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가의 후궁존재 자체를 용납못했던 질투와 과도한 정치권력욕으로 동생4명 민씨일족을 폐족시킨 원인제공 장본인 , , 이세민처럼 이복동생까지 죽인 남편 이방원에게 토사구팽 홧병으로 죽은 원경왕후 , , , 조선왕조의 시작처럼 끝장내며 말아먹은 권력욕의 민비를 배출한 민씨가문
태종도 아들을 위해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을 한거지만..... 그래도 그것때문에 부모형제 다 잃은 원경왕후 민씨가 안타깝기만 할뿐입니다. 그래도 후대의왕권을 강화하고 나아가 나라를 안정시키기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선택이였다는점이 정말 무슨말로 해도 슬픔을 다 표현할길이 없습니다......
이성계도 왕권강화를 위해 강력한 귀족들과 결혼을 한 이방원과 그 형들을 배제했다는 역사 해석이 있습니다 이성계가 바보라서 자식들을 편애한게 아니라는거죠 결국 귀족들의 지원을 받은 이방원이 싸워 이겼으나 이방원 본인이 왕이 되고 보니 자신의 힘이 되주었던 귀족들이 왕권에 위협이 되더라 그래서 다시 피바람
소헌왕후도 사람인지라 자기 친정 아버지가 죄도 없이 비참하게 죽었을땐 세종하고 사이 안좋았어요. 세종이 아버지에게 반항 한게 딱 한번 있는데 그게 아내를 살리기위한거였음. 사돈 죽이고 며느리가 병나서 시름시름 앓는거 보고 태종이 너는 자손을 많이 낳았으니 그 공을 봐서 살려주겠다고 했음 그래서 소헌왕후만 간신히 살았음
원경왕후가 1403년 아들을 낳은 효빈을 질투하여 겨울에 움막에서 있게하고 이불 마저 빼앗아가서 동사 직전이었다고 태종이 말한 바가 있습니다. 고려는 부인의 질투가 허용이 되었으나 조선왕조 부터는 칠거지악의 대죄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연산군 모친도 같은 죄로 사약을 받습니다. 양녕이 외숙들과 친하였다고 하지만 옥사가 벌어지자 생까고 외숙들을 같이 공격했다니 태종이 양녕의 즉위 후를 위해 숙청하였다 함은 명분이 약합니다. 아무리 귀한 아들이라고 하지만 양녕은 죽을만한 죄인이나 유배형에 그쳤고 영조는 40대에 얻은 세자를 죽입니다. 태종이 잔인하다고 하지만 직계나 자손에겐 한없이 너그러웠고 개망나니 외손자 권총을 너무 귀여워하여 지탄을 받기도 합니다. 1차 왕자의 난 기록은 지나치게 태종의 쿠데타를 정당화하려고 정도전의 역모를 날조하는데 촛점을 둡니다. 이런 과정은 김종서를 죽인 세조에게도 답습이 됩니다. 태종 부부의 천벌은 성녕대군이나 정선공주가 받게 됩니다.
소헌왕후도 1418년 당시 딸 2, 아들 셋을 낳아 면죄부를 받은 것이지 자녀가 없었다면 폐위당할 수도 있었습니다. 세종은 장인의 억울함을 알고서도 한마디 반항하지 않고 태종에게 순종한 것으로 보아 대단합니다. 청송 심씨 가문의 복권은 문종이 합니다. 심씨 가문에서 인순왕후, 단의왕후가 나옵니다.
@@hkhsnk8991 일단 아빠가 한 걸 아들이 바로 뒤집기도 그렇거니와 심온이라는 카드를 자신이 쥐고 싶으면 그야말로 할 수 있는 일이 많아집니다 심온의 심자만 꺼내도 신하들이 바싹 엎드릴 터이나 자신의 개혁 정치를 맘대로 펼칠 수 있는 밑천이 되죠 물론 사실상 복권 다 시켜주고 아들에게 마지막 수순만 밟게 한 것으로 보면 세종의 정치력도 태종에 뒤지지 않는 셈이었죠 연산군이 이걸 배웠어야 했죠 엄마 카드 쥐고 평생 신하들 요리하다 ... 죽기 전에 세자야 니 할머니 왕비 만들어 줘 하면...
사실 세조 사태는 소헌왕후와 문종의 정비가 없었던 탓이 큽니다… 정당성이 부족했던 만큼 자신의 어머니인 소헌왕후가 살아있었거나 단종의 정통성을 누구보다 잘 보여줄 문종의 정비가(단종의 생모가 아니었더라도) 대비로 떡하니 버티고 있으면 사실 세조는 쿠데타를 일으킬 수가 없죠,,,
죽쒀서 개줬다면. 남편이나 자식들이 개 인가요? 어차피 남편과 아들이 왕이 된거고. 행복하진 않을지몰라도 본인도 왕비가 된건데... 세상에 무엇이든 공짜는 없겠지요. 만약. 이방원이 처가쪽이든 공신들을 정리하지 않았다면 세종대왕의 업적은 없었을지도 모르죠. 남편을 왕으로 만들어. 본인과 자식.친정에게 더 큰 권력과 부귀를 누리려는 욕심이 해가되어 돌아온것일수도 있습니다. 남편만을 너무 믿었다구요? ㅎㅎㅎ 글쎄요...
