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터슨 교수님 우리나라 역사를 긍정적으로 해석해주시는것에 항상 신선한 충격을 받았는데 오늘도 새로운 역사를 배웠습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조선의 역사와 유교, 특히 성리학에 대해 너무나도 비판적이고, 가끔은 비판을 넘어서 자기비하에 가까운 거 같아요 사실은 그런 것들도 일제시대 때 심어진 식민사관의 뿌리.. 아니 어쩌면 지금도 뉴라이트로 이어지고 있는 지독한 식민사관의 잔재가 아닌가 싶어요. 광해군은 정쟁에 희생된 성군이 아니고 탄핵될만한 왕이었군요. 살려고 왕을 내쫓았다~!! 거기다 탄핵이 민주주의의 중요한 지표라는 피터슨 교수님의 말씀에 오늘날 한국, 과거 조선 동시에 위안+깨달음을 얻습니다. 오늘도 새로운 시각을 열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광해군 때를 배경으로 소설을 쓸 생각으로 광해군 단행본 책을 읽었던 적이 있습니다. 근데 여태 배웠던 와 같은 성군의 모습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고, 책을 덮자마자 처음 떠오른 생각이 지금 용궁에 있는 사람과 참 비슷하다는 거였지요. 대동법을 실시하고 궁궐을 중건하고... 그렇다고 해도, 눈, 코, 입, 귀 예쁜 것들만 모아 이 사람이 눈과 코와 입과 귀가 이렇게 예쁘다고 선동해도, 그 사람 얼굴 전체들 보면 괴물 아니겠습니까? 유배당했을 때 여종이 광해군을 모욕했다는 기록을 읽은 것 같은데, 당시 백성이 광해군을 어떻게 대했는지가, 실제 얼굴의 모습이 어땠는지를 말해주는 거겠죠. 더욱이 궁궐중건을 잘했다는 것은 결과론이기도 하고요. 당시 백성들은 얼마나 고역이었겠습니까. 이런 생각이 틀리지 않았다는 도장을 찍는 것 같아서 너무나 반갑고 고맙습니다.
Thank you for this topic on this new year, Professor; as an overseas Korean who undertook a rather unusual hobby of studying the primary sources of late 16th~early 17th century Joseon these past few years, navigating the popular memory of Prince Gwanghae's reign has been one of the most frustrating moments in this endeavor. However, there is a question I'd like to ask, more on the subject of historical memory than actual history: given the influence of colonial historiography and contemporary politics on the misconceptions of Prince Gwanghae's reign, is replacing them with recontextualization for the modern, democratic Korean society really a helpful way to learn and understand the nature of Prince Gwanghae's reign, the Injo Restoration, or even Joseon society as a whole? Of course, I am not saying that popular memory and "lessons" could be divorced from history. It is merely that I found Professor Oh's insightful comment on his observation of Korean people's "longing" at 9:52 to reveal a contradiction: the desire for a leader who sounds like a Confucian Sage King but also a democratic society where the will of the "citizens" are heeded. This is perhaps exemplified by the existence of King Sejong and Admiral Yi's statues amidst what had been the site of mass/permanent protests of varying political persuasions for years. As much as modern Koreans have many misconceptions about Joseon society and political culture, South Korea is so alien to Joseon that I am not sure how the "lessons" drawn from the latter could be helpful for Koreans today with their challenges without the historical "accuracy" becoming so far removed from its context. Word salad, maybe. I may just still be bummed that I wasted money and time on books that claimed that the Injo Restoration happened because of Prince Gwanghae's "neutral" foreign policy.
