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르메니데스와 플라톤과 맞장뜬 러셀의 의문의 1승이 아닌 명백한 승리. 2천년 서양 철학을 지배해 온 존재론을 러셀의 기술이론(Russell's Theory of Descriptions, RTD)으로 확실하게 까고 있는 그는 두말할 것도 없지만 도무지 이해하기 어려운 걸(내가 그냥 책 잡고 읽었으면 대체 뭔소리인가 헤맸을 거 같음) 강의가 끝날 때 아~그렇구나하고 이해하게 만드는 도올쌤의 역량이야말로 대단하다는 걸 새삼 느낌. 강의 후반부 러셀의 논문이라고 하는 'Mysticism&Logic'에 관한 도올쌤 설명도 완전 대~~~박임. 논리실증주의에 반한 모든 신비주의는 후즈닷컴에서 설 자리가 없다!
이 영상만 일주일에 걸쳐 대여섯번 봤습니다. 당연하겠지만 모두는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어렵습니다. 그렇지만 철학과 사상이 어떻게 이어져야 하는지 인간이 언어에 얼마나 의존하고 있는지를 아주 어렴풋이나마 알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도올 선생님. 얼른 진도 따라가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같이 들으시는 분들도 화이팅입니다!!!
도올 선생님 러셀의 기술이론을 계속 반복해서 1~2장을 들어보니까 간단한 표현으로 압축이 되긴 하네요.... 새벽이라서 그런가 이 2강의도 한 10번은 계속 돌려본거 같은데요 내 대가리로 해석해보면 러셀이란 수학자가 논리학적으로 문학적 표현할때 철학적 궁극적인 큰 문제 즉 존재론 천당이나 이데아 같은 말들은 존재 실재란 단어들로 기술할수 없는 문제인데 문법적오류로 아니 정확하게 명확한 규정이 없이 그냥 사용했다....그래서 존재란 단어로 설명하거나 할수 없는 문제를 억지로 설명하고 표현하는게 말이 안되는 말이다....이정도로 해석이 되네요 인간 언어로 표현 표기햇을때 오는 오류로 도가도 비상도라는 노자철학이 이미 있죠 언어는 시공간을 초월할수 있지만 현실 세계에 존재하는 것들은 모두 시공간에 에너지장에 영향을 벗어나는 그 무엇도 존재할수가 없는게 이것이 실재 현실세상인데 언어로 표현하면 이것이 파괴된다는 것이죠 현실세상에서 둥근사각형은 존재하지 안지요....이미지로 화해서 언어로써 기술은 할수있지만 현실세상에서 둥근것은 원이고 사각형은 사각형이지 둥근사각형이란 것은 날개달린 말 페가수스가 존재한다고 주술적 종교적으로 믿는 행위란 것인데 천당을 믿던 페가수스를 믿던 황금산을 믿던 둥근사각형은 존재한다고 믿건 이 말들 자체는 아무것도 아니고 존재냐 비존재냐를 따질수 없는 종교적 주술적 표현이란 것이다....논리적인 명제를 해야 그리고 그런 명확한 논리적인 사상과 그런 저서가 있고 최소 순수수학자이거나 과학자정도 되야 우리가 오늘날 사상가요 철학자로 우대해 주는 것이지 주술적 명제나 주제로 이걸 믿어라~~~~~~~있다 존재다~~~~~내가 있다~~~~영혼불멸에 불변하는 영원한 도 요것만 이것 하나만 존재란 말을 쓸수있고 나머진 허상이다. 그러한 존재는 바로 나의 이데아이며 아이디얼리즘이다.....내가 신이다 그러므로 나를 믿고 따르라 플라톤이란 색희는 이건 정말 철학자도 수학자도 좆도 아닌 색희가 확실합니다 이색희는 희대의 사기꾼이 맞습니다 신은 존재한다....그러나 시공간을 초월한다 감각의 대상이 아니지만 믿어라~~~~~~~분명 존재는 하니까..... 신이란 종교에 빠진 미틴넘들이죠 그런 감각의 대상으로 인생에서 생각하고 고민할 인간문제는 수백억개인데 개색희가 감각의 대상도 아닌 신을 믿으라 강요를 하니 인간세상이 혼란에 빠지죠 도올선생님이 말씀하는걸 수십번 곱씹어 보고 간단하게 분석하고 요약해 봤는데 아마도 선생님이 이런 내용으로 쎄게 말씀하시면 아무래도 사회에서 엄청난 무리와 파장이 일어나므로 돌리고 돌려서 점잖게 설명하신게 아닌가...생각되네요
