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가 망하는 와중에 수많은 후궁들을 들인 고종이란 임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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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Опубликовано: 11 янв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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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에게 사랑을 얻었지만, 왕비의 질투로 평생 궁 밖에서 살다 죽은 궁녀도 있었는데 조선 제26대 고종 이형이 처음 마음을 빼앗긴 여인은 궁녀 이순아, 영보당 귀인 이씨였습니다.
이순아는 고종이 열두 살에 왕위에 올라 궁궐에 들어갔을 때 왕을 보필하던 왕이나 왕비의 인도 등을 하는 지밀궁녀로 상궁시절 만난 여인입니다.
열두 살의 고종을 처음 만날 당시 이순아는 스물한 살이었으니, 고종은 아홉 살이나 많은 연상의 여인을 흠모했던 것으로 갓 사춘기에 접어든 소년이 성숙한 20대 여인에게 빠졌으니, 헤어나오기 어려운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상황에서 이형은 다른 여인과 결혼하는데 신부는 민치록의 딸 자영으로 민치록은 숙종의 계비 인현왕후의 아버지인 민유중의 5대손이었습니다.
여흥 민씨의 종갓집 딸과 결혼하게 된 것인데 그녀가 이형의 어머니와는 10촌 간으로 이형은 11촌 아주머니를 아내로 맞아들이게 된 것입니다.
게다가 이형의 외삼촌인 민승호가 그녀의 오빠라서 외가의 근친과 결혼을 한 것인데 조선시대에 외가 근친과 결혼하는 것은 드문 일이 아니었습니다.
1886년 3월 21일, 이형은 민치록의 딸 민씨명성황후와 결혼해 초야를 치르는데 당시는 고종 이형이 왕이 된 지 3년이 지났고, 나이는 열다섯 살이었습니다.
왕비 민씨는 한 살 많은 열여섯 살이었는데 당시 풍습으로는 신랑이든 신부든 한쪽만 열다섯 살이 넘으면 합방할 수 있었기 때문에 두 사람은 초야를 치른 날 합혼례를 병행한 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