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만공격도 미국피해만보면 일본승리 같아 보이지만 세부적으로 뜯어보면 실패한 작전 일단 진주만 유류저장고/수리시설이 전혀 피해받지 않았고 제일 중요한 항공모함을 한척도 못잡음 거기에 선전포고 없이 공격해서 미국전쟁의지를 꺽는게 아니라 오히려 미국전역을 복수심에 불타게 만들어버림
저 당시 일본입장으론 자기생각으로 작전을 구사한것 항공모함이 지금처럼 주력이 아니였고 미국또한 전함에서 항공모함으로 체제를 바꾸고있는상황 하지만 일본은 항공모함으로 타격을 했지만 러시아를 조져놧던 과거의 영광으로 전함만 주구장창 물고빨아서 미국도 전함을 조지면 된다는 생각으로 전함만 다 조져놓음 유류저장고 또한 민간인학살하다가 시간뺏겨서 결국 3차공습시간을 놓침 선전포고없이 공격하는것또한 자기들이 맨날 해오던 전략이라 어차피 이기면 장땡이고 우리사기만 높으면 된다는 자기중심적인 생각,아니 평소처럼 학살및졸렬하게 전쟁하다가 미국한테 개탈탈 털린것
일본제국의 육해군 대립은 굉장히 유명한 것이었죠. 거기다가 경찰까지 더하면서 혼돈의 카오스 상태. 웃긴게 메이지 유신의 주역인 사츠마 번이 해군, 조슈 번이 육군이 되고 경찰의 경우 내전이 끝나고 실업자가 되어버린 에도막부 소속의 사무라이들이 나중에 다수 경관으로 채용되어버렸으니 오월동주 상태였다가 서로 반목하게 된 앙숙+과거의 적 이런 상태였던 거지요.
당시 일본 육군 장성 중에도 이소로쿠랑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이 있었죠. 구리바야시 다다미치 이양반도 미 대사관 주제무관으로 파견되서 잠시 공부한적도 있고 또 미국에 대한 전반적인 부분을 보고 나서 미국은 일본 따위가 절대 넘볼 나라가 아니다 라는 말로 일본 군부에 찍히기도 하고 미국과의 전쟁은 암울한 결과를 가져올것이란 표현을 하기도 했죠.
그 사람 이오지마 전투 책임 장교아님? 그거 이오지마에서 온 편지 그거보고 알게됬는데 구리바야시도 미국에서 생활했던걸로 아는데 그래서 미국에 전투력과 행동패턴을 알고있엇다고 .. 그래서 이오지마 전투에서 미국 패턴 읽고 어느정도 성과가 있엇지만 오랜 고립으로 물자바닥에 사기력 떨어지고 수적 불리해서 뭐... 망했지만.. 암튼 저도 그 영화보고서 그 장군 멋있다고 생각했음.
@또삭제일본내막기가 예언서처럼 여겨지면서 화제가 되기도 했지만 그 책 하나 가지고 한국의 독립에 큰 영향을 끼쳤다라는 것은 전형적인 과대평가라고 생각합니다. 미국 내 어느 정도 한국을 인식시켰다고 봐야겠지요. 한국 독립에 실질적으로 제일 큰 영향을 끼친 건 카이로 회담에서 장제스가 한 제안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된 큰 요인은 중국내 독립운동가들의 활동이죠. 알고 보면 일제강점기 당시 외교부문의 독립운동은 별 성과를 못 거두었습니다. 헤이그특사부터 파리강화회의의 김규식까지 말이죠. 그런데 중국 내에서 대한민국 임정의 무력투쟁이 장제스에게 긍정적으로 인식되어 국민당이 임정을 지원하게 되었고 결국 김구가 장제스에게 한국독립을 약속해달라고 한 것이 카이로 회담에서 현실화되었죠.
원래 야마모토가 노리고 싶었던건 항모도 있지만 거기있는 유류창고도 있었죠 일본군 조종사들이 실적을 올리는데 급급하다보니 그냥 납둬버렸지만 그 해군기지의 유류창고는 훗날 미해군이 다시 일어나는 기회가 되죠 야마모토는 진짜로 미국과 싸우는게 두려워서 초반에 저렇게 전쟁의지를 꺾어서 협상테이블에 미국을 빨리 앉히는걸 원했던 사람이죠.
저 당시 일본분위기가 어때했냐하면 단순히 '미국이 우릴 죽일려고 든다!' 가 아니라 영국본토가 작살나고 있고 네덜란드의 독일 패배로 네덜란드의 식민지인 인도차이나가 주인이 없는거나 마찬가지인 상황 (인도차이나에서 고무, 니켈, 석유등등 지하자원이 풍부해서 전쟁수행 및 일본경재를 돌릴 자원이 넘처남) + 독일의 약진으로 미국이 태평양에 신경못쓸것 이 합쳐진 상황이라 일본은 나름 해볼만 하다고 본겁니다. 일본의 예상은 맞았습니다. 미국은 태평양에 신경을 거의 못썻어요. 근데도 그 신경못쓴 전력만으로 미국이 일본을 이겨버린게 문제인거죠.
야마모토 당사자도 미국을 이기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죠. 그래서 처음엔 개전을 반대해 일부 소장파 장교들에게 목숨을 위협받을 정도 였으니 말입니다. 야마모토는 미국에게 심각한 타격을 입혀 미국이 정전협상에 나서도록 만들 생각이였지만 진주만 기습에 빡친 미국은 철저히 일본에 복수한다는...
@또삭제 다 지나서 할 수 있는 말이네요. 당시엔 모든게 불투명했지요. 진주만 철저히 파괴해도 미국의 회복이 더딜 뿐이지 흐름은 못바꿉니다. 미국이 진주만 포기 안합니다. 당시 일본의 상륙전 능력으론 수만에 이르는 진주만의 대규모 미육군과 해병대를 이길수도 없어요. 일본함대는 미국과는 달리 대규모 지원함 세력이 없어 오래도록 작전을 못합니다. 도조 히데키도 전후 맥아더와의 면담에서 일본이 미국에게 패한 3가지 원인중에 하나를 이 차이로 꼽습니다. 하와이 점령이 너무나도 힘들다는 것을 알기에 일본도 미드웨이 점령 후에나 하와이 재공략하려 했죠. 여담인데 하와이 유류저장고의 석유 다 불태워도 미국이 그거 보충하는데 몇 달 안걸립니다. 물론 유류저장시설과 수리시설 등을 박살내었다면, 미드웨이나 과달카날에서 일본이 승리했을 겁니다. 어쩌면 미드웨이나 과달카날에서 미국이 물러섰을수도 있고요. 그러나 이후 공업력의 차이로 인해 일본은 광대한 지역관리도 쉽지 않은 상태일때, 미국은 알다시피 1주일에 항모 한척을 뽑아대는 미친 능력으로 항모 수십척 찍어내서 하와이나 미 서부 근해에서 일본주력 기동함대 궤멸시켰을 겁니다. 그리고 일본육군은 본래 소련 공격을 원했으나 중국과의 전쟁도 감당못해서 독일이 모스크바 점령해야 참전한다고 조건걸었고, 해군은 자신들이 들러리가 될 소련침공 자체를 반대했습니다. 참고로 일본이 대중전쟁에 쓴 예산이 대미전쟁에 쓴 예산보다 많고, 미국은 자기 힘의 1/10로일본 제압했습니다.
@@kingmaker0101 1941년 겨울 모스크바가 독일군에 함락당할 뻔 했었지만 소련의 시베리아 극동군이 지원오면서 극적으로 방어에 성공합니다. 대략 60만이었던 극동군은 일본침공에 대비한 정예부대입니다. 2차대전 직전 노몬한 전투라고 해서 소련과 일본간 국경분쟁을 구실로 서로 간보는 전투가 벌어졌었고 일본이 패배했습니다. 사실 이 패배로 일본육군은 기계화되지 못한 자신들의 현실을 인식하고 시베리아 침공을 꺼리게 됩니다. 비록 기계화되지 못한 일본육군이 패했지만 소련도 제공권이 장악당하는 등 희생이 컸기에 소련도 정예극동군을 배치해 놓았었지요. 소련군 희생자수도 상당했다는 러시아 비밀문서가 몇 해 전에 공개된 것으로 압니다. 1941년 독소전이 시작되던 때에 일본에 파견되어 있던 소련의 전설적인 스파이 리하르트 죠르게는 일본은 미국을 칠 준비를 하느라 소련의 배후를 칠 생각이 없고, 모스크바가 함락되어야만 배후를 치기로 독일과 약조한 상황이라고 본국에 타전합니다. 이 정보의 신빙성에 대해 모스크바에선 고심을 거듭하다가 믿기로 하지요. 죠르게의 이 정보를 믿은 소련은 정예 극동군을 모스크바 방어에 투입하여 결정적인 위기를 극복합니다. 죠르게는 이후 일본에서 보안부대에 체포당하여 사형당해 일본에 묻힙니다. 지금도 새로 부임하는 러시아 대사는 죠르게 묘소에 부임즉시 반드시 참배합니다. 이후 스탈린그라드에서 무제한의 소모전을 강요당한 독일군은 그 기세가 서서히 꺾이게 되죠. 지금부터는 소설이지만... 만약 일본이 소련의 배후를 쳤다면 소련이 모스크바를 함락당하고 큰 위기를 겪었으리라고 봅니다. 우랄산맥 동쪽으로 공장을 옮긴 소련은 계속 저항하겠지만 연방에 대한 지배력 약화로 힘은 반감되겠지요. 그렇다고 해서 독일 일본이 신흥 패권국이 될 정도로 역사의 물줄기가 변했을까? 미국이 일본에게 석유금수조치를 취해나가는 상황에서 일본의 힘은 한계가 명확했지요. 석유부족으로 당장 중국에서의 전쟁도 치루기 어려운 상황에서 미국은 중국과 만주에서 나가라고 요구 중인데 석유부족에 시달리는 일본이 지속적으로 광할한 시베리아를 칠 수 있는가? 그 광대한 대륙에 강력한 세력을 신속하고 지속적으로 전개하려면 석유가 엄청나게 필요할텐데 어려웠을 겁니다. 게다가 일본은 중국과의 전쟁에서도 병력부족으로 내선일체를 강조하며 조선인들을 징집중이었지만 조선인들은 인구 3천만에 일본의 전쟁에 열심히 임하지 않아 1945년 소련의 만주 침공시 조선인들의 탈영율이 50%가 넘어갈 지경이었죠. 게다가 미국은 소련에 엄청난 지원 중이었고 소련이 망할 지경이 되면 무슨 구실을 들어서라도 참전해서 일본을 때렸을 겁니다. 영미는 소련이 약해지길 원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독일 일본의 성장은 더욱 용납할 수 없었습니다. 스탈린은 1944년 6월이 되어서야 영미군이 노르망디에 상륙한 것은 소련이 독일에게 충분히 얻어터져 약해지길 원하기 때문이라고 항상 분통을 떠트리곤 했지요. 여튼 일본이 소련 배후를 쳤다면 소련이 멸망 직전으로 몰리거나 말도 다 못할 피해를 입어 2차 대전 후에 미국과 경쟁하지 못했을지도 모르겠네요. 독소전에서만 사망한 소련인구가 대략 4천만 전후라는게 학계의 정설인데 일본이 가세해서 힘이 분산되었다면 인구 절반이 사라졌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이영준-o9d 미국정부가 유럽전쟁에 참여하고 싶었는데 미국민들이 1차대전때 사망자 많이 나서 참전 반대 했는데 일본이 진주만 공습해서 자동 참전에 히틀러가 신나서 장군들 장관들 다 반대하는데 미국에 선전포고해서 미국정부가 바로 유럽에 직접 참여했죠...둑일 외무장관이 극렬 반대했는데 하여간 히틀러덕에 2차대전이 조기에 끝났고 일본이 소련하고 불가침 조약 맺어서 극동 소련군 싹 빼다가 동부전선에 투입해서 결정적으로 스탈린그라드 부터 전세가 바꼈죠. 현대 역사가들이 아무리 봐도 일본하고 독일 하고 동맹 맺은건 독일에 피해가 100이면 이득은 1도 안된 동맹였죠.. 심지어 석탄액화기술, 메사슈미트비행기, 티거탱크등 제작하라고 도와주기만 했죠. 거따가 어제 뉴스보니 동남아에서 독일여자들도 위안부로 썼다네여..곧 일본 장교들이 보내주긴 했다고 하네요 죽이지 않은거만 해도 다행인가요...
