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참을 듣다보니 결국 제가 느낀 레비나스의 그 모호성이 레비나스가 말하려는 타자의 얼굴이 가진 성질 그 자체라는 생각이 듭니다 초월적 신과 주체를 다시 데려오는 레비나스의 사유가 비현실적이고 어떤 행위자를 설정한다는 비판이 왜 있는지도 알 것 같은데 한편으로는 얼마 전 읽은 소설에서 어딘가에 닿을 수는 없음을 알지만 닿을 수 있다고 믿으며 끝없이 걷는 그 윤리적 자세가 우리에겐 필요하다는 말이 생각나면서 그리고 그런 걸음을 걸을 수 있는 것은 결국 자아이면서 타자인 주체로서의 우리라는 생각이 들면서 애정이 가는 이론입니다 감사합니다
레비나스의 동일자의 동일성 해치지 않는 타자의 초월성. 그러면서도 그 외부에서 끝없이 말걸기의 대상이자 말걸기를 당하는 주체로서의 외재성으로서의 타자가 바로 부정으로서만 설명될 수 있는 언어.타자.이질성에 대한 상징(개념화할 수 없는)과도 같군요.. 부정의 변증법을 듣고 오니 저번엔 이해하지 못했던 이 부분이 뚫립니다 감사합니다
한참을 듣다보니 결국 제가 느낀 레비나스의 그 모호성이 레비나스가 말하려는 타자의 얼굴이 가진 성질 그 자체라는 생각이 듭니다 초월적 신과 주체를 다시 데려오는 레비나스의 사유가 비현실적이고 어떤 행위자를 설정한다는 비판이 왜 있는지도 알 것 같은데
한편으로는 얼마 전 읽은 소설에서 어딘가에 닿을 수는 없음을 알지만 닿을 수 있다고 믿으며 끝없이 걷는 그 윤리적 자세가 우리에겐 필요하다는 말이 생각나면서 그리고 그런 걸음을 걸을 수 있는 것은 결국 자아이면서 타자인 주체로서의 우리라는 생각이 들면서 애정이 가는 이론입니다
감사합니다
아주 좋습니다! ^^
레비나스의 동일자의 동일성 해치지 않는 타자의 초월성. 그러면서도 그 외부에서 끝없이 말걸기의 대상이자 말걸기를 당하는 주체로서의 외재성으로서의 타자가 바로 부정으로서만 설명될 수 있는 언어.타자.이질성에 대한 상징(개념화할 수 없는)과도 같군요..
부정의 변증법을 듣고 오니 저번엔 이해하지 못했던 이 부분이 뚫립니다
감사합니다
그렇다면 이항대립의 불가능은 나쁜 게 아니라 타자를 계속 타자로 놓을 수 있는, 그래서 결국 나도 동일성을 가질 수 있는 기반이 되겠네요
네, 굿입니다! 아주 잘 하고 계셔요! 엄지척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