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읽는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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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중국 국경선인 장성 남쪽의 유주8군에 대한 『한서』권28하「지리지」하 기록
대군 18현은 현재의 대동(大同)시를 중심으로 서로 대(代)현과 상간(桑乾)강, 회인(怀仁)현, 동으로 양원현, 위주, 광창현, 남으로 항산(또는 상산) 일대의 지역이다. 또 『대청광여도』에는 산서성 대동[다통]시(후위 도읍지)에 요서(遼西)라는 지역 명칭도 붙이고 있다. 『대청광여도』에서 요서(遼西)라는 지명을 명기한 지역은 총 3곳으로 현재의 태행산맥 서쪽지역인 산서(山西)성 대동시, 태행산맥 동북쪽 끝자락의 남쪽 지역인 하북(河北)성 진황도시 노룡현(요서군) 동쪽 『대명여지도』가 명기한 현재의 천안시와 무녕현 사이지역인 우북평군에 요서(遼西)라는 지명을 명기하고, 태행산맥 동쪽이자 요녕성 대릉하 동쪽에 요서(遼西)라는 지명을 명기하고 있다. A.D.55년 『삼국사』권15 「고구리본기」 제3 【태조대왕】 "3년 봄2월 요서10성을 쌓아 한병에 대비"한 바 있다.
또 『대명여지도』에 '장안(長安)'령이 『대청광여도』에는 '장안(長安)'봉이 현재의 하북성 장가구시(張家口市)에 즉 『서한군국도』와 『서진군국도』, 『우적도』, 『화이도』 등 6종 고지도를 대차대조하면 상곡(上谷)군 15현 지역에 표기 되어 있으며 『삼국사』 권14 「고구리본기」 제2 【모본왕】 2년조(A.D. 49년 ) "장수를 시켜 북평(군,하북성 진황도시 노룡현[루룽현, 卢龙县]), 어양(군, 하북성 북경시 계주구[지저우구, 蓟州区), 상곡(군, 하북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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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주 대군 18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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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서』 권28 하 「지리지」 제8 하 유주 대군 18현 대군 18현은 현재의 대동(大同)시를 중심으로 서로 대(代)현과 상간(桑乾)강, 회인(怀仁)현, 동으로 양원현, 위주, 광창현, 남으로 항산(또는 상산) 일대의 지역이다. 또 『대청광여도』에는 산서성 대동[다통]시(후위 도읍지)에 요서(遼西)라는 지역 명칭도 붙이고 있다. 『대청광여도』에서 요서(遼西)라는 지명을 명기한 지역은 총 3곳으로 현재의 태행산맥 서쪽지역인 산서(山西)성 대동시, 태행산맥 동북쪽 끝자락의 남쪽 지역인 하북(河北)성 진황도시 노룡현(요서군) 동쪽 『대명여지도』가 명기한 현재의 천안시와 무녕현 사이지역인 우북평군에 요서(遼西)라는 지명을 명기하고, 태행산맥 동쪽이자 요녕성 대릉하 동쪽에 요서(遼西)라는 지명을 명기하고 있다....
유주 상곡군 15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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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서』 권28 하 「지리지」 제8 하 유주 상곡군 15현 A.D.49년 고구리(高句麗) 모본왕 2년에 북평, 어양, 상곡, 태원을 습격한다. 상곡군은 『서한군국도』에 위치가 표기 되어 있고, 『대명여지도』에는 장안령 이란 지명이 『대청광여도』에는 장안봉이란 지명이 등장하며, 『대청광여도』에는 사마천의 『사기』 「오제본기」가 언급하고 있는 약 4600년전 중원의 패권을 놓고 구리국(九黎國) 환웅 치우와 황제 헌원이 싸운 탁록(涿鹿)현의 위치가 등장한다. 『대명여지도』에 따르면 우북평군 16현은 현재의 하북성 난하 중류 동쪽 지역 즉 하북성 천안시 인접한 남쪽 지역에 위치한 것으로 표기했다. 『대청광여도』에 따르면 요서군 14현에 해당하는 노룡현은 현재의 하북성 진황도시 갈석산 인접한 서북쪽에 있으며 『...
유주 현토군 3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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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서』 권28 하 「지리지」 제8 하 유주 현토군 3현 『대명여지도』에 따르면 우북평군 16현은 현재의 하북성 난하 중류 동쪽 지역 즉 하북성 천안시 인접한 남쪽 지역에 위치한 것으로 표기했다. 『대청광여도』에 따르면 요서군 14현에 해당하는 노룡현은 현재의 하북성 진황도시 갈석산 인접한 서북쪽에 있으며 『서한군국도』와『서진군국도』 등에 따르면 요서군에 인접한 동쪽에 요동군 18현이 있고 현재의 하북성 진황도시 무녕(푸닝)현에 해당한다. 또 장성의 끝자락인 산해관 서남쪽과 현재의 하북성 진황도시 갈석산 동쪽이 현토군 3현에 해당한다. 또 『대청광여도』, 『대명여지도』, 『우적도』, 『화이도』, 『서진군국도』, 『서한군국도』 등 고지도 6종을 종합하면 하북성 당산시 난남(롼난)현과 낙정(러딩)현 일대가...
유주 어양군 12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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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서』 권28 하 「지리지」 제8 하 유주 어양군 12현 A.D. 49 모본왕 2년 한나라의 북평, 어양, 상곡, 태원을 습격한다. 『대명여지도』에 따르면 우북평군 16현은 현재의 하북성 난하 중류 동쪽 지역 즉 하북성 천안시 인접한 동쪽 지역에 위치한 것으로 표기했다. 『대청광여도』에 따르면 요서군 14현에 해당하는 노룡현은 현재의 하북성 진황도시 갈석산 인접한 서북쪽에 있으며 『서한군국도』와『서진군국도』 등에 따르면 요서군에 인접한 동쪽에 요동군 18현이 있고 현재의 하북성 진황도시 무녕(푸닝)현에 해당한다. 또 장성의 끝자락인 산해관 서남쪽과 현재의 하북성 진황도시 갈석산 동쪽이 현토군 3현에 해당한다. 또 『대청광여도』, 『대명여지도』, 『우적도』, 『화이도』, 『서진군국도』, 『서한군국도』 ...
유주 우북평군 16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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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서』 권28 하 「지리지」 제8 하 유주 우북평군 16현 『대명여지도』에 따르면 우북평군 16현은 현재의 하북성 난하 중류 동쪽 지역 즉 하북성 천안[첸안]시 인접한 동쪽 지역에 위치한 것으로 표기했다. 『대청광여도』에 따르면 요서군 14현에 해당하는 노룡[루룽]현은 현재의 하북성 진황도[친황다오]시 갈석산 인접한 서북쪽에 있으며 『서한군국도』와『서진군국도』 등에 따르면 요서군에 인접한 동쪽에 요동군 18현이 있고 현재의 하북성 진황도시 무녕[푸닝]현에 해당한다. 또 장성의 끝자락인 산해관 서남쪽과 현재의 하북성 진황도시 갈석산 인접 동쪽과 남쪽인 창려[창리]현이 현토군 3현에 해당한다. 또 『대청광여도』, 『대명여지도』, 『우적도』, 『화이도』, 『서진군국도』, 『서한군국도』 등 6종을 종합하면 ...
유주 요서군 14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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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서』 권28 하 「지리지」 제8 하 유주 요서군 14현 요서군은 넓은 지역으로 그간 알려져 있으나 유주에 포함된 14현 정도의 행정구역으로 현재의 하북성 진황도시 노룡현이다. 한편 요동군은 요서군 인접한 현재의 하북성 진황도시 무녕현에 해당하는 18현이 포함된 행정구역이다. 기록들에 따르면 중국이 동북공정을 하는 이유는 고조선의 수도인 왕험성이 동쪽으로 235km 떨어진 하북성 진황도시 노룡현에 있었고 또 고구리의 수도 중 한 곳이자 『삼국사』권20 「고구리본기」 제8 【영양왕】 23년 봄 정월조 【수양제 하소문】에서 "발(해군. 현재의 하북성 창주시 인접한 서쪽)갈(석산. 하북성 진황도시 노룡현 동쪽, 장성산맥 남쪽, 산해관 서남쪽, 발해만 북쪽)사이" 지역에 동황성(東黃城)현(롼난 현 탕산 시 ...
유주 요동군 18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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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서』 권28 하 「지리지」 제8 하 유주 요동군 18현 요동은 넓은 지역으로 그간 알려져 있으나 14현 정도였던 요서군이었던 현재의 하북성 진황도시 노룡현의 인접한 지역인 요동군이라는 18현 정도를 가진 행정구역에 불과하다. 기록들에 따르면 중국이 동북공정을 하는 이유는 고조선의 수도인 왕험성이 동쪽으로 235km 떨어진 하북성 진황도시 노룡현에 있었고 또 고구리의 수도 중 한 곳이자 『삼국사』권20 「고구리본기」 제8 【영양왕】 23년 봄 정월조 【수양제 하소문】에서 "발(해군. 현재의 하북성 창주시 인접한 서쪽)갈(석산. 하북성 진황도시 노룡현 동쪽, 장성산맥 남쪽, 산해관 서남쪽, 발해만 북쪽)사이" 지역에 동황성(東黃城)현(롼난 현 탕산 시 허베이 성)이 188.9km 떨어져 있기 때문이며,...