@@kingmaker0101 말씀대로 미국엘리트는 참전 원했지만 구실이 없었는데, 소위 ABCD포위 등으로 일본을 압박하자 일본이 알아서 진주만 선빵으로 참전명분 만들어주고 히틀러 역시 알아서 참전명분 만들어주죠. 길게 보면 일본 독일과 영미의 충돌은 도전자와 챔피언 입장으로 필연이었으리라고 봅니다. 1905년 러일전쟁에 승리한 일본은 조선을 가져가고 포츠머스 조약을 중재한 미국은 필리핀을 가져가죠. (가쓰라테프트밀약) 일본 입장에선 러일전쟁에서 가랭이 찢어질 지경이어서 당장 미국중재의 필요성 때문에 필리핀을 인정해줬지만 내심 자기들의 턱밑에 미군을 몰아내고 필리핀을 빼앗겠다고 생각하고 있었기에 미국을 잠재적 적국으로 설정했고, 미해군은 그당시 이미 오렌지계획(오렌지는 일본 뜻함)이라고 해서 장기적으로 태평양 지배를 위해 일본정벌계획을 수립합니다. (현재 일본의 주인이자 태평양지배자는 미국인데 이를 인정치 못한답시고 항모 등을 만들면서 개기는게 중국이죠. 필연적으로 미국에게 쳐맞게 될 겁니다. 어떤식으로든...) 이렇게 각자 끝없는 욕심으로 마주달리는 미국과 일본의 충돌이 불가피한건 역사의 필연이었겠지요. 이 필연을 예측한 미육군항공대의 한 소령은 1925년경에 이미 일본이 일요일 새벽 여명을 틈타 항공기 위주로 하와이를 칠 수 있으니 대비해야 한다는 보고서를 제출했었지요. 항모가 막 취역하던 항모 걸음마 시절에 그런 예측을 하다니 대단하죠. 독일 입장에선 일본에게 이런저런 기술을 전수해도 일본 공업력의 한계로 제대로 습득하지 못하니 답답했을 겁니다. 엉망진창 일본전차, 수준낮은 소총 등 기계화되지 못한 육군은 정말이지 안습... 그나마 전쟁말기에 제트기를 띄운 일본이지만 이미 늦었지요. 독일이 잠수함으로 일본에게 핵폭탄 한발을 전해줬지만 핵폭탄을 미국에게 투하할 이동수단이 없어 흥남 앞바다에서 걍 폭파시켰다고 하더군요. 그리고 일본 역시 핵기술이 상당히 진척되어 있어서 미군들이 실험실과 연구자료 살펴보고 깜짝 놀랐다고 합니다. 일본이 독일에게 전수하던 것이 항모인데 항모 제작도중에 2차 대전이 끝납니다. 영국해군에게 밀리는 이상, 그리고 소련을 이겨내지 못하는 이상 독일은 질수밖에 없는 싸움을 했던거죠. 말씀하신대로 일본은 독일에게 그닥 도움이 되지 못한 동맹이었죠. 진주만 폭격시 히틀러가 흥분했지만, 일본이 영국의 전함과 항공모함 뭉게고 다닐때도 흥분했지만 거기까지 였습니다. 독일이 간절히 원한 시베리아 똥침을 놓아줄 여력이 일본에겐 없었기에 소련과 불가침조약을 맺어두었던 거죠. 사실 조약따윈 본래 휴지조각에 불과하므로 일본육군이 보급이 충실하고 기계화된 강대한 군대였다면 시베리아 치고도 남았을 놈들이 일본애들이지만 중국 미국 감당조차 버거웠죠. 일본은 항모와 항공기가 두배로 필요했고 조종사는 4배가 필요했지요. 게다가 수송선 구축함 등도 턱없이 모자라서, 특히 선박순톤수 부족 및 공업력 한계로 필패한다는게 일본의 총력전연구소 연구결과였죠. 이 연구소는 독일의 필패도 예상합니다. 이래저래 일본은 자신들이 감당할 수 없는 전쟁수렁으로 들어간 셈이지요. 이시와라 간지라는 도조 히데키의 일본육사 동기가 이미 태평양전쟁이나 시베리아 침공 모두 반대하다 군에서 쫓겨납니다. 이 사람은 장차 독소불가침조약이고 나발이고 필연적으로 독소전이 벌어져 독일이 패할거고, 이후 소련과 미국이 붙어 미국이 이기게 될거니까(여기까진 예측적중), 그때까지 일본은 닥치고 힘을 기르다가 미국만 이기자고 주장했습니다. ㅋ 도조가 태평양전쟁 일으키니 실업자로 있던 간지가 석유때문에 전쟁 일으키는 미친놈이라고 했다죠. 사실 일본은 석유없이는 영원한 2등 국가였고, 간지는 이를 인정하고 힘을 기르자는 입장이었던 거죠.
일본은 1차대전 때 다른 연합국들이 진짜 전쟁이 일어나고 있던 유럽전선엔 절대 파병할 생각이 추호도 없었고 영국과 연합군을 형성해 중국의 독일 식민지 칭다오(맥주로 유명한 칭다오)를 공격해 차지한 것과 제정 러시아가 무너지고 소련이 들어서자 독일과 단독으로 강화조약을 맺고 전쟁에서 빠지는데 이를 되돌리기 위해 연합군이 소련을 침공할 때 여기에 참여한게 다였습니다. 그래도 연합군이 이기자 승전 연합국 이랍시고 조금이라도 더 많은걸 얻고 싶어서 안달이 났던거죠. 그후엔 여기서 나레이션으로 설명하신 것과 같은 일이 일어났으니 전 그에 대한 긴 말은 다 생략 하겠습니다. 최근 미군이 야마모토 제독을 죽인 작전명 벤전스에 대한 얘기를 봤는데요. 당시엔 전쟁초반 일본에 절대적으로 유리했던 전황과 달리 최근 우리나라를 비롯해 세계 곳곳에서 개봉한 영화로도 만들어진 미드웨이 해전을 기점으로 전세가 서서히 역전되어 가자 일본과 미국 양국간 근본적인 국력의 차이가 더욱 도드라져 갑니다. 야마모토 제독이 우려한 상황이 현실화 되어갔던 거죠. 일본해군은 전세가 역전되자 전쟁초반 전세를 유리하게 이끌던 원동력이었던 유능한 베테랑 조종사들이 희생되어 간 반면 미국은 경험이 쌓이고 잘 훈련받은 신참 조종사들이 보충 되면서 인적자원에서 부터 일본과의 격차를 벌려갑니다. 또 일본해군은 일선 조종사들과 제작사 설계자들의 제로센에 대한 성능개량 건의를 묵살하고 해군 수뇌부가 어떻게 감히 그들이 천황이라 부르는 일왕이 하사한 무기에 손을 대냐며 정신력 타령만 하고 있을 때 미군은 일본군 전투기들을 능가하는 신형 전투기들이 쏟아져 나오며 전투기 전력도 일본군을 완전 압도해 나가기 시작 합니다. 그리고 그런 미군 전투기중 한대가 여기 영상에서도 언급된 육군항공대 소속의 P-38 라이트닝 전투기 입니다. 일본군이 야마모토의 전선시찰을 무전으로 보낼 때 가장 큰 문제는 전문 내용을 암호화 시키지 않고 암호화 시켜 보냈어도 미군이 해독을 했겠지만 무전병이 암호가 아닌 그냥 글로 된 평문으로 보낸게 문제였죠. 그만큼 당시 일본군은 다들 정신적으로 엉망진창이 되어 제정신들이 아니었던 겁니다. 그러니 미군은 암호해독을 할 필요도 없이 번역만 하면 내용을 볼 수 있었던 거죠. 다른 것도 아니고 최고사령관이 최전선에 시찰을 나간다는 최고기밀사항을 암호화도 안하고 평문으로 보냈으니 이건 아마 2차대전중 일본군이 저지른 최악의 실수중 하나가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야마모토를 비롯한 전선시찰에 나선 지휘부는 1식육공 2대에 나눠타고 제로센 전투기 6대가 호위를 합니다. 하지만 미군은 공격조 4대와 호위조 14대로 구성된 P-38 18대의 전력으로 작전명 벤젼스에 나섭니다. 기지에서 출격한지 얼마 안되 공격조 4대중 두대가 고장문제로 귀환하고 호위조에서 2대를 공격조로 전환해 공격조 4대, 호위조 12대의 전력으로 작전에 나섬으로써 그후 결과는 아시다시피 지휘부는 타고있던 1식육공 2대가 다 격추당해 전원 사망하고 호위하던 6대의 제로센 전투기도 5대가 격추당해 전사하고 1명만 살아 남았다고 합니다. 작전 다음날 일본육군이 추락지점으로 병력을 파견해 수색을 한 끝에 추락한 일식육공을 발견하고 추락한 기체 안에 있던 야마모토를 비롯한 수뇌부들의 시신들을 발견해 회수 합니다. 야마모토의 시신은 야마토급 전함 무사시에 의해 수송돼 일본본토로 옮겨지고 야마모토의 시신이 일본에 도착하고 난 후에야 일본정부는 야마모토의 전사를 발표 합니다. 미군의 이 작전성공은 원래 크게 알려지고 작전 참가자들은 최고훈장을 받아야 할 수훈 이었지만 미군은 일본군이 그들의 통신을 도청해 암호해독 까지 하고 있다는걸 눈치채지 못하게 하기 위해 미군 지휘부가 작전 참가자들을 치하하고 자체기록을 남겨두는 정도로 끝냈다가 차후 2차대전 종전 후에야 세상에 공식적으로 공표하게 됩니다.
당시 일본 육군이 자기들 입맛에 안 맞는 일본 내각 수상과 내각 대신들을 암살하고 다녀서 미국과 전쟁에 반대했던 야마모토가 연함 함대 사령장관 자리에 임명된 게 육군의 암살 위협을 피해서라는 이야기도 있어요 (연합 함대 사령부가 거대전함 나가토에 위치해서 육군이 덤빌 수가 없었습니다)
@@sehyeonj209 단순한 막장 쓰레기 군국주의 국가라고 무시하고 폄하하기엔 당시 그 넓은 동아시아 전선을 유지할 만한 수많은 군대를 갖췄던 일본제국이라는 국가의 역량이... 게다가 그렇게 말하시면 그런 막장 쓰레기 국가한테 전쟁도 없이 통째로 먹힌 조선은 대체... 아무리 감정이 있어도 역사는 객관적으로 봐야 얻는 게 있는 겁니다.
@@dakaaba9128 막장국가 맞지 뭔;; 미국한테 석유같은 자원 80%를 수입하는 일본이 미국을 공격한것도 어쩔수 없다지만 존나 개 막장이고 만세 돌격? 그것만 봐도 개막장인데 아주 인명경시사상이 엄청심했음 전투기 제로센만 봐도 엔진 마력이 딸리니까 기본 골격에다가도 구멍을 내서 만들었는데 ㅋㅋ 당시 열강들 사이에선 개 막장이지 뭔 조선을 비교하냐
@좁불 네 사령부가 나가토에 있으며, 모든 시설이 육상이 아닌 배 위에 고스란히 설치되어 있어서 배에서 모든 업무를 볼 수 있게끔 되어있는게 그 당시 일본해군입니다 칩거 및 은둔까지는 아니겠지만 활동반경의 기본이 배 위인 나가토로 옮겨간 만큼 암살을 피하기는 무척 쉬웠을겁니다 명심하세요 일본은 전간기에 자기네 수상과 정부 수반들을 장교나 군인과 시민이 멋대로 쏴죽인 애들입니다 일본의 브레이크를 스스로 부수고 다니고 있습니다
야마모토가 미국무관시절 휴가를 얻어 자동차여행을 떠났다가 차가 고장나 도로변에 정차해있는데 차한대가 서더니 10대 미국소녀가 내려서 본네트를 열고 엔진을 수리해서 무사히 여행을 계속했다는 일담을 전하면서 1930년대에 10대소녀가 자동차를 수리하는 나라가 미국이다 미국의 저력을 알아야한다는 소신을 피력햇다는 일담이 있습니다 10대 소년에게 아버지가 사냥용엽총을 선물하고 같이 사냥을 다니는 문화가 있는 미국인과 전력을 다해서 싸운다는건 일본의 사무라이 정신만으로는 곤란하다는걸 야마모토는 잘알고있엇다고 생각됩니다
근데 이때 통신도 미군에게 제대로 파악한 상태인데 미군 정보부 안에는 레이튼 소령 과 로슈포르 중령이 있었기 때문에 일본군의 무전 및 암호 체계는 이미 두 장교에 의해 야마모토 이소로쿠의 부겐빌 방문까지 알아낸겁니다...어찌보면 무전병의 병크일수도 있지만 미군에겐 엄청난 이득이 되었답니다.
@@wonpunchguy 사실 무타구치 렌야가 유사 독립군의 칭호를 받게 된 데는 일본군 중에 그나마 양심이 약간이라도 남아 있었다는 게 컸죠. 인체 실험으로 악명높은 일본의 731부대의 부대장을 만난 무타구치 렌야가 그 부대의 인체실험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그것은 인간이 할 짓이 아니라며 부대장을 꾸짖고 나갔다는 일화가 전해지죠.
이 영화 최고의 명장면 (과달카날 전투 이후 해군내 회의에서) 카도쿠라 소지 중장(해군 중장/ 영화내 창작): (큰소리로 자리에서 일어서며) 연합함대에는 아직 무츠도 있고, 나가토도 있고, 세계 제일의 이 야마토도 있다. 지금이 아니면 거함거포를 언제 쓴단 말인가? 우가키 마토메 중장(연합 함대 참모장) : 하지만, 카도쿠라... 카도쿠라 : (큰 소리로) 지금이야말로 전함을 동원해서 총공격을 해야 할 때가 아닌가! 구로시마 가메토 대좌(연합함대 참모) : 카도쿠라 사령관, 죄송합니다만 저희들도 그러고 싶습니다. 카도쿠라 : 왜 안 하는가? 구로시마 : 하지만... 카도쿠라 : (거세게) 하지만 뭔가! 우가키 : 사실은...연료가 없다!(実は、、、油が 無いんだ!) 카도쿠라 : ...(조용히 다시 착석한다)
선전포고 훨신전에 무기랑 항공기 잔득 싣고 일본에서 출항을 했고 선전포고 훨신전에 그걸 알고도 이미 공격기를 출격 시켰는데 "선전포고"가 늦었다고 야마모토가 가책 받는다는 내용이 말이 되나?...결국 야마모토의 생각은 "선전포고" 5분뒤에 진주만 상공에 자기들 공격기가 가있길 바랐다는 말인데 이러면 덜 비겁한건가?...
