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경하는 이덕일 선생님. 역사학자의 바른 양심으로 진실을 탐구하시는 그 노력과 열정에 정말 머리가 숙여집니다. 저는 일본에서 25년간 생활한 한국인으로서 역사엔 문외한이지만 오사카 나라 와카야마 오카야마 닛코 등 일본의 여러 유적지들을 돌아보며 단지 저의 육감으로 이것들은 왠지 옛 조상들이 만든것 같은 느낌을 강하게 받았습니다.이렇게 선생님의 설명을 들을때마다 일본과 한국의 정설로 알려진 역사들이 정말 날조 투성이구나 ! 하며 그간의 일본인들의 사고와 행동양식. 사회 분위기 정치에서의 우익 들의 행보가 뭔가 퍼즐이 끼워지듯 분석이 되어가는 느낌입니다.제 개인적 바램이 있다면 선생님의 이런 좋은 말씀들을 한국어로만 한다는게 너무 아깝고 조금 애석한 생각마저 듭니다. 일본어 번역자막을 붙여서 제 조상도 못 알어먹는 저 후안무치한 대부분의 일본사람들을 좀 깨우치는데 조금이나마 일조가 되었으면 합니다.언젠가 일본 왕실사람들이 이교수님의 강의를 듣고 눈물을 흘리고 무릎을 치며 대국민 양심선언으로 한국에 머리를 숙이고 사죄하는 그날이 오기를 상상해 봅니다. 그래서 혹시 일어 번역작업이 팔요 하시다면 제가 미력하지만 도와 드리겠습니다. 연락처는 네이버에 산가이버를 검색하시면 나옵니다. 늘 응원드립니다. 선생님 감사합니다.
제가 세계 역사 전문가들에게 비공식적으로 존경을 받고 있는 사람이라 우리 고대사에 대해 정확히 알고 있는데 경주는 지금 미국 아틀란타에 있고 신라왕들의 능도 아틀란타에 묻혀 있습니다. 즉 미국에 우리 고구려 백제 신라가 있었는데 조선말 서양 양놈들에 의해 이 조그만 한반도로 강제 이주 당한겁니다. 그전까지 우리는 미국땅에서 소위 말하는 인디언이라 불리며 찬란한 문명을 꽃피웠다가 미국에 우리의 뿌리를 빼앗겼습니다. 지금도 미국에 가면 대도시에 한인 타운이 남아있는데 이게 바로 우리 민족이 원래 미국에 거주하고 있었다는 중요한 근거가 됩니다. (EX: 신라방, 고려촌) 참고로 제가 언어에도 뛰어난 사람인데 고대 언어와 현대 언어의 발전 관계를 분석해 보면 하와이는 바로 우리 역사서에 기록하고 있는 다물도. 즉 대마도가 영어식 표현에 의해 변형된 이름입니다. 현재 한국과 일본 가운데 있는 대마도는 미국인들이 가짜로 만들어낸겁니다. 미국의 원래 이름이 미'합중국' 입니다. 그게 바로 우리 환국 12연방에서 유래한겁니다. 왜 전 세계 사람들은 United State of America = USA라고 하는데 왜 우리는 미국이라고 할까요? 미는 다물이 변환된 음입니다. 즉 우리의 뿌리를 언젠가 되찾자는 의미에서 미국이라고 부르고 있는겁니다.
내가 김성호 씨의 그 책을 토론토 대학 도서관에 기증한 일이 있다. 벌써 20년도 더 된 시기여서, 지금은 그것이 폐기되었는지는 모르겠으나 매우 귀중한 저술이었다. 중요한 것은 비류의 백제 역사가 어떻게 흔적도 없이 사라졌을까 하는 의문이 지금까지 그대로 남아 있다. 김성호 님은 그 당시 그 책에서 한국의 지명을 언어분포 추적을 통하여 일본 열도까지 분포하는 현상을 세밀하게 기술하고 있었다. 비류백제는 분명 일본 열도로 건너간 흔적이 현재도 남아 있는 것이다. 그분과 통화했던 추억이 있다.
제가 세계 역사 전문가들에게 비공식적으로 존경을 받고 있는 사람이라 우리 고대사에 대해 정확히 알고 있는데 경주는 지금 미국 아틀란타에 있고 신라왕들의 능도 아틀란타에 묻혀 있습니다. 즉 미국에 우리 고구려 백제 신라가 있었는데 조선말 서양 양놈들에 의해 이 조그만 한반도로 강제 이주 당한겁니다. 그전까지 우리는 미국땅에서 소위 말하는 인디언이라 불리며 찬란한 문명을 꽃피웠다가 미국에 우리의 뿌리를 빼앗겼습니다. 지금도 미국에 가면 대도시에 한인 타운이 남아있는데 이게 바로 우리 민족이 원래 미국에 거주하고 있었다는 중요한 근거가 됩니다. (EX: 신라방, 고려촌) 참고로 제가 언어에도 뛰어난 사람인데 고대 언어와 현대 언어의 발전 관계를 분석해 보면 하와이는 바로 우리 역사서에 기록하고 있는 다물도. 즉 대마도가 영어식 표현에 의해 변형된 이름입니다. 현재 한국과 일본 가운데 있는 대마도는 미국인들이 가짜로 만들어낸겁니다. 미국의 원래 이름이 미'합중국' 입니다. 그게 바로 우리 환국 12연방에서 유래한겁니다. 왜 전 세계 사람들은 United State of America = USA라고 하는데 왜 우리는 미국이라고 할까요? 미는 다물이 변환된 음입니다. 즉 우리의 뿌리를 언젠가 되찾자는 의미에서 미국이라고 부르고 있는겁니다.
