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진"이 아니라 "주션Jurchen" 이란 발음이 맞습니다. 만주사람들은 그렇게 읽었어요. 오늘날 중국 한문을 그대로 읽다보니 "여진"이라고 잘못 읽게 된거지요. Jurchen이나 Joseon이나 발음이 비슷한 이유는 고조선에서 따온 이름이기 때문입니다. 한국인들은 여진족이 갑자기 튀어나온 오랑케쯤으로 인식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여진족들 관점에서는 한국이 여진족 파벌중 하나로 인식했기 때문에 이성계가 조선건국할때 여진족들이 도와주었던것입니다.
@@hspark9364 진취적이 아니라 사대하던 치욕의 역사인데 뭔가 잘못 알고 계심ㅋㅋㅋㅋ 원나라에 충견처럼 충성하는 나라라 사실상 고려왕 임명권도 원나라 황제에게 있었고 조선은 자주국이지만 고려는 중국의 식민지나 다름없었슴.심양을 다스린건 고려왕이 원나라 황제의 귀염받던 외손자라 고려왕이 만주까지 영향력을 행사한것임. 치;욕적인 사대의 역사임. 원나라가 망했는데도 원나라 섬긴다고 원나라 타도 외치는 한족 농민들 탄압하러 감 ㅋㅋㅋㅋ 그러다 광분한 농민군에게 역으로 나라가 습격당해 개털림
그러게요~ 명은 고사하고 여진만이라도 완전한 조선의 세력권으로 편입시켰었으면 후에 청에 굴욕을 당하는 역사는 없었을텐데요~ 현실적으로 여진정벌이 많은군사 동원과 군량미등 국가재정이 많이 소요되는데 조선건국초기에 나라의 기틀을 잡고있는 시대상황상 국가재정에 막대한 영향을 주는 큰전쟁을 선택하기엔 무리였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만주는 어려움. 중국인의 정체성을 가진 사람들이 1억3천만 가량. 우리가 통제 불가능하고, 흡수하더라도 민주국가에서 선거를 통해 우리가 압도될 수 있음. 러시아조차 크림반도를 뺏을때 민주적 선거제도를 통한 대의명분을 확보했음. 게다가 중국이 분열된다고 한들, 여전히 우리에게는 위협이될만한 여러개의 나라들로 갯수만 늘린 꼴이 됨. 중국 역사는 분열과 통일을 반복해왔으므로 언젠가는 한반도가 통째로 저들에게 집어삼키어질 명분만 주게 됨. 고구려 몽골(일부는 남아있지만) 여진 등등 수많은 세력이 중국을 먹으려다가 중국의 뱃속에서 소화되어 뼈도 남기지 못했음.
@@얼그레이-t6h 덩빨이 워낙 커서 먹는 순간 먹히는 꼴이구먼... 성계가 요동을 포기한게 천추의 한이 되겠네.... 그리고 만주가 중국을 먹은 것도 알고보면 화근이었다. 그냥 세월 지나니, 모두 중국 한족처럼 되어 버렸으니... 한족 저놈들은 나라를 뺏기는 것도 하나의 전략인지도 모르겠다. 자신의 국경을 확장하는...
@@zhengchen9405 Pompeo openly called for regime change in China, saying that “if we don’t change China, China will change us.” 얼마전 중국 네티즌들이 한국 MBC방송 오락프로에 나온 이효리가 '마오'라는 단어를 입 밖에 나자, 벌떼같이 달라들어서 마오쩌둥을 지칭하는 것이라고 물고늘어졌다. 결국 MBC가 이효리가 나온 방송분을 전체 삭제해버렸다. 이게 있을 수 있는 일인가? 우리가 우리 안방에서 하는 말을 중국인들의 눈치를 봐서 입조심해야 하는가? 중국 대사는 한국정부에 "중국은 대국, 대국의 말을 소국이 거역하면 좋지 않다"는 식으로 협박을 한다. 현대 주권국가에서 있을 수 있는 일인가? 현대는 민주주의가 보편화된 국제규범으로 자리잡았다. 국가간에는 크기와 상관없이 외교상 주권평등의 형식을 취한다. 실제로는 그렇지 않더라도 최소한 외교상의 예의다. 이것을 무시하고 '대국 소국'을 지칭하는 것은 과거 전근대적 중화조공외교를 받아들이라는 것이다. 주권포기 요구임. 있을 수 없는일. 언젠가 시진핑 주석이 트럼프 대통령과의 회견에서 "한국은 중국의 일부분이다"라고 말했다고 트럼프가 공개해버렸다. 이에 대한 대한민국의 항의에 중국은 묵묵부답이다. 이 또한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장황하게 이야기했지만, 하고싶은 말을 하나도 하지 않은 기분이다. 사드때만해도 중국은 그런식으로 불만을 표하고 이웃국가를 협박하는 게 아니다. 중국에서는 당시 한국을 협박하여 한국인에게 중국의 무서움을 각인시켜서 성공한 전략이었다고 평가한다고 한다. ... 중국의 이러한 전근대적 시대착오적 행태는 폼페이오의 말을 적극 수긍하게 한다. 역사적으로 중국에 친근감을 느끼고 중국에 호의를 품고 있는 한국인이 이러할진데, 절대 중국에게 좋지 않은 일이다.
여진 거란 다 고구려 발해의 후손쯤이니까.. 고려는 통일신라가아니라 고구려를 잇겠는 다는 의미로 국호가 고려임. 고구려의 후손인 거란의 장수가 조상들의 땅을 찾겠다고 고려를 겁박하니 서희는 고려는 고구려를 이은 유일한 나라라고 세치혀를 놀려 물러나게 하지. 고구려 혈통을 물려받았다고 고구려를 잇는 거라고 할 수 없지. 이미 정체성을 잃어버리고 다시 유목민족화 했으니 고려야 말로 고구려의 유지를 잇는 나라라고 주장. 중원인들이 볼때 고구려는 말갈의 나라였슴. 고구려가 들어선 땅은 말갈의 터전이였고 말갈들이 철기로 무장하고 군대조직을 갖춰 도적떼마냥 습격해왔으니까. 능숙한 기마술을 이용한 기마대로 습격하는 모습이 영락없는 말갈이였고. 말갈의 후손들이 바로 거란 여진같은 북방민족들이고. 게다가 몽고족도 한족들이 보기는 마찬가지 북방오랑캐로 그놈이 그놈인거지. 고구려를 잇는다는 고려는 원나라의 단순한 제후국이 아니라 부마국이였고 넓은 대륙에서 황제의 사위인 고려의 왕은 서열 4위, 외손자인 그 아들은 원나라 황제와 황태자에 이은 서열 3위까지 제안받은 적이 있으나 거절. 고려 영토 지도를 보면 알겠지만 고려의 북방경계는 지금의 평안도와 강원도 지역이였다. 자강도나 함경도 일대까지는 고려의 통치권이 미치지못했다. 원나라 황제는 한반도를 넘어 넓은 만주땅까지 고려에게 맡기지. 원나라 황제의 외손자인 고려왕이 심양왕까지 겸한적이 있기에 고려는 만주땅에 대해 견물생심이 생겨나지. 그래서 고려가 원나라 쇄퇴하고 공백기가 오자 제빨리 요동정벌을 계획한거임. 한족의 나라 명과 관계를 맺기 전에 선제적으로 영토확보하자는거지. 물론 결과는 이성계의 회군으로 쫑났지만.. 고려는 원래 자주적이고 진취적인 나라였지만 원나라는 철저하게 고려를 예속시켜 원나라를 충견처럼 섬기게 되었지. 고려는 오랜 농경민족인 한민족의 나라라 거란 여진 몽고 같은 북방 오랑캐들과는 비록 혈통이 유사해도 이질적이고 통하지 않았다. 같은 농경문화권인 한족과 잘 통하지. 이웃인 동이족들을 멀리하고 같은 농경민족인 한족들의 나라와 적극 교류하고 친하려고 했다. 고려는 송나라와 친밀했지 발해도 고구려를 잇고 고려도 고구려를 잇는다지만 고려는 북방부족들과는 반목했다. 한족의 나라인 송나라만 바라봤지. 물론 이면에서는 그들과 이런저런 줄다리기도 있었지만 항상 소통할 수 있는 한족들과 교류하려고 했지 유목민족인 북방민족들과는 너무 문화가 이질적이라 통하지 않았슴. 거란 여진 모두 이웃이자 주적으로 국방의 불안요소들이라 군대를 강화하고 천리장성까지 쌓아가며 북방 경계를 강화했는데 남하하는 거란족과 싸우다가 고려군은 첨으로 몽고족과 조우하지. 똑같은 북방오랑캐들이지만 여진족들과는 달라보였지. 몽고는 금을 멸망시키고 요를 멸망시키고 잔당들까지 소탕하자고 대륙을 휘젓고 있었슴. 말달리며 활쏘는 모습이 얼마나 단련했는지 달인들의 수준들이라 잔당들은 달아나기 바빴고 몽고군은 양몰이하듯 그들을 족치며 쫓고 있었다. 고려군도 북방지역을 지키기 위해 잔당들을 공격하다보니 몽고족과 연합해서 토벌하는 모양새가 되지. 고려군 수장과 몽고군 수장은 잔당들을 족친후 서로 조우해 수고했다며 하고 서로 동맹관계 도모함이 어떻냐고 화기애애하게 헤어진다. 사실 거란놈들 다 쳐버렸으니 고려는 우리에게 잘해라는 무언의 압박을 준거나 마찬가지. 이후 고려와 몽고는 친구먹기로 했는데 몽고의 세력이 너무 급성장해 대륙을 휩쓸며 대적할 나라들이 없자 고려는 막가파 오랑캐인 몽고와 그래도 친목관계 맺어둔걸 한걸 잘했다고 생각했겠지. 하지만 친구 사이로 지내기엔 몽고는 너무나 급이 달라져있었다. 송나라마저 없애버리고 대륙의 패자를 선언한 몽고는 고려에게 '이젠 친구먹기에는 너무 서로 급이 다르지 않냐? 너희는 신하의 예의를 갖추고 우리를 섬겨라. 공물도 꼬박꼬박 바치고 주인님 잘 모셔봐라. 귀여워해줄께. ' 군신관계를 요구한다. 고려는 뭐 당연히 신하의 예의를 갖추겠다고 했지. 나라의 안전은 보장되니까. 그런데 몽고족의 요구사항이 어떠한 원칙도 예의도 없이 막무가내 삥뜯기 수준인지라 고려는 역시 오랑캐놈들과는 상종하기 힘들구만하고 한족의 나라가 그리웠겠지. 몽고놈들의 막가파 기질에 결국 참다참다 폭발한 고려는 주군 신하관계 쫑내기로 하고 항전태세들어가고 끊질긴 저항으로 버티기에 들어가지만 몽고족의 나라는 흔들림없어보이고 점점 세력 강해지고 굳건해보이고 이젠 가망없다고 여긴 고려는 결국 원나라에 항복의사를 전달하려고 하는데 황제가 죽어버리고 차기 황제가 불명확했지. 바로 줄서기에 들어가 그가 결국 황제가 되자 고려의 위상은 올라가지. 딸을 고려왕에게 주고 고려왕은 원나라 황실로 가서 생활하지. 고려는 원나라를 섬기는 권문세족들이 권력을 휘두르고 완전히 충견으로 변모하지. 원나라를 주인으로 철저히 모시다보니 고려는 원나라와 고려를 한몸처럼 착각했는지 원나라가 쇄퇴해서 여기저기 한족들의 반란이 일어나자 원나라 속박으로 벗어날 수 있겠다고 만세를 부르긴 커녕 감히 원나라에 항거하냐고 무리해서 농민반란군 진압하겠다고 군사까지파견하지. 그렇게 원나라의 권력이 쇄하는데도 원나라에 충성하다 농민반란군들인 홍건적들에게 습격당해 큰 화를 당하기까지 하고... 고려도 원이 다시 천하를 거뭐쥘 꼬라지가 아니니 한족의 나라인 명나라와 관계를 맺으려 했지. 적어도 한족들과는온 예의 법도가 통하니까 동의족 오랑캐들 나라처럼 막가파로 나가지는 않고 제후국이라도 나라와 나라 입장으로 자주권은 주어지니까. 동의족들은 치졸해서 이런 법도가 없었슴. 청나라도 조선 왕실에 청나라 군대를 주둔시키지. 어디 남의 나라 왕실에 군대를 주둔시키나? 명나라때 조선이 자주국이지 청나라때 조선이 자주국가라고 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였지. 원나라때 고려는 완전 똘마니 국가였고 금나라 요나라 고구려 영토에 살았던 후손들이 세운 나라들 전부 개좆같았슴. 걔들이 혈통적으로 우리와 형제뻘인지 모르겠지만 다 젖같은 못배우고 야만스런 망나니들이라 수준이 안맞아 반목하고 수준이 비슷한 이웃과 소통하고 싶은거지. 그래서 같은 농경민족인 한족들과 교류하려고 하고 명예한족처럼 여긴거임. 북방민족들과는 너무 이질적이라 그저 거리를 두고싶은 오랑캐들이였지
심지어 한족들에게 문자와 문물을 전수받은거 말고도 명나라때는 파병까지 해서 왜놈들로부터 나라까지 구원받음지.. 한족들과는 우호적으로 교류했슴. (질서를 잡고 안정을 추구하는 외교 관계를 맺기전인 고대사는 굳이 언급할 필요없는거 같고. 진나라때는 천하통일 목적이라며 고조선은 통일할 나라로 보지도 않았슴. 연나라 세력이 고조선으로 가고 나서 한나라때야 고조선도 정벌할 나라로 보인거지. 진나라에게 망한 북방나라들 유민이 고조선으로 유입된거면 한나라 입장에서는 위협세력이 된거임. 고구려는 뭐 말갈족 포섭해서 세운 다민족 국가라 내부 규합을 위해 일부러 중원나라와 적대정책 펴며 긴장관계 조성했슴. 무리해서라도 토벌하고 싶은 엄청 거슬리는 나라인거지. 각자 도생하는 습성이 있는 말갈들이 본성이 나와서 고구려 내부에서 약탈하면 안되니까 강성대국의 비젼을 심어주고 무기를 쥐어줘서 외부로 보내야 했슴. 강대한 외부적대세력을 만들어야 한거지. 그래서 수 당과 적대정책이였고 신라는 가장 만만한 약탈지였슴. 양민 습격 살인 약탈 강간 납치 인신매매... 왜구들 하던 짓을 똑같이 한 거임.. 당나라로써는 고구려라는 거슬리는 불안요소를 제거한거지. 우리가 왜구 토벌해야 한다고 생각한것 처럼 수, 당도 말갈 토벌을 생각했을꺼임. 게다가 왕가 조상이 선비족 출신임. 선비족과 말갈족은 같은 터전에서 반목하던 세력이지. 이런 저런 이후로 친해질 수 없었지만 외교질서관계가 잡히기 전 고대사는 의미가 없슴)항상 우리를 핍박한건 동이족들이였지. 지금 중국이 바로 과거 동이족들 나라처럼 막무가네 오랑캐처럼 굴고 있는것임. 한족의 기질을 가진 나라가 아님. 중국은 오랑캐 기질의 나라임. 한족들이 우리민족과 북방민족들 싸잡아 부르던 동이족.. 막상 우리와 북방민족들을 너무 이질적이라 전혀 공감대 형성을 못할 정도로 달랐슴. 한족 타도를 목표로한 누르하치는 조선을 형제의 나라처럼 생각하다 조선과 명은 하나라며 우리와 한족을 한몸 취급했고... 구석탱이 낙후된 땅에 위치한 우리 조상들은 문화 소통과 교류에 목말라 한족들의 나라만 바라봤고.. 우리도 한족들에게 오랑캐로 불리면서 북방민족들을 오랑캐라 부르며 소중화사상 쩔었지.