유주 낙랑군 25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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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서』 권28 하 「지리지」 제8 하 유주 낙랑군 25현들의 이름
고구리 9번의 수도 이동 기록 통합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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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승골성(졸본), 위야암성(부리성, 국내성), 환도성, 평양성, 환도성, 평양 동황성, 평양, 장안성, 평양성 함락 704년간의 과정. 한 나라때 방 2000리, 위 나라 때 남북이 좁아져 겨우 1000여리, 수 나라때 동서 6000리. 유연(하북성)제노(산동성) 오월(동남해안 지역) 확장과 멸망의 과정.
고구리는 장성 안쪽에서 확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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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무제의 침입으로 멸망한 고조선에 설치한 현토군, 낙랑군, 임둔군, 진번군 등 한사군과 창해군과 대방군은 만주와 한반도가 아니라 장성 안쪽 하북성에 있었으며, 고구리는 현토에서 장성 북쪽의 부여 즉 적봉시 인근에서 동남하한 고추모왕 이후 조양시 인근(졸본)에서 40년간 있다가 유류왕 때 장성 안쪽의 환도(국내, 부리)성으로 옮긴 뒤 하북성 발해군과 갈석산 사이에 있었고, 조위의 관구검의 침입으로 동천왕이, 후연의 모용황의 침입으로 고국원왕이 각기 요서회랑을 따라 도주했다가 침입을 격퇴한다. 환도성을 파괴한 모용황의 침입으로 수도를 평양 동황성(東黃城)으로 옮기는데 동황성은 하북성 당산시 난남(滦南)현 동황성(東黃城)현에서 이름을 확인 할 수 있다. 또 뒤에 장안성으로 다시 수도를 옮기는데 대청광여도를 ...
고구리 9번의 수도이동 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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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승골성(졸본), 위야암성(국내성, 부리성), 환도성, 평양성, 환도성, 평양 동황성, 평양, 장안성, 평양으로의 수도 이동 과정
고구리는 이미 장성을 넘어서 북평 어양 상곡 태원을 공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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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리는 모본왕 2년 AD49년에 이미 북평 어양 상곡 태원을 공격했다.
고조선 수도 왕험과 고구리 수도 평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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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이 동북공정을 하는 이유는 고조선의 수도인 왕험성이자 고구려의 수도인 평양성이 북경시에서 동쪽으로 235km 떨어진 하북성 진황도시 노룡현에 있었기 때문이며, 북한 붕괴시 북한지역을 흡수해서 동북공정을 완료하는 것을 시진핑의 주석연임을 목적으로 하기 위한 치적으로 삼고 싶어하기 때문이다.
고구리의 시대별 강역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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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나라 장수 진개의 침입으로 1000여리를 빼앗긴 동호 이후 결국 한 무제 유철의 침입으로 [기자, 기준, 위만, 우거]조선이 멸망하고 이를 이은 고구리는 한 나라때 방 2000리, 위 나라 소제(조방) 가평9년 유주자사 관구검의 침략으로 남북이 좁아져 겨우 1000여리, 후연의 황제 모용황의 침입으로 환도성이 불타고 평양 동황성으로 이전 한 뒤 어머니 태후를 돌려받기 위해 정동대장군(征東大將軍) 영주자사 (營州刺史) 낙랑공(樂浪公) 작위를 받아들이나 이후 백제 근초고왕(솔)의 침입을 받아 고국원왕(쇠)이 전사하며, 다시 수양제에 이르면 동서 6000리 남북 유연제노 오월을 차지하기에 이르렀다.
후연과 고구리의 공방전과 수도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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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사』와 『삼국지』에서의 평양에 관한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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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사』와 『삼국지』에서의 평양에 관한 기록
『삼국사』 권제37 「잡지」 제6 【지리】4 《고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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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의 이웃 지역들에 관한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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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 한이 강성할 때도 산해관 이상을 넘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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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 이웃 지역들을 기록한 사료들은 한반도와 만주를 가리키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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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 이웃 지역들을 역사는 어떻게 기록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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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리 평양성은 하북성 낙랑군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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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이 동북공정을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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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4군은 한반도와 만주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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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4군과 대방군 창해군은 어디에 있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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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서는 세번 옮겨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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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동지역의 동이는 우리조상과 관련이 정말 없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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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동과 요서를 나누는 기준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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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동과 요서를 나누는 기준은 무엇인가
신라와 당이 전쟁한 지역은 어디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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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와 당이 전쟁한 지역은 어디인가

