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의한 재판관과 과부의 비유 / 생떼 기도가 바르지 못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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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Опубликовано: 1 дек 2024

Комментарии •

  • @LogosCommunity
    @LogosCommunity  9 месяцев назад

    참고도서
    Jeremias Joachim, Die Gleichnisse Jesu(예수의 비유), 허혁 옮김, 분도출판사, 1988
    Bailey E. Kenneth, Jesus Through Middle Eastern Eyes(중동의 눈으로 본 예수), 박규태 옮김, 새물결플러스,2016
    Barclay William, The Gospel of Luke(바클레이 성경주석 누가복음), 기독교문사, 2009
    Kistemaker J. Simon, The Parables of Jesus(예수님의 비유), 김근수, 최갑종 옮김, 기독교문서선교회, 1986
    Blomberg L. Craig, Interpreting the Parables(비유해석학), 김기찬 옮김, 생명의 말씀사, 1996
    Edwards R. James, The Pillar New Testament Commentary The Gospel According to Luke(PNTC 누가복음), 강대훈 옮김, 부흥과개혁사, 2019

  • @김영미-n5h
    @김영미-n5h 9 месяцев назад +2

    아멘 감사합니다!

  • @카멜리아-s4v
    @카멜리아-s4v 10 месяцев назад +2

    엔 타케이.....즉시, 곧, 갑자기, 확실히
    역사는 분명히 하나님의 계획과 주권에 따라 이루워질 것이다.
    정말 큰 위안과 힘이 됩니다.
    절망 금지~
    포기를 포기하기~
    감사합니다

  • @파란꿈
    @파란꿈 3 года назад

    참 멋집니다. 덕분에 즐감했습니다. 누리게 해주신 호사에 감사드리며 평안을 전합니다.

  • @speedup7
    @speedup7 3 года назад +7

    기존 해석은 "신자" 입장에서 해석하여 "기도의 당위성"을 말하지만, 로고스님 해석은 "하나님" 입장에서 "하나님 나라가 곧 확실하게 임하실 거라는 소망"을 말하는 거라고 느꼈습니다. 보다 더 복음적이었습미다.

  • @shorts-film
    @shorts-film 3 года назад

    말씀을 읽을 때 참 많은 지침이 됩니다.
    늘 귀한 영상 제작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건강하십시오! 🙏

    • @LogosCommunity
      @LogosCommunity  3 года назад

      도움이 되신다니 참 감사합니다.

  • @johnny0320
    @johnny0320 3 года назад

    아멘!!! 감사합니다.

    • @LogosCommunity
      @LogosCommunity  3 года назад

      변함없이 댓글 달아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 @shalom0365김연실
    @shalom0365김연실 9 месяцев назад

    목사님~~
    저도 그 부분이 항상 의아했어요~~
    불의한 자가
    의로움으로 재판하는것이 아닌 본인의 안위때문에 들어준것이
    과연 하나님께 기도하는것으로
    해석함이 마땅한가하는
    의문이었죠..
    목사님과 더불어
    쉬이 지나치고 놓쳤던 말씀들속에서
    하나님을 더 깊이 만날 수 있는것 같아요..
    감사합니다^^

    • @LogosCommunity
      @LogosCommunity  9 месяцев назад

      항상 경청해 주시고 공감해 주셔서 큰 힘이 됩니다.

  • @ckgideon61
    @ckgideon61 7 месяцев назад +1

    아몐

  • @DAEWOONGHAN
    @DAEWOONGHAN 8 месяцев назад

    해석은 말 그대로 해석. 건질 수 있는 것도 있지만, 본문의 내용에 어긋나는 내용도 있으니 걸러서 참고하시면 좋을 듯합니다.

    • @LogosCommunity
      @LogosCommunity  8 месяцев назад

      각자가 자기 나름의 기준으로 판단하겠지요.

  • @이태영-o2q5c
    @이태영-o2q5c 10 месяцев назад +1

    맞아여 땡깡 생떼 그렇케 가르침 받았지요

  • @이슬기-f6v
    @이슬기-f6v 3 года назад +1

    그 생떼의 목적이 자기만의 잘됨이니 더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 @sunghyunkim2188
    @sunghyunkim2188 9 месяцев назад

    Thayer 사전을 살펴보았는데요, 빨리 라는 뜻으로만 쓰이지 확실히 라는 뜻으로는 안쓰이던데요. 신약에 8번 나오는 모든 문장에서도 빨리, 속히 라는 뜻으로만 번역되었습니다. 설명을 해주세요.