최근 미중 갈등이 고조됨에 따라 중국 공산당 내부의 권력지형에 많은 변화가 있을거 같습니다. 지난 번 중국 공산당 내부의 권력 투쟁을 객관적으로 너무나 잘 설명해 주셔서 기억이 남아서 그러는데, 근래의 중국 공산당의 권력 변화나 앞으로 일어날 수 있는 경우에 대해서도 설명해주실 수도 있으신지요.
비록 명나라가 임진왜란 시절 우릴 도와준 의리는 있지요.물론 그게 잘못됬다는 건 아닙니다. 광개토태왕님도 의리를 중시해서 신라를 도왔으니까요....그러나 우리가 고구려 시절 국력을 갖추지 못하게 견제했고, 결과적으로 조선이 청나라에게 압도당하고 일본에게 지배당하는 결과에 일조한 건 명심해야 하겠습니다.
그렇게 역사를 해석하는 논리라면 광개토대왕이 신라를 속국으로 만들기 위해 구원병 5만을 보내지 않는게 더 좋았겠지요. 당시의 왜는 사실상 가야를 뜻합니다. 그러니 고구려군이 금관가야로 쳐들어간거죠. 그리고 고구려의 든든한 배경을 바탕으로 신라가 가야를 병합시킬수 있던겁니다. 가야가 일본의 진짜 원류인건 존 카터코벨 박사의 논문에도 자세히 나와있습니다. 가야가 신라에 망한후에 일본에 남아있던 가야계와 백제계가 전쟁을 벌여서 백제계가 승리한후에 가야역사였던 일본이 백제역사로 둔갑하였고 가야사를 지우기 위한 작업으 임나임본부설인겁니다. 가야가 일본을 지배한것을 역으로 일본이 가야를 지배했다고 한거죠. 아무튼 광개토대왕이 신라를 구해준건 신라를 복속하고 백제와 연합해서 고구려를 위협하게 되는 최악의 수를 견제하기 위한겁니다. 의리로 그런게 아니지요. 이걸 신라가 이용해서 가야복속후에도 끊임없이 괴롭히는 백제를 고구려를 등에 입고 대항하면서 힘을 키워 오히려 백제뿐 아니라 고구려까지 멸망시켰으니 만약 고구려가 이때 신라에 구원병을 보내지 않았다면 당연히 약소국인 신라는 가야에 병합되었을거고 일본은 여전히 우리영토로 남아있었겠지요. 북방의 부여족 한반도남쪽에 연합국가 건립-->일본진출로 식민지 획득--> 한반도 동남쪽의 자생적 부족국가가 난립했던 지역에 흉노족 유입-->흉노족에 의한 여러 부족의 병합으로 신라탄생-->신라지역에 대해 종주권을 주장하는 가야와 대립-->강력한 철기문화를 바탕으로 일본이라는 식민지까지 건설한 강력한 가야연합국가의 신라침공-->이 기회를 노련 고구려의 가야침략-->이로인한 가야의 약화로 금관가야에서 대가야로 정권이양-->약해진 가야와 고구려로 인해 강해진 신라의 역전-->가야의 멸망과 신라로의 복속-->가야의 일본에 대한 종주권 상실-->신라가 가야를 복속함으로서 일본에 대한 종주권 주장-->일본에 늦게 진출한 백제계와 대립--> 일본내에서의 가야계(신라계)와 백제계의 전쟁-->백제계 승리-->백제의 일본 종주권 안정화-->신라에 의한 백제멸망-->백제의 일본종주권 상실-->일본역사에 가야,백제의 종주권 삭제작업-->1000년간 백제계와 가야계 다이묘의 전쟁-->도요토미에 의한 전국통일-->조선침략-->침략전쟁으로 얻은 도자기 기술로 만든 도자기 유럽에 수출로 인한 엄청난 이익(당시 도자기 기술은 명나라,조선, 그리고 납치된 조선도공에 의해 기술습득한 일본, 이렇게 3나라뿐, 명나라에서 유럽에 도자기판매를 금지시키자 유일한 판매처인 일본에 엄청난 수출효과, 당시 유럽전역의 도자기 수입의 99%가 일본산)-->해외로 부터 도자기값으로 들여온 은을 통한 일본의 부국강병-->일본전역이 골고루 부흥하면서 충분한 근대화 역량이 준비됨-->미국에 의 한 강제 개방후 근대화 작업-->초기자본주의로 인한 수요와 공급의 불균형으로 인한 경제위기-->조선병합을 통한 안정적인 수요처와 값싼 원자재와 노동력을 얻어 완전한 근대국가로 발돋움-->조선병합의 효과로 10년간 연 20%의 놀라운 경제성장을 이룩했으나 식민지의 부족으로 효과가 점차 둔화-->조선병합과 같은 경제효과를 노리고 만주국에 괴로정부 세움-->중국을 식민지화 하여 경제력확장을 꾀하기 위해 중국침략--->전쟁의 장기화로 원유의 부족현상을 겪고 원유가 있는 인도네시아침공 계획세움-->인도네시아와 일본사이에 있는 필리핀을 거쳐야하는데 미국의 식민지였으므로 미국본토에서 한번에 태평양을 건너는 기술이 없었으므로 중간기착지인 하와이폭격-->미국 본격적인 태평양전쟁 참전-->원폭 두방 시험삼아 떨어뜨린후 일본전역에 30개의 원폭투하계획-->일본이 단 두방만에 항복하며 추가 원폭계획 백지화-->일본을 4개로 나뉘어 자유중국,소련,영국,미국이 식민지화 하기로 의결-->갑작스런 일본의 빠른 항복과 중국공산당에 패전한 자유중국이 대만으로 망명하며 4개분할계획 백지화--> 미국에 의한 일본의 전국토 농업화계획과 모든 공업관련 시설 철거계획(일본의 영원한 농업국가화계획)-->한반도에서의 한국전쟁 발발로 시급한 전쟁물자 필요-->한반도 바로옆의 근대화된 공업국이었던 일본, 한국전쟁으로 물자조달처로 막대한 부를 획득과 동시에 농업국가계획 백지화, 일본의 기사회생. 이게 바로 일본역사의 맥락이랍니다.
@심준호 왜군 잔여병력이 가야로 빠졌다는 증거는? 낙랑과 가야의 거리가 그렇게 먼데 가야가 낙랑이 무너지자 약해졌다는 증거는? 가야와 낙랑이 밀접한 중계무역을 했더라도 낙랑이 무너졌다고 가야도 약해졌을거라는 이유는? 당신이 말한 시기는 서로 너무 긴데 마치 일이년만에 다 일어난것처럼 쓴 이유는? 국제정세는 급변하기 마련이고 가야가 종주국으로 군림하고 있더라도 고구려의 공격으로 약화되었으면 당연히 바로 옆 신라에게 역전당하는게 당연한건데 고구려의 영향력이 줄어든후에 병합한것과는 대체 무슨 상관이며 그렇게 생각한 증거는? 일본의 에도막부시절 수출품의 90%가 도자기였고 그 댓가로 은을 받아 이를 재정으로 충당하면서 개간을 하고 도로를 정비하면서 경제순환이 이뤄졌는데 둘사이의 연결고리를 생각하지 못하는건 무슨 이유로? 각자 사기에 왜라는 표현이 가야와 동일시되는 부분에 대한 설명은? 가야가 곧 왜라면 가야가 망한후 그 후손이 왜를 쓰는것이 전혀 이상하지 않은데 무엇때문에 아니라고 생각하는지 그 이유는? 혹시 왜라는 말이 진짜 왜소하다고 할때 쓰는 비하적인 말이라고 알고 있는건가? 부족장연맹단계에 불과했따는 증거는? 그런 논리면 중앙집권체제의 앞선 정치체계를 가진 조선이 봉건제를 유지하는 일본에 밀린 이유는? 훨씬 앞선 선진국가였던 송나라가 유목민족에 불과한 거란에 유린당하고 여진에 폭행당하고 몽골에 망한 이유는? 대체 부족장연맹단계의 국가가 다른 국가보다 국력이 약했을거라는 망상은 어디서 나온거임? 그런식이면 어떻게 그리스가 대제국 페르시아를 물리치나? 고작 도시국가들 연합인데? 오히려 출토되는 유물의 연대시기를 비교해보면 가야가 훨씬 앞선 문명이었는데도 동시대 신라가 더 국력이 앞설거라는 망상의 근거는? 내가 틀린 부분도 있을수 있지만 역사는 당신이 생각한대로만, 누군가 가르치는 대로만 펼쳐졌을거라고 보고 한번도 비틀어 보지 않는건, 혹은 그럴수도 있었겠다라는 생각조차 못하고, 당신이 나열한 내용도 알고보면 고작 사서에 한두줄을 가지고 역사학자들의 추론에 의한것들인데 왜 그것만 옳다고 하는 이유와 증거는?
@심준호 낙랑이 가야를 좌지우지할수 있었다는 증거는? 그런 추론말고 직접적 증거를 대보라니까. 그냥 그럴거야..라고 일부학자의 주장을 그대로 답습하는데 그 학자들도 누가 이런 질문을 하면 입닫고 있는데 당신은 잘 아나봐. 증거부탁함. 다이묘가 힘을 잃어 중앙집권이나 다른바 없었다는 논리는 가야연맹뿐 아니라 모든 정치체계에 다 갖다 붙일수 있겠네. 무조건 지말이 옳다고 하기 위해 자기논리부정이라니. 앞말 다르고 뒷말 다르고. 내가 제시한 의문의 근거나 대보시지? 대체 누가 도자기 하나로 내수를 돌렸다고 했지? 도자기 수출이 전체 수출의 90%는 팩트임. 그걸로 엄청난 부를 축적한것도 팩트지. 만약 몇백년후 한국은 반도체 수출이 많았다고 하면 님같은 사람은 그걸로 누가 내수를 돌리냐는 엉뚱한 논리를 전개했겠음. 하나의 정책이나 사건이 국가전체에 도미노처럼 나비효과처럼 맞물리는 효과를 모름? 방금은 연맹제국가가 발리는것처럼 말하더니 송나라가 망한건 군벌화될까봐임? 고려시대가 조선때보다 군사력이 나았던게 바로 지역군벌이 있었던것이 주요했는데 가야연맹도 각 부족의 군사력이 약했을거로 보임? 대체 자기 부정도 아니고 앞뒤가 왜 안맞음? ㅉ그리고 송나라 군사력이 약했다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진짜 아무것도 모르네. 그 약한 송이 몽골과 40년전쟁을 함? 몽골은 인류역사상 가장 강한 군대를 보유한 국가였는데 호라즘도 무너뜨린 몽골이 겨우 복속한 나라가 송제국인데 뭔 약화? 그렇게 따지면 당은 약한 구석이 없음? 어떤 나라도 그런식으로 물고 늘어지면 다 기적의 논리가 되버리지. 뭔 자기말 맞게 할려고 엉뚱한 논리를 다 가져다 붙이나? 연맹왕국과 중세의 군사력일치가 다르다? 그 증거는? 대체 그게 가야연맹과 맞아떨어진다는 증거는? 그 가야가 정말 당신이 말하는 그런 서구식부족연맹체제라는 증거는? 가야가 신라보다 약했을거라는 결정적 증거는? 가야가 신라보다 못하고 문화적으로도 약세였을거라는 증거? 가야가 일본진출한것도 아니라고 할거 같네. 그럼 그 증거는? 일본의 고대신들 상당수가 가야에서 넘어온 인물이거나 가야의 귀족, 왕이었을거라는 일본측 논문이 있는데 이것도 틀렸다고 보는 당신의 증거는? 가야가 망한후 백제에게 일본에 대한 종주권이 넘어갔다는 내 주장은 일본의 고대신과 천황의 계보가 가야계에서 자연스레 백제계로 넘어가는것을 토대로 여러 학자들이 주장하는 부분인데 이것이 당신말대로 틀렸다면 일본의 역대천황계보는 대체 어케만들어진거임? 증거부탁함.