Комментарии

  • @User-gjursfjo567bj
    @User-gjursfjo567bj 6 дней назад

    그러니깐 동원을 다 못한 이유가 그리고 순무사가 세군데나 파견된 이유가 반란? 혹은 신라를 칠 병력이 적게 동원된 이유? 당나라 부대의 탄생배경이 이때부터닷. ㅎㅎ

  • @AlexLee-ob5uf
    @AlexLee-ob5uf 11 дней назад

    청대 구획된 지역으로 역사지리를 설명하는군요..

  • @user-kl7uy6op4q
    @user-kl7uy6op4q 12 дней назад

    당나라는 직접 전쟁을 하지 않고 말갈이나 고구려 병사들을 이용을 하네요. 당나라 병사는 합바지 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에요.ㅋ 오초 나라는 내륙에 있었어요. 현재 우한 지역에 서쪽이죠. 동정호 근처이지요. 유주 와 병주는 산서성 서쪽이지요🎉

  • @user-mo6nh5zk4y
    @user-mo6nh5zk4y 14 дней назад

    그당시 지금 중국땅은 물구덩이 자체였다 산동성도 섬이였다 강소성 하남성 안휘성 모두 물구덩이에 뭔나라가 있겠는가 나라는 농토가 있어 식량생산이 가능해야 나라가 있는 겁니다 중국 남부는 전체가 물구덩이 제외한 나머지는 섬으로 농토가 없었다 강소성은 황하가 흐르는 곳으로 모택동때 수로를 작업하여 물을 빼내여 비로서 땅이되였다

  • @user-mo6nh5zk4y
    @user-mo6nh5zk4y 14 дней назад

    중국에 지명은 서쪽에서 이동된 지명이고 당나라는 중국땅에 있지 않았다 당나라는 우크라이나 체첸 다지스탄 그리고 코카스산맥 남쪽으로 있던 나라가 당나라였다 그것을 역사 왜곡하기 위해 지금중국으로 옮겨버렸다 모든지명도 옮겨버렸다 신라 진흥왕때 우즈베키스탄 부하라를 점령하였다 그러니 당과의 전쟁 당진은 부하라와 시르다리아강 과의 접경지역 가능성을 이야기 한다 당이 평양성과 안시성을 합락시키고 그곳에 안동도호부를 두게 된다 그곳이 페르가나분지 코칸트요 후잔트가 안시성입니다

  • @Dr_Sunshine91
    @Dr_Sunshine91 14 дней назад

    송회요, 제번기 등의 중국 사서에서 언급하는 대륙 신라.... 백제의 동남쪽 5천리에 신라가 있다.... 이 내용이 한반도 백제 신라로 설명이 되는가?? 한반도 경상도에 어떻게 물산이 풍부하고 낙타와 물소가 자라기에 진짜 적합한 환경일까?? 내가 하도 의심스럽고 이해가 안 되서 삼국사기 백제, 신라본기와 중국 사서 교차 검증하고 거기서 나오는 사실과 지명들을 구글 맵으로 찾아보았다. 찾아지는 지명들이 1000개가 넘었다... 구글 맵으로 내가 찾은 지명들만으로도... 고려와 발해까지 포함하니 1400여개가 넘었다면... 이건 뺴도 박도 못하는 증거다... 우리 선조들이 살았던 삼국과 고려의 영토가 한반도를 포함한 대륙이었다는 거...

  • @holicsoo4431
    @holicsoo4431 15 дней назад

    신라=당

  • @User-gjursfjo567bj
    @User-gjursfjo567bj 19 дней назад

    그래도 박창범 교수는 그 논문을 작성할 때도 중국측 사료를 검토해서 베낀 것에 대한 검증도 했던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하세요? 중국측 사료를 베껴서 그 결과가 도출될 확률은 거의 0에 가깝던데요.

    • @historyreadman
      @historyreadman 17 дней назад

      댓글 감사합니다. 근본적인 문제는 『삼국사』 자체가 가진 문제점입니다. 구『삼국사』가 고리-요 전쟁으로 불타고 난 뒤 다시 작성됐는데, 자료가 부족하니 중국측의 자료들을 토대로 작성해야할 수준이었습니다. 이것을 그나마 탈피한 것이 일연 전견명씨의 『삼국유사』 기록인데, 구『삼국사』의 기록을 바탕으로 했을 것이로 추정되는 여러가지 기록들 즉 『삼국사』 기록 보다 더 자세한 기록들이 나오는 부분들이 있습니다. 문제는 대차대조하면 『삼국사』의 대부분의 천문 및 중국과 관련된 내용의 기록들이 중국측 사서들에 등장하는 내용과 일치한다는 것입니다. 국내 자료가 부족하니 중국측에 등장하는 사료 내용을 인용하여 썼다고 생각할 수 밖에 없는 내용들이 그대로 등장하며 이는 천문기록에까지 그대로 연결되는 부분입니다. 단순히 부실의 문제 정도가 아니라 시험에서 배껴쓴 답안의 내용이 같이 틀린 것 같은 내용들까지 들어 있고, 그나마 중국 측과 다른 독자 기록들은 당시 현실에서 관측할 수 없는 4개의 기록 뿐이며, 궁극적으로 그 4개의 독자기록들도 당대 천문 현실에서 실현되지 않았는다는 것입니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실현율과 관측가능 지역이 일식이나 월식 기타 천문현상을 추정한 지역에서만 관측 가능한가 하는 문제인데, 이 문제까지 넘어가면 천문기록으로 천문기록을 관측한 지역을 추정할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르게 됩니다. 즉 천문기록으로 관측지를 확인하는 것 자체를 과학적 검증으로 신뢰할 수 없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됩니다. 이걸 국내 천문학자 3명이 확인했다는 이야기 입니다. 더구나 이 3분들도 상당히 기대하며 연구를 하셨다는 것이고 결론적으로 이 분들도 실망한 내용에 도달했다는 것 입니다. 즉 박창범 교수님의 천문 관측지에 대한 가설은 3명의 천문학자들에 의해 반박됐고 부정됐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3분 모두 중국 측 천문 기록들과 한국측 천문기록들 전부를 대차대조하셨고 하나하나 다 시뮬레이션 돌려가며 검증 다 하셨습니다. 안타깝게도 그 결론이 박창범 교수님의 가설 설계가 틀렸다는 것이죠. 다시 한번 댓글 감사합니다.

    • @shinhwang885
      @shinhwang885 7 дней назад

      @@historyreadman 그 3명이 누군데요? 그에 대한 정보는 어디서 찾을 수 있나요? 님의 말이 팩트라면 사학계에서 가만히 있을 리가 없죠. 성가신 대륙설을 무시해 버릴 수 있는 좋은 기회인데 활용하지 않을 이유가 없죠. 아닌가요? 박창범 교수님의 과학적 분석이 파훼되었다는 얘기는 금시초문이네요.

