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준조선과 위만조선은 하북성 노룡현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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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Опубликовано: 24 сен 2024
  • 백이 숙제의 고향 고죽은 기자가 봉해진 후 산융 비자의 땅이었다가 진나라에 의해 요서군으로 불리다 이후 연나라 장수 진개가 동호(남은 무리가 오환산(=승덕시)을 지킨다.)태행산맥 북쪽의 서(산서)동(하북) 1000리를 빼앗으면서 조선까지 공격한다. 다시 기자의 후손 기준이 차지하고 있던차에, 연인 위만이 찬탈하여 손자 우거에 이른다.
    이후 한무제 유철이 우거조선을 정벌한 후 한3군을 두니 낙랑, 현토, 대방으로 고죽국은 비여현으로 불린다.
    이후 고구리가 강역을 회복해 나가며 A.D.55년 요서10성을 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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