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랑캐인 동호는 고조선? 선비,거란, 부여는 말이 통했다. / 만주 종족들 2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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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Опубликовано: 10 сен 2024
  • #동호 #윤명철 #고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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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명철, (고조선 문명권과 해륙활동), 지식산업사, 2018년
    제 4장의 일부
    ⑶ 동호(東胡) 계열
    『사기』에 동호는 흉노의 동쪽에 있으며, 이인은 동호의 동쪽에 있다고 하였다. 중국학계의 일반적인 견해는 역사적으로 동호 계열의 종족은 ‘동호’, ‘오환’, ‘선비’, ‘유연’, ‘고막해’, ‘실위’는 몽고이다.
    그런데 발해연안에 있었고, 은나라의 제후국으로 알려진 도하(屠何) 또한 적(狄)이라는 종족계열로 알려졌고, 사서와 갑골문에서는 ‘토방(土方)’으로 기록되었다. 『일주서』『이아(爾雅)』 석지(釋地)에서 “東方之夷種有九”라고 하였다. 『관자』 소광편(小匡篇)에서 동호에 대해 “中救晋公, 禽狄王, 敗胡貉, 破屠何”라고 하였는데, 이 ‘도하’를 동호의 선조라고 하는 주장도 있다. 당나라 때 고구려 침공과 깊은 연관을 가진 방현령(房玄齡)은 “屠何東胡之先也”라고 하여 동일한 견해를 갖고 있었다.
    다른 한편 동호가 ‘토방(土方)’으로 된 기록이 갑골문과 고고문물에서 나왔다. 춘추 초기에는 제나라가 도하와 산융을 정복하자 명칭을 동호로 하였다. 때문에 동호는 하와 은(상) 시대에 토방으로부터 이어져 내려온 종족이다”라고 주장한다. 많은 기록들이 동호와 동이 또는 예맥과의 관계를 이해하는데 혼란스럽게 한다.
    동호의 한 지파이면서 중국은 물론 동아시아 역사상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 선비의 기원에 대해 4개 설을 제기한다. 즉 ‘동호설’, ‘동이설’, ‘산융설’, ‘한인설’이다. 즉 여기서는 동호와 동이를 구분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동호는 서기전 3세기 무렵에 동아시아 지역에서 가장 강력한 군사력과 정치력을 가진 나라를 가리키는 일반명사이다. 흉노를 표징하는 ‘호(胡)’와는 다른 동쪽 호라는 의미로서 ‘동호’라고 기록되었을 것이 분명하다.
    서기전 5~6세기부터 전국 시대의 강국인 제(齊) 및 연(燕) 조(趙) 조선(朝鮮) 등이 상호간에 각축전을 벌이면서 전쟁을 벌이고 있었고, 그 세력은 조선 또는 조선과 연관된 ‘국(國)’들이었다. 그렇다면 당시 동족 흉노, 또는 동쪽 오랑캐(중국측 사관)로 불리워진 정치체는 ‘조선’일 가능성이 크다. 북한을 비롯한 일부 학자들은 동호의 기본주민을 ‘貊’ 또는 駱이라고 불리워진 맥족이라고 주장한다.
    그런데 중국에서는 동호가 활동한 범위를 북만주 끝과 동북 만주의 흑룡강 중류의 일대로 본다.『일주서』 왕회편에서도 주나라 초기에는 동호족이 막하에서 거주하였다고 한다. 전한과 후한 시대에 막하는 오환, 선비의 땅이며, 선비에 속한 동쪽부락 속지였다. 이처럼 북만주 일대는 동호와 연관이 깊은 종족들이 거주하였다. 서기전 16세기에는 동호, 예맥 등이 흑하시의 북부와 눈강 유역 일대에 활동하였다.
    그런데 동호는 분할되면서 선비와 오환이 된다. 『위서』 연연전에서 “蠕蠕(即 柔然), 東胡之苗裔也”라고 하였다. 유연(柔然)은 선비의 후예이다. 그런데 동호로 표현된 실체들은 고조선문명권의 중핵과 동일하거나 중요한 방계종족일 가능성이 크다.
    혈연적으로도 유사한 부분이 많다. 동호의 후예들로 기록된 거란계와 선비계는 거주하고 활동한 공간의 자연환경을 고려하면, 동일하거나, 설사 종족적인 성분이 다르더라도 濊 貊과 습합이 빈번하게 일어날 수밖에 없었다. 또한 선비와 거란은 고조선과 부여를 계승한 부여 및 고구려와 언어가 통했었다. 이러한 사실은 室韋를 중간 매개로 삼아 입증할 수가 있다. 6세기경부터 이름이 등장한 선비계의 부족이고, 훗날 징키스칸을 낳은 몽올실위(蒙兀室韋)는 이 실위 부족의 한 지파이다.
    실위는 남북조 시대에서 요, 금 시기까지 문헌에 등장하는 종족인데, 한문 문헌에서는 동호-선비 계통을 총망라해서 ‘실위’라고 했다. 『위서』, 『북사』의 실위 편에는 ‘실위어는 고막해 거란 두막루와 같다.’(‘語與 庫莫奚 契丹 豆莫婁國同.’)라고 기록했다. 파리에 소장된 돈황 문서 권 P.1283호에서는, 거란의 “언어는 토욕혼과 대체로 통한다”고 돼 있다. 또,‘실위는 거란의 별류이다.’라는 기록도 있다. 거란어는 몽골어에 속한다. 그런데 두막루국은 부여의 후손이니, 결국 실위어는 고조선을 계승한 고구려와 큰 차이가 없었을 것이다. 이러한 기록들을 교차하면 아래 결론이 나온다. 즉 동호계로 알려진 선비, 거란어는 서로가 통하고, 선비어나 거란어는 부여와 통한다. 그렇다면 고구려, 백제, 동예 등은 동호계와 언어가 다 통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분화되기 이전, 또는 분화되었다고 해도 고조선 시대에는 언어공동체였다. 그러므로 동호의 성격을 규명하고, 위상을 부여하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비파형 동검문화의 주체에 대해서는 ‘동호족’이라는 중국학자들과의 주장과 고조선의 것이라는 한국학자들의 주장이 있다. 또 하나는 비파형 동검과의 관계이다. 비파형동검에 대해서는 특성 하가점 상층문화와의 관계, 담당주체에 대해서는 상세하게 논한다. 이 책에서는 ‘동호’라고 표현된 집단이 고조선문명권과 밀접한 연관이 있으며, 어쩌면 조선일 가능성이 크다고 추정한다. 따라서 비파형 동검 또한 고조선의 것이라고 본다.

