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에도 나오듯이 약소국의 중립이라는 건 허상에 불과해서 광해군이 왕이었어도 청나라가 쳐들어오는 건 변함 없었을 거라고 생각 함. 청나라가 조선을 쳐들어온 이유가 최종 목표인 명나라를 정벌하기 위해서는 명나라로 진격 했을 때 조선이 본거지인 허투알라를 공격한다는 두려움 때문임. 조선이 아무리 쳐들어가지 않는다고 해도 못 믿지. 안 쳐들어올 확률이 99.99%라고 해도 쳐들어가서 굴복시켜 놓으면 100%인데 국운이 달린 일에 굳이 0.01%의 위험을 감수할 이유가 없음.
인연 드라마충들 질질짜는거 졸 얼탱이 없네 ㅉㅉ 방송에도 나오잖아 지금 우리야 결과를 알고 보니 인조가 무능하고 빌어먹을 인간이지만 만약 인조가 남한산성에서 성공적으로 항전하고 명나라가 청 뒤통수쳐서 명이 다시 정복했다면 지금처럼 인조를 욕할수 있을까?? 역사에 감정이입해서 질질짜고 욕하짐만 말고 거기에서 교훈을 얻으라고 말하잖아 지금처럼 또 미국에만 붙어있다가 상황안좋아지고 중국이 세계패권국가 되면 어쩔꺼야?? 그런거에 머리를 쓰고 정부가 하는일 을 잘 감시하라고
국내의 대외기조만으로 전쟁이 일어난다고 믿는 어리석은 역사인식을 가지고 있으면 또 같은 역사가 반복되는 거지. 전쟁은 국제외교의 산물인데, 타국의 상황이나 기조는 전혀 고려하지 않고 국내에서 특정 기조만 유지하면 마치 전쟁은 막을 수 있는 것처럼 이야기하는 무식한 놈들이 있으면 교훈따위 씨알도 먹히지 않는다. 중립을 지키면 전쟁 안 일어난다고? 1,2차 대전때 벨기에는 왜 침공당했나? 덴마크는? 노르웨이는? 전부 중립국이었는데? ㅋㅋ 역사를 모르는 민족에겐 미래가 없다. 근데 그 역사를 한국사만 공부하는 민족은 더 미래가 없다.
인조는 암군이고 왕관의 무게를 견딜 그릇이 못 된 건 맞음.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당시의 판단을 우리가 맡으면 정확했겠나 하는 걸 되짚어 볼 필요가 있음. 역사를 배울 때 항상 조심해야 하는 게 "내가 했으면 저런 바보짓 안 했을 텐데..."라는 걸 역사교육으로 착각한다는 거임. 정말 놀랍게도 비슷한 상황이 오면 우리도 똑같이 바보짓 할거임. 우리는 결과를 놓고봐서 그렇지 당연히 후금에 붙어야 하는 게 눈에 보듯 쉬워 보이지만 저 당시가 요동에서 원숭환이 막 영원성 전투로 막아내면서 명이 재기하는 것처럼 보였음. 주식 하는 것처럼 이제 바닥 찍었으니 올라가겠지 하는 마음 들었을 가능성이 얼마든지 있을 수 있었다는 거임. 밖에서 보는 3자들은 항상 쉽게 말하잖아. "바닥 밑에 지하실 있는 거 모르냐, 그거 조금 반등했다고 원금회복 안될 상황이었는데.." 이런 이유들 붙이며 얼마든지 조롱할 수 있지만 막상 자기 손으로 매수 매도해서 원금 회복시킬 사람 얼마나 되겠음. 마찬가지임. 인조와 사대부들을 비판하는 것과는 별개로 저 당시에 왜 그런 결정을 내렸고 기존 세력과 신흥 세력의 패권교체기의 우리의 선택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공부하는 게 진짜 제대로 역사를 배우는 거지 비난에 그치고 if스토리나 써내려가면서 한탄하는 건 전혀 역사의 교훈을 받아들인 게 아님. 막말로 지금 중국이 미국 패권에 도전하는 이 시점 명청교체기와 유사한 상황일 수도 있음. 그런데 이런 비교하면 십중팔구의 사람들은 중국이 미국 못이길 거란 이유를 A4용지 수두룩 빽빽하게 적어서 반박할 준비를 만땅으로 해둘 거임. 그게 틀렸다는 게 아니라 사람은 보고 싶은 거만 보고 믿고 싶은 거만 믿다 보면 분명 과거 역사의 선례들이 있음에도 확증편향, 자기모순 등에 빠지면서 똑같이 반복할 수가 있다는 거임. 다시 말하지만 이 글은 인조를 옹호하는 것도 아니고 중국이 패권 잡을 거라는 글도 아님. 그건 내가 알 수 없는 일이고 다만 우리가 정말 역사를 보고 배우고 있냐는 거임. 보고 배웠다면 두 번 실수를 해선 안 될 일임에도 우리는 똑같은 실수를 반복함. 그건 우리가 역사를 결과로만 문자 그대로만 혹은 인문학적 사고 없이 단순하게 입력만 한 정도를 두고 배웠다고 착각하고선 행동으로는 나오지 못하기에 일어나는 일이라고 봐야 하지 않을까?
까지는 맞는 말이나 자식 죽이고 본인이 머가리 박은거에만 신경쓰는 자격지심에 개쩌는...사실상 대신들 말만듣고 본인 스스로 해결할 의지가없음...백성들때문에 머가리 박은걸까?본인이 살고자 박은걸까? 그 비겁함에 있어서는 지금과 과거 크게 차이없다고 생각한다. 누구라도 그랬다?아니지. 누군가는 목숨걸고 백성들을 살리고자 했을수도있다..그랬던 사람들도 있고.
난이영상 보면서 딱 이생각 했음. 뭐가 중립외교를. 했단 말이지. 청나라. 안도와 줄거 같으면. 명나라도. 안도와줚어야지. 그게 중립외교지. 교묘하게 약소국의 중립은. 의미없다 라고 하면서 현재의 우리 친서방일색의 외교를. 합리화 .하네 .. 이래서 우리 언론이. 욕먹는거지...재래식 전력 5위권의. 지금의 한국이라면. 중립외교. 실리외교 충분히. 하고도. 남지.
외교에서의 의리와 명분이 중요하지만 국제적 정세와 힘의 이동을 면밀히 읽어야 하는게 맞음. 명나라가 국호를 내려주고 예법과 전통을 따라기 때문에 광해라 하더라도 쉽지 않았을거라 생각됨. 특히 선조때는 어찌됫든 명나라가 도와주기까지 했으니....친청을 하자니 인조반정을 한 세력에게는 정통성이 훼손되고, 친명을 하자니 실속이 없고, 솔까 세종이와도 쉽지 않을것 같다. 심지어는 조선말 청이 망하고 일본이 근대화를 하고 있는것도 부정했으니....
명이나 조선이나 내부의 반란으로 인해 나라가 털린거지 조선도 인조반정만 없었어도 정묘호란이나 병자호란은 일어 나지도 않았을 것이며, 만리장성에서 우주방어를 마친 명은 이자성의 난만 이니얐어도 청나라를 막고도 남았습니다!! 한마디로 청나라엔 두번의 큰운이 따랐고 그정도면 중원점령이 아닌 중원점렴을 당한 수준이였습니다
@@안드로이드-g2q ; 명과 조선은 이미 임진왜란으로 피폐하여 쇠퇴의 길을 걷고 있는 상황이고 여진족은 이 기회를 이용해서 세력을 쌓아 후금이라는 통일국가를 재탄생시킨 것이지요 사르후 전투때 청군 기마대에게 대패할 정도로 전투력이 초라했던게 조명 연합군이라 인조반정이 아니라도 군사력에서 후금의 상대가 되지 못하는게 조선이었지요 그리고 군사력 강화도 금방되는 것도 아니고 왜란의 피해 후유증에서 회복되기까지 시간이 많이 걸릴수밖에 없어서 외교적인 노력이 아니면 회복되지 못한 군사력으로 호란을 막을수가 없는 상태입니다 그리고 명은 사르후에서 패전한 것도 모자라 요동까지 함락당하는등 연전연패하여 군사력으로 후금을 이기기가 어려운 상태가 되어 버렸고 함락당한 요동을 수십년동안 한번도 반격으로 탈환 시도도 못한게 명입니다 그리고 후금은 몽골까지 병합하며 명을 압도할 위치까지 갖게 되어 솔직히 이자성 반란군이 아니라도 명은 언젠가 무너질 상태였습니다 명나라 내에 청에 투항하려는 이신들이 증가한 경우만 보더라도 말이지요
사대로 치면 세종이 끝판왕이지. 사대도 현대에 나온 개념이지 그당시 조상님들은 현실외교지. 지금 우리는 미국에 사대하나?? 미국이 보호 해주는 통상로 군사 원조로 세계10대 강국이 되었어도 사대라 할껀가? 물론 미국도 이익봤지 그러지 않고 생때같은 애들 2만을 한반도에 묻었겠어?? 서로 윈윈하는 동업자 개념이지 물론 지분은 미국이 더 많기에 숙이고 들가는 거지 인생사 든 외교든 다 그런거 아님??
인조가 실제로 사대부들에게 푸념하듯이 한 말이, "주화(화친)을 하자고 하면 기를 쓰고 반대하고, 그렇다고 청과의 전쟁 준비를 제대로 하자니 온갖 이유를 대면서 반대하는데 나보고 어쩌란 말이냐?"고 한 적 있음. 반정의 명분과 당시 사대부들의 논리 때문에 정치적인 이유로 친명을 했던거지 당시 개인의 입장에서는 강경파가 아니었음. 전쟁통에도 이쪽 저쪽 간을 보면서 확실한 결단력이 없는게 문제였지
저게 무슨 중립이에요. 명에 치중한 정책이었죠. 중립이라는 건 말 그대로 1. 어느 편에도 치우치지 아니하고 공정하게 처신함. 2. 국가 사이의 분쟁이나 전쟁에 관여하지 아니하고 중간 입장을 지킴. 강대국들 사이에서 약소국이 중립 지킬 것이었으면 슬로건부터가 달랐어야 합니다.
@@sldkrn그렇치 않음.이미 광해는 이런 사항을 예측하고 군사력을 키웠으며 조총부대및 기마부대를 키웠고.그때 까진 청도 무시하진 못했죠.이괄의 난 이후로 확실해진 군사력싀 승세를 알수 있었고 이괄의 정예병들이 청에 투항했던 것이 청의 결정을 하게 된것임.청은 조선에 모든 군사력을 집중할수 없었으므로 충분히 장기전으로 끌고 갈수 있었으나 멍청한 인조는 내분을 스스로 만들어 버림.이괄의 군사력 엄청 셌슴.그들이 초전에 막아주고 지방병사들이 올라와 지원하는 형태라면 초반에 그렇게 올수 없었슴.전쟁 하지도 않았고.방어전이 공격전보다 쉬움.인조가 남한산성 갇힌뒤 조선군은 공격전으로 나가야 하는 전략이 있어야 했고 지방군들은 더 어려운 전쟁을 해야 했슴.
맹수 두 마리 사이에서 힘없는 사슴이 중립을 표방한다고 살아날까? 어림없는 얘기이다. 영세중립국 스위스도 나폴레옹군대에 짓밟히고 난 후 전국민의 무장화와 전국토의 요새화가 이루어졌으며, 60세까지 매년 군복무한다. 또한 핵무기개발도 시도했을 정도로 작은 나라지만 군사강국이 되기 위해 많은 것을 포기한다. 2차대전때 약소국 벨기에는 철저한 중립을 표방했지만 나치독일은 벨기에를 가볍게 점령했다. 약소국이 중립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전국민이 집집마다 소총을 보유하여 국민수가 거의 군인수가 되어야 하며 군사훈련을 60세까지 할 각오를 해야 한다. 즉 사슴이 아니라 고슴도치가 되어야 한다. 강대국의 수도를 때릴 수 있는 핵무기를 갖고 있던지.
전쟁이 싫어서 대화와 평화를 외쳤다기보다는 억제력이 없었죠. 영국 프랑스 둘 다 전후 복구나 식민지 탄압, 대공황으로 맛탱이가 가버렸으니까요. 한편 미국의 효과적인 블록화는 개소리고요, 애시당초 낙후된 러시아 제국에서 출발한 소련의 공업력이 미국을 이긴적이 없습니다. 정치적으로는 세력확장을 막기 위해 노력했다지만 2차대전 당시 우방이었죠. 그 뒤의 블록화를 했고 이게 효과적이라고 하기에는 2차대전에서 가장 큰 피해를 입은 소련이 세계2위가 된건 어찌 설명하시려고😅😅 이후 공산권은 심지어 확장되고요. 소련의 몰락은 인정하기 싫으시겠지만 MMD하에서 전쟁을 억제한 상황에서 소련의 경제력이 한계에 이르고, 지속적인 대화와 경제적 협력(대표적으로 미국의 식량수출, 소련의 글라스노스트)의 결과였습니다. 제발 역사를 이념으로 배우지 마시고 팩트로 배웁시다.