  • @lilac7023
    @lilac7023 21 день назад

    당시 신라는 양자강 유역지역 즉, 안휘성 절강성 강소성 일대가 그 영토이었으니 대륙 서쪽 내륙지역에서 발흥한 당과의 전투는 양자강 하류 지역이 아니었을까 추측됨

  • @arcyoon
    @arcyoon 23 дня назад

    물소와 낙타키우기에 적합한 땅이라는 신라...

  • @user-dw8zw7vo6f
    @user-dw8zw7vo6f Месяц назад

    ㅉㅉ

  • @historyreadman
    @historyreadman Месяц назад

    1:54 부터 2:18 까지 등장하는 지도는 우적도가 아니라 화이도(華夷圖)입니다. 불편을 드려 송구합니다.

  • @bogojang7811
    @bogojang7811 Месяц назад

    #고구리(고구려) 9번의 수도이동 과정 #평양성 #졸본성 #환도성 #국내성 #동황성 #장안성 ruclips.net/video/08k90dxDxLs/видео.htmlsi=yIM2zlIfsJ-4ASq3 - @RUclips

    • @historyreadman
      @historyreadman Месяц назад

      댓글 감사합니다. 좋은 하루 되시길 기원합니다!

  • @Dr_Sunshine91
    @Dr_Sunshine91 Месяц назад

    ※ 중국이 동북공정을 하는 이유 한국과 중공 간 나라의 존망을 건 치킨 게임으로 타협점은 없다. 중국 대륙의 동남부 비옥한 땅을 다 먹느냐? 한반도까지 다 먹히느냐의 싸움입니다. 한반도만이라도 지키기 위해 대륙 삼국을 부인하면 중공이 잘도 타협 양보할 거라구요? 한반도까지 먹히고 싶으신 겁니까? 중국의 원래 영역은 서안과 중경을 중심으로한 태행산맥 서쪽의 작은 지역(원래의 요서)이었다. 명나라때까지만 해도 티벳 만주 신장 내몽고 운남은 중국 영토가 아니었다. [중공이 동북공정에 목숨을 거는 이유] 1. 국제 역학 관계에 변동이 생겨 국력이 쇠약해질 경우, 티벳, 만주 동북3성, 신장, 내몽고, 운남, 태행산맥 동부 지역이 독립하고 중공은 내륙의 척박한 장안, 중경을 중심으로 한 작은 지역으로 남게 될 가능성이 많기 때문이다. 2. 한국 고대사가 밝혀지면 만주와 중국 동부, 태행산맥 동쪽 평야 지역(북경에서 광동까지)이 한국 땅으로 될 것이고 3. 중세,근세사만 밝혀져도 동북 3성(동간도,북간도, 서간도)과 동부의 산동반도와 동남부 비옥한 땅이 한국의 땅이 된다 . ((모택동 : 요동은 조선의 땅. 역사에 꼭 적어 놓아라.(김일성 회담 공식석상에서) 존 티토와 미래 예언가들의 공통적인 언급, 옛 고토를 회복한다는 말. 주은래 : 고구려, 발해는 조선의 역사다. 조선은 중국의 속국이었다고 하는 것은 황당한 이야기이다. 역사 왜곡은 하지말라. (외사공작통보, 1963)(한겨레 2014.02.28.)) [작금의 중공은 이들의 유지마저 부정하고 한반도까지 먹으려한다]. 아시는가? 고구려 백제 발해를 자기들의 역사에 편입시키고 신라를 편입시켜 한국 역사 자체를 중국 역사로 만들지 않으면 국제 역학관계 변화로 중국이 쇠락할 때, 중국의 태행산맥 동쪽, 노른 자는 모두 한국 영토가 될 수 있다. 동북공정은 한국과 중공 간 나라의 존망을 건 치킨 게임이다. 대륙 삼국의 실체를 주장하고 분명히 밝혀야 최소한 한반도라도 지킬 수 있다. 이것이 죽어라 동북공정을 하는 이유이다. 이 사실을 알아야 우리 선조들의 역사를 제대로 알고 우리 것을 되찾을 수 있다. (왜? 우리가 지금껏 배운 역사는 조선총독부가 만들어준 식민 반도 사관의 역사로 조선 정벌(정한론)의 명분이 되었고 이를 극복하지 못한 채 80년이 지났기 때문)

  • @Dr_Sunshine91
    @Dr_Sunshine91 Месяц назад

    대륙 신라의 증거( 중국 사서 기록) [양서, 통지] 신라는 토지가 기름져 오곡이 자라기 알맞고 뽕나무와 삼이 많으며, 비단을 짠다 [수서] 신라에는 전답이 아주 기름지며 논농사 밭농사를 모두 할 수 있다. [신당서] 신라에는 가축으로 양은 없고, 노새는 적고 말이 많다. [송회요] 신라에서는 낙타와 물소가 자라기 알맞고 인삼, 수은, 사향, 잣, 개암, 석결명, 방풍, 백부자, 복령, 대소포, 모시베, 초석, 서모필이 난다. [제번지] 신라는 지역이 낙타와 물소가 자라기에 알맞다. 돈을 사용하지 않고 교역을 할때 쌀로 한다. 민가에서 쓰는 기명은 모두 구리로 만든다. 지역에서 인삼, 수은,사향, 잣, 개암, 송탑자. 방풍, 백부자, 복령, 대소포, 모시포, 동경, 자기 초석 등이 난다. 상선은 오색의 무늬 있는 비단과 복건에서 찍은 서적을 싣고 가서 무역을 하였다. [통지] 신라는 토질이 기름져서 오곡이 자라기 알맞고 뽕나무와 삼이 많고 과일과 채소, 새와 짐승, 물산이 풍부하다. 한반도의 경상도, 강원도 땅에서 저렇게 토지가 비옥하고 전답이 기름져서 오곡이 잘 자라고 뽕나무, 삼이 많고 물산이 풍부하고 낙타와 물소가 자라기 적합한 환경은 아니죠.

  • @waitgold1234
    @waitgold1234 Месяц назад

    강단사학, 역사왜곡 처벌법을 국회에서 꼭 입법해야..수도의 여러번 이동 등으로 가르치는 교과서는 없습니다. 선생님의 강의 감사합니다. 널리 공유합시다.

    • @historyreadman
      @historyreadman Месяц назад

      댓글 감사합니다. 국립중앙박물관이 보관하고 있는 대청광여도와 미 의회 도서관에서 보관하고 있는 우적도, 화이도, 대명여지도 등 고지도의 내용만이라도 제대로 반영했으면 하는 바램이 있습니다. 다시 한번 댓글 감사합니다.

