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중구,동구가 다였던 시절 (남구는 온통 논과 밭) 인천 아이들은 똥바다에서 자전거를 배웠습니다. 수도국산 올라가는 곳 모퉁이에 자전거 대여점이 있었죠. 예전에 저도 철도위에 못 올려 놓고 기차 지나가면 판판해진 못을 갈아 표창을 만들었던 기억이...... 예전엔 샷터문이 없고 도둑이 많아 나무로 만든 문짝을 추가로 설치했었죠. 가게들이 문을 열면 그 나무 문들을 벽에 포개어 기대 놓는데 거기다 표적을 만들어 표창을 던지며 놀았던 기억이....
나무문을 빈지라고 불렀는데, 빈지의 뜻은 모르겠지만, 73년도쯤에 가게를 하던 분들은 모두 아침 저녁으로 빈지문을 떼었다 붙혔다 하면서 살았지요. 그후 셧터라는 장치로 가게정면을 개선하기 시작했던 기억이 납니다. 물론 셧터라는장치는 훨씬 이전부터 존재했지만, 비용문제로 설치를 못하고 살았던 것이었지요.
@@데카르트-f3k 그거 이름이 빈지라는 건 처음 알게 됐네요. '널빈지'의 준말이라고 하네요. 문짝을 번호대로 끼워 닫으면 문짝마다 안쪽에 쇠로 만든 고리가 달려있는데 그 고리로 긴 쇠막대기를 끼워 넣어 밖에서는 못열게끔 되어 있었습니다. 가게를 열면 그 빈지를 차례대로 포개어 놓았는데 그 빈지가 동네 꼬마들한테는 과녁으로 아주 좋은 역할을 했던 기억이.....70년대 중반쯤 부터 지하상가가 여기저기 생기기 시작했는데 생각해보면 지하상가들은 셧터를 사용했던 거 같기도 합니다. 동네 구멍가게들은 그 이후로도 한참동안 빈지를 사용했습니다.
귀한사진 감사합니다~~ 화평치안쎈터뒤 중앙시장쪽이 제가 태어난 화평동이고요, 열한살때 정들었던 고향을 떠났는데 주변 삼화목욕탕,인덕의원,삼각이발관,평화의원,턔양당약국이 어렴풋이 떠오르고 어릴때 친구들이 더욱 그리워지는군요~~인천향우회( 뉴욕,뉴저지)에서 만난 지인들과도 가끔 만나는데 아직 축현(18회)학교 친구들을 만난적은 없어 아쉽지만 내년부턴 시간적인 여유가있어 한국을 자주 왕래할수있을것 같군요~~항상 좋은방송 감사말씀드립니다! 6:086:086:08
와~저는 82년 생 입니다 전 치안센터 뒤쪽 골목에서 살았습니다 명동칼국수 있었고 꽃집아저씨네도 있었죠 리어카 보관소와 동시에 주차장도 있었죠ㅎㅎ 얼마전 가보니 보신탕집은 그대로 있더라고요ㅎㅎ 전 삼화목욕탕에서 놀던 기억은 생생~~합니다 그 안쪽 골목에 구멍가게도 있었고 더 들어가면 비디오가게도 있었던거로 기억합니다 저도 축현초 졸업생입니다 몆회졸업생인지는 기억이 없습니다ㅎ
78년 초교 5학년때 수문통 끝자락에 자전거포 있었지 애들한테 시간 당 얼마씩 받고 자전거 대여해서 친구들 과 자전거 탔던 기억이 있습니다 화물차가 많이 다녀 위험 한 지역 이였지만 그 당시 자전거는 아무나 있는게 아니기에 놀이기구 중 하나 였습니다 당시 자전거포 아저씨 엄청 불친절에 무서웠는데 잘 계시는지요 저는 송현3동이 고향 입니다 똥고개 밑에 호랑이 밭 옆이 저희 집 이였지요
1990년 유치원때 이곳에 이사와서 결혼하고 애기 둘낳고 아직도 이곳에 살고있네요. 어릴때 여기 한창 공사할때 마을버스타면 공사중이던 좁디좁은길을 지나가던 기억이 생생합니다ㅎㅎㅎ 중학교때는 주말이면 차도를 막아놓고 차없는 거리로 운영하거나 무대설치해놓고 콘서트도 하곤했는데 이제는 다 추억이네요.