Комментарии • 179

  • @user-wn5be1st4u
    @user-wn5be1st4u Месяц назад +15

    오늘도 좋은 강의 감사합니다!!
    동호 = 고조선일 가능성이 높을 듯!! 고조선에 조공하던 속국인 한나라!!

  • @LJun-ju7vg
    @LJun-ju7vg Месяц назад +4

    늘 잘 보고 있습니다 사료를 근거로 우리의 역사를 알기쉽게 가르쳐주셔서 감사합니다. 좋은 후학 양성에도 힘써 주십시오

  • @koreanhistoryyoun
    @koreanhistoryyoun  Месяц назад +5

    우리 역사, 고대사는 또 다른 관점으로 보아야합니다. 더 과학적이고, 논리적이어야 합니다. 민족,종족,부족,부.국. 국가,도시(도읍, 경, 성시 등)등은 구분해서 사용해야합니다. 또한 1차적으로는 해당 시대의 관점에서 보아야합니다.

  • @user-dr9sk1ok2t
    @user-dr9sk1ok2t Месяц назад +26

    중국어는 베트남어 태국어와 같은 주동목 어순의 남방계 성조 언어입니다. 한국, 일본, 몽골, 만주족 같은 트랜스유라시아어족이 아닙니다. 마오쩌둥은 베트남 사람, 시진핑은 라이따이한, 마윈은 필리핀 사람 처럼 생겼죠? 유전학에서도 중국은 필리핀 , 태국, 베트남등과 함께 동남아 그룹으로 분류합니다 동북아 그룹이 아닙니다

    • @user-wn5be1st4u
      @user-wn5be1st4u Месяц назад +3

      👍👍👍👍👍👍 진짜 중국애들의 양자강 이북 사람들임!! 그 아래는 동남아 인들!!

    • @NO-hf5re
      @NO-hf5re Месяц назад +1

      라이따이한은
      베트남에 있는 한국계 베트남인 후손입니다

    • @user-dr9sk1ok2t
      @user-dr9sk1ok2t Месяц назад +1

      @@NO-hf5re 중국한족이나 베트남인이나 똑같은 동남아 DNA라는 것인데요. 한국과 베트남 혼혈이나 한국과 한족 혼혈이나 거기서 거기니까 시진핑이나 라이따이한이나 거기서 거기라는 겁니다 결론은 시진핑은 동남아인과 동북아인의 혼혈 얼굴이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북방계 한족의 정체죠 물론 DNA 비율은 한족이 압도적이겠죠 그러니까 남방계 성조언어인 중국어를 쓰겠죠

    • @davidjacobs8558
      @davidjacobs8558 Месяц назад

      중국인들 스스로 염황의 자손이라고 함. 염제 신농씨 와 황제 헌원씨의 자손이란 소린데,
      염제 신농씨가 양자강 이남에서 올라온 동남아계 고, 황제 헌원씨는 원래는 동이족 인데, 서쪽에 가서, 티벳/위구르 족을 대리고 와서
      동이의 천황 치우에 배신 반란을 한거지.

    • @Buddaandshiadr
      @Buddaandshiadr Месяц назад

      시진핑 생긴거 보니 베트남 혼혈아 손정우랑 비슷하게 생김. 피부색도 비슷하게 거무튀튀함. 윤석열 피부는 얘네에 비하면 하얀 편이던데

  • @user-vv6yj4uk3m
    @user-vv6yj4uk3m Месяц назад +4

    우리의 역사를 언어라는 툴을 가지고 과학적으로 접근하는 것에 대해서 박수를 보내고 싶습니다.
    하지만 많은 민족사학자라는 분들이 우리를 지칭하는 명칭을 설명하면서 그 앞에 자꾸 오랑캐라는 표현을 쓰는 데는 동의할 수 없네요. 그리고 그 글자에서도 무시하거나 경멸하는 의미가 없습니다. 예를 들어 북적이고 하는 글자에 적에는 불타는 개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남만의 만자에는 글자에 머리를 산발한 말 많은 벌레라는 의미가 들어 있습니다. 서융의 융자에는 왼쪽 창이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서쪽을 왼쪽이라고 했다는 점에서 남쪽에서 북쪽을 바라보면서 방향을 잡았다는 것을 알 수 있고 창이 있다는 면에서 경계해야 된다는 의미가 있겠죠.
    그러면 동이나 동호를 볼까요? 이는 큰 활입니다. 호는 오래된 달입니다. 우리나라뿐 아니라 어느나라에서도 해와 달, 크다와 오래되었다는 라는 말에는 무시와 경멸의 의미가 없습니다. 존경과 두려움에 의미는 내포하고 있어도.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우리를 지칭하면서 오랑캐 오랑케 하는 거는 나는 개다 개다라고 말하는 거 같아서 듣기 굉장히 불편합니다.

