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영토를 이 영상대로 하면서도 조선영토가 축소되지 않으려면 일명 간도지역이라고 하는 곳이 조선영토가 확실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 경우 고려던 조선이던 남만주지역에 거주했다는 여진족들도 고려 조선의 백성이어야 합니다. 단순히 신속관계여서는 안됩니다. 문제는 그리 되려면 조선 세종때 4군6진의 위치나 여진정벌에 대해서도 역사를 다시써야 하는 문제가 발생하죠. 윤관의 여진정벌에서 공험진 선춘령 위치를 거론들 하는데 뭐 두만강 이북 수백리설이 나오지만 그말이 타당하려면 그와 연관되어서 4군6진의 위치도 현 교과서상에 나오는 북한땅 그곳들은 완전 잘못된 기록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일단 행정적으로 고려와 조선에서 남만주일대의 행정편제가 있서야 하는데 그것을 증명할 기록이 아직 없습니다. 간도면적만 해도 동서간도지역은 조선시대 기준 평안도 함경도만한 별개의 도가 각각 그리해서 2개도가 압록 두만강 이북에 존재해야 합니다. 5도양계역시 수정되어야 해서 양계지역은 적어도 압록 두만강 이북으로 올라가야 하죠.
1. 신라 삭주는 본래 상당히 먼 북방이었을 것입니다. 삼국사기 지리에서, 삭주는 가탐이 말하는 맥국이라고 하는데, 낙랑동쪽예맥의 맥입니다. 한서지리지 낙랑을 심양-대련 구간의 어떤 동서 주변이라고 하면, 대략, 신라 삭주는 심양-신의주 지역에 대해서 어떤 동쪽 공간 쯤을 포함합니다. 삭주에 북원경이 있으므로, 북원경은 상당하고 충분하게 북쪽에 있었을 것 같습니다. 2. 세종실록 원주, 고려사 양광도 원주 편 등을 보면, 본래 원주는 북원경인데, 여러 변천을 겪다가, 심양왕-충선왕 때 거의 도태되었다가, 공민왕 때 복원되었습니다. 서기 2020년대 지리 기준으로 남한강-여주 주변 섬강-치악산 지역이 세종실록 원주입니다. 3. 남한강-여주-섬강-치악산 지역은 본래 경상도 안동부 관할 지역의 북쪽 부분 쯤이었을 것입니다. 이에 대해서는 일단 느낌상 신라 상주 영역이 본래 좀더 북쪽이었을 것입니다. 이를테면, 서기 1170년대 및 서기 1190년대에 고려 명종 때 남적 반란 집단이 황려현 여주 지역에서 활동했고, 그러한 시기에 안동부가 조정을 도왔다고 합니다. 연관성이 있을 것입니다. 공민왕 때 원주를 복원하면서 안동부를 좀더 남쪽으로 이전 확장하는 경우일 것 같습니다. 4. 고려 북계 숙주는 고려 평원군입니다. 이것은 세종실록지리지 평안도 숙천입니다. 본래의 평원군은 평안도 지역보다 먼 북쪽 고려 북계 지역에 있었을 것입니다. 5. 아무튼 고려 평평언덕-평원군과 고구려 우수주 평평언덕-평원군은 그 상형문자를 보더라도 글자가 동일하고, 이때 고구려 우수주 평원군이 즉 신라 삭주 북원경입니다. 6. 고려 태조 왕건이 본래 고려의 평원군을 바꿔서 북계 숙주로 하였다고 합니다. 태조 왕건 이전에 본래 고려 평원군이라면, 그것은 결국 궁예 양길 시대의 고려 평원군인 셈입니디. 아마도 혹시, 발해가 고려의 이름을 가지는 어떤 마지막 시간 쯤에, 양길 궁예 평원군과 신라 삭주 북원경이 중첩하는 상태가 있었던 것일 수도 있겠습니다만, 혹은 뭔가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가 있는 것인지, 알 수 없습니다.~
삭주가 춘천이 아니라 휠씬 북쪽에 있었을 것이라 나름 의문을 품고있었습니다. 왜냐하면 양맥이 태자하 유역에 있었는데 맥국이 춘천에도 있으니 당시 맥국이 두개인것인지 아니면 태자하에 있던 양맥을 맥국으로 불렀을 가능성에 대해서 제가 가지고 있는 원고에도 적어놓긴 했습니다. 삼국유사에도 맥국위치에 대해 두가지 의견을 올려놓기도 했지만요.~
@@진짜역사-k6f 다시 생각해 보니, 고려 원주 북원경과 고려 북계 숙주는 지리적으로는 관련성이 없는 것 같습니다. (단지 평원군이라는 이름이 원주와 숙주 모두에게 있을 뿐인 것 같습니다. 고려 지리가 단순하지가 않네요~ 제가 너무 단순하게접근했던 것 같습니다.) 신라 한주 소천군에 양근현과 황려현이 있는데, 양근현은 고려 광주에 있고 황려현은 고려 원주에 있으므로, 원주와 광주는 서로 접해야 합니다. 원주는 광주와 함께 그냥 지금 위치보다 적당하게 조금 북쪽에 있었던 경우인 것 같습니다. 궁예 철원을 고정할 수 있다면, 양길은 궁예 철원의 동쪽 방향 쯤에 있었을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고려 춘주 즉 신라 삭주 본현이 어딘가 상당히 먼 북방에 있었을 것 같습니다.~ 고려 춘주를 고려 동계 안변부 (등주)에 속하게 했었다고도 했는데, 사실은 본래의 등주가 함경남도 남부가 아니라 어떤 먼 북방이 되는 것만큼, 마찬가지로 고려 춘주도 먼 북방이 되는 경우인 것 같습니다.
