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전투는 쾰른 대성당 전투로 유명한 전투였고 퍼싱전차장과 판터전차장은 고의치않게 민간인이 탑승한 차량이 빠져나가는 영상에서 퍼싱,판터의 기관총발사로 민간인이 죽은사건으로 수년이 흐르고 그둘은 다시만나 이야기하고 양측 군인들은 죽은 민간인에 용서를 구했고 서로 친해졌다는 엔딩으로 끝났습니다
17 파운더포에 1200 미터 에서 티이거를 일격에 잡을수 있었지만 기록에 따르면 800 미터 혹은 600 미터 에서도 도탄 되는 경우도 있었다네요. 800 미터 거리 에서 두 발의 명중탄을 날렸는데 모두 튕겨 나가서 영국군은 등줄기에 땀이 났다더군요. 물론 그 티이거는 부리나케 도망 갔습니다. 파이어 플라이가 한 대가 아니란걸 알아서요.
@@파크냐아수투아루 1. ruclips.net/video/cNGGt1ORO-0/видео.html Sherman Firefly vs King Tiger | July 1944 | Tank Duel ----------------------> 44년 7월 18일, 파이어플라이 서부전선 최초 킹타이거 격파. 2. ruclips.net/video/V-jGdZ5XWNM/видео.html Sherman Firefly vs SS Panthers - Tank Battle At Normandy, France ------------------------------> 44년 7월 9일, 캐나다군 파이어플라이 판터 7대 격파. 3. ruclips.net/video/IrEtdMkFA00/видео.html Tank Battles of WW2 - The Firefly Ace that knocked out 5 Panthers with 5 rounds ------------------> 44년 7월 14일, 파이어플라이 1대가 5번 사격, 5대 판터 격파 노르망디 전역에서 미하일 비트만이 탄 타이거 역시 영국군 파이어플라이에게 격파당해 전사. 4. ruclips.net/video/R4LyLCOUkzI/видео.html Cromwell vs 2 Panther tanks | September 1944 | Tank Duel ----------------------> 노르망디 돌파 후 44년 9월 19일 네덜란드, 영 크롬웰 전차 판터 2대 격파. 파이어플라이와 같은 17파운드 포를 장비한 크롬웰도 판터 타이거 격파 가능. 크롬웰은 당시 전차 중에선 기동성 가장 좋아 최고 속도 시속 약 65km/h. 5. ruclips.net/video/tRxU0B8cybY/видео.html Comet Tank vs Tiger Tank | April 1945 | Tank Duel ----------------------------> 45년 4월 종전 직전, 영 코메트(센츄리온 직전 모델) 타이거 격파 여기 영상의 코메트 모습은 현대 주력 전차 유사, 하지만 센츄리온으로 바로 대체된. 최초의 MBT인 센츄리온은 너무 늦게 투입되어 실전 경험 없었음. . 영국은 43년 무렵 MBT 개발을 시작했고, 그 사이 과도기에 미 셔면에 17파운드 포를 장착한 파이어플라이 및 크롬웰 등으로 응급 조치하며 버틴 것. 하지만 노르망디 상륙 때 미군은 타이거 판터 대비 측면에선 사실상 멍 때렸던. 노르망디 전역, 독일 기갑부대의 약 80%는 영국군이 담당. 노르망디 전역에 투입된 미국과 영국의 전차 중에서 전차포로 독일 판터나 타이거를 격파할 수 있었던 것은 영국군 파이어플라어-크롬웰 정도. 파이어플라이 역시 약한 장갑 때문에 극심한 피해를 당했지만, 독일 타이거나 판터 역시도 파이어플라이에게 먼저 공격당하거나 매복에 걸리면 격파당했기도. 노르망디 전역은 이미 독일군이 방어진지를 구축한 이후에 벌어진 전투로, 탁 트인 들판에서 전차가 고속 기동하는 전투 아닌 보카쥬 지형에서의 매복성 전차 전투. 처음엔 공격하는 영국군 전차가 매복한 독일군 전차에게 당하는 위치였지만, 전투가 계속되면서 독일군 전차도 영국군 매복이나 배후 침투에 당해 격파되었던. 독일의 그 어떤 전차라도 격파할 수 있는 전차포를 가진다는 것은 무시할 수 없는 겁니다. 원거리에서는 약한 장갑 때문에 독일 타이거에게 당할 위험이 컸지만, 보카쥬 지형에선 원거리 아닌 근접 전투도 많았기에 파이어플라이는 나름 역활을 한. 하지만 미군의 일반적인 셔면은 판터나 타이거에게 상대가 되지 않았습니다. 독일 패전 직전인 1945년 1월, 2대의 독일 판터가 21대의 미 셔먼과 교전했을 때 ----------------> 셔먼 9대 격파 + 셔먼 12대 포획. 만일 보통의 셔먼만 아닌 파이어플라이와 혼성 편성되었다면 판터의 저런 전과 불가능. 45년에도 저랬으니 실전 경험 없었던 44년 노르망디에선 더 취약했을 것. 2 SS Panthers vs. 21 US Shermans ruclips.net/video/86K0ncTkAkA/видео.html
@@파크냐아수투아루 노르망디, 미군의 코브라 돌파는 어떻게 가능했는가? ruclips.net/video/p-9w2J5s0xU/видео.html 코브라 돌파 직전 까지, 독일 기갑부대 약 80% 및 거의 모든 타이거 전차는 까앵에서 영국군과 교전. 그 빈 틈으로 미군의 돌파. 까앵 최종 함락 단일 작전에서 영국군은 약 500대의 전차 손실. 당시 영국군 총 전차의 약 35%를 단일 작전에서 손실. 까앵 함락 때 독일군 전차 약 600대 및 독일의 거의 모든 판터 및 타이거 전차가 영국군에 붙들려 고착 분쇄되어 나감. 당시 미군 전면에 배치된 독일 전차는 약 150대, 판터나 타이거는 거의 없었고. 노르망디 전역 종결 때 까지 교전국들의 최종 전차 손실. 영국 약 1200대. 독일 보병을 주로 상대했던 미국 역시 약 1200대 손실. 독일은 약 1300대. 당시 미 지상군이 독일 주력을 담당했던 영국과 거의 동일한 전차 손실을 당했다는 것은 미군이 신병 수준이었기에. 독일이 당한 전차 손실은 전차 대 전차 전투 보다는 공중공격 및 함포사격 등 피해나 전차전 때 궤도 손상 후 후퇴할 때 유기 자폭 많음. 즉 전차 대 전차 전투에서 영국과 미국이 독일 전차와 겨루기는 힘들 정도의 압도적 성능 차이. 패튼의 미군은 유능했고, 영국군은 무능했던 것 아님. 영국군은 노르망디 전역 독일 주력 기갑부대를 몸빵으로 처절하게 공격하며 독일군을 제거한 것. 미국과 영국은 불행히도 45년 초가 되어서야 타이거와 대등하게 전투할만한 신형 전차를 전선에 투입. 하지만 너무 늦게 투입되어 교전할만한 독일 전차 기갑부대 자체가 소멸해 별 전과 없음. ------------------------------------------------------------------------------------------------ 노르망디 전역 미군의 코브라 돌파에 대한 다큐 링크를 걸면 유튭에서 글이 삭제되곤 해서 간단 소개합니다. 노인이 된 브래들리 장군의 인터뷰 및 코브라 돌파 상세한 과정을 다룬 다큐인데, 그 유튭 영상엔 수 많은 영미권의 댓글들로 넘쳐났습니다. -------------------> 패튼이 코브라 돌파한 것 아닌 것에 놀라고, 패튼이 노르망디 상륙에 참여하지 않은 것에 놀라고, 그 영상 제목이 영어로 패튼의 코브라 돌파라는 어구도 포함되었는데 내용적으로 패튼은 나오지 않고 브래들리만 나왔기에 영상 제목을 바꿔야한다는 댓글들도 있더군요. 패튼대전차군단 할리웃 영화 영향력 때문인지 미국 일반인들도 패튼이 코브라 돌파 했던 것으로 알고 있는. 흔히 패튼이 지휘한 미3군이 코브라 돌파 했다고 알려졌지만, 실상은 패튼이 아닌 브래들리 휘하 미1군이 코브라 돌파를 해냈고 패튼은 그 이후에, 재편성된 신규 미3군의 지휘관으로 투입된 겁니다. 브레들리의 코브라 돌파는 44년 7월 말 이루어진. 노르망디 상륙 당일만이 아니라 상륙 후 1달이 넘어서 까지 패튼은 영국 본토에서 대기. 코브라 돌파를 해낸 미1군 지휘관, 오마 브래들리가 노르망디 전역에 대해 직접 서술한 내용. 맨 앞 첫 구절만 우리 말로 옮기면 ---------------------------------> (영국군은 독일군을 갈아버리기 위해 깡의 독일 기갑부대로 진입했다, 미군이 코브라 돌파를 해낼 수 있도록.) The British drew in German armour at Caen to grind it up, to allow the Americans to break out in Operation Cobra. General Omar Bradley wrote......... 압도적 전차 성능 차이로 독일군을 갈아버리는 동안 영국군도 갈려나갔습니다. 소개된 뒷 부분을 옮기면 (... ... 대부분의 사람들이 진격 속도와 전진한 거리로 그 전투의 성공을 평가한다는 것을 고려하지 않고, 즉 영국군의 돌파라는 자부심을 계산하지 않고 몽고메리는 최종 작전 계획에 서명했다... ... 