  • @user-gv5zv9el4f
    @user-gv5zv9el4f 29 дней назад +1

    애 저는 방구석 박사인데요 쿠르크와 동이족의 원륜인 한 조상집단이 중동에서 아시아로 넘어오면서 한집단은 중앙아시아쪽으로 가면서 투르크민족이되고 한집단은 동이족이라고 불리는 트랜스유라시아언어 집단 문명이 됐다고 봅니다 트랜스유라시아집단이 고조선이란 나라를 세우고 이후에 동호와 부여로 갈라진것 같습니다

  • @user-uq3kg9hd8x
    @user-uq3kg9hd8x Месяц назад +4

    우리나라 주류 사학자글은 통하는 말을 쓰고 같은 도구를 사용하고 살았던 영역이 겹치고 풍습이 비슷하며 무덤 양식이 같은데 아니라고 하면

  • @koreanhistoryyoun
    @koreanhistoryyoun  Месяц назад +2

    윤명철, , 지식산업사, 2018년
    제 4장의 일부
    ⑶ 동호(東胡) 계열
    『사기』에 동호는 흉노의 동쪽에 있으며, 이인은 동호의 동쪽에 있다고 하였다. 중국학계의 일반적인 견해는 역사적으로 동호 계열의 종족은 ‘동호’, ‘오환’, ‘선비’, ‘유연’, ‘고막해’, ‘실위’는 몽고이다.
    그런데 발해연안에 있었고, 은나라의 제후국으로 알려진 도하(屠何) 또한 적(狄)이라는 종족계열로 알려졌고, 사서와 갑골문에서는 ‘토방(土方)’으로 기록되었다. 『일주서』『이아(爾雅)』 석지(釋地)에서 “東方之夷種有九”라고 하였다. 『관자』 소광편(小匡篇)에서 동호에 대해 “中救晋公, 禽狄王, 敗胡貉, 破屠何”라고 하였는데, 이 ‘도하’를 동호의 선조라고 하는 주장도 있다. 당나라 때 고구려 침공과 깊은 연관을 가진 방현령(房玄齡)은 “屠何東胡之先也”라고 하여 동일한 견해를 갖고 있었다.
    다른 한편 동호가 ‘토방(土方)’으로 된 기록이 갑골문과 고고문물에서 나왔다. 춘추 초기에는 제나라가 도하와 산융을 정복하자 명칭을 동호로 하였다. 때문에 동호는 하와 은(상) 시대에 토방으로부터 이어져 내려온 종족이다”라고 주장한다. 많은 기록들이 동호와 동이 또는 예맥과의 관계를 이해하는데 혼란스럽게 한다.
    동호의 한 지파이면서 중국은 물론 동아시아 역사상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 선비의 기원에 대해 4개 설을 제기한다. 즉 ‘동호설’, ‘동이설’, ‘산융설’, ‘한인설’이다. 즉 여기서는 동호와 동이를 구분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동호는 서기전 3세기 무렵에 동아시아 지역에서 가장 강력한 군사력과 정치력을 가진 나라를 가리키는 일반명사이다. 흉노를 표징하는 ‘호(胡)’와는 다른 동쪽 호라는 의미로서 ‘동호’라고 기록되었을 것이 분명하다.
    서기전 5~6세기부터 전국 시대의 강국인 제(齊) 및 연(燕) 조(趙) 조선(朝鮮) 등이 상호간에 각축전을 벌이면서 전쟁을 벌이고 있었고, 그 세력은 조선 또는 조선과 연관된 ‘국(國)’들이었다. 그렇다면 당시 동족 흉노, 또는 동쪽 오랑캐(중국측 사관)로 불리워진 정치체는 ‘조선’일 가능성이 크다. 북한을 비롯한 일부 학자들은 동호의 기본주민을 ‘貊’ 또는 駱이라고 불리워진 맥족이라고 주장한다.
    그런데 중국에서는 동호가 활동한 범위를 북만주 끝과 동북 만주의 흑룡강 중류의 일대로 본다.『일주서』 왕회편에서도 주나라 초기에는 동호족이 막하에서 거주하였다고 한다. 전한과 후한 시대에 막하는 오환, 선비의 땅이며, 선비에 속한 동쪽부락 속지였다. 이처럼 북만주 일대는 동호와 연관이 깊은 종족들이 거주하였다. 서기전 16세기에는 동호, 예맥 등이 흑하시의 북부와 눈강 유역 일대에 활동하였다.
    그런데 동호는 분할되면서 선비와 오환이 된다. 『위서』 연연전에서 “蠕蠕(即 柔然), 東胡之苗裔也”라고 하였다. 유연(柔然)은 선비의 후예이다. 그런데 동호로 표현된 실체들은 고조선문명권의 중핵과 동일하거나 중요한 방계종족일 가능성이 크다.
    혈연적으로도 유사한 부분이 많다. 동호의 후예들로 기록된 거란계와 선비계는 거주하고 활동한 공간의 자연환경을 고려하면, 동일하거나, 설사 종족적인 성분이 다르더라도 濊 貊과 습합이 빈번하게 일어날 수밖에 없었다. 또한 선비와 거란은 고조선과 부여를 계승한 부여 및 고구려와 언어가 통했었다. 이러한 사실은 室韋를 중간 매개로 삼아 입증할 수가 있다. 6세기경부터 이름이 등장한 선비계의 부족이고, 훗날 징키스칸을 낳은 몽올실위(蒙兀室韋)는 이 실위 부족의 한 지파이다.
    실위는 남북조 시대에서 요, 금 시기까지 문헌에 등장하는 종족인데, 한문 문헌에서는 동호-선비 계통을 총망라해서 ‘실위’라고 했다. 『위서』, 『북사』의 실위 편에는 ‘실위어는 고막해 거란 두막루와 같다.’(‘語與 庫莫奚 契丹 豆莫婁國同.’)라고 기록했다. 파리에 소장된 돈황 문서 권 P.1283호에서는, 거란의 “언어는 토욕혼과 대체로 통한다”고 돼 있다. 또,‘실위는 거란의 별류이다.’라는 기록도 있다. 거란어는 몽골어에 속한다. 그런데 두막루국은 부여의 후손이니, 결국 실위어는 고조선을 계승한 고구려와 큰 차이가 없었을 것이다. 이러한 기록들을 교차하면 아래 결론이 나온다. 즉 동호계로 알려진 선비, 거란어는 서로가 통하고, 선비어나 거란어는 부여와 통한다. 그렇다면 고구려, 백제, 동예 등은 동호계와 언어가 다 통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분화되기 이전, 또는 분화되었다고 해도 고조선 시대에는 언어공동체였다. 그러므로 동호의 성격을 규명하고, 위상을 부여하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비파형 동검문화의 주체에 대해서는 ‘동호족’이라는 중국학자들과의 주장과 고조선의 것이라는 한국학자들의 주장이 있다. 또 하나는 비파형 동검과의 관계이다. 비파형동검에 대해서는 특성 하가점 상층문화와의 관계, 담당주체에 대해서는 상세하게 논한다. 이 책에서는 ‘동호’라고 표현된 집단이 고조선문명권과 밀접한 연관이 있으며, 어쩌면 조선일 가능성이 크다고 추정한다. 따라서 비파형 동검 또한 고조선의 것이라고 본다.