@심준호 가야가 중앙집권국가나 다름 없다고 말한적 없는대? 따라하지 마라 우습다.ㅋㅋㅋㅋ 니가 가야가 부족연맹국가인데 신라보다 강할수 없다며? 그게 더 우습지. 그런 논리면 정치체계가 앞서면 군사력도 무조건 강해? ㅉㅉㅉ 자기말에 자기가 넘어지는줄 몰라. 일본이 내수돌리는 원동력이 무역없이 가능했다고 보는 좁은 시각이라니. ㅋ 그럼 일본은 해적질도 금하고 해외와 교역없이도 혼자서 부국강병했겠네. 그게 가능한 증거좀 부탁함. 그리고 뭔 남송 북송을 또 나눠?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정강의 변하나로 국가가 전혀 다른게 되버림? 임마 나누는건 역사적 연대에서 그런거고 하나로 통하는 정치체계와 역사적동질성을 갖고 있는데 나눠보려면 적어도 신라고려정도는 되야지. 역사의 모르는 부분은 대부분 추론에서 시작하는데 너는 증거는 하나도 안가져오고 무조건 내말이 틀렸댔지? 그렇다면 증거를 가져와보라니까? 왜 나보고 가져오래? 니가 내말이 틀렸다며? 그럼 틀렸다는 증거를 가져와봐. 연맹왕국이 고대왕국보다 국력이 강할수 있는 근거를 가져오래.ㅋㅋㅋㅋㅋ 아니 그럼 니가 또 니말대로 자기부정 아니냐? 니말이 맞을려면 다른 정치체계가 낮은대도 제국을 이긴 국가들은 다 뭐야? 서로마는 뭐 정치체계가 후진적이라 게르만족에게 유린당했나? 대체 누가 도자기 수출하나로 모든게 다 잘되었다는거냐? 누가 그러디? 그게 나비효과가 되어서 다른 여러 원인과 맞물리는거지 도자기 하나만으로 모든게 되었대? 그럼 뭘 설명할때 그런 부분까지 세세히 다 말하나? 사람이 이해력이란게 있는데 1+1=2인걸 더 자세히 말해야하나? 송나라 역사도 송나라 하나만 보지말고 한나라이후의 중국역사와 주변 이민족역사를 함께 봐야 이해가 가능하단다. 무슨 송나라가 화평정책때문에 약해진줄 알고.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런 정책을 펴야하는 이유와 그렇게 된 연사적 은원과 맥락을 봐야지. 당나라가 그시대에 있으면 다를줄 암? 뭐 내주장도 입증 못하면 남한테 입증하라고 나불대지 말라고? ㅋㅋㅋ 지말에 또 지가 넘어질려고 발악하네. 말 잘했다. 니 주장대로 니가 입증못하면서 왜 내 댓글에 태클걸었냐? 그러니까 입증을 하라고, 증거를 대라고. 니가 말한 세가지 내가 답했으니 니가 내 질문에 다 답해봐라. 이걸로 한 3달간만 질문해보자. 나 원래 이런걸 재밌어하고 취미니까 도망가기 없기다.
@심준호 누가 역사에 만약이래? 난 만약을 말한적 없는데? 넌 누구랑 댓글을 쓴거냐?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만약이 아니고 저렇게 풀이한거라고. 니가 풀이한 역사가 맞다면 증거를 대라니까 왜 자꾸 아까부터 자기 발등을 찍고 있어? 증거를 대라고 증거? 내 주장이 틀렸다면 증거를 대야지. 똑같은 역사적 사실과 사료를 갖고 다른 추론을 할수 있지만 반박을 하려면 증거는 대야지. 난 니가 틀렸다고 말하지 않았단다. 다만 니 주장이 맞다면 증거를 대라고 했지? 그러니까 증거를 대라고? 그정도 능력도 없이 댓글 단거야? 증거를 가져와 증거!!!
여진족은 투르크계 신라도 투르크계 투르크계의 뿌리는 스키타이 스키타이의 다른 이름은 샤카족 라고 합니다 빗살무늬가 나오는 벨트를 따라가보면 중앙아시아를 거쳐 터키까지 가는데 이것은 스키타이의 공통적인 문화였다고 합니다 고조선 단군이 우리뿌리인데 고조선은 다민족 공동연합이었을 것이고 다인종 국가였을 것이라고 합니다 지금의 미국처럼 지배세력인 단군이 스키타이계가 아니었을까요 다른곳에서 진보된 문화를 가지고 온 미국으로부터 진보된 문화를 받아들여 선진국이 된 지금의 대한민국처럼 결국 원주민과 이주민의 합작이 우리라는 것이 아닐까요 그 문화와 정신을 계승하면서 각지역으로 나뉘고 각나라로 나뉘고 하는것이 아닐까 합니다 땅이 다르면 환경과 기후가 다르고 그것에 영향을 받으면 모습은 조금씩 달라지니
여진족들 관점에서는 한국자체가 여진족 파벌중 하나였을뿐입니다. 애당초 여진족들이 이성계를 따라다닐 이유가 없죠. 여진을 한문을 그대로 읽으면 안됩니다. 원래는 "Jurchen주셴" 이라는 소리를 표현하기 위에 쓴 한문입니다. Jurchen, Joseon 비슷한 이름을 사용한건 우연의 일치가 아닙니다. 원래 한국의 "한"은 징기스칸의 "칸"에서 변형된것입니다. 신라시대 마립간 이런 왕을 부르는 호칭도 마립"칸" 이런 이름이었던거죠.
여진은 올바른 발음이 아니에요. "Jurchen주션" 이라는 소리를 표현하기 위에 쓴 한문입니다. Jurchen, Joseon 비슷한 이름을 사용한건 우연의 일치가 아닙니다. 이성계가 건국할때 여진족 장수들이 따라다닌 이유는 이성계가 여진족이어서가 아니라 한국도 여진족 파벌중 하나였기 때문입니다. 여진족들의 관점은 그렇습니다. 원래 한국의 "한"은 징기스칸의 "칸"에서 변형된것입니다. 신라시대 마립간 이런 왕을 부르는 호칭도 마립"칸" 이런 이름이었던거죠.
그냥 간단합니다. 대동여지도 초기본 보면 북쪽지방상당부분이 오류가 있습니다. 그 이유가 대동여지도를 만들때 직접 돌아다닌길 + 지인들 증언 + 각종 지도 등을 참고해서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근데 아시다시피 한반도 북부, 그것도 최북단 부분은 더럽게 추움 + 산지로 도배됨 + 개마고원 이라는 무지막지한 사람이 쉽게 접근할만한 환경이 아니다 보니 여러가지 오류가 생길수밖에 없었습니다. 거기에 대동여지도는 어디까지나 한반도지도였기도 하고 참고자료가 동국여지승람이라든가 각종 군사지도등이었다 보니 간도가 빠질수밖에요...
여진 거란 다 고구려 발해의 후손쯤이니까.. 고려는 통일신라가아니라 고구려를 잇겠는 다는 의미로 국호가 고려임. 고구려의 후손인 거란의 장수가 조상들의 땅을 찾겠다고 고려를 겁박하니 서희는 고려는 고구려를 이은 유일한 나라라고 세치혀를 놀려 물러나게 하지. 고구려 혈통을 물려받았다고 고구려를 잇는 거라고 할 수 없지. 이미 정체성을 잃어버리고 다시 유목민족화 했으니 고려야 말로 고구려의 유지를 잇는 나라라고 주장. 중원인들이 볼때 고구려는 말갈의 나라였슴. 고구려가 들어선 땅은 말갈의 터전이였고 말갈들이 철기로 무장하고 군대조직을 갖춰 도적떼마냥 습격해왔으니까. 능숙한 기마술을 이용한 기마대로 습격하는 모습이 영락없는 말갈이였고. 말갈의 후손들이 바로 거란 여진같은 북방민족들이고. 게다가 몽고족도 한족들이 보기는 마찬가지 북방오랑캐로 그놈이 그놈인거지. 고구려를 잇는다는 고려는 원나라의 단순한 제후국이 아니라 부마국이였고 넓은 대륙에서 황제의 사위인 고려의 왕은 서열 4위, 외손자인 그 아들은 원나라 황제와 황태자에 이은 서열 3위까지 제안받은 적이 있으나 거절. 고려 영토 지도를 보면 알겠지만 고려의 북방경계는 지금의 평안도와 강원도 지역이였다. 자강도나 함경도 일대까지는 고려의 통치권이 미치지못했다. 원나라 황제는 한반도를 넘어 넓은 만주땅까지 고려에게 맡기지. 원나라 황제의 외손자인 고려왕이 심양왕까지 겸한적이 있기에 고려는 만주땅에 대해 견물생심이 생겨나지. 그래서 고려가 원나라 쇄퇴하고 공백기가 오자 제빨리 요동정벌을 계획한거임. 한족의 나라 명과 관계를 맺기 전에 선제적으로 영토확보하자는거지. 물론 결과는 이성계의 회군으로 쫑났지만.. 고려는 원래 자주적이고 진취적인 나라였지만 원나라는 철저하게 고려를 예속시켜 원나라를 충견처럼 섬기게 되었지. 고려는 오랜 농경민족인 한민족의 나라라 거란 여진 몽고 같은 북방 오랑캐들과는 비록 혈통이 유사해도 이질적이고 통하지 않았다. 같은 농경문화권인 한족과 잘 통하지. 이웃인 동이족들을 멀리하고 같은 농경민족인 한족들의 나라와 적극 교류하고 친하려고 했다. 고려는 송나라와 친밀했지 발해도 고구려를 잇고 고려도 고구려를 잇는다지만 고려는 북방부족들과는 반목했다. 한족의 나라인 송나라만 바라봤지. 물론 이면에서는 그들과 이런저런 줄다리기도 있었지만 항상 소통할 수 있는 한족들과 교류하려고 했지 유목민족인 북방민족들과는 너무 문화가 이질적이라 통하지 않았슴. 거란 여진 모두 이웃이자 주적으로 국방의 불안요소들이라 군대를 강화하고 천리장성까지 쌓아가며 북방 경계를 강화했는데 남하하는 거란족과 싸우다가 고려군은 첨으로 몽고족과 조우하지. 똑같은 북방오랑캐들이지만 여진족들과는 달라보였지. 몽고는 금을 멸망시키고 요를 멸망시키고 잔당들까지 소탕하자고 대륙을 휘젓고 있었슴. 말달리며 활쏘는 모습이 얼마나 단련했는지 달인들의 수준들이라 잔당들은 달아나기 바빴고 몽고군은 양몰이하듯 그들을 족치며 쫓고 있었다. 고려군도 북방지역을 지키기 위해 잔당들을 공격하다보니 몽고족과 연합해서 토벌하는 모양새가 되지. 고려군 수장과 몽고군 수장은 잔당들을 족친후 서로 조우해 수고했다며 하고 서로 동맹관계 도모함이 어떻냐고 화기애애하게 헤어진다. 사실 거란놈들 다 쳐버렸으니 고려는 우리에게 잘해라는 무언의 압박을 준거나 마찬가지. 이후 고려와 몽고는 친구먹기로 했는데 몽고의 세력이 너무 급성장해 대륙을 휩쓸며 대적할 나라들이 없자 고려는 막가파 오랑캐인 몽고와 그래도 친목관계 맺어둔걸 한걸 잘했다고 생각했겠지. 하지만 친구 사이로 지내기엔 몽고는 너무나 급이 달라져있었다. 송나라마저 없애버리고 대륙의 패자를 선언한 몽고는 고려에게 '이젠 친구먹기에는 너무 서로 급이 다르지 않냐? 너희는 신하의 예의를 갖추고 우리를 섬겨라. 공물도 꼬박꼬박 바치고 주인님 잘 모셔봐라. 귀여워해줄께. ' 군신관계를 요구한다. 고려는 뭐 당연히 신하의 예의를 갖추겠다고 했지. 나라의 안전은 보장되니까. 그런데 몽고족의 요구사항이 어떠한 원칙도 예의도 없이 막무가내 삥뜯기 수준인지라 고려는 역시 오랑캐놈들과는 상종하기 힘들구만하고 한족의 나라가 그리웠겠지. 몽고놈들의 막가파 기질에 결국 참다참다 폭발한 고려는 주군 신하관계 쫑내기로 하고 항전태세들어가고 끊질긴 저항으로 버티기에 들어가지만 몽고족의 나라는 흔들림없어보이고 점점 세력 강해지고 굳건해보이고 이젠 가망없다고 여긴 고려는 결국 원나라에 항복의사를 전달하려고 하는데 황제가 죽어버리고 차기 황제가 불명확했지. 바로 줄서기에 들어가 그가 결국 황제가 되자 고려의 위상은 올라가지. 딸을 고려왕에게 주고 고려왕은 원나라 황실로 가서 생활하지. 고려는 원나라를 섬기는 권문세족들이 권력을 휘두르고 완전히 충견으로 변모하지. 