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읽는 남자
역사 읽는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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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북성 북부 지역은 고려 해주다
차 한잔 정도 후원에 뜻이 있으신 분들은 채널 계좌를 만들어 두었습니다.
후원금은 채널의 질을 높이는 부분과 사회 약자를 위한 다양한 기부 등에 쓰여질 예정입니다.
농협, 351-1344-1770-33, 역사 읽는 남자
서울대 규장각이 보관하고 있는 명나라 때의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와
국립중앙박물관이 보관하고 있는 청나라 때의 『대청광여도』에 의하면
고죽국은 현재의 하북성 진황도시 노룡현 지역에 위치한 것으로 표기해 놓았다.
그런데 범양 후에 보정으로 불렸던 '노룡'이 당나라 현종 이융기 때 양귀비로 인한 정사를 돌보지 않음으로 인해 일어나 연왕(燕王)을 칭한 안록산 사사명들의 반란이 763년 진압된 이후 현재의 하북성 진황도시 노룡현으로 옮겨진다.
이때 연나라 수도인 계도 같이 수백리 옮겨졌다.
또 현재의 하북성 진황도시 갈석산에는 역사서에 의할 때 〔대걸석산〕의 이름으로 있었다. 갈석산은 매년 16억톤의 토사를 실어나르는 황하강이 9갈래로 나뉘는 9하(九河)를 형성하며 다시 하나로 합쳐지는 역하(易河)가 토사가 메꿔지며 물줄기가 이동해 갈때마다 비석처럼 생긴 산에 갈석이란 이름이 붙여진다.
이를 확인해준 고지도가 『기주협우갈석도』와 『우공소재수산준천지도』다.
이들 지도에서의 갈석의 위치는 현재의 하북성과 산동성 사이 지역에 위치한 산동성 갈석산현이다.
기록과 지도, 황하의 10000여년간의 변천등을 추적하면 처음 9하와 역하의 이동로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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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북성 북경은 고려, 산동성 청주·등주·녕해는 신라·조선의 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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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 한잔 정도 후원에 뜻이 있으신 분들은 채널 계좌를 만들어 두었습니다. 후원금은 채널의 질을 높이는 부분과 사회 약자를 위한 다양한 기부 등에 쓰여질 예정입니다. 농협, 351-1344-1770-33, 역사 읽는 남자 유교의 입장을 벗어나 객관적인 역사적 시점을 가지는 것이 가능했을 불교도 일연(一然) 전견명(全見明)의 『삼국유사』 권 제1 「기이(紀異)」 【고조선(古朝鮮)】 《왕검조선(王儉朝鮮)》조 에서 "당의 『배구전(裵矩傳)』에 이르기를 “고려(高麗)는 본시 고죽국(孤竹國) 지금 해주(海州)인데 주(周)가 기자(箕子)를 조선에 봉(영지를 줬다는 뜻)했다."고 하였는데, 서울대 규장각이 소장하고 있는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 및 국립중앙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대청광여도』에서는 노룡·고죽의 위치가 ...
고조선 강역에 관한 명나라 신유학자 기록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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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조선 강역에 관한 명나라 신유학자 기록들 명(1368~1644)나라 한림학사 및 예부좌시랑을 역임한 유정지(1409~1469)의 『태재집(呆齋集)』을 인용한 『흠정고금도서집성방여휘편직방전』 제45권 「목록」 『欽定古今圖書集成方輿彙編職方典』 第四十五卷 「目錄」 【순천부부잡록6】 《직방전》제45권 【順天府部雜錄六】 《職方典》第四十五卷 출처: zh.wikisource.org/wiki/欽定古今圖書集成/方輿彙編/職方典/第0045卷 기자·위만 조선 수도지인 노룡과 갈석산은 당나라 때 수백리 옮겨졌다.
12 3 윤석열 내란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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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를 하다 보니 뉴스매체를 통해 매일 새로운 사실보도가 계속해서 나오고 있어 정리의 성과도 없이 무한대로 늘어지며 시간만 뺏기고 원래 역사 자료로 준비됐던 사료들을 다루는 것이 점점 뒤로 미뤄지며 기억에서 잊혀져 나가고 있어 부득이 역사 연구의 진도를 나가기 위한 결정으로 만들어진 내용입니다. 이참에 장르를 현대사로 바꿀까도 고민해 봤습니다만, 능력이 출중한 채널들이 많으니 그를 이용하심이 더 나을 것입니다. 또 효율적으로 발달돼 있는 매체들이 많으니 그를 이용하심이 시간 활용에 더 유용할 것이라 생각됩니다. 자세한 경과는 다음 매체 및 다양한 매체를 참고하실 것을 권해드립니다. KBS, MBC, SBS, YTN, JTBC, 뉴스타파, 겸손은힘들다 다음 순서로 검색하시면 비교적 일목 요연하게 상황을 ...
고조선 강역에 관한 청나라 고증학자 기록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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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흠정 사고전서』 청(清)나라 건륭(乾隆, 6대 황제 재위:1735~1796)제 때 만들어진 총서(叢書) 화재 등으로 현존하는 것 : 3,461종 79,309권 서목 만을 기록한 것 : 6,790종 93,551권 그 방대한 서책이 증언하는 고조선의 강역에 관한 실마리는 무엇인가?
고조선 강역에 관한 송나라 신유학자 기록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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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기』에 이르길:「조선 장건주에 이르길: 史記曰: 「朝鮮 張晏注曰: 『조선은 습수·열수·선수가 있어, 열수에서 합한다. 『朝鮮有 濕水·洌水·汕水, 合爲 洌水. 의심컨대 낙랑·조선, 이름은 이에서 취했다.』」. 疑樂浪·朝鮮, 取名於此.』」. 『태평어람』권780「4이부」《동이》〈조선〉 『太平御覽』卷七百八十「四夷部」《東夷》〈朝鮮〉
고조선 강역에 관한 한당시대 유학자 기록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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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비-조예-조방-조모-조환 등 조씨의 위(A.D.220~265)나라 때 유주자사 관구검이 고구리 동천왕을 환도성에서 몰아내고 왕기에게 명해 추격하게 했다. 왕기는 숙신의 남쪽 경계에서 그 공적을 석비에 새겼는데 그 『관구검공적비』 탁본의 일부가 집안시 도로공사중에 1906년 발견됐다고 한다. 이 때문에 집안시 판석령(板石嶺) 탁본 발견지가 숙신의 남쪽 경계로 확정돼 버렸는데, 문제는 석비 전체는 공개된 적이 없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구글어스를 통해 판석령[板石嶺]을 한자로 검색해 보니 하북성 승덕[承德,청더]시 동남쪽, 하북성 진황도[秦皇島,친황다오]시 북쪽 산 기슭에 위치한 'Banshiling 젠창 현 후루다오 시 중국 125217' 이 검색되었다. 즉 숙신의 남쪽 경계가 이 지점이다. 진나라와 ...
구리국 천자 치우는 계명현 위만조선은 노룡현 천리장성은 요동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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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마천 『사기』권1 「오제본기」제1이 기록하고 있는 구리국(九黎國) 천자(天子) 치우(蚩尤)가 살던 곳의 위치는 『대청광여도』가 상곡(上谷:하북성(河北省) 장가구시(张家口市) 선화현(宣化县) 동쪽, 장안봉 또는 장안령 서쪽인 독석관(獨石關) 서쪽, 선부진(宣府鎭) 동북, 계명(鷄鳴) 지역임을 확인하고 있다. 또 황제 공손헌원이 살던 곳에서 벌어진 탁록 전투 장소는 정안(定安)의 동쪽, 보안(保安)의 서남쪽, 자형관(紫刑關)의 서북쪽, 탁록(涿鹿)산의 서쪽 탁록현[涿鹿县,줘루현]에 있다. 『서한군국도(西漢郡國圖)』(ko.m.wikipedia.org/wiki/파일:서한군국도.jpg) 『서진군국도(西晉郡國圖)』(ko.m.wikipedia.org/wiki/파일:서진군국도.jpg) 『우적도(禹跡圖)』(1136....
