東洋史想 儒佛仙 華嚴 탄허 대종사 특강 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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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Опубликовано: 8 июл 2024
  • #천부경 #단군 #주역 #연산역 #귀장역 #단사 #효사 #십익 #공적영지 #성성 #감이수통 #적지 #양지 #성적등지 #지관 #적적
    天符經, 단군의 천부경. 천부, 천부경이 주역의 원리인데 문자로서는 최초의 역이거든, 그게. 왜 그러느냐? 여요與堯로 병립竝立이라, 요임금으로 병립했다, 단군檀君이. 역사가 그렇거든, 중국 역사도. 요임금 하고 병립竝立이다, 단군이. 요임금이라면 문자가 나오기 전이란 말이야. 주역 문자가. 요순우 지나서 주나라 문왕이, 하은주 주나라 때 문왕이 비로소 문자를 제정했으니까, 그 주역 문자를 지은 거니까. 그런데 주역 문자가 우리나라 단군 시조가 주역을 먼저 지었다, 이 말이야. 81자. 여든 한 자를 가지고. 참 어려워 그 글이. 그걸 여러분한테 내가 소개해 주고 싶은 것은 왜 그러냐 하면 그 동양사상의 최고 원리라고는 주역, 역학을 학술적으로 부여하는 이가 바로 우리 단군 시조다 이 말이야. 그러면 주역 14권의 축소판이다 이 말이에요. 81자가. 그러니까 우리는 그만치 그 우월감을 가져야 된다. 우리 주체성이라는. 그래서 한번 소개해 주려고 했는데 좀 어려워 힘들어. 나도 해박하게 몰라.
    一은 始無始의 一이니 析三極하야 無盡이니라 本의 天은 一의 一이요 地는 一의二요 人은 一의 三이니 一積十鉅하야 無匱化三이니라 天도 二의 三이요 地도 二의 三이요 人도 二의 三이니 大三이 合六하야 生七八九하나니 運三四하야 成環일새며 五, 七에 一이 妙演일새니라 萬迬萬來하야 用變이언마는 不動本하나니라 本의 心을 本太陽이니 昻明하고 人은 中天地의 一이니 一은 終無終의 一이니라
    [번역은 연이은 東洋史想 儒佛仙 華嚴 탄허 대종사 특강 11-3을 보세요.]
    夏~ 連山-艮山卦 居首 殷~ 歸藏-坤卦 居首 周~ 周易-乾坤卦 居首
    彖辭(爻辭)~文王의 아들 周公 六爻의 大義를 지음
    ※ 孔子의 周易 十翼
    ① 上經彖傳 ② 下經彖傳 ③ 上經象傳 ④ 下經象傳 ⑤ 文言(乾坤)
    ⑥ 上繼辭傳 ⑦ 下繼辭傳 ⑧ 說卦傳 ⑨ 序卦傳 ⑩ 雜卦傳
    역학은 성인의 학문 희문주공 사성이나 학설이오리까. 복희, 문왕, 주공, 공자. 희문 주공. 희문주공 사성인이 부연한 그 학설은 뭐냐 학문은 뭐냐? 우주만유를 하나로 소급시키는 거야. 우주만유를 하나로 소급시켜서 하나로 돌아가는 양이 없는 데로. 그러면 거기는 해탈이 돼거든. 우주가 일어나기 전인데 지역이 있어요? 천당이 있어요? 그렇게 하는 것이 성인의 학문이에요. 그것은 역학뿐이 아니여. 대의가 다 그러잖아요. 하나가 우주 만유를 만들어낸 게 진리라면은 만유를 하나로 소급시키는 거 그게 성인의 학문이거든. 성인들이 우리한테 가르치는 것이 그거야. 아무것도 없는 거야. 그러니까 주역의 종지가 이렇단 말이에요.
    (周易의 宗旨) 上繼辭傳 10장
    ※ 子 曰 夫易은 無爲也하며 無思也하야 寂然不動이라가 感而遂通天下之故하나니 非天下之至精이면 其孰能與於此리오
    부역夫易은, 공자의 말씀이야. 주역이라는 것은 무위야無爲也하며, 하는 것도 없으며 무위無爲라는 것은 하는 것도 없으며, 무사야無思也하야, 생각도 없어서. 적연부동寂然不動이라가, 적연이 동하지 않다가, 감이수통천하지고感而遂通天下之故하나니, 감동함에 드디어 천하에 따라가 통하나니, 비천하지지정非天下之至精이면 기숙능여어차其孰能與於此리오. 그 천하의 지극히 재미있는(정밀한?) 사람이 아니면 그 누가 능히 여기에 참여하리오. 이게 주역 종지여.