  • @user-le6mj3se3t
    @user-le6mj3se3t Месяц назад +3

    ~ 공민왕 중반기 까지의 대동강
    大河가 흘러서 同에서 모였다가 다시 흐름. (6600리 ). ~ 대명여지도 초중본까지는 大河, 이후부터 황하로 표기.
    ~ 공민왕 후반기 '우왕대의 大同江
    大江이 흘러서 洞에서 모였다가 다시 흐름. (5500리 ). ~ 대명여지도 중중초본까지는 大江, 이후부터 양자강,장강으로 표기.

  • @malligot4873
    @malligot4873 Месяц назад

    감사합니다. 정리가 되는 듯 하네요~

  • @user-uk7xv5it3z
    @user-uk7xv5it3z Месяц назад +2

    고구려와백제는 부여족 직계 흉노족은 신라 방계

    • @user-ie6qg5pw1v
      @user-ie6qg5pw1v 16 дней назад

      네 나두 그렇게 봅니다 흉노는 거짓말 처럼 신라하고 많이 비슷하자나요 마립간 유목민족이 쓰는 용어자나요 칸 간 지금에 우즈베키스탄

  • @user-yi7uh1vq9y
    @user-yi7uh1vq9y Месяц назад +2

    우리명철교수님 예전에는 해양 문화전문가였는뎨

    • @user-vg4ki4cx2g
      @user-vg4ki4cx2g Месяц назад

      문화도 역사입니다.
      그리고 현재 china의 동북공정에 대한 대응방어를 하려면 수많은 역사학자들의 뜻을 같이 해야 됩니다.

  • @NO-hf5re
    @NO-hf5re Месяц назад +2

    한국 사학계는 우리민족을
    만주와 한반도에서 살았던 예맥족 틀 안에 스스로를 가두어서 위축시키는지 모르겠어요

    • @user-vg4ki4cx2g
      @user-vg4ki4cx2g Месяц назад

      하지만 동호족의 영향력이 그렇게 크게 받지 못했기 때문에
      동호족을 무조건 우리 민족의 원류라고 주장할 수도 없는 것입니다.
      우리 민족의 기본 바탕은 부여족이기 때문에 동호족을 우리 민족으로 끌어들일 수가 있을른지?

  • @davidjacobs8558
    @davidjacobs8558 Месяц назад +2

    선비족 이라는 이름 자체가 고조(선 비)왕의 백성들 이란 뜻.
    비왕 이란, 고조선에서 제후국왕을 부르던 호칭.
    선비족 스스로 자기들이 고조선의 후예라고 조선후 라고 했고.
    모용은 비석이 "조선건국 고죽위군" 으로 시작하는 이유임. 고죽국은 백이와 숙제의 나라 고.

  • @user-le6mj3se3t
    @user-le6mj3se3t Месяц назад +3

    1388년 이전의 현재의 만주와 한반도는
    그저 조용하고 평화롭고 안전한 고려의 안전지대

  • @user-mm3vd2cm2p
    @user-mm3vd2cm2p Месяц назад

    박동 박사님의 (씨성의 기원과 지명의 이동)에 관한 연구는 좋은거 같습니다

  • @user-gv5zv9el4f
    @user-gv5zv9el4f 29 дней назад

    말갈족이 부여랑 외형은 비슷한데 말이 틀렸다는건 말갈족은 투르크족인것 같습니다

  • @user-pr9tx4ze7u
    @user-pr9tx4ze7u Месяц назад

    응원 합니다~

  • @user-hk5jy3ps7r
    @user-hk5jy3ps7r Месяц назад +1

    선비는 그 뜻이 조선에 예속된 부족들 즉 지방부족? 아닐까요 흉노는 더 느슨한 관계의 조공관계 아닐까요?