세종 이도는 조선의 국경이 어딘지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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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4대왕 세종 이도는 즉위한지 21년 7월이 지나도록 고리 조선의 국경이 어딘지도 몰랐다. 이 때문에 대신 김종서를 시켜 공험진과 선춘령이 어딘지 사람을 시켜 알아 올 수 있는지를 물었다. 명태조 홍무제 주원장은 『명사』 「태조고황제실록」 홍무(洪武) 21년(A.D.1388) 4월에 우왕이 표문을 올려 말하기를, 철령(鐵嶺)의 땅은 실로 그들이 대대로 지켜온 곳이라고 하면서 예전대로 하게 해줄 것을 청하였다. 황제가 말하기를, “고려는 과거에 압록강을 경계로 삼았는데, 이제 철령이라고 꾸며 말하니 거짓임이 분명하다. 짐의 말로써 그들을 깨우쳐 그들로 하여금 본분을 지키면서 흔단을 일으키지 말라고 하라.”라고 하였다. 洪武二十一年四月, 禑表言, 鐵嶺之地實其世守, 乞仍舊便. 帝曰, “高麗舊以鴨綠江爲界,...
이성계 조부와 부의 무덤은 흑룡강성 목단강시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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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건적 출신 명태조 홍무제 주원장은 봉집현에 철령위를 설치한다. 봉집현의 위치는 다음과 같다. 봉집현【요 집주 회원군 봉집현, 본래 발해 옛 현. 혼하가 있다.】 奉集【遼集州懷遠軍奉集縣, 本渤海舊縣. 有渾河.】 『금사』권24 「지」5 【지리】상 『金史』卷二十四 「志」五 【地理】上 혼하는 요하의 지류로 심양시와 요양시 서남쪽, 안산시의 서쪽에 위치한다. 한편 『조선왕조태조실록』 즉 『태종공정대왕실록(太宗恭定大王實錄)』 7권, 【태종】 4년 5월 19일 기미 4번째기사 A.D.1404년 명 영락[永樂, 제3대 황제 주체(朱棣)] 2년에 따르면 이성계의 조부 이행리와 부친인 이자춘의 무덤은 함주에 있는데 공험진과 함께 함주 즉 여진이 합란으로 이름지은 지역의 위치가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에 위치가 표기되어 ...
명태조 주원장은 고리 1000리 장성을 요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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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D. 1387년 홍건적 출신 명태조 홍무제 주원장은 봉집현[혼하(渾河)가 있다.『금사』]에 철령위를 설치하고 삼만위 개원위로 군사를 부려 개원, 철령, 심양, 무순, 요양까지 위(보호장벽 또는 군대막사)를 연결하여 완성하고 '만주평야와 요녕, 길림, 흑룡강의 산로를 차단(연산파절)'한다. 주원장의 철령위 통보에 고리 조정은 정3품 밀직제학인 재상 박의중을 파견하고 황제의 철령위 논의 중지를 이끌어 낸다. 그러나 위(보호장벽)는 완성되고 A.D.1359년 1차, A.D.1361년 2차 홍건적의 20만 군세 중 10만을 죽이고 10만을 쫓아내며 막아낸 원수 6인인 정세운(鄭世雲)·이방실(李芳實)·안우(安佑)·김득배(金得培) 중 1인이었던 최영은 홍건적의 난을 정리하며 동료4명을 잃었고 원수 6인 중 최...
1000리 장성은 만주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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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리 천리장성은 만주에 있고, 만주 천리장성 동쪽 끝 부분인 개원(開元) 남쪽, 무순(撫順) 북쪽에 철령[鐵嶺, 철령 이북을 관북(關北)이라 한다.]이 있다. 의주는 압록강 이남과 요녕성 소릉하 북쪽에 각기 2곳이 있었다. 중둔은 하북성 진황도시 노룡현 남쪽과 요녕성 광녕 북쪽 각기 2곳이 있었다. 요서는 산서성 대동시, 하북성 진황도시 노룡현, 요녕성 대릉하 동쪽 3곳이 있었다. 『삼국사』 권20 「고구리본기」제8 【영양왕】 《수양제 하소문》조에서 한(무제 유철)·위(관구검)가 동이(東夷)를 쳐죽였으나 고구리의 무리가 뿌리를 내려 수풀이 우거지게 되었는데 그 위치가 "발(발해군:하북성 창주시 인접 서쪽 또는 서남쪽, 위치확인 『서한군국도』, 『서진군국도』, 『대청광여도』)·갈(갈석산:하북성 진황도시 ...
요서는 3곳이 존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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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행산맥[단단대령, 900년전(A.D.1136년) 북송 때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석비에 새긴 지도인 우적도 판본에는 태행산맥 곳곳을 양두산(羊頭山)이라고 표기하고 하남성에 위치한 최남단 산만 태행산(太行山)이라 표기했다]을 기준으로 태행산맥 최북단의 서쪽지역인 산서성 대동시, 태행산맥 최북단의 남쪽지역인 하북성 진황도시 노룡현, 태행산맥 최북단의 동쪽지역인 요녕성 대릉하 동쪽 을 대한민국 국립중앙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대청광여도』에는 각기 요서라 표기헀다.
기준조선과 위만조선은 하북성 노룡현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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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이 숙제의 고향 고죽은 기자가 봉해진 후 산융 비자의 땅이었다가 진나라에 의해 요서군으로 불리다 이후 연나라 장수 진개가 동호(남은 무리가 오환산(=승덕시)을 지킨다.)태행산맥 북쪽의 서(산서)동(하북) 1000리를 빼앗으면서 조선까지 공격한다. 다시 기자의 후손 기준이 차지하고 있던차에, 연인 위만이 찬탈하여 손자 우거에 이른다. 이후 한무제 유철이 우거조선을 정벌한 후 한3군을 두니 낙랑, 현토, 대방으로 고죽국은 비여현으로 불린다. 이후 고구리가 강역을 회복해 나가며 A.D.55년 요서10성을 쌓는다.
옛 중국 국경선인 장성 남쪽의 유주8군에 대한 『한서』권28하「지리지」하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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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군 18현은 현재의 대동(大同)시를 중심으로 서로 대(代)현과 상간(桑乾)강, 회인(怀仁)현, 동으로 양원현, 위주, 광창현, 남으로 항산(또는 상산) 일대의 지역이다. 또 『대청광여도』에는 산서성 대동[다통]시(후위 도읍지)에 요서(遼西)라는 지역 명칭도 붙이고 있다. 『대청광여도』에서 요서(遼西)라는 지명을 명기한 지역은 총 3곳으로 현재의 태행산맥 서쪽지역인 산서(山西)성 대동시, 태행산맥 동북쪽 끝자락의 남쪽 지역인 하북(河北)성 진황도시 노룡현(요서군) 동쪽 『대명여지도』가 명기한 현재의 천안시와 무녕현 사이지역인 우북평군에 요서(遼西)라는 지명을 명기하고, 태행산맥 동쪽이자 요녕성 대릉하 동쪽에 요서(遼西)라는 지명을 명기하고 있다. A.D.55년 『삼국사』권15 「고구리본기」 제3 【태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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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리 9번의 수도이동 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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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리는 이미 장성을 넘어서 북평 어양 상곡 태원을 공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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Комментарии