영국군은 인내와 자제력으로 그들에게 부여된 수동적 역활을 견뎌냈다.) -------------------------> 많은 이들은 인용한 원문 마지막 부분 주장과 같이, 군이 적진을 돌파하는 진격 속도와 전진 거리로만 성공과 능력을 평가합니다. 하지만 누군가 적 주력을 견제-고착- 섬멸 등을 해야, 그런 돌파가 가능한. 40년 프랑스를 항복시킨 전격전은 적 주력을 견제만 하는 뒤통수 때리는 돌파, 하지만 44년엔 견제만으로는 돌파가 불가능했던. 40년엔 장난감 수준의 전차로도 전격전이 가능했지만, 전쟁 말에는 그 어떤 중무장 전차도 쉽게 뚫을 수 없이 변해버린, 게다가 전차 성능에선 독일의 압도적 우세 상황에서, 누군가는 자신이 갈려나가면서 적 주력을 고착-분쇄시켜야만 했던. --------------------------> 노르망디 전역, 당시 미군은 독일군 주력을 상대할 역량이 없었기에, 영국군이 갈려나가면서 독일군을 갈아버리는 별로 폼나지 않는 수동적 역활을 담당했고, 그로 인해 발생한 미군 지역의 독일군 방어력 약화를 이용해 미군이 돌파하도록 상륙 전에 이미 작전 계획을 세웠던 것. ----------------> 오마 브래들리가 얼마나 겸손하고 사려 깊은 지휘관인지 패튼의 알려진 언행과 비교해보길. 만일 패튼이 코브라 돌파를 지휘했고 성공시켰다면, 오마 브래들리와 같이 서술하기는 힘들었을 것. 모든 것이 위대한 미국과 탁월한 자신의 능력으로 독일군을 분쇄한 것이라고 했을 가능성 큰. 그렇다면 패튼은 왜 이렇게 과대 평가되고 널리 알려졌겠습니까? ----------------> 극한의 할리웃 영향력? 또한 벌지 전투는 미국 역사상 가장 결정적 지상전 승리이기에 패튼을 미국의 영웅으로 부각시킬 필요성도 있었을 것. (콰이강의 다리)-(패튼 대전차군단) 두 영화는 모두 아카데미 작품상을 받았지만, 영화 내용과 성격은 완전히 상반되죠. 성조기 나부끼고 번쩍이는 별 박힌 철모에 상아 손잡이 권총의 지휘관이 2차대전 독일군 괴멸시킨 것으로 선전하는 영화가 과연 아카데미 작품상을 받을만한 수준인지 지극 의심스럽지만 받았답니다. 어릴 때는 멋지다고 생각했는데, 나중에 역사를 좀 알게 된 이후에 그 영화 다시 보니 참... 자잘한 것 하나 더 추가한다면, 강릉에 잠수정 침투했을 때, 소탕전 나선 우리 군 일부 번쩍이는 계급장 때문에 저격당해 전사. (오마 브래들리 서술 관련 펌. The British drew in German armour at Caen to grind it up, to allow the Americans to break out in Operation Cobra. General Omar Bradley wrote......... While Collins was hoisting his VII Corps flag over Cherbourg, Montgomery was spending his reputation in a bitter siege against the old university city of Caen. For three weeks he had rammed his troops against those panzer divisions he had deliberately drawn towards that city as part of our Allied strategy of diversion in the Normandy Campaign. Although Caen contained an important road junction that Montgomery would eventually need, for the moment the capture of that city was only incidental to his mission. For Monty’s primary task was to attract German troops to the British front that we might more easily secure Cherbourg and get into position for the breakout. In this diversionary mission Monty was more than successful, for the harder he hammered towards Caen, the more German troops he drew into that sector. Too many correspondents, however, had overrated the importance of Caen itself, and when Monty failed to take it, they blamed him for the delay. But had we attempted to exonerate Montgomery by explaining how successfully he had hoodwinked the German by diverting him toward Caen from the Cotentin, we would have also given our strategy away. We desperately wanted the German to believe this attack on Caen was the main Allied effort. But while this diversion of Monty’s was brilliantly achieved, he never the less left himself open to criticism by overemphasizing the importance of his thrust toward Caen. Had he limited himself simply to the containment without making Caen a symbol of it, he would have been credited with success instead of being charged, as he was, with failure at Caen. For Monty’s success should have been measured in the panzer divisions the enemy rushed against him whilst Collins sped on toward Cherbourg. Instead, the Allied newspaper readers clammered for a place name called Caen which Monty had once promised but failed to win for them. The containment mission that had been assigned Monty in the Overlord plan was not calculated to burnish British pride in the accomplishments of their troops. For in the minds of most people, success in battle is measured in the rate and length of advance. They found it difficult to realise that the more successful Monty was in stirring up German resistance, the less likely he was to advance. For another four weeks it fell to the British to pin down superior enemy forces in that sector while we maneuvered into position for the US breakout. With the Allied world crying for blitzkrieg the first week after we landed, the British endured their passive role with patience and forbearing.)
