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저도 주몽이 원래는 해씨였을 것으로 생각이지만 4:38초에 보면 국호를 고구려라고 하여 고씨가 되었다고 돼 있으니 주몽이 해씨에서 고씨로 성을 바꾼 것으로도 보입니다. 그런데 설명에서는 고구려 국호를 주몽의 성을 따라 할 리가 없으니 주몽이 고씨가 아니라고 하는 건 뭔가 설득력이 부족하게 들렸습니다. 그리고 그 당시에는 필요에 따라 성을 바꿀 수 있었다고 봅니다. 백제 온조의 경우도 주몽의 아들이지만 고씨나 해씨 둘 다 아닌 부여씨로 한 것을 보면요.
온조는 공식적으로 우대 혹은 구대의 아들이기에 해씨를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살던 곳이 부여의 땅이었기에 부여씨를 사용한 것입니다. 하여 신라사에서는 백제를 부여로 부릅니다. '해(解)'는 지금의 우리말 '해'를 한자로 쓴 것으로, '해'와 '부여'는 관계가 없습니다. 부여의 소리는 '장서(將曙)'에서 나온 것입니다.
[삼국사기]와 비교 확인할 수 있는 박창화 필사본이 [안원대제기]까지 밖에 전하지 않기에 그 후에 고구려 임금들의 성씨에 대하여는 알 수 없습니다. 시조 동명성왕이 고씨라는 오래된 고정관념으로 인하여 고씨 임금에 대한 미련이 남아있지만 고씨는 고구려 권력 내부에서 그다지 큰 세력을 키우지 못하였습니다. 따라서 개인적으로는 고구려 역사에 고씨 임금은 없다고 생각하지만, 후대의 기록을 확인할 수 없으므로 고구려 후기의 고씨 임금이 있었는지 없었는지는 모른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참고로 중국사는 줄곧 고구려 임금들의 성씨를 고씨라고 하지만 이는 애초부터 잘못된 정보에 의한 기록이고, [삼국사기]는 이를 그대로 따랐다는 점을 추가로 말씀드립니다.
6대 태조왕부터 '고'씨라는 성을 썼다는 설이 있습니다. -- [태조대왕의 아버지 '재사'는 유리왕의 배다른 여동생이 '고'씨에게 시집가 낳은 아들의 후손으로서 유리왕 말기에 유리왕의 양자로 입적되었다. 따라서 고구려는 추모왕(주몽왕)의 친손인 해씨와 외손인 '고'씨로 왕위가 이어졌다고 할 수 있다]🧐
블로그에서 글만보다가 유튜브로 들으니 더욱 좋네요
꼬옥 많은이야기를 해주세요
첫걸음이 어색하고 두려웠지만 이왕 시작하였으니 열심히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역사의 잘못된부분을 어찌 알아내셨는지
대단하십니다 ᆢ시작이 훌륭하십니다 목소리도
멋져요~~
감사합니다.
블로그에서 올리신 포스팅 잘봤습니다. 영상으로도 많은내용 기대합니다
감사합니다.
전문세 단톡방에서 추천해서 들어 왔습니다. 영상 잘 보고 갑니다. ^^
감사합니다.
😊
그럼 그 후손들은 언제부터 고씨를 쓴거죠? 지금 우리나라에는 고구려계 해씨가 극소수로 거의 없다시피한데(2015년 호적조사기준 9명, 나무위키 참고), 고씨만 현존하고 있어요. 그것도 횡성고씨라고 고구려 왕실의 후손들이 있어요.
12번 영상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안녕하세요? 저도 주몽이 원래는 해씨였을 것으로 생각이지만 4:38초에 보면 국호를 고구려라고 하여 고씨가 되었다고 돼 있으니 주몽이 해씨에서 고씨로 성을 바꾼 것으로도 보입니다.
그런데 설명에서는 고구려 국호를 주몽의 성을 따라 할 리가 없으니 주몽이 고씨가 아니라고 하는 건 뭔가 설득력이 부족하게 들렸습니다.