I like this queen the most among all queen in korean history (eventhough I'm not korean haha) I love history, and I can't help but feel that she's such an ambitious woman and yet so mysterious I think her marriage is not just like "a maiden from influential family who fall in love at first sight with handsome peasant" That's why her story life is so interesting, sadly she didn't leave any notes or diaries like Prince Sado's mother
근데 애증의 관계라기엔 폐비 거론한 시점에서 애정은 사라진 지 오래같은데. 합궁을 한 건 아마 신료들의 상소나 윗전의 요구때문이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함. 자식을 계속 낳을 수 있었던 건 아마 둘의 궁합이 좋았거나 원경왕후 자체가 이미 태종이 왕위에 오르기 전에도 자식들 순풍순풍 잘 낳았던 걸 보면 원래부터 아이를 잘 낳는 체질이었을 수 있다는 것도고려해볼만 하지 않을까요? 물론 인조나 영조처럼 아예 없는 취급하거나 힙궁도 안한 거에 비하면 태종은 그나마 양반이긴 하지만
죽 쒀 개 줬다는 것도 맞긴한데... 민씨 일가가 선을 좀 넘긴했음... 태종성격 뻔히 알면서 ... 그 때 만약 민씨 일가 그대로 놔뒀으면 조선은 세종때 이미 다른 나라가 세워졌을 수도... 나라가 뿌리를 굳혀야 하는 시기에 외척들이 난리쳤을터이니... 개판되는거 시간문제였지... 거기에 원경왕후 또한 조력자라기 보다는 경쟁자 행보를 보였으니... 아무리 사랑스러운 부인이라지만...
@@woosolhwang5987 네 맞아요. 외척이라서 역적 누명 쓰고 심온을 보면 민씨 형제들은 이미 죽을 운명이었고 죄명은 그수단이었다고 밀하고 싶었을 뿐이에요. 다만 외척의 거두인 민제는 스승님이고. 아버지 같은 어른이고. 가실날이 얼마 안남은 사람 이라서 참았을뿐 민씨형제들은 죽을 운명이라 생각합니다
지난 주 태종이방원 20회에서 이방원이 세자가 된 후 처가에 방문했는데, 거기 모인 여흥 민씨 가문의 세력을 보고 그때부터 눈빛이 미세하게 달라지면서 경계하는 모습을 보이더라. 드라마니까 각색을 했겠지만, 모든 것을 자신의 손아귀에 쥐려 했던 이방원에게 그런 모습은 실로 위협적이었을 듯. 양어머니 신덕왕후처럼 왕만한 권력을 행사할까봐 이런저런 명목으로 다 죽인거지. 큰소리치며 견제할만한 모든 구세력을 다 제거했기에 아들 세종이 눈치 안보고 그 위대한 업적을 많이 세운 것이지. 진짜 난 인물이긴 함. 참고로 전 효령대군파 전주 이씨입니다. 태종은 업적으로는 세종에 버금가는 정말 위대한 왕입니다.
박진희 주상욱 넘 연기를 잘 합니다
사극 안 보다가 두분때문에 보는데 넘 잘함
원경왕후가 참 불쌍하고 가련한 여인이지요. 잘나도 너무 잘난 남편 왕 만들고는 친정이 멸문당했으니....
@로또맞은백수 민.....자.....영......
왕가의 후궁존재 자체를 용납못했던 질투와 과도한 정치권력욕으로 동생4명 민씨일족을 폐족시킨 원인제공 장본인 , , 이세민처럼 이복동생까지 죽인 남편 이방원에게 토사구팽 홧병으로 죽은 원경왕후 , , , 조선왕조의 시작처럼 끝장내며 말아먹은 권력욕의 민비를 배출한 민씨가문
@로또맞은백수 간미연
@로또맞은백수 ㅣㅣ
그러니까 왜 권력을 나눠 먹으려고해 박정희 때도 아래로 투탑 세워놓고 권력에 정점에 오르면 가지치기 했다
모든 걸 걸고 남편을 왕으로 만들었지만 자신에게 돌아온 건 아무것도 없었지 어떻게 보면 비운의 왕비
진짜 둘 사이는 알수가 없음;;;
그렇게 싸우고 그랬는데 애를 40살까지 낳으시고…;;
원경왕후는 고려말 최고 반열의 미인이라고 합니다
이방원은 천하의 나쁜 아들,사위,형제,남편이었다.