@@파크냐아수투아루 깨진다면 롬멜 신화 아닌, 패튼의 코브라 돌파 신화가 더 쉽게 깨집니다. ruclips.net/video/34oR2D1GVU4/видео.html : BREAKOUT from NORMANDY: General Patton's Operation Cobra 패튼은 북아프리카에서 별다른 전과 없었고, 노르망디 코브라 돌파 순간에도 전투 지휘하진 못했고. 첨부한 동영상에 달린 댓글에 그런 점에 충격받은 이들의 대화가 있어서 소개합니다. 코브라 돌파 시점 까지 노르망디 전역에 대한 상세한 소개 영상인데, 제목은 패튼의 코브라 돌파지만 내용적으로 패튼은 거의 언급도 되지 않고, 패튼 아닌 브래들리 내용이 거의 다라, 혼란스러워하는 댓글들이죠. 44년 7.25일 브래들리 미1군 코브라 작전 개시 44년 7.28일~7.31일, 독일군 방어선 붕괴 시작되고. 7.31일, 브래들리 미1군 보카쥬 벗어나 프랑스 내륙으로 돌입. 브래들리 미1군 코브라 돌파 이후 신규 편성된 미3군을 패튼이 지휘 시작. 즉 패튼은 코브라 돌파와 아무런 상관 없는. 브래들리 미1군의 코브라 돌파, 영국군이 노르망디 전역 독일 기갑부대의 80% 및 거의 모든 타이거 전차 몸빵하며 고착 분쇄 공세를 펼칠 때 독일의 모든 예비 전력이 영국군 지역으로 투입되어 미군 담당 지역 독일 방어력이 매우 취약해져. 패튼은 할리웃 선전 최대 수혜자 성격이 있습니다. 북아프리카 미 기갑부대의 사실상 첫 데뷰전인 캐서린 협곡 전투에서 미군 거의 전멸당하자, 새로운 지휘관으로 패튼이 교체 투입 시점 43년 2월경. 43년 5월 튀니지에서 독-이 추축국 25만 항복까지 별다른 전과 없는. 시칠리에서도 미군은 별다른 전투 없이 팔레르모 입성, 거의 지프 타고 손들면서 팔레르모 입성. 에트나 화산 동부지역에서 격결한 전투하며 전진한 영국군과 달리. 공황장애로 의무대 있던 몸 멀쩡한 사병 뺨싸대기 날린 것 언론보도로 사과 및 문책되어 일선 지휘에서 배제. 3군 부임 전까지 노르망디 상륙일만 아니라 그 후 약 1달 후까지도 노르망디에 없었죠. 영국에서 가상 페이퍼 부대 지휘관으로 대기. 코브라 돌파되는 시점까지도 전투 지휘를 하지 못하고 재편성되는 되는 3군의 지휘관으로 돌파를 기다리는 중이었고. 패튼이 실질적으로 능력을 보인 것은 벌지 전투가 처음입니다. 하지만 할리웃 영화 패튼대전차군단, 패튼이 북아프리카, 시칠리, 노르망디 다 한 것 같은 착각 들 정도. 패튼은 사실 롬멜과 단 1번의 교전도 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할리웃 효과로 패튼이 롬멜의 가장 강력한 라이벌이 된. 롬멜은 패튼과는 다릅니다. 적당히 다른 것이 아니라 너무나. 롬멜은 패튼과 같은 여러 실체 없는 승리의 주인공 아닌. 국가 차원 지원에서도 압도적으로 불리했고. 제대로 지원해주지도 못했고, 지원할 능력도 안되었던 독일 최고 지휘부와 독소전 투입 일부 장성들은 롬멜이 독일의 대전략에 혼선을 가져와 전쟁 수행을 어렵게 했다고 비난을 했습니다. 그것이 바로 롬멜 신화 깨부수기의 시발점임도 인정해야만 할 것. 롬멜 신화는 적인 영국군 장병들로부터 시작되었지만, 롬멜 신화 깨부수기는 롬멜의 조국 독일에서 싹이 텄습니다. 롬멜은 2차대전 파탄난 독일의 대전략 수립할 위치에 없없고, 야전지휘관으로서 최선을 다해 싸우고 패했던 것. 부족한 보급을 기다린다고 온다는 아무런 보장도 없는 상태에서, 적극적 공세로 토부룩 함락해 대량의 물자 탈취해 엘알라메인 까지 진격. 엘알라메인을 뚫고 수에즈까지 진격해 수에즈 이집트에 집적된 대규모 물자까지 확보하려 했던 것은 전략적 오판 아닌 주어진 결핍된 환경에서 생존을 위한 몸부림이었을 것. 그런 롬멜에게 전략적 식견 부족 운운은 것 지나친. 독일 국가 차원의 전략적 파탄을 야전지휘관에게 묻는 것은 책임 전가이며 비합리적인 태도. 코브라 돌파 영상 관련 댓글 일부 펌. ( John Emerson 3개월 전 Interesting. General Patton was never mentioned in this video. 22 Carl Welty Carl Welty 2개월 전 Good point - 2 Todd Is god Todd Is god 2개월 전 Because his command of the 3rd army had to wait until they were activated, which was immediately after Cobra 6 John Emerson John Emerson 2개월 전 @Todd Is god Yeah, "General Patton's Operation Cobra" and he isn't even there yet. Mis-titled I guess. 7 Jc Wheeler Jc Wheeler 1개월 전 @John Emerson 997ot Ronnie Bishop Ronnie Bishop 21시간 전 He wasn’t involved with this operation it was Bradley all the way. Patton was in England. )
17파운드포탄은 초기형 장갑관통용 APDS를 적용해서임. 이게 영상에 나오는 분리철갑탄임. 17파운드포 발사시 주퇴복좌기가 뒤로 길게 되어 탄장전이 힘들어서(영상에 나온 탄피가 긴 탄약) 그래서 포탑 뒤를 잘라서 공간을 늘림. 영국에 공급된 M4와 M4A1은 장전수용 해치가 없었음. 뭐 나중에 해치 구멍을 뚫음. 그래서 개량형 장전수용 해치가 달린 M4에 17파운드를 장착하면 그 해치를 사용 못하여 구형포탑을 개조하고 장전수용 해치를 새로 뚫음. 포수 자리가 좁아서 포수는 비스듬히 앉고 하리를 굽히고 한손을 밑으로 길게 뻗어서 상하승 레버를 조작해야했음. 전쟁후까지도 상당수의 파이어플라이가 m4로 개조되어 유럽국가, 이집트 등에 뿌려졌고 나중에 남미국가들에게 팔림. 아르헨티나 내전에서 몇대 파괴됨. 미국도 구형 75mm 포탑 셔먼에 76mm 포를 장착하는데 성공하고 신형 AP탄 공급이 대량 가능해졌는데 전쟁 끝나고였으며 이 개조형 구형포탑 76MM개조 셔먼은 유럽 각국과 유고슬라비아, 인도, 파키스탄에 공여됨. 인도 파키스탄전쟁에 투입되기도했고 1990년대 유고 ,코소보내전에서 이 셔먼들이 사용됨. 영화 켈리의 영웅들에 나오는 셔먼들이 이 76mm 포 교체 구형 포탑셔먼임( 유고슬라비아)
영상 감사합니다 연합국도 독일과 마찬가지로 전쟁 후반 괴물 전차 프로젝트가 잇엇고 여러 테스트 모델을 만들었습니다 영국의 야크트타이거로 불린 토터스 중전차(78톤) 미국의 T-28 대전차 자주포 (86톤) 155mm를 주포로 장착한 T30 중전차(64톤) 등입니다 모두 몇대만 만들고 대전이 끝나 중단되는데 이것도 기회되시면 소개 부탁드립니다
여담으로 미군이 파이어플라이 도입을 거절한 건 이미 이 전차가 등장했을 시기인 43년 말이면 이미 90mm 대전차포 M3의 개발이 완료된 시기였고 76mm 셔먼의 생산도 본격적으로 시작되던 시점이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영국조차도 파이어플라이의 요구수량을 못 채워서 M10 GMC에다 17파운더를 달아주기도 할 만큼 사정이 여의치 못했습니다.
거기에 덧붙여서 1945년 초, 독일군의 야수시리즈를 앞세운 아르덴 대공세로 인해 핀치에 몰린 미군 사령부는 급하게 독일 중전차에 대항할 수 있는 수단을 닥치는 데로 긁어모았고 이로 인해 M4A3(17pdr), 즉 미제 파이어플라이도 100여대가 제작되었습니다. 하지만 그 시점엔 이미 독일군 서부집단군이 완전히 붕괴해 있었죠
이론상으론 1000m 밖에서 정확히 90도 각도를 맞췄을때 문제는 그만큼의 조준경과 명중률이 뒷바침 되지않았다는것과 300~500m 내외가 아니라면 교전중인 전차가 후퇴할시 사선이나 그 역 방향 후퇴해 경사각이 생긴다는거 1000m 내에서 도탄되는 경우가 바로 명중률과 기동중인 전차의 경사각 이 부분
셔먼은 흔히 생각하는 중형전차니까 중전차보다 작겠지? 라는 생각을 뺨날려줄 정도로 그냥 똑같이 큽니다. 게임은 게임일뿐.. 단지 무게가 가볍기에 중형전차로 분류된 전차.. 비슷한 예로 미 해군의 알래스카급 중순양함. 전함급 크기 + 12인치 대구경 주포인데 장갑을 포기하고 속도를 얻어 배수량이 낮기에 중순양함으로 분류.. 훗날 이스라엘이나 우리나라에서 105밀 장포신 얹어놓은 마개조 끝판왕들도 잘 굴러다닌걸 생각하면 진짜 대단한 전차.
셔먼이 강려크한 17파운더를 얻었지만..... 1. 셔먼의 둥근 포탑에 17파운더는 좀컸다. 그결과 포탑내부는 좁았고 부각과 수직안전기는..... 2. 17파운더의 강력한 포구화염. 포구화염이 강해서 승무원들은 눈갱을 -으악!내눈!- 당해야만 했고, 또한 밝은 빛으로 적에게 자주 들켰으며, 위장용 풀떼기에도 불이 붙었다. 3. 어마무시한 어그로. 안그래도 전고가 높았던 셔붕이에다 길다란 17파운더+포구섬광= 나 여기있소! 가 되버렸고, 17파운더의 무시무시한 위력은 독일군도 잘 알았기에 제거대상 1순위에 들어가서 '불파리'의 어그로는 더심했다. 하지만 이런 문제들을 제치고 전장을 누비며 독일의 야수를 사냥한 파이어플라이에게 박수를 쳐주길 바랍니다! ㅋㅋ
셔먼도 엄청 마개조가 많아서 셔먼 점보같은 경우 차체무게만 8톤이 늘어서 현가장치도 대형화되고 포탑도 커짐 즉 방어력은 티거수준 그러나 포는 기존 75밀리라 이거을 76밀리로 업건한게 ez8시리즈였습니다만 티거와 비슷한 거리에서 티거를 격파하려면 철갑탄이 있어야했는데 2차대전말기까지 충분한 수량이 생산되지못했음 6.25때야 충분한 수량이 확보되어 t34와 충분히 대결할만하고 중동전에서도 초기 t54도 때려잡음
02:08 전차 덤블링 웃기네 ㅋㅋㅋㅋㅋㅋㅋ
승무원 : 히히힣 돌격!
으아아아ㅏ아ㅏ아앙
그렇게 그들은 전시에서 강제 물구나무서기를 하였다고 한다.............
어..어어어어???
@@ronaldore1089 으아앙 개귀엽당ㅋㅋ
승무원들은 중상을 입고 입원했을 듯.
