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궐내의 아비규환 상황에서 부정한 의도로 숨겼는 지 이것만이라도 지켜야 겠다는 생각으로 묻었는 지는 알 수 없지만 그렇게 묻어둔 분이 있었다는 것이 너무도 감사하네요 그리고 저 장소가 그냥 공사 시멘트로 매립될 뻔 했는 데 끈기있게 유물을 찾기위해 애써주신 역사학자분에게도 경의를 표합니다.
@@davidjacobs8558 음, 아닐것 같아요. 일단 산속 스님들이 적군이 코앞에 왔을때야 전쟁을 알아차렸을 가능성도 있고.. 향로 같은 큰 물건은 옮기기 여의치않아 묻어놓고 도망갔지만 그보다 작은 물건들은 직접 들고 도망갔을 가능성도 있을듯요. 왕이 와서 제사지내던 절에 향로 하나만 고급이었을것 같진않아요
@@davidjacobs8558 신라 황룡사 9층? 목탑 ---------------------------> 백제 장인 아비지 초빙해 건설 통일신라 때 불국사 석가탑 --------------------------------------> 옛 백제 지역 거주하던 장인 아사달 초빙해 건설, 아사달-아비녀-무영탑 전설 현재 익산에 위치한 복원된 미륵사지 석탑 ----------------------------------------------> 목탑 형식을 간직한, 목탑에서 석탑으로 변화하는 단계 최대 규모 석탑. 신라 기술자나 장인이 백제에 초빙되어 만든 건축물 관련 역사 기록? 아직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일본측 기록 역시 유사해서 백제 장인-학자들이 일본이 초빙되어 일본의 건축물 만들거나 학문 전파한 기록은 상대적으로 훨씬 많습니다. ( David Jacobs 1년 전 저거 하나 달랑 묻었다는건, 그 만큼 묻어서 감춰야 만 하는 귀중품이 없었다는 소리죠. 비슷한 귀중품들이 많이 있었다면, 달랑 하나만 발견되지 않았겠죠. 여러가지 다른 물건들이 같이 발견 되었겠죠. ) -------------------------------------------------> 다른 유물들은 아예 존재하지 않아서 저거 하나 달랑 묻었다고 주장할 합리적 근거 있겠습니까? -------------------------------------------------> 여기 영상의 저 향로와 동시대 중국 향로들과 비교한다면 디자인과 기술 측면에서 압도에 압도에 압도적인. -------------------------------------------------> 목조 건축물이나 유물은 대부분 불 탔을 것이고 + 금은공예품은 대부분 약탈당했을 것이고 + 남을 수 있는 것은 석조 유물? -------------------------------------------------> 약탈을 피해 기적적으로 저 걸작품 남은 것 행운, 발굴될 당시 진흙과 물이 오히려 보존의 원인이었다는 뉴스 본 기억도.
바쁜세상 살다보면 우리문화에 대한 아름다움을 바라볼 여유가 없었습니다 간혹 책으로 나마 접했었지요 무량수전 배흘림 기둥에 기대서서.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등을 빌어 감흥을 받았습니다 이후 선생님의 영상을 보며 또다른 세상이 보여집니다 어려운 당시의 시대상을 쉽게 풀어주시는 선생님은 클라스가 다르십니다.. 감사합니다
공방터에 숨겼다는걸로 유추해보면 하나의 스토리가 만들어집니다. 대향로를 만든건 아마도 공방에서 일하던 기술자들이었을 겁니다. 그리고 성이 곧 무너질 것 같은 상황에서 자신들의 필생의 역작, 대향로를 어딘가에 숨기고 싶었을 텐데 어디다 숨길까요? 당연히 가장 잘 아는곳. 자기들 작업실 아닐까요? 숨긴곳이 참 공교로워서요. 공방에서 사용하던 물을 담아두던 수조인데요. 숨기고 싶으면 보다 확실한 우물같은데 빠뜨리는것이 훨씬 나았을 겁니다. 수조는 그렇게 크지도 않고 만약 성 자체가 완전히 파괴되고 버려지지 않았다면, 그래서 누군가가 그곳을 다시 사용하게 되었다면 쉽게 발견될 수도 있었을거에요. 그래서 저는 숨긴 사람은 공방하고 밀접하게 관련된 사람이 아닐까 추측해 봅니다. 그러니까 대향로를 숨긴 사람은, 그걸 직접 만들었거나 아니면 만든 사람의 후배 기술자들이고, 자신들의 최고의 보물을 지키기 위해서 일단 자신들의 아지트인 공방으로 가져왔다가 수조에 숨기고 도망, 혹은 최후를 맞이하지 않았을 까 합니다.