도올 선생님이 노자 강의하시던 1999년부터 너무나 존경하며 사숙하고 큰 스승으로 생각해왔고, 그 이후론 동서양의 철학에 푹 빠져있는 평범한 고교 교사입니다. 러셀의 서양철학사를 좀 정독해본 소견으로 선생님의 말씀에 사족을 좀 붙여봅니다. 선생님 설명이 100% 맞는데요. 안 읽어보신 분들은 좀 헷갈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러셀이 자신이 만든 기술이론으로, 과거 2,000년간 철학적 문제에서 해방됐다고 자신있게 말한 부분은 바로 "신은 존재한다"라는 명제의 참/거짓 유무였습니다. 선생님께서 이 명제를 간단히만 언급하시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물론 정확히 말씀은 하셨습니다. 요점은 " 기술되어지는 것의 실체가 입증되어질 수 있는 고유명사만이 존재한다고 말할 수 있다."입니다. 다시말해 "기술되어지는 실체가 입증되어질 수 없는 신"의 존재 유무를 말하는 것은 무의미한 짓이었다"로 결론지어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2,000년동안 철학자들이 쓸데없는 짓논쟁을 했던 것이다. " 가 럿셀의 핵심이었더 것 같습니다. 제 이해가 잘못되었다면 댓글 또 달아 주세요. 토론의 장을 펼치면 도올샘도 좋아하시겠죠.도올 샘의 강의가 계속 이어지도록 항상 건강하시기를 기원합니다.
도올 선생님 항상 좋은강의감사합니다. 개인적으로 러셀은 Fear is the main source of superstition, and one of the main sources of cruelty. To conquer fear is the beginning of wisdom. The whole problem with the world is that fools and fanatics are always so certain of themselves, but wiser men so full of doubts. 꾸밈없고 현명했던사람이라고 생각됩니다.
끄덕이고 이해하는것이 신기할 정도로 복잡해보이고 심오한 내용이네요. "나무"를 생각할때 나무라는 절대적 존재가 있는 것이 아니라, 나무를 보고 그 형상을 묘사하는 술어적 표면만이 가능한 것이고, 존재한다고 한다는 것은 허구적인 것이군요. 김용옥 선생님도 순간순간 변화하는데 "김용옥 선생님께서 존재한다" 라고 표현하는 것은 정말로 말이 맞지 않네요. 저기 저 영상에서 러셀을 강의하는 선생님이 있을 뿐 김용옥이라는 존재는 없다는 것이 이해가 될듯 말듯 잡히는 것 같습니다. 좋은 가르침 감사드립니다!
아....이제야 알았습니다.기술이란게 技术가 아니라.记述라는뜻인것 이로군요.여태껏 서양하니까 기술이고 기술이란 테크놀로지인가 했는데 왜 영어로 디스크립션인가 했네요.디스크립션을 멍때리며 다시 강연을 듣다보니 이제야 알았습니다.기술 저술 서술 술어 론술 뭐 이런 기술이군요 테크놀로지 노하우 테크닉이라는 기술이 아니군요.
강의에서 조금 이상한 부분이 있는데, 도올샘이 말씀하신 것처럼 러셀이 존재성 자체를 부정하는 건 아니고, '오로지 기술구를 통해서만 존재의 진위여부를 판별할 수 있다'고 얘기하는 거 같습니다. 기술구를 명제함수로 변환하여 그 진위여부를 판별함으로써 존재성을 판단할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내가 그 무엇엔가 끊임없이 억눌리고 억압당하고 있던 어둡고 답답한 감옥의 상태에서 갑자기 사천왕이 나타나 문을 활짝 열어제치더니 이제 나가라! 하고 외치며 어마 어마한 자유의 공간으로 나를 풀어 놓은 듯한 해방감을 느낀다. 그와 함께 진정한 겸손과 겸허함이 무엇인지 느끼게 된다.