    • @bogojang7811
      @bogojang7811 Месяц назад

      #고구리(고구려) 9번의 수도이동 과정 #평양성 #졸본성 #환도성 #국내성 #동황성 #장안성 ruclips.net/video/08k90dxDxLs/видео.htmlsi=yIM2zlIfsJ-4ASq3 - @RUclips

  • @nocentman
    @nocentman Месяц назад

    산해관을 데르벤트에 대입하면 이 사진은 완전 카스피해네..

    • @historyreadman
      @historyreadman Месяц назад

      댓글 감사합니다. 데르벤트는 남북 방향인데, 산해관은 동서 방향이란게 조금은 다른 듯 싶습니다. 다시 한번 댓글 감사합니다.

    • @user-rg9dd7oc7u
      @user-rg9dd7oc7u Месяц назад

      😊😊😅😅😅😅😅😅😅​@@historyreadman

  • @user-ce6sn9eq4j
    @user-ce6sn9eq4j Месяц назад

    ruclips.net/video/bnoHC_u-xGk/видео.html 모용황 피를 받은

  • @user-kl7uy6op4q
    @user-kl7uy6op4q Месяц назад

    감사합니다

  • @user-kl7uy6op4q
    @user-kl7uy6op4q Месяц назад

    요서회랑이란 대동 ㅡ태원 ㅡ서안. 이랍니다. 한쪽에 바다있는길은 회랑이라하지는 않을거에요

    • @historyreadman
      @historyreadman Месяц назад

      댓글 감사합니다. 요서회랑에 대한 일반적인 설명은 요녕반도와 산해관을 연결하는 좁고 길쭉한 지역입니다. 동쪽으로는 요녕성, 서쪽으로는 무녕현, 남쪽으로는 발해만, 북쪽으로는 장성산맥으로 둘러싸여 있습니다. 즉 일반적으로 널리 알려진 요서회랑을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역사는 기록, 유물, 지도가 일치해야 전체 이야기가 구성될 수 있습니다. 우리측의 시각만으로도 구성할 수 없고, 중국측의 시각만으로도 구성할 수도 없습니다. 양측의 기록들을 대차대조하고 그 중에서 역사 기록들과 맞물리며 지역들을 확인하고 거기서 반박할 수 없이 일치하는 유물이 나오면 확정되는 것인데, 아직 기록들로 전체 상황을 재구성해 나가며 지역들을 확인해 가는 과정 중이라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만, 일반적으로 널리 알려진 누구나 납득할 수 있는 지역들을 기준으로 확인하고 있습니다. 그 과정에서 반드시 반박 되어져야 할 유물과 기록, 지도가 나오면 즉각 수정할 수 밖에 없습니다. 아직은 그런 기록들을 발견하지 못했으므로 수정하지 않고 있습니다. 관련된 기록, 지도, 유물이 나오면 즉각 반영해서 수정할 것을 약속드립니다. 다시 한번 댓글 감사합니다.

    • @user-kl7uy6op4q
      @user-kl7uy6op4q Месяц назад

      @@historyreadman 하서회랑이 어딘지 아시지요? 서안에서 무위 장액 주천 둔황가는길입니다. 양쪽으로 산이 있어서 이곳이 아니면 절대로 지나지 못하는 곳을 말하지요. 님꼐서 말씀하신 요서회랑은 회랑이 아닙니다. 한쪽은 바닷가 이니까요. 배를 타면 갈 수 있는 곳이니 절대로 회랑이 아닙니다. 요서회랑은 서안에서 태원을 가는길이며 분수를 타고 가는 수밖에 없어서 붙은 별명입니다. 요서회랑이외에 요서오환이라는 말도 있지요. 요서회랑은 식민사학자들에 의해서 바닷가 산해관으로 지명이 이동된 것으로 보입니다.

    • @historyreadman
      @historyreadman Месяц назад

      @@user-kl7uy6op4q 댓글 감사합니다. 지리학적으로 한쪽은 산맥, 다른 한쪽은 바다로 좁고 긴 통로를 가진 길이 있다면 그런 형태의 지형도 일반적으로 회랑이라 부릅니다. 안타깝게도 배로 통하는지 통하지 않는지 그것이 회랑을 정의하는 핵심이 아닙니다. 또 현재 중국 정부가 1990년대 이후로 관련 학술 논문이나 정부 문서 요서회랑(辽西走廊)이라고 이름 부르고 있기 때문에 식민학자들이 붙였는지 아닌지는 우리에게는 중요하지만 그들에게는 별로 중요하지 않습니다. 중국인들을 설득해서 학술 논문이나 중국 정부 문서에 쓰지 않도록 캠페인을 벌여 계도하는데는 도움이 될 이야기지만 이는 그 지역을 이미 30년 전부터 불러오는 명칭이 되었습니다. 인위로 우리가 산해회랑 후룬회랑 이렇게 부를 수는 있겠지만 현재의 명칭들과 혼동을 초래하게 됩니다. 또 요서라는 이름이 붙어있기 때문에 오해를 불러일으키기에는 충분하지만 그것은 그것대로 검색할 수 없습니다. 누구나 찾아 볼 수 있는 명칭을 확인하고 검색해서 찾아 볼 수 있는 형태의 이름들이 나와야 합니다. 우리쪽의 이름들을 우리에게 유리한대로 사용한다면 편리하겠지만 기록, 지도, 유물 등 증명의 문제로 나가는 것은 또 다른 문제입니다. 이 때문에 현재 어쩔 수 없이 요서회랑이란 표현을 쓰고 있다는 점에 양해를 구합니다. 다시 한번 댓글 감사합니다.

  • @bamas26
    @bamas26 Месяц назад

    대본을 먼저 쓰고... 읽는 연습을 하세요

    • @historyreadman
      @historyreadman 17 дней назад

      댓글 감사합니다. 당연히 그러고 있습니다. 다만 생각만큼 잘 안되는 건 아쉬운 일이죠. 다시한번 댓글 감사합니다.