@@user-jz3et2hb8p 그니까 1,2차 세계대전으로 인해서 유럽에 집중되어있던 모든 자본과 인력들이 미국으로 넘어갔고, 유럽은 전쟁으로 쑥대밭이 된 데에 반해서 미국은 전쟁물자 팔아서 강해진 건 사실이잖아요 만약 유럽에서 전쟁을 안 했으면 미국보다 강했을 수도 있지 않을까요?
@@chin806 이자겸과 척준경은 당대 권신으로 평가받고 외교 굴욕 자체로 치부되었지만, 결국 지금 그들의 외교 평가가 고려 국민들의 안녕과 국가 안보에는 옳았음이 역사적으로 입증되었지 않았습니까? 신채호의 말이 100년전에는 맞는 것일지 몰라도 21세기 현 시점에서는 아닙니다. 12세기 초 고려의 외교력은 후대 사람들에게 롤모델이 될만합니다.
금이 원했던 것은 조선의 체제의 변화. 즉 명을 어버이로 섬기고 명 제국의 일부로서 살아가는 근본적 체제의 변화다. 그리고 자기한테 붙으라 이거다. 반면 명이 원했던 것은 현상 유지. 조선은 현상 유지를 택했고, 반강제였지만 금과 형제의 맹약을 맺었음에도 이전의 태도를 고수했다. 결국 조선은 중립을 택한 적이 없는 것이다.
인조가 친명정치(명나라랑 친한관계)고집한 이유는 당시 광해군 집권시절에 광해군의 무모한 후금과의 정치에 인조반정을 일으킬 명분으로 내세워서.. 자기가 왕차지하고 왕될려구 한거에서 부터 패착이 컷음..그래서 후금에 왕이 친조를 하라구 해도 안하길래 빡처서 삼배구고두례라는 삼전도의 굴욕이 생기게됨..
@@황조-d2b 당연히 그 시대에는 명이 후금을 제압할 수 있다고 판단하는게 맞았다. 1630년대 만주는 물자부족으로 허덕여서 골골대고 있었고, 정묘호란 이후 조선에서 준 물자가 아니었으면 이미 멸망 직전까지 갈 정도로 식량난에 시달리고 있었다. 그 와중에 전쟁은? 여전히 산해관을 뚫지 못하고 수십년째 그 앞에서 공성전만 했지. 그게 1650년대에 가서야 끝난다. 병자호란 15년 뒤고. 그러니까 병자호란 도중에는 청나라는 아직도 수십년째 산해관 하나 못 뚫고 빌빌대고 있던 상태였다. 심지어 마지막에 뚫은 것도 아니야. 안에서 배신자가 나와서 열어준거지. 그 정도로 역량 차이가 났다. 그런 상황에서 청나라에 베팅했다가 청나라가 망하기라도 하면? 빡친 명나라가 쳐들어올 텐데 그건 감당할 수 있고?
정묘호란은 이괄의 난으로 인한 한명련 아들의 배신으로 일어났었습니다!!! 정묘호란으로 조선을 한대 쳐봤더니 반응이 생각보다 쉬워서 병자호란을 계획한거였습니다!! 인조반정 자체가 안일어 났으면 이괄의 난이 안일어 났을테고 고로 정묘호란도 안일어 났을테니 병자호란도 조선판 귀주대첩 순으로 끝났을 겁니다!! 인조반정이 없었으면 청은 처음으로 상대할 상대는 조선판 소드마스터인 한명련을 시작으로 이괄, 정충신, 남이흥, 유림이 지휘한 항왜군을 앞세운 2만에 달하는군사를 상대 해야했고 이들을 넘는다 해도 3만의 도원수 장만을 상대 해야 했습니다! 이들은 전부 넘는다 해도 조선의 왕은 강화도로 피신한지 오래이고, 전국각지에서 몰려온 물자보급을 충분히 갖춘 10만의 8도 근왕군및 의병들과 임진강이나 한성쯤에 대회전을 벌이고 나서야 강화도를 쳐다 볼수나 있었습니다!!
그 사이에 일어났더 수많은 일들이 있는데, 정작 교과서는 그런 건 안 알려줌. 단순무식하게 중립이니 친명배금이니 ㅋㅋㅋ 현실은 만주지역의 경제적 문제, 인삼과 관련된 월경문제, 가도 문제, 명나라 내부의 혼란, 누르하치와 홍타이지의 외교기조 차이 등등 수도 없이 다양한 요소가 겹친 건데, 단순무식하게 조선의 외교기조 차이때문에 벌어졌다고 가르치고 있으니 한심하지 ㅋㅋㅋ 조선왕이 전쟁안함! 하면, 명나라와 청나라가 모두 우와 알았어 전쟁 안 할게! 해줄거라고 믿는 순진한 발상이 대체 어디서 나오는 건지 ㅋㅋㅋ
애초에 그냥 후금이 운이 억세게 좋은 것을 어쩌누? 후금은 명은 커녕 조선과 비교해도 국력이 딸리는 나라였다. 그런데 조선은 수백년간 북방수비의 핵심이었던 북방군이 반란일으켜 사라지고 명은 그냥 반란 일어나 스스로 망해버림. 후금은 그냥 숨만 쉬었는데 둘이 갑자기 아파 죽어버린 거임.
뭐가?? 지나는 지금 한계에 다다라 곧 여러 나라로 갈릴텐데? 전통우방과 지금은 같이 할 때야 지나와 같이 할 때가 아냐. 지금 모든 나라가 지나에 투자한 걸 빼는 걸 보면서 그런 소릴 해?? 뉴스 좀 보고 살아라. 맨 성관계나 도박관계 미디어만 보고 사니까 그런 걸 전혀 모르지.
글쎄요 인조가 중립이었다고요..?? 여러 정황이나 우리가 배우는 역사나... 대놓고 배금이었고 인조가 전국 곧곧에 방붙였던거만봐도 닥치고 배금인데 무슨중립이었다는소린지 이해가 잘안되네요...;; 인조가 취한 외교가 중립이었다면 광해군이야말로 친후금정책이라고 불리워야합니다 그건말이안되는소리죠. 인조는 그저 반후금이면서 전쟁할 능력은 없던 무능한군주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닙니다. 중립은 더더욱 아니고요. 33:03역사를 배운사람들은 일방적인 미국편이 얼마나 위험한건지 아는데 멍청하거나 역사지식아무도 없는인간들은 미국만 믿으면된다고 생각하지요
@@user-jz3et2hb8p ; 광해군 일기를 제대로 보시기나 한것인가요 후금과 사신교환을 한 광해군이 중립외교를 한적 없다니 무슨 헛소리를 사르후 파병때 파병에 반대하여 안할려고 했던게 광해군이었고 집권당 북인 대신들의 거센 공론에 굴복하여 파병했어도 파병군의 수장 도원수 강홍립에게 후금군과의 싸움을 피하라는 비밀 명령까지 내릴 정도로 후금과의 대립을 피하려고 했던게 광해군인데 그리고 사르후 전쟁 직후에 후금에 투항한 강홍립과 서신교환하여 후금의 사정을 파악하고 사르후 전투 이후에 후금과 관계를 맺어서 사신교환 하고 명의 재파병 요구를 거부한게 광해군이었어 뭘 알고서 말하시기를 광해군이 파병한 강홍립이 누르하치를 설득하여 조선에 대한 후금의 보복을 무산시킬수가 있었고 조선군 1만을 날려 먹은게 아니라 조선군 일부가 강홍립의 노력으로 풀려나서 본국에 돌아올수가 있었지
@@안드로이드-g2q ; 영화가 아니라 엄연한 팩트다 인조반정이나 이자성의 난만 아니었다면 청이 경제 봉쇄 당해 멸망 코앞이라고 개뿔 같은 헛소리를 하고 계시네 임마 조선과 명은 이미 임진왜란으로 피폐해진 상황이라 후금의 성장을 막을수가 없는 상태이고 그 결과물이 사르후 패전과 명나라의 요동 상실이지 않은가 청은 명의 요동을 점령하여 그 지역에 천도할 정도로 얼마나 강성한가를 알아야지 사르후 전투 이전부터 명은 만력제의 실정으로 재정피폐와 백성들의 궁핍한 생활 때문에 쇠퇴를 거듭하는 상황이지
@@bulletsilver3005 ; 어느 국가가 자국의 주적을 앞에 두고 적도 아닌 3자를 적대하여 적으로 돌리다가는 그 3국이 주적과 연합하는 고립을 초래하여 자국에 치명적인 경우가 될수 있기에 그 국가 권력층이 바보가 아닌 이상 고립을 초래하는 중립국 3자를 적으로 돌리지 못하는 법입니다 제3자를 적으로 돌리다가는 적을 2명이나 두어야 하는 전략적인 고립을 가져오기 때문에 그런 고립심리상 어떻게 중립국을 공격할수가 있습니까? 주적을 앞에 두고 제3국을 공격할 병력이 어디에 있습니까? 3국 공격하기 위해 자국 병력을 그쪽으로 투입하면 주적에게 공짜로 자국 영토에 내려오라고 광고하는 격이지요
조선이 무슨 짓을 벌였든 결국 후금은 조선을 손 봐줬을 것임. 조선의 잘못된 판단이 시기를 앞당겼을 순 있지만 어찌되었든 병자호란은 후금의 필요성에 의해 일어난 전쟁이니까. 우리나라 사람들은 우리나라 사람끼리 외국에 어그로 안 끌고 우리나라 안에서 착하게 살면 외국도 우리나라를 건드리지 않을 것이란 헛된 소망을 가지고 있는 편인 것 같음. 하지만 병자호란, 임진왜란도 그러다 일어났고 대한제국도 그러다 망했지. 새삼스럽게도 언제나 국제정세는 강대국에 의해 결정되어왔음. 중국이 한국을 지금까지 손봐주지 못 한 건 한국이 강해서가 아니라 한국이 미국의 동맹이기 때문이란 걸 이 나라 사람들은 너무도 쉽게 잊어버린다.
이 말이 맞지. 한국이 외교정책을 피면 모든 나라가 거기에 맞춰서 둥가둥가 해준다? 무슨 망상도 이런 초등학생 레벨의 망상으로 국제외교를 펴자고 하는 놈들이 이렇게나 많은지 모르겠음. 그게 됐으면 2차대전때 중립국들은 왜 히틀러한테 털렸으며, 왜 강대국들도 약소국의 외교정책 하나 제어 못해서 전쟁을 일으켜야만 하는가? 에 대한 설명을 할 수 없음 ㅋㅋㅋ
사절단은 외교관이고 저기서 청나라의 황제취임을 축하하는 순간, 명나라와의 외교관계를 단절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하는거다. 국제외교가 뭔지도 모르는 무식한 놈이 무슨 친구들 축하파티 따라가는 것마냥 아가리 씨부리는데, 세상물정도 모르고 이런 말을 씨부리며 역사를 평가하는게 아이러니다
선조는 간사하지만, 그만큼 정치적 능력이 있는 편이였고, 이순신도 선조가 파격승진시킨 사례. 광해군은 왕권 강화한다고 신하들 조지고 궁궐에 돈 낭비해서 쫒겨난거고, 인조는 또 광해군마냥 기강잡는다고 반대파 숙청하다가 이괄의 난. 결국 북방 병력이 비면서 병자호란에서 굴욕. 그리고 결정적으로는, 서양 절대왕정은 자본주의를 통해 더 많은 식민지를 만들며 돈을 쓸어담던 과정에 생긴 거지만 조선은 중앙집권이면서도 상업을 억제했기 때문에, 고려때의 사병도 부족하면서, 그걸 대체할 상비군조차 없는 노답 상황이됨. 비슷한 상황이였던 스파르타는 전시민 정예화라도 했지, 조선은 고려때에 비해 수도 부족, 질도 부족, 그냥 노답이였음.