인간 백정...
세종 업적은 오로지 본인것..
그래도 아내 민씨 소생 아이들은 끔찍하게 아
꼈음
@@유나예-r6c 그건 자기 자식이기도 하니까..
@@상선약수-m4v 동시에 최고의 정치가이자 조선 왕들중 가장 왕의 품격과 의무를 성실히 행한 왕이었고 아들들을 끔찍히 아낀 사람이었죠. 적어도 왕으로서는 태종만큼 완벽한 인간도 없었습니다
금슬이 안 좋았다고할수도 없는게 사이 안좋아진이후로도 애 계속 낳았고 민씨48살 때도 아이낳았다는 기록이 있을 정도임
태종도 아들을 위해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을 한거지만.....
그래도 그것때문에 부모형제 다 잃은 원경왕후 민씨가 안타깝기만 할뿐입니다.
그래도 후대의왕권을 강화하고 나아가 나라를 안정시키기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선택이였다는점이 정말 무슨말로 해도 슬픔을 다 표현할길이 없습니다......
ㅣ
부모는 늙어서 돌아가신거..
이방원이 세종비 심씨 외척까지도 박살 문종의 어린아들 단종을 지키줄 왕비 친정몰살에 민.심 왕비 단명해서 단종애사가 발현
요청했었는데 올라왔네요~제가 제일 좋아하는 왕비인데☺ 감사히 잘봤습니다~!
공승연이 원경왕후 역을 맡았던 이유로?
@@korea214 엥 ㅎㅎ 그것때문에 좋아하는건 아니에요;
잘 들었습니다~~~ 오래 기다렸는데 보니 세
세한 역사적 내용을 통해 다시 한번 배우게 되
네요. 다음편에는 남편 이방원의 친여동생들인
경신공주, 경선공주와 일전에 부탁드렸던 의붓
시어머니 신덕왕후 강씨의 딸인 경순공주에 대
해 부탁드립니다~~~~
남편을 왕을 만들게아니라 여왕이되었어야 햇소
이성계도 왕권강화를 위해 강력한 귀족들과 결혼을 한 이방원과 그 형들을 배제했다는 역사 해석이 있습니다 이성계가 바보라서 자식들을 편애한게 아니라는거죠
결국 귀족들의 지원을 받은 이방원이 싸워 이겼으나 이방원 본인이 왕이 되고 보니 자신의 힘이 되주었던 귀족들이 왕권에 위협이 되더라 그래서 다시 피바람
왕비가 되면 뭐해요. 집안이 풍비박산 됐는데...그래도 폐비될 위기도 잘 모면하고, 40이 넘은 나이에도 세명을 더 낳았으니, 정말 자식복은 참 많은 여인입니다. 아무튼 태종이나 원경왕후나 둘다 대단함.
이방원의 모든 악치를 한글하나로 용서 됨니다
세종이 왕이 안되었다 생각하면 소름이 끼침니다
이방원은 조선을 탄탄히 만든 왕입니다
잘설명해주셔서 넘잼있고 이해가 쉬웠어요 감사합니다 알찬 내용 짱
벼슬에서 물러나게 하면 되었지
죽이기까지 하다니. . .형제들까지 죽인. . .
상대세력을 그냥 놔두지 않은 이방원의 철저한 성격
잘난여자는 더 부담스러웠겠지
꼭 없애버려야만 하는가 쓰레기가 아니거늘..
말이 통하지않는건가?
너무 안타까운역사 아파~
선하게 들리는 샘의강의 감사합니다
솔직히 원경왕후 민씨보다 소헌왕후 심씨가 더 대단함.
시아버지 때문에 집안이 박살 나도 세종대왕하고 끝까지 같이 살며 자식을 8남2녀를 두고 성스럽고 어질고 착하고 인자하기 까지 하다니.
그렇게 안 하면 죽으니까. 그런 식의 비교가 의미가 있나? 직접 본 것도 아니며 애초에 피해자들인데.
소헌왕후도 사람인지라 자기 친정 아버지가 죄도 없이 비참하게 죽었을땐 세종하고 사이 안좋았어요. 세종이 아버지에게 반항 한게 딱 한번 있는데 그게 아내를 살리기위한거였음. 사돈 죽이고 며느리가 병나서 시름시름 앓는거 보고 태종이 너는 자손을 많이 낳았으니 그 공을 봐서 살려주겠다고 했음 그래서 소헌왕후만 간신히 살았음
불행을 참는다고 더 대단하다 어쩌고 하는게 참…여자한테 저런걸 다 참게 만드는게 정상적인 사회임? 원경왕후 소현왕후 둘 다 너무 불쌍할뿐임
어질고 착하게 굴지 않으면 쫓겨나니까..
