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이 도마복음보다 후대에 나왔다는 의견에 동의합니다.도마복음을 차용하다보니 요한은 간단한 구절로만 표현한것으로 생각합니다. 4대복음은 창작자의 예수 구전을 기초로한 창작물인만큼 굳이 시대.형식.제도.절차등은 의미없다고봅니다.예수 말씀을 중히 어겨야 하는 기준으로 봅니다
도마서 12~13절에 대한 선생님 해석에서 근본적 의문이 드는 게, 만일 선생님 말씀처럼 도마서의 저자가 베드로를 평가절하 하고자 하는 의도로 12~13절을 기술하고 있다면, 반대로 선생님께서 반대 근거로 들고 있는 마태서 등의 공관 복음서는 베드로를 의도적으로 상찬하고 있다는 의미가 되지 않을런지요? 그렇다면 선생님의 말씀에서 얻을 수 있는 예수 사후 당시의 시대적 상황이란 것이 결국 베드로와 바울에 의해 제도화 되어가는 기독교의 신앙원리와 도마의 추종자들이 해석하고 이해하는 신앙의 원리가 달랐다는 것인데, 이런 측면에서 보자면 선생님의 설명은 최종적으로 이들 각각의 신앙원리와 신앙을 통해 추구하고자 했던 바가 구체적으로 어떻게 달랐는지, 그리고 그것이 지금의 제도화 된 종교로서 기독교에 어떤 의미를 갖는 것인지까지를 설명해야 최종적 설득력을 얻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김용옥 선생의 경우 도마서 해석을 통해 바울의 기독교와 도마의 예수는 완전히 다르다는 다소 파격적 주장을 하고 있는 것이고, 실제 도마서를 읽어보더라도 예수의 부활 사건을 강조하고 있는 공관복음서들과는 달리 도마서는 오직 예수의 말씀과 가르침을 통한 영적 깨달음과 변화한 삶의 태도를 시종일관 강조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같은 도마서의 진술 방식이 "말씀"에 근거하지 않은 신비주의적 영지주의와는 전혀 상관없다고 생각하는 입장입니다만, 결국 도마서가 담고 있는 신앙적 의미를 해석하는 건 마치 불교에서의 돈오돈수와 돈오점수를 둘러싼 논쟁에서와 같이 신앙과 구원에 대한 훨씬 근본적인 철학적 사유를 필요로 하는 과정이 아닐까 싶은데, 이런 측면에서 보자면 오늘 강의에서 듣게 되는 선생님의 해설과 설명은 도마서가 나오게 된 역사적 상황에 대한 유추에만 지나치게 집중하고 있다는 아쉬움을 떨칠 수가 없습니다.
마태복음은 베드로를 훌륭한 제자로 묘사합니다. 제 다른 강의도 보시고 무엇보다 기존의 도마복음 강의들에 매이지 마시고 열린 마음으로 들어주셨으면 합니다. 실제의 예수가 갈릴리 어부들 민중들과 새로운 깨달음을 추구하는 정신적 위주의 운동을 펼치기보다는, 생활형 실천적 하나님 나라 운동을 폈던 것입니다.
두 번째 자세히 들어보니, 교수님의 학문적 분석력에 놀랐습니다. 한 가지 제가 추가하고 싶은데 나무라지 마십시오 사도행전 15장에 보면 이방인 개종자에 대한 할례 문제에 대해 두 지도자 베드로와 야고보의 말이 나오는데 베드로는 특별한 제한을 가하지 않고 할례를 받을 필요가 없다는 쪽으로 말하고, 야고보는 네 가지 사항은 이방인 개종자라도 지켜야 한다는 제한을 둡니다. 그래서 결국 야고보가 제안한 사항을 교회들에 전달하게 됩니다. 이로 보아 초대 교회를 이끈 두 기둥이 베드로와 야고보인데 마태 공동체나 대부분의 사도 교회는 베드로 쪽을 더 지지하였고 비주류인 도마 공동체 같은 곳은 야고보를 추앙한 것 같습니다. 도마서에 나오는 야고보에 대한 표현은 관용적이고 과장적인 표현은 맞는 것 같습니다. 이로써 도마복음이 2세기 이후에 기록되었다는 것이 추론됩니다.
그리고 좀더 추론해 보면 도마는 예수의 죽음 자체를 인정한 것이 아닌 것 같은 생각이 듭니다. 왜냐하면, 못자국을 보여주었다는 것은 죽었다가 다시 산 것을 확인시켜 준 것인데 예수가 당시 살아 있는 모습을 보았는데도, 그걸 확인시켜 주었다는 것이 죽음을 인정 안 했다는 뜻이고 그것을 도마 복음 13절과 연결해 보면 도마가 예수의 정체성에 대해서 다른 사도와 다르게 생각했다는 근거로 추론 됩니다. 따라서 영지주의자들의 가현설이 13절에서 예수의 정체성에 대한 도마의 태도로 어느 정도 윤곽이 잡히는 것 같습니다.
교수님의 탁월한 분석에 찬사를 보냅니다. 수고하셨습니다.
감사합니다.
교수님의 노고에 경의를 표합니다.
감사합니다
도마복음은 눈밖에 있는 것을 말씀하신게 아니고 인간의 내면의 세계를 말씀하신 것 같습니다
예수님은 내면의 세계보다 현실의 삶의 문제에 집중하셨다고 봅니다.
어쨌든 시간을 두시고 생각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tv-6257 도마복음은 각자자기 자신안에 있는 하나님을 만날수 있는 방법을 말씀 하신것 아닐까요?