죄송합니다만, 제가 알기론 금동대향로는 백제에서 제작했다는 증거는 없는 것으로 알고 잇습니다. 실상은 "미상"이라는 것 입니다. 이동이 가능한 물건은 그 지역에서 발견되 었다 하여, 그 지역의 물산이라고 주장할 수 없다고 들었습니다. 금동대향로 발견 이후, 관계자들이 편리하 게도 백제지역에서 출토되었으니 백제유산 으로 지칭하기로 작정하고 오늘날 까지 그 것이 정설인 양 받아들여지고 있다는 것 입 니다. 제가 잘못 알고 있으면 너그러이 혜량바라 옵고 혹시 출처를 명확히 증명할 수 있는 좋은 정보를 제공해 주시면 감사드리겠습 니다.
불과 몃 십 년 전 만 해도 신라가 대륙에서 말 달리던 건 많이 배웠어도 백제 가야 고구려들 진짜 반도에 역사는 소월 하게 취급했죠 근대에서도 그러한데 신라가 패권을 잡고 있을 때는 그야말로 신라문화를 토속화 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파괴와 외곡이 있었를까 짐작되어집니다 지금이라도 역사를 바로 잡는 것이 미래를 위한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당시 학예사가 예산 문제때문에 그냥 넘길 수도 있었는데, 도저히 학자로서의 양심때문에 그냥 지나칠 수 없어, 행여나 하는 마음으로 발굴 작업을 했다고 들었어요. 그분도 정말 대단하신 것 같아요.
저렇게 크고 아름다운 작품이 만들어진 것도 기적, 저것이 온전히 부서짐 하나 없이 꼭꼭 숨어있었던 것도 기적.
궁궐내의 아비규환 상황에서 부정한 의도로 숨겼는 지 이것만이라도 지켜야 겠다는 생각으로 묻었는 지는 알 수 없지만 그렇게 묻어둔 분이 있었다는 것이 너무도 감사하네요 그리고 저 장소가 그냥 공사 시멘트로 매립될 뻔 했는 데 끈기있게 유물을 찾기위해 애써주신 역사학자분에게도 경의를 표합니다.
당대 최고의 걸작임이 틀림없는데, 백제가 멸망하면서 수많은 최고 경지의 문화재들이 함께 파괴되었음에 후손으로서 안타깝습니다.
저거 하나 달랑 묻었다는건, 그 만큼 묻어서 감춰야 만 하는 귀중품이 없었다는 소리죠. 비슷한 귀중품들이 많이 있었다면, 달랑 하나만 발견되지 않았겠죠. 여러가지 다른 물건들이 같이 발견 되었겠죠.
그만큼이나 다급했었다는 반증이죠,
전쟁났는데 바리바리 싸들고
묻을 여유가 있었을까요?
@@davidjacobs8558 음, 아닐것 같아요. 일단 산속 스님들이 적군이 코앞에 왔을때야 전쟁을 알아차렸을 가능성도 있고.. 향로 같은 큰 물건은 옮기기 여의치않아 묻어놓고 도망갔지만 그보다 작은 물건들은 직접 들고 도망갔을 가능성도 있을듯요. 왕이 와서 제사지내던 절에 향로 하나만 고급이었을것 같진않아요
@@davidjacobs8558
신라 황룡사 9층? 목탑 ---------------------------> 백제 장인 아비지 초빙해 건설
통일신라 때 불국사 석가탑 --------------------------------------> 옛 백제 지역 거주하던 장인 아사달 초빙해 건설, 아사달-아비녀-무영탑 전설
현재 익산에 위치한 복원된 미륵사지 석탑 ----------------------------------------------> 목탑 형식을 간직한, 목탑에서 석탑으로 변화하는 단계 최대 규모 석탑.
신라 기술자나 장인이 백제에 초빙되어 만든 건축물 관련 역사 기록? 아직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일본측 기록 역시 유사해서 백제 장인-학자들이 일본이 초빙되어 일본의 건축물 만들거나 학문 전파한 기록은 상대적으로 훨씬 많습니다.