이렇게 족쳐도 여흥민씨는 조선후기까지 명문가를 유지했다는것! 이후 조선왕비중 3명이 여흥민씨 우리가 잘아는 고종부인 명성왕후 숙종의 부인 인현왕후등 또한 여흥민씨!
1명 더있어요ㅎㅎ마지막 왕 순종왕후가 민씨였어요ㅎ순명효황후 민씨~
민비를 명성황후라 칭하다니..
인간적인 관점에서 봤을땐 너무 가여운 여인인데
나라의 관점에서 봤을땐..어쩔수없는일..
그렇게 싸웠음에도 나이 40이 되어서도 늦둥이를 나았다는게 진짜 웃김 ㅋㅋㅋ 그래도 싸운건 싸운거고 할건 했다는 뜻인데 ㅋㅋㅋ
재미있어요
우리 민족최고의임금 세종대왕 이도를 낳으신 분
원경왕후가 1403년 아들을 낳은 효빈을 질투하여 겨울에 움막에서 있게하고 이불 마저 빼앗아가서 동사 직전이었다고 태종이 말한 바가 있습니다. 고려는 부인의 질투가 허용이 되었으나 조선왕조 부터는 칠거지악의 대죄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연산군 모친도 같은 죄로 사약을 받습니다. 양녕이 외숙들과 친하였다고 하지만 옥사가 벌어지자 생까고 외숙들을 같이 공격했다니 태종이 양녕의 즉위 후를 위해 숙청하였다 함은 명분이 약합니다. 아무리 귀한 아들이라고 하지만 양녕은 죽을만한 죄인이나 유배형에 그쳤고 영조는 40대에 얻은 세자를 죽입니다. 태종이 잔인하다고 하지만 직계나 자손에겐 한없이 너그러웠고 개망나니 외손자 권총을 너무 귀여워하여 지탄을 받기도 합니다. 1차 왕자의 난 기록은 지나치게 태종의 쿠데타를 정당화하려고 정도전의 역모를 날조하는데 촛점을 둡니다. 이런 과정은 김종서를 죽인 세조에게도 답습이 됩니다. 태종 부부의 천벌은 성녕대군이나 정선공주가 받게 됩니다.
셋째며느리 소헌왕후 역시 시아버지 태종에 의해 친정이 멸문당하지만, 적어도 남편과의 금슬은 시부모보다 더 좋앗던 왕비
소헌왕후도 1418년 당시 딸 2, 아들 셋을 낳아 면죄부를 받은 것이지 자녀가 없었다면 폐위당할 수도 있었습니다. 세종은 장인의 억울함을 알고서도 한마디 반항하지 않고 태종에게 순종한 것으로 보아 대단합니다. 청송 심씨 가문의 복권은 문종이 합니다. 심씨 가문에서 인순왕후, 단의왕후가 나옵니다.
@@inyeobseo9369 정확하심
세종은 자기 장인이 억울한거 알면서 즉위 후에도, 태종 사후에도, 소헌왕후 사후에도 복권 안해줬음
자녀가 없었으면 폐위 되었을까요 아니죠 반대가 많았을거 같네요 사후 복권 안해준 세종을 원망 할만 했네요 복권 시켜주지 하는 느낌 이네요
@@쿠도코난-u1y 그르게요..
태종 사후에라도 해주지ㅜㅡㅜ
@@hkhsnk8991 일단 아빠가 한 걸 아들이 바로 뒤집기도 그렇거니와
심온이라는 카드를 자신이 쥐고 싶으면 그야말로 할 수 있는 일이 많아집니다
심온의 심자만 꺼내도 신하들이 바싹 엎드릴 터이나 자신의 개혁 정치를 맘대로 펼칠 수 있는 밑천이 되죠
물론 사실상 복권 다 시켜주고 아들에게 마지막 수순만 밟게 한 것으로 보면 세종의 정치력도 태종에 뒤지지 않는 셈이었죠
연산군이 이걸 배웠어야 했죠
엄마 카드 쥐고 평생 신하들 요리하다 ... 죽기 전에 세자야 니 할머니 왕비 만들어 줘 하면...
진짜 태종이 계속 원경왕후 처소를 계속 찾았다는게 미스테리네요 😅😅
미스테리일 건 없고 이유는 명백하죠. 그녀를 "진정" 여인으로 사랑하긴 한 겁니다ㅠㅠ 다른 여인들도 좋아했지만요. 그리고 정치적인 이유로 그녀를 괴롭혀댔지만요.