술어부에서 변하지 않는 상태,즉 불변의 상태를 서술 할수 있는 주어가 아닌이상 그것은 주어로서의 존재를 가지지 못한다...나라는 존재도 나는 어떠한 사람이라는 것으로 정의됐을때 내가 항상 그런 정의서술된 사람이냐? 그렇지 않기에 나는 '나' 라는 주어로 정의될수 없으며 불변의 언어적존재의 주체(주어)로서 기술되는것은 오류이다..
어떤 집합을 조건제시법으로 묘사할 때...직관적으로 옳다고 여기는 조건들의 집합에서(러셀 집합) 모순이 발생함을 확인하고...class 에도 type의 하이라키가 있다고 제한해야하고, 모든집합의 집합은 모순이니 제한된 범위내에서의 집합을 항상 제시해야한다는 것을 주장...여태 무제한적 직관적 언어의 사용으로 모순성의 함정에 푹 빠진 철학을 지적, 먼저 모순없는 명확한 언어와 논리의 사용을 주장...PM은 괴델과 튜링에게 영감의 토대가 되었고 21세기 컴퓨터 문명의 기초가 되었다.
러셀의 기술이론, 언어에 있어 문장의 기술만으로도 존재적 유무를 판단할수 있다는 이론... 기술에 있어 논리실증적으로 증명되고 실제 해야지만 존재가 성립되고 , 논리실증적으로 증명되지 않는 기술, 즉 구체화 할수없는 그저 막연하게 존재한다고만 주장하는 서술적 기술은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고 존재할수도 없다 해도 무방하고 타당하다. 언어의 한계성과, 그리고 언어는 상상력의 산물이기에...
언어에는 문제가 없다....문법에 문제가 있는 것이지...언어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다...분석해봐야 헛거다..... 원래 언어가 있었고 이를 분석한 것이 문법이다....문법이 잘못 분석햇을 뿐 언어자체는 문제가 없는 것이다... 언어에 주어가 어디있고 동사가 어디 있는가? 그것을 분석한 인간 만이 있을 뿐이다...분석은 인간이 하고 그 분석을 비판하며 언어의 오류를 말하는 것은 꺼꾸로 비판하는 것과 다름 없다......^^ 자신을 알라.... 철학한다며 쓰잘데 없는 것에 고민 할 시간 있으면 잠이나 자라~~~~~~~~~~~~~^^
기술/이름/존재론description, 기술은 이름으로 지시되는 것이 아니라, 어떠한 사람, 사물, 사태의 특정 속성(property)을 가지고 지시할 때를 말한다 . 기술은 어느 문장에 들어가 어떻게 쓰이느냐에 따라 의미가 달라지며, 그것 자체로는 '이름'을 지정하지 않는다. 그리하여 기술은 많으 문제를 야기하는데, 특히 지식이라고 하는 것 대부분이 '기술'이다. '이름(고유명사)'은 그 자체로 의미가 없는 단순한 지시이다. 진정한 고유명사는 거시기(=it) 밖에는 없다. 현실에서 쓰는 고유명사는 "축약된 기술"일 뿐이다.
러셀은 틀렷음. 언어를 수학적으로 보는 시도는 좋앗다고 봄. 그러나 논리로 접근하기 어렵고 증명불가능한 명제가 있다고 괴델이 불완전성의 정리로 증명해 내었음. 대표적인 예가 파이 임. 파이를 과거 수학사에서 유리수로 접근(논리적으로 재구성)하려 시도햇지만 블가능 하다는 것이 밝혀 졋음. 무리수로 접근(논리적으로 재구성)하려 해도 똑같이 불가능 하다는 것이 증명되엇음. 이런 수를 초월수라고 부릅니다. 플라톤의 이데아 라는게 이런 초월수가 될 수 있습니다.... .. . . . . . . 폴라톤의 동굴 이야기에 빗대어 보자면 허수와 무리수는 초월수의 그림자이며 유리수는 무리수의 그림자이며 정수는 유리수의 그림자입니다. 아무리 인간이 논리로 재구성하려해도 불가능한 것이 있는데 이것이 바로 인간이 겸손해야하는 이유라고 생각합니다
파르메니데스와 플라톤과 맞장뜬 러셀의 의문의 1승이 아닌 명백한 승리. 2천년 서양 철학을 지배해 온 존재론을 러셀의 기술이론(Russell's Theory of Descriptions, RTD)으로 확실하게 까고 있는 그는 두말할 것도 없지만 도무지 이해하기 어려운 걸(내가 그냥 책 잡고 읽었으면 대체 뭔소리인가 헤맸을 거 같음) 강의가 끝날 때 아~그렇구나하고 이해하게 만드는 도올쌤의 역량이야말로 대단하다는 걸 새삼 느낌. 강의 후반부 러셀의 논문이라고 하는 'Mysticism&Logic'에 관한 도올쌤 설명도 완전 대~~~박임. 논리실증주의에 반한 모든 신비주의는 후즈닷컴에서 설 자리가 없다!