원나라를 주인으로 철저히 모시다보니 고려는 원나라와 고려를 한몸처럼 착각했는지 원나라가 쇄퇴해서 여기저기 한족들의 반란이 일어나자 원나라 속박으로 벗어날 수 있겠다고 만세를 부르긴 커녕 감히 원나라에 항거하냐고 무리해서 농민반란군 진압하겠다고 군사까지파견하지. 그렇게 원나라의 권력이 쇄하는데도 원나라에 충성하다 농민반란군들인 홍건적들에게 습격당해 큰 화를 당하기까지 하고... 고려도 원이 다시 천하를 거뭐쥘 꼬라지가 아니니 한족의 나라인 명나라와 관계를 맺으려 했지. 적어도 한족들과는온 예의 법도가 통하니까 동의족 오랑캐들 나라처럼 막가파로 나가지는 않고 제후국이라도 나라와 나라 입장으로 자주권은 주어지니까. 동의족들은 치졸해서 이런 법도가 없었슴. 청나라도 조선 왕실에 청나라 군대를 주둔시키지. 어디 남의 나라 왕실에 군대를 주둔시키나? 명나라때 조선이 자주국이지 청나라때 조선이 자주국가라고 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였지. 원나라때 고려는 완전 똘마니 국가였고 금나라 요나라 고구려 영토에 살았던 후손들이 세운 나라들 전부 개좆같았슴. 걔들이 혈통적으로 우리와 형제뻘인지 모르겠지만 다 젖같은 못배우고 야만스런 망나니들이라 수준이 안맞아 반목하고 수준이 비슷한 이웃과 소통하고 싶은거지. 그래서 같은 농경민족인 한족들과 교류하려고 하고 명예한족처럼 여긴거임. 북방민족들과는 너무 이질적이라 그저 거리를 두고싶은 오랑캐들이였지 심지어 한족들에게 문자와 문물을 전수받은거 말고도 명나라때는 파병까지 해서 왜놈들로부터 나라까지 구원해주지.. 한족들과는 우호적으로 교류했슴. 항상 우리를 핍박한건 동이족들이였지. 지금 중국이 바로 과거 동이족들 나라처럼 막무가네 오랑캐처럼 굴고 있는것임. 한족의 기질을 가진 나라가 아님. 중국은 오랑캐 기질의 나라임. 한족들이 우리민족과 북방민족들 싸잡아 부르던 동이족.. 막상 우리와 북방민족들을 너무 이질적이라 전혀 공감대 형성을 못할 정도로 달랐슴. 한족 타도를 목표로한 누르하치는 조선을 형제의 나라처럼 생각하다 조선과 명은 하나라며 우리와 한족을 한몸 취급했고... 구석탱이 낙후된 땅에 위치한 우리 조상들은 문화 소통과 교류에 목말라 한족들의 나라만 바라봤고.. 우리도 한족들에게 오랑캐로 불리면서 북방민족들을 오랑캐라 부르며 소중화사상 쩔었지
@@올인-f3b 문명이 발달했던 동아시아 세력이 반복적으로 중원을 정복하고 한반도의 주도세력이 되었다가 밀려나면 일본열도로 도망갔다가 근대에 한반도 먹고 중원먹으려다 도망갔음 그래서 중원의 역사는 오랭캐라고 불리는 북방민족으로 이루어져 있음 한반도 역시 요동과 만주쪽 지배세력이 반복적으로 내려와 주도세력이 됨 현재 한반도도 북쪽은 북쪽사람들이 남쪽은 해방 후 탈북자들이 주도세력임 해방 후 탈북자들이 남쪽사람 빨갱이로 몰아 엄청죽였음. 과거에는 세력이 커지면 역적으로 몰아 죽이고 주도세력이 됨
요동의 위치가 조작되었는데 1600년대 말까지 베링해협은 육지였고 베링해협 중간에 거대한 강인 요하가 있었고 이 요하의 동쪽이 요동임 현재 알류샨 열도 지역임 1600년대 말 대지진이 수십년간 계속돼 베링해협 지반이 침하돼 바다가 되고 북극물이 내려와서 해수면이 상승하게됨
당시는 국가 민족구분이 명확하지 않지만 이성계 역시 여진족이였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당시 원나라 명나라가 공존하던 시대인데 이성계,이지란씨도 두나라에서 관직을 했었죠. 그때 기록에 한반도 출신의 장군들은 이름은 바꿔도 성은 그대로 썼는데 이성계 이지란씨는 성을 쓰지 않았다고 하네요.
더 올라가게 되면 유라시아지역의 동쪽 서쪽으로 나뉘고 그 언저리쯤 시베리아를 거쳐 북미남미로 뻗어나가지 않았나 싶고 서쪽으로 그리스 이태리 남쪽으로 이집트 이란 인도로 가지 않았을까 합니다 그 모집단이 파미르고원 혹은 근처의 산 산맥에 살던 사람들이 아니었을까 합니다 역사 모르는 일반인이고 이것저것 보고들은 것을 러프하게 크게 보면 흐름이 이렇지 않나 하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우리나라가 요동과 연해주가 우리나라가 되어젔으면 좋겠습니다. 그때부터 우리나라가 우리나라가 되어졌으면 좋았을텐데 아쉽네요.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화이팅입니다. ^^;^^☆☆💕🙏😇🤩🎉🤝👍👏✍😳👊👐🙂🍎🎈☝
고생 많으셨습니다. 예전에 여진 및 몽고의 분열된 각 부락 이름과 지도 외우느라 고생했던 기억이 나네요 ㅋㅋ
만주어도 알면 한문으로 쓰인 청실록과 청사고 등이 아닌 만주어 사서를 읽는데 큰 도움이 될텐데 만주어 잘하시는 분들 정말 부럽더군요.
"여진"이 아니라 "주션Jurchen" 이란 발음이 맞습니다. 만주사람들은 그렇게 읽었어요. 오늘날 중국 한문을 그대로 읽다보니 "여진"이라고 잘못 읽게 된거지요. Jurchen이나 Joseon이나 발음이 비슷한 이유는 고조선에서 따온 이름이기 때문입니다. 한국인들은 여진족이 갑자기 튀어나온 오랑케쯤으로 인식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여진족들 관점에서는 한국이 여진족 파벌중 하나로 인식했기 때문에 이성계가 조선건국할때 여진족들이 도와주었던것입니다.
맞습니다 다 같은 형제들인데 이걸 왜 사람들이 모르는지.
홍타이지가 괜히 인조를 봐준게 아니군ㅋㅋㅋ
내가 홍타이지였으면 8조각으로 찢어죽였을텐데 그 염병을 떨어도 기어코 살려주는거 보면..
조선전기 때 만주족족장 연회열어준다고 꼬셨다가 몰살시켰음 비겁하게
재밌습니다.
모르던것도 많이알게되네요^^
6촌 형제 청해 이씨 시조 이지란 장군처럼 먼터무도 조선으로 귀화했으면 역사는 달라졌을텐데 역사는 정말 재미나네요.
역사에 만약은 없다지만 그런 상상들이 정말 흥미로운것 같습니다
다른 인물이 나타났겠죠. 누르하치 이외에 쟁쟁한 인물들이 있었으니
성니메
ㅂ
@@fold_history 1
여진족은 3부류로 나뉩니다. 건주여진, 해서여진, 야인여진....그런데 회령위쪽은 야인여진의 지역입니다.
금나라를 건국한건 해서여진 이고, 대금(후금)은 건주여진이 건국했습니다. 회령위쪽은 야인여진 지역이므로 먼터무는 야인여진이라는 뜻인데......
먼터무를 잘 포섭해서 조선에 귀화시켰으면 정묘호란이나 병자호란이 안 터졌을 수도 있었네요.
여윽시 믿고봅니다ㅎ 재밌습니다~
재밌게 봐 주셔서 감사합니다 ~ ^^
1등 늘 좋은 영상 봅니다
항상 유익한 영상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1등 항상 감사합니다~^^
그러게요 이성계의 아들들이 조금더 잘했으면.. 아들뿐 아니고 사대부들이 더 넓게 생각했어야 했는데. 아쉽네요.
청나라는 우리나라
영상 잘봤습니다~
잘 봐 주셔서 감사합니다 ~ ^^
조선개국 후에 태조 이성계와 삼봉 정도전 주도로 요동정벌을 했고 이성계와 친했던 여진족들이 협력했다면 성공했을 가능성이 얼마나 될까요?
백프로 성공
어렵다 봄 요동 정벌은 고려말때 정당성이 있었지 성계가 사대주의를 조건으로 이조 세움 그로인해 명분도 따를자도 없음
이미 그전에 심양을 점령한 적이 있으니 유지가 힘들어서 돌아옴 그리고 원라나 말기 고려 말기엔 고려왕이 심양왕도 같이 겸직하면서 만주를 지배하기도 함 그런데 이런 진취적인 역사는 절대 국사책에 기록안됨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hspark9364 이래서 이병도 제자 다들은 다 해고시켜야함
@@hspark9364 진취적이 아니라 사대하던 치욕의 역사인데 뭔가 잘못 알고 계심ㅋㅋㅋㅋ 원나라에 충견처럼 충성하는 나라라 사실상 고려왕 임명권도 원나라 황제에게 있었고 조선은 자주국이지만 고려는 중국의 식민지나 다름없었슴.심양을 다스린건 고려왕이 원나라 황제의 귀염받던 외손자라 고려왕이 만주까지 영향력을 행사한것임. 치;욕적인 사대의 역사임. 원나라가 망했는데도 원나라 섬긴다고 원나라 타도 외치는 한족 농민들 탄압하러 감 ㅋㅋㅋㅋ 그러다 광분한 농민군에게 역으로 나라가 습격당해 개털림
잘 보았어요. ^^
잘 봐 주셔서 감사합니다 ~ ^^
영상 잘봤습니다 ^^
잘 봐 주셔서 감사합니다 ~^^
그놈에 사대주의 소중화 개나발만 아녔쓰도 우리나라가 지금 보다는 훨 좋았을거 같은데
여진족도 고려와같은 같은 예맥족 후손임.
뭔이야기 합니까 이런소리하니까 중국넘들이 한반도 역사를 지나들 역사로 만드는거죠 같은종족이면 청나라 적대시하고 명나라편들다가 병자호란으로 수십만의 여자 남자들 청나라 끌려갔습니다
@@드라큘라백작-p9z 그게 청나라 입장에선 말도안되게 봐준거임. 조선 사신이 황제 칙서 쓰레기통에 버리고 황제 앞에서 절 안한다고 뻐팅기고 홍타이지가 인내력의 극한을 보여준거임.
@@드라큘라백작-p9z 만주사람들은 "주션Jurchen" 이라고 읽었습니다. 한자 발음 그대로 차용하니까 "여진"이 된거죠. Jurchen 과 Joseon 그리고 이성계를 따르던 여진족 족장들. 감 안잡히시나요?
@@드라큘라백작-p9z 북한이랑 한국은 안싸우나요??
세종께서 여진을 흡수하셔서 만주와 연해주를 복속시키시고 명까지 치셨으면 진짜 좋았을 텐데!! ㅠ.ㅠ
그건 유로파에서...! ㅋㅋ
그러게요~
명은 고사하고 여진만이라도 완전한 조선의
세력권으로 편입시켰었으면 후에 청에 굴욕을 당하는 역사는 없었을텐데요~
현실적으로 여진정벌이 많은군사 동원과
군량미등 국가재정이 많이 소요되는데
조선건국초기에 나라의 기틀을 잡고있는
시대상황상
국가재정에 막대한 영향을 주는 큰전쟁을
선택하기엔 무리였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그래도 세종께서 4 군 6 진 을 개척하셔서
오늘날의 한반도 영토가 되었지않았습니까
제 개인적으로 가장 한탄할일은
청나라,일본놈들이 제멋대로
체결한 간도협약 으로 잃어버린 간도땅입니다 ㅠ
성계가 요동회복을 포기하고 나라를 팔아 명에 굴복하는 순간 요동은 물건너간 것이죠. 나라팔아 자기 권력을 챙긴 나쁜 놈입니다. 물론 지금 이시대에 그때 상황을 다 이해하지는 못하니, 오해가 있을 수도 있겠지만요.
세종 때보다는 이성계 때 확실히 여진족을 적극적으로 포용했어야 했었음. 물론 주원장이 그 꼴을 두고 보진 않았겠지만
앞으로 중국이 망하게 되면 북한,만주에 대해 대한민국 사람들이 깊은 고민을 해야될거에요.