제 기억이 틀린게 아니었네요...자전거포..아저씨...인상적으로 생기셨었져...곱슬머리에 거인상...흰 런닝...제가 그때 8살쯤 됐을건데 그 주인아저씨 인상이 강렬해서 아직도 생생히 기억이 납니다. 프로야구 선수 준비하다 부상 당해서 자전저포 한다는 소문이 있었던 걸로 기억납니다. 그래도 애들한테는 친절했던거 같은데..어린나이에 얼굴만 봐도 무서웠었던..
아~네가 살던 고향 .....인천 ,엣 그시절 그리운 거리 들을 보니 정말 좋았네요. 감사하고, 한번 만나서 쐬주한잔 하고싶네요~ ^^
안녕하세요, 제가 술을 못합니다^^
추후 구독자님 몇 분 모시고 옛 이야기 나누는 영상 촬영 계획 중 입니다
그때 함께 이야기 나누실 수 있기를 기대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나는 송현동 옛날 적십자 병원자리 지금은 송현동 성당자리 옆에서 태어나서 송현 국민학교 33회 졸업생입니다 아직도 옛공작창 자리 동부아파트에서 살고있고요 지금은 새동인천 지하상가 에서 장사하고 있습니다 좋은자료보고 옛추억이 새롭습니다 감사합니다
어릴적 추억이 그리워 구경왔어요 옛시절 뭉클~ 너무 반가워요^^
수문이발관 저희 아버지가 현재 다니시는데..
이발관 개업하신 사장님이 고인이 되셔서 아드님이 물려 받아 일요일만 오픈 하신다고 하시네요 ㅠ
영상 잘 보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
아,, 그런 일이 있었군요, 세월은 어쩔수가 없네요, ㅜ. 소식나눔 감사합니다
저는 화수동고향인 60대 중후반입니다 이런영상 사진도 고맙고 10대 쯤 으로돌아간거같아요 인덕의원 원장님저희부모님황해도에서피난같이나오신분이라 어릴때갔던기억이나요 송현파출소수문통시장순대국 팔던곳 배다리 교복이나 여학생코트기성복 팔던곳 도깨비시장 미림극장오성극장 인천극장 추억의 인천거리 지금은 양평살지만 고향에살고싶네요
수문통 처음 들어봐요 부평 촌놈이어서 그런가..귀한 옛 자료가 보기 좋습니다.
옛날엔 인천과 부평은 같은 인천이어도 택시비 추가 요금이 붙는 분리된 지역 같았었는데, 당시 신명여고 입구 고개가 분기점~^^
수문통길 청계천 복원처럼 살려내면 수변길 따라 상가들어서고 보기좋겠네요. 어린날 수문통길 양옆으로 자전거타며 놀던 그시절이 아름답기까지합니다. 가끔 화수부두 방면으로 화물객차가 뿌뿌거리면서 달리던 기억까지 아련합니다. 영상 감사합니다.