그냥 광해군을 연산군급으로 내려치던 옛 사관에 대한 반작용으로 그를 너무 과하게 띄워주다 보니까 선조와 인조가 저평가 될 뿐입니다. 실제로 광해는 연산군보다 좀 낫다 뿐이지, 폐위되는게 당연한 수준이고 선조는 태종/문종/세종/성종 바로 다음에 위치할 정도의 명군이었습니다. 명종 시기 망해가던 조선을 수습한 것도, 신하들 모두가 반대한 전쟁준비에 돌입한 것도, 임진란 후 황폐화 된 조선을 재건한 것도 모두 선조입니다. 광해의 업적으로 알려진 대동법과 중립외교 모두 팩트가 아니고, 심지어 대동법은 선조가 ‘조선8도가 이미 왕의 것인데, 굳이 각 지역의 특산물까지 받겠다고 백성들의 고혈을 짜낼 필요가 뭐가 있냐’면서 조세제도의 대대적 개편을 명하여 만들어진 법입니다. 오히려 영화 광해에서 사월이의 부모를 죽게 만든 방납을 독점한 것이 광해의 지지기반인 대북파예요
중립외교를 하더라도 군사력이 갖춰져야 한다는 것이죠.그래서 광해는 군사력 증강에 힘썼던 것이고 그러다 보니 돈이 많이 들어갈수 밖에 없었죠.인조는 그 군사력을 내전에 다 잃어버려서 청에 허무하게 짓밟힌것이고.이괄의 난이 가장 큰 원인이긴 했지만 그 원인은 인조가 무능했기 때문.조선의 왕 중에 가장 무능한 왕이 다시 집권했기 때문이죠.
이괄의 난으로 서북방 경계가 무너져 병자호란의 큰 패인이 되었음을 인정합니다 그러나 이괄의 서북면 군사가 무너졌다고 병자호란의 유일한, 결정적 패배요인이 되었다고 납득하기는 힘듭니다 왜냐하면 고구려 수당전쟁 때 고구려 병사가 많이 전사했음해도 결국 당나라가 신라를 끌어들여 이중전선으로 고구려를 겨우 멸망시켰을 만큼 고구려는 버거운 상대였으며 또한 여요전쟁에서 강조의 30만 군사가 요나라에 썰려 나갔을 때도 고려는 곧바로 재기에 성공해 요나라를 완전히 패퇴시킵니다 토크멘터리 전쟁사의 임용한 박사가 말하듯 서북면 이괄의 군사가 인조에 의해 축출됐다고 해서 조선의 군사가 청나라의 군사를 전혀 막지 못할만큼 재기 불능의 상태였다면 애초의 조선의 군사제도 및 사회제도는 쳥나라의 군사를 막지 못 할 정도로 후진적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똑같은 내용으로 임진왜란 때 성공 했었는데 전략상 실패로 남한산성에서 패배한거죠. 뭐 그건 둘째치고 애초에 청제국의 영토와 당시 상황을 보면 걍 전세계에서 청나라의 군사를 막을 나라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지금 미국이 핵미사일 쏜다고 해서 막을 수 있는 나라가 전세계 0개 있을텐데 전세계가 전부 다 후진국적일까? 라고 생각 해보시면 됩니다. 그리고 저도 임용한 박사님 말씀에 동의 하지만 당시 조선의 경우는 간단하게 살펴봐도 상황이 심각 했었습니다. 1592 임진왜란 1619 사르후 1623 인조반정 1624 이괄의 난 1627 졍묘호란 1636 병자호란 이정도면 왜 그정도 밖에 못싸운거냐 라고 해야할게 아니라, 반대로 그정도면 잘 싸운거다 라는 말까지 나올정도죠
말씀 잘 들었습니다 그러나 청나라가 오늘날의 미국에 버금가는 강대국이어서 조선이 비록 패하였어도 나름 선방한 수준이라면 당태종의 침입과 거란(요나라)를 막은 고구려 고려는 어떻게 설명하면 좋을까요? 저는 당태종의 군사와 요성종의 거란군이 결코 청나라의 군사력에 뒤진다고 생각하지 않거든요 이에 대한 의견 듣고 싶습니다
@@유우진-g6z 우선 시대적 상황이 모두 다르기 때문에 일괄적인 비유는 어렵다는걸 감안 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제가 적은 첫번째 댓글을 더 자세하게 설명드리겠습니다. 고당전쟁, 여요전쟁과 임진왜란은 전쟁 양상이 비슷했습니다. 전쟁 초기는 패배 했지만 결국은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다는 거죠. 특히 여요전쟁의 경우는 내용적인 측면에서도 훨씬 더 그러한데, 한반도 남쪽 끝까지 몽진해서 결국은 승리한 고려 현종과 한반도 북쪽 끝까지 몽진해서 결국은 승리한 조선 선조는 시대만 달랐지 똑같은 역사를 가지고 있죠. 고당전쟁 또한 초기에는 요동성 백암성 등 여러성들이 함락 되지만 결국은 승리한다는 점에서 임진왜란과 비슷합니다. 이후 역사의 진행 상황을 보겠습니다. 고구려는 결국은 당나라의 재침입으로 멸망하게 되죠. 임진왜란에서는 승리 했지만 크게 작은 국력 소모로 인해 병자호란 때 굴욕을 당한 조선의 상황과 매우 흡사합니다. 고려의 경우도 조선과 비슷합니다. 2차 여요전쟁 이후 반란이 일어나고 제3차 침입이 있죠. 임진왜란 이후 이괄의난이 일어나고 다시 정묘호란 병자호란 터진 시점이 생각나는 지점입니다. 다른점이라면 이때 여요전쟁은 고려가 승리를 이끌었다는 겁니다. 병자호란의 경우도 역사에선 의미가 없는 'IF' 를 생각해보면 인조가 남한산성에 더 많은 군량미를 준비 했었다면.. 혹은 몽진을 더 잘 했었다면.. 라는 아쉬움이 생기는 지점이죠. 병자호란 때 청나라 군대의 속전속결에는 천연두 때문이라는 주장이 있기 때문에 더 그러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제가 전략상 실패 라고 한겁니다.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건 누구보다 더 쌔고 약하고가 아닌 국력도 상대적인것이고 시대마다 상황이 다르니 충분히 감안 할 필요가 있다 라는겁니다. 1592 임진왜란을 시작으로 사르후 인조반정 이괄의 난 정묘호란 병자호란 등 굴직굴직한 사건만 6개가 터졌는데 거기다가 그 상대방을 불세출의 영웅이라는 청태종이니 이정도의 압도적인 무력은 예상 밖일 수 밖에 없죠
@@유우진-g6z 하나 더 당부드리고 싶은 말은, 조선과 고려를 비교하시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가지는 공통점이 있는데.. 고려의 최전성기 or 승리한 전쟁과 조선의 쇠퇴기 or 패배한 전쟁을 비교한다는겁입니다. 한반도 왕조뿐만 아니라 인류 역사상 모든 왕조국가들은 흥망성쇠라는 자연의 이치 따라 왔습니다. 고로 비교 할 때는 이러한 시대적 흐름을 보고 판단하는게 우선입니다. 당장 고려말 도적 때에 수도를 버리고 공민왕이 피난 가던 시기와 조선초 여진족을 상대로 예방전쟁을 하면서 4군 6진을 개척하는 강력하던 시기를 비교하면 누가 더 우위에 있겠습니까? 여요전쟁 이후 현종의 시기는 한반도 왕조 통틀어서 가장 태평성대 했다는 시기입니다. 왕조의 전성기죠. 반면에 임진왜란 혹은 병자호란 때의 조선은 전성기와 중흥기를 지나 이미 태평성대를 수백년간 누린 이후의 쇠퇴기에 접어들게 됩니다. 이러한 점을 간과하고 비교하게 되면 상당히 무리한 해석이 나올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frostfire311 답변이 좀 늦었네요 말씀 잘 들었습니다 여요전쟁은 아직 상무정신이 남아 있는 고려 초반기에 일어난 전쟁이고 조선의 임진왜란은 굵직한 전쟁없이 200년이라는 장기의 세월이 흘러 일어난 전쟁이라 둘을 단순 비교하는 것도 무리라는 생각이 드네요 그런데 7년 간의 그 처절한 임진왜란을 겪은 후에 다가온 정묘, 병자호란은 좀 납득하기 힘드네요 오랜 평화 탓에 심대하게 다가온 임진왜란에서 적어도 사람이라면 한 나라를 다스리는 위정자라면 국방을 튼튼히 해야겠다는 위기의식이 있었을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두 호란에서는 임진왜란에서 겪은 교훈이 전혀 느껴지지 않습니다 물런 적의 주체가 다르지만요 또한 고려같은 경우는 여요전쟁에서 고려가 승리하고 이후 욱일승천하는 여진족을 손봐주고자 17만의 별무반을 편성하여 여진족을 평정하여 동북9성(물론 이후 여진족의 거친 저항과 방어의 한계를 느껴 이후 철수하긴 함)을 쌓은 후, 물론 이후에 성을 내주긴 하지만 고려의 만만치 않은 저력을 확인한 여진족은 만일 9성을 내어주시면 고려에게는 기왓장 한 장조차 던지지 않겠다는 확약을 한 후 요나라 송나라를 평정하여 대국이 된 후에도 고려에 대한 어떠한 군사적 조치(물론 이자겸의 사대주의도 한 몫했지만) 도 하지 않았다는 거죠 이후에 고려 몽골 전쟁도 많은 군민의 희생이 있긴 했지만 30년 동안 저항하여 몽골의 황금씨족과 혼인관계를 맺어 고려의 국체를 보존한 이력을 볼 때 각 시대 상황을 들여다 봐야 한다는 님의 말에는 공감하지만 임진왜란을 겪은 이후 불과 30년도 안 되어 정묘 병자호란을 고려는 겪지 않았을 거란 생각이 듭니다 고려 말의 홍건적의 침입도 비록 초반에 수도 개경이 함락되기는 했으나 이후 20만 병력을 모아 10만의 홍건적을 죽이고 나머지는 압록강 이북으로 패퇴시킨 고려의 군사력을 결코 간과해선 안 되리라 봅니다 사실 조선 초의 4군 6진 같은 군사적 업적도 고려의 잔재가 남아 조선의 유의미한 긍정적 결과를 끼친거라 봅니다 이후 중종 선조에 거쳐 대거 득세한 사림파에 의한 조선의 군사력 약화는 이미 다 아는 사실이지요
당시 세계최강의 기병대는 대청제국 팔기군이었고, 순식간에 속도전으로 조선을 침략, 정복했는데 조선은 이괄 장군의 군대가 살아있었어도 절대 침략군을 막을수없었음. 광해군의 중립외교처럼 오로지 외교적인 방법 밖에 없음. 2차세계대전때 태국이 외교전을 펼쳐서 일본의 식민지가 되지 않은 것처럼, 조선의 외교전략도 그런식으로 했어야됐는데 결국 무능하면서도 부지런하고 일만 열심히 한 인조 때문에 결국 망함. 차라리 국왕이 무능하고 일을 안하면 차기 국왕이 성군일 경우 어떻게든 해결이 가능한데, 국왕이 무능한데 부지런하기까지하면 오히려 훨씬 더 최악임. 그러면 오히려 무능한데 부지런하고 일을 열심히 하는 국왕이 국가를 더욱 더 국가 패망의 길로 빨리 달려가게 하기 때문에 폭주를 막기 힘들어짐. 인조, 선조가 딱 그런 경우였음. 일은 열심히하고 부지런한데 전쟁때는 무능한 암군이었음. 차라리 전쟁때는 광해군처럼 유능한 폭군이 집권하는게 나음. 광해군은 폭군적 기질이 강하긴 하지만 전쟁, 정치, 외교전략 능력만큼은 탁월해서 임진왜란때 실제로 전쟁터를 뛰어다니며 평양성 전투때 군 지휘관으로 참전한 실전 경험도 있었고.
그렇구나 근데 2차대전때 태국의 외교전이 성공한 건 사실상 일본의 부역국으로 일본에 가담했기 때문인데? 영프사이에서 식민지 안 된 것도 사실상 국토의 절반을 떼어주고 나서야 겨우 간신히 성립한 거다. 독도 주고 일본 침략 무마시키자 하면 넌 받아들일 수 있음? 그리고 2차대전때 덴마크, 노르웨이, 벨기에 등 중립을 외친 나라는 많았지만 결과는 전부 히틀러의 손아귀에 들어갔다. 외교 잘했잖아? 니네 말하는 중립 존나게 외쳤는데 히틀러 쳐들어오는 거 결국 못 막았어. 심지어 노르웨이는 연합군 추축군한테 쌍으로 쳐맞을 뻔했다. 니네가 그렇게 좋아하는 중립국이었는데. 그리고 당시 청나라 군사력은 생각만큼 강하지 않았고, 시기상으로도 싸울만 했음. 당시 청나라는 여전히 산해관도 못 뚫고 있었고, 식량부족에 시달리고 있었음. 애초에 조선에 속공으로 들어온 것도 물자가 더는 여유가 없었기 때문에 빠르게 끝내려고 온 거지, 진짜 여유가 있었으면 이런 위험한 도박은 감행할 필요 없었음. 만일 이괄이 있었으면 애초에 북방군을 무시하고 아래로 내려온다는 전술을 쓸 수가 없음. 결과적으로 강화도 런 실패나 점령 등 전술적인 실책이 겹쳤지만, '절대' 같은 건 없음. 오죽하면 화친파인 최명길조차도 싸워서 해볼만 하니, 성과를 내고 협상하자가 주 논지였음.