망할까? ㅋ
만주는 어려움. 중국인의 정체성을 가진 사람들이 1억3천만 가량. 우리가 통제 불가능하고, 흡수하더라도 민주국가에서 선거를 통해 우리가 압도될 수 있음. 러시아조차 크림반도를 뺏을때 민주적 선거제도를 통한 대의명분을 확보했음. 게다가 중국이 분열된다고 한들, 여전히 우리에게는 위협이될만한 여러개의 나라들로 갯수만 늘린 꼴이 됨. 중국 역사는 분열과 통일을 반복해왔으므로 언젠가는 한반도가 통째로 저들에게 집어삼키어질 명분만 주게 됨. 고구려 몽골(일부는 남아있지만) 여진 등등 수많은 세력이 중국을 먹으려다가 중국의 뱃속에서 소화되어 뼈도 남기지 못했음.
@꿀먹은푸른푸 그 방안은 있으신지요? 님의 고견을 듣고 싶습니다.
@@얼그레이-t6h 덩빨이 워낙 커서 먹는 순간 먹히는 꼴이구먼...
성계가 요동을 포기한게 천추의 한이 되겠네....
그리고 만주가 중국을 먹은 것도 알고보면 화근이었다.
그냥 세월 지나니, 모두 중국 한족처럼 되어 버렸으니...
한족 저놈들은 나라를 뺏기는 것도 하나의 전략인지도 모르겠다. 자신의 국경을 확장하는...
@@zhengchen9405 Pompeo openly called for regime change in China, saying that “if we don’t change China, China will change us.” 얼마전 중국 네티즌들이 한국 MBC방송 오락프로에 나온 이효리가 '마오'라는 단어를 입 밖에 나자, 벌떼같이 달라들어서 마오쩌둥을 지칭하는 것이라고 물고늘어졌다. 결국 MBC가 이효리가 나온 방송분을 전체 삭제해버렸다. 이게 있을 수 있는 일인가? 우리가 우리 안방에서 하는 말을 중국인들의 눈치를 봐서 입조심해야 하는가? 중국 대사는 한국정부에 "중국은 대국, 대국의 말을 소국이 거역하면 좋지 않다"는 식으로 협박을 한다. 현대 주권국가에서 있을 수 있는 일인가? 현대는 민주주의가 보편화된 국제규범으로 자리잡았다. 국가간에는 크기와 상관없이 외교상 주권평등의 형식을 취한다. 실제로는 그렇지 않더라도 최소한 외교상의 예의다. 이것을 무시하고 '대국 소국'을 지칭하는 것은 과거 전근대적 중화조공외교를 받아들이라는 것이다. 주권포기 요구임. 있을 수 없는일. 언젠가 시진핑 주석이 트럼프 대통령과의 회견에서 "한국은 중국의 일부분이다"라고 말했다고 트럼프가 공개해버렸다. 이에 대한 대한민국의 항의에 중국은 묵묵부답이다. 이 또한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장황하게 이야기했지만, 하고싶은 말을 하나도 하지 않은 기분이다. 사드때만해도 중국은 그런식으로 불만을 표하고 이웃국가를 협박하는 게 아니다. 중국에서는 당시 한국을 협박하여 한국인에게 중국의 무서움을 각인시켜서 성공한 전략이었다고 평가한다고 한다. ... 중국의 이러한 전근대적 시대착오적 행태는 폼페이오의 말을 적극 수긍하게 한다. 역사적으로 중국에 친근감을 느끼고 중국에 호의를 품고 있는 한국인이 이러할진데, 절대 중국에게 좋지 않은 일이다.
잘 보았습니다. 중국이 분열되어야, 한반도가 평화로운것 같습니다.
서로 분열 분쟁 반복해서 나중에 박멸되면 좋겠음
그걸 막으려고 동북공정, 서남공정 이런 시책을 실시하는겁니다.
@@츄츄삼촌 1
난 중국이 너무 좋아
그래서 중국이 여러 개 생겼으면 좋겠어
솔까. 주변나라들이 원하는건 중국의 춘추전국시대. 중국이 원하는건 시황제 독재 단일 통일시대(시진핑+황제).
그러고보니 생각난건데 조선이 마지막으로 여진족 때려잡은 때가 1600년대 초반인데
누르하치는 아니고 노토부족이라는 놈들이지만 그나마 이때까지만 해도 그랬는데
이 업적을 세운 사람은 바로 선조 여러삽질 때문에 묻히는 업적이었습니다
바로 그 노토부족한테 가토 기요마사가 털리죠ㅎ 물론 일본쪽 기록은 승리에 가깝지만요
여진족은 고구려인들입니다. 즉 금나라 청나라는 우리 형제국이었으며 우리 역사입니다. 금나라는 우리를 지배할 수 있었지만 형제의 나라로 여겼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들을 오랑케라고 무시했습니다.
여진 거란 다 고구려 발해의 후손쯤이니까.. 고려는 통일신라가아니라 고구려를 잇겠는 다는 의미로 국호가 고려임. 고구려의 후손인 거란의 장수가 조상들의 땅을 찾겠다고 고려를 겁박하니 서희는 고려는 고구려를 이은 유일한 나라라고 세치혀를 놀려 물러나게 하지. 고구려 혈통을 물려받았다고 고구려를 잇는 거라고 할 수 없지. 이미 정체성을 잃어버리고 다시 유목민족화 했으니 고려야 말로 고구려의 유지를 잇는 나라라고 주장. 중원인들이 볼때 고구려는 말갈의 나라였슴. 고구려가 들어선 땅은 말갈의 터전이였고 말갈들이 철기로 무장하고 군대조직을 갖춰 도적떼마냥 습격해왔으니까. 능숙한 기마술을 이용한 기마대로 습격하는 모습이 영락없는 말갈이였고. 말갈의 후손들이 바로 거란 여진같은 북방민족들이고. 게다가 몽고족도 한족들이 보기는 마찬가지 북방오랑캐로 그놈이 그놈인거지. 고구려를 잇는다는 고려는 원나라의 단순한 제후국이 아니라 부마국이였고 넓은 대륙에서 황제의 사위인 고려의 왕은 서열 4위, 외손자인 그 아들은 원나라 황제와 황태자에 이은 서열 3위까지 제안받은 적이 있으나 거절. 고려 영토 지도를 보면 알겠지만 고려의 북방경계는 지금의 평안도와 강원도 지역이였다. 자강도나 함경도 일대까지는 고려의 통치권이 미치지못했다. 원나라 황제는 한반도를 넘어 넓은 만주땅까지 고려에게 맡기지. 원나라 황제의 외손자인 고려왕이 심양왕까지 겸한적이 있기에 고려는 만주땅에 대해 견물생심이 생겨나지. 그래서 고려가 원나라 쇄퇴하고 공백기가 오자 제빨리 요동정벌을 계획한거임. 한족의 나라 명과 관계를 맺기 전에 선제적으로 영토확보하자는거지. 물론 결과는 이성계의 회군으로 쫑났지만..
고려는 원래 자주적이고 진취적인 나라였지만 원나라는 철저하게 고려를 예속시켜 원나라를 충견처럼 섬기게 되었지. 고려는 오랜 농경민족인 한민족의 나라라 거란 여진 몽고 같은 북방 오랑캐들과는 비록 혈통이 유사해도 이질적이고 통하지 않았다. 같은 농경문화권인 한족과 잘 통하지. 이웃인 동이족들을 멀리하고 같은 농경민족인 한족들의 나라와 적극 교류하고 친하려고 했다. 고려는 송나라와 친밀했지 발해도 고구려를 잇고 고려도 고구려를 잇는다지만 고려는 북방부족들과는 반목했다. 한족의 나라인 송나라만 바라봤지. 물론 이면에서는 그들과 이런저런 줄다리기도 있었지만 항상 소통할 수 있는 한족들과 교류하려고 했지 유목민족인 북방민족들과는 너무 문화가 이질적이라 통하지 않았슴. 거란 여진 모두 이웃이자 주적으로 국방의 불안요소들이라 군대를 강화하고 천리장성까지 쌓아가며 북방 경계를 강화했는데 남하하는 거란족과 싸우다가 고려군은 첨으로 몽고족과 조우하지. 똑같은 북방오랑캐들이지만 여진족들과는 달라보였지. 몽고는 금을 멸망시키고 요를 멸망시키고 잔당들까지 소탕하자고 대륙을 휘젓고 있었슴. 말달리며 활쏘는 모습이 얼마나 단련했는지 달인들의 수준들이라 잔당들은 달아나기 바빴고 몽고군은 양몰이하듯 그들을 족치며 쫓고 있었다. 고려군도 북방지역을 지키기 위해 잔당들을 공격하다보니 몽고족과 연합해서 토벌하는 모양새가 되지. 고려군 수장과 몽고군 수장은 잔당들을 족친후 서로 조우해 수고했다며 하고 서로 동맹관계 도모함이 어떻냐고 화기애애하게 헤어진다. 사실 거란놈들 다 쳐버렸으니 고려는 우리에게 잘해라는 무언의 압박을 준거나 마찬가지. 이후 고려와 몽고는 친구먹기로 했는데 몽고의 세력이 너무 급성장해 대륙을 휩쓸며 대적할 나라들이 없자 고려는 막가파 오랑캐인 몽고와 그래도 친목관계 맺어둔걸 한걸 잘했다고 생각했겠지. 하지만 친구 사이로 지내기엔 몽고는 너무나 급이 달라져있었다. 송나라마저 없애버리고 대륙의 패자를 선언한 몽고는 고려에게 '이젠 친구먹기에는 너무 서로 급이 다르지 않냐? 너희는 신하의 예의를 갖추고 우리를 섬겨라. 공물도 꼬박꼬박 바치고 주인님 잘 모셔봐라. 귀여워해줄께. ' 군신관계를 요구한다. 고려는 뭐 당연히 신하의 예의를 갖추겠다고 했지. 나라의 안전은 보장되니까. 그런데 몽고족의 요구사항이 어떠한 원칙도 예의도 없이 막무가내 삥뜯기 수준인지라 고려는 역시 오랑캐놈들과는 상종하기 힘들구만하고 한족의 나라가 그리웠겠지. 몽고놈들의 막가파 기질에 결국 참다참다 폭발한 고려는 주군 신하관계 쫑내기로 하고 항전태세들어가고 끊질긴 저항으로 버티기에 들어가지만 몽고족의 나라는 흔들림없어보이고 점점 세력 강해지고 굳건해보이고 이젠 가망없다고 여긴 고려는 결국 원나라에 항복의사를 전달하려고 하는데 황제가 죽어버리고 차기 황제가 불명확했지. 바로 줄서기에 들어가 그가 결국 황제가 되자 고려의 위상은 올라가지. 딸을 고려왕에게 주고 고려왕은 원나라 황실로 가서 생활하지. 고려는 원나라를 섬기는 권문세족들이 권력을 휘두르고 완전히 충견으로 변모하지. 원나라를 주인으로 철저히 모시다보니 고려는 원나라와 고려를 한몸처럼 착각했는지 원나라가 쇄퇴해서 여기저기 한족들의 반란이 일어나자 원나라 속박으로 벗어날 수 있겠다고 만세를 부르긴 커녕 감히 원나라에 항거하냐고 무리해서 농민반란군 진압하겠다고 군사까지파견하지. 그렇게 원나라의 권력이 쇄하는데도 원나라에 충성하다 농민반란군들인 홍건적들에게 습격당해 큰 화를 당하기까지 하고...
고려도 원이 다시 천하를 거뭐쥘 꼬라지가 아니니 한족의 나라인 명나라와 관계를 맺으려 했지. 적어도 한족들과는온 예의 법도가 통하니까 동의족 오랑캐들 나라처럼 막가파로 나가지는 않고 제후국이라도 나라와 나라 입장으로 자주권은 주어지니까. 동의족들은 치졸해서 이런 법도가 없었슴. 청나라도 조선 왕실에 청나라 군대를 주둔시키지. 어디 남의 나라 왕실에 군대를 주둔시키나? 명나라때 조선이 자주국이지 청나라때 조선이 자주국가라고 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였지. 원나라때 고려는 완전 똘마니 국가였고 금나라 요나라 고구려 영토에 살았던 후손들이 세운 나라들 전부 개좆같았슴. 걔들이 혈통적으로 우리와 형제뻘인지 모르겠지만 다 젖같은 못배우고 야만스런 망나니들이라 수준이 안맞아 반목하고 수준이 비슷한 이웃과 소통하고 싶은거지. 그래서 같은 농경민족인 한족들과 교류하려고 하고 명예한족처럼 여긴거임. 북방민족들과는 너무 이질적이라 그저 거리를 두고싶은 오랑캐들이였지
심지어 한족들에게 문자와 문물을 전수받은거 말고도 명나라때는 파병까지 해서 왜놈들로부터 나라까지 구원받음지.. 한족들과는 우호적으로 교류했슴. (질서를 잡고 안정을 추구하는 외교 관계를 맺기전인 고대사는 굳이 언급할 필요없는거 같고. 진나라때는 천하통일 목적이라며 고조선은 통일할 나라로 보지도 않았슴. 연나라 세력이 고조선으로 가고 나서 한나라때야 고조선도 정벌할 나라로 보인거지. 진나라에게 망한 북방나라들 유민이 고조선으로 유입된거면 한나라 입장에서는 위협세력이 된거임. 고구려는 뭐 말갈족 포섭해서 세운 다민족 국가라 내부 규합을 위해 일부러 중원나라와 적대정책 펴며 긴장관계 조성했슴. 무리해서라도 토벌하고 싶은 엄청 거슬리는 나라인거지. 각자 도생하는 습성이 있는 말갈들이 본성이 나와서 고구려 내부에서 약탈하면 안되니까 강성대국의 비젼을 심어주고 무기를 쥐어줘서 외부로 보내야 했슴. 강대한 외부적대세력을 만들어야 한거지. 그래서 수 당과 적대정책이였고 신라는 가장 만만한 약탈지였슴. 양민 습격 살인 약탈 강간 납치 인신매매... 왜구들 하던 짓을 똑같이 한 거임.. 당나라로써는 고구려라는 거슬리는 불안요소를 제거한거지. 우리가 왜구 토벌해야 한다고 생각한것 처럼 수, 당도 말갈 토벌을 생각했을꺼임. 게다가 왕가 조상이 선비족 출신임. 선비족과 말갈족은 같은 터전에서 반목하던 세력이지. 이런 저런 이후로 친해질 수 없었지만 외교질서관계가 잡히기 전 고대사는 의미가 없슴)항상 우리를 핍박한건 동이족들이였지. 지금 중국이 바로 과거 동이족들 나라처럼 막무가네 오랑캐처럼 굴고 있는것임. 한족의 기질을 가진 나라가 아님. 중국은 오랑캐 기질의 나라임. 한족들이 우리민족과 북방민족들 싸잡아 부르던 동이족.. 막상 우리와 북방민족들을 너무 이질적이라 전혀 공감대 형성을 못할 정도로 달랐슴. 한족 타도를 목표로한 누르하치는 조선을 형제의 나라처럼 생각하다 조선과 명은 하나라며 우리와 한족을 한몸 취급했고... 구석탱이 낙후된 땅에 위치한 우리 조상들은 문화 소통과 교류에 목말라 한족들의 나라만 바라봤고.. 우리도 한족들에게 오랑캐로 불리면서 북방민족들을 오랑캐라 부르며 소중화사상 쩔었지.