요약: 9cm 철판을 두른 가로 2.5m 세로 6m 높이 3m의 쇳덩이는 이런 무기를 달고 다닙니다
넌 왜 없는곳이 없니호랑아 나랑 취향이 비슷한가
@히힛힛 영국: 우리는 뚫기만 한다
@@sonjulmin ㄹㅇ''유튜브''를 보는 폐인이라서 그럼ㅋㅋㅋ
@@sonjulmin ㄹㅇㅋㅋ
@@dice_06no작약 no폭발 no파편
마지막 전투는 쾰른 대성당 전투로
유명한 전투였고 퍼싱전차장과 판터전차장은
고의치않게 민간인이 탑승한 차량이
빠져나가는 영상에서 퍼싱,판터의 기관총발사로 민간인이 죽은사건으로
수년이 흐르고 그둘은 다시만나 이야기하고
양측 군인들은 죽은 민간인에 용서를 구했고
서로 친해졌다는 엔딩으로 끝났습니다
야수 시리즈잡기 각국
소련:구경 존나 키워서 조지기
미국:공군!
영국:(음흉한 미소)
@@스트라이커-d1y 슬며시 꺼내드는 랭커스터는 아니고 셔먼 파이어플라이
@이동현 대신 블록버스터를 드리겠습니다! 블록버스터 투1하
일본: 반자이
기관총엔딩
@낙빠리콧삐 교환비율 4대1이라는점이
진짜 어지간해서 댓글 안다는데 이런 양질의 영상 너무감사합니다
내용도 내용이지만 잘 편집된 다큐보는 느낌에 찰떡같은 자료영상이 이 채널을 꾸준하게 보는 이유인거같네요
저번에는 좋은무기 소개하다가 드디어 캐러브는 다시돌아왔다 나사하나빠진무기를 설명하고 나중에는 조국을위해 싸운전차라며 감동을 주고 떠난다
진짜 나사기 빠진건 케러브의 무기선정ㅋㅋ
스포하지말라고 ㅋㅋㅋㅋㅋ
아 다음꺼 스포당함 ㅋㅋ
미군의 뻘짓(?) 보병전력은 M4 셔먼 75미리가 하고 대전차전은 M10 울버린이한다. 근데 둘이 병과가 달라서 따로 다닌다(?)
그건 상대편인 독일도 마찬가지였죠 전차를 다루던 기갑사단은 대전차전력인 구축전차로 이루어진 전차대대를 만들어서 전력 보강을 하고 싶었지만
이전부터 돌격포와 구축전차를 전담운용했던 포병들은 자신의 자산(?)을 기갑사단에 뺏기지 않을려고 서로간 파워게임을 했었죠
@@최고소비에트 ㅋㅋㅋ티거는 솔찍 확찢아니었나요 ㅋㅋㅋ
처음에 76달자했는데 75도 충분하다고했던 윗대가리들은 주리를 틀었어야됨 당시 전투원들은 얼마나 무서웠을까요 75미리 주포 씨알도안먹히는거 보고
참고:다음 무기는 이글님의 블로그에서 짐작가능하다
그래도 언제나 실물이 더 낫다.
ㄹㅇㅋㅋ
믿고보는 캐러브님...! 오늘도 재밌는 영상 감사합니다
역시 흉악한건 영국에서 다 만드네요 ㅋㅋㅋㅋ
세상 흉악한거 전부 영국놈들이 만드는 말은 진리인듯 ㅋㅋㅋㅋ
그런 흉악한 걸 만들어서 최초가 많은 듯
그 아들도 애비 닮아서 원자폭탄에 이어서 F-22 B-2 F-35 줌왈트급 등등 만드는 거 보면 흉악함 2대 명가노
@@파버카스텔 지진폭탄은 덤
해적의 나라잔아
ㄴㄴ
섬나라가 만듬
Ex) 일본 영국
17 파운더포에 1200 미터 에서 티이거를 일격에 잡을수 있었지만 기록에 따르면 800 미터 혹은 600 미터 에서도 도탄 되는 경우도 있었다네요.
800 미터 거리 에서 두 발의 명중탄을 날렸는데 모두 튕겨 나가서 영국군은 등줄기에 땀이 났다더군요. 물론 그 티이거는 부리나케 도망 갔습니다. 파이어 플라이가 한 대가 아니란걸 알아서요.
실제는 가다가 박살나기 일쑤였음. 나중에는 독일전차가 파이어플라이를 가장 먼저 잡아서 효과가 미미했음
도탄탄~ 도탄탄 도탄탄탄 도 탄탄 도탄탄 전차가 격파될겄 같습니
@@파크냐아수투아루
1. ruclips.net/video/cNGGt1ORO-0/видео.html
Sherman Firefly vs King Tiger | July 1944 | Tank Duel ----------------------> 44년 7월 18일, 파이어플라이 서부전선 최초 킹타이거 격파.
2. ruclips.net/video/V-jGdZ5XWNM/видео.html
Sherman Firefly vs SS Panthers - Tank Battle At Normandy, France ------------------------------> 44년 7월 9일, 캐나다군 파이어플라이 판터 7대 격파.
3. ruclips.net/video/IrEtdMkFA00/видео.html
Tank Battles of WW2 - The Firefly Ace that knocked out 5 Panthers with 5 rounds ------------------> 44년 7월 14일, 파이어플라이 1대가 5번 사격, 5대 판터 격파
노르망디 전역에서 미하일 비트만이 탄 타이거 역시 영국군 파이어플라이에게 격파당해 전사.
4. ruclips.net/video/R4LyLCOUkzI/видео.html
Cromwell vs 2 Panther tanks | September 1944 | Tank Duel ----------------------> 노르망디 돌파 후 44년 9월 19일 네덜란드, 영 크롬웰 전차 판터 2대 격파.
파이어플라이와 같은 17파운드 포를 장비한 크롬웰도 판터 타이거 격파 가능. 크롬웰은 당시 전차 중에선 기동성 가장 좋아 최고 속도 시속 약 65km/h.
5. ruclips.net/video/tRxU0B8cybY/видео.html
Comet Tank vs Tiger Tank | April 1945 | Tank Duel ----------------------------> 45년 4월 종전 직전, 영 코메트(센츄리온 직전 모델) 타이거 격파
여기 영상의 코메트 모습은 현대 주력 전차 유사, 하지만 센츄리온으로 바로 대체된. 최초의 MBT인 센츄리온은 너무 늦게 투입되어 실전 경험 없었음. .
영국은 43년 무렵 MBT 개발을 시작했고,
그 사이 과도기에 미 셔면에 17파운드 포를 장착한 파이어플라이 및 크롬웰 등으로 응급 조치하며 버틴 것.
하지만 노르망디 상륙 때 미군은 타이거 판터 대비 측면에선 사실상 멍 때렸던.
노르망디 전역, 독일 기갑부대의 약 80%는 영국군이 담당.
노르망디 전역에 투입된 미국과 영국의 전차 중에서 전차포로 독일 판터나 타이거를 격파할 수 있었던 것은 영국군 파이어플라어-크롬웰 정도.
파이어플라이 역시 약한 장갑 때문에 극심한 피해를 당했지만, 독일 타이거나 판터 역시도 파이어플라이에게 먼저 공격당하거나 매복에 걸리면 격파당했기도.
노르망디 전역은 이미 독일군이 방어진지를 구축한 이후에 벌어진 전투로, 탁 트인 들판에서 전차가 고속 기동하는 전투 아닌 보카쥬 지형에서의 매복성 전차 전투.
처음엔 공격하는 영국군 전차가 매복한 독일군 전차에게 당하는 위치였지만, 전투가 계속되면서 독일군 전차도 영국군 매복이나 배후 침투에 당해 격파되었던.
독일의 그 어떤 전차라도 격파할 수 있는 전차포를 가진다는 것은 무시할 수 없는 겁니다.
원거리에서는 약한 장갑 때문에 독일 타이거에게 당할 위험이 컸지만, 보카쥬 지형에선 원거리 아닌 근접 전투도 많았기에 파이어플라이는 나름 역활을 한.
하지만 미군의 일반적인 셔면은 판터나 타이거에게 상대가 되지 않았습니다.
독일 패전 직전인 1945년 1월, 2대의 독일 판터가 21대의 미 셔먼과 교전했을 때 ----------------> 셔먼 9대 격파 + 셔먼 12대 포획.
만일 보통의 셔먼만 아닌 파이어플라이와 혼성 편성되었다면 판터의 저런 전과 불가능. 45년에도 저랬으니 실전 경험 없었던 44년 노르망디에선 더 취약했을 것.