인조는 왕의 재목도 아니었고 중립외교는 커녕
외교가 뭔지도 몰랐다
인조는 분에 넘치게 왕을 해서 안해도 될 고생과 치욕을 겪네. 역시 사람은 그릇에 맞춰살아야…
그러니 볼모로 10년있다온 본인 아들 며느리 손자까지 죽이지
@@장재호-r9w 진짜 소현세자와 민회빈 강씨...😢😢😢😢
영상에도 나오듯이 약소국의 중립이라는 건 허상에 불과해서 광해군이 왕이었어도 청나라가 쳐들어오는 건 변함 없었을 거라고 생각 함.
청나라가 조선을 쳐들어온 이유가 최종 목표인 명나라를 정벌하기 위해서는 명나라로 진격 했을 때 조선이 본거지인 허투알라를 공격한다는 두려움 때문임. 조선이 아무리 쳐들어가지 않는다고 해도 못 믿지.
안 쳐들어올 확률이 99.99%라고 해도 쳐들어가서 굴복시켜 놓으면 100%인데 국운이 달린 일에 굳이 0.01%의 위험을 감수할 이유가 없음.
인연 드라마충들 질질짜는거 졸 얼탱이 없네 ㅉㅉ 방송에도 나오잖아 지금 우리야 결과를 알고 보니 인조가 무능하고 빌어먹을 인간이지만 만약 인조가 남한산성에서 성공적으로 항전하고 명나라가 청 뒤통수쳐서 명이 다시 정복했다면 지금처럼 인조를 욕할수 있을까?? 역사에 감정이입해서 질질짜고 욕하짐만 말고 거기에서 교훈을 얻으라고 말하잖아 지금처럼 또 미국에만 붙어있다가 상황안좋아지고 중국이 세계패권국가 되면 어쩔꺼야?? 그런거에 머리를 쓰고 정부가 하는일 을 잘 감시하라고
소현세자가 왕이 되었어야해
이괄의 난이 정말 뼈아팠는데 그것도 인조의 실책이었음
중립은 쉽게 이야기하자면 이겁니다.
'나 힘있고 건들면 재미없다는거 알지?
너네 둘중 어느편도 안들테니 나 건들지마!'
이게 중립입니다.
고구려 고려 외교정책이 이랬지
기본적으로 내가 힘이 있어야 가능함
스위스가 2차 세계 대전에서 홀로 견딜 수 있었던 이유.
독일..프랑스로 가게 길 좀 내라
스위스..자신 있으면 지나가 보던지.
독일...싫으면 할 수 없지, 뭐~. 애들아 돌아가자.
ㄹㅇ 이게 중립이죠..
어느정도 힘이 있어야... 중립이 가능함
인조가 얼마나 무능하고 비열했는지 아는가? 그는 권력을 위해 자신의 아들 며느리 친손주까지 죽인 인물이다.
인조가 소현세자를 죽였는지 확실치 않습니다.
무능하긴한데 이런 분들이 광해군이 권력을 위해 자신의 동생 어머니까지 가두어서 폐모하거나 죽인건 얘기안함 ㅋㅋ
@@허우석-o9f얘기함ㅋ
그리고 그게 잔인하긴 햇지만 외교무능은 아니자아요 지금 외교정책이야기하는데
전대 임금 광해군을 폐위시킨 주요 명분이 폐모살제였다는 걸 감안하면 더더욱 자가당착인..
요즘시대에 비춰보아도 많은 교훈을 주고 있네요, 기억하지 않는 역사는 반복된다. ....요즘 들어 더욱 새겨 본다.
최근 사드문제로 중국과 러시아까지 적으로 돌렸죠
@@해빈이-k3x 그두국가는 지들이 중심인걸 넘어 타국가를 집어삼킬려고 하니까 당연히 적인겁니다.ㅋ 그런 나라한테 강하게 안나가면 복속될뿐임.
우두머리가 바보에 멍청하면 호가호위하는 애들이 넘친다. 고로 백성은 힘들다
국내의 대외기조만으로 전쟁이 일어난다고 믿는 어리석은 역사인식을 가지고 있으면 또 같은 역사가 반복되는 거지. 전쟁은 국제외교의 산물인데, 타국의 상황이나 기조는 전혀 고려하지 않고 국내에서 특정 기조만 유지하면 마치 전쟁은 막을 수 있는 것처럼 이야기하는 무식한 놈들이 있으면 교훈따위 씨알도 먹히지 않는다.
중립을 지키면 전쟁 안 일어난다고? 1,2차 대전때 벨기에는 왜 침공당했나? 덴마크는? 노르웨이는? 전부 중립국이었는데? ㅋㅋ
역사를 모르는 민족에겐 미래가 없다. 근데 그 역사를 한국사만 공부하는 민족은 더 미래가 없다.
@@해빈이-k3x미국 유엔편에 서야지 중러편에서냐 조선족아?
인조는 암군이고 왕관의 무게를 견딜 그릇이 못 된 건 맞음.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당시의 판단을 우리가 맡으면 정확했겠나 하는 걸 되짚어 볼 필요가 있음. 역사를 배울 때 항상 조심해야 하는 게 "내가 했으면 저런 바보짓 안 했을 텐데..."라는 걸 역사교육으로 착각한다는 거임. 정말 놀랍게도 비슷한 상황이 오면 우리도 똑같이 바보짓 할거임.
우리는 결과를 놓고봐서 그렇지 당연히 후금에 붙어야 하는 게 눈에 보듯 쉬워 보이지만 저 당시가 요동에서 원숭환이 막 영원성 전투로 막아내면서 명이 재기하는 것처럼 보였음. 주식 하는 것처럼 이제 바닥 찍었으니 올라가겠지 하는 마음 들었을 가능성이 얼마든지 있을 수 있었다는 거임. 밖에서 보는 3자들은 항상 쉽게 말하잖아. "바닥 밑에 지하실 있는 거 모르냐, 그거 조금 반등했다고 원금회복 안될 상황이었는데.." 이런 이유들 붙이며 얼마든지 조롱할 수 있지만 막상 자기 손으로 매수 매도해서 원금 회복시킬 사람 얼마나 되겠음.
마찬가지임. 인조와 사대부들을 비판하는 것과는 별개로 저 당시에 왜 그런 결정을 내렸고 기존 세력과 신흥 세력의 패권교체기의 우리의 선택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공부하는 게 진짜 제대로 역사를 배우는 거지 비난에 그치고 if스토리나 써내려가면서 한탄하는 건 전혀 역사의 교훈을 받아들인 게 아님.
막말로 지금 중국이 미국 패권에 도전하는 이 시점 명청교체기와 유사한 상황일 수도 있음. 그런데 이런 비교하면 십중팔구의 사람들은 중국이 미국 못이길 거란 이유를 A4용지 수두룩 빽빽하게 적어서 반박할 준비를 만땅으로 해둘 거임. 그게 틀렸다는 게 아니라 사람은 보고 싶은 거만 보고 믿고 싶은 거만 믿다 보면 분명 과거 역사의 선례들이 있음에도 확증편향, 자기모순 등에 빠지면서 똑같이 반복할 수가 있다는 거임.
다시 말하지만 이 글은 인조를 옹호하는 것도 아니고 중국이 패권 잡을 거라는 글도 아님. 그건 내가 알 수 없는 일이고 다만 우리가 정말 역사를 보고 배우고 있냐는 거임. 보고 배웠다면 두 번 실수를 해선 안 될 일임에도 우리는 똑같은 실수를 반복함. 그건 우리가 역사를 결과로만 문자 그대로만 혹은 인문학적 사고 없이 단순하게 입력만 한 정도를 두고 배웠다고 착각하고선 행동으로는 나오지 못하기에 일어나는 일이라고 봐야 하지 않을까?
까지는 맞는 말이나 자식 죽이고 본인이 머가리 박은거에만 신경쓰는 자격지심에 개쩌는...사실상 대신들 말만듣고 본인 스스로 해결할 의지가없음...백성들때문에 머가리 박은걸까?본인이 살고자 박은걸까?
그 비겁함에 있어서는 지금과 과거 크게 차이없다고 생각한다.
누구라도 그랬다?아니지.
누군가는 목숨걸고 백성들을 살리고자 했을수도있다..그랬던 사람들도 있고.
정답
좋은 시각이네요
당장 당시 사대부도 명나라가 좀 망해봤자 남송처럼 되겠지 했는데 아니였던걸 보면..
현명하십니다. 추천 누르고 갑니다
인조가 어디가 중립외교를
했다는건지?
이 프로그램의 제작의도가
의심된다
그냥 우유부단한거죠. 안쳐들어오길 바랬겠지만 이미 저지른게 있는데.
1찍들 특임ㅋㅋ
@@우유왕 정작 중립외교파는 1찍 전통이고 2찍은 사대에서 시작하는 냉전외교를 주장하는데 ㅋㅋ 정신 좀 차리셈 부정적이다 싶으면 무조건 1찍무새고 ㅋㅋ
@@우유왕 2찍들 아닌가...........지금 그 후손들이 살고 있는 갱상도 보면 알수 있지,,,
난이영상 보면서 딱 이생각 했음. 뭐가 중립외교를. 했단 말이지. 청나라. 안도와 줄거 같으면. 명나라도. 안도와줚어야지. 그게 중립외교지. 교묘하게 약소국의 중립은. 의미없다 라고 하면서 현재의 우리 친서방일색의 외교를. 합리화 .하네 .. 이래서 우리 언론이. 욕먹는거지...재래식 전력 5위권의. 지금의 한국이라면. 중립외교. 실리외교 충분히. 하고도. 남지.
이래서 줄을 잘 서야 돼. 진정한 군주는 시대의 흐름을 읽을줄 알아야지
맞음 그래서 지금 미국측으로 입장정리 한건 불가피한 선택이라 봄
중국 장궤들 마치 지네가 미국 이길것처럼 블러핑쳐가면서 불안감 조장하려고 난리인데 속으면 안됨ㅋㅋ
외교에서의 의리와 명분이 중요하지만 국제적 정세와 힘의 이동을 면밀히 읽어야 하는게 맞음. 명나라가 국호를 내려주고 예법과 전통을 따라기 때문에 광해라 하더라도 쉽지 않았을거라 생각됨. 특히 선조때는 어찌됫든 명나라가 도와주기까지 했으니....친청을 하자니 인조반정을 한 세력에게는 정통성이 훼손되고,
친명을 하자니 실속이 없고, 솔까 세종이와도 쉽지 않을것 같다.
심지어는 조선말 청이 망하고 일본이 근대화를 하고 있는것도 부정했으니....
명이나 조선이나 내부의 반란으로 인해 나라가 털린거지 조선도 인조반정만 없었어도 정묘호란이나 병자호란은 일어 나지도 않았을 것이며, 만리장성에서 우주방어를 마친 명은 이자성의 난만 이니얐어도 청나라를 막고도 남았습니다!! 한마디로 청나라엔 두번의 큰운이 따랐고 그정도면 중원점령이 아닌 중원점렴을 당한 수준이였습니다
@@안드로이드-g2q ; 명과 조선은 이미 임진왜란으로 피폐하여 쇠퇴의 길을 걷고 있는 상황이고 여진족은 이 기회를 이용해서 세력을 쌓아 후금이라는 통일국가를 재탄생시킨 것이지요 사르후 전투때 청군 기마대에게 대패할 정도로 전투력이 초라했던게 조명 연합군이라 인조반정이 아니라도 군사력에서 후금의 상대가 되지 못하는게 조선이었지요 그리고
군사력 강화도 금방되는 것도 아니고 왜란의 피해 후유증에서 회복되기까지 시간이 많이 걸릴수밖에 없어서 외교적인 노력이 아니면 회복되지 못한 군사력으로 호란을 막을수가 없는 상태입니다 그리고 명은 사르후에서 패전한 것도 모자라 요동까지 함락당하는등 연전연패하여 군사력으로 후금을 이기기가 어려운 상태가 되어 버렸고 함락당한 요동을 수십년동안 한번도 반격으로 탈환 시도도 못한게 명입니다 그리고 후금은 몽골까지 병합하며 명을 압도할 위치까지 갖게 되어 솔직히 이자성 반란군이 아니라도 명은 언젠가 무너질 상태였습니다 명나라 내에 청에 투항하려는 이신들이 증가한 경우만 보더라도 말이지요
인조 가 중립적이었다는
사실은 역사에도 나왔있지않은 허구입니다
친명사대주의 의 대표적
군주였는대
왜 역사적 사실을 호도하는지
사대로 치면 세종이 끝판왕이지. 사대도 현대에 나온 개념이지 그당시 조상님들은 현실외교지. 지금 우리는 미국에 사대하나?? 미국이 보호 해주는 통상로 군사 원조로 세계10대 강국이 되었어도 사대라 할껀가? 물론 미국도 이익봤지 그러지 않고 생때같은 애들 2만을 한반도에 묻었겠어?? 서로 윈윈하는 동업자 개념이지 물론 지분은 미국이 더 많기에 숙이고 들가는 거지 인생사 든 외교든 다 그런거 아님??