야마모토 입장에서도 함대결전이 그냥 최선책 시간을 지체해봤자 미국과의 격차만 벌어질뿐 미국 또한 1942년경에는 대규모 국비확장을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에 시기적 공백기였던 지라 초반에는 항모2대 와일드캣 급하게 투입된 신병등으로 버티던시기 그마저 생산된 건 유럽전선에 먼저 투입되었던 시기인지라 일본측에서는 그나마 쪼금 해볼만 시기 였긴 했죠
이소로쿠는 처음에는 일본이 미국에게 상대가 안된다는걸 뻔히 알고 있었기 때문에 미국과의 전쟁을 반대를 하고 있었는데 당시 일본내각 총리였었던 요나이가 총리직에서 사퇴 하고 난다음부터 미국과 전쟁을 할 결심을 하게 된거라고 하더군요 요나이 역시 미국과의 전쟁을 반대하고 있었던 입장이었는데 총리에서 물러나 버리니 이소로쿠 로서는 뒤를 봐줄 빽이 사라진 격일것이고 군부에서는 계속 미국과의 전쟁을 고집하고 있었으니 ...
일제는 개전 직전에 각계의 수재들과 인재들을 모아서 총력전 연구소라는 워 시뮬레이션이라는 프로그램을 돌려보았는데, 뭐 결과는 일본 필패였고 무엇보다 1차 모의전 결과 내린 결론은 [단기전으로 첫 전투에 이긴후 상대를 강화조약으로 이끄는건 상대국을 전혀 생각하지 않는 발상] 이었습니다. 심지어 총력전 연구소는 독일이 독소전과 북아프리카 전선에서 교착상태에 놓이게 될 것이라는 사실까지 독소전과 북다프리카 전역 개전 초기인 1941년에 간파했습니다. 근데 일제 수뇌부는 이런 유능한 인재들의 모의전 실험을 씹고 전쟁에 돌입, 뭐 결과는 핵펀치 두방 맞고 소련 참전으로 이타이어 였죠() 재미있는건 이 당시 총력전 연구소의 후원자중 한명이 야마모토 이소로쿠였는데, 그럼에도 조기강화 노리고 도박판을 돌렸으니 어찌보면 이 양반도 참...
일본을 보면 솔직 대단하기함. 청나라, 러시아, 미국 .. 모두 정말 한 체급하는 상대들과 치열하게 전투를 벌였으니. 힘이 전부이던 제국주의 시대 먹느냐 먹히느냐로 갈라지던 시절 . 비참하게 식민지가 되는 것보다는 차라히 주전으로 뛰었던 역사가 있는것이 속마음으로는 자랑스러울듯.
야마모토가 과다카날 전선의 패배를 설욕하고, 전력의 축차소모 방지 및 미군의 항공세력을 일소하기 위해.... 모든 해군항공기를 라바울로 모아 이호작전을 개시했는데... 이 작전에서 전과가 너무 과장되서 전달되는 바람에... 야마모토는 걱정없이 최전선시찰하다 당했죠.. 야마모토가 많이 초조해진 상태였기에 전과를 냉정히 분석못한것 같음....
야마모토.... 미국에 꽤 오래있어서 그들의 경재력하고 생산력을 알고있던 인물이었죠... 그래서 끝까지 전쟁을 반대했지만 결국 전쟁이 확정되자 초반이라도 유리하게 이끌어가기위해 진주만을 기습한 것이죠 진주만 공습후 야마모토에게 인터뷰한 기자가 다음 계획이 무엇이냐고 묻자 "미국과 협상할겁니다" 라고 했다죠... 뭔가 여러모로 아쉬운 인물이기도 합니다...
이 영화의 진짜 의미는 리더쉽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한다는 점. 야마모토는 개인적 식견도 있고 인격자로 존경받은 건 맞는데 당시 일본군을 통솔하기에는 역량도 의지도 부족했음. 저 영화에서 야마모토의 인물상은 사료에 따라 대단히 정확하게 그려내고 있는데 잘못해도 탓하지 않고 잘해도 칭찬하지 않는 타입임. 욕먹을 거 각오하고 자기가 나서서 조직 내부 교통정리 하고 처음부터 끝까지 직접 챙긴 맥아더와는 아주 정반대의 인물이었던 것임. 미드웨이 해전에서 패배한 것도 야마모토가 구체적인 지시를 내리지 않았기 때문임. 좋게 말하면 범사에 초연하고 나쁘게 말하면 지휘관 치고 너무 현실감각이 없었음. 고고한 인물은 결코 조직을 이끌 수 없음을 보여줌.
야마모토는 미국 유학덕에 당시 다른 똥별들 보다는 전략적인 시야가 틔여 있었던 인물이지었지만 '미국과 싸우면 좆된다.'를 깨우치고 있던것 외에는 다른 일본군 장성들과 다른게 없던 인물이었죠. 세계 최초의 대규모 항공공격을 직접 입안하고 실행해 성공시키기 까지 했는데도 항공모함과 함재기에 대해 대단히 시대착오적인 주문을 한걸로도 유명합니다. 장갑이 전무해 총탄 몇발만 맞으면 불타오르는 제로의 장갑과 무장을 강화하려던 계획에 반대하며 장갑도 대구경 화기도 필요 없다 진정한 사무라이라면 기존의 기총(7.7미리 딱총을 달고 있었음. 미국은 최하가 12.7미리)으로도 일격에 적기의 약점을 맞출수 있어야 한다는둥 일본군 특유의 정신론을 주워섬겼었죠. 그나마 이 영화는 사실의 묘사에는 비교적 충실해서 지들끼리 치고받느라 개판이었던 일본군의 모습이라든가 무책임하게 전쟁코인에 올라타 전쟁을 부르짖는 여러 인간 군상들의 모습이라든가 (그렇게 전쟁을 찬미하며 선동질을 하던 언론은 패전 하자마자 바로 태도를 바꿔 평화와 민주주의를 부르짖음) 전쟁 중반에 들어서자 전황이 시시각각 악화되어 이건 못이기는 전쟁이라는 사실이 누가 봐도 분명해지는 연출같은게 있는점이 가미가제 미화하는 다른 일본 전쟁영화들과 비교되는 점이죠. 이 영화에서 제일 임팩트 있는 장면은 진주만 기습도 미드웨이 전투도 아닌 미군의 반격에 육군이 떼몰살을 당하고 있다며 해군의 지원을 요구하며 처들어온 육군측에 해군이 '지금은 곤란하다 잠시만 기다려달라'를 시전하는 바람에 빡친 육군이 '항구에 즐비한 저 많은 전함들은 이럴 때가 아니면 대체 무엇을 위해 있는건가!'라며 폭발하는 장면인데, 이에 대해 해군쪽이 한 대답이 너무나 멋집니다. 꼭들 보셍.
@@cheonwookpark7099 단기전으로 미국태평양함대를 작살내고 미국이 함대 재건까지 약 1년정도의 시간이 걸릴것 같으니 그동안 우린 방어를 준비하자. = 이게 정확한 표현입니다. 실제로 초반엔 이렇게 움직이긴 했습니다. 다만 미국의 함대재건속도가 일본이 예상한것보다 약 9개월 빨랐다는게 문제인거지.
09:29 저에게 미드웨이 전투에서 일본군이 가장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은 미군의 잔여 항모를 찾아내거나 유인해서 잡겠다는 것이 원래 목표 같은데, 정작 출전하고 나서는 미드웨이 섬 폭격에 올인한 것 같다는 점입니다. 그러다보니 일본 항모들은 1, 2차로 섬 폭격에 집중하면서도 어딘가 있을 미군 항모 수색, 미군기의 끊임없는 축차공격에 대한 방어 등 온갖 어려운 임무를 한꺼번에 무리하게 진행하다가 운과 기력이 다하니 와르르 폭망한 것으로 보입니다. (미군 항모 위치와 규모를 모른다면 차라리 섬 폭격은 일부에게만 맡기거나, 섬과 미군 항모를 동시에 커버하려면 일본 항모가 4척이 아니라 6척은 필요해 보이고, 그게 어렵다면 야마모토의 본대가 주변에 같이 있어야 할 것 같기도) 연합함대라면서 야마모토 본인은 뒷짐 지고 항모들에게만 북치고 장구치라고 하는 것 아닌가요 아래 댓글에서도 미드웨이 해전 패배원인 중 하나를 야마모토가 구체적인 지시를 내리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하는데, 잘은 모르지만 제가 보아도 그런 것 같습니다. 이번 영상도 재미있게 잘 보았습니다.
미드웨이 결전을 부정적으로 보는데 야마모토 입장에선 그게 최선의 선택이었어여. 미국상대로 신속기동 거점타격 협상단기전은 물건너갔고 하와이확보 태평양국방권으로 장기소모전과 미국물량전에서 협상목표의 우위를 위해 미드웨이결전을 한것이져. 미국이 아무리 군세가 압도적이어도 장기전으로 가면 미국내 국민과 언론의 반전여론이 커진다는걸 알아겠져. 미드웨이결전을 안했어도 전황은 기간차이지 미해군의 태평양제해권 제압으로 일본육해군은 그대로 더 밀릴수도 있구여.. 미드웨이 직후부터 미전쟁 군수물자 생산량도 기하급수 증가하는데 모든 정황을 종합하니 야마모토의 미드웨이결전 결정이 타당했어여. 모두 전승분위기지만 확실한 패망을 예견하고 최후수단으로 제국을 지키려고 미드웨이라는 마지막 도박을 했던것이져. 그의 최후도 예견된거나 같습니다. 미군 도감청과 암호해독에 레이더망까지 완벽하게 걸리는데 최전선순시는 말도 안되거던여. 게다가 밤도아닌 낮에.
미드웨이 해전 결정의 문제보단, 대전략자체가 병신이었다는게 문제. 계속해서 한판승리로 협상에 끌어낸다하는데, 실제로 미국이 그뒤 2년간 뽑아낸 물량이 일본군 총전력을 압도해버릴정도로 국력차이가 있는데 미국이 뭐하러 협상을 받음?ㅋㅋ 그리고 당시 중국도 점령못하고 빌빌대던 일본인데 미드웨이 해전에 이겨봤자 미국본토는 어차피 건들지도못했음. 연료 장비 병력 모든게 부족함. 그리고 해전당시 전술도 웃긴게 아웃레인지에 특화된 항모기동부대를 선봉에내세워 몸빵시키고, 정작 자기가 이끄는 전함을 비롯한함대주력은 전투에 직접 참여도못하는 최후방에서 놀고 있었음ㅋㅋㅋ 거의 참관 수준.
@Ascalon ㅎㅎㅎㅎㅎㅎㅎㅎ 국제적 룰 ㅎㅎㅎㅎㅎㅎㅎㅎㅎ 그것 안지켜도 이기기만 하면 되는것이 전쟁임...선전포고 하고 전쟁하는것 보다 기습으로 전쟁하는것이 유리하다는 뜻이고 대부분 국가는 기습으로 상대를 점령하는것이 더 좋았음...전쟁은 지냐? 이기냐? 의 싸움이지 룰을 정해놓고 싸우지 않습니다
저는 마쓰모토 세이초 작가의 "역로"(일본드라마 스페셜)에서 야쿠쇼 코지 배우를 처음 봤었는데 엄청 반갑네요. 더불어 타마키 히로시 배우도요^^ 전쟁에 대해 객관적이지 않게 서술하는 등 야마모토 이소로쿠라는 인물에 대해 전쟁영웅으로 미화하는 영화가 아닌지, 더불어 일본내 흥행에 성공했는지 궁금해요. 죄송하지만 "일본패망 하루전"(2016) 영화도 리뷰해주시면 안될까요?? ♥♥
15억엔 수익으로 제작비 대비 그렇게 흥행은 못했던 걸로 기억합니다. CG와 실사처리가 약간 공중에 붕 뜬한 이질감과 인물에 대한 감정이입이 다소 부족해 영화평도 썩 좋지 않았습니다. "일본패망 하루전"은 이전 영상 "일본의 가장 긴 하루"와 내용이 겹쳐서 어떨지 모르겠습니다만 비교컨텐츠로 계획은 하고 있습니다.
ㅋㅋㅋㅋ 3:50 민주주의 시대니까 ㅋㅋㅋㅋ 그래서 니네는 민주주의 잘 돼냐? 그리고 누가 군대 작전하는데 민주주의를 반영해? 위에서 작전짠대로 하라면 하는거지. 나중에는 좀 잘 못 가긴하지만 로마시대에는 전쟁나면 권력을 한 사람한테 몰아준 이유를 모르나? 전쟁에서 이 사람 옳다 싶으면 그 사람 밀어줘야지
야마모토는 전쟁은 이기는 거는 불가능 한걸 알아죠. 하버드 유학중 운전하고 여행 하면서 미국 유전을 보았다고 합니다. 광대한 미국과 자원.
썰로는 운전하면서 미국은 여자한명이 차도 고치는것보고 건들면 안된다라고 했단썰도있음
미국의 자원과 기술력을 다알고 반대했는대 . .
일본 군부가 얼마나 주제 모르고 나댔는지 알 수 있는 부분...