50년 동안 읽고 나서야 비로소 '기술이론'을 알게 되었다는데서 저도 무엇이든 포기하지 말고 노력해야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또 그 50년동안의 노력의 결실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가르쳐주시니 감사합니다.
이 영상만 일주일에 걸쳐 대여섯번 봤습니다. 당연하겠지만 모두는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어렵습니다. 그렇지만 철학과 사상이 어떻게 이어져야 하는지 인간이 언어에 얼마나 의존하고 있는지를 아주 어렴풋이나마 알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도올 선생님. 얼른 진도 따라가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같이 들으시는 분들도 화이팅입니다!!!
어려운 이론을 쉽게 알아듣게 설명하시는 분...감사 감사를 드립니다..
도올 선생님 러셀의 기술이론을 계속 반복해서 1~2장을 들어보니까 간단한 표현으로 압축이 되긴 하네요....
새벽이라서 그런가 이 2강의도 한 10번은 계속 돌려본거 같은데요
내 대가리로 해석해보면 러셀이란 수학자가 논리학적으로 문학적 표현할때 철학적 궁극적인 큰 문제 즉 존재론 천당이나 이데아 같은 말들은 존재 실재란 단어들로 기술할수 없는 문제인데 문법적오류로 아니 정확하게 명확한 규정이 없이 그냥 사용했다....그래서
존재란 단어로 설명하거나 할수 없는 문제를 억지로 설명하고 표현하는게 말이 안되는 말이다....이정도로 해석이 되네요
인간 언어로 표현 표기햇을때 오는 오류로 도가도 비상도라는 노자철학이 이미 있죠
언어는 시공간을 초월할수 있지만 현실 세계에 존재하는 것들은 모두 시공간에 에너지장에 영향을 벗어나는 그 무엇도 존재할수가 없는게 이것이 실재 현실세상인데 언어로 표현하면 이것이 파괴된다는 것이죠
현실세상에서 둥근사각형은 존재하지 안지요....이미지로 화해서 언어로써 기술은 할수있지만 현실세상에서 둥근것은 원이고 사각형은 사각형이지 둥근사각형이란 것은 날개달린 말 페가수스가 존재한다고 주술적 종교적으로 믿는 행위란 것인데 천당을 믿던 페가수스를 믿던 황금산을 믿던 둥근사각형은 존재한다고 믿건 이 말들 자체는 아무것도 아니고 존재냐 비존재냐를 따질수 없는 종교적 주술적 표현이란 것이다....논리적인 명제를 해야 그리고 그런 명확한 논리적인 사상과 그런 저서가 있고 최소 순수수학자이거나 과학자정도 되야 우리가 오늘날 사상가요 철학자로 우대해 주는 것이지 주술적 명제나 주제로 이걸 믿어라~~~~~~~있다 존재다~~~~~내가 있다~~~~영혼불멸에 불변하는 영원한 도 요것만 이것 하나만 존재란 말을 쓸수있고 나머진 허상이다.
그러한 존재는 바로 나의 이데아이며 아이디얼리즘이다.....내가 신이다 그러므로 나를 믿고 따르라
플라톤이란 색희는 이건 정말 철학자도 수학자도 좆도 아닌 색희가 확실합니다 이색희는 희대의 사기꾼이 맞습니다
신은 존재한다....그러나 시공간을 초월한다 감각의 대상이 아니지만 믿어라~~~~~~~분명 존재는 하니까.....