인조가 실제로 사대부들에게 푸념하듯이 한 말이, "주화(화친)을 하자고 하면 기를 쓰고 반대하고, 그렇다고 청과의 전쟁 준비를 제대로 하자니 온갖 이유를 대면서 반대하는데 나보고 어쩌란 말이냐?"고 한 적 있음. 반정의 명분과 당시 사대부들의 논리 때문에 정치적인 이유로 친명을 했던거지 당시 개인의 입장에서는 강경파가 아니었음. 전쟁통에도 이쪽 저쪽 간을 보면서 확실한 결단력이 없는게 문제였지
당시 기록들중 조선이 비굴할정도로 청을 자극하지 않으려 한 외교문서들도 많음.
다만 진짜 선택을 해야하는 시점에서 그 선택이 정배가 되도록 노력을 해야하는데 그걸 할 능력이 부족했던거지
인조가 중립외교라니?
이런 프로그램 안 부끄럽나
인조 행적을 어떻게 해석하면 중립이 나옴?
조선에 방문한 후금 사신들이
좀만이 망나니긴 했음.
그러게요. 아무리 봐도. 중립를. 한 노력은 안보이는대. ..그저. 망해가는 명나라만. 빨아대기 바쁜 조선인데. ㅋㅋ. 청나라. 도와주지 않을거면. 명나라도 도와주지 말았어야지 ....이걸. 방송이라고 히나. 글고. 벨기에를. 집어넣으면서 약소국의 중립은. 의미없다 라는 식으로 얼버무리면서. 지금의 친서방외교를. 정당화 하네. ㅋㅋ 이래서. 내가 공영방송을. 못믿는다
저게 무슨 중립이에요.
명에 치중한 정책이었죠.
중립이라는 건 말 그대로
1. 어느 편에도 치우치지 아니하고 공정하게 처신함.
2. 국가 사이의 분쟁이나 전쟁에 관여하지 아니하고 중간 입장을 지킴.
강대국들 사이에서 약소국이 중립 지킬 것이었으면
슬로건부터가 달랐어야 합니다.
솔직히 말해서 조선은 약소국이 아니라!! 인조 라는 희대의 암군이 왕의 자질도 안됬으면서 즉위 한거 자체가 문제 였다!! 조선의 능력상 충분히 중원을 통일하기 전의 청을 압도하고도 남았음
@@안드로이드-g2q임진왜란 전이면 몰라도 이후는 힘듬. 여진족 컨트롤하던 부대 말아먹은게 충주 탄금대전투 대패라서.
@@sldkrn그렇치 않음.이미 광해는 이런 사항을 예측하고 군사력을 키웠으며 조총부대및 기마부대를 키웠고.그때 까진 청도 무시하진 못했죠.이괄의 난 이후로 확실해진 군사력싀 승세를 알수 있었고 이괄의 정예병들이 청에 투항했던 것이 청의 결정을 하게 된것임.청은 조선에 모든 군사력을 집중할수 없었으므로 충분히 장기전으로 끌고 갈수 있었으나 멍청한 인조는 내분을 스스로 만들어 버림.이괄의 군사력 엄청 셌슴.그들이 초전에 막아주고 지방병사들이 올라와 지원하는 형태라면 초반에 그렇게 올수 없었슴.전쟁 하지도 않았고.방어전이 공격전보다 쉬움.인조가 남한산성 갇힌뒤 조선군은 공격전으로 나가야 하는 전략이 있어야 했고 지방군들은 더 어려운 전쟁을 해야 했슴.
중립외교란 고려시대 거란과 전쟁을 끝내고 거란과 송 사이에서 큰소리 치는게 중립외교인거죠.. 힘없는 중립은 세상에 존재 할 수 없음.
맹수 두 마리 사이에서 힘없는 사슴이 중립을 표방한다고 살아날까? 어림없는 얘기이다. 영세중립국 스위스도 나폴레옹군대에 짓밟히고 난 후 전국민의 무장화와 전국토의 요새화가 이루어졌으며, 60세까지 매년 군복무한다. 또한 핵무기개발도 시도했을 정도로 작은 나라지만 군사강국이 되기 위해 많은 것을 포기한다. 2차대전때 약소국 벨기에는 철저한 중립을 표방했지만 나치독일은 벨기에를 가볍게 점령했다. 약소국이 중립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전국민이 집집마다 소총을 보유하여 국민수가 거의 군인수가 되어야 하며 군사훈련을 60세까지 할 각오를 해야 한다. 즉 사슴이 아니라 고슴도치가 되어야 한다. 강대국의 수도를 때릴 수 있는 핵무기를 갖고 있던지.
동양에는 이런 사건도 있었지만 서양에선 전쟁이 싫어 대화 평화 외치다 패권국 지위 내려놓고 꼴아박은 영국과 나라를 나찌에게 뺐긴 프랑스 사례도 있고 효과적인 블록화로 전쟁없이 세계 2위 국가 소련을 몰락시킨 미국 사례도 있음
영국이 독일과 전쟁안하고 계속 평화적으로 갔으면 영국 독일이 계속 패권국가였슬 수도 있죠 ㅎ
전쟁이 싫어서 대화와 평화를 외쳤다기보다는 억제력이 없었죠. 영국 프랑스 둘 다 전후 복구나 식민지 탄압, 대공황으로 맛탱이가 가버렸으니까요.
한편 미국의 효과적인 블록화는 개소리고요, 애시당초 낙후된 러시아 제국에서 출발한 소련의 공업력이 미국을 이긴적이 없습니다. 정치적으로는 세력확장을 막기 위해 노력했다지만 2차대전 당시 우방이었죠. 그 뒤의 블록화를 했고 이게 효과적이라고 하기에는 2차대전에서 가장 큰 피해를 입은 소련이 세계2위가 된건 어찌 설명하시려고😅😅 이후 공산권은 심지어 확장되고요. 소련의 몰락은 인정하기 싫으시겠지만 MMD하에서 전쟁을 억제한 상황에서 소련의 경제력이 한계에 이르고, 지속적인 대화와 경제적 협력(대표적으로 미국의 식량수출, 소련의 글라스노스트)의 결과였습니다. 제발 역사를 이념으로 배우지 마시고 팩트로 배웁시다.
@@user-jz3et2hb8p 그니까 1,2차 세계대전으로 인해서 유럽에 집중되어있던 모든 자본과 인력들이 미국으로 넘어갔고,
유럽은 전쟁으로 쑥대밭이 된 데에 반해서 미국은 전쟁물자 팔아서 강해진 건 사실이잖아요
만약 유럽에서 전쟁을 안 했으면 미국보다 강했을 수도 있지 않을까요?
10:03 인조반정 년도 자막 잘못되었습니다
1632년이라고 나와있네요
이 영상 상당히 객관적이 분석들이라 좋네요
한국사에서 진정한 중립외교는 중국의 남북조시대 당시에 고구려 장수왕의 외교정책이었다고 생각합니다
@@chin806강대국일수록 중립은 필요함 중국 남북조가 서로 고구려가 필요한 상황이면 그걸 이용할줄 아는게 진정한 군주고 왕임
@@chin806 길이 땅으로만 이어진줄 알았으면 그것만큼 무식한게 없을텐데 ㅋㅋ 바닷길은 왜있고 고구려는 전연에게 왜 그렇게 침공을 받은것이고 그로인한 트라우마가 광개토대왕,장수왕세대까지 남아있었던건지 ㅋㅋ
12세기 초 요금교체기 고려 인종 때 당시 실권자였던 이자겸과 척준경의 중립외교가 첫 성공 사례였고 두번째가 17세기 초 광해군이 요,금,송을 상대로 중립외교를 완성한 고려를 롤모델로 삼아 후금과 명 사이에서 실리외교를 한 것.
@@chin806 이자겸과 척준경은 당대 권신으로 평가받고 외교 굴욕 자체로 치부되었지만, 결국 지금 그들의 외교 평가가 고려 국민들의 안녕과 국가 안보에는 옳았음이 역사적으로 입증되었지 않았습니까? 신채호의 말이 100년전에는 맞는 것일지 몰라도 21세기 현 시점에서는 아닙니다. 12세기 초 고려의 외교력은 후대 사람들에게 롤모델이 될만합니다.
@@chin806 윤관과 함께 동북9성의 주역이었던 척준경부터가 요나라와 금나라 사이에 전쟁에 휘말리지 않아야한다고 주장했던 한국사 최고의 무장의 시각이었고 그 척준경의 판단도 존중받아야 한다고 봅니다.
공부에 많은 도움이 됩니다. 역사는 특히나 명료하게 바라볼 수 있는 지식과 눈을 갖는게 어려운데, 영상과 전문적 설명이 도움됩니다. 17:00~17:50 경종을 울리네요. 감사합니다.
금이 원했던 것은 조선의 체제의 변화.
즉 명을 어버이로 섬기고 명 제국의 일부로서 살아가는 근본적 체제의 변화다. 그리고 자기한테 붙으라 이거다.
반면 명이 원했던 것은 현상 유지.
조선은 현상 유지를 택했고, 반강제였지만 금과 형제의 맹약을 맺었음에도 이전의 태도를 고수했다.
결국 조선은 중립을 택한 적이 없는 것이다.
인조가 친명정치(명나라랑 친한관계)고집한 이유는 당시 광해군 집권시절에 광해군의 무모한 후금과의 정치에 인조반정을 일으킬 명분으로 내세워서..
자기가 왕차지하고 왕될려구 한거에서 부터 패착이 컷음..그래서 후금에 왕이 친조를 하라구 해도 안하길래 빡처서 삼배구고두례라는 삼전도의 굴욕이 생기게됨..
중립외교라.. 지금 우리가 중국과 미국 사이에서 중립외교를 하면 어찌될까? 미국은 절대패권이고 중국은 떠오르는 패권이지만 힘차이가 10배는 난다. 미국과. 우리는 미국에 줄서고 중국을 달래야 하는거지.. 그게 쉽지는 않지
치욕의 역사도 이렇게 바로 바라볼 줄 알아야 되풆이 하지 않는 법.
역사는반복되고있다
중립외교는 광해군이 했던거고 인조는 친명배금을 외치다 전쟁을 일으킨거
그건 일제가 만든 프레임. 만선사관입니다. 광해군의 샤르후 전투가 1년치 생산 화포, 8년치 생산 조총, 말의 20%를 손실냈습니다. 그게 중립외교인가요? 한번더 중립외교했다가는 나라 살림 거덜내겠습니다.ㅊ
이념논쟁에서 벗어나 현실을 자각하고 실리를 찾아야 합니다.
그게 이념임
실리를 결정하는 나라에서 이념을 따지는데 약소국이 이념을 안따지면 안되지요
@@김범수-x4l 실리가 이념이야..
이게 식민사관임. 그 당시 조선은 전쟁할 힘도 움찔할 힘도 없었기 때문에 실리를 따지고 피를 덜 볼려면 전쟁보단 합병되는 게 맞았음.
실리를 쫒으려고 친중했는데 (무역흑자), 돌아오는게 혐한, 소국이 대국한테 깝치고 있다, 마약 퍼뜨리고, 기술내놓으라고 함 ㅋㅋ
인조 반정 년도부터 틀렸네요
1623년인데 1632년이라고...
추악한 왕의 예견된 말로이다 천벌을 받았다는 생각이 든다.
한국이 지도에 있는게 신기
인조 본인의 진심이 어땠는지 알 수는 없지만
인조시대는 친명배금이 확실한 시대였음...
병자호란은 😊세계사에 가장 자비로운 전쟁 가운데 하나다
시대가 아니라 그냥 조선이 뱅신이었지 일본만 해도 포르투갈 네덜란드랑 교역하던 시대였음 서양에서는 신대륙 발견하고 세계일주 하던 시대였고 조선이 자폐국가였는걸 뭔 시대 타령하고 자빠졌누 ㅋㅋ 조선인 답네 ㅋㅋㅋ
뭘 진심이 어때요 친명배금이지 솔직히 인조반정명분중에도 제조지은이들어가있는데 당연 친명배금이죠
친명배금할수밖에 없는 큰이유가 반정으로 된 임금이었고 임금으로 인정받기위해서는
명의 재가가 필요했는데 국제정세를 못 읽고 있었다는게 큰 실책이었죠 그때까지도 후금정도는 명이 제압할수 있겠다고 착각을 한거죠
@@황조-d2b 당연히 그 시대에는 명이 후금을 제압할 수 있다고 판단하는게 맞았다. 1630년대 만주는 물자부족으로 허덕여서 골골대고 있었고, 정묘호란 이후 조선에서 준 물자가 아니었으면 이미 멸망 직전까지 갈 정도로 식량난에 시달리고 있었다. 그 와중에 전쟁은? 여전히 산해관을 뚫지 못하고 수십년째 그 앞에서 공성전만 했지. 그게 1650년대에 가서야 끝난다. 병자호란 15년 뒤고. 그러니까 병자호란 도중에는 청나라는 아직도 수십년째 산해관 하나 못 뚫고 빌빌대고 있던 상태였다. 심지어 마지막에 뚫은 것도 아니야. 안에서 배신자가 나와서 열어준거지. 그 정도로 역량 차이가 났다.