@@꽃말-y6l 근디 여자입장에서 보면 원경왕후는 잠자리하기 싫었을듯요.. 걍 자식을 낳기위한 의무방어전 느낌이었을라나...😭😭
@@지니스-d6d 자식은 이미 자기 아들이 세자인 마당에 필요하지 않았지만, 아무리 미워 죽겠는 남편이라도 이마저도 거부하면 정말 폐비되어 버릴까 두려웠던 것은 아닐까요ㅠㅠ
애증이 그래서 무서운거임 역경을 같이 넘고 미운정 고운정 떡정 복합관계
@@꽃말-y6l 근데 정치적으로 보면 폐비는 못 시킴 후폭풍이 큼
세종이 없었으면 더 대차게 까였을 인물..
민씨일가가 남았다면 세조시절도 되지않았을것 같기도해요. 태종의 실수는 후대생각을 안했단 것이 제일큼. 이씨가문이 건강하지 않았고 성종때부터 유교문화가 더 강화되어 왕이받는 스트레스가 더심해져버림.
그건 모르는 일이긴 한데 계유정난때 양녕이랑 효령이 세조편 들었던걸 보면 여흥민씨 잔존했더라도 세조 편에 붙지 않았을까 합니다. 태종이나 세조나 반정으로 등극한 왕인데 평가가 다른 이유는 태종은 공신들 통제가 가능했고 세조는 그렇지 못했다는점 아닐까 합니다.
사실 세조 사태는 소헌왕후와 문종의 정비가 없었던 탓이 큽니다… 정당성이 부족했던 만큼 자신의 어머니인 소헌왕후가 살아있었거나 단종의 정통성을 누구보다 잘 보여줄 문종의 정비가(단종의 생모가 아니었더라도) 대비로 떡하니 버티고 있으면 사실 세조는 쿠데타를 일으킬 수가 없죠,,,
누가 그러던데 정말 전쟁같은 사랑이라고
한마디로죽쒀서개준꼴~기껏개고생해서왕만들어놨더니,친정개박살나,족족들이는후궁들땜에신경쓰고골머리아파,나같아도,맨정신으로못살고,돌아버리겠다~어쩌면이거때문에울화증이생겨얼마못살고죽은건지도모르겠네요~어떻게보면남편을너무믿은가여운여인이였네요~
한마디로 민씨세력을 믿고 형제까지 죽인 당태종 이세민같은 이방원을 과소평가 , , 도를 넘는 권력욕과 질투심으로 멸문지화를 자초한 장본인
죽쒀서 개줬다면. 남편이나 자식들이 개 인가요?
어차피 남편과 아들이 왕이 된거고. 행복하진 않을지몰라도 본인도 왕비가 된건데...
세상에 무엇이든 공짜는 없겠지요.
만약. 이방원이 처가쪽이든 공신들을 정리하지
않았다면 세종대왕의 업적은 없었을지도 모르죠.
남편을 왕으로 만들어. 본인과 자식.친정에게 더 큰 권력과 부귀를 누리려는 욕심이 해가되어
돌아온것일수도 있습니다.
남편만을 너무 믿었다구요? ㅎㅎㅎ
글쎄요...
@@프로샷 그 많은 아들들 중에 세자가 다 원경왕후 후사 ᆢ하긴 왕비라서 그럴수 있는데 그리고 폐비언급했는데 태종이 어차피 폐비를 못 시킬거 알면서 그걸 내 놓은걸수도 있어요 ᆢ그냥 협박용 카드 ᆢ
ㄱ
질투와 분노는 궤를 달리하는 용어이지 않을까요? 배우자가 다른 상대에게 눈을 돌린다는 것은, 분노할 일이죠.
@JIn W 시대가 분노를 표출하는 걸 금했을지는 몰라도, 인간이라면 당연히 느끼는 감정까지 막을 수는 없죠.
눈 뒤집힐 일 맞습니다.
@JIn W 아 그렇군요 저 시대 관점으로 , 저시대의 용어로는 현대의 배우자 외도에 대한 분노가- 질투가 맞네요. 듣고보니.....
근데 조선시대 가서 따지는 건 불가능해요 ㅋㅋㅋㅋㅋ
참 슬프네요 ...
원경왕후 라 세종대왕은 어머니 민씨 가문은 유명한 집안이다 명성왕후 등 인물이 나왔다
속궁합은 잘맞은듯
섬네일은 원경왕후가 아니라 퐁당퐁당Love에서 진기주가 연기했던 원경왕후의 며느리인 소헌왕후네요. 원경왕후는 용의눈물에서 최명길이 연기했던 원경왕후가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넘치는기쁨 섬네일 바뀐거에요.
아버님.
부부싸움은 칼로 물베기라더만 대판싸우는 와중에도 할건 다했네요ㅋ
I like this queen the most among all queen in korean history (eventhough I'm not korean haha)
I love history, and I can't help but feel that she's such an ambitious woman and yet so mysterious
I think her marriage is not just like "a maiden from influential family who fall in love at first sight with handsome peasant"
That's why her story life is so interesting, sadly she didn't leave any notes or diaries like Prince Sado's mother
태종과 고종의 비는 똑같이 민씨였으나 대우가 반대였다
왕이 아닐때의 남편과 왕이 된 남편은
다를 수밖에 없음을 인정하지 못해
비극이 일어난 거라 생각해서 안타깝다.