    (周易의 宗旨) 下繼辭傳 5장
    子 曰 天下何思何慮리오 天下同歸而殊途요 一致而百慮니 天下何思何慮리오 一陰一陽之謂道니 繼之者 善也요 成之者性也어늘 仁者見之에 謂之仁하며 智者見之에 謂之智요 百姓은 日用而不知라 故로 君子之道 鮮矣어니와 顯諸仁
    하며 藏諸用하야 鼓萬物而不與聖人同憂하나니 成德大業이 至矣哉라
    자왈, 공자님 말씀이에요 이것도. 天下何思何慮리오, 천하의 뭐 생각하고 뭐 생각할 게 있느냐. 이거 봐요. 이거 얼마나 재미가 있나. 본래 망상은 끊어서 생멸케 한다는 게 아니라 본래 생각이 날 것이 없다, 이렇게 되는거야. 근본 자체가. 天下何思何慮리오, 천하에 뭐 생각하고 뭐 생각할 게 있느냐? 왜 그렇던고. 天下同歸而殊途요, 천하가 한 가지 돌아가는 길이라면 근본은 하나로 돌아가는 것인데 천 가지 길, 만 가지 길이 갈라졌다 이거야. 일치이백려一致而百慮니, 근본은 하난데 100가지 생각, 천 가지 생각이 늘 일어나는 것이다, 이 말이야. 그러니 天下何思何慮리오, 천하에 무엇 생각하고 뭘 생각할 것이 있으리요. 생이(?) 본래 일어날 일 없는 것이다, 이 말이야. 근본이 하나니까. 이렇게 나오는 거예요. 이게 주역의 종지여. 또 一陰一陽之謂道니, 일음과 일양을 도라 말하나니, 일음일양지도. 불교 팔만대장경을 똘똘 뭉쳐서 볼 것 같으면은 뭐냐? 이거 밝힌 거 아니여? 적지. 우리 마음 새긴 것이 어디냐? 적지寂知. 공적영지空寂靈知다. 자체를 찾아보면 공적해, 아무것도 없어. 그러면서도 신령이 아는 이 망상으로 아는 이 아닙니다. 용用이 두 가지여. 수연용隨緣用, 이건 따라서 하는 건 망상으로 아는 걸 말하는 것이고, 이건 자성본용自性本用, 자성에 본래 붙은 용이라 할 때는 생각 없이 하는 건 이 용을 말하는 거예요. 그러면 마음의 본체는 적하고 마음의 본용 이건 본용이란 말입니다. 의용이 아니에요. 마음의 본용은 지知다, 이 말이야. 아까 불교에서는 영지靈知라고 한다고 그러잖아. 유교에서는 양지良知라고. 적지寂知. 본래 이 마음이 그렇게 생긴 거 아니여!
    적지寂知. 본래 마음이 그렇게 생긴 것은 처음 공부하러 들어갈 때는 성적등지惺寂等持라 그래. 술어가. 성성惺惺과 적적寂寂을 평등이 가진다. 이게 처음 공부 들어가는 법입니다. 성성적적을 평등이 해야한다. 성적등지. 그러니까 선가에서 화두 잡는 법은 성성적적 평등이 가지려고 안 해도 저절로 화두를 들면 성성적적이 평등이 가져져버리지. 그냥. 방법이 그리 되니까. 성성하면서 적적하고 적적하면서 성성하고. 성성에 치우치다 보면 성성이 좋지만은 정신이 깨끗하고 좋지만은 거기 치우치다 보면 망상이 붙는다. 적적이 좋지만은 적적에 치우치다 보면 흐리멍덩하니 졸음이 온다. 적적한 가운데 성성하고 성성한 가운데 적적하고 성적惺寂을 평등히 가져라, 이렇게 애기하는 거야. 공부하는 법을 가지고 마음을. 그러면 저 성적惺寂이 커지면 지관止觀이라 그래요. 적지를 처음 닦는 걸 성적惺寂이라 그러고, 술어를. 성적등지라고 그러고, 성적이 커지면 지관이라고 그래요. 적寂이 커져서 지止가 돼요. 마음이 그쳤다, 이 말이여. 성성이 커져서 관觀이 되는 거예요. 지관이라는 것은. 지관이 커지면 경험해라 그래요, 술어를. 지관이 커지면 경험해라 그래요, 술어를. 지止가 커져서 종이되고. 아주 종했단 말이여, 마음이 굳어. 관觀이 커져서 혜가 되고 정혜가 커지면 보리 열반이라고 그러잖아요. 보리과, 열반과, 그건 과라 그래요. 성불하는 과. 과들이라. 이것뿐이지 뭐 있어요? 우리 마음, 우리 마음 표시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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