그런 상황에서 청나라에 베팅했다가 청나라가 망하기라도 하면? 빡친 명나라가 쳐들어올 텐데 그건 감당할 수 있고?
중립 외교가 문제가 아니고 제대로 된 중립 외교를 못한게 문제 아닌가??
인조반정 자체가 친명배금을 명분으로 천명했기에 인조 정통성상 중립이 될 수 가 없음.
댓글들 보니 현재 시점에서 이러쿵저러쿵 하는데 그냥 애초에 조선이란 국가는 태생과 지정학적 위치부터가 다른 국가에 얻어터지게 설계되어 있었다.
고려는 송 거란 사이에서 거란 기병군대를 대회전으로 수천만 남기고 다 죽이고 오히려 송나라에 갑질까지 했는데 조선은 ㅋㅋㅋㅋ 그냥 한심
당시 중세온난기라 농경민족에게 유리했음
조선은 군대가 없던 병신 국가임.
임진왜란을 겪었는데도 군사력에는 안일했음
군사력을 키울생각조차안했음
@@jhg7661 왜란을 겪었으니 군사력이 안남아나는거다 재정이고 인구고 반토막 이하인데 무슨수로 여진족을 상대해 ㅋㅋㅋ
댓글도 한심 대댓도 한심
역사공부좀 해라 진짜
뭐가 중립이고 계속 싸워라 했는데 제목 엉터리네
솔직히 정묘, 병자호란 둘다 한국사에서 원인을 가르쳐주긴한데 그 외 당시 상황이 실제로 더 복잡했을거임.
정묘호란은 이괄의 난으로 인한 한명련 아들의 배신으로 일어났었습니다!!! 정묘호란으로 조선을 한대 쳐봤더니 반응이 생각보다 쉬워서 병자호란을 계획한거였습니다!! 인조반정 자체가 안일어 났으면 이괄의 난이 안일어 났을테고 고로 정묘호란도 안일어 났을테니 병자호란도 조선판 귀주대첩 순으로 끝났을 겁니다!! 인조반정이 없었으면 청은 처음으로 상대할 상대는 조선판 소드마스터인 한명련을 시작으로 이괄, 정충신, 남이흥, 유림이 지휘한 항왜군을 앞세운 2만에 달하는군사를 상대 해야했고 이들을 넘는다 해도 3만의 도원수 장만을 상대 해야 했습니다! 이들은 전부 넘는다 해도 조선의 왕은 강화도로 피신한지 오래이고, 전국각지에서 몰려온 물자보급을 충분히 갖춘 10만의 8도 근왕군및 의병들과 임진강이나 한성쯤에 대회전을 벌이고 나서야 강화도를 쳐다 볼수나 있었습니다!!
그 사이에 일어났더 수많은 일들이 있는데, 정작 교과서는 그런 건 안 알려줌. 단순무식하게 중립이니 친명배금이니 ㅋㅋㅋ 현실은 만주지역의 경제적 문제, 인삼과 관련된 월경문제, 가도 문제, 명나라 내부의 혼란, 누르하치와 홍타이지의 외교기조 차이 등등 수도 없이 다양한 요소가 겹친 건데, 단순무식하게 조선의 외교기조 차이때문에 벌어졌다고 가르치고 있으니 한심하지 ㅋㅋㅋ 조선왕이 전쟁안함! 하면, 명나라와 청나라가 모두 우와 알았어 전쟁 안 할게! 해줄거라고 믿는 순진한 발상이 대체 어디서 나오는 건지 ㅋㅋㅋ
애초에 그냥 후금이 운이 억세게 좋은 것을 어쩌누? 후금은 명은 커녕 조선과 비교해도 국력이 딸리는 나라였다. 그런데 조선은 수백년간 북방수비의 핵심이었던 북방군이 반란일으켜 사라지고 명은 그냥 반란 일어나 스스로 망해버림. 후금은 그냥 숨만 쉬었는데 둘이 갑자기 아파 죽어버린 거임.
당시 경제력대비시 청은 명에 비교대상은 아니고 조선의 최선의 대책은 정예병으로 국경을 지키는 일이였음 청나라와 손잡기는 확신이 부족함
이게 팩트인데 명나라는 지는해 청나라는 뜨는해 ㄹㅇ 이소리 앵무새처럼 맨날나오는게 왜그런지모르겠음 ㅋㅋㅋㅋ
자기가 편지로 시비털고 대책마련은 눈감은 임금
광해군은 임진왜란을 겪고 극복해본 왕이라서 잘 극복했을건데 고려와 강감찬 장군이 막는 방법을 보여줬잖아.
말이되? 슬로건이라고?... 명을 치려하는데 뒤에서 조선이 어떻게 할지 모르는데... 존재 자체만으로도 거슬리는데 친명이라는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으니 이건 분명 후금에대한 도발이나 마찬가지다.
명청시대나 지금 미중시대나...중간에 낀 우리나라 정세가 참 어렵네요
뭐가?? 지나는 지금 한계에 다다라 곧 여러 나라로 갈릴텐데? 전통우방과 지금은 같이 할 때야 지나와 같이 할 때가 아냐. 지금 모든 나라가 지나에 투자한 걸 빼는 걸 보면서 그런 소릴 해?? 뉴스 좀 보고 살아라. 맨 성관계나 도박관계 미디어만 보고 사니까 그런 걸 전혀 모르지.
아직도 미중관계를 명청교체기로 보려는 프로파간다가 넘치네 ㅋㅋㅋ 그 때랑 상황 전혀 다르다 븅신아
중국이 미국의 상대가 되는줄아냐?
최대한 미국 피해없게 천천히 때려잡고있구먼
그대신 평화의 분위기 속에선 미친 번영을 이루죠. 중간에 있는 나라의 숙명
강한나라 미국이 붙어야 살길이있다 저기서도 나오자나 어중간하다가 망한거
조선은 지리요건상 농업대신 상업을 중시했으면 더욱 부강한 국가가 되었을텐데 그놈의 사농공상 거기에 전국민의 40프로가 노비라 세수도 적고 태생적으로 진작 망해야할 나라였음
인조는 무슨 무덤 파서 능양군으로 격하해라 아니 무능군으로 하자
인조가 무슨 중립. 역사의 판단이야. 각자의 판단이지만 인조가 중립외교? 소가 웃겄다.
사대에 제대로 빠진 외교죠
반박하려면 책도 읽고 논리적 근거를 갖춰 하셔야되지 않을까요? 백번 떠먹여줘도 귓등으로도 안들어처먹으니 답답하네요~ 그렇게 많이 아시면 교수나 학자를 하시지ㅎㅎ
@@장세영-p8w님이야 말로 근거를 대야죠~~ㅋ
다큐에 나외있잖아요 이럴거면 이걸 왜 봐요?
광해 영화 보고 와서 광해뽕 제대로 차있는 사람이 제목만 보고 댓글단거지 뭐 ㅋㅋ
반정으로 권력을. 잡더니 값을 톡톡히치르네.
못난놈?
인조는 칭신을 강요당하자 선전포고 수준의 서한을 청에게 보냈습니다. 이게 중립 외교라고 보기는 힘들죠.
칭신을 강요하는 건 당시 동아시아 국제외교에서, 명나라와의 모든 관계를 단절하고 청나라 밑으로 들어와라. 라는 소리다. 사실상의 최후통첩이다.
최후통첩을 받고 굽신대는게 중립외교인가?
광해를 내치고 앉은 자리지만, 아무 준비없이 당하기만 했던 나약한 군주..... 시대를 읽지 못했던 군주....
광해군이 궁궐 공사 하겠다고 날려먹은 국가예산이 얼마인지 알면 인조나 광해나 도찐개찐인걸 알겁니다.,
현실감 없는 돌아이 군주기도 하지. 지금 대똥 윤석열 같은 놈~! 그건 한국인도 아닌게(걔는 재한일본인이야 착각 마) 왜 대똥질을 하는지 몰라?? 무식한 우민속물들이 그걸 찍어줬기 때문이지 아니 대구경북지역서 부정선거로 기권표 다 긁어넣고 푸틴식으로 당선됐단 소문도 널리 퍼졌던데??~
@@성이름-r5m6o 이괄의 난으로 날려먹은 평안도 군사력은 ㅋㅋㅋ 비교자체가 안될텐데요...
@@성이름-r5m6o 자기 아들내외 죽인 무능한 놈이랑 비교하기엔 광해군이 너무 아까움
@@보노보노-d6m 광해군이 자기 친형을 죽이고 폐모살제한걸 아니?
광해군을 몰아낸 사유가 명을 등한시했다는 거였는데, 인조가 중립외교를?
절대 못하죠. 정당성이 사라지는건데..
그당시에 광해군은 유배지에서 살아있었음.
글쎄요 인조가 중립이었다고요..?? 여러 정황이나 우리가 배우는 역사나... 대놓고 배금이었고 인조가 전국 곧곧에 방붙였던거만봐도 닥치고 배금인데 무슨중립이었다는소린지 이해가 잘안되네요...;;
인조가 취한 외교가 중립이었다면 광해군이야말로 친후금정책이라고 불리워야합니다 그건말이안되는소리죠.
인조는 그저 반후금이면서 전쟁할 능력은 없던 무능한군주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닙니다. 중립은 더더욱 아니고요.
33:03역사를 배운사람들은 일방적인 미국편이 얼마나 위험한건지 아는데 멍청하거나 역사지식아무도 없는인간들은 미국만 믿으면된다고 생각하지요
중립도 힘이 있어야 하는거지 ㅋㅋ 너도 중립망상병자구나
광해군을 몰아내고 억지로 왕위에 올랐지만 정작 광해군보다 나은 점이 없던 망한 임금...
중립은 양자가 서로에 대한 증오심과 고립심리를 적절하게 이용하는게 기본이지요 사실 후금의 주적이 명나라였기에 광해군으로서는 그래서 효과적인 중립외교를 펼칠수가 있던 것입니다
@@user-jz3et2hb8p ; 광해군 일기를 제대로 보시기나 한것인가요 후금과 사신교환을 한 광해군이 중립외교를 한적 없다니 무슨 헛소리를 사르후 파병때 파병에 반대하여 안할려고 했던게 광해군이었고 집권당 북인 대신들의 거센 공론에 굴복하여 파병했어도 파병군의 수장 도원수 강홍립에게 후금군과의 싸움을 피하라는 비밀 명령까지 내릴 정도로 후금과의 대립을 피하려고 했던게 광해군인데
그리고 사르후 전쟁 직후에 후금에 투항한 강홍립과 서신교환하여 후금의 사정을 파악하고 사르후 전투 이후에 후금과 관계를 맺어서 사신교환 하고 명의 재파병 요구를 거부한게 광해군이었어 뭘 알고서 말하시기를 광해군이 파병한 강홍립이 누르하치를 설득하여 조선에 대한 후금의 보복을 무산시킬수가 있었고 조선군 1만을 날려 먹은게 아니라 조선군 일부가 강홍립의 노력으로 풀려나서 본국에 돌아올수가 있었지
중립외교해도 군사적으로 거슬릴때는 명이든 청이든 공격의 대상으로 변합니다 더구나 조선이라는 나라는 상비군이 510년 내내 1만명도 안되는 허약한 경제력을 보유해서 강대국에 제거해야할 필요가 생기면 쳐내야하는 존재가 될뿐입니다
광해가 중립외교?? 너무 영화를 많이 봤습니다!! 인조 반정이나 이자성의 난민 아니였음 청은 경제 봉쇄당해 멸망을 코앞이였습니다
@@안드로이드-g2q ; 영화가 아니라 엄연한 팩트다 인조반정이나 이자성의 난만 아니었다면 청이 경제 봉쇄 당해 멸망 코앞이라고 개뿔 같은 헛소리를 하고 계시네 임마
조선과 명은 이미 임진왜란으로 피폐해진 상황이라 후금의 성장을 막을수가 없는 상태이고 그 결과물이 사르후 패전과 명나라의 요동 상실이지 않은가 청은 명의 요동을 점령하여
그 지역에 천도할 정도로 얼마나 강성한가를 알아야지 사르후 전투 이전부터 명은 만력제의 실정으로 재정피폐와 백성들의 궁핍한 생활 때문에 쇠퇴를 거듭하는 상황이지
@@bulletsilver3005 ; 어느 국가가 자국의 주적을 앞에 두고 적도 아닌 3자를 적대하여 적으로 돌리다가는 그 3국이 주적과 연합하는 고립을 초래하여 자국에 치명적인
경우가 될수 있기에 그 국가 권력층이 바보가 아닌 이상 고립을 초래하는 중립국 3자를 적으로 돌리지 못하는 법입니다 제3자를 적으로 돌리다가는 적을 2명이나 두어야 하는
전략적인 고립을 가져오기 때문에 그런 고립심리상 어떻게 중립국을 공격할수가 있습니까? 주적을 앞에 두고 제3국을 공격할 병력이 어디에 있습니까? 3국 공격하기 위해 자국 병력을 그쪽으로 투입하면 주적에게 공짜로 자국 영토에 내려오라고 광고하는 격이지요
이념에 빠져 백성들을 도탄에 빠트렸죠. 요즘 그 양반이 생각나네
인조가 중립을 지켰다고? 말도 안되는 소리
약소국의 중립선언은 중요한게 아니다 오직 강대국이 판단 하는거지
우리 입장에서 봤을때 오랑캐인 것이지, 그들이 봤을때는 그 반대겄지요. 양반내들 생각일뿐.