( David Jacobs 1년 전
저거 하나 달랑 묻었다는건, 그 만큼 묻어서 감춰야 만 하는 귀중품이 없었다는 소리죠. 비슷한 귀중품들이 많이 있었다면, 달랑 하나만 발견되지 않았겠죠. 여러가지 다른 물건들이 같이 발견 되었겠죠. )
-------------------------------------------------> 다른 유물들은 아예 존재하지 않아서 저거 하나 달랑 묻었다고 주장할 합리적 근거 있겠습니까?
-------------------------------------------------> 여기 영상의 저 향로와 동시대 중국 향로들과 비교한다면 디자인과 기술 측면에서 압도에 압도에 압도적인.
-------------------------------------------------> 목조 건축물이나 유물은 대부분 불 탔을 것이고 + 금은공예품은 대부분 약탈당했을 것이고 + 남을 수 있는 것은 석조 유물?
-------------------------------------------------> 약탈을 피해 기적적으로 저 걸작품 남은 것 행운, 발굴될 당시 진흙과 물이 오히려 보존의 원인이었다는 뉴스 본 기억도.
국보중의 국보
바쁜세상 살다보면
우리문화에 대한 아름다움을 바라볼 여유가 없었습니다
간혹 책으로 나마 접했었지요
무량수전 배흘림 기둥에 기대서서.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등을 빌어 감흥을 받았습니다
이후 선생님의 영상을 보며
또다른 세상이 보여집니다
어려운 당시의 시대상을 쉽게 풀어주시는
선생님은 클라스가 다르십니다..
감사합니다
금동대향로를 숨겨두지않았다면 중국으로 가져가서 지금 쯤 중국 예술품이라고 속이고 얼마나 뛰어난 것인
자랑했겠지
아들에게 역사동화책을 읽어주기 시작했는데요 더 깊은 내용도 나눌수 있게될거 같아 좋습니다. 구독하고 갑니다~
이야기 재밌습니다.예전에 부여백제박물관에 갔을때 조그마한 장식품 사왔는데 그게 금동대향로였죠.지금도 책상위에 있다는 ㅎㅎ
굿즈가 문화재 같아요
백제 최고의 걸작 백제 금동 대향로
생생하고 살아있는 듯 한 해설 흥미진진 합니다 @♡@♡@♡@♡@♡
감사드립니다~
언제나 재미있는 해설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대부분 중국을
본떠 만들었다고 하는지 답답하다
백제만의 독특한 우주세상을
표현해 제작된 세계최초 보물이다고
해야지
영상길이는 10분을 조금넘게 만들어주세요..나중에 수익구조면에서 더 이득입니다...^^
고맙습니다~
공방터에 숨겼다는걸로 유추해보면 하나의 스토리가 만들어집니다. 대향로를 만든건 아마도 공방에서 일하던 기술자들이었을 겁니다. 그리고 성이 곧 무너질 것 같은 상황에서 자신들의 필생의 역작, 대향로를 어딘가에 숨기고 싶었을 텐데 어디다 숨길까요? 당연히 가장 잘 아는곳. 자기들 작업실 아닐까요?
숨긴곳이 참 공교로워서요. 공방에서 사용하던 물을 담아두던 수조인데요. 숨기고 싶으면 보다 확실한 우물같은데 빠뜨리는것이 훨씬 나았을 겁니다. 수조는 그렇게 크지도 않고 만약 성 자체가 완전히 파괴되고 버려지지 않았다면, 그래서 누군가가 그곳을 다시 사용하게 되었다면 쉽게 발견될 수도 있었을거에요. 그래서 저는 숨긴 사람은 공방하고 밀접하게 관련된 사람이 아닐까 추측해 봅니다.
그러니까 대향로를 숨긴 사람은, 그걸 직접 만들었거나 아니면 만든 사람의 후배 기술자들이고, 자신들의 최고의 보물을 지키기 위해서 일단 자신들의 아지트인 공방으로 가져왔다가 수조에 숨기고 도망, 혹은 최후를 맞이하지 않았을 까 합니다.
죄송합니다만, 제가 알기론 금동대향로는
백제에서 제작했다는 증거는 없는 것으로
알고 잇습니다.