  • @user-hk5jy3ps7r
    @user-hk5jy3ps7r Месяц назад +2

    동호의 방위 동의 주체는 어디였을까요? 중국이라고 판단되는데 즉 동이 조선이죠. 조선의 영역이 그 위쪽 선비까지였고 흉노는 조선과 조공관계이고

    • @user-hk5jy3ps7r
      @user-hk5jy3ps7r Месяц назад

      선비는 조선에 예속된 부족이란 뜻이죠 그럼 좀더 명확해지지 않나요?

    • @user-vg4ki4cx2g
      @user-vg4ki4cx2g Месяц назад +1

      @@user-hk5jy3ps7r 무슨 근거로요?

  • @user-gv5zv9el4f
    @user-gv5zv9el4f 29 дней назад

    그러면 동호 선비 부여가 언어가 같았다는건 고구려 백제 신라가 중국어에 영향을 많이 받아서 말이 변한거군요

  • @noah489
    @noah489 Месяц назад

    후배 중에 유동호와 가깝습니다...흉노란 이름은 주변서 본 적이 없네요~

  • @corea359
    @corea359 Месяц назад +1

    부여의 후신 두막루가 실위와 말이 통했다는 기록을 '부여어 = 실위어'로 해석하시면 곤란합니다.
    부여가 고구려에 병합되고, 부여 유민들이 강을 건너 북쪽 실위 옆에 가서 두막루를 세운 뒤
    몇십년 지내면서 말이 섞이고 바뀐 것입니다. 즉, '부여어 → 부여어와 실위어와 섞인 두막루어'가 된 것이죠.
    마치 현대 중앙아 고려인이나 연변 조선족이 각각 현지의 러시아어나 중국어를 섞어 쓰듯이요.

    • @user-vg4ki4cx2g
      @user-vg4ki4cx2g Месяц назад +1

      그렇게 따진다면 징기스칸이 몽골 9부족을 통합하기 전까지
      몽골고원에 사는 종족들은 서로 말이 통하지 않았다는 주장과 뭐가 다릅니까?

    • @user-vg4ki4cx2g
      @user-vg4ki4cx2g Месяц назад +1

      애초부터 유목민들은 그렇게 서로 섞고 썩이면서 살아가던 종족들입니다.
      결국 이동하다가 서로 부딪히면서 자연스럽게 언어가 통하게 된 것인데?
      이러한 유목민 체계를 무시하고 그런식으로 말씀하시는 것도 언어 도단 아닌가요?

  • @KhosbayarBuyantsogt
    @KhosbayarBuyantsogt Месяц назад

    흉노 동호 부여 같은 민족이지만 계속 서로를 싸웠어요

    • @user-vg4ki4cx2g
      @user-vg4ki4cx2g Месяц назад

      정확히는.... 유목민 사회였지요. 유목민 사회는 종족간의 유대관계는 크게 없습니다.
      그저 힘에 의해 굴복할 뿐이지요. 이걸 하나로 통합한게 바로 징기스칸 입니다.
      그래서 몽골 9부족은 이전에는 '우리는 하나다' 라는 의식이 없다가 징기스칸 이후 통합되지요.

    • @user-vg4ki4cx2g
      @user-vg4ki4cx2g Месяц назад

      흉노/동호의 경우에도 그렇게 종족간에 분쟁은 항상 있어 왔습니다.
      부여의 경우에는 그들과는 다르게 일정정도 공동체 의식이 있었다고 봐야죠.
      동호의 후신인 선비족도 우문선비, 모용선비, 탁발선비, 단선비, ... 등등 수많은 종족이 존재했지요.

    • @user-vg4ki4cx2g
      @user-vg4ki4cx2g Месяц назад

      이들이 우리는 하나라는 공동체 의식이 있었다면 그렇게까지 서로 죽고 죽이는 전쟁을 일삼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부여의 후신인 고구려/백제/신라/가야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이들 역시 공동체 의식이 없다가
      신라의 삼국통일로 인하여 비로소 공동체 의식이 싹트기 시작했지요.

  • @Bruce_Forever_10
    @Bruce_Forever_10 Месяц назад +4

    수와 당 제국을 세운 선비족들은 조선의 후예라는 정체성을 가지고 있었는지 궁금하네요.

    • @gn.l3762
      @gn.l3762 Месяц назад

      고조선의 속국이었으나 정체성은 없다고 보야합니다.

    • @user-vg4ki4cx2g
      @user-vg4ki4cx2g Месяц назад +1

      서기 6~7세기 즈음 되면 이미 조선이라는 정체성은 완전히 사라진 시대가 됩니다.
      이때부터는 china가 5호16국 시대였기 때문에 오로지 약육강식의 논리만 지배하던 시대라서
      조선이라는 정체성 자체는 이미 사라지고 없었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 @gn.l3762
      @gn.l3762 Месяц назад

      @@user-vg4ki4cx2g 근래 중국 북망산에서 발견된 고구려 왕족 高玄과 高慈의 묘지명에 고구려는 조선인이다. 고구려는 요동 삼한인이다. 고구려는 조선 위에 덮혀있다라는 내용이 발견되었는데 무슨 헛소리 입니까.