남편이 왕이되는데 많은 힘을 썼다고해도
자신이 또 자신으 가족들이 왕과 같아지려고하면 안되는 것을 알았어야 했는데...
다를수 밖에 없음을 이방원이 원경왕후한테 이해를 구하거나 보듬어 줬어야죠 그러지 않고 더 핍박했잖아요 그리고 동생들은 어떻게 해서든 죽였을거예요 아무죄 없는 며느리 가족도 죽였으니까요 잘못은 이방원이 했는데 원경왕후 탓을 왜하는지ㅉ
정치적으로는 대립이 있었지만
공주나 왕자가 많은 걸 보면 금술은
좋았던것 같습니다. 큰 아들에
대한 막연한 기대가 실망으로 이어
지다보니 원경왕후는 더 힘들었을
겁니다.
원경왕후를 사랑 하지만 열등감이 심한 이방원이 못되게 굴지 않았을까 자녀를 많이 둔것 보면 속 궁합은 잘 맞을것 같다
이방원 왜 끝난건가요
뭐가 잘못됐나요
궁금합니다
드라마 말씀하시는거죠? 이성계가 말에서 떨어지는 장면이 있는데, 이 장면을 찍을 때 강제로 말이 넘어지게 하려고 줄을 잡아당겼다고 해요. 말은 이로인해 목이 부러져 결국 사망했고요. 이게 논란이 되어서 결방되고 있는걸로 알고있어요.
원경왕후 빨리 보고싶어요
드라마 이방원요
빨리 나오길 기다리고
있습니다
지놈을물심양면헌신햇는데 수많은첩들만거느리고 공을많이세운처가를몰살시킨놈이쓰레기지
왕이 될 여자이다
태종도 정력왕이였네 ㄷㄷㄷ
왕자랑 공주들 저렇게 낳은거보면 정적이기는 하지만 속궁합은 오지게 잘 맞았다는거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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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패치]의 이용허락을 받아 콘텐츠를 만듭니다.
진짜 원경왕후는 최명길인데 ㅎㅎ
48세에 아기를낳은걸보면
성격뿐아니라 신체도 여장부인거같네요
우리할머니 때는 시어머니가 며느리와 같이 아기를낳았죠 동생들을죽인 남편과 세명의 아기를 더 낳았다 애증관계 맞네요
권력은 못나누지.. 하륜도 재산만 탐해서 무사할수 있었지..
가족관계
●친가(여흥 민씨)
할아버지 민변(?~1377)
할머니 양천 허씨(?~1357)
아버지 여흥부원군 민제(1339~1408)
어머니 삼한국대부인 여산 송씨(?~1424)
언니 민씨(형부 조박)
언니 민씨(형부 완산군 이천우)-남편 태종 이방원의 사촌형
남동생 여강군 민무구(?~1410)-올케 미상
남동생 여성군 민무질(?~1410)-올케 정경부인 청주 한씨
남동생 여원군 민무휼(?~1416)-올케 우계 이씨
조카 민씨(조카사위 심정)-아들 세종 이도(1397~1450)의 처남
남동생 여산군 민무회(?~1416)-올케 미상
여동생 민씨(제부 노한)
●시가(전주 이씨)
시아버지 태조 이성계(1335~1408/재위:1392~1398)
시어머니 신의왕후 한씨(1337~1391)
아주버님 진안대군 이방우(1354~1393)-형님 삼한국대부인 충주 지씨
아주버님 정종 이방과(1357~1419/재위:1398~1400)-형님 정안왕후 김씨
아주버님 익안대군 이방의(1360~1404)-형님 삼한국대부인 동주 최씨
아주버님 회안대군 이방간(1364~1421)-형님 삼한국대부인 민씨
도련님 덕안대군 이방연(?~?)-미혼
시누이 경신공주(?~1426)-매부 상당부원군 이애
시누이 경선공주(?~?)-매부 청원군 심종
작은 시어머니 신덕왕후 강씨(1356~1396)
시누이 정숙공주(?~1407)-매부 흥안군 이제
도련님 무안대군 방번(1381~1398)-동서 개성 왕씨
도련님 무안대군 방석(1382~1398)-동서 기계 유씨
남편 태종 이방원(1367~1422/재위:1400~1418)
장녀 정순공주(1385~1460)-사위 청원위 이백강
차녀 경정공주(1387~1455)-사위 평양부원군 조대림
삼녀 경안공주(1393~1415)-사위 길창군 권규
장남 양녕대군 이제(1394~1462)-며느리 수성부부인 김씨
차남 효령대군 이보(1396~1486)-며느리 연성부부인 정씨
삼남 세종 이도(1397~1450/재위:1418~1450)-며느리 소헌왕후 심씨
사녀 경선공주(1404~1424)-사위 의산위 남휘
사남 성녕대군 이종(1405~1418)-며느리 삼한국대부인 창녕 성씨
이방원 티브보는데 믾은도음 되어좋습니다
쌍릉으로 만든건 원경왕후도 좋아하지는 않을듯.....