2 SS Panthers vs. 21 US Shermans
ruclips.net/video/86K0ncTkAkA/видео.html
@@파크냐아수투아루
노르망디, 미군의 코브라 돌파는 어떻게 가능했는가? ruclips.net/video/p-9w2J5s0xU/видео.html
코브라 돌파 직전 까지, 독일 기갑부대 약 80% 및 거의 모든 타이거 전차는 까앵에서 영국군과 교전. 그 빈 틈으로 미군의 돌파.
까앵 최종 함락 단일 작전에서 영국군은 약 500대의 전차 손실. 당시 영국군 총 전차의 약 35%를 단일 작전에서 손실.
까앵 함락 때 독일군 전차 약 600대 및 독일의 거의 모든 판터 및 타이거 전차가 영국군에 붙들려 고착 분쇄되어 나감.
당시 미군 전면에 배치된 독일 전차는 약 150대, 판터나 타이거는 거의 없었고.
노르망디 전역 종결 때 까지 교전국들의 최종 전차 손실.
영국 약 1200대. 독일 보병을 주로 상대했던 미국 역시 약 1200대 손실. 독일은 약 1300대.
당시 미 지상군이 독일 주력을 담당했던 영국과 거의 동일한 전차 손실을 당했다는 것은 미군이 신병 수준이었기에.
독일이 당한 전차 손실은 전차 대 전차 전투 보다는 공중공격 및 함포사격 등 피해나 전차전 때 궤도 손상 후 후퇴할 때 유기 자폭 많음.
즉 전차 대 전차 전투에서 영국과 미국이 독일 전차와 겨루기는 힘들 정도의 압도적 성능 차이.
패튼의 미군은 유능했고, 영국군은 무능했던 것 아님.
영국군은 노르망디 전역 독일 주력 기갑부대를 몸빵으로 처절하게 공격하며 독일군을 제거한 것.
미국과 영국은 불행히도 45년 초가 되어서야 타이거와 대등하게 전투할만한 신형 전차를 전선에 투입.
하지만 너무 늦게 투입되어 교전할만한 독일 전차 기갑부대 자체가 소멸해 별 전과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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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르망디 전역 미군의 코브라 돌파에 대한 다큐 링크를 걸면 유튭에서 글이 삭제되곤 해서 간단 소개합니다.
노인이 된 브래들리 장군의 인터뷰 및 코브라 돌파 상세한 과정을 다룬 다큐인데, 그 유튭 영상엔 수 많은 영미권의
댓글들로 넘쳐났습니다. -------------------> 패튼이 코브라 돌파한 것 아닌 것에 놀라고, 패튼이 노르망디 상륙에 참여하지 않은 것에
놀라고, 그 영상 제목이 영어로 패튼의 코브라 돌파라는 어구도 포함되었는데 내용적으로 패튼은 나오지 않고 브래들리만 나왔기에
영상 제목을 바꿔야한다는 댓글들도 있더군요. 패튼대전차군단 할리웃 영화 영향력 때문인지 미국 일반인들도 패튼이 코브라 돌파
했던 것으로 알고 있는.
흔히 패튼이 지휘한 미3군이 코브라 돌파 했다고 알려졌지만,
실상은 패튼이 아닌 브래들리 휘하 미1군이 코브라 돌파를 해냈고 패튼은 그 이후에,
재편성된 신규 미3군의 지휘관으로 투입된 겁니다. 브레들리의 코브라 돌파는 44년 7월 말 이루어진.
노르망디 상륙 당일만이 아니라 상륙 후 1달이 넘어서 까지 패튼은 영국 본토에서 대기.
코브라 돌파를 해낸 미1군 지휘관, 오마 브래들리가
노르망디 전역에 대해 직접 서술한 내용. 맨 앞 첫 구절만 우리 말로 옮기면 --------------------------------->
(영국군은 독일군을 갈아버리기 위해 깡의 독일 기갑부대로 진입했다, 미군이 코브라 돌파를 해낼 수 있도록.)
The British drew in German armour at Caen to grind it up, to allow the Americans to break out in Operation Cobra.
General Omar Bradley wrote.........
압도적 전차 성능 차이로 독일군을 갈아버리는 동안 영국군도 갈려나갔습니다. 소개된 뒷 부분을 옮기면
(... ... 대부분의 사람들이 진격 속도와 전진한 거리로 그 전투의 성공을 평가한다는 것을 고려하지 않고, 즉 영국군의 돌파라는
자부심을 계산하지 않고 몽고메리는 최종 작전 계획에 서명했다... ... 영국군은 인내와 자제력으로 그들에게 부여된 수동적 역활을 견뎌냈다.)
-------------------------> 많은 이들은 인용한 원문 마지막 부분 주장과 같이, 군이 적진을 돌파하는
진격 속도와 전진 거리로만 성공과 능력을 평가합니다. 하지만 누군가 적 주력을 견제-고착- 섬멸 등을 해야, 그런 돌파가 가능한.
40년 프랑스를 항복시킨 전격전은 적 주력을 견제만 하는 뒤통수 때리는 돌파, 하지만 44년엔 견제만으로는 돌파가 불가능했던.
40년엔 장난감 수준의 전차로도 전격전이 가능했지만, 전쟁 말에는 그 어떤 중무장 전차도 쉽게 뚫을 수 없이 변해버린, 게다가 전차
성능에선 독일의 압도적 우세 상황에서, 누군가는 자신이 갈려나가면서 적 주력을 고착-분쇄시켜야만 했던.
--------------------------> 노르망디 전역, 당시 미군은 독일군 주력을 상대할 역량이 없었기에,
영국군이 갈려나가면서 독일군을 갈아버리는 별로 폼나지 않는 수동적 역활을 담당했고, 그로 인해 발생한
미군 지역의 독일군 방어력 약화를 이용해 미군이 돌파하도록 상륙 전에 이미 작전 계획을 세웠던 것.
----------------> 오마 브래들리가 얼마나 겸손하고 사려 깊은 지휘관인지 패튼의 알려진 언행과 비교해보길.
만일 패튼이 코브라 돌파를 지휘했고 성공시켰다면, 오마 브래들리와 같이 서술하기는 힘들었을 것. 모든 것이 위대한
미국과 탁월한 자신의 능력으로 독일군을 분쇄한 것이라고 했을 가능성 큰.
그렇다면 패튼은 왜 이렇게 과대 평가되고 널리 알려졌겠습니까? ----------------> 극한의 할리웃 영향력?
또한 벌지 전투는 미국 역사상 가장 결정적 지상전 승리이기에 패튼을 미국의 영웅으로 부각시킬 필요성도 있었을 것.
(콰이강의 다리)-(패튼 대전차군단) 두 영화는 모두 아카데미 작품상을 받았지만, 영화 내용과 성격은 완전히 상반되죠.
성조기 나부끼고 번쩍이는 별 박힌 철모에 상아 손잡이 권총의 지휘관이 2차대전 독일군 괴멸시킨 것으로 선전하는 영화가
과연 아카데미 작품상을 받을만한 수준인지 지극 의심스럽지만 받았답니다. 어릴 때는 멋지다고 생각했는데, 나중에 역사를
좀 알게 된 이후에 그 영화 다시 보니 참... 자잘한 것 하나 더 추가한다면, 강릉에 잠수정 침투했을 때, 소탕전 나선 우리 군 일부
번쩍이는 계급장 때문에 저격당해 전사.
(오마 브래들리 서술 관련 펌.
The British drew in German armour at Caen to grind it up, to allow the Americans to break out in Operation Cobra.
General Omar Bradley wrote.........
While Collins was hoisting his VII Corps flag over Cherbourg, Montgomery was spending his reputation in a bitter siege against the old university city of Caen. For three weeks he had rammed his troops against those panzer divisions he had deliberately drawn towards that city as part of our Allied strategy of diversion in the Normandy Campaign. Although Caen contained an important road junction that Montgomery would eventually need, for the moment the capture of that city was only incidental to his mission. For Monty’s primary task was to attract German troops to the British front that we might more easily secure Cherbourg and get into position for the breakout.
In this diversionary mission Monty was more than successful, for the harder he hammered towards Caen, the more German troops he drew into that sector. Too many correspondents, however, had overrated the importance of Caen itself, and when Monty failed to take it, they blamed him for the delay. But had we attempted to exonerate Montgomery by explaining how successfully he had hoodwinked the German by diverting him toward Caen from the Cotentin, we would have also given our strategy away. We desperately wanted the German to believe this attack on Caen was the main Allied effort.
But while this diversion of Monty’s was brilliantly achieved, he never the less left himself open to criticism by overemphasizing the importance of his thrust toward Caen. Had he limited himself simply to the containment without making Caen a symbol of it, he would have been credited with success instead of being charged, as he was, with failure at Caen. For Monty’s success should have been measured in the panzer divisions the enemy rushed against him whilst Collins sped on toward Cherbourg. Instead, the Allied newspaper readers clammered for a place name called Caen which Monty had once promised but failed to win for them.