    • @user-vg4ki4cx2g
      @user-vg4ki4cx2g Месяц назад

      @@gn.l3762 그건 china가 부른거죠.
      선비족이 자신들은 조선이라 칭했습니까?
      당나라가 스스로 조선이라 칭했냐고요?

    • @gn.l3762
      @gn.l3762 Месяц назад

      @@user-vg4ki4cx2g 선비족이 언제 조선이라 칭했다 했습니까. 조선과 부여 즉 동호에 복속 되어 있다가 흉노가 동호를 물리치면서 흉노에 복속되었었는데 무슨말하는 겁니까.

  • @서정한-i1o
    @서정한-i1o Месяц назад

    한글로 보여 주세요

  • @user-pm4nw7uj6b
    @user-pm4nw7uj6b Месяц назад

    강의가 멋져요^^이동상

  • @user-br3ci7ij5x
    @user-br3ci7ij5x Месяц назад +1

    부여어와 가야어 신라어는 통했나요?

    • @user-ob1dg6vn5c
      @user-ob1dg6vn5c Месяц назад +1

      삼국사기/삼국유사에 의거하면 한반도와 만주는 말이 통하였습니다.
      다만.... 마한이 한반도로 귀순한 동호계 or 흉노계 민족에게 진한 지역을 하사하면서
      진한 12국 중에 사로국은 백제/고구려와 말이 통하지 않았다는 기록은 있습니다.

    • @user-ob1dg6vn5c
      @user-ob1dg6vn5c Месяц назад

      삼국지 위지 '동이전' 에서는
      옛날 유망인들이 秦나라의 役을 피하여 韓國에 오자 마한이 그 동쪽 경계의 땅을 나누어 주었다. 성책이 있고, 그 언어에 있어서는 마한과 같지 아니하다. 국가(國)를 나라(邦)라 하고, 궁(弓)을 활(弧)이라 하며, 도적(賊)을 도둑(寇)이라 하고, 술을 돌리는 것(行酒)을 잔을 돌린다(行觴) 하며, 서로를 부르기를 모두 무리(徒)라고 하는 것이 秦人과 비슷하다. 비단 燕·齊의 이름과 물건만이 아니라, ‘樂浪’人을 阿殘이라 이름하며, 東方人들이 나(我)를 아(阿)라 하고, 樂浪人을 본래 그 殘餘人이라 일컬으므로, 이제 秦韓이라 이름하는 것이다.

    • @user-ob1dg6vn5c
      @user-ob1dg6vn5c Месяц назад +1

      이로 미뤄서 사로국을 건국한 세력은 삼한지역 나머지 소국들과는 언어가 달랐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이 사로국 세력들이 지증왕 때에 신라 라는 국가를 선포하면서 지배계층으로 올라 섰기 때문에
      이들은 통일신라 지배계층으로 봐야 할 것 입니다.

    • @user-ob1dg6vn5c
      @user-ob1dg6vn5c Месяц назад

      이 사로국 세력이 삼국지 위지 '동이전'에서 秦(진)나라와 풍습이 같다 하였고
      진나라는 멸망 직전에 몰렸다가 효공에 의해서 파/촉/서량 지역을 점령하면서
      이들 지역에 퍼져있던 흉노계 주민들을 국민으로 받아 들이게 됩니다.

    • @user-ob1dg6vn5c
      @user-ob1dg6vn5c Месяц назад +1

      그러니 사로국의 경우에는 확실히 흉노계 혹은 투르크계 라고 보는게 맞을 것이며
      흉노는 기원전 400년 ~서기 439년 활동했고 투르크(돌궐)은 6세기 중반부터 나왔으니
      결국 사로국으로 유입된 세력은 흉노계라고 보는 것이 맞을 것입니다.

  • @정신과시간의방-t7i
    @정신과시간의방-t7i Месяц назад +1

    大學者

  • @user-gv5zv9el4f
    @user-gv5zv9el4f 29 дней назад

    그러면 고조선이 멸망하면서 동호 부여로 나라가 나뉘었고 각자 따로 발전해갔구나

  • @chulkyupark8447
    @chulkyupark8447 Месяц назад +2

    교수님 강의 감사합니다.
    그런데 동호를 말씀하실 때 평양까지 한나라 영토를 표기한 '중국고대역사지도집'을 인용하셨는데 지양해 주셨으면 합니다.
    조작된 지도라 할지라도 실상을 모르는 사람이 자주 보게 되면 진짜라고 인식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 @koreanhistoryyoun
      @koreanhistoryyoun  Месяц назад

      저는 오히려 반대로 일석 이조라고 생각했었는데. 다시 생각하겠습니다.

    • @koreanhistoryyoun
      @koreanhistoryyoun  Месяц назад

      실은 전에 그 지도들과 중국교과서들을 소개하며 왜곡을 지적한 영상이 있답니다.

  • @mjK-q5g
    @mjK-q5g 29 дней назад

    영국에선 hun ethnic이라 쓰고. . Han ethnic이라 읽음 즉
    hun= han(khan)

  • @user-zq8ue8ri2z
    @user-zq8ue8ri2z Месяц назад

    퉁구스를 동호라고하는 설도 있더라고요.. 흉노가 동호를 깨부셔 선비산과 오환산으로 피신할때 부여는 어디 있었나요? 동호가 조선에 해당하고 그로부터 선비족과 오환족이 파생되었다면 또다른 조선의 후예인 부여는 흉노의 침입때 어디 있었던가요?