  • @곰발바닥-h6u
    @곰발바닥-h6u 4 часа назад

    요서가 산서에 도착하기전 출발지의 요서. 元 ~ 요의 대부분,이서북편,이남남편,요동의 일부(홍복원) (초중기) 北元 ~ 요의 절반,이서북편. ( 말기) 明初 20년~요의 절반,이남남편,요동의 접경 (明初 20년)

  • @곰발바닥-h6u
    @곰발바닥-h6u 4 часа назад

    등주,래주,빈주,제주가 산동에 도착 (대명여지도 초기본,초중본).

  • @곰발바닥-h6u
    @곰발바닥-h6u 4 часа назад

    요서,요주,태원,大同이 산서에 도착. 요서와 요동이, 산서와 산동에 도착하였음에도 (대명여지도 초중본,중초본) 출발지는 중초본에서 삭제. 산해위 주변으로 한번더 이동.

  • @곰발바닥-h6u
    @곰발바닥-h6u 4 часа назад

    북평(大都)의 도착. (대명여지도 초기본,초중본,중초본) 북방지역의 상실. 上都의 도착 (초중본) (흉노,거란,금,여진,원나라의 과거사가 북방에 도착하는 토대가 됨)

  • @곰발바닥-h6u
    @곰발바닥-h6u 4 часа назад

    낙수와 낙양이 하남에 도착. (대명여지도 중중기본,중중초본) 중부지역의 상실 ( 원의 과거사가 중부에 도착 ) 회수의 도착 (중중초본) 황하가 大河에 도착 (중초본) 장강이 大江에 도착. (대명여지도 중중기본) 남방지역의 상실 (원사와 명초기 20년사가 고려의 남방에 도착) 출발지의 삭제는 중중초본

  • @monse8798
    @monse8798 4 часа назад

    👍

  • @eagles2116
    @eagles2116 9 часов назад

    중원을 차지한 역대 왕조들의 사서마다 한민족의 강성함을 서술하고 있는데, 이 사실들을 일반인들이 쉽게 이해 할 수 있도록 할 수 없을까요?

    • @historyreadman
      @historyreadman 8 часов назад

      @@eagles2116 댓글 감사합니다. 기록과 지도, 석비 자료로 모두가 납득할 수 있도록 하는데 집중하고 있어, 재미와 위트 넘치는 멘트나 센스 넘치는 구성이라는 요소가 많이 부족할 것입니다. 송구스럽게 생각합니다. 기록으로만 접하던 자료들을 대중적으로 알려지지 않고, 교과서에도 거의 실려 있지 않으며, 국내 중앙박물관이나 대학, 국회도서관들에도 없는 미국 의회도서관이나 중국 지역박물관들에나 있는 또 일본 고지도상에서 마니아층에서나 다루던 고지도들을 접해 설명하려니 설명이 많이 딱딱해졌습니다. 기초적인 기록 전달 과정이 끝나고 나면 설명 위주로 팍팍 진도가 나가게 될 텐데 그때는 조금은 나아질 것으로 기대합니다. 이런 기록 자료들을 접한 더 젊은 세대가 관심을 보인다면 그들의 끼와 재치로 더 많은 영상자료들이 나오길 기대합니다. 그 전까지 중간 전달자로서 좀 더 쉽고 젊은층의 흥미를 끌 수 있도록 재미라는 요소를 가미해 나갈 수 있도록 [역사 읽는 남자] 채널이 더 정진하겠습니다. 다시 한번 댓글 감사합니다.