Unfortunately, I'm a bit busy today so it's difficult to reply. First, please refer to my thesis. 오늘은 유감스럽게도 조금 바빠서 답변을 하기 어렵습니다. 우선 저의 논문을 참고하십시오. 〈왜 백성의 고통에 눈을 감는가-광해군 시대를 둘러싼 사실과 프레임〉 《역사비평》212, 2017
제가 9:52에서 말한 ‘지도자’는 유교의 성왕이 아니라, 민주주의 시대의 지도자를 말합니다. 21세기 한국 사회에서 유교의 성왕을 기대할 수는 없습니다. 그건 비역사적 접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세종로에 서 있는 세종대왕이나 이순신의 동상에서 드러나듯이, 사람들은 역사를 뒤섞는 이데올로기의 영향에서 자유롭지 못한 것도 사실입니다.The ‘leader’ I mentioned in 9:52 is not a Confucian ‘Sage’, but a leader in the democratic era. We cannot expect a Confucian ‘Sage’ in 21st century Korean society. I think that's an ahistorical approach. However, as revealed by the statues of King Sejong and Yi Sun-sin standing in Sejong-ro, it is also true that people are not free from the influence of ideology that mixes up history.
이래서 영화나 드라마가 의 역할이 참 중요한 것 같네요. 젊은사람들은 이병헌의 영화속 광해로 광해를 기억하고 있어서 그런 우호적인 인식이 있는 것 같아요. 저도 광해왕에 대한 역사공부를 따로 하지 않았기때문에 미디어매체에서 전해주는 영상들로 그 왕에 대한 이미지가 형성이 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래서 역사학작분들이 더더욱 영화나 드라마 고증이 잘 반영될 수 있도록 참관과 자문자의 역할에 더더욱 기여해야할 것 같아요. 영화감독들도 물론 역사공부를 하는사람도 있지만 역사에 무지하면서 팩트와 픽션을 섞은 팩션이란 말로 역사왜곡을 일반 시민들에게 하고있다고 볼 수 있는 것 같아요. 사실 영화감독들은 역사교사보다는 촬영기술자에 더 가깝기 때문이죠
오교수님, 남원 인월 >함양으로 넘어가는 고갯마을 산기슭에 '흥부 무덤'이 잘 조성되어 있고 나름 잘 관리되고 있거든요. 거기 가 보셨습니까? 제가 갔을 땐 팻말까지 갖춰져 있었고, 고갯마루 경계선에서도 가깝고(약 40미터), 무덤 가는 길도 원만해서 한번쯤 가볼만 하더군요^😀^ 인월쪽 마을이름이 '흥부마을'로 기억되구요. 마을 입구에 '흥부마을'이란 비석 같은 선돌도 있더라구요. 흑돼지식당이 유명하구요^🤗^
@@오항녕 사료나, 논문을 일일이 뒤져 본 건 아니지만, 선입견엔 과해는 논란의 여지는 있으나 장점도 많이 있던 왕. 인조는 장점은 기억이 안 나지만 왜란을 겪은 지 얼마 되지도 않아 또 국가의 환란을 막지 못한 무능한 왕이라는 생각이 먼저 듭니다. 광해는 전쟁에서 나름의 역할에 충실했으며, 중립 외교를 잘 한 반면에, 인조의 외교는 실패로 보고 있습니다. 경제나 분배 문제도 광해 때랑 별달라진 게 없는 것 같아서요. 북인 대신 서인들이 권력을 잡았지만, 후기에는 이렇다 할 자랑거리도 없다는 생각입니다. 분야별로, 비슷한 평가 기준으로 시간을 들여 자료를 찾아보며 일일이 따져보면 좋겠지만, 전문가가 아닌 제 이런 견해를 고칠만한 내용이 있다면 궁금해 지네요.
역사는 해석하기 나름이다. 정사라고 다 옳은 것도 아니고 야사라고 다 틀린 것도 아니지. 우린 생각보다 모르는 게 훨씬, 아니 너무 너무 많다. 선조, 인조 쓰레기 맞다. 그 때 상황이 그럴 수 밖에 없었다고 하면 역사를 공부하거나 연구할 하등의 이유가 없지. 왜? 모든 게 시대 상황이었고 그게 필연이니까. 다 옳다는 얘기지 한 마디로.
