東洋史想 儒佛仙 華嚴 탄허 대종사 특강 10-4 & 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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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Опубликовано: 21 окт 2024
  • #음양 #주역종지 #고요 #인 #인자요산 #지자요수 #체용 #장자 #백성 #관응스님 #인자 #지자 #음양불이 #성적불이 #성수불이
    러니까 지금 一陰一陽之謂道라는 것은 세상 사람들이 음양이라면 말이야, 이성 사이에 연애하는 것만 음양인 줄 알지. 음양이 어떤 게 음양인지 생각해 봐. 우리 마음이 이렇게 역력 분명하게 이렇게 짓거리고 있지만 자체를 찾아보면 적寂 아니여, 적. 찾아볼 수 없단 말이야. 그게 음이여. 음 소식이여. 찾아볼 수 없는 그 송장, 그놈이 이렇게 움직인다, 이 말이야. 그게 양 소식이거든. 동動하는 놈이 양입니다.
    내가 해방하던 해에 관응 스님이 그때 거시기 포교사 할 때야. 저 강릉 포교사 하실 때인데. 놀러갔어. 그랬더니 양청우 스님이랑 친하니까 우리 도반서 놀러 가자. 곡천 스님이랑 놀러가. 관응 스님, 곡천 스님, 양청우 스님, 나 넷이 앉았는데 아 이 세 분이 앉아서 말이야, 나보고 자꾸 장자 강의하라고 뭐라고 하네. 장자 대가가 말이야, 관응당, 장자 대가가 무슨 뭘 강좌하라고 그래. 해봐. 자꾸 하라고. 잘 난 척을 한번 해봐. 자꾸 하라고 하라고. 그렇게 해버렸어. 그래 장자 내편자를 놓고서는 그 앞에서 줄줄줄줄 좌담식으로 했는데 뭔 얘기를 하다가서 말이여, 아, [불교 팔만대장경이 음양에서 벗어나는 게 뭐 있어. 문광 스님 녹취.] 이랬더니 양청우 스님이 천 길 만길을 펄펄펄펄 뛰어. 음양은 몇 푼어치 안 되는 아주 허잘 것 없는 것인데 도대체 음양에 서서 지내는 게 없다고 이래놓으니까 그 막말로 안 거지, 펄펄 뛰면서 말이야. 그러다 밥종을 딱 쳤어. 가서 밥을 밥대를 들고 밥을 먹는데 밥숟갈을 들라 그래, 청우 스님이. 청우 스님? 내가 아주 점잖하게 부러 불렸지. 예? 무엇이 이렇게 돌아다봐? 소리를 병력같이. 무엇이 이렇게 돌아다봐? 송장이 들여다보지는 않을 텐데 무엇이 이렇게 들여다보지? 양청우 할 때 무엇이 이렇게 돌아다 봐? 입이 삐쭉하니 말을 못한단 말이야. 이 자리는 양청우만 말을 못하는 것이 아니야. 석가, 달마가 와도 이 자리 말 못하는 자리야. 무엇이 돌아보느냐 할 때, 그게 음소식이여. 그렇지만 그놈 송장이 있고 대답을 응이라고 하잖아. 그게 양소식이여. 그 밖에 뭐가 있어? 팔만대장경이. 옳소, 옳소, 옳소, 옳소. 그러니까 그것을 이 마음에다 붙여서 생각할 줄은 모르고 밤낮 바깥에다 음양을 생각한 결(과)이다. 이게 지금 일음일양이다는 그 말이거든.
    한 번 음하고 한 번 양하여 돌아오는 것이니 계시자繼之者 선양善也하고, 그걸 잇는 것이 선인이고 成之者性也어늘, 이걸 이루는 게 성품이다, 이 말이야. 그 타고난 것이. 본성이 그렇게 생긴거라 이 말이야. 仁者見之에 謂之仁하며, 어진 사람이 볼 때는 인이라고만 이른다는 건 뭔 소리인고 하니? 인은 적寂한 경계를 말하는 겁니다. 적寂. 이 음만 안단 말이야, 고요한 경지만 안단 말이에요. 적寂. 적 경계만. 어진 사람이 볼 때는 적 경계, 음 경계만 알고, 智者見之에 謂之智요, 지혜 있는 사람이 볼 때는 양 경계만 안단 말이야. 한쪽 편만. 그러니까 공자님 말씀이 인자는 요산하고 지자는 요수라는 것도 그 말이야. 어진 사람은 산을 좋아하고 지혜 있는 사람은 물을 좋아한다는 거. 인은 부동이니까. 인이니까 그러니까 부동성. 동치 않는 산을 좋아하느니. 지는 유동성이니까 물을 좋아 하는 거예요. 흘러가는. 그러니까 한쪽만 본다 이 소리라. 1편만. 자기 마음의 전체를 못 보고. 인자를 볼 때 지적인 걸 보고 이 말이야. 인자仁者라고 말하는 자들은 체적인 것은 알고 용적인 면을 모른다 이 소리야. 