탁월한 분석 , 진지한 강의에 늘 감사드립니다
감사합니다
부활 후, 승천이라기 보다는 십자가형(정치범)이 확정되고 실제적 죽음을 앞둔 시점일 수 있지 않을까요? 맨 처음 동영상부터 강의 잘 듣고 있는 한 사람 입니다. 재미난 강의 감사합니다. 🥰🙏🏻
성원 감사합니다.
요한복음이 도마복음보다 후대에 나왔다는 의견에 동의합니다.도마복음을 차용하다보니 요한은 간단한 구절로만 표현한것으로 생각합니다. 4대복음은 창작자의 예수 구전을 기초로한 창작물인만큼 굳이 시대.형식.제도.절차등은 의미없다고봅니다.예수 말씀을 중히 어겨야 하는 기준으로 봅니다
감사합니다
도마서 12~13절에 대한 선생님 해석에서 근본적 의문이 드는 게, 만일 선생님 말씀처럼 도마서의 저자가 베드로를 평가절하 하고자 하는 의도로 12~13절을 기술하고 있다면, 반대로 선생님께서 반대 근거로 들고 있는 마태서 등의 공관 복음서는 베드로를 의도적으로 상찬하고 있다는 의미가 되지 않을런지요? 그렇다면 선생님의 말씀에서 얻을 수 있는 예수 사후 당시의 시대적 상황이란 것이 결국 베드로와 바울에 의해 제도화 되어가는 기독교의 신앙원리와 도마의 추종자들이 해석하고 이해하는 신앙의 원리가 달랐다는 것인데, 이런 측면에서 보자면 선생님의 설명은 최종적으로 이들 각각의 신앙원리와 신앙을 통해 추구하고자 했던 바가 구체적으로 어떻게 달랐는지, 그리고 그것이 지금의 제도화 된 종교로서 기독교에 어떤 의미를 갖는 것인지까지를 설명해야 최종적 설득력을 얻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김용옥 선생의 경우 도마서 해석을 통해 바울의 기독교와 도마의 예수는 완전히 다르다는 다소 파격적 주장을 하고 있는 것이고, 실제 도마서를 읽어보더라도 예수의 부활 사건을 강조하고 있는 공관복음서들과는 달리 도마서는 오직 예수의 말씀과 가르침을 통한 영적 깨달음과 변화한 삶의 태도를 시종일관 강조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같은 도마서의 진술 방식이 "말씀"에 근거하지 않은 신비주의적 영지주의와는 전혀 상관없다고 생각하는 입장입니다만, 결국 도마서가 담고 있는 신앙적 의미를 해석하는 건 마치 불교에서의 돈오돈수와 돈오점수를 둘러싼 논쟁에서와 같이 신앙과 구원에 대한 훨씬 근본적인 철학적 사유를 필요로 하는 과정이 아닐까 싶은데, 이런 측면에서 보자면 오늘 강의에서 듣게 되는 선생님의 해설과 설명은 도마서가 나오게 된 역사적 상황에 대한 유추에만 지나치게 집중하고 있다는 아쉬움을 떨칠 수가 없습니다.
마태복음은 베드로를 훌륭한 제자로 묘사합니다. 제 다른 강의도 보시고 무엇보다 기존의 도마복음 강의들에 매이지 마시고 열린 마음으로 들어주셨으면 합니다. 실제의 예수가 갈릴리 어부들 민중들과 새로운 깨달음을 추구하는 정신적 위주의 운동을 펼치기보다는, 생활형 실천적 하나님 나라 운동을 폈던 것입니다.
어차피 예수사후 각 집단의 투쟁에 의해 주도권을 줜 집단 베드로 측에 어해 이끌어진거라 봅니다.세례자 요한도 예수와 동급이었으나 먼저 처형되므로서 끝을 맺지만 요한의 추종자를 위해 예우를 한 구절이 나타난거라 생각합니다
감사합니다
김교수님 e주소를 알수 있을까요?
본 강의에서는 강의자의 이메일을 공개하여 이용하지 않습니다. 양해해주시길 바랍니다.
두 번째 자세히 들어보니, 교수님의 학문적 분석력에 놀랐습니다. 한 가지 제가 추가하고 싶은데 나무라지 마십시오 사도행전 15장에 보면 이방인 개종자에 대한 할례 문제에 대해 두 지도자 베드로와 야고보의 말이 나오는데 베드로는 특별한 제한을 가하지 않고 할례를 받을 필요가 없다는 쪽으로 말하고, 야고보는 네 가지 사항은 이방인 개종자라도 지켜야 한다는 제한을 둡니다. 그래서 결국 야고보가 제안한 사항을 교회들에 전달하게 됩니다. 이로 보아 초대 교회를 이끈 두 기둥이 베드로와 야고보인데 마태 공동체나 대부분의 사도 교회는 베드로 쪽을 더 지지하였고 비주류인 도마 공동체 같은 곳은 야고보를 추앙한 것 같습니다. 도마서에 나오는 야고보에 대한 표현은 관용적이고 과장적인 표현은 맞는 것 같습니다. 이로써 도마복음이 2세기 이후에 기록되었다는 것이 추론됩니다.
그리고 좀더 추론해 보면 도마는 예수의 죽음 자체를 인정한 것이 아닌 것 같은 생각이 듭니다. 왜냐하면, 못자국을 보여주었다는 것은 죽었다가 다시 산 것을 확인시켜 준 것인데 예수가 당시 살아 있는 모습을 보았는데도, 그걸 확인시켜 주었다는 것이 죽음을 인정 안 했다는 뜻이고 그것을 도마 복음 13절과 연결해 보면 도마가 예수의 정체성에 대해서 다른 사도와 다르게 생각했다는 근거로 추론 됩니다. 따라서 영지주의자들의 가현설이 13절에서 예수의 정체성에 대한 도마의 태도로 어느 정도 윤곽이 잡히는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