    • @eagles2116
      @eagles2116 8 часов назад

      소중한 연구자료가 구석에 쌓여 있다가 사라지면 너무 아깝다고 생각 합니다 대중화에 숙달된 컨텐츠 크리에이트 집단을 찾아 보시고. 그들에게 님의 연구 실적.취지를 설득해서 공동 작업을 하시면 좋겠습니다 일단 자료 정리 발간 계획 자료 변집 져널 선택 발표.발간 커뮤니티 형성

    • @historyreadman
      @historyreadman 5 часов назад

      @@eagles2116 [역사 읽는 남자] 채널이 만든 영상자료가 소중하다 생각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지금 당장은 다른 뛰어난 분들과 함께 작업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 간간히 영상자료를 올리는 정도입니다. 말씀 하신 작업방식으로 작업해 나갈 수 있도록 길을 찾아보도록 하겠습니다. 말씀 감사합니다!

  • @라마스떼-p8z
    @라마스떼-p8z 11 дней назад

    정신승리?

  • @학림-y8u
    @학림-y8u 16 дней назад

    적극 공감 지지합니다. 왜곡된 역사 청산, 진실의 역사광복 필요.

    • @historyreadman
      @historyreadman 16 дней назад

      댓글 감사합니다. 아직 아쉬운 단계 입니다만 차근차근 역사 지평을 넓혀 나가도록 하겠습니다. 다시 한번 댓글 감사합니다.

  • @historyreadman
    @historyreadman 18 дней назад

    29일 전남 무안국제공항에서 발생한 제주항공 여객기 충돌 사고로 돌아가신 분들의 명복을 빕니다. 혹시라도 동영상을 보다가 트라우마가 생기지 않도록 댓글로만 남깁니다. 어떤 위로도 말씀도 도움이 되지 않겠지만, 유가족 분들에게도 위로의 말씀을 올립니다. 다시는 이와 같은 일이 일어나지 않길 기원합니다!

  • @nocentman
    @nocentman 25 дней назад

    연구비가 안나오니 조사 안한다는 소리..

    • @historyreadman
      @historyreadman 25 дней назад

      댓글 감사합니다. 여러가지 이유가 있어서 그랬을 꺼라 봅니다. 연구하는 입장에서는 연구할게 많으면 오히려 더 좋지 않을까 싶습니다. 연구 스킬이 있는 분들이 25사 전체를 연구하지 않겠다면 [역사 읽는 남자] 채널이 「동이전」을 중심으로 한번 연구해 볼까 합니다. 다시 한번 댓글 감사합니다.

  • @gatnight87able
    @gatnight87able 27 дней назад

    역사적으로도 수백년 간 유지됐던 나라들이 중국엔 거의 없음 100년 조차 2개? 삼국이 중국의 평원 제일 비옥한 곳을 통치했기에 그 역사가 유지됐고 전쟁에 동원된 인구 성의 갯수 면적 영토 그밖의 여러가지 일식 지명 등을 통해 증거가 수두룩 빽뺵 ....문화 대 혁명을 한 이유는 그들의 역사가 아닌 한국의 역사이였기 때문 장제스가 가져가서 숨긴 수많은 보물 중에 우리 역사가 숨겨있다. 일본에도 남아있고 조선과 명은 우리 역사를 왜곡했다

    • @historyreadman
      @historyreadman 23 дня назад

      댓글 감사합니다. 연구를 하다보니 역사 왜곡은 당나라 때부터 시작된 걸로 보입니다. 『중국고금지명대사전』 및 『흠정사고전서방여휘편직방전』 목록45, 『흠정고금도서집성』 「상서지리금석」등의 기록들을 종합하면 당나라 현종 이융기 때에 일어난 안사의 난 이후 정흥현 남쪽 40리에 있던 범양현에 있던 노룡이 현재의 하북성 진황도시 노룡으로 옮겨졌다는 기록이 발견됐습니다. 가장 최근 동영상에 그 내용이 있으니 확인해 보시기 바랍니다. 다시 한번 댓글 감사합니다.

  • @범희이-b1k
    @범희이-b1k 27 дней назад

    이미 10년 전에 다 팔아먹었다는거네요 ㄷㄷ

    • @historyreadman
      @historyreadman 27 дней назад

      댓글 감사합니다. 수천~수백년전의 일을 후대 사람들이 어떻게 다 알겠습니까. 그럼에도 [역사 읽는 남자] 채널이 끝까지 현재의 작업 방향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부여-옥저-예맥-진한-변한-왜의 위치 중심지들이 동해가 아닌 서해라는 25사에서 명확히 드러나는 연(하북)·제(산동)사이라는 예맥의 고정된 위치 때문입니다. 연구자들이 이 부분을 검토했을 것인데, 출토되는 유물들로 인해 혼란이 벌어졌다고 해도 그간 검토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부분은 아쉽고, 안타깝고, 이상한 정도를 넘어, 왜 그런지 알아보고, 적극적으로 교정해야 할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다시 한번 댓글 감사합니다.