@@johndoe-cc1yi 군부가 나댓다기보단 어쩔수 없는 상황이였지
@@정현우-e4q2i 저당시엔 이미 중일전쟁중이였음
7:22 1942년 4월을 1943년으로 정정합니다. 죄송합니다. 배경내용이 많아서 말이 좀 빠르지만 좀 불편하시더라도 즐겁게 감상해 주세요.
잘보고 갑니다
미국은 일본군 통신 암호체계를 알아낸걸 비밀로 하려고, 일부로 부겐빌까지 멀리 돌아가고 따라서 항속거리가 긴 P-38라이트닝을 작전에 투입합니다. 마찬가지로 복귀도 정규항로로 안하게 되죠. 미국은 종전시까지 이 작전을 비밀로 취급합니다
진주만공격도 미국피해만보면 일본승리 같아 보이지만 세부적으로 뜯어보면 실패한 작전 일단 진주만 유류저장고/수리시설이 전혀 피해받지 않았고 제일 중요한 항공모함을 한척도 못잡음 거기에 선전포고 없이 공격해서 미국전쟁의지를 꺽는게 아니라 오히려 미국전역을 복수심에 불타게 만들어버림
일본 그때
잘 망했지.
전후 맥아더가 너무 키워낳다
완전 경제성장 못하게 쫄딱 망해야 됐는데
저 당시 일본입장으론 자기생각으로 작전을 구사한것
항공모함이 지금처럼 주력이 아니였고 미국또한 전함에서 항공모함으로 체제를 바꾸고있는상황
하지만 일본은 항공모함으로 타격을 했지만 러시아를 조져놧던 과거의 영광으로 전함만 주구장창 물고빨아서 미국도 전함을 조지면 된다는 생각으로 전함만 다 조져놓음
유류저장고 또한 민간인학살하다가 시간뺏겨서 결국 3차공습시간을 놓침
선전포고없이 공격하는것또한 자기들이 맨날 해오던 전략이라 어차피 이기면 장땡이고 우리사기만 높으면 된다는 자기중심적인 생각,아니 평소처럼 학살및졸렬하게 전쟁하다가 미국한테 개탈탈 털린것
@@상선약수-m4v 소련 때문에 키운 것. 냉전이 있었으니까.
ㅇㅇ
유류창고를 완전히 파괴 햇엇더라면
일본이 최소 태평양 전쟁을 2-3년간 더 길게 가져갈 수 잇는 기회를 스스로 놓치는 계기가 되어버림.
근데 유류저장고는 애초에 진주만 공습때 일본이 목표에 안 넣어서 공습이 실패한 이유라 볼 구는 없을듯.
야마모토는 진주만 공습전에 '미국과의 해전은 6개월간 어떻게든 해볼 수는 있지만 이 그 이후엔 자신도 장담할 수 없다.'라고 했다고 하는데 이게 어떻게 보면 딱 맞는 말이였죠.
미국 전역의 수많은 공장들이 전부 군수공장으로 돌입하면 그 미친듯한 물량을 어찌.. ㅋㅋㅋ
효도르 뒷통수를 각목으로 가격하면 30초동안 어떻게든 해볼 수는 있지만...
진주만 공습으로 항모를 잡고 파나마 운하까지 6개월안으로 상륙해서 산업시설을 붕괴 시키면 이길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허나 진주만에 정박한 항모가 없었다는 점에서
이미 이소로쿠는 전쟁의 패배를 뼈저리게 직감했다고 하네요
하와이에 몇년치 원유가 쌓여있었다고 하는데
있는지 모르고 가만히뒀다고..
애초에 이소로쿠는 미국의 전시생산력을
아주 잘 알고있었으니 협상이 주목적이였죠
아까운 인재였다고 생각합니다. 세상을 보는 혜안을 지난 사람이 불한당들 밑에 있을 땐, 얼마나, 불행한 삶을 살게 되는지...
일본제국의 육해군 대립은 굉장히 유명한 것이었죠. 거기다가 경찰까지 더하면서 혼돈의 카오스 상태.
웃긴게 메이지 유신의 주역인 사츠마 번이 해군, 조슈 번이 육군이 되고 경찰의 경우 내전이 끝나고 실업자가 되어버린 에도막부 소속의 사무라이들이 나중에 다수 경관으로 채용되어버렸으니 오월동주 상태였다가 서로 반목하게 된 앙숙+과거의 적 이런 상태였던 거지요.
독일 : 무장 친위대/국방군의 기 싸움. 공군원수의 트롤링. 갖다 버려진 해군
이탈리아 : 로비 받아서 중구난방으로 전투기 생산한 공군+그 로비에 부응해서 중소 기업에게 전투기 생산을 통째로 할당시킨 기적의 영도자 무솔리니.
추축국은 틀렸어...
각 번 마다 맡는 속속을 나누다 보니...어쩔 수 없는 파벌싸움으로 갈 수 밖에 없는 구조...
일본제국이아니라
섬나라오랑케
@@Twillightman 오늘도 레더와 되니츠는 웁니다
@@프로도래몽 그건 어느 나라가 대부분
그렇고요, 일본군의 경우에는 나라의 존망
이 걸린 전쟁중에도 서로 협업은 커녕
정보공유도 하지 않고 육군이 해상병기를,
해군이 지상병기를 독자적으로 개발하는등
비정상적인 대립이었어요.
당시 일본 육군 장성 중에도 이소로쿠랑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이 있었죠.
구리바야시 다다미치
이양반도 미 대사관 주제무관으로 파견되서 잠시 공부한적도 있고 또 미국에 대한 전반적인 부분을 보고 나서 미국은 일본 따위가 절대 넘볼 나라가 아니다 라는 말로 일본 군부에 찍히기도 하고 미국과의 전쟁은 암울한 결과를 가져올것이란 표현을 하기도 했죠.
그 사람 이오지마 전투 책임 장교아님? 그거 이오지마에서 온 편지 그거보고 알게됬는데 구리바야시도 미국에서 생활했던걸로 아는데 그래서 미국에 전투력과 행동패턴을 알고있엇다고 ..
그래서 이오지마 전투에서 미국 패턴 읽고 어느정도 성과가 있엇지만 오랜 고립으로 물자바닥에 사기력 떨어지고 수적 불리해서 뭐... 망했지만..
암튼 저도 그 영화보고서 그 장군 멋있다고 생각했음.
@@IKE_Hojo 구리바야시도 이오지마에서 미군을 격퇴하겠다가 아니라 최대한 피해를 강요해서 평화협상에 나오게 만들려고 했음 이오지마에서 큰피해를 내는데는 성공했죠
다만 이피해때문에 원폭을 맞았지만
+ 야마시타 도모유키
@@sususus18q8q8q그 사람은 뉘심???
@@한세현-m4p 일본 황도파 출신 육군 장성 말레이 함락시키고 태평양 전쟁 말기에 필리핀에서 지연전 하는데 일본 본국이 항복해서 야마시타도 항복함 부하들 전범 자기가 뒤집어쓰고 처형당함
영화에는 안나오지만 야마모토 이양반 도박꾼에 젊은 여자 엄청 좋아했다고 하죠. 그와 사귀던 십대 게이샤는 야마모토 사망후 자결을 강요 받습니다. 그분은 군신이 되야 하기때문이 라나?
다행이네요.
인간적인 약점이 완전히 숨기지 못해서 다행이네요,
저 약점이 야마모토의 정신건강을 지탱한건데, 그걸 무시하고 숨기려하다니
유사이래 권력자가 반반하고 어린 여자하고 떡치는건 지극히 자연스럽고 상식적인 일이었음. 그런걸 터부시하는 현대사회가 인류역사 전체를 놓고 보면 기형적인것임
@@sonkim3601 전라도출신 중국인이신가요?
@@sonkim3601 그 노예의 후손이 너구나?
젊은여자 좋아하는거야 위력이 없이 당사자들끼리 ㅇㅋ면 문제없고
도박은 주위에 피해 안끼칠정도면 되지.
노구치히데요같은 쓰레기같이....
시간약속을 잘 지키는 야마모토였기에... 부겡빌에서 "공작새" ㅇ는 그렇게 떨어지고 말았죠 당시 일본군부에서 그나마 제정신이었던 야마모토 였기에 좀 아쉬운 점이 있지만 우리입장에선 아주 다행 스러운 점이죠
살아남아서 협상파의 수장으로 미국과 협정에서 목소리를 냈다면 우리나라 입장에선 더 부당한, 일본에겐 더 유리한 항복협정을 했을듯.
ㅎ
다른 G4M에 탔던 우가키 마토메(宇垣纏)는 솔로몬 제도 해상에 추락했다가 중상을 입고, 끈질기게 살아났죠.
@또삭제일본내막기가 예언서처럼 여겨지면서 화제가 되기도 했지만 그 책 하나 가지고 한국의 독립에 큰 영향을 끼쳤다라는 것은 전형적인 과대평가라고 생각합니다. 미국 내 어느 정도 한국을 인식시켰다고 봐야겠지요. 한국 독립에 실질적으로 제일 큰 영향을 끼친 건 카이로 회담에서 장제스가 한 제안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된 큰 요인은 중국내 독립운동가들의 활동이죠. 알고 보면 일제강점기 당시 외교부문의 독립운동은 별 성과를 못 거두었습니다. 헤이그특사부터 파리강화회의의 김규식까지 말이죠. 그런데 중국 내에서 대한민국 임정의 무력투쟁이 장제스에게 긍정적으로 인식되어 국민당이 임정을 지원하게 되었고 결국 김구가 장제스에게 한국독립을 약속해달라고 한 것이 카이로 회담에서 현실화되었죠.
이 양반보다는 무타구치 렌야가 총리가 되었다면 조선이 일본을 지배했을 수도
원래 야마모토가 노리고 싶었던건 항모도 있지만 거기있는 유류창고도 있었죠 일본군 조종사들이 실적을 올리는데 급급하다보니 그냥 납둬버렸지만 그 해군기지의 유류창고는 훗날 미해군이 다시 일어나는 기회가 되죠 야마모토는 진짜로 미국과 싸우는게 두려워서 초반에 저렇게 전쟁의지를 꺾어서 협상테이블에 미국을 빨리 앉히는걸 원했던 사람이죠.
조종사들이 안한게 아니라 지휘부 명령으로 공격대상에서 제외한거임
1. 항공모함, 2. 유류창고, 3 수리 도크 등의 파괴 목표가 있었죠
그래서 나중에 야마모토가 유류창고와 항모를 부수지 못했다는 소식을 들었을때 모두가 진주만 기습 성공에 기뻐할때 홀로 술집에서 대성통곡 했다는 야사도 있습니다
미국과의 전쟁을 절대 반대 했던 인물인데...미국 하버드 유학파에... 산업현장을 직접 봤을 껀데...잘 알겠지
@@자반갑습니다훠훠 1945년에 뭔 산업혁명..(댓글 지웠네 누가 1945때 산업혁명일어났다길래 지적한거야)
산업혁명이 여기에 왜 나와
@@자반갑습니다훠훠 초딩은 산업혁명이 1945년 일어난줄 압니다 ㅋㅋ
@@MrSys0631 걍 가만히 계셈
@@김유성-s4g 내가 한말 아녀..
싸우면 안된다고 주장했는데 국론이 전쟁쪽으로 기우니까 그걸 거부하지는 않았다. 그냥 군인임
그런것도 있겠지만 저때 일본안에 분위기가 전쟁을 개속 반대하면 언제 목숨이 날아갈지도 모르는 살벌한 분위기라 싫어도 할수밖에 없었음.
저 당시 일본분위기가 어때했냐하면 단순히 '미국이 우릴 죽일려고 든다!' 가 아니라 영국본토가 작살나고 있고 네덜란드의 독일 패배로 네덜란드의 식민지인 인도차이나가 주인이 없는거나 마찬가지인 상황 (인도차이나에서 고무, 니켈, 석유등등 지하자원이 풍부해서 전쟁수행 및 일본경재를 돌릴 자원이 넘처남) + 독일의 약진으로 미국이 태평양에 신경못쓸것 이 합쳐진 상황이라 일본은 나름 해볼만 하다고 본겁니다. 일본의 예상은 맞았습니다. 미국은 태평양에 신경을 거의 못썻어요. 근데도 그 신경못쓴 전력만으로 미국이 일본을 이겨버린게 문제인거죠.
@@user-tt28182 그말도 맞지만 제가 알기로는 육군은 전쟁을 반대하면 정치인이건 군인이건 언론인이건 상관업이 암살까지 마다하지 안았고 해군도 전중민님이 예기한 상황까지가자 전쟁을 반대하면 옷을 벗어야하는 상황이라 싫어도 반대할수있는 상황은 아니였던거로 압니다.
@@skysdf5024 군대에서 중간만 가라는 근데 맞자나요
직업군인이면 승진하지만
징병된 상황이면 잘한다고 일찍 제대시켜주는것도 아니고 월급을 주는것도 아니고
700일 쯤 되는 병역기간중 휴가 며칠이 다니까
거부를 하지 않은 게 아니라 거부를 하다가 목숨 날아갈 거 같으니 한 거지 ㅋㅋ
영화를 보시면 알겠지만, 마지막 장면에서 항공기가 피격되고도 야마모토는 살아있었다고 나오지만, 실제로는 첫번째 공격때, 전사했죠. 사인이 항공기 추락사가 아닌, 기관포탄에 의한 관통사입니다.
야마모토 당사자도 미국을 이기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죠. 그래서 처음엔 개전을 반대해 일부 소장파 장교들에게 목숨을 위협받을 정도 였으니 말입니다.