국제 정세 상황 판단도 모르고
거지같은 기와집에서 책이나 읽으면서 엣헴거리고 배때지만 나오고 남자같지도 않은것들이 의외로 성욕만 충만해서 그냥 가축돼지처럼 봤을듯 ㅋ
후금은 어떻게 서양의 신무기 홍이포를 어떻게 얻었을까?
서양의 신무기 홍이포 덕분에 명나라 멸망시키고, 청나라를 세울수가 있었음.....
러일전쟁 직전에 대한제국도 중립 선포를 하긴했음. 대부분의 한국인은 이 사실을 모름. ㅋㅋㅋㅋㅋ
고등학교 교과서에도 나오고 한국사 자격증 시험에도 있는 내용입니다
부들러나 유길준이 주장할떄 했으면 가능성이라도 있었음, 1890년대 이전, 근데 민비ㄹ이 유길준 가택연금시켰지
@@무-z8n 고교 수학 교과서에 미분적분이 있지만 고졸이라해서 그걸 다 풀수있는게 아닙니다.
토크멘터리 전쟁사에서 임용한 박사가 한 말 : 선포한다고 안 쳐들어 오냐? ㅋㅋ
@@성이름-r5m6o비유가 잘못됐네요. 배웠어도 풀 수 없는 것과, 배웠어도 기억 못하는 건 다릅니다. 최소 미분적분이 교과서에 있다는 건 알잖아요?
15년동안 호의호식하다가 굴욕 쳐 당하고. 저 인간 혼자 머리조아리는건 괜찮은데 백성들도 그 수치심을 함께 껶어야 했던게 마음아퍼
현재 대한민국이 지금 중국이랑 미국이랑 어디다 줄을 서야 할까요?
선조는 그래도 임진왜란 이전에는 나름 괜찮은 군왕이었는데 인조는 그냥 쭉 삽질만 한 왕이었음
조선이 무슨 짓을 벌였든 결국 후금은 조선을 손 봐줬을 것임. 조선의 잘못된 판단이 시기를 앞당겼을 순 있지만 어찌되었든 병자호란은 후금의 필요성에 의해 일어난 전쟁이니까. 우리나라 사람들은 우리나라 사람끼리 외국에 어그로 안 끌고 우리나라 안에서 착하게 살면 외국도 우리나라를 건드리지 않을 것이란 헛된 소망을 가지고 있는 편인 것 같음. 하지만 병자호란, 임진왜란도 그러다 일어났고 대한제국도 그러다 망했지. 새삼스럽게도 언제나 국제정세는 강대국에 의해 결정되어왔음. 중국이 한국을 지금까지 손봐주지 못 한 건 한국이 강해서가 아니라 한국이 미국의 동맹이기 때문이란 걸 이 나라 사람들은 너무도 쉽게 잊어버린다.
맞음 이러쿵저러쿵해봤자 의미없는게 당시 후금은 조선 안 치면 지네가 망할 상황이였기때문에 병자호란은 피할수없었음 ㅋㅋ
이 말이 맞지. 한국이 외교정책을 피면 모든 나라가 거기에 맞춰서 둥가둥가 해준다? 무슨 망상도 이런 초등학생 레벨의 망상으로 국제외교를 펴자고 하는 놈들이 이렇게나 많은지 모르겠음. 그게 됐으면 2차대전때 중립국들은 왜 히틀러한테 털렸으며, 왜 강대국들도 약소국의 외교정책 하나 제어 못해서 전쟁을 일으켜야만 하는가? 에 대한 설명을 할 수 없음 ㅋㅋㅋ
인조는중립주의자가아니지명나라사대주의자
인조 반정을 해서 왕이 되니 자기 힘으로 한게 아니라 신하들에 의해 왕이 됐으니
철종처럼 신하들이 자기맘대로 좌지우지 했으며
왕의 깜냥도 안됐으며
소현세자는 살해 당했지 뭐.....
역알못ㅋ 인조반정은 인조가 주도했고 그 덕에 병자호란 겪었음에도 왕위 유지하면서 어거지로 정통성 빈약한 효종을 후계자로 세웠던거지
당시 조선은 성리학 이념에 함몰되어 국제외교 따위는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10:32 인조반정은 1623년
맞을짓을 했네..축하사절로 왔으면 예의를 갖추고 따라야지
ㅋㅋㅋ
????
사절단은 외교관이고 저기서 청나라의 황제취임을 축하하는 순간, 명나라와의 외교관계를 단절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하는거다.
국제외교가 뭔지도 모르는 무식한 놈이 무슨 친구들 축하파티 따라가는 것마냥 아가리 씨부리는데, 세상물정도 모르고 이런 말을 씨부리며 역사를 평가하는게 아이러니다
아버지와 형? 든든하네? 조선 인조?
나혼자 정신승리로 중립이다 중립이다 하면 뭐함 이해 국들은 그렇게 생각을 안하는데 그걸 능력이라고 생각함
제목 이상하게 지었네 줄 잘못서고 제대로 중립외교 안해서 벌어진거 같은데요. 중립외교도 예시든 국가도 벨기에를 드셨는데 바로 아래 스위스 얘기는 왜 안하나요?
인조가 뭔 중립 ?? 걍 왕을 하지 말아야 할 개식히지
선조와 인조가 있기에 광해군이 더 성군으로 빛나보이는 이유
운동권이 자기들 정치상황에 맞춰서 신적화 시킨 중립외교뽕에 속질 마시길... 묘호 못받은 군주는 이유가 있습니다
선조는 간사하지만, 그만큼 정치적 능력이 있는 편이였고, 이순신도 선조가 파격승진시킨 사례.
광해군은 왕권 강화한다고 신하들 조지고 궁궐에 돈 낭비해서 쫒겨난거고,
인조는 또 광해군마냥 기강잡는다고 반대파 숙청하다가 이괄의 난. 결국 북방 병력이 비면서 병자호란에서 굴욕.
그리고 결정적으로는, 서양 절대왕정은 자본주의를 통해 더 많은 식민지를 만들며 돈을 쓸어담던 과정에 생긴 거지만
조선은 중앙집권이면서도 상업을 억제했기 때문에, 고려때의 사병도 부족하면서, 그걸 대체할 상비군조차 없는 노답 상황이됨.
비슷한 상황이였던 스파르타는 전시민 정예화라도 했지, 조선은 고려때에 비해 수도 부족, 질도 부족, 그냥 노답이였음.
그냥 광해군을 연산군급으로 내려치던 옛 사관에 대한 반작용으로 그를 너무 과하게 띄워주다 보니까 선조와 인조가 저평가 될 뿐입니다. 실제로 광해는 연산군보다 좀 낫다 뿐이지, 폐위되는게 당연한 수준이고 선조는 태종/문종/세종/성종 바로 다음에 위치할 정도의 명군이었습니다. 명종 시기 망해가던 조선을 수습한 것도, 신하들 모두가 반대한 전쟁준비에 돌입한 것도, 임진란 후 황폐화 된 조선을 재건한 것도 모두 선조입니다.
광해의 업적으로 알려진 대동법과 중립외교 모두 팩트가 아니고, 심지어 대동법은 선조가 ‘조선8도가 이미 왕의 것인데, 굳이 각 지역의 특산물까지 받겠다고 백성들의 고혈을 짜낼 필요가 뭐가 있냐’면서 조세제도의 대대적 개편을 명하여 만들어진 법입니다. 오히려 영화 광해에서 사월이의 부모를 죽게 만든 방납을 독점한 것이 광해의 지지기반인 대북파예요
광해군이 잘했다고? ㅋㅋㅋㅋㅋ
광해군 역대최악의 임금인데 ㅋㅋㅋ 능력치로 따지면 그 무능한 인조보다 한수 아래임
당시 벨기에에게 수탈당한 국가들도 많습니다.
인조반정의 명분중 하나가 '명을 배척하는 배은망덕한 왕을 쳐낸다'인대 무슨 인조가 중야
이념이 최우선이라는 어느 모지리가 생각나네!
중립외교를 하더라도 군사력이 갖춰져야 한다는 것이죠.그래서 광해는 군사력 증강에 힘썼던 것이고 그러다 보니 돈이 많이 들어갈수 밖에 없었죠.인조는 그 군사력을 내전에 다 잃어버려서 청에 허무하게 짓밟힌것이고.이괄의 난이 가장 큰 원인이긴 했지만 그 원인은 인조가 무능했기 때문.조선의 왕 중에 가장 무능한 왕이 다시 집권했기 때문이죠.
이괄이 성공 했어야 했죠.
@@angel9526 이괄이 성공했어도 내전은 피할수 없었을겁니다.아아도 이괄을 역적으로 몰고 내전.인조가 스스로 굴욕을 자처 한 것입니다.
광해군이 무슨 군사를 어떻게 증강시킴? 설명좀
이괄이 있었더라면 쉽게 패하진 않았겠죠
광해군의 군사력 증강 = 점쟁이 말만 믿고 궁궐짓는데 거따가 올릴 청기와의 염초가 모자라서 군용 화약까지 빼돌려서 청기와 굽기 / 사르후 전투때 파18000명 파병해서 14000명(1만 사망, 4000 포로, 생환자는 극히 일부) 증발시키기
광해가 계속 왕을 했어야 했는데...
이괄의 난으로 서북방 경계가 무너져 병자호란의 큰 패인이 되었음을 인정합니다 그러나 이괄의 서북면 군사가 무너졌다고 병자호란의 유일한, 결정적 패배요인이 되었다고 납득하기는 힘듭니다 왜냐하면 고구려 수당전쟁 때 고구려 병사가 많이 전사했음해도 결국 당나라가 신라를 끌어들여 이중전선으로 고구려를 겨우 멸망시켰을 만큼 고구려는 버거운 상대였으며 또한 여요전쟁에서 강조의 30만 군사가 요나라에 썰려 나갔을 때도 고려는 곧바로 재기에 성공해 요나라를 완전히 패퇴시킵니다 토크멘터리 전쟁사의 임용한 박사가 말하듯 서북면 이괄의 군사가 인조에 의해 축출됐다고 해서 조선의 군사가 청나라의 군사를 전혀 막지 못할만큼 재기 불능의 상태였다면 애초의 조선의 군사제도 및 사회제도는 쳥나라의 군사를 막지 못 할 정도로 후진적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똑같은 내용으로 임진왜란 때 성공 했었는데 전략상 실패로 남한산성에서 패배한거죠. 뭐 그건 둘째치고 애초에 청제국의 영토와 당시 상황을 보면 걍 전세계에서 청나라의 군사를 막을 나라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지금 미국이 핵미사일 쏜다고 해서 막을 수 있는 나라가 전세계 0개 있을텐데 전세계가 전부 다 후진국적일까? 라고 생각 해보시면 됩니다.
그리고 저도 임용한 박사님 말씀에 동의 하지만 당시 조선의 경우는 간단하게 살펴봐도 상황이 심각 했었습니다.
