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영실은 실종 이후가 더 중요합니다. 장영실과 쿠텐베르크는 동시대 인물입니다. 1. 장영실은 금속활자 제작을 수년간 맡은 적이 있었다. 2. 장영실은 파직 후 독일로 건너갔다. 3. 장영실은 쿠텐베르크를 만나 금속활자 제조 기술을 전수해 주었다. 4. 쿠텐베르크는 구리 주석 안티몬의 합금 기술을 가지고 있었다. 5. 조선은 안티몬이 없었고 당시 합금기술은 유럽이 더 뛰어났다. 6. 쿠텐베르크의 금속활자는 1개의 글자가 아니라 대략 8개의 글자를 하나의 활판에 한꺼번에 넣은 형태이다. 7. 이것은 고려의 세계 최초의 금속활자 기술과 동일한 형태이다. 8. 쿠텐베르크는 장영실이 가르쳐준 그대로 제작하였다.
사실 박연과의 고사에서나 장영실의 업적을 두고도 자신이 거의 모든 아이디어를 낸 것처럼 언급하는 부분을 보면 사실 세종은 좀 자뻑하는 성향이 있었던 것 같다 ㅋ 그래서 이 모든 공로는 임금님 덕분입니다를 외치지 않은 장영실은 불경죄에 걸린 것 ㅋ 실제로 가마사건의 주 범죄자들은 모두 훈방 처리됨 ㅋ
조선시대에 사람들은 걸어다녔다. 교통수단이 없었다고 봐야된다. 그 시대에도 과학을 말하는 사람들이 있었나보다. 현대사회에 교과서에는 원숭이가 사람이 됐다는 책이 있다. 아이들은 공룡 장난감을 가지고 놀기도 했었다고 한다. 걸어다니는것이 느리다고 생각하거나 빨리가고 싶은 학생들이 생겨나면서 킥보드를 선호하기 시작했다 한다. 집안에 보관하는 사람들이 많아 단점들이 119에 접수되기 시작했는데 원인은 제질 자체적으로 잘 타는 소재가 들어가 있기 때문에 화재 원인이라 된다고 소방관들은 말해주기 시작했다고 한다.
세종이 중국으로부터 장영실을 보호한 거 같은데? 조선과학발전에 대한 중국의 견제가 장난 아니었음. 신분차가 엄청났지만 두 사람은 둘도 없는 파트너이자 친구이자 동료였음. 애초에 세종은 장영실의 신분 따윈 따지지 않았음. 두 인물 모두 시대를 초월한 천재였거든..
니가 어떻게 알음? 그때 살앗음?
@@남과다른 역사학자, pd는 그때 살았겠니 ㅉ
@@siren7077 역사학자 pd는 기록된걸로 말하는거고 니는 ‘두 사람은 둘도 없는 파트너이자 친구이자 동료였음…’ ㅇㅈㄹ 떠니 직접 보고서 말하는거냐고 물어본거지
@@남과다른 조선시대 실록서 "세종과 관기의 소생 장영실은 동무였다"고 기록했겠냐 빡뇌야? 유추를 해야할 거 아냐.. 이딴 뇌통도 한글 갖고 놀고 있네. 세종만세다
@@남과다른 그럼 조선시대 실록에 사관들이 라고 기록하겠냐? 유추가 뭔지 몰라?? 어후
대단하다
저 구슬은 계속 순환하나요? 아니면 구슬 다쓰면 작동을 멈추나요
기록의 민족 ㄷㄷㄷㄷㄷ
진짜 기록의 민족이죠
그래서 한국의 문화가 전세계를 휩쓰는 것이구요
이정도면 세계유산 등재시켜야 하는거아님?
그 옛날에 일식시간 예측을 15분 틀렸다고 곤장형?? ㄷㄷㄷ
소리
장영실은 실종 이후가 더 중요합니다.
장영실과 쿠텐베르크는 동시대 인물입니다.
1. 장영실은 금속활자 제작을 수년간 맡은 적이 있었다.
2. 장영실은 파직 후 독일로 건너갔다.
3. 장영실은 쿠텐베르크를 만나 금속활자 제조 기술을 전수해 주었다.
4. 쿠텐베르크는 구리 주석 안티몬의 합금 기술을 가지고 있었다.
5. 조선은 안티몬이 없었고 당시 합금기술은 유럽이 더 뛰어났다.