    • @koreanhistoryyoun
      @koreanhistoryyoun  Месяц назад +2

      동호 퉁구스설은 서양학자들의 오해 입니다. ㅡ원부여는 과거에 현재 중만주 대안,농안일대설과 남만주설이 있었는데, 지금은 중만주 일대에서 청동기 유적들이 발견됩니다. 그때 조선의 위치는 성격상 다르지만 요동반도에 기원전 7~6세기 경에 조선이 있었습니다. 고조선 문명권과 해륙활동 책을 참고 하거나, 제 다른 유투브 나 또는 다음번 부여편 기다리세요. 감사합니다.

    • @davidjacobs8558
      @davidjacobs8558 Месяц назад

      한나라때, 고조선이 흉노의 왼팔 이라고 했죠.
      아마도 고조선이 이당시 흉노족의 영향력 아래로 들어간듯 하죠.
      고조선의 기록이 제대로 안남은 이유도 흉노족 때문일수도.

    • @gn.l3762
      @gn.l3762 Месяц назад +1

      산융이 동쪽으로 옮겨와 동호라 했음 .ㅡ 산융 숙신은 조선을 동호는 부여를 말하는거임.ㅡ

    • @davidjacobs8558
      @davidjacobs8558 Месяц назад

      @@gn.l3762 고조선 단군의 4 아들들이 부루, 부여, 부우, 부소 임.

    • @gn.l3762
      @gn.l3762 Месяц назад

      @@davidjacobs8558 고등과 그아들 색불루등이 부여의 후손으로 때문에 록산에 도읍한 색불루 이후 록산을 부여라고도 했음 지금의 적봉시 영성현임. 중국 고대사에 조선을 숙신으로 춘추시대 산융으로 불림.

  • @user-cr8vm1hm3g
    @user-cr8vm1hm3g Месяц назад +5

    동호 선비 예맥족입니다!
    그럴 인제서 알았니
    유명한 윤명철답지않네!
    마한예맥을 알려나?
    후한서에
    예맥 조선
    예맥 선비
    예맥 마한
    예맥 구려
    예맥 옥저 등이 있당

    • @kimjeonghuun8665
      @kimjeonghuun8665 Месяц назад +3

      말버릇 좀 고쳐야겠어요. 이런 식으로 예의 없이 굴거면 다른 데 가던가 하세요.

    • @user-cr8vm1hm3g
      @user-cr8vm1hm3g Месяц назад

      @@kimjeonghuun8665
      너무 얌전하셔서
      좀더 진취적으로 나갔으면
      하는 바램에서 ...
      미안합나다

    • @user-vg4ki4cx2g
      @user-vg4ki4cx2g Месяц назад

      @@user-cr8vm1hm3g 윤명철 교수님은 1954년생으로 현재 만으로 70세 되신 분입니다.
      이젠 원로 대우 받아도 충분한 연세이고 그정도 연세에도 아주 진취적인 역사관을 보유하고 계십니다.
      그러니 왠만하면 예우를 지키세요.

  • @서정한-i1o
    @서정한-i1o Месяц назад

    한문 말고

  • @YsEco92
    @YsEco92 27 дней назад +1

    민족개념을 너무 크게 보시는 듯 합니다
    부여에서 고구려 백제로 내려왔다지만 한반도에도 기존 세력이 있었습니다 신라통일 후 우리 민족개념을 봐야되지 않을까요? 교수님 견해에 따르면 흉노 거란 선비 여진이 다 우리 민족인데 언제 우리가 이들을 같은 민족으로 인정했나요? 부여가 한민족인가요? 제 생각은 부여는 여진입니다 고구려는 수도가 평양으로 이전된 이후 다행히 우리 민족 개념에 포함된거고 백제는 지도부는 부여계통이나 한반도 토착세력에 동화된거구요 교수님 견해에 따르면 전연 후연 금나라 거란 청나라 멀게는 몽골까지 우리 민족입니다

    • @YsEco92
      @YsEco92 27 дней назад

      한반도에 살던 기존 주민들은 우리 민족이 아니라 하시는건지 너무 만주쪽으로 우리 민족 개념을 넓히시는거 같습니다 저는 세종대왕이 만든 지금 압록강 두만강이 우리민족 최대 강역으로 보입니다 너무 만주 몽골쪽으로 넓히시면 한반도 토착세력인 진정 우리 민족은 어디에 속해야 되는 걸까요?

    • @YsEco92
      @YsEco92 27 дней назад

      우리 역사에서 제일 가까웠던 여진을 우리 민족이라 인정했던 적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저는 발해도 여진의 역사라 봅니다 즉 고조선 부여 고구려 발해 금 청으로 이어지는 그들의 역사죠 우리민족은 그 중 일부가 한반도로 이주하면서 기존 토착세력과 동화되면서 민족으로 형성됐다고 봅니다 아쉽게 현재 중국 최대 강역을 만든 청나라가 중공으로 바뀐게 아쉬울 따름이죠 고조선의 강역이 지금의 전라도 경상도까지 오지 않았다고 생각됩니다 우리 민족은 전라도 경상도 올라가서 충청도 경기도 강원도 황해도 그리고 고려이후 정복전쟁으로 인한 평안도 함경도 여기까지를 강역으로 봐야되지 않을까요? 고조선 이래 여진족이 중국을 점령했다가 물러나고 최종적으로 청나라로 되면서 지금의 중국이 되기까지 이들은 사라진 적이 없습니다 언제나 만주에 살았습니다 20세기에 동화될 줄은 몰랐을 겁니다 만주를 우리 역사로 품기 위해서는 여진족을 동족으로 인정해야 된다고 봅니다 그런데 하다못해 연변 조선족도 버리는 마당에 여진족이야 되겠습니까