정말로 알수없는
.알수도 없는 관계~★
May Lord Buddha bless you all 😊🙏 have a nice day 😊🙏
조선의 시작과 끝은 민씨와 함께
언제 방영됩니까? 기다리고 있는데요~
그 어떤 나쁜 왕보다도 나쁜 놈 왕권강화라는 말로 모두를 죽인 나쁜놈 사람은 권력을 쥐어봐야 본성이 나온다고 했다 지옥에서 천벌을 받았을거다
인간적으로 좋은 사람은 못되는 배신의 극치.
그럼 좋은 왕이 되려면 끔찍한 인간이 되야한다는 뜻이군요
인간적이고 정이 많고 끌려다니면 그게 결국 세도정치가 되는 것임.
그래서 뒷바라지 하면
안되는거다 팽당하거든!!
그냥 챙길것챙겨야지!!
궁합이 얼마나 잘맞았길래 저래 낳았을까 궁금하네
독재자의 주변을 얼씬 거리며
충성 한답시고 하다가는 뜻밖의 죽임을
당하는 일은 다반사 입니다
대단한 가문이지... 조선사 민씨가문에 왕비를 많이 배출했음
왕비의 모친이 민씨인 경우도 4명. 민씨 여자들이 좀 쎄긴 함.
세종대왕 과 소헌왕후 는 합장릉 이죠 두분도 사이가 안좋으셔서 합장릉으로 하셨나.
역시 세종
속궁합은 좋았던듯ㅎ
태종이 아니었다면. 극단적 선택이 아니었다면. 이런 가설이 가능하진 않지만 세종의 시대는 없었을 것이다.
만약에...원경왕후가 정치에 욕심이없고
오로지 태종 이방원을 내조했으면 이런불화없이 잘살았을텐데 아쉽네요.!
그랬다면 이방원은 왕이 되지 못했을 듯요... 여결인 원경황후가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이었지요.. 여걸이 아닌 그냥 한 여인이었다면 절대 왕이 되지 못했을 듯요
대신에 그래서 여흥 민씨가 조선을 끝장냈지
결국 제대로 복수한 셈~ 태종은 몰랐겠지 지가 세운 나라가 지가 박살낸 여흥 민씨집안으로 박살날 줄
😔🙏❤❤❤💛💛💛🧡🧡🧡🧡🍀💐🌻🌸
신덕왕후때문인것도 있죠
근데 애증의 관계라기엔 폐비 거론한 시점에서 애정은 사라진 지 오래같은데. 합궁을 한 건 아마 신료들의 상소나 윗전의 요구때문이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함. 자식을 계속 낳을 수 있었던 건 아마 둘의 궁합이 좋았거나 원경왕후 자체가 이미 태종이 왕위에 오르기 전에도 자식들 순풍순풍 잘 낳았던 걸 보면 원래부터 아이를 잘 낳는 체질이었을 수 있다는 것도고려해볼만 하지 않을까요?
물론 인조나 영조처럼 아예 없는 취급하거나 힙궁도 안한 거에 비하면 태종은 그나마 양반이긴 하지만
태종 당시엔 윗전이 없었고 왕자가 3명이 있는데 신하들이 합궁을 권유할 위치도 아닙니다. 태종 자체가 동시에 여러명의 여자를 사랑하는 기질 때문입니다. 보통 왕들은 한 여자에게 꽂히면 다른 여자는 멀리하는데 두루두루 사랑하는 경우가 태종과 세종, 성종, 중종 입니다.
@@inyeobseo9369 아마 양녕이 그렇게 여자 밝
히고 주색 가까이한 게 태종의 영향이었던걸까
자업 자득
외가댁이 여흥민씨 집안인데 민씨여자들이 기가쎈건 사실인듯 합니다.
너무 재미있게 얘기 해 주셔서 드라마 기대하고 볼깨요 감사합니다
결말이 안좋았지.!
토사구팽의 대명사구만...
세종대왕의 어머니
세조가 반역해 나라 망조 든 것도 다 이방원 보고 배운 듯. 뭐 부메랑인 거지.
남편의 성격을 파악 하고 대처했어야 했다
배은망덕하고 무자비한 남편.
그러게 집착말지어다...