  • @user-lr5bj1cp3h
    @user-lr5bj1cp3h Месяц назад

    서기 700년대ㅡ800년 1100까지도 요ㆍ는. 지명은 변함없이. ㅡ섬서와 산서경겨 황하와 지역에서ㅡ태행신맥 서부 ㆍ산서성 요산 에서발윈한 요수ㆍ그일대를. 요주 ㅡ임 ㅡㅡ발해멸망 으로 거란. 요나라 ㅡ이후 ㅡ태행산맥 동부 백석ㆍ 안문산남부 지역임ㅡㅡㅡㅡ1970년대 이전 중국대륙 지도에 ㅡㅡ태행산맥 중붕에 한자로 가장큰 파란색 으로 풍요로운 요. 자 쓰여잇응ㅡ지금 요하와1200년 이전의 요수는 전혀ㅡ다른강 임ㅡㅡㅡㅡ요수나 요하는. 전혀 다른강ㅡㅡ수는. 괸중의 천하의 세겨관을. 담은 물중 하의 아래급 이고 ㅡ정치세계관을표현ㅡ관중. 중심세계관을. 인정치 안앗던 유역의세력들이. 하를 사용ㅡㅡㅡㅡㅡㅡ예ㅡㅡ산서성의 분하(압록수ㆍ 고대2부터 강력한 군사 정치 세력으로 섬서성 위수지역을 압도 요ㆍ순 우ㆍ이어 하나랴. 은ㆍ상나라. ) 하북성 호타하ㆍ 조하ㆍ조선하 영정하ㆍ열하ㆍ 난하ㆍ 대릉하 요하ㅡㅡㅡㅡ즉 ㅡ ㅡ수를 사용하는 강들은 천하. 독자세계관의 세력의. 한지방 지역 정치세력. 유역이 수를 사용 한다(대부분 지류다)____회수 경우는 3000년 4000년 이전 고대황하는. 산동성이. 거대한 섬상태로. 황하는 산동성 남과 북으로. 이동하며 서해로 흘러들어감. 산동남촉으로 흐를때는. 회수도. 횡하의 지류ㅡ황하가ㅡ산동북측으로ㅡ.지금은 매몰사라진 거륙해 ㆍ대륙해. 거야택 을 거쳐 황해로 들어가는. 현 턴진만일대에는 10개의 강이 모여서 흘러들어가 6:53 는 열구다ㅡㅡㅡ태행산맥 남부. 서촉 의 요수와. ㅡㅡ동촉의 ㅡ장수 유역은 청장수 탁장수. 지역은 지역세력으로서 수천런간 존재ㅡㅡ패괸세력으로선. 아주 좀처럼 일시적이엇응ㅡ즉 위성 부용국 세력임ㅡㅡㅡ황하으ㅠ역이북은ㅡㅡ 강의. 이름이 하가 붙으면 그지역의 독자 천하관이 존제 햇던 지역임 서안의 남촉 화산 남 서부(( 서량ㆍ한중 ㆍ한수ㆍ 사천분지)부의 이름도없던 산중분지세력의. 팽창ㆍ 팽창ㅡㅡ.한중지역의 진시황. 독제 천하관과. 서촉의 유방의. 한 200년이 대륙사관( 짜깁기 사서ㅡ사기) --만들어냄ㅡㅡㅡㅡ처음으로ㅡㅡㅡ사마천 살기위한 ㅡ자체 천하관수립ㅡㅡ부끄로운 자기역사를. 위작 만들어감

  • @user-lr5bj1cp3h
    @user-lr5bj1cp3h Месяц назад

    신라ㆍ당의경겨는ㅡㅡ. 태행산맥임ㅡㅡ산서 섬서 성 하남성서부는 고구려 패망으로 당의 영토로 넘어가구 ㅡ태행신맥 동부지역이 통일신라영토 축소돼고ㅡㅡ발해의 흥기로ㅡ히북성도 발해에 넘어감ㅡㅡ

  • @user-lr5bj1cp3h
    @user-lr5bj1cp3h Месяц назад

    유리왕조ㅡㅡ태조왕조ㅡㅡ미천왕조ㅡ 평윈왕조ㅡㅡ에ㅡㅡ호태왕조ㅡㅡ등중국 섬서 산서 ㆍ하북 하남성. 카지 진격한 기록이 많다ㅡ전챙 전투 지명제고ㅡㅡㅡㅡㅡ백제사는 산동중심ㅡㅡ하북 하남. 안휘성 ㆍ강소성북부. 임

  • @user-le6mj3se3t
    @user-le6mj3se3t Месяц назад

    고려 황도의 표시는 지도 제작자들의 목숨을 건 센스 (혼일강리역대국도 1402년 완성)

    • @historyreadman
      @historyreadman Месяц назад

      댓글 감사합니다. 좋은 의견 감사합니다.

    • @user-le6mj3se3t
      @user-le6mj3se3t Месяц назад

      @@historyreadman 공민왕 후반기 우왕때의 수도입니다. (우왕이 왕이되기전 강녕부 원대군) 명나라는 경사로 표기하고 고려는 황도로 표기합니다.

  • @bangbang-if3ey
    @bangbang-if3ey Месяц назад

    김부식은 고려의 신하이지만 "김"씨에 유학자라서 고구려계승의식은 없고 삼국을 통일한 신라 중심에 중화에 거스르지 않는 방식으로 기록 할 수 밖에 없죠.

  • @waitgold1234
    @waitgold1234 2 месяца назад

    가짜역사 가르치는 강단사학 처벌하는 역사왜곡죄 입법이 시급합니다..국회서 꼭 법으로 정해 범죄행위로 처벌해야

    • @historyreadman
      @historyreadman Месяц назад

      댓글 감사합니다. 말씀에 공감합니다. 다시한번 댓글 감사합니다.

  • @dioxin2768
    @dioxin2768 2 месяца назад

    그림몇개만 넣어도 좋을거같네요

    • @historyreadman
      @historyreadman 17 дней назад

      댓글 감사합니다. 다양한 시도를 하느라 아쉬운 부분이 많을 것으로 압니다. 좀 더 노력하도록 하겠습니다. 다시한번 댓글 감사합니다!

  • @user-le6mj3se3t
    @user-le6mj3se3t 2 месяца назад

    우적도 판본은 요수의 물길이 없으므로, 지도 제작의 취지에 어긋 났습니다. 지도를 언론에 공개할 당시에 검수와 감수를 정확하게 하지 못했음을 알수가 있습니다. 화면상의 우적도는 판본이 아니고, 보급본입니다. (보급본에는 물길을 넣음)

    • @historyreadman
      @historyreadman 2 месяца назад

      댓글 감사합니다. 좋은 의견 감사합니다!