  • @historyreadman
    @historyreadman Месяц назад

    정리를 하다 보니 뉴스매체를 통해 매일 새로운 사실보도가 계속해서 나오고 있어 정리의 성과도 없이 무한대로 늘어지며 시간만 뺏기고 원래 역사 자료로 준비됐던 사료들을 다루는 것이 점점 뒤로 미뤄지며 기억에서 잊혀져 나가고 있어 부득이 역사 연구의 진도를 나가기 위한 결정으로 만들어진 내용입니다. 이참에 장르를 현대사로 바꿀까도 고민해 봤습니다만, 능력이 출중한 채널들이 많으니 그를 이용하심이 더 나을 것입니다. 또 효율적으로 발달돼 있는 매체들이 많으니 그를 이용하심이 시간 활용에 더 유용할 것이라 생각됩니다. 자세한 경과는 다음 매체 및 다양한 매체를 참고하실 것을 권해드립니다. KBS, MBC, SBS, YTN, JTBC, 뉴스타파, 겸손은힘들다 다음 순서로 검색하시면 비교적 일목 요연하게 상황을 파악할 수 있습니다. 1. 비상계엄 선포 12.3 2. 시민들의 항의 12.3 3. 계엄 군인들의 국회 선거관리위원회 진입 12.3~4 4. 국회의원 190명 만장일치 비상계엄 해제 결의 12.4 5. 비상계엄 해제 선포 12.4 6. 국회 국방위 전체회의 12.5~12.10 7. 계엄에 동원된 사령관들 양심선언 8. 1차 대통령 탄핵소추안 표결 12.7. 불성립 선언(재적 200명에서 195명 참여) 9. 국회 과방위 전체회의 12.13 10. 2차 대통령 탄핵소추안 표결 12.14. 가결(찬성 204, 반대 85, 기권3, 무효8) 스크립트

  • @bangbang-if3ey
    @bangbang-if3ey Месяц назад

    팽오가 뚫어낸 조선, 연제지간이 원래 동이족이 차지하고 있었다는 것이죠. 우리 역사의 고토는 중국대륙에 걸쳐 있었던 것이 확실합니다.

    • @historyreadman
      @historyreadman Месяц назад

      @@bangbang-if3ey 댓글 감사합니다. 다음 준비하고 있는 자료들이 그 핵심에 근접한 이야기들인데 탄핵 정국을 정리하다 보니 정리할 게 너무 많고 늘어지네요. 이미 기존 언론들이 정리해 놓은것도 많고 겸손은힘들다 같은 언론사도 추적도 잘 하고 정리도 너무너무 잘해서, 정작 영상을 정리 해놓고 보니 너무 부끄러운 수준이네요. 또 그에 대한 부분만 정리하다보니 이야기 하려던것이 점점 늘어져서 본래 하던일이나 계속 할까 생각 중이었습니다. 다시 한번 댓글 주셔서 감사합니다.

  • @BackpacKim
    @BackpacKim Месяц назад

    고조선은 중앙아시아지역에 있었다고 봐야합니다. 조선의 서울(한양)은 중국의 시안(장안)이고 태백산은 한텡그리산입니다. 압록강은 시안의 서북 1450리에 있겠네요. 전라도는 광저우와 복주이고 중국의 호수지역 밑지방이라 호남지방입니다. 서울(시안)위에는 인천도 있습니다. 시안의 동쪽은 안동이 있습니다. 하멜표류기에도 한양 밑에 남한산성이 있고 남한산의 높이는 해발 2마일(3200미터)이고 3년간 재난에 대비할 식량을 비축해 놓았다고 합니다.

    • @historyreadman
      @historyreadman Месяц назад

      @@BackpacKim 댓글 감사합니다. 인상적인 이야기 입니다. 그런데 서남동 바다는 어떻게 될까요? 디시 한번 댓글 감사합니다!

  • @father-v9d
    @father-v9d Месяц назад

    북경은 고구려 평양성 고려의 서경입니다 중공의 동부대륙 우리민족의 발상지 고구려 백제 가야 신라 왜는. 중공의 동남부 해안가

  • @father-v9d
    @father-v9d Месяц назад

    신라와 당의 전쟁은 중공의 동부대륙 양자강 유역 주변

  • @곰발바닥-h6u
    @곰발바닥-h6u 2 месяца назад

    발해의 접경이 산동에 도착 출발지를 중심으로 (대명여지도 후대본, 대만군사지도)

  • @곰발바닥-h6u
    @곰발바닥-h6u 2 месяца назад

    진령의 도착과 천문령의 삭제 (초중본, 중중기본) 뼈대의 도착

  • @곰발바닥-h6u
    @곰발바닥-h6u 2 месяца назад

    진령의 도착과 천문령의 삭제 (초중본, 중중기본) 뼈대의 도착

  • @sung-weoncho3829
    @sung-weoncho3829 2 месяца назад

    판석령의 위치가 대청강여도에 근거한 것이 이의 제기의 근거가 될 수 있겠죠 대청강여도는 명나라 때 만든 한나라 지도에 근거하는데, 명나라의 지도 위치는 원사의 지도위치가 안맞는 것인데, 그 대표적인 적인 동녕부/동녕로에 해당한다 하겠습니다. 즉 처음부터 다시 지도 공부를 해서 한나라 당시의 위치와 명나라 당시의 위치가 어떻게 바뀌었는지 분석해보는 것이 더 호소력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 @historyreadman
      @historyreadman 2 месяца назад

      댓글 감사합니다. 맞는 말입니다. 지금 고금의 기록들을 다시 공부하면서 다시 깨달은 바는 노룡600리, 계900리, 발해700리, 갈석1000리 산동에서 옮겨왔네요. 관련 기록들이 쌓이고 있어 다시 정리 중입니다. 감사합니다.

  • @jkim949
    @jkim949 2 месяца назад

    아무의미없다. 한국의 고대국가는 진국이라 삼한으로 , 고조선,고구려,발해,금나라,청나라는 우리역사가 아님.

    • @historyreadman
      @historyreadman 2 месяца назад

      댓글 감사합니다. 그런데 25사 기록들을 보면 중국[中國, 내륙] 국가들이 만이(蠻夷) 또는 삼한(三韓)이라 부른 국가들의 위치는 산동성 제남시에 마한(馬韓), 제남시 동쪽에 진한(辰韓), 그 남쪽 산동성 쪽에 변한(弁韓) 입니다. 다시 한번 댓글 감사합니다.