신이란 종교에 빠진 미틴넘들이죠
그런 감각의 대상으로 인생에서 생각하고 고민할 인간문제는 수백억개인데 개색희가 감각의 대상도 아닌 신을 믿으라 강요를 하니
인간세상이 혼란에 빠지죠
도올선생님이 말씀하는걸 수십번 곱씹어 보고 간단하게 분석하고 요약해 봤는데 아마도 선생님이 이런 내용으로 쎄게 말씀하시면
아무래도 사회에서 엄청난 무리와 파장이 일어나므로 돌리고 돌려서 점잖게 설명하신게 아닌가...생각되네요
선생님, 두번째 찬찬히 (메모해가면서) 보고서야 비로소 선생님의 말뜻을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정말 위대한 가르침이십니다.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아...도올선생님 덕분에 10년 묵은 체증 다 날렸습니다~ Theory of decriptions..이제야 이해가 되네요.
도올 선생님이 노자 강의하시던 1999년부터 너무나 존경하며 사숙하고 큰 스승으로 생각해왔고, 그 이후론 동서양의 철학에 푹 빠져있는 평범한 고교 교사입니다. 러셀의 서양철학사를 좀 정독해본 소견으로 선생님의 말씀에 사족을 좀 붙여봅니다. 선생님 설명이 100% 맞는데요. 안 읽어보신 분들은 좀 헷갈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러셀이 자신이 만든 기술이론으로, 과거 2,000년간 철학적 문제에서 해방됐다고 자신있게 말한 부분은 바로 "신은 존재한다"라는 명제의 참/거짓 유무였습니다. 선생님께서 이 명제를 간단히만 언급하시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물론 정확히 말씀은 하셨습니다. 요점은 " 기술되어지는 것의 실체가 입증되어질 수 있는 고유명사만이 존재한다고 말할 수 있다."입니다. 다시말해 "기술되어지는 실체가 입증되어질 수 없는 신"의 존재 유무를 말하는 것은 무의미한 짓이었다"로 결론지어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2,000년동안 철학자들이 쓸데없는 짓논쟁을 했던 것이다. " 가 럿셀의 핵심이었더 것 같습니다. 제 이해가 잘못되었다면 댓글 또 달아 주세요. 토론의 장을 펼치면 도올샘도 좋아하시겠죠.도올 샘의 강의가 계속 이어지도록 항상 건강하시기를 기원합니다.
위대한 강의 잘 듣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도올 선생님 항상 좋은강의감사합니다.
개인적으로 러셀은 Fear is the main source of superstition, and one of the main sources of cruelty. To conquer fear is the beginning of wisdom.
The whole problem with the world is that fools and fanatics are always so certain of themselves, but wiser men so full of doubts.
꾸밈없고 현명했던사람이라고 생각됩니다.
이렇게 또 깨닫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대변이라며 입에서 대변만 토해내는 정치권이 연상이 됩니다!!!! 선생님의 말씀 조차도 왜곡을 하려고 대변을 입에서 토해 내겠죠!!!! ㅋㅋㅋㅋ
나의 존재를 다시한번 생각하게 해 주시는 선생님의 강의에 감사드릴 뿐 입니다.
끄덕이고 이해하는것이 신기할 정도로 복잡해보이고 심오한 내용이네요. "나무"를 생각할때 나무라는 절대적 존재가 있는 것이 아니라, 나무를 보고 그 형상을 묘사하는 술어적 표면만이 가능한 것이고, 존재한다고 한다는 것은 허구적인 것이군요. 김용옥 선생님도 순간순간 변화하는데 "김용옥 선생님께서 존재한다" 라고 표현하는 것은 정말로 말이 맞지 않네요. 저기 저 영상에서 러셀을 강의하는 선생님이 있을 뿐 김용옥이라는 존재는 없다는 것이 이해가 될듯 말듯 잡히는 것 같습니다. 좋은 가르침 감사드립니다!
5분뚝딱철학을 보면 아주 쉽게 이해됩니다,,, 상대적으로,,,추천드립니다
강의 듣고서 한 제 생각인데 기술이론은 존재론의 본질에 대한 것이라기 보다 존재론으로 주둥이 털어 먹고 사는 구라쟁이들에 대한 신랄한 비판이 아닌가 합니다. 몇번 반복해서 강의 들어 보겠습니다. 어디서 이런 주옥같은 강의를 듣겠습니까.항상 건강하세요.