  • @user-ce6sn9eq4j
    @user-ce6sn9eq4j 2 месяца назад

    고국양왕 광개토왕은 모용황 피를 받은 연나라 후손

    • @historyreadman
      @historyreadman 2 месяца назад

      댓글 감사합니다. 다만 사실관계는 잘 못 알고 있으신듯 합니다. 15대 미천왕(고을불) 301~331 13대 서천왕(고약로)의 차남 고돌고의 장남 16대 고국원왕(고사유) 331~371 미천왕의 장남 17대 소수림왕(고구부) 371~384 고국원왕의 장남 18대 고국양왕(고이연) 384~391 고국원왕의 차남 19대 광개토왕(고담덕) 391~412 고국양왕의 장남 고국양왕은 고국원왕의 둘째 아들이며, 광개토왕은 복수의 기록들에 의할 때 고국원왕의 아들이고, 광개토왕릉비를 근거로 한다 해도 6촌 조상인 대주류왕의 아들이란 이야기도 존재하나 양자로 갔다고 가정해도, 또 장수하는 집안이란 걸 감안해도 350년의 시차로 연대가 맞지 않습니다. 광개토왕릉비는 유리명왕의 아들인 '선대인 대주류왕' 또는 대무신왕과 같은 영토확장의 공적을 기록한 것이므로 이 문맥에서 보는 것이 비석을 세운 연혁과도 뜻을 같이 한다고 보는 것이 논리적으로 적절 합니다. 거기다 342년 전란으로 잡혀간 고국원왕의 돌아오지 않은 왕비는 기록들이 없어 잡혀간 뒤 어떤 방식으로든 잡혀간 곳에서 죽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그리고 고국원왕의 아들들인 소수림왕과 고국양왕은 이미 최소 2~30대를 넘긴 상태입니다. 342년 전란이후 부정부패와 지배층의 분열로 370년 전연은 부견의 전진에 의해 처참하게 멸망당했는데, 당시 전연의 모용씨 섭정인 태부(태재) 모용평이 망명해오자 고국원왕은 그대로 묶어 전진에 갖다 바칩니다. 따라서 고국양왕과 광개토왕은 연나라와 전혀 상관이 없으며 한 하늘을 두고 살 수 없는 철천지 원수라고 보는 것이 타당합니다. 따라서 연나라 후손이란 이야기는 전혀 근거가 존재하지 않습니다.

  • @user-le6mj3se3t
    @user-le6mj3se3t 2 месяца назад

    북송의 수도는 중초본에서 삭제. 이후로 개봉표기로 도착.

  • @user-le6mj3se3t
    @user-le6mj3se3t 2 месяца назад

    1368년부터 1388년까지의 명나라의 중심지가 지워짐(중기본).

  • @user-le6mj3se3t
    @user-le6mj3se3t 2 месяца назад

    남송의 수도는 대명여지도 초중본에서 도착지 표기가 늦여짐. 아직까지는 출발지에만 표기.

    • @historyreadman
      @historyreadman 2 месяца назад

      댓글 감사합니다. 의견 감사합니다.

  • @user-le6mj3se3t
    @user-le6mj3se3t 2 месяца назад

    1388년 이전의 현재의 만주와 한반도는 그저 조용하고 평화롭고 안전한 고려의 안전지대.

  • @singsket2778
    @singsket2778 2 месяца назад

    결국 요동요서를 가르는 위치를 산해관 요하로 지칭하는분인건가

    • @historyreadman
      @historyreadman 2 месяца назад

      댓글 감사합니다. 오직 유물과 지도, 기록을 따라갑니다. 다시 한번 댓글 감사합니다.

  • @user-le6mj3se3t
    @user-le6mj3se3t 2 месяца назад

    우적도 판본은 요수의 물길이 없으므로, 지도 제작의 취지에 어긋 났습니다. 지도를 언론에 공개할 당시에 검수와 감수를 정확하게 하지 못했음을 알수가 있습니다.

  • @user-le6mj3se3t
    @user-le6mj3se3t 2 месяца назад

    우적도 판본은 요수의 물길이 없으므로, 지도 제작의 취지에 어긋 났습니다. 하여, 지도를 발표할 당시에 검수를 정확하게 하지 못했음을 알수가 있습니다.

  • @nocentman
    @nocentman 2 месяца назад

    중국 서쪽은 바다가 없습니다. 사기가 작성된 시기는 해수면이 지금보다 많이 높습니다. 한반도와 비슷하게 바다 사이의 간도이면서, 대홍수로 북해가 생긴 곳을 찾아보세요. 해수면 상승 시뮬레이터로 +300미터 정도 해수면을 올리면 태행산맥 동쪽은 바다입니다.

    • @historyreadman
      @historyreadman 2 месяца назад

      댓글 감사합니다. 의견 감사합니다. 다시 한번 댓글 감사합니다.

  • @user-hh9mb2yw8x
    @user-hh9mb2yw8x 2 месяца назад

    잘 보았습니다^^

  • @user-le6mj3se3t
    @user-le6mj3se3t 2 месяца назад

    1388년 음력 7월 12일. 2년전에도 燕王이였고 선봉장격인 주체가 북평에 행도를 설치(비로소 도착하였음을 알림) 새로운 점령지에서 새로운 燕지역과 새로운 燕雲16주의 시작. 음력 7월 22일. 명이 산해위를 설치(비로소 도착하였고 새로운 요서 요동의 시작. 새로운 만주의 시작. 음력 9월 15일. 8개 점령지에 대한 분봉 (秦王,晉王,周王,楚王,齊王,湘王,魯王,潭王,) 분봉된 8개 지역을 점령하기 1년전의 요서 요동이 그 당시의 요서 요동. 우왕이 만주로 몽진. 산해위가 설치되면서 새로운 만주에 고립됨. 2년후 공양왕이 한반도로 남하. 2년후 조선의 시작.

    • @historyreadman
      @historyreadman 2 месяца назад

      댓글 감사합니다. 좋은 의견입니다. 다시 한번 댓글 감사합니다.

  • @user-yl8or3pf9t
    @user-yl8or3pf9t 2 месяца назад

    대륙설을 주장하는 사람은 한국 역사학의 아버지는 일제 조선사편수회의 쓰다 소키치이며 한국에서 일하는 모든 교수나 사학자들은 이들의 학설을 따르는 사람으로 들었는데요. 그래서 주류 학설을 부정하고 반도설을 몰아내고 대륙설이 주류 학설을 차지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여기서는 신채호 선생을 한국 사학의 아버지라 하면 반도설은 쓰다 소키치가 만든것이 아니며 부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닌건가요

    • @historyreadman
      @historyreadman 2 месяца назад

      댓글 감사합니다. 혹시 한사군을 검색해 본 적이 있으십니까? 없다면 한번 검색해 보시고, 그 한사군 지도들이 어디에 배치됐는지 알아 보기 바라며, 그 지도들이 언제 만들어졌는지 다시 한번 확인해 보시기 바랍니다. 정확히 반대로 알고 있으셔서 이야기 드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대륙설이나 반도설 둘 다 연구에서는 배제하는 입장이라 기록들과 지도만 따라갑니다. 기록과 지도가 이치에 맞으면 맞다고 보는 것이고 다르면 틀렸다고 보는 것이죠. 다시 한번 댓글 감사합니다.