책XX라는 유튜버는 한술더 떠서 뭐 중국 하북성 산동성등지가 모두 고려땅이라고 주장하는바 그런 논리대로 한다면 그지역에 고려유물이 나와서 증명이 되는지?, 그리고 그런 영토라면 송나라와 육지로 국경을 닿게 되는데 그리될 경우 고려와 송의 군사동맹이 수월히 가능하게 되어 어떻게 요나라가 송을 압박할수 있슬지부터가 논리적 모순이 부닥칩니다.
덕담 한마디의 감사함 한줌
좋은 내영입니다
제작자의 통찰력을 느낄수 있네요
감사합니다 ^^
고려영토를 이 영상대로 하면서도 조선영토가 축소되지 않으려면 일명 간도지역이라고 하는 곳이 조선영토가 확실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 경우 고려던 조선이던 남만주지역에 거주했다는 여진족들도 고려 조선의 백성이어야 합니다. 단순히 신속관계여서는 안됩니다. 문제는 그리 되려면 조선 세종때 4군6진의 위치나 여진정벌에 대해서도 역사를 다시써야 하는 문제가 발생하죠.
윤관의 여진정벌에서 공험진 선춘령 위치를 거론들 하는데 뭐 두만강 이북 수백리설이 나오지만 그말이 타당하려면 그와 연관되어서 4군6진의 위치도 현 교과서상에 나오는 북한땅 그곳들은 완전 잘못된 기록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일단 행정적으로 고려와 조선에서 남만주일대의 행정편제가 있서야 하는데 그것을 증명할 기록이 아직 없습니다.
간도면적만 해도 동서간도지역은 조선시대 기준 평안도 함경도만한 별개의 도가 각각 그리해서 2개도가 압록 두만강 이북에 존재해야 합니다.
5도양계역시 수정되어야 해서 양계지역은 적어도 압록 두만강 이북으로 올라가야 하죠.
4군 6진 모두 압록강과 두만강 북쪽입니다. 우리 기록과 고지도에 나옵니다. 간도 땅에도 조선인 경작 기록 나옵니다. 공헝진과 선춘령이 두만강 이북인 것은 너무도 명백하고 러시아에서 고려와 조선유물 발굴도 했습니다
1.
신라 삭주는 본래 상당히 먼 북방이었을 것입니다.
삼국사기 지리에서, 삭주는 가탐이 말하는 맥국이라고 하는데, 낙랑동쪽예맥의 맥입니다.
한서지리지 낙랑을 심양-대련 구간의 어떤 동서 주변이라고 하면,
대략,
신라 삭주는 심양-신의주 지역에 대해서 어떤 동쪽 공간 쯤을 포함합니다.
삭주에 북원경이 있으므로, 북원경은 상당하고 충분하게 북쪽에 있었을 것 같습니다.
2.
세종실록 원주, 고려사 양광도 원주 편 등을 보면, 본래 원주는 북원경인데, 여러 변천을 겪다가,
심양왕-충선왕 때 거의 도태되었다가, 공민왕 때 복원되었습니다.
서기 2020년대 지리 기준으로 남한강-여주 주변 섬강-치악산 지역이 세종실록 원주입니다.
3.
남한강-여주-섬강-치악산 지역은 본래 경상도 안동부 관할 지역의 북쪽 부분 쯤이었을 것입니다.
이에 대해서는 일단 느낌상 신라 상주 영역이 본래 좀더 북쪽이었을 것입니다.
이를테면, 서기 1170년대 및 서기 1190년대에 고려 명종 때 남적 반란 집단이 황려현 여주 지역에서 활동했고, 그러한 시기에 안동부가 조정을 도왔다고 합니다.
연관성이 있을 것입니다.
공민왕 때 원주를 복원하면서 안동부를 좀더 남쪽으로 이전 확장하는 경우일 것 같습니다.