  • @user-lb4rl7le7c
    @user-lb4rl7le7c Месяц назад

    가까우면 뭐 하고 같으면 뭐 할꺼여 철저히 중국이랑 편 먹고 오랑캐 취급했는데,

  • @mjK-q5g
    @mjK-q5g 29 дней назад

    사마천 사기에 조선편 읽으세요 중일이 심어준 편견걷어 없애고
    사기라도 읽으시길 한나라 정의를 고려하면서 읽으시길

  • @user-cp8li9ov1w
    @user-cp8li9ov1w Месяц назад

    중국에서 말하는 동호는 고조선과 부여를 비하하던 표현이다.

  • @user-kt4co9tg7i
    @user-kt4co9tg7i Месяц назад +1

    자가나라를 높고 고귀하게 부르고 주변국을 낮게 호칭하는거는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
    화하족 입장에서 주변에 있던 나라들을 다 오랑케 야만인으로 불렀겠지
    북적 서융 남만 동이(동호)
    조선도 청나라를 오랑캐라고 불렀으니
    우리 스스로 비칭을 사용할 필요는 없지
    당연히 단군조선으로 불러야지
    역사기록 유물유적으로 증명되는데 누구 눈치보나
    자기역사는 주체적으로 기술해야

  • @gn.l3762
    @gn.l3762 Месяц назад

    동호가 부여입니다.

    • @user-vg4ki4cx2g
      @user-vg4ki4cx2g Месяц назад

      동호는 부여가 될 수가 없습니다.
      요령성 조양시 북표현 라마동에서 발굴된 유적에 의하면
      부여족 유물과 선비족 유물이 뚜렷하게 구분이 되고 있습니다.

    • @gn.l3762
      @gn.l3762 Месяц назад

      @@user-vg4ki4cx2g 선비족이 요서 요동으로 진출 한건 2세기 이후 탁발씨 모용씨에 의 해서입니다. 이곳의 토착민은 오환족으로 후에 단씨 우문씨가 됩니다. 선비족은 동몽골에서 내려온 족속입니다. 동호라는 표현은 전국시대 기원전의 일입니다. 당시 선비족은 대흥안령산 일대에 웅거하고 있었습니다. 기원전 208년 목돌에 복속되어 이었고 흉노가 붕괴된 1세기 이후 단석괴 가비능등에 의해 선비제국이 몽골고원에 등장한겁니다.

    • @gn.l3762
      @gn.l3762 Месяц назад

      @@user-vg4ki4cx2g 부여(동호와 선비는 같은 시기에 같이 기록될수 없습니다. 때문에 유물비교는 넌센스죠.

    • @koreaking8371
      @koreaking8371 Месяц назад

      ​@@user-vg4ki4cx2g
      개가 웃겠네요?
      우리가 200년전 이랑 다른 물건 쓰는데?
      200년전 조상과 지금 우리는 다른민족임?

    • @user-vg4ki4cx2g
      @user-vg4ki4cx2g Месяц назад

      @@gn.l3762 동호가 흉노에게 격파당한후
      선비족과 오환족으로 분화됩니다
      그러니 선비족과 부여족이 다르다면
      동호족과 부여족은 다른 것입니다.

  • @koreaking8371
    @koreaking8371 Месяц назад

    부여와 삼국이 언제 고조선을 계승했습니까?
    역사 왜곡 그만하시죠
    부여는 고리국을 계승했습니다
    그리고 삼국은 고리국을 계승한 부여를 계승했습니다
    이런 기본도 모르는분이 교수라니...
    이 나라의 앞날이 캄캄하네요

  • @user-ix6jw3sm4n
    @user-ix6jw3sm4n Месяц назад +1

    명색이 민족사학자라면 옛날의 먼민족은 이제 그만 챙기시고, 지금 현재 우리 곁의 가장 가까운 북한민족부터 먼저 챙기세요.

    • @user-kh4ri2oh6i
      @user-kh4ri2oh6i Месяц назад

      정은이가 핵을 포기해야 챙겨주죠^
      지꾸 오물택배 보내는데 어떻게 챙겨줘요?^

    • @user-on7km3sy2k
      @user-on7km3sy2k Месяц назад +5

      이 사람은 어느 포인트에서 화가 난거야? ㅋ

    • @user-pr9tx4ze7u
      @user-pr9tx4ze7u Месяц назад +2

      왜 이리 부애가 마니 찾어? 당연히 현실과 부딧치고 있는 북한부터 해결해야 겠지만 그게 말몆마디 떠든다고 해결되나? 그리고 현실의 문제가 해결안됐다고 다른 것들은 일체 거론하지 말고 팽개처 둬야 할까요

    • @user-vg4ki4cx2g
      @user-vg4ki4cx2g Месяц назад +1

      지금 현재 한반도가 직면한 제일 핵심적인 중대과제는 동북공정입니다.
      이 동북공정에 의하여 china가 북한 흡수/병합 논리를 내세우고 있습니다.
      그러함에도 옛날 먼민족 이야기 그만 하라고요?

    • @user-ix6jw3sm4n
      @user-ix6jw3sm4n Месяц назад

      @@user-vg4ki4cx2g 중국의 동북공정을 막으려면 북한과 먼저 힘을 합쳐야 하는 게 일의 우선 순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