선생님의 The present of President of the U.S. 의 설명에서 ‘그것은 시간성이 배제된 것이구나! 그게 관념이라는 것이구나!’ 라는 것을 알게 된 것 같습니다.
도올 선생님!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아....이제야 알았습니다.기술이란게 技术가 아니라.记述라는뜻인것 이로군요.여태껏 서양하니까 기술이고 기술이란 테크놀로지인가 했는데 왜 영어로 디스크립션인가 했네요.디스크립션을 멍때리며 다시 강연을 듣다보니 이제야 알았습니다.기술 저술 서술 술어 론술 뭐 이런 기술이군요 테크놀로지 노하우 테크닉이라는 기술이 아니군요.
강의에서 조금 이상한 부분이 있는데, 도올샘이 말씀하신 것처럼 러셀이 존재성 자체를 부정하는 건 아니고, '오로지 기술구를 통해서만 존재의 진위여부를 판별할 수 있다'고 얘기하는 거 같습니다. 기술구를 명제함수로 변환하여 그 진위여부를 판별함으로써 존재성을 판단할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감사합니다
도을님 존경 합니다.
2 감사합니다
4 등 ~~~
누가 미혹에서 벗어날까?
도올 그 위대함!
내가
그 무엇엔가
끊임없이 억눌리고 억압당하고 있던
어둡고 답답한 감옥의 상태에서
갑자기 사천왕이 나타나 문을 활짝 열어제치더니
이제 나가라! 하고 외치며
어마 어마한 자유의 공간으로 나를 풀어 놓은 듯한 해방감을 느낀다.
그와 함께
진정한 겸손과 겸허함이 무엇인지 느끼게 된다.
학생을 가르치는 영어선생님이 봐야할 영상이네요
술어부에서 변하지 않는 상태,즉 불변의 상태를 서술 할수 있는 주어가 아닌이상 그것은 주어로서의 존재를 가지지 못한다...나라는 존재도 나는 어떠한 사람이라는 것으로 정의됐을때 내가 항상 그런 정의서술된 사람이냐? 그렇지 않기에 나는 '나' 라는 주어로 정의될수 없으며 불변의 언어적존재의 주체(주어)로서 기술되는것은 오류이다..
어떤 집합을 조건제시법으로 묘사할 때...직관적으로 옳다고 여기는 조건들의 집합에서(러셀 집합) 모순이 발생함을 확인하고...class 에도 type의 하이라키가 있다고 제한해야하고, 모든집합의 집합은 모순이니 제한된 범위내에서의 집합을 항상 제시해야한다는 것을 주장...여태 무제한적 직관적 언어의 사용으로 모순성의 함정에 푹 빠진 철학을 지적, 먼저 모순없는 명확한 언어와 논리의 사용을 주장...PM은 괴델과 튜링에게 영감의 토대가 되었고 21세기 컴퓨터 문명의 기초가 되었다.
미혹에서 깨어나면 고요해지고 고요하면 안정되고 안정되면 밝게 보인다.
서양철학 - 미혹
도가도비상도
결론은 철학이라는 학문 자체가 구약에서 이야기 하는 율법이다....왜 율법으로 억압하려 하는 가?
종교에서만 율법이 있는 줄 아는가? 철학이야 말로 율법적 규칙성을 이용하여 옭아메는 율법이요 억압이다......^^
러셀의 기술이론, 언어에 있어 문장의 기술만으로도 존재적 유무를 판단할수 있다는 이론... 기술에 있어 논리실증적으로 증명되고 실제 해야지만 존재가 성립되고 , 논리실증적으로 증명되지 않는 기술, 즉 구체화 할수없는 그저 막연하게 존재한다고만 주장하는 서술적 기술은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고 존재할수도 없다 해도 무방하고 타당하다. 언어의 한계성과, 그리고 언어는 상상력의 산물이기에...
언어의 조합으로 만든 상상력을 존재의 근거로 규정. 이것이 서양철학의 오류다.