안녕하세요. 교수님 일반사람들은 학계에서 어떻게 의견이 대립되는지 모르는데, 혹시 광해군을 옹호하는 학자들의 주장중 중립외교 이외에 다른 치적에 대해서도 알려주세요. 그리고 나라가 어떻게 망할 정도인지 체감이 안오네요. 영화 광해에서 서인들이 명에 사대하는것에 호통치는 장면만 떠오르거든요ㅠㅠ
오항녕입니다. 이 코너 말미에 밝혔듯이, 기존 견해와 많이 다르기 때문에 질문, 반박이 있을 거라고 예상됩니다. 의견 주시면 답변 달겠습니다.
제가, 여기의 말을 "핀" 했어요 -- 제일 앞에 있도록....
극좌네
몰랐던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두 교수님께서 광해군에 대한 심도있는 담론 펼쳐 주신것에. 감사 드립니다 우물밖의 개구리 되어야지요😊❤❤❤
교수님 사랑합니다 ❤.
좋아요 한번씩만 부탁드립니다 🙏
오늘도 잘 봤습니다. 조선시대에 한 상황이 민주주의의 일면이라는 말이 인상적입니다. 오늘도 폴짝폴짝 뛰어서 우물 밖으로 나왔습니다. 두 분 교수님 영상 감사합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피터슨 교수님 우리나라 역사를 긍정적으로 해석해주시는것에 항상 신선한 충격을 받았는데 오늘도 새로운 역사를 배웠습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조선의 역사와 유교, 특히 성리학에 대해 너무나도 비판적이고, 가끔은 비판을 넘어서 자기비하에 가까운 거 같아요
사실은 그런 것들도 일제시대 때 심어진 식민사관의 뿌리.. 아니 어쩌면 지금도 뉴라이트로 이어지고 있는 지독한 식민사관의 잔재가 아닌가 싶어요.
광해군은 정쟁에 희생된 성군이 아니고 탄핵될만한 왕이었군요.
살려고 왕을 내쫓았다~!!
거기다 탄핵이 민주주의의 중요한 지표라는 피터슨 교수님의 말씀에 오늘날 한국, 과거 조선 동시에 위안+깨달음을 얻습니다.
오늘도 새로운 시각을 열어주셔서 감사합니다!!!❤😊
Thank you for your kind and insightful comments. I appreciated your support.
무슨 말같지도 않은 소리를 하세요? 조선은 지옥이였어요.
I love the pursuit of truths, no matter how uncomfortable. The future must be built on solid grounds of truths.
이번 계엄령으로 우리에게 역사가 얼마나 중요한지 더 느끼게 되었습니다
두 교수님 너무 감사합니다
이 양반 위험한 발언이네. 어떻게 광해군과 윤석열을 동일 선상에서 보냐고.
@@이정열-u7g 윤석열은 한국판 연산군이라고 봐야 할 듯.
많은 댓글을 기대 합니다.
교수님 안녕하세요 이번퇴계학회 오셨을때 만났던 대만 가이드입니다 기억하세요? 유튜브 잘보고있습니다~ 😊
가이드님 -- 반갑습니다. 타이완 학회는 너무 좋았습니다!!! 수고 하셨어요. 감사합니다.
광해군 때를 배경으로 소설을 쓸 생각으로
광해군 단행본 책을 읽었던 적이 있습니다.
근데 여태 배웠던 와 같은
성군의 모습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고,
책을 덮자마자 처음 떠오른 생각이
지금 용궁에 있는 사람과 참 비슷하다는 거였지요.
대동법을 실시하고 궁궐을 중건하고...
그렇다고 해도,
눈, 코, 입, 귀 예쁜 것들만 모아 이 사람이 눈과 코와 입과 귀가 이렇게 예쁘다고 선동해도,
그 사람 얼굴 전체들 보면 괴물 아니겠습니까?
유배당했을 때 여종이 광해군을 모욕했다는 기록을 읽은 것 같은데,
당시 백성이 광해군을 어떻게 대했는지가,
실제 얼굴의 모습이 어땠는지를 말해주는 거겠죠.