48세에도 애를 낳았다는건 사랑했다는뜻 문씨도 그렇게 불행하지는 않았다 자식들을 위해 처가 힘뺀걸알고 있기에
죽 쒀 개 줬다는 것도 맞긴한데... 민씨 일가가 선을 좀 넘긴했음... 태종성격 뻔히 알면서 ... 그 때 만약 민씨 일가 그대로 놔뒀으면 조선은 세종때 이미 다른 나라가 세워졌을 수도... 나라가 뿌리를 굳혀야 하는 시기에 외척들이 난리쳤을터이니... 개판되는거 시간문제였지...
거기에 원경왕후 또한 조력자라기 보다는 경쟁자 행보를 보였으니... 아무리 사랑스러운 부인이라지만...
효령대군의. ㅇㅓ머니 이기도. 허지요.
나는 효령대군 19 대손 입니다.
즉 뼈대있는 집안이지요.
ㅎㅎ.추카.
썩다리 조선왕조의 핏줄인게 자랑일까요?
나중에 김일성 후손들도 자랑할수있을까요?
@@Primeonenotyou
매독에걸린. 다리밑에서. 나온
니보단 났지 않것니. ㅎㅎ
이게 왜 댓글이. 안 달리네
ㆍ
효령대군은 괜찮게 생각하나..그 아비인 이방원은 진짜 아니라고 생각함..
죄를 넘 많이 지었어요. 후손들은 이방원에 의해서 살해당한 분들에게 용서를 구해야 할듯..
이방원이가 정몽주도 죽였지.
죽 쒀서 개준격.
은혜를 모르는 사람이 과연 사람인지...
이방원 드라마 좀 그만 만들어라 정조도 마찬가지다. 우리역사에 태종과 정조보다 휼륭한 인물은 발에 체일 정도로 널렸다.
저번주 마지막씬에 민씨네가 폭망할 거 같은~ㅠ
태종 (조선 제3대왕) ~ 원경왕후
양녕대군 (이제) ~ 중전 (세자빈)
효령대군 (이보) ~ 정씨 (부인)
충녕대군 (아들) ~ 심씨 (부인)
정치하면 패가망신한다는 걸 증명하는군. 일어선 자리에서 망했네.
그래서 어쩌라고?
ᆢ나는 세종 등록된 주민증 가지고있는데
사실 심각하게잔인한일이었다는데는 이방원 좋아하는 나도인정할수밖에없음
근데 조선이 어떻게 망햇냐를보면
신의한수같기도하고
내외간 다 욕심이 많았군.
과하면 망하지.
열등감 ???
태종은 인간이 아닌자
배은망덕한 인간.
누구때문에 왕위에 올랐는데...
기집질을 밥먹듯...
자기스승인 장인의 집을 박살내고
살인하고 어쩜 살인마다
그거 냅두다 제대로 망한게 세조임
이방원 태종 나쁜 임금이였네 왕위에 올려준 처가댁을 개박살낸 살인자
어떻게 보면 조선사이래 한국의 남아선호의 시작점으로 생각해 볼 수도 있겠네요.
까불면 다죽는다
분수를 지키지 못한자는죽음이 온다
진짜 태종 원경왕후한테 개쓰레기다
심온을 보면 민씨형제가 왜 죽었는지 뻔하죠.
심온은 정치적 욕심이 없엇는대요?
@@woosolhwang5987 네 맞아요. 외척이라서 역적 누명 쓰고 심온을 보면 민씨 형제들은 이미 죽을 운명이었고 죄명은 그수단이었다고 밀하고 싶었을 뿐이에요. 다만 외척의 거두인 민제는 스승님이고. 아버지 같은 어른이고. 가실날이 얼마 안남은 사람 이라서 참았을뿐 민씨형제들은 죽을 운명이라 생각합니다
@@woosolhwang5987 적고나서 보니 문맥을 이상하게 썼네요. 그래도 제 의도는 충분히 전달되었으리라 셍각합니다.
지난 주 태종이방원 20회에서 이방원이 세자가 된 후 처가에 방문했는데, 거기 모인 여흥 민씨 가문의 세력을 보고 그때부터 눈빛이 미세하게 달라지면서 경계하는 모습을 보이더라. 드라마니까 각색을 했겠지만, 모든 것을 자신의 손아귀에 쥐려 했던 이방원에게 그런 모습은 실로 위협적이었을 듯. 양어머니 신덕왕후처럼 왕만한 권력을 행사할까봐 이런저런 명목으로 다 죽인거지. 큰소리치며 견제할만한 모든 구세력을 다 제거했기에 아들 세종이 눈치 안보고 그 위대한 업적을 많이 세운 것이지. 진짜 난 인물이긴 함. 참고로 전 효령대군파 전주 이씨입니다. 태종은 업적으로는 세종에 버금가는 정말 위대한 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