그리고 그 당시에는 필요에 따라 성을 바꿀 수 있었다고 봅니다.
백제 온조의 경우도 주몽의 아들이지만 고씨나 해씨 둘 다 아닌 부여씨로 한 것을 보면요.
영상에서 주몽의 아버지와 아들 그리고 손자가 모두 해씨라는 설명이 있지요? 그럼 주몽은 당연히 해씨가 됩니다.
백제 온조의 경우도 주몽의 아들이지만 고씨나 해씨 둘 다 아닌 부여씨로 한 것을 보면요. -> 해의 독음이 "부여"임을 삼국유사와 삼국사기에서 온조의 성씨를 비교해보면 알수 있습니다.
온조는 공식적으로 우대 혹은 구대의 아들이기에 해씨를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살던 곳이 부여의 땅이었기에 부여씨를 사용한 것입니다. 하여 신라사에서는 백제를 부여로 부릅니다.
'해(解)'는 지금의 우리말 '해'를 한자로 쓴 것으로, '해'와 '부여'는 관계가 없습니다. 부여의 소리는 '장서(將曙)'에서 나온 것입니다.
@@history_puzzle 부여의 소리가 '장서'에서 나왔다는 내용을 자세히 말씀해 주실수 있으세요?
기록에서는 장서에서 음이 나왔다고만 하고 자세한 설명은 없기에 개인적인 견해를 말하겠습니다. [장서=날 샐 무렵=뿌옇다=부여]로 추정합니다.
후대에 왕족들은 고씨였는데 그건 어떻게 된건지 궁금합니다.
[삼국사기]와 비교 확인할 수 있는 박창화 필사본이 [안원대제기]까지 밖에 전하지 않기에 그 후에 고구려 임금들의 성씨에 대하여는 알 수 없습니다. 시조 동명성왕이 고씨라는 오래된 고정관념으로 인하여 고씨 임금에 대한 미련이 남아있지만 고씨는 고구려 권력 내부에서 그다지 큰 세력을 키우지 못하였습니다. 따라서 개인적으로는 고구려 역사에 고씨 임금은 없다고 생각하지만, 후대의 기록을 확인할 수 없으므로 고구려 후기의 고씨 임금이 있었는지 없었는지는 모른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참고로 중국사는 줄곧 고구려 임금들의 성씨를 고씨라고 하지만 이는 애초부터 잘못된 정보에 의한 기록이고, [삼국사기]는 이를 그대로 따랐다는 점을 추가로 말씀드립니다.
우리나라에 횡성 고씨라고 고주몽의 후손이자 보장왕의 직계 후손들이 살고 있다고 들었는데...
6대 태조왕부터 '고'씨라는 성을 썼다는 설이 있습니다. -- [태조대왕의 아버지 '재사'는 유리왕의 배다른 여동생이 '고'씨에게 시집가 낳은 아들의 후손으로서 유리왕 말기에 유리왕의 양자로 입적되었다. 따라서 고구려는 추모왕(주몽왕)의 친손인 해씨와 외손인 '고'씨로 왕위가 이어졌다고 할 수 있다]🧐
근거없는 주장입니다. 태조라는 명칭에 대하여 오늘날의 잣대로 무언가 새로 시작되었지 않겠는가 하는 상상 위에 또 다른 상상이 겹친 것입니다. 그런 상상의 왜곡된 역사를 바로잡고자 함이 본 채널의 목적입니다.
주몽의 성이 해
씨인데~성을 고
씨 라고한 연유
가 궁금합니다
고구려에 대한 정보가 부족한 상태에서 중국사가들이 임의대로 고씨의 구려라고 다소 비하시키듯 해석한 것이고 이를 삼국사기가 우리고유의 역사서 대신 선택한 것이며 조선과 현재의 학자들이 그대로 답습한 결과로 보입니다.
고주몽.고추모 × 해주몽.해추모 로 정정해야할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