실상은 "미상"이라는 것 입니다.
이동이 가능한 물건은 그 지역에서 발견되
었다 하여, 그 지역의 물산이라고 주장할 수
없다고 들었습니다.
금동대향로 발견 이후, 관계자들이 편리하
게도 백제지역에서 출토되었으니 백제유산
으로 지칭하기로 작정하고 오늘날 까지 그
것이 정설인 양 받아들여지고 있다는 것 입
니다.
제가 잘못 알고 있으면 너그러이 혜량바라
옵고 혹시 출처를 명확히 증명할 수 있는
좋은 정보를 제공해 주시면 감사드리겠습
니다.
아무리바도 고대삼국지도가 잘못되었네요
이지도는 현재식민사학자들이 쓰는지도인데
혹시 이병도 제자의후손인가요?
역사가르치면서 부끄럽지 않이한가요?
1300년전 중국도 못따라할 작품
일식기록이 백제가 한반도에 없었는데 무슨 근거로 백제거라고 ~
위례(신강성 투루판)
웅진(류주)
사비(홍콩)
--->빛의전사들 채희석
논산,,황산벌에서 계백장군이 폐했다는 소식을 듣고 감추었겠죠...보물은 노획 1순위...일반사병은 전리품으로 부자되기를 희망하니...
논산 황산벌에서 전투는일어 나지 않았습니다
대륙 황산 이죠
@@user-lj7sn1jy ???
@@jsysonjung ??? 여기에서 보여주는 지도영상은 일제가 만들어준 역사입니다 . 우리나라에서 배우는 국사역사는 전부 일제가 만든역사 이것이 진실입니다
우리나라
불과 몃 십 년 전 만 해도 신라가 대륙에서 말 달리던 건 많이 배웠어도
백제 가야 고구려들 진짜 반도에 역사는 소월 하게 취급했죠 근대에서도 그러한데 신라가 패권을 잡고 있을 때는 그야말로
신라문화를 토속화 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파괴와 외곡이 있었를까 짐작되어집니다 지금이라도 역사를 바로 잡는 것이 미래를 위한 것이라 생각합니다
평양 낙랑은 거짓말로 들통났잖아요 아직도 평양낙랑이라고하십니까
낙랑은 만리장성 시작점 갈석산창려현에 낙랑있습니다
평양에 낙랑은 낙랑국입니다
ruclips.net/video/N2WO_36SXwY/видео.html
늦게 댓글을 답니다.
거의 비슷한 향로가 중국 상하이
상해박물관에 있습니다.
백제보다 연대가 앞서던데
중국의 조작인지 알 수 없네요!
사진도 찍어왔답니다.
중국인은 왜 남 잘난 꼴을 못 볼까? 에휴 가지가지한다
중원의 상해도 백제 혹은 신라였을겁니다
발굴단하면서 저런거 건져내면 재미나겠다.
고가 사치품을 전쟁 통에 숨겨 두고 끝나면 찾아 갈려다가 그놈도 죽은거지. 망국의 사치품에 망국의 발견 장소! 진짜 망할만 했다.
백제가 아니고 신라가 멸망했어야 했는데!
아직도 정신병 걸려 부족주의 몰표찍는 이유가 이거지
ㅁ ㅊ
처연해진다
효과음을 넣으면 집중에 방해됌니다,,,시러요 한표
이양반도 식민사관 역사 가르치고있네 에구
저 꼭대기에 있는 봉황이 숫탉이라는 것! ㅎㅎ
섬나라 '도다이지' 지붕 장식물이 수탉.
향로는 봉황
밑에 보고 죄다.
외우네요
영상 많이 올리기 위에서 인가요
유치하게
이 백제 향로는 중국수입품임. 대만박물관에 같은 물품이있음. 향로 조각내용이 중국내용입니다
??? 중국 일본은 남의 것도 전부 자기꺼라 하고 있는데 우리나라놈들은 우리꺼도 전부 남의꺼라고 하고 자빠져있네... 안타깝게
백제 대향로는 금동미륵반가상과 같은맥락하에 봐야함.
삼국시대와 동시대인, 중국의 북위 시기에 대형 반가상은 제작되지 않음.
어디서 약을 박산향로는 널리고 널렷지만 문화는 흐르고 섞이는거지 뭔 중국거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