야마모토는 미국에게 심각한 타격을 입혀 미국이 정전협상에 나서도록 만들 생각이였지만 진주만 기습에 빡친 미국은 철저히 일본에 복수한다는...
@또삭제 다 지나서 할 수 있는 말이네요. 당시엔 모든게 불투명했지요.
진주만 철저히 파괴해도 미국의 회복이 더딜 뿐이지 흐름은 못바꿉니다. 미국이 진주만 포기 안합니다. 당시 일본의 상륙전 능력으론 수만에 이르는 진주만의 대규모 미육군과 해병대를 이길수도 없어요. 일본함대는 미국과는 달리 대규모 지원함 세력이 없어 오래도록 작전을 못합니다. 도조 히데키도 전후 맥아더와의 면담에서 일본이 미국에게 패한 3가지 원인중에 하나를 이 차이로 꼽습니다. 하와이 점령이 너무나도 힘들다는 것을 알기에 일본도 미드웨이 점령 후에나 하와이 재공략하려 했죠.
여담인데 하와이 유류저장고의 석유 다 불태워도 미국이 그거 보충하는데 몇 달 안걸립니다. 물론 유류저장시설과 수리시설 등을 박살내었다면, 미드웨이나 과달카날에서 일본이 승리했을 겁니다. 어쩌면 미드웨이나 과달카날에서 미국이 물러섰을수도 있고요.
그러나 이후 공업력의 차이로 인해 일본은 광대한 지역관리도 쉽지 않은 상태일때, 미국은 알다시피 1주일에 항모 한척을 뽑아대는 미친 능력으로 항모 수십척 찍어내서 하와이나 미 서부 근해에서 일본주력 기동함대 궤멸시켰을 겁니다.
그리고 일본육군은 본래 소련 공격을 원했으나 중국과의 전쟁도 감당못해서 독일이 모스크바 점령해야 참전한다고 조건걸었고,
해군은 자신들이 들러리가 될 소련침공 자체를 반대했습니다.
참고로 일본이 대중전쟁에 쓴 예산이 대미전쟁에 쓴 예산보다 많고,
미국은 자기 힘의 1/10로일본 제압했습니다.
@@이영준-o9d 일본편에서 생각해 본다면 육군말대로 소련을 쳤으면 유럽동부 전선이 어떻게 될지 몰랐겠네요 ㅋㅋ 태평양에 너무 많이 기지를 뿌랴놨죠..
@@kingmaker0101 1941년 겨울 모스크바가 독일군에 함락당할 뻔 했었지만 소련의 시베리아 극동군이 지원오면서 극적으로 방어에 성공합니다. 대략 60만이었던 극동군은 일본침공에 대비한 정예부대입니다.
2차대전 직전 노몬한 전투라고 해서 소련과 일본간 국경분쟁을 구실로 서로 간보는 전투가 벌어졌었고 일본이 패배했습니다. 사실 이 패배로 일본육군은 기계화되지 못한 자신들의 현실을 인식하고 시베리아 침공을 꺼리게 됩니다.
비록 기계화되지 못한 일본육군이 패했지만 소련도 제공권이 장악당하는 등 희생이 컸기에 소련도 정예극동군을 배치해 놓았었지요.
소련군 희생자수도 상당했다는 러시아 비밀문서가 몇 해 전에 공개된 것으로 압니다.
1941년 독소전이 시작되던 때에 일본에 파견되어 있던 소련의 전설적인 스파이 리하르트 죠르게는 일본은 미국을 칠 준비를 하느라 소련의 배후를 칠 생각이 없고, 모스크바가 함락되어야만 배후를 치기로 독일과 약조한 상황이라고 본국에 타전합니다. 이 정보의 신빙성에 대해 모스크바에선 고심을 거듭하다가 믿기로 하지요.
죠르게의 이 정보를 믿은 소련은 정예 극동군을 모스크바 방어에 투입하여 결정적인 위기를 극복합니다. 죠르게는 이후 일본에서 보안부대에 체포당하여 사형당해 일본에 묻힙니다. 지금도 새로 부임하는 러시아 대사는 죠르게 묘소에 부임즉시 반드시 참배합니다.
이후 스탈린그라드에서 무제한의 소모전을 강요당한 독일군은 그 기세가 서서히 꺾이게 되죠.
지금부터는 소설이지만...
만약 일본이 소련의 배후를 쳤다면 소련이 모스크바를 함락당하고 큰 위기를 겪었으리라고 봅니다. 우랄산맥 동쪽으로 공장을 옮긴 소련은 계속 저항하겠지만 연방에 대한 지배력 약화로 힘은 반감되겠지요.
그렇다고 해서 독일 일본이 신흥 패권국이 될 정도로 역사의 물줄기가 변했을까?
미국이 일본에게 석유금수조치를 취해나가는 상황에서 일본의 힘은 한계가 명확했지요.
석유부족으로 당장 중국에서의 전쟁도 치루기 어려운 상황에서 미국은 중국과 만주에서 나가라고 요구 중인데 석유부족에 시달리는 일본이 지속적으로 광할한 시베리아를 칠 수 있는가?
그 광대한 대륙에 강력한 세력을 신속하고 지속적으로 전개하려면 석유가 엄청나게 필요할텐데 어려웠을 겁니다. 게다가 일본은 중국과의 전쟁에서도 병력부족으로 내선일체를 강조하며 조선인들을 징집중이었지만 조선인들은 인구 3천만에 일본의 전쟁에 열심히 임하지 않아 1945년 소련의 만주 침공시 조선인들의 탈영율이 50%가 넘어갈 지경이었죠.
게다가 미국은 소련에 엄청난 지원 중이었고 소련이 망할 지경이 되면 무슨 구실을 들어서라도 참전해서 일본을 때렸을 겁니다.
영미는 소련이 약해지길 원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독일 일본의 성장은 더욱 용납할 수 없었습니다. 스탈린은 1944년 6월이 되어서야 영미군이 노르망디에 상륙한 것은 소련이 독일에게 충분히 얻어터져 약해지길 원하기 때문이라고 항상 분통을 떠트리곤 했지요.
여튼 일본이 소련 배후를 쳤다면 소련이 멸망 직전으로 몰리거나 말도 다 못할 피해를 입어 2차 대전 후에 미국과 경쟁하지 못했을지도 모르겠네요. 독소전에서만 사망한 소련인구가 대략 4천만 전후라는게 학계의 정설인데 일본이 가세해서 힘이 분산되었다면 인구 절반이 사라졌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이영준-o9d 미국정부가 유럽전쟁에 참여하고 싶었는데 미국민들이 1차대전때 사망자 많이 나서 참전 반대 했는데 일본이 진주만 공습해서 자동 참전에 히틀러가 신나서 장군들 장관들 다 반대하는데 미국에 선전포고해서 미국정부가 바로 유럽에 직접 참여했죠...둑일 외무장관이 극렬 반대했는데 하여간 히틀러덕에 2차대전이 조기에 끝났고
일본이 소련하고 불가침 조약 맺어서 극동 소련군 싹 빼다가 동부전선에 투입해서 결정적으로 스탈린그라드 부터 전세가 바꼈죠. 현대 역사가들이 아무리 봐도 일본하고 독일 하고 동맹 맺은건 독일에 피해가 100이면 이득은 1도 안된 동맹였죠..
심지어 석탄액화기술, 메사슈미트비행기, 티거탱크등 제작하라고 도와주기만 했죠.
거따가 어제 뉴스보니 동남아에서 독일여자들도 위안부로 썼다네여..곧 일본 장교들이 보내주긴 했다고 하네요 죽이지 않은거만 해도 다행인가요...
@@kingmaker0101 말씀대로 미국엘리트는 참전 원했지만 구실이 없었는데,
소위 ABCD포위 등으로 일본을 압박하자 일본이 알아서 진주만 선빵으로 참전명분 만들어주고 히틀러 역시 알아서 참전명분 만들어주죠.
길게 보면 일본 독일과 영미의 충돌은 도전자와 챔피언 입장으로 필연이었으리라고 봅니다.
1905년 러일전쟁에 승리한 일본은 조선을 가져가고 포츠머스 조약을 중재한 미국은 필리핀을 가져가죠. (가쓰라테프트밀약)
일본 입장에선 러일전쟁에서 가랭이 찢어질 지경이어서 당장 미국중재의 필요성 때문에 필리핀을 인정해줬지만 내심 자기들의 턱밑에 미군을 몰아내고 필리핀을 빼앗겠다고 생각하고 있었기에 미국을 잠재적 적국으로 설정했고, 미해군은 그당시 이미 오렌지계획(오렌지는 일본 뜻함)이라고 해서 장기적으로 태평양 지배를 위해 일본정벌계획을 수립합니다.
(현재 일본의 주인이자 태평양지배자는 미국인데 이를 인정치 못한답시고 항모 등을 만들면서 개기는게 중국이죠. 필연적으로 미국에게 쳐맞게 될 겁니다. 어떤식으로든...)
이렇게 각자 끝없는 욕심으로 마주달리는 미국과 일본의 충돌이 불가피한건 역사의 필연이었겠지요. 이 필연을 예측한 미육군항공대의 한 소령은 1925년경에 이미 일본이 일요일 새벽 여명을 틈타 항공기 위주로 하와이를 칠 수 있으니 대비해야 한다는 보고서를 제출했었지요. 항모가 막 취역하던 항모 걸음마 시절에 그런 예측을 하다니 대단하죠.
독일 입장에선 일본에게 이런저런 기술을 전수해도 일본 공업력의 한계로 제대로 습득하지 못하니 답답했을 겁니다.
엉망진창 일본전차, 수준낮은 소총 등 기계화되지 못한 육군은 정말이지 안습...
그나마 전쟁말기에 제트기를 띄운 일본이지만 이미 늦었지요. 독일이 잠수함으로 일본에게 핵폭탄 한발을 전해줬지만 핵폭탄을 미국에게 투하할 이동수단이 없어 흥남 앞바다에서 걍 폭파시켰다고 하더군요.
그리고 일본 역시 핵기술이 상당히 진척되어 있어서 미군들이 실험실과 연구자료 살펴보고 깜짝 놀랐다고 합니다.
일본이 독일에게 전수하던 것이 항모인데 항모 제작도중에 2차 대전이 끝납니다. 영국해군에게 밀리는 이상, 그리고 소련을 이겨내지 못하는 이상 독일은 질수밖에 없는 싸움을 했던거죠.
말씀하신대로 일본은 독일에게 그닥 도움이 되지 못한 동맹이었죠.
진주만 폭격시 히틀러가 흥분했지만, 일본이 영국의 전함과 항공모함 뭉게고 다닐때도 흥분했지만 거기까지 였습니다. 독일이 간절히 원한 시베리아 똥침을 놓아줄 여력이 일본에겐 없었기에 소련과 불가침조약을 맺어두었던 거죠. 사실 조약따윈 본래 휴지조각에 불과하므로 일본육군이 보급이 충실하고 기계화된 강대한 군대였다면 시베리아 치고도 남았을 놈들이 일본애들이지만 중국 미국 감당조차 버거웠죠.
일본은 항모와 항공기가 두배로 필요했고 조종사는 4배가 필요했지요. 게다가 수송선 구축함 등도 턱없이 모자라서, 특히 선박순톤수 부족 및 공업력 한계로 필패한다는게 일본의 총력전연구소 연구결과였죠. 이 연구소는 독일의 필패도 예상합니다.
이래저래 일본은 자신들이 감당할 수 없는 전쟁수렁으로 들어간 셈이지요.
이시와라 간지라는 도조 히데키의 일본육사 동기가 이미 태평양전쟁이나 시베리아 침공 모두 반대하다 군에서 쫓겨납니다.
이 사람은 장차 독소불가침조약이고 나발이고 필연적으로 독소전이 벌어져 독일이 패할거고, 이후 소련과 미국이 붙어 미국이 이기게 될거니까(여기까진 예측적중), 그때까지 일본은 닥치고 힘을 기르다가 미국만 이기자고 주장했습니다. ㅋ
도조가 태평양전쟁 일으키니 실업자로 있던 간지가 석유때문에 전쟁 일으키는 미친놈이라고 했다죠.
사실 일본은 석유없이는 영원한 2등 국가였고,
간지는 이를 인정하고 힘을 기르자는 입장이었던 거죠.
일본은 1차대전 때 다른 연합국들이 진짜 전쟁이 일어나고 있던 유럽전선엔 절대 파병할 생각이 추호도 없었고
영국과 연합군을 형성해 중국의 독일 식민지 칭다오(맥주로 유명한 칭다오)를 공격해 차지한 것과
제정 러시아가 무너지고 소련이 들어서자 독일과 단독으로 강화조약을 맺고 전쟁에서 빠지는데
이를 되돌리기 위해 연합군이 소련을 침공할 때 여기에 참여한게 다였습니다.
그래도 연합군이 이기자 승전 연합국 이랍시고 조금이라도 더 많은걸 얻고 싶어서 안달이 났던거죠.
그후엔 여기서 나레이션으로 설명하신 것과 같은 일이 일어났으니 전 그에 대한 긴 말은 다 생략 하겠습니다.
최근 미군이 야마모토 제독을 죽인 작전명 벤전스에 대한 얘기를 봤는데요.
당시엔 전쟁초반 일본에 절대적으로 유리했던 전황과 달리 최근 우리나라를 비롯해 세계 곳곳에서 개봉한
영화로도 만들어진 미드웨이 해전을 기점으로 전세가 서서히 역전되어 가자 일본과 미국 양국간
근본적인 국력의 차이가 더욱 도드라져 갑니다.