4.
고려 북계 숙주는 고려 평원군입니다.
이것은 세종실록지리지 평안도 숙천입니다.
본래의 평원군은 평안도 지역보다 먼 북쪽 고려 북계 지역에 있었을 것입니다.
5.
아무튼 고려 평평언덕-평원군과 고구려 우수주 평평언덕-평원군은 그 상형문자를 보더라도 글자가 동일하고,
이때 고구려 우수주 평원군이 즉 신라 삭주 북원경입니다.
6.
고려 태조 왕건이 본래 고려의 평원군을 바꿔서 북계 숙주로 하였다고 합니다.
태조 왕건 이전에 본래 고려 평원군이라면,
그것은 결국 궁예 양길 시대의 고려 평원군인 셈입니디.
아마도 혹시,
발해가 고려의 이름을 가지는 어떤 마지막 시간 쯤에,
양길 궁예 평원군과 신라 삭주 북원경이 중첩하는 상태가 있었던 것일 수도 있겠습니다만,
혹은 뭔가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가 있는 것인지,
알 수 없습니다.~
삭주가 춘천이 아니라 휠씬 북쪽에 있었을 것이라 나름 의문을 품고있었습니다. 왜냐하면 양맥이 태자하 유역에 있었는데 맥국이 춘천에도 있으니 당시 맥국이 두개인것인지 아니면 태자하에 있던 양맥을 맥국으로 불렀을 가능성에 대해서 제가 가지고 있는 원고에도 적어놓긴 했습니다. 삼국유사에도 맥국위치에 대해 두가지 의견을 올려놓기도 했지만요.~
@@진짜역사-k6f 다시 생각해 보니, 고려 원주 북원경과 고려 북계 숙주는 지리적으로는 관련성이 없는 것 같습니다. (단지 평원군이라는 이름이 원주와 숙주 모두에게 있을 뿐인 것 같습니다. 고려 지리가 단순하지가 않네요~ 제가 너무 단순하게접근했던 것 같습니다.)
신라 한주 소천군에 양근현과 황려현이 있는데, 양근현은 고려 광주에 있고 황려현은 고려 원주에 있으므로, 원주와 광주는 서로 접해야 합니다.
원주는 광주와 함께 그냥 지금 위치보다 적당하게 조금 북쪽에 있었던 경우인 것 같습니다.
궁예 철원을 고정할 수 있다면, 양길은 궁예 철원의 동쪽 방향 쯤에 있었을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고려 춘주 즉 신라 삭주 본현이 어딘가 상당히 먼 북방에 있었을 것 같습니다.~
고려 춘주를 고려 동계 안변부 (등주)에 속하게 했었다고도 했는데,
사실은 본래의 등주가 함경남도 남부가 아니라 어떤 먼 북방이 되는 것만큼, 마찬가지로 고려 춘주도 먼 북방이 되는 경우인 것 같습니다.
@@besuhof9360 그렇군요.
이런 논리라면 고려영토역시 신라영토보다 축소될수 없기에 요동지역이 고려땅이어야 하는데 그리따지면 고려행정구역 5도양계도 잘못된 역사인가요? 고려영토가 남만주일대까지포함한다면 고작 5도양계에 그칠리가 없죠.
고려영토에 대해서도 추후 올릴겁니다. 고려 또한 확실히 요동에 있었습니다. 사료가 많음에도 학계가 공부하지 않은겁니다. 충분한 근거 가지고 있으니 나중에 보시기 바랍니다.
책XX라는 유튜버는 한술더 떠서 뭐 중국 하북성 산동성등지가 모두 고려땅이라고 주장하는바 그런 논리대로 한다면 그지역에 고려유물이 나와서 증명이 되는지?, 그리고 그런 영토라면 송나라와 육지로 국경을 닿게 되는데 그리될 경우 고려와 송의 군사동맹이 수월히 가능하게 되어 어떻게 요나라가 송을 압박할수 있슬지부터가 논리적 모순이 부닥칩니다.
굳이 유물이 아니라 기록에도 그곳에 고려가 없다는게 증명됩니다. 또한 북경과 하북성에 요탑이 빽빽하게 세워져 있습니다. 책xx처럼 역사를 기록이 아니라 이상한 논리로 규명하면 엉터리가 됩니다
통일싱라의 강역이 요동까지 이르렀다면 발해의 서경압록부와 남경남해부 동경용원부는 어디서 찾아야 하죠?
@@타미드LOG 발해 5경 진짜 위치에 대해서 다른 편메서 설명했으니 참고바랍니다. 그리고 본 채널의 내용을 포함해 진짜 우리 영토에 관한 책이 발간될 예정입니다. 출판사와의 계약에 따라 영상들이 모두 삭제될 예정이니 가급적 빨리 보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