수무통 물길은 언젠가는 복원되지 않을까 기대 되네요, 인근 아파트 주민들에게도 좋은 수변 공간이 마련 될태구요, 저도 그때는 자전거 빌려서 탔었네요^^
제 고향 동네모습 잘봤습니다 이제 나이가 6학년5반이 됐으니 감회가 새롭네요 저는 중앙시장이 태어난곳이라 수문통시장과 수도곡산 친구들 생각이 어럼풋이 나고 철로에 못올려놓고 놀던추억도 나네요 영상 감사합니다.^&*
어서오세요, 중앙시장 그당시엔 송현동에 비해 부촌이었지요^^ 세월이 갈수록 추억은 새록새록합니다, 감사합니다
송림동이 고향인 50대 후반 입니다. 어릴적 생각이 많이 나네요 뭉클합니다. 잘 보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와~!!!!! 제 어릴적 기억속에 똥냇가가 수문통이였군요!!!!진짜 감사합니다 ㅎㅎㅎ
ㅎㅎ 감사합니다
중학교 때 똥바다, 수도국산, 인천제철, 목재단지...신문돌리던 구역이였습니다.
그 당시 그 지역 사람들이 상당히 질 안좋은 분들이 많아서 고생했던 기억이 납니다.
와~~저도추억 76녕생 송현동 태아날때 여기 살았어요~
저도 유치원 졸업 송현국민학교 졸업 하고 살았는데~^^
저도 76년생 송림동 출생입니다. 수문통 끝자락 쪽에 자전거포가 하나 있었고 끝자락에 슈퍼도 있었는데..슈퍼에서 아이스께끼 서리 하다 주인한테 걸려서 혼났었던 기억이 아직도 나네요..ㅎㅎ
인천 중구,동구가 다였던 시절 (남구는 온통 논과 밭) 인천 아이들은 똥바다에서 자전거를 배웠습니다.
수도국산 올라가는 곳 모퉁이에 자전거 대여점이 있었죠.
예전에 저도 철도위에 못 올려 놓고 기차 지나가면 판판해진 못을 갈아 표창을 만들었던 기억이......
예전엔 샷터문이 없고 도둑이 많아 나무로 만든 문짝을 추가로 설치했었죠.
가게들이 문을 열면 그 나무 문들을 벽에 포개어 기대 놓는데 거기다 표적을 만들어 표창을 던지며 놀았던 기억이....
나무문을 빈지라고 불렀는데, 빈지의 뜻은 모르겠지만, 73년도쯤에 가게를 하던 분들은 모두
아침 저녁으로 빈지문을 떼었다 붙혔다 하면서 살았지요. 그후 셧터라는 장치로 가게정면을
개선하기 시작했던 기억이 납니다. 물론 셧터라는장치는 훨씬 이전부터 존재했지만, 비용문제로
설치를 못하고 살았던 것이었지요.
@@데카르트-f3k 그거 이름이 빈지라는 건 처음 알게 됐네요. '널빈지'의 준말이라고 하네요. 문짝을 번호대로 끼워 닫으면 문짝마다 안쪽에 쇠로 만든 고리가 달려있는데 그 고리로 긴 쇠막대기를 끼워 넣어 밖에서는 못열게끔 되어 있었습니다. 가게를 열면 그 빈지를 차례대로 포개어 놓았는데 그 빈지가 동네 꼬마들한테는 과녁으로 아주 좋은 역할을 했던 기억이.....70년대 중반쯤 부터 지하상가가 여기저기 생기기 시작했는데 생각해보면 지하상가들은 셧터를 사용했던 거 같기도 합니다. 동네 구멍가게들은 그 이후로도 한참동안 빈지를 사용했습니다.