1592 임진왜란
1619 사르후
1623 인조반정
1624 이괄의 난
1627 졍묘호란
1636 병자호란
이정도면 왜 그정도 밖에 못싸운거냐 라고 해야할게 아니라, 반대로 그정도면 잘 싸운거다 라는 말까지 나올정도죠
말씀 잘 들었습니다 그러나 청나라가 오늘날의 미국에 버금가는 강대국이어서 조선이 비록 패하였어도 나름 선방한 수준이라면 당태종의 침입과 거란(요나라)를 막은 고구려 고려는 어떻게 설명하면 좋을까요? 저는 당태종의 군사와 요성종의 거란군이 결코 청나라의 군사력에 뒤진다고 생각하지 않거든요 이에 대한 의견 듣고 싶습니다
@@유우진-g6z 우선 시대적 상황이 모두 다르기 때문에 일괄적인 비유는 어렵다는걸 감안 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제가 적은 첫번째 댓글을 더 자세하게 설명드리겠습니다. 고당전쟁, 여요전쟁과 임진왜란은 전쟁 양상이 비슷했습니다. 전쟁 초기는 패배 했지만 결국은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다는 거죠. 특히 여요전쟁의 경우는 내용적인 측면에서도 훨씬 더 그러한데, 한반도 남쪽 끝까지 몽진해서 결국은 승리한 고려 현종과 한반도 북쪽 끝까지 몽진해서 결국은 승리한 조선 선조는 시대만 달랐지 똑같은 역사를 가지고 있죠.
고당전쟁 또한 초기에는 요동성 백암성 등 여러성들이 함락 되지만 결국은 승리한다는 점에서 임진왜란과 비슷합니다. 이후 역사의 진행 상황을 보겠습니다. 고구려는 결국은 당나라의 재침입으로 멸망하게 되죠. 임진왜란에서는 승리 했지만 크게 작은 국력 소모로 인해 병자호란 때 굴욕을 당한 조선의 상황과 매우 흡사합니다.
고려의 경우도 조선과 비슷합니다. 2차 여요전쟁 이후 반란이 일어나고 제3차 침입이 있죠. 임진왜란 이후 이괄의난이 일어나고 다시 정묘호란 병자호란 터진 시점이 생각나는 지점입니다. 다른점이라면 이때 여요전쟁은 고려가 승리를 이끌었다는 겁니다.
병자호란의 경우도 역사에선 의미가 없는 'IF' 를 생각해보면 인조가 남한산성에 더 많은 군량미를 준비 했었다면.. 혹은 몽진을 더 잘 했었다면.. 라는 아쉬움이 생기는 지점이죠. 병자호란 때 청나라 군대의 속전속결에는 천연두 때문이라는 주장이 있기 때문에 더 그러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제가 전략상 실패 라고 한겁니다.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건 누구보다 더 쌔고 약하고가 아닌 국력도 상대적인것이고 시대마다 상황이 다르니 충분히 감안 할 필요가 있다 라는겁니다. 1592 임진왜란을 시작으로 사르후 인조반정 이괄의 난 정묘호란 병자호란 등 굴직굴직한 사건만 6개가 터졌는데 거기다가 그 상대방을 불세출의 영웅이라는 청태종이니 이정도의 압도적인 무력은 예상 밖일 수 밖에 없죠
@@유우진-g6z 하나 더 당부드리고 싶은 말은, 조선과 고려를 비교하시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가지는 공통점이 있는데.. 고려의 최전성기 or 승리한 전쟁과 조선의 쇠퇴기 or 패배한 전쟁을 비교한다는겁입니다.
한반도 왕조뿐만 아니라 인류 역사상 모든 왕조국가들은 흥망성쇠라는 자연의 이치 따라 왔습니다. 고로 비교 할 때는 이러한 시대적 흐름을 보고 판단하는게 우선입니다. 당장 고려말 도적 때에 수도를 버리고 공민왕이 피난 가던 시기와 조선초 여진족을 상대로 예방전쟁을 하면서 4군 6진을 개척하는 강력하던 시기를 비교하면 누가 더 우위에 있겠습니까?
여요전쟁 이후 현종의 시기는 한반도 왕조 통틀어서 가장 태평성대 했다는 시기입니다. 왕조의 전성기죠. 반면에 임진왜란 혹은 병자호란 때의 조선은 전성기와 중흥기를 지나 이미 태평성대를 수백년간 누린 이후의 쇠퇴기에 접어들게 됩니다. 이러한 점을 간과하고 비교하게 되면 상당히 무리한 해석이 나올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frostfire311 답변이 좀 늦었네요 말씀 잘 들었습니다 여요전쟁은 아직 상무정신이 남아 있는 고려 초반기에 일어난 전쟁이고 조선의 임진왜란은 굵직한 전쟁없이 200년이라는 장기의 세월이 흘러 일어난 전쟁이라 둘을 단순 비교하는 것도 무리라는 생각이 드네요 그런데 7년 간의 그 처절한 임진왜란을 겪은 후에 다가온 정묘, 병자호란은 좀 납득하기 힘드네요 오랜 평화 탓에 심대하게 다가온 임진왜란에서 적어도 사람이라면 한 나라를 다스리는 위정자라면 국방을 튼튼히 해야겠다는 위기의식이 있었을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두 호란에서는 임진왜란에서 겪은 교훈이 전혀 느껴지지 않습니다 물런 적의 주체가 다르지만요 또한 고려같은 경우는 여요전쟁에서 고려가 승리하고 이후 욱일승천하는 여진족을 손봐주고자 17만의 별무반을 편성하여 여진족을 평정하여 동북9성(물론 이후 여진족의 거친 저항과 방어의 한계를 느껴 이후 철수하긴 함)을 쌓은 후, 물론 이후에 성을 내주긴 하지만 고려의 만만치 않은 저력을 확인한 여진족은 만일 9성을 내어주시면 고려에게는 기왓장 한 장조차 던지지 않겠다는 확약을 한 후 요나라 송나라를 평정하여 대국이 된 후에도 고려에 대한 어떠한 군사적 조치(물론 이자겸의 사대주의도 한 몫했지만) 도 하지 않았다는 거죠 이후에 고려 몽골 전쟁도 많은 군민의 희생이 있긴 했지만 30년 동안 저항하여 몽골의 황금씨족과 혼인관계를 맺어 고려의 국체를 보존한 이력을 볼 때 각 시대 상황을 들여다 봐야 한다는 님의 말에는 공감하지만 임진왜란을 겪은 이후 불과 30년도 안 되어 정묘 병자호란을 고려는 겪지 않았을 거란 생각이 듭니다 고려 말의 홍건적의 침입도 비록 초반에 수도 개경이 함락되기는 했으나 이후 20만 병력을 모아 10만의 홍건적을 죽이고 나머지는 압록강 이북으로 패퇴시킨 고려의 군사력을 결코 간과해선 안 되리라 봅니다 사실 조선 초의 4군 6진 같은 군사적 업적도 고려의 잔재가 남아 조선의 유의미한 긍정적 결과를 끼친거라 봅니다 이후 중종 선조에 거쳐 대거 득세한 사림파에 의한 조선의 군사력 약화는 이미 다 아는 사실이지요
개망조네.... 상소하는애들 지들은 집에 있다고 전쟁은 지들이 안한다고 막말하네..
뭐가 중립? 청나라 건국부터 이미 명청 사이에 중립은 성립할 수 없었음
그후 조선은 경신대기근이 일어나자 청나라 강희대제 앞에. 무릎끊어 울면서 조선의 백성들을 살려달라고 빌었음 조선사신들의 애청에. 강희제는 식량 5만석을. 조선에 보냄
인조나 정은이나 같은 입장이야
당시 세계최강의 기병대는 대청제국 팔기군이었고, 순식간에 속도전으로 조선을 침략, 정복했는데
조선은 이괄 장군의 군대가 살아있었어도 절대 침략군을 막을수없었음. 광해군의 중립외교처럼 오로지 외교적인 방법 밖에 없음.
2차세계대전때 태국이 외교전을 펼쳐서 일본의 식민지가 되지 않은 것처럼, 조선의 외교전략도 그런식으로 했어야됐는데 결국 무능하면서도 부지런하고 일만 열심히 한 인조 때문에 결국 망함.
차라리 국왕이 무능하고 일을 안하면 차기 국왕이 성군일 경우 어떻게든 해결이 가능한데, 국왕이 무능한데 부지런하기까지하면 오히려 훨씬 더 최악임. 그러면 오히려 무능한데 부지런하고 일을 열심히 하는 국왕이 국가를 더욱 더 국가 패망의 길로 빨리 달려가게 하기 때문에 폭주를 막기 힘들어짐. 인조, 선조가 딱 그런 경우였음. 일은 열심히하고 부지런한데 전쟁때는 무능한 암군이었음.
차라리 전쟁때는 광해군처럼 유능한 폭군이 집권하는게 나음. 광해군은 폭군적 기질이 강하긴 하지만 전쟁, 정치, 외교전략 능력만큼은 탁월해서 임진왜란때 실제로 전쟁터를 뛰어다니며 평양성 전투때 군 지휘관으로 참전한 실전 경험도 있었고.
그렇구나 근데 2차대전때 태국의 외교전이 성공한 건 사실상 일본의 부역국으로 일본에 가담했기 때문인데? 영프사이에서 식민지 안 된 것도 사실상 국토의 절반을 떼어주고 나서야 겨우 간신히 성립한 거다. 독도 주고 일본 침략 무마시키자 하면 넌 받아들일 수 있음?
그리고 2차대전때 덴마크, 노르웨이, 벨기에 등 중립을 외친 나라는 많았지만 결과는 전부 히틀러의 손아귀에 들어갔다. 외교 잘했잖아? 니네 말하는 중립 존나게 외쳤는데 히틀러 쳐들어오는 거 결국 못 막았어. 심지어 노르웨이는 연합군 추축군한테 쌍으로 쳐맞을 뻔했다. 니네가 그렇게 좋아하는 중립국이었는데.
그리고 당시 청나라 군사력은 생각만큼 강하지 않았고, 시기상으로도 싸울만 했음. 당시 청나라는 여전히 산해관도 못 뚫고 있었고, 식량부족에 시달리고 있었음. 애초에 조선에 속공으로 들어온 것도 물자가 더는 여유가 없었기 때문에 빠르게 끝내려고 온 거지, 진짜 여유가 있었으면 이런 위험한 도박은 감행할 필요 없었음. 만일 이괄이 있었으면 애초에 북방군을 무시하고 아래로 내려온다는 전술을 쓸 수가 없음.
결과적으로 강화도 런 실패나 점령 등 전술적인 실책이 겹쳤지만, '절대' 같은 건 없음. 오죽하면 화친파인 최명길조차도 싸워서 해볼만 하니, 성과를 내고 협상하자가 주 논지였음.
군주가 우유부단하면 저렇게 망한다는거지. 굥이랑 같다. 굥은 우유부단하고 멍청하다. 그러니 지금과 같이 앞으로도 끔찍한 일만 남았다는게 참...
힘없음 머리박어야지
아님 살아남을렴 국력신장밖에 없다
중립이 어디있냐
결국엔 우왕좌왕,..무능의 극치네
선조 인조 요 두놈은 아직도 억만겁 지옥불 구덩이에서 제대로 죽지도 못하고 불타고 있는중 !
즉위식 가서 고개 뻣뻣이 들고있는게 무슨 중립외교야
때려봐때려봐 하는거지
2차 세계대전때 나치 독일의 우방 프랑코의 스페인이 우방의 침략전쟁에 참여하지 않고 중립외교를 하여 생존해 나간것이 스페인의 힘이 미영과 나치보다 강력해서 중립외교 한것인가 오히려 미국 영국 독일 이탈리아에 국력에서 열세인게 당시 중립국 스페인의 실상 아닌가
중립이라는 것도 힘이 뒷받침 되어야 내세우는거지...
뱔게 사주 작품이군.
중국도 알고보면 외세침략 받은건데 침략자들이 남긴 기록과 문화재를 참 잘 보전해놨다
안망한게 신기할뿐이다
중립외교는 중원에 통일제국이 등장하기전에나 가능한것. 중원에 안정된 제국이 탄생하면
그 나라랑 싸우든가 사이좋게 지내든가 택일해야함.
조선은사르후때완전 후금한테박살이났는데 사실그때부터힘의기울기가무녀졌다고생각이듭니다
우리들이 배운 역사는 왜정시대 중일과 전세계가 조작.
칭기스칸 발해왕가 후손임을 잊지않다 ㅡ 다음 검색
임진란 병자호란은 미국에서 일어남 ㅡ 다음 검색
차라리 잘 된 일 ... 청나라 , 일본에 점령당해 자신의 위치를 다시 한번 보게되는 교훈 .
인조를 보니 너무 갑갑하다.
명나라도 청배후에 있겠다 압록강에서 결전을 치뤘어야지
33:07 상황인식 수준이 놀랍네요.
오늚날의 중국을 청나라에 비유하는 근거가 뭔가요? 그리고 미국은 왜 힘빠진 명나라인가요?😮
중립이 아니고 청을 개무시한거잔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