    • @LogosCommunity
      @LogosCommunity  9 месяцев назад

      제가 영상에 페이지까지 상세하게 밝혀 놓았는데 또 밝히시라고 하시는군요. 제임스 에드워드가 쓴 누가복음 주석 665페이지에 이렇게 쓰고 있습니다. [이 표현은 “즉시 " (4회 수 8:18. 19; 행 12:7; 22:18), “곧" (6회: 행 25:4; 딤전 3:14; 바룩서 4:22. 24. 25; 집회서 27:3), 1l7) “갑자기 " (3회 시 2:12; 겔 29:5; 마카베오3서 5:43) “확실히 즉 무엇인가 일어날 것의 확실성을 강조하는 표현(6회 신 11:17; 28:20; 삼상 23:22; 롬 16:20; 계 1:1; 22:6)으로 사용된다.]

  • @Haneulpum
    @Haneulpum 2 года назад +3

    (눅 18:1) 예수께서 그들에게 항상 기도하고 낙심하지 말아야 할 것을 비유로 말씀하여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에 낙심하지 말것을 비유로 하신 것입니다.
    그럼 이 비유를 듣고 '아 낙심하지 말아야 겠구나' 라고 생각해야겠죠?
    (눅 18:7) 하물며 하나님께서 그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풀어 주지 아니하시겠느냐 그들에게 오래 참으시겠느냐
    (눅 18:8)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속히 그 원한을 풀어 주시리라 그러나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하시니라
    우리가 기도하며 낙심하는 이유는 뭡니까? 응답이 오지 않아서 입니까? 아닙니다. 낙심하는건 듣는 이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하물며 하나님은 재판관과 다르다 우리 기도를 듣고 계신다가 초점입니다.
    하나님은 그런 분이 아니니 기도하며 낙심하지 말아라가 핵심입니다.

    • @LogosCommunity
      @LogosCommunity  2 года назад +1

      예 그리스도인은 세상의 불의한 재판관을 만날 때 낙심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 나라를 추구하며 끝까지 소망을 가지고 나아가야 합니다. 그렇다고 기도 응답을 받는 비결로 땡깡 기도를 가르치는 현재 기독교 일부의 가르침은 맞지 않습니다. 기도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 기도가 하나님을 코너에 몰아붙여 응답하지 않고는 견딜수 없을 정도로 생떼를 부려야 한다는 식의 가르침은 아닙니다. 제 영상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다시 들어보시면 하나님 나라의 완성을 향한 소망을 잃지 말아야 함을 강조하고 있음을 아실 것입니다.

    • @Haneulpum
      @Haneulpum 2 года назад

      @@LogosCommunity 그렇게 치면 성경 해석이 전부다 하나님 나라의 완성을 향한 소망이 될거 같은데요? 본문이 말하고자 하는 바와 전혀 다른 방향 같습니다

    • @joshualee4870
      @joshualee4870 Год назад

      이 사람은 좌파 사상으로 성경을 해석 합니다.그쪽 입니다

    • @treebush2
      @treebush2 Год назад +1

      @@LogosCommunity님에 해석은 본문과는 맞지 않습니다. 하나님께 생떼쓰는 것은 완전히 올바르지 않은 것이나 기도하는 것 자체에 오해를 불러일으키기 쉽습니다. 그리고 이 본문에서는 그런 해석을 하라고 주신 비유가 아니라고 봅니다.본문에 의하면 “밤낮 부르짖는“는 끈질긴 기도는 예수님께서 원하신 바입니다. 그런데 님의 해석은 기도를 포기하게 만들어버리는 동기가 어긋난 해석인듯 합니다.
      1. 기도의 양은 중요하다
      2. 하나님을 인식한 기도 그 분의 살아계심과 절대주권을 인정
      3. 기도의 내용도 중요하다. 끝내 어긋난 기도제목이라도 결국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