야마모토 제독이 우려한 상황이 현실화 되어갔던 거죠.
일본해군은 전세가 역전되자 전쟁초반 전세를 유리하게 이끌던 원동력이었던 유능한 베테랑 조종사들이
희생되어 간 반면 미국은 경험이 쌓이고 잘 훈련받은 신참 조종사들이 보충 되면서 인적자원에서 부터
일본과의 격차를 벌려갑니다.
또 일본해군은 일선 조종사들과 제작사 설계자들의 제로센에 대한 성능개량 건의를 묵살하고
해군 수뇌부가 어떻게 감히 그들이 천황이라 부르는 일왕이 하사한 무기에 손을 대냐며 정신력 타령만 하고 있을 때
미군은 일본군 전투기들을 능가하는 신형 전투기들이 쏟아져 나오며 전투기 전력도 일본군을 완전
압도해 나가기 시작 합니다.
그리고 그런 미군 전투기중 한대가 여기 영상에서도 언급된 육군항공대 소속의 P-38 라이트닝 전투기 입니다.
일본군이 야마모토의 전선시찰을 무전으로 보낼 때 가장 큰 문제는 전문 내용을 암호화 시키지 않고
암호화 시켜 보냈어도 미군이 해독을 했겠지만 무전병이 암호가 아닌 그냥 글로 된 평문으로 보낸게 문제였죠.
그만큼 당시 일본군은 다들 정신적으로 엉망진창이 되어 제정신들이 아니었던 겁니다.
그러니 미군은 암호해독을 할 필요도 없이 번역만 하면 내용을 볼 수 있었던 거죠.
다른 것도 아니고 최고사령관이 최전선에 시찰을 나간다는 최고기밀사항을 암호화도 안하고
평문으로 보냈으니 이건 아마 2차대전중 일본군이 저지른 최악의 실수중 하나가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야마모토를 비롯한 전선시찰에 나선 지휘부는 1식육공 2대에 나눠타고 제로센 전투기 6대가 호위를 합니다.
하지만 미군은 공격조 4대와 호위조 14대로 구성된 P-38 18대의 전력으로 작전명 벤젼스에 나섭니다.
기지에서 출격한지 얼마 안되 공격조 4대중 두대가 고장문제로 귀환하고 호위조에서 2대를 공격조로 전환해
공격조 4대, 호위조 12대의 전력으로 작전에 나섬으로써 그후 결과는 아시다시피
지휘부는 타고있던 1식육공 2대가 다 격추당해 전원 사망하고 호위하던 6대의 제로센 전투기도
5대가 격추당해 전사하고 1명만 살아 남았다고 합니다.
작전 다음날 일본육군이 추락지점으로 병력을 파견해 수색을 한 끝에 추락한 일식육공을 발견하고
추락한 기체 안에 있던 야마모토를 비롯한 수뇌부들의 시신들을 발견해 회수 합니다.
야마모토의 시신은 야마토급 전함 무사시에 의해 수송돼 일본본토로 옮겨지고 야마모토의 시신이 일본에 도착하고
난 후에야 일본정부는 야마모토의 전사를 발표 합니다.
미군의 이 작전성공은 원래 크게 알려지고 작전 참가자들은 최고훈장을 받아야 할 수훈 이었지만
미군은 일본군이 그들의 통신을 도청해 암호해독 까지 하고 있다는걸 눈치채지 못하게 하기 위해
미군 지휘부가 작전 참가자들을 치하하고 자체기록을 남겨두는 정도로 끝냈다가 차후 2차대전 종전 후에야
세상에 공식적으로 공표하게 됩니다.
나무위키 정보 잘 봤습니다
@@꽃한다발-l2v 이곳저곳에서 보고 들은 정보로 공부하긴 했지만 죄송하지만 전 나무위키에선
본거 없습니다.
와 흥미로운 이야기 한편 들은 거 같아요. 감사합니다.
@@꽃한다발-l2v 시비질 극혐
2대의 육공 모두 격추당했지만 야마모토가 탄 1대의 인원들만 전멸했고,
호위제로전투기6대 중에 1대만 격추되었을 겁니다. 이후 살아남은 호위기 조종사들은 최전선에 투입되어 죽음을 강요받아 전원 전사합니다.
9:59 이탈리아 해군원수도 전사하긴 했습니다. 자국 방공포병의 아군오사로요 ㅋㅋㅋㅋㅋㅋㅋ
당시 일본 육군이 자기들 입맛에 안 맞는 일본 내각 수상과 내각 대신들을 암살하고 다녀서 미국과 전쟁에 반대했던 야마모토가 연함 함대 사령장관 자리에 임명된 게 육군의 암살 위협을 피해서라는 이야기도 있어요 (연합 함대 사령부가 거대전함 나가토에 위치해서 육군이 덤빌 수가 없었습니다)
역시 막장 쓰레기 군국주의 국가 답네요
@@sehyeonj209 단순한 막장 쓰레기 군국주의 국가라고 무시하고 폄하하기엔 당시 그 넓은 동아시아 전선을 유지할 만한 수많은 군대를 갖췄던 일본제국이라는 국가의 역량이... 게다가 그렇게 말하시면 그런 막장 쓰레기 국가한테 전쟁도 없이 통째로 먹힌 조선은 대체... 아무리 감정이 있어도 역사는 객관적으로 봐야 얻는 게 있는 겁니다.
역시 하버드 출신은 다르군요 야마모토는 ㄷㄷ
@@dakaaba9128 막장국가 맞지 뭔;; 미국한테 석유같은 자원 80%를 수입하는 일본이 미국을 공격한것도 어쩔수 없다지만 존나 개 막장이고 만세 돌격? 그것만 봐도 개막장인데 아주 인명경시사상이 엄청심했음 전투기 제로센만 봐도 엔진 마력이 딸리니까 기본 골격에다가도 구멍을 내서 만들었는데 ㅋㅋ 당시 열강들 사이에선 개 막장이지 뭔 조선을 비교하냐
@좁불 네 사령부가 나가토에 있으며, 모든 시설이 육상이 아닌 배 위에 고스란히 설치되어 있어서 배에서 모든 업무를 볼 수 있게끔 되어있는게 그 당시 일본해군입니다
칩거 및 은둔까지는 아니겠지만 활동반경의 기본이 배 위인 나가토로 옮겨간 만큼 암살을 피하기는 무척 쉬웠을겁니다
명심하세요 일본은 전간기에 자기네 수상과 정부 수반들을 장교나 군인과 시민이 멋대로 쏴죽인 애들입니다 일본의 브레이크를 스스로 부수고 다니고 있습니다
야마모토 기습에 성공한 P-38라이트닝 전투기 이야기를 더 알고 싶으면
"불타는 하늘"에서 아주 자세히 실제 사건의 순서대로 잘 설명해줌
고맙습니다
야마모토가 미국무관시절 휴가를 얻어 자동차여행을 떠났다가 차가 고장나 도로변에 정차해있는데 차한대가 서더니 10대 미국소녀가 내려서 본네트를 열고 엔진을 수리해서 무사히 여행을 계속했다는 일담을 전하면서 1930년대에 10대소녀가 자동차를 수리하는 나라가 미국이다 미국의 저력을 알아야한다는 소신을 피력햇다는 일담이 있습니다 10대 소년에게 아버지가 사냥용엽총을 선물하고 같이 사냥을 다니는 문화가 있는 미국인과 전력을 다해서 싸운다는건 일본의 사무라이 정신만으로는 곤란하다는걸 야마모토는 잘알고있엇다고 생각됩니다
7:30 일본군 통신병으로 투입된 독립군 ㅋㅋ
근데 이때 통신도 미군에게 제대로 파악한 상태인데 미군 정보부 안에는 레이튼 소령 과 로슈포르 중령이 있었기 때문에 일본군의 무전 및 암호 체계는 이미 두 장교에 의해 야마모토 이소로쿠의 부겐빌 방문까지 알아낸겁니다...어찌보면 무전병의 병크일수도 있지만 미군에겐 엄청난 이득이 되었답니다.
무타구치 렌야 인가?? 뭔가하는 일본군 바보 장군이랑 똑같은 놈인듯 ㅋㅋㅋ
@@wonpunchguy 사실 무타구치 렌야가 유사 독립군의 칭호를 받게 된 데는 일본군 중에 그나마 양심이 약간이라도 남아 있었다는 게 컸죠. 인체 실험으로 악명높은 일본의 731부대의 부대장을 만난 무타구치 렌야가 그 부대의 인체실험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그것은 인간이 할 짓이 아니라며 부대장을 꾸짖고 나갔다는 일화가 전해지죠.
@@hraesvelgrskyknights1111 그냥 바보 입니다
양심이 있던 장군 이라면 노구교 사건도, 일본군 보급이 거덜나자 부대원들에게
'일본인은 초식동물이다'
'잡초를 뜯어먹으며 전진해라'
같은 말도 하지 않았겠죠ㅋㅋ
드립이었습니다만...
사실 이 장군 관련해서 붙은 건 드립이 많죠
이 영화 최고의 명장면
(과달카날 전투 이후 해군내 회의에서)
카도쿠라 소지 중장(해군 중장/ 영화내 창작): (큰소리로 자리에서 일어서며) 연합함대에는 아직 무츠도 있고, 나가토도 있고, 세계 제일의 이 야마토도 있다. 지금이 아니면 거함거포를 언제 쓴단 말인가?
우가키 마토메 중장(연합 함대 참모장) : 하지만, 카도쿠라...
카도쿠라 : (큰 소리로) 지금이야말로 전함을 동원해서 총공격을 해야 할 때가 아닌가!
구로시마 가메토 대좌(연합함대 참모) : 카도쿠라 사령관, 죄송합니다만 저희들도 그러고 싶습니다.
카도쿠라 : 왜 안 하는가?
구로시마 : 하지만...
카도쿠라 : (거세게) 하지만 뭔가!
우가키 : 사실은...연료가 없다!(実は、、、油が 無いんだ!)
카도쿠라 : ...(조용히 다시 착석한다)
카도쿠라 해군이 아니라 육군장성입니다 그리고 실제인물입니다 ㅜㅜ
@@emergency1 앗 그렇군요.. 덕분에 알아갑니다
현대에 대부분의 국가의 합동참모본부의 중요성을 보여주는영화이다. 육군과 해군이 싸우면 내전이잖아
그게 사쓰마번이 해군의 뿌리이고 죠슈번이 육군의 뿌리라 그럴 거예요. 아마.
미국도 저 당시의 일본과 같은 상황으로 돌아가고 있음
육군과 공군의 사이가 매우 나쁨ㅋㅋㅋ
육군 전사자 대부분이 공군의 오폭이니까 ㅋㅋㅋㅋㅋ
@@테미-g6f 저 당시에 미국 공군이 없었는데 뭔소리임 육군항공대 해군항공대 이렇게 밖에 없었는데
전쟁 영화에 대해 광은 아니지만 어느정도 관심이 있는 사람으로서 저는 이 채널이 너무나 좋습니다~ ㅋ
스타에서 유한맵이 무한맵하고..개기면 생기는 일..
ㄹㅇ ㅋㅋ
것도 빨무...
선전포고 훨신전에 무기랑 항공기 잔득 싣고 일본에서 출항을 했고 선전포고 훨신전에 그걸 알고도 이미 공격기를 출격 시켰는데 "선전포고"가 늦었다고 야마모토가 가책 받는다는 내용이 말이 되나?...결국 야마모토의 생각은 "선전포고" 5분뒤에 진주만 상공에 자기들 공격기가 가있길 바랐다는 말인데 이러면 덜 비겁한건가?...
어쨋든 선전포고하고 때린거란 인상을 주고싶었나봄
일본사람들이 그렇게나 좋아하는 명분때문일듯..."우리는 할거 했으니 너네 때리러 간다"라는...
우리야 속터질일이지만 국제적으로 명분이나 약속은 후일에 중요하게 작용하니 목을맬수밖엔없었을법함
실질적으로 일제앞에서 크게 위력발휘는 못했지만 독립군이나 의병활동 그외 해외에서 임시정부의 정당성주장등이 전후 연합국의 협상라인에서 유리하게 작용하듯이
진주만을 때리기 전까지도 존나 쌔게 때리면 미국이 복구할때까지 자원이랑 중일전쟁 끝내 놓고 미국이랑 협상할 생각이였다고 들었는데 왠만한 국가는 통해도 미국은 3개월도 안돼서 부활
국제나 국내나 중요한 건 명분이죠. 경고하고 때렸다(?)라는게 심하면 강화협정에서 배상의 책임을 질지 배상을 받을지 구분하기도 하니까요.
화북분리공작 1935년
삼국방공협정 1937년
미일통상항해조약 폐기 1939년
신체제 운동 1940년
일본의 베트남 침공으로 미국의 대일본 석유 금수 조치 1941년
포츠담 선언 1945년
갑자기 생각나서..
@F Lee 선전포고 이미 했어 ㅋㅋ
@@ZHONGHUAMINGUOWANSUI_HANGUOREN 그렇게치면 북한도 선전포고함ㅋㅋㅋㅋㅋㅋㅋㅋ
4:28에서 깊은 빡침을 느낄수 있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하, 염병할 이 똥을 어떻게 치워야 하지?'