쵸쇼카베 해주세요 ㅎㅎ
여진족 고구려 여 발해 진이고 고구려 사람과 발해사람을 여진족이라부름 진이란 삼조선을 합쳐서 부르면 진국인데 대조영이 세운 진국이 조선을 말하고 조선족과 여진족은 한겨레입니다
"이지란과 멍터무가 6촌형제"라는
근거를 제시해 주어야 합니다.
자국이 타국에 소국이라 여김으로서 진정 소국의 길로 쇠퇴했구나. 광개토대왕이 전쟁으로 이긴것보다 포섭해서 자국민으로 만들었는데...
조선은 한참 속좁은 나라다.
만고역적 이성계의 괴뢰국
@@jaehoonha6 만고역적? 이성계아니었으면 고려는 진작에 망했음 이성계가 위대한 영웅이지 어리석은 것
최근 미중 갈등이 고조됨에 따라 중국 공산당 내부의 권력지형에 많은 변화가 있을거 같습니다.
지난 번 중국 공산당 내부의 권력 투쟁을 객관적으로 너무나 잘 설명해 주셔서 기억이 남아서 그러는데, 근래의 중국 공산당의 권력 변화나 앞으로 일어날 수 있는 경우에 대해서도 설명해주실 수도 있으신지요.
중국 현대사에 대해서는 마무리 되긴 했는데 나중에 기회되면 한번 만들어 보겠습니다~^^
비록 명나라가 임진왜란 시절 우릴 도와준 의리는 있지요.물론 그게 잘못됬다는 건 아닙니다. 광개토태왕님도 의리를 중시해서 신라를 도왔으니까요....그러나 우리가 고구려 시절 국력을 갖추지 못하게 견제했고, 결과적으로 조선이 청나라에게 압도당하고 일본에게 지배당하는 결과에 일조한 건 명심해야 하겠습니다.
그렇게 역사를 해석하는 논리라면 광개토대왕이 신라를 속국으로 만들기 위해 구원병 5만을 보내지 않는게 더 좋았겠지요. 당시의 왜는 사실상 가야를 뜻합니다. 그러니 고구려군이 금관가야로 쳐들어간거죠. 그리고 고구려의 든든한 배경을 바탕으로 신라가 가야를 병합시킬수 있던겁니다. 가야가 일본의 진짜 원류인건 존 카터코벨 박사의 논문에도 자세히 나와있습니다. 가야가 신라에 망한후에 일본에 남아있던 가야계와 백제계가 전쟁을 벌여서 백제계가 승리한후에 가야역사였던 일본이 백제역사로 둔갑하였고 가야사를 지우기 위한 작업으 임나임본부설인겁니다. 가야가 일본을 지배한것을 역으로 일본이 가야를 지배했다고 한거죠.
아무튼 광개토대왕이 신라를 구해준건 신라를 복속하고 백제와 연합해서 고구려를 위협하게 되는 최악의 수를 견제하기 위한겁니다. 의리로 그런게 아니지요. 이걸 신라가 이용해서 가야복속후에도 끊임없이 괴롭히는 백제를 고구려를 등에 입고 대항하면서 힘을 키워 오히려 백제뿐 아니라 고구려까지 멸망시켰으니 만약 고구려가 이때 신라에 구원병을 보내지 않았다면 당연히 약소국인 신라는 가야에 병합되었을거고 일본은 여전히 우리영토로 남아있었겠지요.
북방의 부여족 한반도남쪽에 연합국가 건립-->일본진출로 식민지 획득--> 한반도 동남쪽의 자생적 부족국가가 난립했던 지역에 흉노족 유입-->흉노족에 의한 여러 부족의 병합으로 신라탄생-->신라지역에 대해 종주권을 주장하는 가야와 대립-->강력한 철기문화를 바탕으로 일본이라는 식민지까지 건설한 강력한 가야연합국가의 신라침공-->이 기회를 노련 고구려의 가야침략-->이로인한 가야의 약화로 금관가야에서 대가야로 정권이양-->약해진 가야와 고구려로 인해 강해진 신라의 역전-->가야의 멸망과 신라로의 복속-->가야의 일본에 대한 종주권 상실-->신라가 가야를 복속함으로서 일본에 대한 종주권 주장-->일본에 늦게 진출한 백제계와 대립--> 일본내에서의 가야계(신라계)와 백제계의 전쟁-->백제계 승리-->백제의 일본 종주권 안정화-->신라에 의한 백제멸망-->백제의 일본종주권 상실-->일본역사에 가야,백제의 종주권 삭제작업-->1000년간 백제계와 가야계 다이묘의 전쟁-->도요토미에 의한 전국통일-->조선침략-->침략전쟁으로 얻은 도자기 기술로 만든 도자기 유럽에 수출로 인한 엄청난 이익(당시 도자기 기술은 명나라,조선, 그리고 납치된 조선도공에 의해 기술습득한 일본, 이렇게 3나라뿐, 명나라에서 유럽에 도자기판매를 금지시키자 유일한 판매처인 일본에 엄청난 수출효과, 당시 유럽전역의 도자기 수입의 99%가 일본산)-->해외로 부터 도자기값으로 들여온 은을 통한 일본의 부국강병-->일본전역이 골고루 부흥하면서 충분한 근대화 역량이 준비됨-->미국에 의 한 강제 개방후 근대화 작업-->초기자본주의로 인한 수요와 공급의 불균형으로 인한 경제위기-->조선병합을 통한 안정적인 수요처와 값싼 원자재와 노동력을 얻어 완전한 근대국가로 발돋움-->조선병합의 효과로 10년간 연 20%의 놀라운 경제성장을 이룩했으나 식민지의 부족으로 효과가 점차 둔화-->조선병합과 같은 경제효과를 노리고 만주국에 괴로정부 세움-->중국을 식민지화 하여 경제력확장을 꾀하기 위해 중국침략--->전쟁의 장기화로 원유의 부족현상을 겪고 원유가 있는 인도네시아침공 계획세움-->인도네시아와 일본사이에 있는 필리핀을 거쳐야하는데 미국의 식민지였으므로 미국본토에서 한번에 태평양을 건너는 기술이 없었으므로 중간기착지인 하와이폭격-->미국 본격적인 태평양전쟁 참전-->원폭 두방 시험삼아 떨어뜨린후 일본전역에 30개의 원폭투하계획-->일본이 단 두방만에 항복하며 추가 원폭계획 백지화-->일본을 4개로 나뉘어 자유중국,소련,영국,미국이 식민지화 하기로 의결-->갑작스런 일본의 빠른 항복과 중국공산당에 패전한 자유중국이 대만으로 망명하며 4개분할계획 백지화--> 미국에 의한 일본의 전국토 농업화계획과 모든 공업관련 시설 철거계획(일본의 영원한 농업국가화계획)-->한반도에서의 한국전쟁 발발로 시급한 전쟁물자 필요-->한반도 바로옆의 근대화된 공업국이었던 일본, 한국전쟁으로 물자조달처로 막대한 부를 획득과 동시에 농업국가계획 백지화, 일본의 기사회생.
이게 바로 일본역사의 맥락이랍니다.
@심준호 왜군 잔여병력이 가야로 빠졌다는 증거는? 낙랑과 가야의 거리가 그렇게 먼데 가야가 낙랑이 무너지자 약해졌다는 증거는? 가야와 낙랑이 밀접한 중계무역을 했더라도 낙랑이 무너졌다고 가야도 약해졌을거라는 이유는? 당신이 말한 시기는 서로 너무 긴데 마치 일이년만에 다 일어난것처럼 쓴 이유는? 국제정세는 급변하기 마련이고 가야가 종주국으로 군림하고 있더라도 고구려의 공격으로 약화되었으면 당연히 바로 옆 신라에게 역전당하는게 당연한건데 고구려의 영향력이 줄어든후에 병합한것과는 대체 무슨 상관이며 그렇게 생각한 증거는? 일본의 에도막부시절 수출품의 90%가 도자기였고 그 댓가로 은을 받아 이를 재정으로 충당하면서 개간을 하고 도로를 정비하면서 경제순환이 이뤄졌는데 둘사이의 연결고리를 생각하지 못하는건 무슨 이유로? 각자 사기에 왜라는 표현이 가야와 동일시되는 부분에 대한 설명은? 가야가 곧 왜라면 가야가 망한후 그 후손이 왜를 쓰는것이 전혀 이상하지 않은데 무엇때문에 아니라고 생각하는지 그 이유는? 혹시 왜라는 말이 진짜 왜소하다고 할때 쓰는 비하적인 말이라고 알고 있는건가? 부족장연맹단계에 불과했따는 증거는? 그런 논리면 중앙집권체제의 앞선 정치체계를 가진 조선이 봉건제를 유지하는 일본에 밀린 이유는? 훨씬 앞선 선진국가였던 송나라가 유목민족에 불과한 거란에 유린당하고 여진에 폭행당하고 몽골에 망한 이유는? 대체 부족장연맹단계의 국가가 다른 국가보다 국력이 약했을거라는 망상은 어디서 나온거임? 그런식이면 어떻게 그리스가 대제국 페르시아를 물리치나? 고작 도시국가들 연합인데? 오히려 출토되는 유물의 연대시기를 비교해보면 가야가 훨씬 앞선 문명이었는데도 동시대 신라가 더 국력이 앞설거라는 망상의 근거는? 내가 틀린 부분도 있을수 있지만 역사는 당신이 생각한대로만, 누군가 가르치는 대로만 펼쳐졌을거라고 보고 한번도 비틀어 보지 않는건, 혹은 그럴수도 있었겠다라는 생각조차 못하고, 당신이 나열한 내용도 알고보면 고작 사서에 한두줄을 가지고 역사학자들의 추론에 의한것들인데 왜 그것만 옳다고 하는 이유와 증거는?
@심준호 낙랑이 가야를 좌지우지할수 있었다는 증거는? 그런 추론말고 직접적 증거를 대보라니까. 그냥 그럴거야..라고 일부학자의 주장을 그대로 답습하는데 그 학자들도 누가 이런 질문을 하면 입닫고 있는데 당신은 잘 아나봐. 증거부탁함. 다이묘가 힘을 잃어 중앙집권이나 다른바 없었다는 논리는 가야연맹뿐 아니라 모든 정치체계에 다 갖다 붙일수 있겠네. 무조건 지말이 옳다고 하기 위해 자기논리부정이라니. 앞말 다르고 뒷말 다르고. 내가 제시한 의문의 근거나 대보시지? 대체 누가 도자기 하나로 내수를 돌렸다고 했지? 도자기 수출이 전체 수출의 90%는 팩트임. 그걸로 엄청난 부를 축적한것도 팩트지. 만약 몇백년후 한국은 반도체 수출이 많았다고 하면 님같은 사람은 그걸로 누가 내수를 돌리냐는 엉뚱한 논리를 전개했겠음. 하나의 정책이나 사건이 국가전체에 도미노처럼 나비효과처럼 맞물리는 효과를 모름? 방금은 연맹제국가가 발리는것처럼 말하더니 송나라가 망한건 군벌화될까봐임? 고려시대가 조선때보다 군사력이 나았던게 바로 지역군벌이 있었던것이 주요했는데 가야연맹도 각 부족의 군사력이 약했을거로 보임? 대체 자기 부정도 아니고 앞뒤가 왜 안맞음? ㅉ그리고 송나라 군사력이 약했다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진짜 아무것도 모르네. 그 약한 송이 몽골과 40년전쟁을 함? 몽골은 인류역사상 가장 강한 군대를 보유한 국가였는데 호라즘도 무너뜨린 몽골이 겨우 복속한 나라가 송제국인데 뭔 약화? 그렇게 따지면 당은 약한 구석이 없음? 어떤 나라도 그런식으로 물고 늘어지면 다 기적의 논리가 되버리지. 뭔 자기말 맞게 할려고 엉뚱한 논리를 다 가져다 붙이나? 연맹왕국과 중세의 군사력일치가 다르다? 그 증거는? 대체 그게 가야연맹과 맞아떨어진다는 증거는? 그 가야가 정말 당신이 말하는 그런 서구식부족연맹체제라는 증거는? 가야가 신라보다 약했을거라는 결정적 증거는? 가야가 신라보다 못하고 문화적으로도 약세였을거라는 증거? 가야가 일본진출한것도 아니라고 할거 같네. 그럼 그 증거는? 일본의 고대신들 상당수가 가야에서 넘어온 인물이거나 가야의 귀족, 왕이었을거라는 일본측 논문이 있는데 이것도 틀렸다고 보는 당신의 증거는? 가야가 망한후 백제에게 일본에 대한 종주권이 넘어갔다는 내 주장은 일본의 고대신과 천황의 계보가 가야계에서 자연스레 백제계로 넘어가는것을 토대로 여러 학자들이 주장하는 부분인데 이것이 당신말대로 틀렸다면 일본의 역대천황계보는 대체 어케만들어진거임? 증거부탁함.