  • @예사랑나무
    @예사랑나무 2 месяца назад

    사마천은 우리의 어떤 역사서를 보고 기록했 을까? 그리고 그 사서들 은 다 어디 갔을까? 사마천은 이름 처럼 사기꾼임.

  • @princ2024
    @princ2024 2 месяца назад

    说再多也改变不了朝鲜半岛属于箕子朝鲜、卫满朝鲜、汉四郡的历史

    • @historyreadman
      @historyreadman 2 месяца назад

      25사에 적힌 역사를 바꾸고 싶어서 동북공정을 시작했겠지만 뜻대로 할 수 없습니다. 역대 중국 정권이 쓴 역사서엔 그렇게 적혀 있지 않습니다.

  • @hanhan4980
    @hanhan4980 2 месяца назад

    지금은 조선왕조실록 중국사서에 써놓앗는데도 모릅니다 조선왕조실록 원문 복사해서 검색해 보세요 조선은 국토의 넓이가 동서로 2천 리이고 남북으로 4천 리입니다.

    • @historyreadman
      @historyreadman 2 месяца назад

      댓글 감사합니다. 안그래도 앞으로 할 이야기들이 많습니다. ^-^ 점차 차근차근 하나씩 풀어 놓도록 하겠습니다. 다시 한번 댓글 감사합니다~!

  • @곰발바닥-h6u
    @곰발바닥-h6u 3 месяца назад

    1388년 음력 7월12일 명이 북평에 행도를 설치 (비로소 도착하였음을 알림). 철령위에 대한 마지막 보고가 있은지 반년만에, 고려가 여기까지 밀림. 음력 7월 22일 명이 산해위를 설치 (새로운 요서 요동의 시작) 새로운 만주의 시작. 새로운 만주로까지 밀림. 음력 9월 15일 8개 점령지에 대한 분봉 (秦王,晉王,周王,楚王,齊王,湘王,魯王,潭王,) ~관련없는 곳에 분봉. 2년후 한반도로 남하. 분봉된 8개 지역을 점령하기 1년전의 요서 요동이 그 당시의 요서 요동. 우왕이 몽진. 산해위가 설치되면서 새로운 만주에 고립됨. 2년후 공양왕이 한반도로 남하. 2년후 조선의 시작.

  • @곰발바닥-h6u
    @곰발바닥-h6u 3 месяца назад

    북평(大都)의 도착 (대명여지도 초기본,초중본,중초본) 上都의 도착 (중초본) 북방지역의 상실 (중도지, 도착지 전체구간) 출하점전투~ 현재의 내외몽골에 도착 (대명여지도 중기본)

    • @historyreadman
      @historyreadman 3 месяца назад

      댓글 감사합니다. 좋은 의견 감사합니다.

  • @곰발바닥-h6u
    @곰발바닥-h6u 3 месяца назад

    13-7 남송의 수도~ 출발지를 삭제하지 않고 도착. (출발지~대명여지도 초기본 초중본, 도착지~중초본 이후본). 북송의 수도~ 출발지를 삭제하고 도착. (중기본) 명나라 수도~ 1388년까지의 수도 지명 삭제.(중중기본) 웅진~ 과 주변의 관련 지명을 모두 삭제.(중초본) 낙수와 낙양이 하남에 도착. (대명여지도 중중기본,중중초본)

  • @simhopp
    @simhopp 3 месяца назад

    대명일통지 에, 주원장이 스스로 자기 조상이 고려출신 이라고 했다는데, 이거 근거 있는 소린가요?

    • @historyreadman
      @historyreadman 3 месяца назад

      댓글 감사합니다. 관련 이야기는 이번 큰 주제를 모두 다룬 다음, 다음 다음 편의 큰 주제로 다룰 예정으로 있습니다. 궁금하시겠지만 기다려 주셔야 겠습니다. 다시 한번 댓글 감사합니다.

    • @historyreadman
      @historyreadman 2 месяца назад

      답변이 늦어 죄송합니다. 다른 큰 주제편으로 다루려고 했으나 내용물을 확인할 방법이 없습니다. 전원철 박사가 룹상단잔의 『황금보강(黃金寶綱)』에서 주원장이 여진인, 주원장의 『명사』에서는 4번째 아들로 기록된 주체가 주원장의 아들인 주표의 아들이며 원나라 마지막 황제의 비의 아들로 기록되었다고 주장했는데, 현재 중국인들은 주체의 생모가 고리(高麗)인으로 파악하고 있다고 합니다. 따라서 룹상단잔이 썼다는 『황금보강(黃金寶綱)』의 원문을 확인해야 하는데 번역서를 비롯해서 원문을 확인할 방법이 없습니다. 일단은 원문을 확보할때까지 보류해야 할 듯 합니다. 감사합니다.

    • @simhopp
      @simhopp 2 месяца назад

      @@historyreadman 대명일통지 는 원문을 극립중앙도서관 사이트 가면 볼수 있는데, 가입해야 해서.

  • @곰발바닥-h6u
    @곰발바닥-h6u 3 месяца назад

    우적도 발견본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음. 판본 (1차 교정본) ~ 지도 제작의 취지에 어긋남을 알림. (요수의 지명만 넣고, 물길을 그리지 않음) ~양심있는 학자의 목숨을 건 센스. 보급본 (2차 교정본) ~ 벽란과 같은 뜻의 지명을 삭제함으로써 개경의 위치를 감추다.

  • @곰발바닥-h6u
    @곰발바닥-h6u 3 месяца назад

    추존사 사이에 진실이 조금씩 묻어 있습니다.

  • @곰발바닥-h6u
    @곰발바닥-h6u 3 месяца назад

    황하가 大河에 도착 (중초본) 大江의 삭제와 장강의 시작. ~ 장강이 도착하였으나, 편의상 양자강으로. (출발지 장강의 삭제는 중중초본) (대명여지도 중중기본)

    • @historyreadman
      @historyreadman 3 месяца назад

      댓글 감사합니다. 좋은 의견 감사합니다.

  • @노가리-m8o
    @노가리-m8o 3 месяца назад

    아무리 생각해도 육갑 이성계는 곱게 봐줄 수가 없다. 그에 따른 똘마니 송나라 주희를 추종한 놈들.