4:42에서도 ㅅㅂ ㅋㅋㅋㅋㅋ 겁나 현타온거같은데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초반에는 반대 시킌스 취하다가 육군이 중국에서 ㅈㄴ 날라다니고 동남아에서도 날라다니기 시작하니까 갑자기 전쟁 찬성함 ㅋㅋㅋㅋㅋㅋ
제2차 세계 대전
귀중한 영상 올려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
저때 육군은 욱일기 해군은 일장기썼는데 이유가 서로가 의견반대로 따로 썼다는데 사이가 안좋긴 했나보네
"씨네모리" 운영자님 대단히 감사합니다. 못 봤던 영화들 정보를 덕분에 여기서 얻어가서 내려받았습니다~!!
영상자료들 준비하시니라 고생하셨슴다
야마모토 입장에서도 함대결전이 그냥 최선책
시간을 지체해봤자 미국과의 격차만 벌어질뿐
미국 또한 1942년경에는 대규모 국비확장을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에 시기적 공백기였던 지라 초반에는
항모2대 와일드캣 급하게 투입된 신병등으로 버티던시기
그마저 생산된 건 유럽전선에 먼저 투입되었던 시기인지라
일본측에서는 그나마 쪼금 해볼만 시기 였긴 했죠
그래서 마피아랑 거래를......
제대로된 인물이 있어도 별 수 없었을테죠. 혼자서는 다수를 못 이기니까요. 결정을 어쩔 수가 없었겠지.
이 영화 적극 추천함...
정말 잘 만든 영화
잠자는 거인을 깨운것이 아닌가 심히 걱정이 되는군 - 야마모토 이소로쿠
거인이 아니라 신을 깨운 일본..
이소로쿠는 처음에는 일본이 미국에게 상대가 안된다는걸 뻔히 알고 있었기 때문에 미국과의 전쟁을 반대를 하고 있었는데 당시 일본내각 총리였었던 요나이가 총리직에서 사퇴 하고 난다음부터 미국과 전쟁을 할 결심을 하게 된거라고 하더군요
요나이 역시 미국과의 전쟁을 반대하고 있었던 입장이었는데 총리에서 물러나 버리니 이소로쿠 로서는 뒤를 봐줄 빽이 사라진 격일것이고
군부에서는 계속 미국과의 전쟁을 고집하고 있었으니 ...
그당시는 육군성의 힘이 해군성을 능가새해서 어쩔수 없이 끌려간거 같습니다.
육,해군이 저리 상극인 놈들이 전쟁은 무슨~미국이 무서운건 어마무시한 군수산업체계지..항공모함을 삼년동안 세척이나 뽑아내고..샤먼은 말할것도 없고..
주간 항모
일주일에 한척
일요일 아침 수고 많으십니다!
얼빠진 신문사ㅋㅋㅋ 직원들이 죄다 징용됐네ㅋㅋㅋㅋ
현재의 중국을 보는듯 합니다.
예전영상은 확실히 요즘영상과 톤이 다르시네요^^
일제는 개전 직전에 각계의 수재들과 인재들을 모아서 총력전 연구소라는 워 시뮬레이션이라는 프로그램을 돌려보았는데,
뭐 결과는 일본 필패였고
무엇보다 1차 모의전 결과 내린 결론은
[단기전으로 첫 전투에 이긴후 상대를 강화조약으로 이끄는건 상대국을 전혀 생각하지 않는 발상] 이었습니다.
심지어 총력전 연구소는 독일이 독소전과 북아프리카 전선에서 교착상태에 놓이게 될 것이라는 사실까지 독소전과 북다프리카 전역 개전 초기인 1941년에 간파했습니다.
근데 일제 수뇌부는 이런 유능한 인재들의 모의전 실험을 씹고 전쟁에 돌입,
뭐 결과는 핵펀치 두방 맞고 소련 참전으로 이타이어 였죠()
재미있는건 이 당시 총력전 연구소의 후원자중 한명이 야마모토 이소로쿠였는데,
그럼에도 조기강화 노리고 도박판을 돌렸으니 어찌보면 이 양반도 참...
그게 수직권력이 지나치게 강한 조직사회의 치명적 단점 아닐까요.
우리 돌아가신 외할머니 말씀이 어릴적 소학교다닐때 야마모토 제독이 무슨 전투 승리했다고 학교에 축구공을 나눠줬다 함ㅋㅋㅋ
소학교때 일본어 해야하고 정신대 여학생들 월요일 조례때 몇심명씩 앞에 나와서 무슨 황국식민… 없어진거 증언 하심. 이화 여전 영문과…
일본인 교장…
우리도 외할아버지가 10살때 일본이 어느 전투에서 이겼다고 명동에 있는 백화점 앞에서 고무 공 받았다고 하셨어요
@@june9592 명동이면 현 신세계 본점 본관인가요 ㅎㅎ 미츠코스 경성점
싱가폴 함락 기념으로 공을 배급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일본을 보면 솔직 대단하기함. 청나라, 러시아, 미국 .. 모두 정말 한 체급하는 상대들과 치열하게 전투를 벌였으니. 힘이 전부이던 제국주의 시대
먹느냐 먹히느냐로 갈라지던 시절 . 비참하게 식민지가 되는 것보다는 차라히 주전으로 뛰었던 역사가 있는것이 속마음으로는 자랑스러울듯.
이 영화의 부제는 설탕친 만쥬입니다 왜냐구요? 봐봐
우메~☆
도미나가 교지 무타구치 렌야 선생님들..오늘 따라 더욱 그립읍니다
5:50에 먹는 나뭇잎으로 포장한 말린 망고? 쫀드기같은 물건은 뭘까요?
야마모토 유학파라서 유일하게 전쟁 반대자로 알고있음 대부분 유학파들은 전쟁 반대했음
근데 언론 과 일본 육군의 압박 때문에...
이오지마 전투의 지휘관인 쿠리바야시 타다미치 중장도 미국 유학파라 전쟁에 반대했죠.
@@ebonytears6714 그 사람의 전술을 기점으로 미국이 핵을 던지는 결정을 하게됨ㅋㅋ
미드웨이에서의 야마모토랑 외관적 이미지가 상당히 비슷하네요
러브레터의 주인공이셨다니 치아키 센세까지
리뷰 잘봤습니다!
치아키는 센세가 아니라 영원한 센빠이임
잘 봤습니다 감사합니다 다음에 잠깐 소개해 주신 '언덕 위의 구름'도 부탁드립니다
언덕 위의 구름 계획중에 있습니다.
@@cinemory오~!! 기대하겠습니다
야마모토가 과다카날 전선의 패배를 설욕하고, 전력의 축차소모 방지 및 미군의 항공세력을 일소하기 위해.... 모든 해군항공기를 라바울로 모아 이호작전을 개시했는데... 이 작전에서 전과가 너무 과장되서 전달되는 바람에... 야마모토는 걱정없이 최전선시찰하다 당했죠.. 야마모토가 많이 초조해진 상태였기에 전과를 냉정히 분석못한것 같음....
제독의 연인 해주세요
제독의 연인 계획중에 있습니다. 정말 좋아하는 소재입니다.
야마모토.... 미국에 꽤 오래있어서 그들의 경재력하고 생산력을 알고있던 인물이었죠...
그래서 끝까지 전쟁을 반대했지만 결국 전쟁이 확정되자 초반이라도 유리하게 이끌어가기위해 진주만을 기습한 것이죠
진주만 공습후 야마모토에게 인터뷰한 기자가 다음 계획이 무엇이냐고 묻자 "미국과 협상할겁니다" 라고 했다죠... 뭔가 여러모로 아쉬운 인물이기도 합니다...
일해라 시네모리 더 많은 영상을 내놔~~~~
내... 내놓겠습니다!
신선하네요 역사랑 영화랑 연결시키시다니! 감명 받고 갑니다 저도 더 분발해야겠어요
와우, 미리 태평양 전쟁 공부를 철저히 해 오셨네요. 너무 잘 봤습니다!
이 영화의 진짜 의미는 리더쉽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한다는 점. 야마모토는 개인적 식견도 있고 인격자로 존경받은 건 맞는데 당시 일본군을 통솔하기에는 역량도 의지도 부족했음. 저 영화에서 야마모토의 인물상은 사료에 따라 대단히 정확하게 그려내고 있는데 잘못해도 탓하지 않고 잘해도 칭찬하지 않는 타입임. 욕먹을 거 각오하고 자기가 나서서 조직 내부 교통정리 하고 처음부터 끝까지 직접 챙긴 맥아더와는 아주 정반대의 인물이었던 것임. 미드웨이 해전에서 패배한 것도 야마모토가 구체적인 지시를 내리지 않았기 때문임. 좋게 말하면 범사에 초연하고 나쁘게 말하면 지휘관 치고 너무 현실감각이 없었음. 고고한 인물은 결코 조직을 이끌 수 없음을 보여줌.
우유부단한 성격이구만요
이 영화의 재미는 야마모토 사령장관의 스이만쥬 먹방 아니였나요? ㅋㅋㅋㅋㅋㅋ 먹방밖에 생각이 안나는 ㅠㅠㅠㅋㅋㅋㅋㅋㅋㅋㅋㅋ
오, 물만쥬인가 후루룩
야마모토 이소로쿠 미국과의 전쟁반대의견으로 암살위협에 시달리기도 했음
ㅋㅋㅋㅋㅋ 뭐야 한자와 나오키 주역들 여기 다 나오네
일본은 전쟁일으켰던 명분을 미국의 석유재재에서 어거지로 끼워맞출수는 있을거같은데.. 식민지 통솔이라는 명분은 어디서 찾을수있을까요? 왜 한국을 식민지로 뒀나?에 대한 명분은 일본은 어떻게 교과서에서배울까요? 궁금합니다
4:58 이때부터였나요 미국이 1주일에 1척씩 군함을 뽑아내던 시기가 ㅋㅋㅋㅋㅋㅋ
항공모함이 9일에 한척씩 뽑혀나오는 기적!
베트남 전쟁 영화도 다루어 주시죠
일본의 육군과 해군의 불협화는 전형적인 파벌과 부패의 상징입니다. 자기네들 끼리끼리 문화인테 미국은 능력위주의 문화로 육군, 해군, 공군은 합동참모본부로 통합돼서 운영되기에 효과가 배가 됩니다. 우리고 반면교사로 삼아야 합니다.
우리나라로 따지면 해군이랑 해병대 이런 느낌인가....?
@@zxcvqwer8437 우리나라 해병대는 해군이랑 댜립하기엔 덩치가 너무 작죠 ㅋㅋ
이 영화를 보려는데 아마데도 없는데 어디서 볼 수 있나요 ?
명분과 첩보의 중요성을 잘알겠네요
8:02 영화에선 칼을 잡고 나름 간지나고 스무스하게 추락하는데 현실은 P-38 기총탄에 가슴과 머리를 맞아 즉사했다죠.
머리인가 그쪽에 큰 구멍이 났다던데.
야마모토는 미국 유학덕에 당시 다른 똥별들 보다는 전략적인 시야가 틔여 있었던 인물이지었지만 '미국과 싸우면 좆된다.'를 깨우치고 있던것 외에는 다른 일본군 장성들과 다른게 없던 인물이었죠.
세계 최초의 대규모 항공공격을 직접 입안하고 실행해 성공시키기 까지 했는데도 항공모함과 함재기에 대해 대단히 시대착오적인 주문을 한걸로도 유명합니다. 장갑이 전무해 총탄 몇발만 맞으면 불타오르는 제로의 장갑과 무장을 강화하려던 계획에 반대하며 장갑도 대구경 화기도 필요 없다 진정한 사무라이라면 기존의 기총(7.7미리 딱총을 달고 있었음. 미국은 최하가 12.7미리)으로도 일격에 적기의 약점을 맞출수 있어야 한다는둥 일본군 특유의 정신론을 주워섬겼었죠.
그나마 이 영화는 사실의 묘사에는 비교적 충실해서 지들끼리 치고받느라 개판이었던 일본군의 모습이라든가 무책임하게 전쟁코인에 올라타 전쟁을 부르짖는 여러 인간 군상들의 모습이라든가 (그렇게 전쟁을 찬미하며 선동질을 하던 언론은 패전 하자마자 바로 태도를 바꿔 평화와 민주주의를 부르짖음) 전쟁 중반에 들어서자 전황이 시시각각 악화되어 이건 못이기는 전쟁이라는 사실이 누가 봐도 분명해지는 연출같은게 있는점이 가미가제 미화하는 다른 일본 전쟁영화들과 비교되는 점이죠.
이 영화에서 제일 임팩트 있는 장면은 진주만 기습도 미드웨이 전투도 아닌 미군의 반격에 육군이 떼몰살을 당하고 있다며 해군의 지원을 요구하며 처들어온 육군측에 해군이 '지금은 곤란하다 잠시만 기다려달라'를 시전하는 바람에 빡친 육군이 '항구에 즐비한 저 많은 전함들은 이럴 때가 아니면 대체 무엇을 위해 있는건가!'라며 폭발하는 장면인데, 이에 대해 해군쪽이 한 대답이 너무나 멋집니다. 꼭들 보셍.
도조 히데키(귀축영미는 무서울 것이 없다) + 야마모토 이소로쿠(싸워도 일본에는 승산이 없다) = 그럼 단기전으로 승부를 보자. 이 양반 수준.
@@cheonwookpark7099 단기전으로 미국태평양함대를 작살내고 미국이 함대 재건까지 약 1년정도의 시간이 걸릴것 같으니 그동안 우린 방어를 준비하자. = 이게 정확한 표현입니다. 실제로 초반엔 이렇게 움직이긴 했습니다. 다만 미국의 함대재건속도가 일본이 예상한것보다 약 9개월 빨랐다는게 문제인거지.