귀한사진 감사합니다~~ 화평치안쎈터뒤 중앙시장쪽이 제가 태어난 화평동이고요, 열한살때 정들었던 고향을 떠났는데 주변 삼화목욕탕,인덕의원,삼각이발관,평화의원,턔양당약국이 어렴풋이 떠오르고 어릴때 친구들이 더욱 그리워지는군요~~인천향우회( 뉴욕,뉴저지)에서 만난 지인들과도 가끔 만나는데 아직 축현(18회)학교 친구들을 만난적은 없어 아쉽지만 내년부턴 시간적인 여유가있어 한국을 자주 왕래할수있을것 같군요~~항상 좋은방송 감사말씀드립니다! 6:08 6:08 6:08
화평동 삼화목욕탕은 지금도 운영 중인 걸로 알고 있어요, 옛날 추억을 나눠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와~저는 82년 생 입니다
전 치안센터 뒤쪽 골목에서 살았습니다
명동칼국수 있었고 꽃집아저씨네도 있었죠 리어카 보관소와 동시에 주차장도 있었죠ㅎㅎ 얼마전 가보니 보신탕집은 그대로 있더라고요ㅎㅎ 전 삼화목욕탕에서 놀던 기억은 생생~~합니다 그 안쪽 골목에 구멍가게도 있었고 더 들어가면 비디오가게도 있었던거로 기억합니다 저도 축현초 졸업생입니다
몆회졸업생인지는 기억이 없습니다ㅎ
78년 초교 5학년때 수문통 끝자락에 자전거포 있었지 애들한테 시간 당 얼마씩 받고 자전거 대여해서
친구들 과 자전거 탔던 기억이 있습니다 화물차가 많이 다녀 위험 한 지역 이였지만 그 당시 자전거는 아무나 있는게 아니기에 놀이기구 중 하나 였습니다
당시 자전거포 아저씨 엄청 불친절에 무서웠는데 잘 계시는지요 저는 송현3동이 고향 입니다 똥고개 밑에 호랑이 밭 옆이 저희 집 이였지요
저도 거기서 빌려서 탔던 기억이 있습니다...이야....신기하네요.이렇게 추억이란게 공유되는거라니요.유투브 만세네요.
오! 재밋네요^^
감사합니다^^
저는 십원짜리 동전을 철로에 올려놓곤 했는데요,,,ㅎㅎ
영상 잘 봤습니다.^^
네 감사합니다^^
아주 어릴적 똥바다에 바닷물이 만조때면 여름에 어린 아이들이 들어가 물놀이를 했는데 빠져 죽은 아이들도 있었어요 지금 같으면 상상도 못할 일이지요~
그때 그시절 방역차를 왜 그렇게 따라 다녔는지 지금 생각하면 추억이 방울방울 ....
방역차 하얀연기는 그당시 아이들에겐 아주 큰 이벤트 같았네요, 몸안에 기생충도 죽는다는 말도 있었지요, 추억이 새록새록합니다
1990년 유치원때 이곳에 이사와서 결혼하고 애기 둘낳고 아직도 이곳에 살고있네요. 어릴때 여기 한창 공사할때 마을버스타면 공사중이던 좁디좁은길을 지나가던 기억이 생생합니다ㅎㅎㅎ 중학교때는 주말이면 차도를 막아놓고 차없는 거리로 운영하거나 무대설치해놓고 콘서트도 하곤했는데 이제는 다 추억이네요.
제가 태어나고 중학교 때까지 살던 고향에 살고 계시는군요, 지금도 ㅇ현시장 등 자주 찻는 동네입니다,
고모할머님께서 살던곳인데 설날되면 인사하려갖던곳이라 기억나요ㅋ
네,, 반갑습니다^^
그때 어린아이들은 철로위에 대못을 놓고 기차가 지나가면 자석이 된다는 썰이 있었죠.......
진짜로 되는지 해보곤했지요. ㅎㅎ
우리 중딩때는 저동네 사는 애들에게 너 어디사니 물으면
쌔느강변 이렇게 답하곤 했지요. ㅋㅋㅋㅋ
쎄느강이라고 부르곤 했었죠 ㅎ
이때화수동 송현동친구들은모두송현국민학교를다녔지요제나이80이거든요이때는시내뻐스같은차가없어서친구집놀러갈때20분30분씩걸어다녔죠
넵...
