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공부하다 궁금한 점이 있어 글을 남깁니다. 마태복음 12장 31절 보면 용서받지 못하는 신성모독죄에 대해 읽고서 나도 모르게 혹시 용서받지 못하는 죄를 지었으면 어쩌나 걱정도 들고 멀리 떨어져있는 아빠가 다니는 교회에서 방언을하고 애즈베리 부흥 이라는 영상을보고 아빠도 무슨 목사님이 이마에 손이 닿기도 전에 쓰러지면서 은사?라고 해야되나요? 그런걸 받았다는 간증을 하길래 걱정이되는 마음에 마태복음 6장 5절에 기도하는 방법에대한 내용과 고린도전서 14장에 나온 방언에 대한 내용을 얘기해 주었는데 막 찾아보니 이런것도 방언 신유? 축사?이런건 잘 뭔지 모르는데 은사주의 교회에서나 집단에서 성령님을 대적하여 신성모독을 한거라고 겁이나서 혼란스러워서 뭐가 맞는건지 글을 남깁니다.
안녕하세요! 먼저 질문하신 마12장의 맥락을 읽어보면 주님을 대적하는 사람들에게 하신 말씀이란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말로 인자를 거역하면 사하심을 얻는다고 하셨습니다(32) 아직 구속을 완성하지 못한 시점이기 때문에 돌이킬 기회가 있다는 말씀입니다. 다만 말로 성령을 거역하면 사하심을 얻지 못한다고 하셨지요. 왜냐하면 성령은 그리스도께서 구속을 완성하신 후에 구원받은 사람의 마음에 계신 분이기 때문에 성도는 성령을 종종 근심케 할 수 는 있어도 모독하는 일은 결코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성령을 대적하는 것은 사단에게 속한 사람이란 의미가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소위 쓰러짐과 같은 영적현상에 대해서도 말씀드립니다.성령이 처음 강림하실 때 분명히 방언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일관되게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였고 오순절에 모인 각처의 디아스포라 유대인에게 하나님의 큰 일을 선포하신 것이었습니다. 바울의 전도여행이 이들로 인해 길을 닦도록 하신 하나님의 전략이었습니다. 그러나 고전 14장에서는 하찮은 은사로 여겨지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마가의 다락방에서 기도중에 강림하신 성령을 경험한 사람들이 그 충만한 경험을 재현하려고 공적인 예배에서 사용함으로써 혼란을 주었기 때문에 바울이 금하지는 말되 추구할 바는 아니라고 말한 것입니다. 하지만 신사도주의자들이 행하는 일들과 방언은 성경에 나타난 방언으로 보기 어렵습니다. 그들이 하는 방언은 힌두교와 태국불교와 아프리카 원주민들의 제의에서도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다만 바울은 고전13장에서 온전한 것이 오면 방언이나 예언이 폐한다고 하셨는데 이는 기록된 말씀을 의미합니다. 마지막 때의 현상이 능력과 표적과 거짓 기적과 불의의 모든 속임으로 임한다고 했는데 거짓 것을 좇는 것은 진리의 사랑을 받지 않은 까닭이라고 했습니다(살후2:9-12) 다만 한때 그런 외적현상을 좇다가 환멸을 느끼고 돌아선 분들이 많이 계시니 낙심하지 마시고 말씀에 나타난 하나님과 그리스도를 부친께 잘 간증하고 교제해 드리는 것이 좋겠습니다.
배경음악이 집중력에 방해가 되는듯하네요…
나의 나 된것은 주님의 은혜입니다.
성경공부하다 궁금한 점이 있어 글을 남깁니다.
마태복음 12장 31절 보면 용서받지 못하는 신성모독죄에 대해 읽고서 나도 모르게 혹시 용서받지 못하는 죄를 지었으면 어쩌나 걱정도 들고
멀리 떨어져있는 아빠가 다니는 교회에서 방언을하고 애즈베리 부흥 이라는 영상을보고 아빠도 무슨 목사님이 이마에 손이 닿기도 전에
쓰러지면서 은사?라고 해야되나요?
그런걸 받았다는 간증을 하길래
걱정이되는 마음에 마태복음 6장 5절에 기도하는 방법에대한 내용과
고린도전서 14장에 나온 방언에 대한 내용을 얘기해 주었는데
막 찾아보니 이런것도 방언 신유? 축사?이런건 잘 뭔지 모르는데 은사주의 교회에서나 집단에서 성령님을 대적하여 신성모독을 한거라고 겁이나서 혼란스러워서 뭐가 맞는건지 글을 남깁니다.
안녕하세요!
먼저 질문하신 마12장의 맥락을 읽어보면 주님을 대적하는 사람들에게 하신 말씀이란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말로 인자를 거역하면 사하심을 얻는다고 하셨습니다(32) 아직 구속을 완성하지 못한 시점이기 때문에 돌이킬 기회가 있다는 말씀입니다. 다만 말로 성령을 거역하면 사하심을 얻지 못한다고 하셨지요. 왜냐하면 성령은 그리스도께서 구속을 완성하신 후에 구원받은 사람의 마음에 계신 분이기 때문에 성도는 성령을 종종 근심케 할 수 는 있어도 모독하는 일은 결코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성령을 대적하는 것은 사단에게 속한 사람이란 의미가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소위 쓰러짐과 같은 영적현상에 대해서도 말씀드립니다.성령이 처음 강림하실 때 분명히 방언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일관되게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였고 오순절에 모인 각처의 디아스포라 유대인에게 하나님의 큰 일을 선포하신 것이었습니다. 바울의 전도여행이 이들로 인해 길을 닦도록 하신 하나님의 전략이었습니다. 그러나 고전 14장에서는 하찮은 은사로 여겨지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마가의 다락방에서 기도중에 강림하신 성령을 경험한 사람들이 그 충만한 경험을 재현하려고 공적인 예배에서 사용함으로써 혼란을 주었기 때문에 바울이 금하지는 말되 추구할 바는 아니라고 말한 것입니다. 하지만 신사도주의자들이 행하는 일들과 방언은 성경에 나타난 방언으로 보기 어렵습니다. 그들이 하는 방언은 힌두교와 태국불교와 아프리카 원주민들의 제의에서도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다만 바울은 고전13장에서 온전한 것이 오면 방언이나 예언이 폐한다고 하셨는데 이는 기록된 말씀을 의미합니다.
마지막 때의 현상이 능력과 표적과 거짓 기적과 불의의 모든 속임으로 임한다고 했는데 거짓 것을 좇는 것은 진리의 사랑을 받지 않은 까닭이라고 했습니다(살후2:9-12) 다만 한때 그런 외적현상을 좇다가 환멸을 느끼고 돌아선 분들이 많이 계시니 낙심하지 마시고 말씀에 나타난 하나님과 그리스도를 부친께 잘 간증하고 교제해 드리는 것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