더욱이 궁궐중건을 잘했다는 것은 결과론이기도 하고요.
당시 백성들은 얼마나 고역이었겠습니까.
이런 생각이 틀리지 않았다는 도장을 찍는 것 같아서 너무나 반갑고 고맙습니다.
Thank you for this topic on this new year, Professor; as an overseas Korean who undertook a rather unusual hobby of studying the primary sources of late 16th~early 17th century Joseon these past few years, navigating the popular memory of Prince Gwanghae's reign has been one of the most frustrating moments in this endeavor. However, there is a question I'd like to ask, more on the subject of historical memory than actual history: given the influence of colonial historiography and contemporary politics on the misconceptions of Prince Gwanghae's reign, is replacing them with recontextualization for the modern, democratic Korean society really a helpful way to learn and understand the nature of Prince Gwanghae's reign, the Injo Restoration, or even Joseon society as a whole?
Of course, I am not saying that popular memory and "lessons" could be divorced from history. It is merely that I found Professor Oh's insightful comment on his observation of Korean people's "longing" at 9:52 to reveal a contradiction: the desire for a leader who sounds like a Confucian Sage King but also a democratic society where the will of the "citizens" are heeded. This is perhaps exemplified by the existence of King Sejong and Admiral Yi's statues amidst what had been the site of mass/permanent protests of varying political persuasions for years. As much as modern Koreans have many misconceptions about Joseon society and political culture, South Korea is so alien to Joseon that I am not sure how the "lessons" drawn from the latter could be helpful for Koreans today with their challenges without the historical "accuracy" becoming so far removed from its context.
Word salad, maybe. I may just still be bummed that I wasted money and time on books that claimed that the Injo Restoration happened because of Prince Gwanghae's "neutral" foreign policy.
오교수닌 -- 이댓글은 재밌는데 -- 어떻게 답변 하실까요? 제보기에는 엣날의 왕을 패위시키는일 과 현대에 탄핵하는 일이 비교할만한거요.
Unfortunately, I'm a bit busy today so it's difficult to reply. First, please refer to my thesis. 오늘은 유감스럽게도 조금 바빠서 답변을 하기 어렵습니다. 우선 저의 논문을 참고하십시오. 〈왜 백성의 고통에 눈을 감는가-광해군 시대를 둘러싼 사실과 프레임〉 《역사비평》212, 2017
제가 9:52에서 말한 ‘지도자’는 유교의 성왕이 아니라, 민주주의 시대의 지도자를 말합니다. 21세기 한국 사회에서 유교의 성왕을 기대할 수는 없습니다. 그건 비역사적 접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세종로에 서 있는 세종대왕이나 이순신의 동상에서 드러나듯이, 사람들은 역사를 뒤섞는 이데올로기의 영향에서 자유롭지 못한 것도 사실입니다.The ‘leader’ I mentioned in 9:52 is not a Confucian ‘Sage’, but a leader in the democratic era. We cannot expect a Confucian ‘Sage’ in 21st century Korean society. I think that's an ahistorical approach. However, as revealed by the statues of King Sejong and Yi Sun-sin standing in Sejong-ro, it is also true that people are not free from the influence of ideology that mixes up history.
@@오항녕 Thank you very much for your time and response, Professor. I will certainly look into your article.
이래서 영화나 드라마가 의 역할이 참 중요한 것 같네요. 젊은사람들은 이병헌의 영화속 광해로 광해를 기억하고 있어서 그런 우호적인 인식이 있는 것 같아요. 저도 광해왕에 대한 역사공부를 따로 하지 않았기때문에 미디어매체에서 전해주는 영상들로 그 왕에 대한 이미지가 형성이 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래서 역사학작분들이 더더욱 영화나 드라마 고증이 잘 반영될 수 있도록 참관과 자문자의 역할에 더더욱 기여해야할 것 같아요. 영화감독들도 물론 역사공부를 하는사람도 있지만 역사에 무지하면서 팩트와 픽션을 섞은 팩션이란 말로 역사왜곡을 일반 시민들에게 하고있다고 볼 수 있는 것 같아요. 사실 영화감독들은 역사교사보다는 촬영기술자에 더 가깝기 때문이죠
오교수님, 남원 인월 >함양으로 넘어가는 고갯마을 산기슭에 '흥부 무덤'이 잘 조성되어 있고 나름 잘 관리되고 있거든요. 거기 가 보셨습니까?