인류문명이 비약적으로 발전한것은 수학의 발달이 핵심이죠. 기적으로 스마트폰을 만들 수 없고 오직 철저한 논리로 만들어지는 겁니다. 인류가 미신에 사로잡혀있는한 발전은 없었을 겁니다.
아뇨,문명의 도약은 비단 논리적인 문제에 있지 않습니다. 저는 "믿음"과 의식적이지 않은 것에 의해 문명이 이끌려 왔다고 생각합니다.
언어에는 문제가 없다....문법에 문제가 있는 것이지...언어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다...분석해봐야 헛거다.....
원래 언어가 있었고 이를 분석한 것이 문법이다....문법이 잘못 분석햇을 뿐 언어자체는 문제가 없는 것이다...
언어에 주어가 어디있고 동사가 어디 있는가? 그것을 분석한 인간 만이 있을 뿐이다...분석은 인간이 하고
그 분석을 비판하며 언어의 오류를 말하는 것은 꺼꾸로 비판하는 것과 다름 없다......^^ 자신을 알라....
철학한다며 쓰잘데 없는 것에 고민 할 시간 있으면 잠이나 자라~~~~~~~~~~~~~^^
그러면, 한국어의 문법체계는 실제 우리의 언어 사용습관과는 딱 일치하지 않는 것이네요. 국어문법이 쉽게 느껴지는 사람은 보다 서양화된 사고체계를 갖고 있는 시람이다고 봐도 될까요?
기술/이름/존재론description, 기술은 이름으로 지시되는 것이 아니라, 어떠한 사람, 사물, 사태의 특정 속성(property)을 가지고 지시할 때를 말한다 . 기술은 어느 문장에 들어가 어떻게 쓰이느냐에 따라 의미가 달라지며, 그것 자체로는 '이름'을 지정하지 않는다. 그리하여 기술은 많으 문제를 야기하는데, 특히 지식이라고 하는 것 대부분이 '기술'이다. '이름(고유명사)'은 그 자체로 의미가 없는 단순한 지시이다. 진정한 고유명사는 거시기(=it) 밖에는 없다. 현실에서 쓰는 고유명사는 "축약된 기술"일 뿐이다.
러셀은 틀렷음. 언어를 수학적으로 보는 시도는 좋앗다고 봄.
그러나 논리로 접근하기 어렵고 증명불가능한 명제가 있다고 괴델이 불완전성의 정리로 증명해 내었음. 대표적인 예가 파이 임. 파이를 과거 수학사에서 유리수로 접근(논리적으로 재구성)하려 시도햇지만 블가능 하다는 것이 밝혀 졋음. 무리수로 접근(논리적으로 재구성)하려 해도 똑같이 불가능 하다는 것이 증명되엇음. 이런 수를 초월수라고 부릅니다. 플라톤의 이데아 라는게 이런 초월수가 될 수 있습니다.... .. . . . . . .
폴라톤의 동굴 이야기에 빗대어 보자면
허수와 무리수는 초월수의 그림자이며
유리수는 무리수의 그림자이며
정수는 유리수의 그림자입니다.
아무리 인간이 논리로 재구성하려해도 불가능한 것이 있는데
이것이 바로 인간이 겸손해야하는 이유라고 생각합니다
존재를 존재자처럼 해석하시는 바람에 모든 게 꼬이는 것 같습니다. 어려운 일입니다.
그 차이가 무엇인가요?
유투브방랑자 무와 동일하면서 똑같지는 않은 것으로 이해하고 있어요.
J.W. PARK 존재 vs 존재자
그런 구분이 강의 내용에서 보지 못한 것 같은데...
어떤 부분인지? 어떤 의미로 하신 말씀인지 감이 잡히지 않네요.
본격 문송합니다의 자백서... 세상에서 분명한건 수학 과학뿐인듯~~
😀😊😁😆
18:00
2000년의 뻥구라 대가리를 러셀이 깨끗이 해소했다....ㅋ
😄
전혀 이해가 되지 않음.
이천년 서양철학사
이천년 기독교
일맥상통
한몸의 두이름
이 강력한 한방으로 편의점 보다 많은, 밤하늘을 수놓는 십자가 형광등들이 ‘잘’ 정리될 수 있을까?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