The containment mission that had been assigned Monty in the Overlord plan was not calculated to burnish British pride in the accomplishments of their troops. For in the minds of most people, success in battle is measured in the rate and length of advance. They found it difficult to realise that the more successful Monty was in stirring up German resistance, the less likely he was to advance. For another four weeks it fell to the British to pin down superior enemy forces in that sector while we maneuvered into position for the US breakout. With the Allied world crying for blitzkrieg the first week after we landed, the British endured their passive role with patience and forbearing.)
@@파크냐아수투아루
깨진다면 롬멜 신화 아닌, 패튼의 코브라 돌파 신화가 더 쉽게 깨집니다.
ruclips.net/video/34oR2D1GVU4/видео.html : BREAKOUT from NORMANDY: General Patton's Operation Cobra
패튼은 북아프리카에서 별다른 전과 없었고, 노르망디 코브라 돌파 순간에도 전투 지휘하진 못했고.
첨부한 동영상에 달린 댓글에 그런 점에 충격받은 이들의 대화가 있어서 소개합니다.
코브라 돌파 시점 까지 노르망디 전역에 대한 상세한 소개 영상인데, 제목은 패튼의 코브라 돌파지만
내용적으로 패튼은 거의 언급도 되지 않고, 패튼 아닌 브래들리 내용이 거의 다라, 혼란스러워하는 댓글들이죠.
44년 7.25일 브래들리 미1군 코브라 작전 개시
44년 7.28일~7.31일, 독일군 방어선 붕괴 시작되고. 7.31일, 브래들리 미1군 보카쥬 벗어나 프랑스 내륙으로 돌입.
브래들리 미1군 코브라 돌파 이후 신규 편성된 미3군을 패튼이 지휘 시작. 즉 패튼은 코브라 돌파와 아무런 상관 없는.
브래들리 미1군의 코브라 돌파, 영국군이 노르망디 전역 독일 기갑부대의 80% 및 거의 모든 타이거 전차 몸빵하며
고착 분쇄 공세를 펼칠 때 독일의 모든 예비 전력이 영국군 지역으로 투입되어 미군 담당 지역 독일 방어력이 매우 취약해져.
패튼은 할리웃 선전 최대 수혜자 성격이 있습니다.
북아프리카 미 기갑부대의 사실상 첫 데뷰전인 캐서린 협곡 전투에서 미군 거의 전멸당하자,
새로운 지휘관으로 패튼이 교체 투입 시점 43년 2월경. 43년 5월 튀니지에서 독-이 추축국 25만 항복까지 별다른 전과 없는.
시칠리에서도 미군은 별다른 전투 없이 팔레르모 입성,
거의 지프 타고 손들면서 팔레르모 입성. 에트나 화산 동부지역에서 격결한 전투하며 전진한 영국군과 달리.
공황장애로 의무대 있던 몸 멀쩡한 사병 뺨싸대기 날린 것 언론보도로 사과 및 문책되어 일선 지휘에서 배제. 3군 부임 전까지
노르망디 상륙일만 아니라 그 후 약 1달 후까지도 노르망디에 없었죠. 영국에서 가상 페이퍼 부대 지휘관으로 대기.
코브라 돌파되는 시점까지도 전투 지휘를 하지 못하고 재편성되는 되는 3군의 지휘관으로 돌파를 기다리는 중이었고.
패튼이 실질적으로 능력을 보인 것은 벌지 전투가 처음입니다.
하지만 할리웃 영화 패튼대전차군단, 패튼이 북아프리카, 시칠리, 노르망디 다 한 것 같은 착각 들 정도.
패튼은 사실 롬멜과 단 1번의 교전도 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할리웃 효과로 패튼이 롬멜의 가장 강력한 라이벌이 된.
롬멜은 패튼과는 다릅니다. 적당히 다른 것이 아니라 너무나.
롬멜은 패튼과 같은 여러 실체 없는 승리의 주인공 아닌. 국가 차원 지원에서도 압도적으로 불리했고.
제대로 지원해주지도 못했고, 지원할 능력도 안되었던 독일 최고 지휘부와 독소전 투입 일부 장성들은 롬멜이 독일의 대전략에
혼선을 가져와 전쟁 수행을 어렵게 했다고 비난을 했습니다. 그것이 바로 롬멜 신화 깨부수기의 시발점임도 인정해야만 할 것.
롬멜 신화는 적인 영국군 장병들로부터 시작되었지만, 롬멜 신화 깨부수기는 롬멜의 조국 독일에서 싹이 텄습니다.
롬멜은 2차대전 파탄난 독일의 대전략 수립할 위치에 없없고, 야전지휘관으로서 최선을 다해 싸우고 패했던 것.
부족한 보급을 기다린다고 온다는 아무런 보장도 없는 상태에서, 적극적 공세로 토부룩 함락해 대량의 물자 탈취해 엘알라메인
까지 진격. 엘알라메인을 뚫고 수에즈까지 진격해 수에즈 이집트에 집적된 대규모 물자까지 확보하려 했던 것은 전략적 오판 아닌
주어진 결핍된 환경에서 생존을 위한 몸부림이었을 것.
그런 롬멜에게 전략적 식견 부족 운운은 것 지나친.
독일 국가 차원의 전략적 파탄을 야전지휘관에게 묻는 것은 책임 전가이며 비합리적인 태도.
코브라 돌파 영상 관련 댓글 일부 펌.
( John Emerson
3개월 전
Interesting. General Patton was never mentioned in this video.
22
Carl Welty
Carl Welty
2개월 전
Good point -
2
Todd Is god
Todd Is god
2개월 전
Because his command of the 3rd army had to wait until they were activated, which was immediately after Cobra
6
John Emerson
John Emerson
2개월 전
@Todd Is god Yeah, "General Patton's Operation Cobra" and he isn't even there yet. Mis-titled I guess.
7
Jc Wheeler
Jc Wheeler
1개월 전
@John Emerson 997ot
Ronnie Bishop
Ronnie Bishop
21시간 전
He wasn’t involved with this operation it was Bradley all the way. Patton was in England. )
작약을 주고 관통력을 얻었다
???:작약은 적의 포탄 안에 있다.
@@웨마-w2f 유폭잼!
날탄:오 나 전에도 저런것이?
@@익명-k3w6u 애초에 날탄 자체가 철갑탄의 하위개념인데 예전에도 날탄 그 자체로 쓰려는 시도는 있었으나 이탈피의 분리가 힘들어서 그 모양으로 못만들고 결국 원추형탄으로 만들어진 철갑탄 사용한거임
@@익명-k3w6u 고속철갑탄:야,내가원조야(?)
이분의 컨텐츠는 그어떤 밀덕 영상과 비교해도 최상위급이고 거의 끝판왕급이다 솔직히 영상하나하나의 퀄리티는 지식스토리도 따라가지 못할정도로 고퀼이며 내용또한 충실하다👍👍👍
건들건들 있어요. 왠만한 다큐보다 수준 높아요.
@@dkc2018 ㄹㅇㅋㅋ 건들건들이 다큐식으론 최강자
@@dkc2018 거기는 근데 드립욕심과 밀덕에 빠져서 가끔 살인과 폭력을 미화하던데 이분은 정도를 지켜서 맘에 듬. 그리고 매화마다 단순히 무기의 성능과 발전과정이 아니라 그 역사적 의의와 시사점까지도 다루는 분은 이분이 거의 유일
@@lowlanz 미화함으로 여길수 있겠으나, 술이 식기전에 살인하고 돌아온 관우를 칭송하는 모습, 수천명 이상 대량 살인을 위해 고민하고 훈련한 이순신을 멋있게 묘사한다고 살인, 폭력을 미화하는 모습은 아니겠지요.
@@lowlanz 그건 너무 억까 아님?
이집 밀덕영상은 참 일품이야 내용도 뻑뻑하고 분량도 많이들었어
육수가 아주 진하오
스텐 기관단총도 그렇고...
성능을 떠나서 필료한 곳에 필료한 기능을 가진 무기가 최고의 무기인 것 같습니다.
-워썬더-
파이어플라이:작약이 고자
셔먼:장갑이 고자
IS-2:재장전이 고자
결론:현실은 그럴싸한데 썬더 세상에서는 그딴건 없음
티거: 유저가 고자
@@Hans_JKPL 독징징:내가...고자라니...!
셔먼 후기형: 정면 유효방호력 118미리
T-34: 90~95
4호 개량형: 80미리 정도
티거: 103미리
(탄착각 0도 기준으로 함)
@@기린-m1h 가장 단단한 셔먼이 점보일 정도
월탱세상에서는 골탄하나면 평등하답니다
오늘도 영길리의 흉악성을 담은 홍차 밀크티 한잔과 텍사스 토마호크 스테이크 한그릇 잘 먹고 갑니다. ㅎㅎㅋ
다음은...