제가 갔을 땐 팻말까지 갖춰져 있었고, 고갯마루 경계선에서도 가깝고(약 40미터), 무덤 가는 길도 원만해서 한번쯤 가볼만 하더군요^😀^
인월쪽 마을이름이 '흥부마을'로 기억되구요. 마을 입구에 '흥부마을'이란 비석 같은 선돌도 있더라구요.
흑돼지식당이 유명하구요^🤗^
지리산둘레길과 가깝지요? 봄에 걸어보겠습니다.
@오항녕 🙇♀️
결과적으로 광해를 탄핵시키고 정권을 잡은 인조때의 상황은 더욱 안 좋아 졌다는 게 중요한 점 아닌가요?
오항녕입니다. 인조 때의 어떤 상황이 광해군대보다 더 안 좋아졌다는 건가요? 논문이든, 견해든, 사료든 제시해주시기 바랍니다.
@@오항녕 사료나, 논문을 일일이 뒤져 본 건 아니지만, 선입견엔 과해는 논란의 여지는 있으나 장점도 많이 있던 왕. 인조는 장점은 기억이 안 나지만 왜란을 겪은 지 얼마 되지도 않아 또 국가의 환란을 막지 못한 무능한 왕이라는 생각이 먼저 듭니다.
광해는 전쟁에서 나름의 역할에 충실했으며, 중립 외교를 잘 한 반면에, 인조의 외교는 실패로 보고 있습니다. 경제나 분배 문제도 광해 때랑 별달라진 게 없는 것 같아서요.
북인 대신 서인들이 권력을 잡았지만, 후기에는 이렇다 할 자랑거리도 없다는 생각입니다.
분야별로, 비슷한 평가 기준으로 시간을 들여 자료를 찾아보며 일일이 따져보면 좋겠지만, 전문가가 아닌 제 이런 견해를 고칠만한 내용이 있다면 궁금해 지네요.
@@오항녕 You mean, it was certainly better under Injo!. 인조때는 훨신 더 좋았다는 소리이죠!
광해군을 추앙하는 것은 식민사관입니다. 그 인간의 기회주의 외교 때문에 또 한 번 조선은 전란에 빠졌어요.
@@TheFrogOutsidetheWell 워낙 광해군 때 민생과 재정이 망가졌던 데다, 모문룡, 호란, 반란으로 힘겨운 시대였지만, 조금씩 살기가 나아졌다고 보고 있어요. '훨씬'은 아니고. ^^
역사는 해석하기 나름이다. 정사라고 다 옳은 것도 아니고 야사라고 다 틀린 것도 아니지. 우린 생각보다 모르는 게 훨씬, 아니 너무 너무 많다. 선조, 인조 쓰레기 맞다. 그 때 상황이 그럴 수 밖에 없었다고 하면 역사를 공부하거나 연구할 하등의 이유가 없지. 왜? 모든 게 시대 상황이었고 그게 필연이니까. 다 옳다는 얘기지 한 마디로.
믿고 싶은거만 맏는거 아닌가요? 근거는?
안녕하세요. 교수님 일반사람들은 학계에서 어떻게 의견이 대립되는지 모르는데, 혹시 광해군을 옹호하는 학자들의 주장중 중립외교 이외에 다른 치적에 대해서도 알려주세요. 그리고 나라가 어떻게 망할 정도인지 체감이 안오네요. 영화 광해에서 서인들이 명에 사대하는것에 호통치는 장면만 떠오르거든요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