@심준호 가야가 중앙집권국가나 다름 없다고 말한적 없는대? 따라하지 마라 우습다.ㅋㅋㅋㅋ 니가 가야가 부족연맹국가인데 신라보다 강할수 없다며? 그게 더 우습지. 그런 논리면 정치체계가 앞서면 군사력도 무조건 강해? ㅉㅉㅉ 자기말에 자기가 넘어지는줄 몰라. 일본이 내수돌리는 원동력이 무역없이 가능했다고 보는 좁은 시각이라니. ㅋ 그럼 일본은 해적질도 금하고 해외와 교역없이도 혼자서 부국강병했겠네. 그게 가능한 증거좀 부탁함. 그리고 뭔 남송 북송을 또 나눠?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정강의 변하나로 국가가 전혀 다른게 되버림? 임마 나누는건 역사적 연대에서 그런거고 하나로 통하는 정치체계와 역사적동질성을 갖고 있는데 나눠보려면 적어도 신라고려정도는 되야지. 역사의 모르는 부분은 대부분 추론에서 시작하는데 너는 증거는 하나도 안가져오고 무조건 내말이 틀렸댔지? 그렇다면 증거를 가져와보라니까? 왜 나보고 가져오래? 니가 내말이 틀렸다며? 그럼 틀렸다는 증거를 가져와봐. 연맹왕국이 고대왕국보다 국력이 강할수 있는 근거를 가져오래.ㅋㅋㅋㅋㅋ 아니 그럼 니가 또 니말대로 자기부정 아니냐? 니말이 맞을려면 다른 정치체계가 낮은대도 제국을 이긴 국가들은 다 뭐야? 서로마는 뭐 정치체계가 후진적이라 게르만족에게 유린당했나? 대체 누가 도자기 수출하나로 모든게 다 잘되었다는거냐? 누가 그러디? 그게 나비효과가 되어서 다른 여러 원인과 맞물리는거지 도자기 하나만으로 모든게 되었대? 그럼 뭘 설명할때 그런 부분까지 세세히 다 말하나? 사람이 이해력이란게 있는데 1+1=2인걸 더 자세히 말해야하나? 송나라 역사도 송나라 하나만 보지말고 한나라이후의 중국역사와 주변 이민족역사를 함께 봐야 이해가 가능하단다. 무슨 송나라가 화평정책때문에 약해진줄 알고.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런 정책을 펴야하는 이유와 그렇게 된 연사적 은원과 맥락을 봐야지. 당나라가 그시대에 있으면 다를줄 암? 뭐 내주장도 입증 못하면 남한테 입증하라고 나불대지 말라고? ㅋㅋㅋ 지말에 또 지가 넘어질려고 발악하네. 말 잘했다. 니 주장대로 니가 입증못하면서 왜 내 댓글에 태클걸었냐? 그러니까 입증을 하라고, 증거를 대라고. 니가 말한 세가지 내가 답했으니 니가 내 질문에 다 답해봐라. 이걸로 한 3달간만 질문해보자. 나 원래 이런걸 재밌어하고 취미니까 도망가기 없기다.
@심준호 누가 역사에 만약이래? 난 만약을 말한적 없는데? 넌 누구랑 댓글을 쓴거냐?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만약이 아니고 저렇게 풀이한거라고. 니가 풀이한 역사가 맞다면 증거를 대라니까 왜 자꾸 아까부터 자기 발등을 찍고 있어? 증거를 대라고 증거? 내 주장이 틀렸다면 증거를 대야지. 똑같은 역사적 사실과 사료를 갖고 다른 추론을 할수 있지만 반박을 하려면 증거는 대야지. 난 니가 틀렸다고 말하지 않았단다. 다만 니 주장이 맞다면 증거를 대라고 했지? 그러니까 증거를 대라고? 그정도 능력도 없이 댓글 단거야? 증거를 가져와 증거!!!
이성계도 여진족이다
이성계가 명을 조상의 나라로 여기고 모든 일이 명이 우선하여
몽골 여진 등 명을 치려고 조선의 협조를 구했으나 모두 거부
고려가 연장이 되었으면 요동과 연해주는 한국 땅.ㅋㅋ
이성계는 한국역사에서 가장 저평가된 인물 중 하나... 누르하치보다 위대한 인물이다 명나라가 전성기만 아니었다면 만주는 조선이 차지했을 것
이성계도 여진족 아닌가요?
헛소리
여진족은 투르크계 신라도 투르크계
투르크계의 뿌리는 스키타이
스키타이의 다른 이름은 샤카족
라고 합니다
빗살무늬가 나오는 벨트를 따라가보면 중앙아시아를 거쳐 터키까지 가는데
이것은 스키타이의 공통적인 문화였다고 합니다
고조선 단군이 우리뿌리인데 고조선은 다민족 공동연합이었을 것이고 다인종 국가였을 것이라고 합니다 지금의 미국처럼
지배세력인 단군이 스키타이계가 아니었을까요
다른곳에서 진보된 문화를 가지고 온
미국으로부터 진보된 문화를 받아들여 선진국이 된 지금의 대한민국처럼
결국 원주민과 이주민의 합작이 우리라는 것이 아닐까요
그 문화와 정신을 계승하면서 각지역으로 나뉘고 각나라로 나뉘고 하는것이 아닐까 합니다
땅이 다르면 환경과 기후가 다르고
그것에 영향을 받으면 모습은 조금씩 달라지니
멍청한 소리 하지마라 일본위키백과 넷우익들이 그렇게 주장하더라
여진은 올바른 발음이 아닙니다. "Jurchen주션"이라고 읽습니다. 한국말로 한문 그대로 읽으면 "여진"이라고 읽구요. 원래 "주센"이라고 읽으라고 쓴 글자입니다. Jurchen, Joseon 이게 우연이라고 보시나요. 이성계가 건국할때 여진족 장수들이 따르던 이유가 우연이라고 보시나요? 원래 주센족들 파벌 여러개가 존재했고 한국도 그중에 하나였을뿐입니다.
전부 몽골리인들.먼친척들이라는 말씀.
유튭 역사 영상중에 하나는 이성계는 여진족 출신이었다 라는 주장을 하시는 분도 계시던데 어떻게 생각하시나여..?
일리있는데;
근거 없어요.
글쎄요
전주이씨는 투르크혈통이라
근거없는 사실입니다
전주이씨 족보에도 토착호족출신인 이성계의 조부와 중앙에서 판견된 지방관과 대립때문에 목숨의 위협을 느껴 함흥으로 일가를 이끌고 피신하였다 적어졌고 첫째였던 조부의형 집안은 전주에 남고 둘째였던 이성계조부만 함흥으로 이주했다 적혀 있죠
여진족들 관점에서는 한국자체가 여진족 파벌중 하나였을뿐입니다. 애당초 여진족들이 이성계를 따라다닐 이유가 없죠. 여진을 한문을 그대로 읽으면 안됩니다. 원래는 "Jurchen주셴" 이라는 소리를 표현하기 위에 쓴 한문입니다. Jurchen, Joseon 비슷한 이름을 사용한건 우연의 일치가 아닙니다. 원래 한국의 "한"은 징기스칸의 "칸"에서 변형된것입니다. 신라시대 마립간 이런 왕을 부르는 호칭도 마립"칸" 이런 이름이었던거죠.
이성계 이자춘 부자는 여진족이다.
그래서, 자국민을 철저히 노예화했구나~ 그런데 광화문에 있는 세종은 뭐야
헛소리
@@jy5515 이성계의 5남의 셋째 아드님임
일본 위키백과 넷우익들이 그렇게 주장하던데 노예근성에 찌든 멍청한 것
여진은 올바른 발음이 아니에요. "Jurchen주션" 이라는 소리를 표현하기 위에 쓴 한문입니다. Jurchen, Joseon 비슷한 이름을 사용한건 우연의 일치가 아닙니다. 이성계가 건국할때 여진족 장수들이 따라다닌 이유는 이성계가 여진족이어서가 아니라 한국도 여진족 파벌중 하나였기 때문입니다. 여진족들의 관점은 그렇습니다. 원래 한국의 "한"은 징기스칸의 "칸"에서 변형된것입니다. 신라시대 마립간 이런 왕을 부르는 호칭도 마립"칸" 이런 이름이었던거죠.
이성게군의부하엿다고?
이성계는 몽골후예
역사를 알려주는것은 좋은데 지도가 조선영토 지도가 아니라 친일 식민사핟자들이 주장하는지도네.김종오의 대동여지도에 왜 간도가 지도에서 빠졌는지나 알려보소.
그냥 간단합니다. 대동여지도 초기본 보면 북쪽지방상당부분이 오류가 있습니다. 그 이유가 대동여지도를 만들때 직접 돌아다닌길 + 지인들 증언 + 각종 지도 등을 참고해서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근데 아시다시피 한반도 북부, 그것도 최북단 부분은 더럽게 추움 + 산지로 도배됨 + 개마고원 이라는 무지막지한 사람이 쉽게 접근할만한 환경이 아니다 보니 여러가지 오류가 생길수밖에 없었습니다. 거기에 대동여지도는 어디까지나 한반도지도였기도 하고 참고자료가 동국여지승람이라든가 각종 군사지도등이었다 보니 간도가 빠질수밖에요...
대동여지도는 나무로 찍어낼수 있게 만들엇는데 일본놈들이 그냥 빼버린거임
부하가아니고이성계의형제이지란
조만간 중국에서 이성계= 여진족=중국인 기적의 논리 나올거임ㅋㅋ
이미 여기 개돼지들 그런 소리하는거보임 일본위키백과에도 그렇게 쓰여있고
중국에서 여진족을 중국인이라 하면 당장 만주를 분열시키고 중국 없애야됨
싫어요 ! 3 누구냐!!!!!!!!!!!!!!!!!!!!!!!!!!!!!!!!!!!!!!!!!!!!!!!!!!
30이다
이성계 조상이 고려시대 간도땅으로 가서 후손이 고려인과만 결혼했겠냐 당연 여진족 여자랑 결혼 하고 고려인과도 결혼하고 계속 섞인거지
중국에서는 조선 여진 몽골 거란을 사촌으로 본다.
그게 바로 동북공정입니다.
중국 한족은 티벳,위구르,몽골,만주(거란,여진),한국(조선)과 뿌리부터 문화까지 달라요..
오히려 만주,몽골,위구르는 한국과 더 가깝습니다.
여진 거란 다 고구려 발해의 후손쯤이니까.. 고려는 통일신라가아니라 고구려를 잇겠는 다는 의미로 국호가 고려임. 고구려의 후손인 거란의 장수가 조상들의 땅을 찾겠다고 고려를 겁박하니 서희는 고려는 고구려를 이은 유일한 나라라고 세치혀를 놀려 물러나게 하지. 고구려 혈통을 물려받았다고 고구려를 잇는 거라고 할 수 없지. 이미 정체성을 잃어버리고 다시 유목민족화 했으니 고려야 말로 고구려의 유지를 잇는 나라라고 주장. 중원인들이 볼때 고구려는 말갈의 나라였슴. 고구려가 들어선 땅은 말갈의 터전이였고 말갈들이 철기로 무장하고 군대조직을 갖춰 도적떼마냥 습격해왔으니까. 능숙한 기마술을 이용한 기마대로 습격하는 모습이 영락없는 말갈이였고. 말갈의 후손들이 바로 거란 여진같은 북방민족들이고. 게다가 몽고족도 한족들이 보기는 마찬가지 북방오랑캐로 그놈이 그놈인거지. 고구려를 잇는다는 고려는 원나라의 단순한 제후국이 아니라 부마국이였고 넓은 대륙에서 황제의 사위인 고려의 왕은 서열 4위, 외손자인 그 아들은 원나라 황제와 황태자에 이은 서열 3위까지 제안받은 적이 있으나 거절. 고려 영토 지도를 보면 알겠지만 고려의 북방경계는 지금의 평안도와 강원도 지역이였다. 자강도나 함경도 일대까지는 고려의 통치권이 미치지못했다. 원나라 황제는 한반도를 넘어 넓은 만주땅까지 고려에게 맡기지. 원나라 황제의 외손자인 고려왕이 심양왕까지 겸한적이 있기에 고려는 만주땅에 대해 견물생심이 생겨나지. 그래서 고려가 원나라 쇄퇴하고 공백기가 오자 제빨리 요동정벌을 계획한거임. 한족의 나라 명과 관계를 맺기 전에 선제적으로 영토확보하자는거지. 물론 결과는 이성계의 회군으로 쫑났지만..