    • @user-yl8or3pf9t
      @user-yl8or3pf9t 2 месяца назад

      @@historyreadman 저는 이것 말고 다른 대륙설 주장을 들으면서 의문이 드는 부분이 있는데요. 대륙설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한중일의 역사학자들은 모두 한국의 역사를 축소했다고 그러는데 과연 축소한게 맞는것인지 아니면 정말 한사군이 북한 평양에 있으며 임나일본부가 진실이어서 그래서 그런건지 정말로 한국의 주류 사학자들은 식민사학자들이 맞는지 의문이 듭니다. 한중일의 역사학자는 한국사를 희생 시키면 중국 입장에선 일본이 이득이고 반대편도 마찬가지인데 중국과 일본이 한국사를 자꾸 희생을 시키는 당위란 부족하며, 한국의 역사학자도 굳이 자국의 역사를 축소 시켜야 할 이유도 없는데 마치 타국에 조종 받는 사람들로 설명하는데, 구체적으로 누구의 조종을 받는지 의문이고. 그렇기 때문에 역사가 조작되었다고 하는 것이나 대륙설의 부족한 부분을 합리화 하는 것이 아닌지 하는 생각이 듭니다. 또 대륙설은 그야말로 사람마다 다르다고 할 정도로 난장판이기 때문에 거의 하나로 획일화된 주류 학설과 다르게 비주류 학설은 사람마다 다 달라서 대륙설을 설명할 때 혼란이 옵니다.

    • @historyreadman
      @historyreadman 2 месяца назад

      @@user-yl8or3pf9t 기록과 지도를 따라가면 그런 이야기를 하기가 오히랴 어려운 이야기를 하시는 이유가 더 궁금합니다.

    • @user-yl8or3pf9t
      @user-yl8or3pf9t 2 месяца назад

      ​@@historyreadman 방금 대륙설을 따라가다보면 사람 숫자만큼 제각각이어서 난장판이라고 했는데요. 그들은 기록과 지도를 따라가면서 다른 결과가 나온 것 같은데요. 그래서 제가 생각했을 때 의문인 부분이 있어서 질문을 하면 오히려 화를 내거나 제대로 답변하지 못하시는 유튜버 분들이 많아요. 그런 사람들을 볼 때마다 이상한 생각이 들어요

    • @historyreadman
      @historyreadman 2 месяца назад

      ​@@user-yl8or3pf9t그렇군요. 그 분들이 뭘 더 찾으셨는지는 모르겠지만, 사견을 배제하고 기록들과 지도만 따라가면 하북성 요동이 나오니 그렇다고 할 수 밖에 없다고 보이네요. 기록과 유물, 지도 증거들로 반박 된다면 물론 이야기는 뒤집히겠지만 알이죠. 그거 말고는 이야기가 안되니까요.

  • @user-le6mj3se3t
    @user-le6mj3se3t 2 месяца назад

    대청광여도는 명나라의 대명여지도 중,말기본과 차이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부분적으로는 도움이 될수 있으나, 대명여지도 초기본,초중본에 비하여 고대사의 주객이 전도 하였습니다.

    • @historyreadman
      @historyreadman 2 месяца назад

      댓글 감사합니다. 안그래토 이제 대청여지도로는 충분히 뽑을만한 것들은 다 뽑았다고 생각돼서 대명여지도로 슬슬 넘어갈 예정입니다.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돼 있는 것이니 바탕으로 한 것입니다. 다시 한번 댓글 감사합니다.

  • @user-st2ry9kt7t
    @user-st2ry9kt7t 2 месяца назад

    요는 중국 고지도에 그대로 나와 있습니다. 태행산맥입니다. 요산요수라는 것은 태행 산맥에 걸친 강유역들이고 이것은 우리 조상들의 강역입니다. 고려 원나라 침입후 고려의 영토가 1차로 줄어들고 이성계가 최영장군의 명을 어기고 홍건적을 토벌하지 않고 물러서서 회군 하는 바람에 주원장과의 암묵적 거래로 2차로 땅을 다 잃어버린 것입니다. 주어 목적어 동사 순으로 말하는 우리 민족의 강역은 태행산맥을 걸친 중국 동부 중부 남부 전역이었고, 중국은 원래 서안지방의 작은 민족이 었습니다. 궁금하면 제대로 찾아 배워보세요. 이것은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 @historyreadman
      @historyreadman 2 месяца назад

      댓글 감사합니다. 훌륭한 의견입니다. 고지도들과 기록들이 이야기하고 있는 부분 부터 한사군을 한반도와 만주에서 인식의 영역에서 없다는 것부터 풀어서 이야기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다시 한번 댓글 감사합니다.

  • @user-le6mj3se3t
    @user-le6mj3se3t 2 месяца назад

    고려도경의 래주,등주는 대명여지도 중중기본에서 삭제. 이후의 자료표기는 방위각만 참고.

  • @user-le6mj3se3t
    @user-le6mj3se3t 2 месяца назад

    남송의 수도는 대명여지도 초중본에서 도착지 표기가 늦여짐. 아직까지는 출발지에만 표기.

  • @user-le6mj3se3t
    @user-le6mj3se3t 2 месяца назад

    항우와 한신의 해하전투는 대명여지도 중중기본에서 삭제.

  • @user-le6mj3se3t
    @user-le6mj3se3t 2 месяца назад

    조조가 수장현 동쪽에서 황건적을 공격할 때, 마지막 황건적 표기 2개가 삭제됨. 이후에 표기되는 수장현은 방위각만 참조.

  • @user-le6mj3se3t
    @user-le6mj3se3t 2 месяца назад

    동1관과 함곡관(동2관)이 대명여지도 중중초기본에 도착. 출발지는 중기본에서 삭제.

  • @user-le6mj3se3t
    @user-le6mj3se3t 2 месяца назад

    1388년 음력 7월 22일. 명이 산해위를 설치(비로소 도착하였고 새로운 요서 요동의 시작. 새로운 만주의 시작. 음력 9월 15일. 8개 점령지에 대한 분봉 (秦王,晉王,周王,楚王,齊王,湘王,魯王,潭王,) 분봉된 8개 지역을 점령하기 1년전의 요서 요동이 그 당시의 요서 요동.

  • @user-nl8tm3pi8u
    @user-nl8tm3pi8u 2 месяца назад

    요주 위치도 틀렸고.. 요서와 요동위치역영을 잘못 그려놓음.. 또한 고죽국이면.. 대나무가 많은지역있데.. 대나무의 생장 조건상 위도상 저위치는 고죽국이 될수없음. 지명위치를 바꿀정도의 역사왜곡은 여러번에 걸쳐일어났다는걸 인식하지 않으면 안됨.

    • @historyreadman
      @historyreadman 2 месяца назад

      댓글 감사합니다. 훌륭한 의견입니다. 일단 국립중앙박물관에 문의해 보니 대청광여도를 보관하고 있었고, 그 때문에 사용한 것입니다. 물론 그것이 대청광여도가 100% 맞다는 뜻은 아닙니다. 방향과 위치를 대강이라도 대중적으로 인식시키에 좋다는 뜻입니다. 이야기 하신 대로 문자 그대로의 죽국이라면 문제가 있습니다. 다만 한사군이 만주와 한반도에 없었다는 것부터 이야기가 될 수 있어야 그 다음 이야기도 진행될 수 있을 꺼라 봅니다. 대청광여도는 그런 부분에서는 훌륭한 자료로 보입니다. 다시 한번 댓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