비스마르크인가요??
그
톨보이 한테 터져버린 함선
비스마르크 치고는 포탑에 각이 좀 쎈데
중순양인듯
중순 아님 순양전함 같네요
H-44 전함
언제나 캐러브님 영상을 기다렸습니다~ 영상의 퀄리티와 나레이션이 좋습니다. 영상 잘보겠습니다~
역시 전쟁은
어느쪽이 더 또라이인지. 똘끼가 충만한 곳이 우세하지만 둘중에 하나가 먼저 정신차린곳이 승리하는 아주 골때리는 것
그것이 전쟁이다.
17파운드포탄은 초기형 장갑관통용 APDS를 적용해서임. 이게 영상에 나오는 분리철갑탄임.
17파운드포 발사시 주퇴복좌기가 뒤로 길게 되어 탄장전이 힘들어서(영상에 나온 탄피가 긴 탄약) 그래서 포탑 뒤를 잘라서 공간을 늘림.
영국에 공급된 M4와 M4A1은 장전수용 해치가 없었음. 뭐 나중에 해치 구멍을 뚫음.
그래서 개량형 장전수용 해치가 달린 M4에 17파운드를 장착하면 그 해치를 사용 못하여 구형포탑을 개조하고 장전수용 해치를 새로 뚫음.
포수 자리가 좁아서 포수는 비스듬히 앉고 하리를 굽히고 한손을 밑으로 길게 뻗어서 상하승 레버를 조작해야했음.
전쟁후까지도 상당수의 파이어플라이가 m4로 개조되어 유럽국가, 이집트 등에 뿌려졌고 나중에 남미국가들에게 팔림. 아르헨티나 내전에서 몇대 파괴됨.
미국도 구형 75mm 포탑 셔먼에 76mm 포를 장착하는데 성공하고 신형 AP탄 공급이 대량 가능해졌는데 전쟁 끝나고였으며 이 개조형 구형포탑 76MM개조 셔먼은 유럽 각국과 유고슬라비아, 인도, 파키스탄에 공여됨.
인도 파키스탄전쟁에 투입되기도했고 1990년대 유고 ,코소보내전에서 이 셔먼들이 사용됨. 영화 켈리의 영웅들에 나오는 셔먼들이 이 76mm 포 교체 구형 포탑셔먼임( 유고슬라비아)
이분영상 진짜 전부다 강추
버릴게 하나도 없을뿌러러
나레이션도 넘나 잼있음.
영상제작에 엄청난 성의가 있으신듯!
암튼 개강추
너무 재미있게 만드시는거 같아요 설명도 재미있고 쉬워서 좋습니다 ^^
셔먼전차가 확장성이 좋아서(남는 공간이 넓어서) 다양하게 개조하기 좋았죠.
셔먼 전차는 그래서 범용성이 우수했고요.
캐러브형님 진짜루 기다리고 있었습니다....ㅠㅠ
오늘도 엄청난 편집력을 기대하겠습니당ㅎ
감사합니다, 좋은 영상 매번 감사드립니다 :)
흠이 많아도 적절한 시기와 확실한 성능만 있으면 어떻게든 굴러가는게 세상 이치로군요 ㅎㅎ
전차만 그런게 아니라 사람도 그런것 같아요.
단점이 많아도 하나의 중요한 장점이 있으면 다 커버 되더군요.
월탱하던 아저씨가 보기에 참 편안한 영상이군요.
인게임내 성능도 참... 여러의미로 고증이 잘되있더라구요
월탱은 소련이 짱인데 … 고증이 잘 되었다기엔 소뽕게임…
@@핸즈쥬델 월탱은 헤치도 데미지 판정이 있어서... 고증이 안좋게적용됨
@@핸즈쥬델 월탱정도면 양반입니다. 워썬더 해볼래요? 아주 그냥 지네나라 국뽕이. 심지어 이게 그나마 덜해진거라는 게 더 심각
@@maple4801ㅋㅋㅋㅋ 떼삼사 야발놈들이죠 ㄹㅇ.. 분명 판터나 챌린저같은 애들로 정면 때렸는데 걍사빨로 튕기고 옆면쏴도 유폭은 커녕 화재도 안나고 포탑은 ㄹㅇ 돌머리 그 자체
영상 감사합니다 연합국도 독일과 마찬가지로 전쟁 후반 괴물 전차 프로젝트가 잇엇고 여러 테스트 모델을 만들었습니다 영국의 야크트타이거로 불린 토터스 중전차(78톤) 미국의 T-28 대전차 자주포 (86톤) 155mm를 주포로 장착한 T30 중전차(64톤) 등입니다 모두 몇대만 만들고 대전이 끝나 중단되는데 이것도 기회되시면 소개 부탁드립니다
밀덕영상 캐러브가 보름마다 업데이트 되면 소원이 없겠다
항상 응원합니다.
와.. 진짜 마개조의 끝판왕 언제 하시나 했는데 결국 하셨네요. 잘 봤습니다.
역시 뛰어난 스토리텔링... 항상 무기 외적인 부분도 많이 알아갑니다.
좋은 영상 제작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시원해지니깐 돌아오셨군 ㅋㅋㅋㅋㅋ 눈올때 다시봐요
기본적으로 영빠인데 너무 훈훈한 영상이네요... 특히 셔먼3대에 파이어플라이 1대를 붙인건 정말 탁월한 전략이라고 생각했습니다
??? 왜 저희는 작약탄이 하나도 없고 생 철갑탄만 있는거죠
@분홍남 왜 전진을 하나요...
@@박정민-p8q 아ㅋㅋ
@@박정민-p8q 그것이 영국이니까. 끄덕.
으악 작없찐이다
여담으로 미군이 파이어플라이 도입을 거절한 건 이미 이 전차가 등장했을 시기인 43년 말이면 이미 90mm 대전차포 M3의 개발이 완료된 시기였고 76mm 셔먼의 생산도 본격적으로 시작되던 시점이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영국조차도 파이어플라이의 요구수량을 못 채워서 M10 GMC에다 17파운더를 달아주기도 할 만큼 사정이 여의치 못했습니다.
거기에 덧붙여서 1945년 초, 독일군의 야수시리즈를 앞세운 아르덴 대공세로 인해 핀치에 몰린 미군 사령부는 급하게 독일 중전차에 대항할 수 있는 수단을 닥치는 데로 긁어모았고 이로 인해 M4A3(17pdr), 즉 미제 파이어플라이도 100여대가 제작되었습니다. 하지만 그 시점엔 이미 독일군 서부집단군이 완전히 붕괴해 있었죠
목소리가 너무 좋고 내용도 좋고 👍
힘내세요!!! 매번 챙겨 보고 있어요!
악~!! 마지막 멘트에서 뿜었습니다!! 역시 캐러브님 영상은 웃음 속에서 즐겁게 볼 수 있어서 좋네요^^ 좋은 영상 정말 감사 드립니다!
마지막 멘트 너무 재밌습니다.👍
이론상으론 1000m 밖에서 정확히 90도 각도를 맞췄을때 문제는 그만큼의 조준경과 명중률이 뒷바침 되지않았다는것과 300~500m 내외가 아니라면 교전중인 전차가 후퇴할시 사선이나 그 역 방향 후퇴해 경사각이 생긴다는거 1000m 내에서 도탄되는 경우가 바로 명중률과 기동중인 전차의 경사각 이 부분
셔먼 : 쐈는데 관통안되고 우리쪽으로 포신 돌리는데 아차싶더라고
찰진내용 찰진설명 찰진영상 그냥 모든게 완벽한 컨텐츠!♡
웃긴 내용도 보게 치하 전차도 올려주실수있나요?
놀릴 거리가 풍부하게 있어서요.
오늘도 재미있는 영상 감사합니다!!
실제 2차 대전 기록에 판터 3대를 격파한 셔먼 파이어 플라이 에이스가 있지요
앗. 혹시 걸판에서 파이어플라이 포수가 명사수였던게 그 에이스가 모티브였나....
형! 기다렸어! ㅎㅎ 좋은영상 고마워!!!!
영상 너무 잼게 보고 있습니다 항상 너무 고맙습니다!
서부전선의 맹수 사냥꾼:반딧불이
동부전선의 맹수 사냥꾼:수박(오이)
이름만 보면 호랑이 표범보다 약하지만 실전에선 호랑이 표범 멱따게ㄷㄷ
@@Mari_120A 진정한 강강약약
수박은 183mm 함포단 영국의 미친놈이 잖아요
@@박정민-p8q 100mm 전차포를 탑재한 소련의 구축전차가 아니라요..?
