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을 시청하다 보면 여러 가지 의문 의심이 생길 수 있습니다. 영상 한두 편으로 이러한 문제가 해결되기는 어렵다고 봅니다. 가슴속에 ‘나는 누구인가’라는 근원적인 질문에 대한 답을 찾고자 진지하게 공부해나가는 구도자라면 기존에 알고 있던 모든 알음알이를 내려놓고 여러 영상을 반복해서 들어보시기를 바랍니다
금강경은 완전한가? 이 설법을 만든이가 완전한가를 먼저 보아야 한다 인간은 죽는다 부처도 죽는다 완전한 사람가 불안전한 사람의 끝이 똑같다면 어찌 부처를 완전하다고 볼수가 있는가? 만약 다르다면... 인간의 끝이 다르게 볼수 있어야 한다 완전 하던 불완전 하던 인간들이 납득이 될때.... 이 금강경의 설법을 가지고 논쟁 할수 있는게 아닌가 여러분께 묻습니다 자신을 알고자 한다면... 남의 상들을 먼저 보는 것이 아니고 자신의 것 부터 알아가야 하지 안을까요 즉, 자신도 모르면서 왜 우리는 부처님을 먼저 보려고 할까요 순서가 잘못 되었습니다 순서가 틀리면 아무리 좋은 것을 받아들여도 소화를 할 수가 없다는 겁니다.
알면 깨달았다고 하는 건 기준이 너무 관대한 겁니다. 부처님과 당시의 제자들은 삼독의 소멸을 깨달음의 기준으로 삼았지, 아는 것을 기준으로 하지 않았습니다. 8정도의 시작이 정견인데, 정견을 갖게 됐다고 깨달은 자라고 인정하지 않았다는 겁니다. 정견을 갖게 되었으면 수행할 자격이 생긴 정도인 건데, 이를 깨달았다고 인가하는 건 매우 섣부른 판단입니다. 정욕에 사로잡히고 화내고 슬퍼하고 이런 인연 작용이 자연스러운 거라고, 깨달은 자도 거기에 휘둘리는 게 당연한 거는 아니지요. 삼독을 벗어나지 못했다면, 말로는 생각으로는 개체가 "나"가 아니라고 하더라도, 실제로는 개체를 "나"라고 여기는 [기조]를 벗어나지 못한 겁니다. 다른 말로 하면 무의식 단계에서는 그대로라는 겁니다. 그대로인데 깨달았다고 할 수는 없는 거지요. [기조]가 바뀌어서 개체를 더이상 "나"라고 여기지 않고 뭔지 모르는 "실체"를 "나"라고 여길 때, 이때가 되어서야 비로소 진짜 무아로 진리로 사는 것이고, 삼독이 소멸된 삶인 것이죠. "실체"를 "나"라고 여기고, 개체를 "나"라고 여기는 마음이 전혀 일어나지 않는다면, 어떻게 정욕이 성냄이 욕심이 괴로움이 일어날 수가 있겠습니까?
영상을 시청하다 보면 여러 가지 의문 의심이 생길 수 있습니다.
영상 한두 편으로 이러한 문제가 해결되기는 어렵다고 봅니다.
가슴속에 ‘나는 누구인가’라는 근원적인 질문에 대한 답을 찾고자 진지하게
공부해나가는 구도자라면 기존에 알고 있던 모든 알음알이를 내려놓고
여러 영상을 반복해서 들어보시기를 바랍니다
인식되어진 것은 실체가 없다. 우리는 서로에게 인식되어진 대상, 상으로만 존재하기에 그 상은 실체가 아닌 허상이다. 그러나 그 허상으로만 존재가 드러나니 허상과 실재는 하나이며 동시적으로 있다. 가르침 감사합니다😊
자명하게 나를 의식하고 몸도 보고드고 잇는데 허상이라니 참 알수없는 이야기를 하신 부처님 돌아버리갯슈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
마음이보는모든것은 환상입니다
공의 실현이 색이고 색의 본성이 공이듯 진제와 속제도 둘이 아닙니다 바라보는 마음에 따라 달리 보이는 것일뿐 깨달으면 속제도 진제가 되죠 본인도 색으로 법문을 속계에 하고 잇는데 어찌 공에만 빠졋다 하겟습니까? 방편의 어려움이겟지요
금강경은 완전한가?
이 설법을 만든이가 완전한가를 먼저 보아야 한다
인간은 죽는다
부처도 죽는다
완전한 사람가 불안전한 사람의 끝이 똑같다면 어찌
부처를 완전하다고 볼수가 있는가?
만약 다르다면...
인간의 끝이 다르게 볼수 있어야 한다
완전 하던 불완전 하던
인간들이 납득이 될때....
이 금강경의 설법을 가지고
논쟁 할수 있는게 아닌가
여러분께 묻습니다
자신을 알고자 한다면...
남의 상들을 먼저 보는 것이 아니고 자신의 것 부터 알아가야 하지 안을까요
즉,
자신도 모르면서 왜 우리는
부처님을 먼저 보려고 할까요
순서가 잘못 되었습니다
순서가 틀리면 아무리 좋은 것을 받아들여도 소화를
할 수가 없다는 겁니다.
공에 떨어진 법문이네요
연기법을 교묘하게 이용하여 진제만 유일하다고 하는 꼴입니다
진제와 속제를 올바르게 알아야 하는데, 진제만 중요시 하네요
이런 공부를 하게 되면 막심막행을 하고도 괜찮다 하는 꼴이 됩니다
言語道斷이요不可思議하여
不可說이다.
알면 깨달았다고 하는 건 기준이 너무 관대한 겁니다.
부처님과 당시의 제자들은 삼독의 소멸을 깨달음의 기준으로 삼았지, 아는 것을 기준으로 하지 않았습니다.
8정도의 시작이 정견인데, 정견을 갖게 됐다고 깨달은 자라고 인정하지 않았다는 겁니다.
정견을 갖게 되었으면 수행할 자격이 생긴 정도인 건데, 이를 깨달았다고 인가하는 건 매우 섣부른 판단입니다.
정욕에 사로잡히고 화내고 슬퍼하고 이런 인연 작용이 자연스러운 거라고, 깨달은 자도 거기에 휘둘리는 게 당연한 거는 아니지요.
삼독을 벗어나지 못했다면, 말로는 생각으로는 개체가 "나"가 아니라고 하더라도, 실제로는 개체를 "나"라고 여기는 [기조]를 벗어나지 못한 겁니다.
다른 말로 하면 무의식 단계에서는 그대로라는 겁니다. 그대로인데 깨달았다고 할 수는 없는 거지요.
[기조]가 바뀌어서 개체를 더이상 "나"라고 여기지 않고 뭔지 모르는 "실체"를 "나"라고 여길 때, 이때가 되어서야 비로소 진짜 무아로 진리로 사는 것이고, 삼독이 소멸된 삶인 것이죠.
"실체"를 "나"라고 여기고, 개체를 "나"라고 여기는 마음이 전혀 일어나지 않는다면, 어떻게 정욕이 성냄이 욕심이 괴로움이 일어날 수가 있겠습니까?
일체유위법 여몽환포영 여로역여전.
탐진치에 휘둘린다면... 후후~ 공부 더 하세요.....
"이현상 세계의 모든 존재 모든현상은 비상이다.
사람들은 눈에 보이는 것, 인식되는 것들을 전부 실체라고 믿지만 사실은 속고있는것이다."
이 영상도 실체가 아니고
이 영상을 만든 사람도 실체가 아니다.
깨달음도 아니고,깨달은 사람도 아니다.
좋으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