고려는 원래 자주적이고 진취적인 나라였지만 원나라는 철저하게 고려를 예속시켜 원나라를 충견처럼 섬기게 되었지. 고려는 오랜 농경민족인 한민족의 나라라 거란 여진 몽고 같은 북방 오랑캐들과는 비록 혈통이 유사해도 이질적이고 통하지 않았다. 같은 농경문화권인 한족과 잘 통하지. 이웃인 동이족들을 멀리하고 같은 농경민족인 한족들의 나라와 적극 교류하고 친하려고 했다. 고려는 송나라와 친밀했지 발해도 고구려를 잇고 고려도 고구려를 잇는다지만 고려는 북방부족들과는 반목했다. 한족의 나라인 송나라만 바라봤지. 물론 이면에서는 그들과 이런저런 줄다리기도 있었지만 항상 소통할 수 있는 한족들과 교류하려고 했지 유목민족인 북방민족들과는 너무 문화가 이질적이라 통하지 않았슴. 거란 여진 모두 이웃이자 주적으로 국방의 불안요소들이라 군대를 강화하고 천리장성까지 쌓아가며 북방 경계를 강화했는데 남하하는 거란족과 싸우다가 고려군은 첨으로 몽고족과 조우하지. 똑같은 북방오랑캐들이지만 여진족들과는 달라보였지. 몽고는 금을 멸망시키고 요를 멸망시키고 잔당들까지 소탕하자고 대륙을 휘젓고 있었슴. 말달리며 활쏘는 모습이 얼마나 단련했는지 달인들의 수준들이라 잔당들은 달아나기 바빴고 몽고군은 양몰이하듯 그들을 족치며 쫓고 있었다. 고려군도 북방지역을 지키기 위해 잔당들을 공격하다보니 몽고족과 연합해서 토벌하는 모양새가 되지. 고려군 수장과 몽고군 수장은 잔당들을 족친후 서로 조우해 수고했다며 하고 서로 동맹관계 도모함이 어떻냐고 화기애애하게 헤어진다. 사실 거란놈들 다 쳐버렸으니 고려는 우리에게 잘해라는 무언의 압박을 준거나 마찬가지. 이후 고려와 몽고는 친구먹기로 했는데 몽고의 세력이 너무 급성장해 대륙을 휩쓸며 대적할 나라들이 없자 고려는 막가파 오랑캐인 몽고와 그래도 친목관계 맺어둔걸 한걸 잘했다고 생각했겠지. 하지만 친구 사이로 지내기엔 몽고는 너무나 급이 달라져있었다. 송나라마저 없애버리고 대륙의 패자를 선언한 몽고는 고려에게 '이젠 친구먹기에는 너무 서로 급이 다르지 않냐? 너희는 신하의 예의를 갖추고 우리를 섬겨라. 공물도 꼬박꼬박 바치고 주인님 잘 모셔봐라. 귀여워해줄께. ' 군신관계를 요구한다. 고려는 뭐 당연히 신하의 예의를 갖추겠다고 했지. 나라의 안전은 보장되니까. 그런데 몽고족의 요구사항이 어떠한 원칙도 예의도 없이 막무가내 삥뜯기 수준인지라 고려는 역시 오랑캐놈들과는 상종하기 힘들구만하고 한족의 나라가 그리웠겠지. 몽고놈들의 막가파 기질에 결국 참다참다 폭발한 고려는 주군 신하관계 쫑내기로 하고 항전태세들어가고 끊질긴 저항으로 버티기에 들어가지만 몽고족의 나라는 흔들림없어보이고 점점 세력 강해지고 굳건해보이고 이젠 가망없다고 여긴 고려는 결국 원나라에 항복의사를 전달하려고 하는데 황제가 죽어버리고 차기 황제가 불명확했지. 바로 줄서기에 들어가 그가 결국 황제가 되자 고려의 위상은 올라가지. 딸을 고려왕에게 주고 고려왕은 원나라 황실로 가서 생활하지. 고려는 원나라를 섬기는 권문세족들이 권력을 휘두르고 완전히 충견으로 변모하지. 원나라를 주인으로 철저히 모시다보니 고려는 원나라와 고려를 한몸처럼 착각했는지 원나라가 쇄퇴해서 여기저기 한족들의 반란이 일어나자 원나라 속박으로 벗어날 수 있겠다고 만세를 부르긴 커녕 감히 원나라에 항거하냐고 무리해서 농민반란군 진압하겠다고 군사까지파견하지. 그렇게 원나라의 권력이 쇄하는데도 원나라에 충성하다 농민반란군들인 홍건적들에게 습격당해 큰 화를 당하기까지 하고...
고려도 원이 다시 천하를 거뭐쥘 꼬라지가 아니니 한족의 나라인 명나라와 관계를 맺으려 했지. 적어도 한족들과는온 예의 법도가 통하니까 동의족 오랑캐들 나라처럼 막가파로 나가지는 않고 제후국이라도 나라와 나라 입장으로 자주권은 주어지니까. 동의족들은 치졸해서 이런 법도가 없었슴. 청나라도 조선 왕실에 청나라 군대를 주둔시키지. 어디 남의 나라 왕실에 군대를 주둔시키나? 명나라때 조선이 자주국이지 청나라때 조선이 자주국가라고 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였지. 원나라때 고려는 완전 똘마니 국가였고 금나라 요나라 고구려 영토에 살았던 후손들이 세운 나라들 전부 개좆같았슴. 걔들이 혈통적으로 우리와 형제뻘인지 모르겠지만 다 젖같은 못배우고 야만스런 망나니들이라 수준이 안맞아 반목하고 수준이 비슷한 이웃과 소통하고 싶은거지. 그래서 같은 농경민족인 한족들과 교류하려고 하고 명예한족처럼 여긴거임. 북방민족들과는 너무 이질적이라 그저 거리를 두고싶은 오랑캐들이였지
심지어 한족들에게 문자와 문물을 전수받은거 말고도 명나라때는 파병까지 해서 왜놈들로부터 나라까지 구원해주지.. 한족들과는 우호적으로 교류했슴. 항상 우리를 핍박한건 동이족들이였지. 지금 중국이 바로 과거 동이족들 나라처럼 막무가네 오랑캐처럼 굴고 있는것임. 한족의 기질을 가진 나라가 아님. 중국은 오랑캐 기질의 나라임. 한족들이 우리민족과 북방민족들 싸잡아 부르던 동이족.. 막상 우리와 북방민족들을 너무 이질적이라 전혀 공감대 형성을 못할 정도로 달랐슴. 한족 타도를 목표로한 누르하치는 조선을 형제의 나라처럼 생각하다 조선과 명은 하나라며 우리와 한족을 한몸 취급했고... 구석탱이 낙후된 땅에 위치한 우리 조상들은 문화 소통과 교류에 목말라 한족들의 나라만 바라봤고.. 우리도 한족들에게 오랑캐로 불리면서 북방민족들을 오랑캐라 부르며 소중화사상 쩔었지
@@올인-f3b
문명이 발달했던 동아시아 세력이 반복적으로
중원을 정복하고 한반도의 주도세력이 되었다가 밀려나면 일본열도로 도망갔다가 근대에 한반도 먹고 중원먹으려다 도망갔음
그래서 중원의 역사는 오랭캐라고 불리는 북방민족으로 이루어져 있음
한반도 역시 요동과 만주쪽 지배세력이 반복적으로 내려와 주도세력이 됨
현재 한반도도 북쪽은 북쪽사람들이
남쪽은 해방 후 탈북자들이 주도세력임
해방 후 탈북자들이 남쪽사람 빨갱이로 몰아 엄청죽였음.
과거에는 세력이 커지면 역적으로 몰아 죽이고 주도세력이 됨
@@김홍-y7w 상식은 알고 사시길... 문명이 발달??? 유목민족이 무슨 문명이 발달해요. 오랑캐라 멸시받던 민족들인데 어휴...
@@올인-f3b ㅇㅇ 잘하세요
요동의 위치가 조작되었는데
1600년대 말까지
베링해협은 육지였고
베링해협 중간에 거대한 강인 요하가
있었고
이 요하의 동쪽이 요동임
현재 알류샨 열도 지역임
1600년대 말 대지진이 수십년간
계속돼 베링해협 지반이 침하돼
바다가 되고
북극물이 내려와서 해수면이
상승하게됨
이성계는 여진족이거나 대륙의 소수 부족중 한분야라는 설도 있습니다. 역사는 승자의 편입니다. 개국신화는 어느 국가든 어느정도 조작되있죠.
맞습니다 이성계 여진족이였습니다 여진은 한자 발음이고 만주어로는 쥬센 쥬르센이라 불렷죠
당시는 국가 민족구분이 명확하지 않지만 이성계 역시 여진족이였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당시 원나라 명나라가 공존하던 시대인데 이성계,이지란씨도 두나라에서 관직을 했었죠. 그때 기록에 한반도 출신의 장군들은 이름은 바꿔도 성은 그대로 썼는데 이성계 이지란씨는 성을 쓰지 않았다고 하네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조상 조작을 할려면 수많은 인물중 고려시대 역적의 대명사인 이의방의 친척이라 하겠냐.. 게다가 조상인 이안사는 고려 배신때리고 원나라에 투항한 배신자인데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공민왕 공식적으로 쓰던 이름이 뭔진아냐? 백안 첩목아다 (바얀 테무르)원사에 고려국왕 백안첩목아 이런식으로 나와 ㅉㅉ 공민이란 명칭은 한참뒤에 명나라한테 받은거야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지란 이름이 고륜두란첩목아 (쿠룬투란테무르)였다구 ㅉㅉㅉ 몽골에 투항한애덜 성을 죄다 테무르쓰게했는데 뭔 개솔여.
명문세족 가문에 어떻게 족보세탁함? 집안이 망해서 도망간 사람 후손이라 해야 사람들이 아 그런가 하지 생각 좀
먼터무 그림 류승룡씨 닮았네요 ㅋㅋ
이성계는 신라시대 완산주(전주)의 지방관료였는데 세력이 쎄서 신라조정에서 억압받아 삼척을 거쳐 함흥으로 이주하였다
내용이 다틀린데요?
고려조정아닌가
고려때고요 전주의 토착호족이었고 향리였는데 중앙에서 파견된 지방관과 사사로운 감정싸움때문에 목숨에 위협을 느껴서 일가를 이끌고 함흥으로 피난을가죠
그리고 피난간 사람이 이성계가 아니라 이성계의 조부되는사람입니다
그때는 이성계도 태어나지도 않았고요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요?
성계와 27 마리 기자조선 이라..나 참..다시는 저딴 성계의 기자조선이 없어야 된다는 걸 교훈으로 삼아야 될 마당에 뭔 짓인지
제친구가 전주이씨인데
여진족 왕 초상화랑 똑같이 생겼습니다.
얼굴이 동그랗게 생긴게 여진족과 판밖이 입니다.
2등
2등 감사합니다 ~^^
이성계가 여진족 사람인가 원나라 사람인가 그런다고 했는데
개소리좀 하지마라 중국이나 일본넷우익들이 그런 소리하지 사료에 고려인이라 쓰여있고 가계도도 있는데 헛소리야
단군조선의 분화가 북부여 남부여 동부여 그것이 분화되면서 고구려 신라 백제
그것이 중국 한국 일본이 된게 아닐까 합니다
크게 보면
더 올라가게 되면 유라시아지역의 동쪽 서쪽으로 나뉘고 그 언저리쯤 시베리아를 거쳐 북미남미로 뻗어나가지 않았나 싶고
서쪽으로 그리스 이태리 남쪽으로 이집트 이란 인도로 가지 않았을까 합니다
그 모집단이 파미르고원 혹은 근처의 산 산맥에 살던 사람들이 아니었을까 합니다
역사 모르는 일반인이고 이것저것 보고들은 것을 러프하게 크게 보면 흐름이 이렇지 않나 하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언어학적으로 보면,.,.,
우리의 조상과 중국의 조상은 다릅니다.
님의 말도 가능성은 있습니다 china 지나 시나 신라 . 고구려 korea 한국 . 백제 일본
@@dlwlrma_solo 고구려와 신라는 말이 통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이성계는 여진족 다루가치 집안.
그래서 푸른용포.
호남 곡창 있으니까 식량주면서 개폼잡네 그거마저 없으면 무슨 가치가 있는 땅일까
ㅋㅋㅋㅋㅋ 생각하는 수준 봐라 과연 식량뿐이었을까? 다른 지역에 비해 비교우위가 곡창지대였다는게 대표적인거지 다른 것들이 모두 뒤쳐지거나 없다고 판단하는 수준이 영 ㅋㅋㅋ 으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