09:29
저에게 미드웨이 전투에서 일본군이 가장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은
미군의 잔여 항모를 찾아내거나 유인해서 잡겠다는 것이 원래 목표 같은데, 정작 출전하고 나서는 미드웨이 섬 폭격에 올인한 것 같다는 점입니다.
그러다보니 일본 항모들은 1, 2차로 섬 폭격에 집중하면서도 어딘가 있을 미군 항모 수색, 미군기의 끊임없는 축차공격에 대한 방어 등 온갖 어려운 임무를 한꺼번에 무리하게 진행하다가 운과 기력이 다하니 와르르 폭망한 것으로 보입니다.
(미군 항모 위치와 규모를 모른다면 차라리 섬 폭격은 일부에게만 맡기거나, 섬과 미군 항모를 동시에 커버하려면 일본 항모가 4척이 아니라 6척은 필요해 보이고, 그게 어렵다면 야마모토의 본대가 주변에 같이 있어야 할 것 같기도)
연합함대라면서 야마모토 본인은 뒷짐 지고 항모들에게만 북치고 장구치라고 하는 것 아닌가요
아래 댓글에서도 미드웨이 해전 패배원인 중 하나를 야마모토가 구체적인 지시를 내리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하는데,
잘은 모르지만 제가 보아도 그런 것 같습니다.
이번 영상도 재미있게 잘 보았습니다.
山本五十六야마모토 이서로쿠
어머니가 56세에났다고
이소로쿠(56)이라 이름을 지음....
아버지가 56세이실때입니다.
참고로 어머니도 45세에 그를 출산했으니 상당히 고령출산이였죠.
이름이 오십육이라니, ㅎㅎ한국으로치면, 김오륙 이런 느낌이려나 ㅎㅎㅎ
명작이죠~ 재미있게 봤습니다
남주역 야쿠쇼 코지는 야마모토를 하기엔 너무 미남이야요 키도 실제보다 더 크고 ㅋㅋㅋㅋㅋ
인간적으로 너무 차이가 나죠 ^^
배경음악 bgm 제목이 뭔가요?
시네모리님
진주만 전쟁 영화의
다른 한편의 시각을 알려주셔서
감사 점수 +1점 😭👍
이런 영화는 어디서 볼 수 있나요?
일본이 진주만 공격만하지않았다면 지금 세계는 동양은 일본이다스리고 서양은 미국이 다스리는 세계2대 양축의 시대였을것이다.
미국은 지금 중국의몰락을위해 일본을전쟁할수있는 나라로 만드느냐 마느냐의고민을 하고있는중이다.
@@대하이햄-q6l 그거아냐좁밥아~...전쟁가능한국가로만들면 일본젤먼저 핵폭탄.수소탄제조들어가는데 그런기미안보이잔아....
미국을 먼저 공격안했어도 일본이 영국령 인도를 침공했는데, 연합국이 일본을 가만두겠어요?
일부러 늦게보낸거 아님?
일본은 예전부터 다 기습인데
일부러가 아니라 정상적으로 보내고 대신
내용이 우리가 니들 공격할지 안할지 모르거지만 우리는 니들이 개쉬끼이기때문에 공격을 할지 안할지 결정을 할거다.이런식으로 쓰레기 같이 절대 못알아보게 보내는게 정통적임 러시아도 당함 이거에 ㅋㅋ 그래서 통수 기습 기본 패시브형태임
@@ISAMIT-18 그리고 그말을 암호화로 보냄ㅋㅋㅋ
원래 계획은 미국이 받자마자 바로 진주만 공격인데 대사관에 암호로 보냄->대사관에서 해독, 번역하는데 시간이 걸려서 진주만 공격 받은 뒤에 미국에 전달됨.
3:50 오잉 목소리가 구 은하영웅전설의 로이엔탈이랑 똑같넹???? 뭐지????
설마 전부 미친놈일라고.. 덜 미친놈도 있고 정상인놈도 있고.. 다 그런거지.. 근데 대부분이 미친놈이면 그나라는 그냥 미친 나라라고 생각해도 좋음.
근데 저 당시 일본은 위아래가 다
미쳐있는 상태였음.
정상인은 아주 극소수에 중임을
맡지도 못했음.
그러니 카미카제같은 미친짓도 한거임.
한편 일본이랑 미국이 않싸운 우주
야마모토: 뭐
인적자원만 수탈?오히려 인프라 건설때문에 재정부담?어떤근거죠?
야마모토 이소로쿠를 주인공으로 해서인지 그에 대해 미화된 부분이 많기는 하지만 진실을 말하지 않고 나중에 태세전환하는 언론, 전쟁으로 피폐해져가는 사회의 모습 등등 곱씹어볼 장면이 많은 영화이지요.
다음은 미국의 관점인 2001년작 '진주만'이나 얼마전에 개봉한 '미드웨이' 리뷰 어떠하신가요?
미국은 건드리는것이 아니라 배웠습니다
미드웨이 결전을 부정적으로 보는데 야마모토 입장에선 그게 최선의 선택이었어여. 미국상대로 신속기동 거점타격 협상단기전은 물건너갔고
하와이확보 태평양국방권으로
장기소모전과 미국물량전에서 협상목표의 우위를 위해 미드웨이결전을 한것이져. 미국이 아무리 군세가 압도적이어도 장기전으로 가면 미국내 국민과 언론의 반전여론이 커진다는걸 알아겠져.
미드웨이결전을 안했어도 전황은 기간차이지 미해군의 태평양제해권 제압으로 일본육해군은 그대로 더 밀릴수도 있구여..
미드웨이 직후부터 미전쟁 군수물자 생산량도 기하급수 증가하는데 모든 정황을 종합하니
야마모토의 미드웨이결전 결정이 타당했어여. 모두 전승분위기지만 확실한 패망을 예견하고 최후수단으로 제국을 지키려고 미드웨이라는 마지막 도박을 했던것이져.
그의 최후도 예견된거나 같습니다.
미군 도감청과 암호해독에 레이더망까지 완벽하게 걸리는데 최전선순시는 말도 안되거던여. 게다가 밤도아닌 낮에.
맞아여 전쟁이 길어지면 일본 패망확정이죠
미드웨이 해전 결정의 문제보단, 대전략자체가 병신이었다는게 문제. 계속해서 한판승리로 협상에 끌어낸다하는데, 실제로 미국이 그뒤 2년간 뽑아낸 물량이 일본군 총전력을 압도해버릴정도로 국력차이가 있는데 미국이 뭐하러 협상을 받음?ㅋㅋ 그리고 당시 중국도 점령못하고 빌빌대던 일본인데 미드웨이 해전에 이겨봤자 미국본토는 어차피 건들지도못했음. 연료 장비 병력 모든게 부족함. 그리고 해전당시 전술도 웃긴게 아웃레인지에 특화된 항모기동부대를 선봉에내세워 몸빵시키고, 정작 자기가 이끄는 전함을 비롯한함대주력은 전투에 직접 참여도못하는 최후방에서 놀고 있었음ㅋㅋㅋ 거의 참관 수준.
국가적으로 침략전쟁을 원했으니...핵을 맞았어도 그리 억울해할 필요는 없을듯....
진짜 궁금한건데 일본이 진주만 기습이 아니라 아예 본토상륙 했으면 2차세계대전 결과가 바꼈을까?
결과가 많이 바꼈겠죠 ㅋㅋㅋ
상륙 하자마자 싹 다 전멸하고 기습타격 안 받았던 미해군이 전쟁을 1~2년 더 빨리 끝냈을테니까
상륙할 인원도 없어서 못하고 그럴려면 당시 전 육군 병력 가져다 상륙시켜야됨. 동남아 만주 중국은 어떻하구요?
저시대에 제대로 된 생각을 가진사람이
있긴있었구나
근데 야마모토 이놈도 무능했음
어찌보면 전쟁은 광기의 집합소이고 광기가 모여서 진행이되는데 마무리를 짓는건 역설적이게도 누가더 이성적으로 냉정하게 판단하고 정보를 모을수 있는가에서 판별이남.
진짜 유명한배우 다나왔네..
한자와나오키에 나온 애도 나오네요 ㅋㅋㅋ 오시마이데쓰!
이영화는 어디서 볼수 있나요???
암호문을 보낸걸 미군이 감청해서 해독해서 척살한거지.. 그리곤 미군은 감청한걸 들키지 않기위해 야마모또 살해한 전공을 내세우지 않았어..
7:21 1943년을 42년으로 오타를 내셨네요.
일본군부가 막장이라 띄워진거지 결국 그시대 장군틀에서 못벗어났고 그시대 사고방식그대로였던사람입니다
그시대에 그시대 사고방식이면 난놈인데
조선엔 그시대는 커녕 ㅋㅋ
@@김수한무거북이와멍멍 조선은 이미 임시정부 세워서 미국편에 섰죠. 일본에 뒤지는 능지는 아닐텐데.
@@user-il4ov3br7l ㅋㅋㅋㅋㅋ임시정부 몇명이나 된다고 미국편이래 일본군관학교내 조선인 수보다 적을 듯
@@김수한무거북이와멍멍 그래도 조선에 그런 사람이 있었네? 진주만 꼴아박은 일본 윗대가리랑은 다르게
@@user-il4ov3br7l 일본도 반전파 친미파 있어서 종전까지도 싸웠는데? 아 물론 누구처럼 임시정부 이끌다가 권력밀리니까 북한 넘어간 놈은 못들어봤다 ㅋㅋㅋㅋ임시정부 지들끼리 권력싸움 하다 살인까지 난 것도 못들어봤도 ㅋㅋㅋㅋ
미국과의 전쟁에 돌입하면, 반년에서 일년정도는 승리를 장담하겠으나, 그 이후로는 장담할 수 없다.
-야마모토 이소로쿠
식민지 인프라확충은 수탈효율화를 위한 것
설마 식근론 믿는 흑우들 없제?
문제는 일뽕러들은 식민지 나라를 위해 만들어 놓거 처럼 말함
식민지를 개척하던 강대국들의 전형적인 논리 "철도 놔 주고 뭣도 해주고 이것도 해주고 저것도 해주고..."전형적인 개소리. 자기들이 자원 빼가기 쉽게 하려고 인프라 확충 한것 뿐인데 식민지를 위해 뭔가 대단한 일을 해 준것 마냥 헛소리 찍찍
@@costar6099 있어요, 나베와 국민의힘을 외치는 자민당!!
쓰레기 무단투기하고 빤스런 친게 인프라확충이라고?
최후통첩은 왜 해야하는건가요??? 전쟁은 한순간에 일어나는것인데 (궁금해서 물어봄)
@Ascalon ㅎㅎㅎㅎㅎㅎㅎㅎ 국제적 룰 ㅎㅎㅎㅎㅎㅎㅎㅎㅎ 그것 안지켜도 이기기만 하면 되는것이 전쟁임...선전포고 하고 전쟁하는것 보다 기습으로 전쟁하는것이 유리하다는 뜻이고 대부분 국가는 기습으로 상대를 점령하는것이 더 좋았음...전쟁은 지냐? 이기냐? 의 싸움이지 룰을 정해놓고 싸우지 않습니다
저는 마쓰모토 세이초 작가의 "역로"(일본드라마 스페셜)에서 야쿠쇼 코지 배우를 처음 봤었는데 엄청 반갑네요. 더불어 타마키 히로시 배우도요^^
전쟁에 대해 객관적이지 않게 서술하는 등 야마모토 이소로쿠라는 인물에 대해 전쟁영웅으로 미화하는 영화가 아닌지, 더불어 일본내 흥행에 성공했는지 궁금해요.
죄송하지만 "일본패망 하루전"(2016) 영화도 리뷰해주시면 안될까요?? ♥♥
15억엔 수익으로 제작비 대비 그렇게 흥행은 못했던 걸로 기억합니다. CG와 실사처리가 약간 공중에 붕 뜬한 이질감과 인물에 대한 감정이입이 다소 부족해 영화평도 썩 좋지 않았습니다.
"일본패망 하루전"은 이전 영상 "일본의 가장 긴 하루"와 내용이 겹쳐서 어떨지 모르겠습니다만 비교컨텐츠로 계획은 하고 있습니다.
@@cinemory 사랑합니다♥♥
야마모토 이소로쿠는 미국 유학을 다녀왔기에 얘들은 풀업플토를 저그마냥 찍어낼 수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 말대로 미국은 고기 통조림을 참호 밑바닥에 깔고 항공모함을 2주에 하나씩 찍어냈다.
2주에 하나씩이래 ㅋㅋㅋㅋㅋㅋㅋㅋ 와
ㅋㅋㅋㅋ 3:50 민주주의 시대니까 ㅋㅋㅋㅋ 그래서 니네는 민주주의 잘 돼냐? 그리고 누가 군대 작전하는데 민주주의를 반영해? 위에서 작전짠대로 하라면 하는거지. 나중에는 좀 잘 못 가긴하지만 로마시대에는 전쟁나면 권력을 한 사람한테 몰아준 이유를 모르나? 전쟁에서 이 사람 옳다 싶으면 그 사람 밀어줘야지
괜히 딴지 걸자면...
민주주의가 군사적 결정에 영향을 주었다는 것 보다도
국가가, 천황이 정한 일에는 토달수 없었던 경직적 시대를 일컬는 것인 듯합니다!
항상 잘보고갑니다. 단순히 영화소개가 아닌 역사적배경까지 잘설명해주셔서 유익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