6. 쿠텐베르크의 금속활자는 1개의 글자가 아니라 대략 8개의 글자를 하나의 활판에 한꺼번에 넣은 형태이다.
7. 이것은 고려의 세계 최초의 금속활자 기술과 동일한 형태이다.
8. 쿠텐베르크는 장영실이 가르쳐준 그대로 제작하였다.
장영실과 구텐베르크는 10~15살 차이가 나는 동시대 인물입니다.
장영실 1385~1390년 출생
구텐베르크 1400년 출생
장영실의 실체는 드라마 퐁당퐁당러브 에서 영싫다 영실 김슬기가 말해줌
사실 노비출신이어서 양반들로부터 공격을 받았으나, 남이장군처럼 벼락출세를 한 천재들은 신분에 관계없이 시기질투의 대상이되고 희생양이 됨. 특히 한국이나 그리스같은 민족들은 남 유별나게 잘난 거 두고보지 못함.
조순생.... 흠.. 그당시 세종과 교류하며 예쁨 받던 장영실을 향한 남성들의 자적자가 아니었을까
한국에서는 천재가 나온다면 그건 불행
시기질투
맞아 맞아
인간들이 질들이
나빠서 그런겁니다
@@baek6468종특 ㅅㅂ ㅋㅋㅋㅋㅋ
눈도 안보였음 거의 실명할 정도 였죠
세종이 필요가 없어지니 장영실을 버린거지 천출이기도 하고 누군가는 책임을 져야하는데 딱 좋은애가 장영실말고 누가 있어 장영실은 먹다버린 껌일 뿐이야 우린 조선이 자꾸 신분제 사회였단걸 깨닫지 못한다
그게 아니고 세종대왕 타는 수레가 바퀴가 빠져 대왕님이 바닥에 쓰러져 옆관료들이 ㅈㄹ해서 짤린거임
??? : 아 가마를 박살내지 않으면 퇴직할수가 없어
장영실 부산 동래 출신임
마차사건은 세종 자기자신이 만든거 같은데요 잘한다 잘한다고만 하고 시간을 안주니 업적만 생각하고 만들었으니마모와부식 지지대 역활까진 생각 못하듯요 그래놓고 누가 날 죽이려 했는가라고 말하면 나같아도 도망쳤을듯
本当に素晴らしい王です。歴史の宝てす。
왕도 그렇고 그 왕을 모시던 신하와 백성들도 그렇죠?ㅎㅎ
本当に素晴らしい
王様でした
저 중국 기술자나
기생 아들 장영실이
없었음 어쩔뻔 했냐?
저런 기술자들을 잘
써먹어 발달된 무기나
만들어내서 저 중국
대륙을 다 대 조선으로 만들었어야는데 ~
공돌이 대우 제대로 안해주는건 예나 지금이나 똑같음
세종때는 신기전이 있었던 때니까 그만큼 중요한 시기였다
그런데 ?.
책 많이 안읽으면
글을 이렇게 쓰게됩니다 여러분
@@htk3445 그래서요 ㅋ ㅋ
아... 쇼츠로 봐야겠다....
사실 박연과의 고사에서나 장영실의 업적을 두고도 자신이 거의 모든 아이디어를 낸 것처럼 언급하는 부분을 보면 사실 세종은 좀 자뻑하는 성향이 있었던 것 같다 ㅋ
그래서 이 모든 공로는 임금님 덕분입니다를 외치지 않은 장영실은 불경죄에 걸린 것 ㅋ
실제로 가마사건의 주 범죄자들은 모두 훈방 처리됨 ㅋ
뭔 씹소리여
별로 납득 안되는ᆢ별 반 쪽! 김포할배가 ^^
나도 질투심때문에 죽인거같음
조선시대에 사람들은
걸어다녔다. 교통수단이 없었다고 봐야된다. 그 시대에도 과학을 말하는 사람들이 있었나보다. 현대사회에 교과서에는 원숭이가 사람이 됐다는 책이 있다. 아이들은 공룡 장난감을 가지고 놀기도 했었다고 한다. 걸어다니는것이 느리다고 생각하거나 빨리가고 싶은 학생들이 생겨나면서 킥보드를 선호하기 시작했다 한다. 집안에 보관하는 사람들이 많아 단점들이 119에 접수되기 시작했는데 원인은 제질 자체적으로 잘 타는 소재가 들어가 있기 때문에 화재 원인이라 된다고 소방관들은 말해주기 시작했다고 한다.
으이그~ 모자람의 편린! 김포할배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