수문통 끝자락 수문통시장근처에 자전거포라고 자전거도 빌려탈수 있고 또 고쳐주기도 했던곳. 주인아저씨가 까마잡잡 굵은파마머리에 이노끼를 연상시키는 ㅋㅋ 생각들 나실거에요. 그분 어머니로 추정되는 할머니도 계셨는데 억척스럽고 이빨이 많이 빠져 모자가 맨날 흰색 난닝구 차림이었음. 생생하게 기억나네
👍
제 기억이 틀린게 아니었네요...자전거포..아저씨...인상적으로 생기셨었져...곱슬머리에 거인상...흰 런닝...제가 그때 8살쯤 됐을건데 그 주인아저씨 인상이 강렬해서 아직도 생생히 기억이 납니다. 프로야구 선수 준비하다 부상 당해서 자전저포 한다는 소문이 있었던 걸로 기억납니다. 그래도 애들한테는 친절했던거 같은데..어린나이에 얼굴만 봐도 무서웠었던..
허씨 아저씨라고 불리셧던걸로 기억합니다.
수문통... 이래서 수문통이군요 ㅎㅎㅎ
모국갈기회가주어진다면제일먼저화수동송현동그리고만석동친구들이살던동네가보고싶어요지금생각하면멀리만석동살던친구들이걸어서송현동송현국민학교를다녔는지
네...
아... 이래서 수문통이라고 한거였군요... 지금은 이미 늦었지만 청계천이나 포항 죽도시장처럼 수로가 있는 형태로 개발되었으면 어땠을지...
어서오세요, 말씀하신대로 진행하다가 지역민 의견, 주차장 대책 등 현안문제로 없았던 일이 된 듯하네요
철길에 납작해진 못이 지남철이 되어서 그거 갖고 놀았죠.
80년대 국민학교 다닐때 당시 똥바다라고 불리었던 기억이 있네요.친구들과 자전거 타러 다녔던 곳이었는데 당시에 근처만 가도 냄새가 아주 고약해서 두번은 가지 않았었던....^^;;;;
똥바다의 추억나눔 고맙습니다^^
맞아요 . 비공식 똥바다 ㅎㅎ
똥바다를 기억하시는 분들이 많이 계시네요
썰매꽂챙이 하였습니다. 흐흐흐
그시절 송현국민학교 다니던 추대추!! 다음날 신체청결검사한다고해서 온동네사람들이 보는앞에서 똥바다에 들어가 목욕했다가 담임쌤한테 회초리 맞았던 그친구가 생각나네요
목소리가 최백호? 김태원? 닮으셨네요 멋져요
김태원~~ㅎ
자전거포 하시더분이 지금동부아파트에 살고 계십니다
양키시장 순대국집은 80년대에도 드나들었는디여...
80년대 국민학교 다닐때도 있어는데 2층 화장실가려면 꼭 지나가야 해서
저두옛날에
수문통에서 물에서떠내려오는
공줍느라
참 바빳었어요
이곳에 살진않았지만..
아. 그러셨군요, 공이 많이 떠 내려갔던 수문통이에요^^
그때 아이들은 수문통을 일명 "똥바다" 라고 했었죠 그곳에 자전거가게가 자전거 빌려주는곳이 있었는데 저도 그곳에서 처음 자전거를 배웠던 기억이 있습니다
철로위에 못곳 올려놔 놀았던것은, 이게 납작하고 뜨거워진 못이되면 이걸갖고 국민학교 모래사장을 훝습니다, 그러면 철분이 뭍어 나오지요.
철분을 종이위에 올려놓고 밑에는 자석이된 못으로 철분가루 움직이면서 놀았습니다. 좋은하루 되세요 😄
아~ 못이 철로에서 납작하게 눌리면 자석 성질을 갖게 되는군요, 감사합니다^^
혹시 그 당시 친구?ㅎㅎ 저도 송현국민학교를 다니고 세계탕 앞에서 살아서 잘 알고 있지요. 너무너무 그립습니다.
언제까지나 건강하세요^^
저도 세계목욕탕 근처 일본집에서 살았습니다
송현38회 졸업요~
그때 그시절 친구들 너무많이 보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