펴보며,
    여름의 끝자락을 느끼고,
    가을의 서늘한 손길을 맞이한다.
    삶과 죽음, 그 경계에서
    조용히 이어지는 손길,
    그 안에서 우리는 다시 만난다,
    벌초의 향기 속에서.
    2024년 9월 8일
    石田 김경배
    *삶의 흔적 속에서*
    세월의 흐름 속에서
    육신은 조용히 변해간다.
    매일의 작은 흔적들이
    사라지는 것과 남는 것 사이를 오간다.
    하얗게 얼룩진 머리카락,
    길어진 주름이 세월을 담고,
    몸 속 깊은 곳에서
    변화의 조용한 노래가 흐른다.
    강인했던 청춘의 모습은
    이제 부드러운 곡선으로,
    시간의 손길에 따라
    조용히, 그러나 확실히 바뀌어 간다.
    이제는 새로운 힘을 찾아
    기억 속에 남은 모습과 함께
    변화의 여정을 걸으며,
    부드럽고 깊은 내면의 아름다움을 느낀다.
    육신의 변화 속에서
    우리는 더 깊어진 삶을 만나고,
    그 흔적들 속에서
    진정한 자아를 발견해 간다.
    2024년 9월 8일
    石田 김경배
    *머리에 내린 서리*
    서리가 내린 아침,
    머리카락 위에 하얀 겨울의 터치,
    차가운 공기 속에서
    세월의 흔적이 조용히 내려앉는다.
    서리의 미세한 결정들이
    흰 머리칼에 닿아
    시간의 흐름을 담은
    하얀 결정을 이룬다.
    어린 시절의 빛은 지나가고,
    서리로 덮인 머리 속에
    수많은 날들이 쌓여
    차가운 아침 속에서 따스함을 느낀다.
    서리처럼 나이도 자연스럽게
    우리의 모습에 스며들어,
    그 속에서 삶의 깊이를 깨닫고
    새로운 날을 맞이하는 지혜를 찾는다.
    2024년 9월 8일
    石田 김경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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