    • @historyreadman
      @historyreadman 3 месяца назад

      댓글 감사합니다. 좋은 하루 되시기 바랍니다.

  • @1101angeLCats
    @1101angeLCats 3 месяца назад

    헛소리도 정도껏 합시다. 이렇게 역사로 정신승리 해봤자 남는 것은 공허한 자위질과 중국의 동북공정과 다를 바 없는 후대의 손가락질 뿐입니다. 그 시절 요동반도는 그냥 무주공산이었습니다. 쓸모도 없고 중원은 원명 교체기인만큼 변방의 오랑캐 영역? 아무도 신경쓰지 않았죠 고려는 실제로 공민왕때 요동을 먹었죠. 어차피 버려진 성이었으니 먹는게 어렵지도 않았습니다. 지키는게 어려울 뿐이지. 요동의 혹독한 추위와 막상 중국군대가 오니 빤스런해버렸죠. 그게 현실입니다. 지킬 능력도 안되는데 무리하게 백성들만 동원해서 원성만 샀지요. 한민족은 이미 고구려 이후 만주에 대한 지배권을 완전히 상실했다고 보아야 옳습니다. 여말선초때 잃어버린게 아니라는 말입니다. 땅만 먹었다고 우리 것이 되는게 아닙니다. 그 지역에 사는 사람들이 자신의 정체성을 무엇으로 규정하는지가 가장 중요합니다. 이미 고구려 발해 멸망후 500년이 지나며 자신들을 중국인이라 규정하는 그 사람들을 도대체 무슨 수로 지배했다고 표현할 수 있습니까? 우리가 일제로부터 해방된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일본이 우리를 강점할 순 있어도 결국 지배할 수 없었던 것처럼 만주를 잠시 군사력으로 먹었다하여 그걸 우리 땅이라 할 순 없다는 겁니다. 이런 걸로 국뽕을 억지로 주입하지 마십시오. 이럴 수록 대한민국 역사계가 흔들립니다. 극은 또다른 극을 만듭니다. 이런 억지 극뽕이 뉴라이트들과 국까를 만든다는 겁니다. 당신들이 문제입니다. 잠시 먹은거만 쓰면서 마치 만주가 우리 것이라 표현하지만 실상 그 뒤에 기록은 교묘하게 빼놓는 바로 당신들이 문제라는 겁니다.

    • @historyreadman
      @historyreadman 3 месяца назад

      댓글 감사합니다. 『명사』 에 쓰인 주원장의 이야기도 무시하는 용기는 가상합니다. 다시 한번 댓글 감사합니다.

    • @user-cw1cr6fu5j
      @user-cw1cr6fu5j 3 месяца назад

      마치 그 시절에 사셨던 것처럼 이야기 하시네요 그 시절 요동반도가 무주공산이었다, 공민왕 때 실제로 요동을 먹었다, 한민족은 고구려 이후 만주에 대한 지배권을 완전히 상실했다 등등 주장은 가득한데 근거는 없네요. 위 내용들은 그저 학창시절 배운 한국사 지식에 근거한 이야기 아닌가요? 역사에 관심이 있다면 아시겠지만, 현재 학계의 주장대로면 개연성이 어긋나는 사례가 한두가지가 아닙니다. 학계조차도 우리나라 역사를 제대로 설명하지 못해 비정하는 것들이 한두가지가 아니구요... 이 채널 포함 역사를 새롭게 해석하려는 채널들이 최근 생겨나고 있는데 이는 기존 학계가 제대로 해석하지 못한 영역을 다시 제대로 해석하려는 시도입니다. 만약 이 채널에서 잘못된 해석을 하고 있는 부분이 있다면 근거를 가져와서 논리적으로 비판하시면 되요.... 님처럼 기존 학계에서 가르쳤던 내용과 일치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부정할 게 아니라요 역사는 우리가 그 시절 살지 않았고, 녹화되었거나 녹음된 것도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오로지 사서나 유물 유적에 의지해서 추측하는 방법 밖에 없습니다. 사서는 현대와 달리 과거에는 권력층, 사관 등 소수의 사람들만이 접근할 수 있었기 때문에 왜곡의 가능성도 다분하며, 당대에 왜곡되지 않았다 하더라도 후대에 왜곡이 되었을 확률이 높습니다. 유물 유적도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조작이 가능하구요. 따라서, 사서, 유물, 유적 등을 교차검증을 통해 어느 정도 신뢰할 수 있는지 판단한 후, 어떤 이론이 개연성이 높은지 판단하는 것이 현재로서는 역사를 파악하는 데 있어 최선의 방법입니다. 이처럼 역사는 불확실한 영역이기 때문에 기존에 알고 있던 역사 지식과 다르다고 해서 무조건 부정하지 마시고, 열린 마음으로 양 측의 이론을 비교한 후 무엇이 더 개연성이 높은지를 판단하시기를 바랍니다. 지금까지 고려의 영토와 관련해 이런 저런 영상을 본 후 느낀 저의 생각으로는 고려가 조선보다 더 작은 나라였다고 주장하는 현재 학계의 이론은 개연성이 낮아보입니다.

    • @historyreadman
      @historyreadman 3 месяца назад

      @@user-cw1cr6fu5j 댓글 감사합니다! 훌륭한 의견입니다. 폭넓은 시각을 제공하기 위한 더 다양한 사료와 유물 유적들을 최대한 정확히 추적할 것을 약속 드립니다. 다시 한번 댓글 감사합니다.

    • @소호금천신라
      @소호금천신라 2 месяца назад

      이게 왜 국뽕... 교과서에서 제대로 안가르쳐주니 학교에서 배우면서도 답답해서 사실을 찾는 기록일뿐... 고려사에도 있는 심양왕이 지금 불리는 만주인데, 이성계가 태어난곳도 화령(하얼빈), 최근 국경은 박정희가 만주에서 군생활 하던 시기 일본이 패배하면서 넘어가게 된게 지금 역사임.

    • @historyreadman
      @historyreadman 2 месяца назад

      @@소호금천신라 댓글 감사합니다. 훌륭한 의견입니다. 다시 한번 댓글 감사합니다!