@@박정민-p8q Fv4005
좋다 좋아 언제나 재미난 영상 감사합니다 재미나게 보고 잇어요 다른 밀리터리 채널은 너무 같잖고 퍼온 영상이 너무 티나서 오직 캐러브님꺼만 봐요 ㅎㅎ
세계전쟁사 공부하기에 아주 쉽고 유용한 유튜버~`^^
캐러브님은 괴랄한 무기 소개 하실때가 제일 신나신듯 ~
드뎌 돌아 오셧군요ㅜㅜ
오오 드디어! 올라왔다!
재밌게봤습니다아!
아이고 또 나왔구나! 이번엔 나오자마자 못봐서 아쉽습니다. 다음거 또 기대할게요!
셔먼은 흔히 생각하는 중형전차니까 중전차보다 작겠지? 라는 생각을 뺨날려줄 정도로 그냥 똑같이 큽니다.
게임은 게임일뿐.. 단지 무게가 가볍기에 중형전차로 분류된 전차..
비슷한 예로 미 해군의 알래스카급 중순양함.
전함급 크기 + 12인치 대구경 주포인데 장갑을 포기하고 속도를 얻어 배수량이 낮기에 중순양함으로 분류..
훗날 이스라엘이나 우리나라에서 105밀 장포신 얹어놓은 마개조 끝판왕들도 잘 굴러다닌걸 생각하면 진짜 대단한 전차.
탱크는 크기가 아니라 무개로 따지는 겁니다
무게가 클수록 장갑을 더 추가 했을 테니까요
그러니 셔먼이 아무리 곁 보기 크기가 크게 보이더라도
그건 내부 공간을 넓게 해서 그런 거지 장갑을 늘려 무개를 키운게 아니니
중형 전차인 겁니다
1:44 저거는 돌파하기에는 좋았지만 내부설계가 조악해서 매연이 고스란히 실내로 들어와 전차병들의 고생을 이끌었죠
빨리 담편 만들어주세요 현기증 난단 말이에요!!
영상 항상 잘보고 있습니다!!
목소리가 묘하게 중독된단 말이야..
오늘도 훈훈하니 다봤다
셔먼 이거 못 참지 선댓글 후감상!
동부전선이 질량에너지고 서부전선은 운동에너지입니다
확실히 저도컴퍼니오브히어로즈에서도 적팀에 영국이 있을때 파이어플라이가 나오면 반드시 잡으려고 했죠 가장 걸림돌이 되니까 전략적으로 대단하다는 거죠
항상 영상 재미있게 보고있습니다^^ 나중에 시간이 되신다면 특이한 장비도 한번 설명드립니다~ 예를들자면 m50 온토스 같은 특이한ㅎㅎ;;
셔먼이 강려크한 17파운더를 얻었지만.....
1. 셔먼의 둥근 포탑에 17파운더는 좀컸다. 그결과 포탑내부는 좁았고 부각과 수직안전기는.....
2. 17파운더의 강력한 포구화염.
포구화염이 강해서 승무원들은 눈갱을 -으악!내눈!- 당해야만 했고, 또한 밝은 빛으로 적에게 자주 들켰으며, 위장용 풀떼기에도 불이 붙었다.
3. 어마무시한 어그로.
안그래도 전고가 높았던 셔붕이에다 길다란 17파운더+포구섬광= 나 여기있소! 가 되버렸고, 17파운더의 무시무시한 위력은 독일군도 잘 알았기에 제거대상 1순위에 들어가서 '불파리'의 어그로는 더심했다.
하지만 이런 문제들을 제치고 전장을 누비며 독일의 야수를 사냥한 파이어플라이에게 박수를 쳐주길 바랍니다! ㅋㅋ
어머니 미국의 품에서 태어나, 아버지 영국에게 크고 아름다운 17파운더 대전차포를 부여받은 셔먼이라.....
이스라엘만 아니었어도 최강의 셔먼 쌉가능이었는 데 ㅋㅋㅋㅋ
그러고보니 이스라엘은 105밀 달아서 썼죠...ㅋㅋ
@@cris040424
다른거 다 떠나서 이스라엘 마개조 앞에선 울나라 포방부도 열 수는 접어야죠.
@@cris040424 레이더 달아서 대포병 레이더 차량으로 쓴 것도 레전드 ㅋㅋ
M4는 파이어플라이로, M10은 아킬레스로 만들어서 잘 굴려 먹었다고 합니다.
그 전까지는 발렌타인 전차에 올리자는 해괴한 발상으로 아처라는 변태적인 물건이나 쓰고앉아있었으니 그저 미궈에 충성충성..^^7;;
디테일한정보 감사합니다
역시 우리 아메리칸 셔먼은 다재다능 하구먼유
정말 재밌었습니다 ^^
마개조는 영쿡! 슬픈노래 들려서 무용지물일 줄 알았는데 잘써먹혔네요 ㅋㅋ
2:06 미친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해가 쉽게 설명 잘 봤습니다
항상 잘 보고 있습니다! 제가 매일 타고다니는 참수리 소심히 요청드려봅니다
오늘도! 재밌다!
썬더 에서 영국 키울때 센츄 다음 으로 쓸만했던 녀석 센츄 mk1 뽑을때까지 굴려먹던놈 크.
5252 돌아올거라 믿고 있었다구!. 좋은 영상 감사합니다
월드오브 탱크 하고 전자 종류에 대해 알고 이거 보니까 색다르네 자꾸 이름 아는 전차들이 나옴
잘보고있습니다. 다음 주제는 일본의 불침함 유키카제 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ㅎㅎ
고질적이였던 반딧불이 문제는 M10의 영연방 버전인 아킬레스가 해결했다고 한다.
15:53 얘는 한국전쟁에서 맹활약을 해서 그나마 괜찮은 편
늦게 왔다는게 크흠
와 17파운드라고 영상도 17분으로 만드신거죠? 쩐다 ~~~~ ㅋㅋㅋㅋㅋ
전쟁은 최고의 무기로 하는게 아니라 적당히 좋은 다량의 무기로 하는 것이다
그래도 이번엔 믿음과 신뢰의 멀린 엔진은 넘어갔네요^^
8:30 워썬더에서는 관통을 못하는... 역시 네오나치겜
여담으로 100미터인가? 영국이 17파운더를 상대로 판터를 들고와서 사격실험을 했는데, 그냥 차체 전면장갑에 커다란 구멍이 하나가 뚫린 사진이 있습니다
가이진은 얼른 파이어플라이의 버프를 해달라
@kfkfkfkfkfkf ggdjdjdj 저 티거 이야기 안했는뎁쇼...?
드립이 느셨군요. 좋습네다!
셔먼도 엄청 마개조가 많아서 셔먼 점보같은 경우 차체무게만 8톤이 늘어서 현가장치도 대형화되고 포탑도 커짐 즉 방어력은 티거수준 그러나 포는 기존 75밀리라 이거을 76밀리로 업건한게 ez8시리즈였습니다만 티거와 비슷한 거리에서 티거를 격파하려면 철갑탄이 있어야했는데 2차대전말기까지 충분한 수량이 생산되지못했음 6.25때야 충분한 수량이 확보되어 t34와 충분히 대결할만하고 중동전에서도 초기 t54도 때려잡음
10:27 썬더인데 왜 천둥,,,
영국 : 독일 사기
독일 : 영국 사기
미국 : 니네 둘 다...
마지막 '정말이지 세상 흉악한건 다 영국놈들이 만든다니깐'
비록 정식으로 나오지는 않았지만 FV215B 183, FV4005 진짜 얘네한테 HESH 한대맞고 골로가거나 빈사상태되보면 정말 영국 놈들 흉악한건 다 느낄수 있음
16:46 킬포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거보면서 탱크겜 하는대 셔먼 파이어플라이가 눈 앞에있었음 ㅋㅋㅋㅋㅋ
두뇌는 비슷하다~ 당대 최강의 전략과 전술의 장기판의 한수를 어디에 두느냐에 따를 뿐~ ㄷㄷㄷ
실제로도 독일 티거 에이스가 이 파플에 관통되어 죽었다는 카더라도있죠....
다굴맞고 죽었다라는 카더라도 있구요
카더라가 카더라도 있죠
셔먼의 진짜 무기는 확장성인 것 같아요.
대전차, 보병전차, 뭐든 셔먼을 개조해서 쓰니 생산 효율도 이거따로 저거따로 만드는 국가보다 좋을 거고, 승무원들도 쉽게 적응할테니까요
포신 부분위장 재밌네요 ㅋㅋㅋㅋㅋㅋ
아.. 셔먼은 못참지
*다음은 이스라엘의 슈퍼셔먼 시리즈는 어떤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