하고 智者見之에 謂之智요, 지혜 있는 사람이 볼 때는 용적인 면을 지라고 말하지 그 체적인 것을 모른다 이거야. 百姓은 日用而不知라, 일반 백성, 불교에서 중생이라는 말과 같아요. 유교에서는 중생이라는 문자가 없어. 백성이라 그러지. 중생이란 말은 일체 중생, 마음 꼬무락꼬무락 하는 걸 다 중생이라고 했지만, 유교나 도교 학설에서는 중생이라고 하는 것은 사람을 기준해서 하니까 백성이다, 이렇게. 백성은 日用而不知라, 백성은 날로 쓰면서도 알지 못해, 이 소식을. 밤낮 그대로들 알겠지. 故로 君子之道 鮮矣어니와, 그렇기 때문에 군자도가 드물다는 것은 음양불이지도陰陽不二之道, 음양이 둘이 아닌 거. 성적불이지도惺寂不二之道, 성수불이지도. 이것을 모른다 이 소리야. 성수불이性修不二라. 성性과 수修가 불이不二라. 등수불이지도. 음양불이지도, 음양이 둘이 아닌 거. 성과 근본 성 자리에 앉아서 볼 것 같으면 다 죽지 않아요(?)?. 다 끝내버리지. 그렇지만 또 다른 원리가 있다는, 성과 수가 둘이 아닌, 성수불이라. 불교에서 주장하는 게. 성수불이지도, 즉 음양불이지도, 음양이 둘이 아닌 도가 이 세상에 드물다. 드물거니와 그렇지만은 본 자체는 불견不見이다, 이 소리여. 현제인顯諸仁하며, 인은 나타납니다. 인은 고요한 놈인데 음인데, 저 큰 놈인데 바로 나타난다, 이거야. 장제용藏諸用하야, 용은 밤낮 나타나는 놈인데 숨었다, 이 말이여. 체용이 둘 아니다 이 말이야, 밤낮. 그 본 자체는. 사람이, 닦는 사람이 인자는 체적인 면만 보고 지자는 용적인 면만 보지만은 그 체용은 언제나 변치 않는다, 이 소리야. 체가 용이고 용이 체고, 둘이 없다, 이 소리여. 鼓萬物而不與聖人同憂하나니, 우주만물을 고동 속에서 다 만들어내야 돼. 不與聖人同憂하나니, 성인과 더불어 근심을 한 가지 하지 않아. 성인은 근심을 하거든, 이 천하를, 어떻게 해야 이 천하를 다 구제할고.
    CD 11-1
    어떻게 해야 이 천하를 다 구제할고. 이 도 자리는 그런 게 없다 이거야. 그게 끊어졌다 이 말이야. 成德大業이 至矣哉라, 성덕과 큰 업이 지극하다. 이게 주역의 종지, 주역의 강령이니라. 강령. 근데 이것을 모르기 때문에 말이야, 이 종지를 모르기 때문에, 이 종지를 알 것 같으면... 하지만은 이렇게 못 되니까 과는 과제를 네 가지로 나누는 거야.
    上繼辭傳 10장
    易有聖人之道四焉하니 以言者는 尙其辭하고 以動者는 尙其變하고 以製器者는 尙其象하고 以卜筮者는 尙其占이라
    여기 성인의 도라는 것은 공자의 말씀이야. 주역에 성인의 도가 들어 있다 하는 것은 단과대학 네 개는 벌이러 왔다 이거야. 중생의 근기가 천차만별이니까 이것은 상근기지, 성인군자나 할 일이지 금방 이렇게 될 수 없잖아. 그러니까 성인의 도가 네 가지가 있는데 이건 점진적으로. 이언자以言者는 상기사尙其辭하고, 말로써 하는 자는 그 사辭를 숭상한다는 건 시방 사회 교육제도에다 대비하면 문과 계통라고 생각하면 좋아요. 문과 계통. 문과 계통이 얼마나 폭이 넓은가? 이동자以動者는 상기변尙其變하고. 동으로써 변칙을 부러 한다는 것은 [움직임으로써 하는 자는 그 변을 숭상한다는 것은] 물리화학 계통을 이렇게 생각해 보면 좋아요. 以製器者는 尙其象. 그릇을 만드는 자로서 하는 자는 그 상을 숭상한다는 건 과학 계통으로 생각하면 좋습니다. 지금 사회 학문에. 以卜筮者는 尙其占이라. 복서로, 점으로서 하는 자는 그 점을 숭상한다 하는 것은 점성학이라는 게 포갠다는 거야. 아는 일로 나가는 거, 천문학, 지리학, 관상학, 사주학, 정학, 의학 모두 다 참석하기 쉽거든. 그러면 이 4과가 말이야. 이 4과, 사辭, 변變, 상象, 점占, 이, 4과가 단과대학 4개인데, 단과대학이지만은 4개가 사회 학문에 뭐든지 포괄하지 못하는 것이 하나도 없어 전부 다 들어가요. 그러면 단과대학 4개를 종합한 종합대학이다. 주역 학문은. 이렇게 생각하면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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