  • @waitgold1234
    @waitgold1234 3 месяца назад

    식민사학 청산해야돼요..❤❤

    • @historyreadman
      @historyreadman 3 месяца назад

      댓글 감사합니다. 말씀 공감합니다!

  • @Eastsea-m6g
    @Eastsea-m6g 3 месяца назад

    와우 진짜 알고싶은거 알려줘서 감사드립니다.

  • @amay1771
    @amay1771 3 месяца назад

    설득력 있게 방송 하시길. 예맥조선이 뭐 어쨌다는것임?

  • @saharau5066
    @saharau5066 3 месяца назад

    세계 최초 국가였을지 모를 단군 조선을 찾아 방황 중입니다. 일제 식민 역사관 이병도의 왜곡 역사 바로잡아야 합니다. 우리의 뿌리를 발견하려 노력하시는 이형구 우설하 조은상 ~ 등 교수님 박사님들과 더불어 또 한 분을 만나 뵙습니다. 고생 많으셨습니다. 뉴라이트 친일 역사의식에 우리 모두가 맞서 대항해야만 합니다.

    • @historyreadman
      @historyreadman 3 месяца назад

      댓글 감사합니다! 최대한 쉽게 역사의 진실에 근접 할 수 있도록 영상을 만들어 보겠습니다. 다시 한번 댓글 감사합니다.

  • @pus6646
    @pus6646 3 месяца назад

    하다못해 예수랑 출애굽기도 성서 고고학자들이 직접 주변 나라 돌면서 이집트 수메르 등등 각각 사료 교차 검증하고 검증 하고 검증해서 학계에 발표하는데 이건 좀 설득력이 떨어지네요 저기까지 영토 확장하고 유지했다면 분명 고려의 흔적이 남아있겠죠? 태조왕건이 건국했을때도 저 정도 영토라는 소리인데 굳이 태조왕건 유언에 북진해서 고구려 옛땅을 찾으라고 남길 이유가없죠? 북진하면 몽골 러시아 영토까지 들어가는데요? 고려 최대 영토는 한반도로 한정하는게 맞다고 생각해요 저는 거란전쟁이후에 만주지역까지 영향력을 끼쳐온거지 실질적인 영토는 아닌거 같음 중국 북한에 들어가서 직접 조사하고 사료들을 발굴해내야함

    • @historyreadman
      @historyreadman 3 месяца назад

      댓글 감사합니다. 기록들과 남아 있는 유물 그리고 중국 공산당이 세운 표지석 등을 종합하면 요녕성 심양의 봉집보 유지와 두만강 북쪽 700리 공험진이 고리시대 국경으로 종합됩니다.

  • @sm-tech
    @sm-tech 3 месяца назад

    찾았다 자장가 목소리 감사합니다

  • @bogojang7811
    @bogojang7811 3 месяца назад

    #고려 의 북방경계 끝이 한반도내의 함경남도라고 ?ㅣ #고려국경 축소의 원인은 #일제식민사학, 그대로 가르친다ㅣ #이덕일소장 ruclips.net/video/vxYmwnUDbHU/видео.html #북계 #동계 #천리장성 #공험진 #공험 #삼척 #철령 #고려사 #세종실록지리지 #식민사관 #동북공정 #이덕일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

  • @bogojang7811
    @bogojang7811 3 месяца назад

    북한지역엔 1000리 장성이 없다. #고리(고려) #고구리 #천리장성 #식민사관 🇯🇵 #동북공정 🇨🇳 ruclips.net/video/POBFGg6dhlc/видео.htmlsi=_cYCI81JwtuUwpk0 - @RUclips

  • @bogojang7811
    @bogojang7811 3 месяца назад

    북한지역엔 1000리 장성이 없다. #고구리 #천리장성 #식민사관 🇯🇵 #동북공정 🇨🇳 ruclips.net/video/POBFGg6dhlc/видео.htmlsi=_cYCI81JwtuUwpk0 - @RUclips

  • @bogojang7811
    @bogojang7811 3 месяца назад

    식민사관 폐기! 민족사관 정립!

    • @historyreadman
      @historyreadman 3 месяца назад

      @@bogojang7811 댓글 감사합니다!

  • @신스티브-s7i
    @신스티브-s7i 3 месяца назад

    좋은 내용입니다.

    • @historyreadman
      @historyreadman 3 месяца назад

      @@신스티브-s7i 감사합니다!😊

  • @sm-tech
    @sm-tech 3 месяца назад

    며칠 잠을 잘못잤는데 덕분에 숙면했네요. 구독박고갑니다. 꿀잠잘수있는 교장선생님 목소리를 가지셨네요 ㅎ

  • @AlexLee-ob5uf
    @AlexLee-ob5uf 4 месяца назад

    청대 구획된 지역으로 역사지리를 설명하는군요..

  • @실크로드다시보기
    @실크로드다시보기 4 месяца назад

    당나라는 직접 전쟁을 하지 않고 말갈이나 고구려 병사들을 이용을 하네요. 당나라 병사는 합바지 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에요.ㅋ 오초 나라는 내륙에 있었어요. 현재 우한 지역에 서쪽이죠. 동정호 근처이지요. 유주 와 병주는 산서성 서쪽이지요🎉

    • @jwp-yh8wh
      @jwp-yh8wh 4 месяца назад

      당나라 자체가 선비족이고 서북유목민족임

    • @bangbang-if3ey
      @bangbang-if3ey Месяц назад

      탁월한 식견입니다.

  • @류영걸-m8j
    @류영걸-m8j 4 месяца назад

    그당시 지금 중국땅은 물구덩이 자체였다 산동성도 섬이였다 강소성 하남성 안휘성 모두 물구덩이에 뭔나라가 있겠는가 나라는 농토가 있어 식량생산이 가능해야 나라가 있는 겁니다 중국 남부는 전체가 물구덩이 제외한 나머지는 섬으로 농토가 없었다 강소성은 황하가 흐르는 곳으로 모택동때 수로를 작업하여 물을 빼내여 비로서 땅이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