제가 세계 역사 전문가들에게 비공식적으로 존경을 받고 있는 사람이라 우리 고대사에 대해 정확히 알고 있는데 경주는 지금 미국 아틀란타에 있고 신라왕들의 능도 아틀란타에 묻혀 있습니다. 즉 미국에 우리 고구려 백제 신라가 있었는데 조선말 서양 양놈들에 의해 이 조그만 한반도로 강제 이주 당한겁니다. 그전까지 우리는 미국땅에서 소위 말하는 인디언이라 불리며 찬란한 문명을 꽃피웠다가 미국에 우리의 뿌리를 빼앗겼습니다. 지금도 미국에 가면 대도시에 한인 타운이 남아있는데 이게 바로 우리 민족이 원래 미국에 거주하고 있었다는 중요한 근거가 됩니다. (EX: 신라방, 고려촌) 참고로 제가 언어에도 뛰어난 사람인데 고대 언어와 현대 언어의 발전 관계를 분석해 보면 하와이는 바로 우리 역사서에 기록하고 있는 다물도. 즉 대마도가 영어식 표현에 의해 변형된 이름입니다. 현재 한국과 일본 가운데 있는 대마도는 미국인들이 가짜로 만들어낸겁니다. 미국의 원래 이름이 미'합중국' 입니다. 그게 바로 우리 환국 12연방에서 유래한겁니다. 왜 전 세계 사람들은 United State of America = USA라고 하는데 왜 우리는 미국이라고 할까요? 미는 다물이 변환된 음입니다. 즉 우리의 뿌리를 언젠가 되찾자는 의미에서 미국이라고 부르고 있는겁니다.
김성호 박사님의 에서 비류백제를 토픽으로 끌어낸 것과 일본사와 가야사를 재구성하는데 큰 영향을 준 것으로 평가되었다. 하지만..이 책에도....식민사학의 여러 잔재들을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다. 왜냐면....대방고지를 황해도로 본 내용들이 여러군데서 나오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방고지는 황해도가 될 수 없음을 이미 다 밝혀진 얘기다.
질문드려 봅니다. 이덕일 선생님 말씀에 미추홀의 위치는 "인주면 밀두리"로 비정해볼수 있다는 이야기를 전해 주셨습니다. 비류백제가 해상왕국이 되려면 밀두리가 해상교통로로의 입지가 되어야 하겠지요. 인천이 항구로서의 역할은 한것은 조수간만의 차이로 동력선이 다닌 근대 이후의 일입니다 미추홀이 인천이 아닌것은 명백한 것입니다 고대부터 근세까지 백제,신라,고구려뿐 아니라, 중국,일본등 동아시아 역사형성에 중요한 사건에 등장하는 지명에 관한 공통점에 관해서입니다. 부아악 / 비류,온조가 도읍을 정하기위해 올랐다는 부락산 미추홀 / 비류의 도읍지, 인주 밀두리(미두리) 웅천, 웅진 / (안성천, 초기 백제도읍 도기리 유적) 396년, 광계토대왕이 수군을 이끌고 백제 미추성에 상륙, 함락하고 한성까지 무너뜨림 (여기 한성은 하남위례성, 직산) 660년 기벌포, 부여성충과 흥수가 당의 침략해오면 기필코 지켜야 한다고 했던곳. 당나라군대가 백제사비성을 공격하기 위해 최초로 상륙했던곳,상륙한 당나라군대가 백제수비군의 저항이 거세어 고전끝에 겨우 승리를 거둔 곳. (영인산성에 오르면 그 의미를 알수 있음) 663년 백강 전투 (중국에서는 백강구, 일본에서는 백촌강). 백제부흥운동의 마지막전투 장소,일본역사의 전환점 676년 기벌포, 백제멸망후 신라군이 당나라군을 축출하여 삼국통일을 완수하는 마지막전투가 벌어진 곳 (삼국사기:백강이 곧 기벌포이다) 통일신라 당항성 / 당항성은 삼국시대부터 한반도에서 중국으로 가기위한 최적의 관문 (마한 54개국중 원양국에 속한땅) 원효대사 당나라 유학길 / 수도사 (안성천유역 팽성) 조선시대 객사리 (안성천유역 팽성, 중국사신이 머물던곳) 청일전쟁 풍도, 아산만 백석포 상륙 (일본군은 청군의 항로와 기항지, 어디로 올지 알고 있었다) 일제 군사주둔지 맥아더 상륙작전의 최적지 후보 현재의 주한미군 주둔지 해군2함대 사령부가 있는곳이 그곳 입니다 기존 사학이 당항성을 산동과 반도가 직선으로 제일 가까운 곳으로 짐작하는데 맞지 않습니다 항로가 잡히지 않습니다. 책상머리로 생각해서는 안됩니다.이덕일 선생님 처럼 복합적으로 사고해야 합니다 중국과 해로가 열리는 곳이 언제부터 인천이었고, 한강이었나? 신라가 중국과의 교류를 위해서 항구로서 중요시 한곳이 한강이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라고 생각합니다 김유신 탄생지와 웅천의 지역의 유래, 삼국의 각축장이 어디였을지 생각해봐야 합니다. 백강의 위치를 이케우치 히로시의 금강하구, 안재홍과 전영래의 동진강설이 있지만, 김재봉 선생의 안성천 하구설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보다가 역사속에서 위치가 분분한 곳이 모두 하나의 장소, 지역이 아닌가 생각해 보았습니다. 지명이 달라서 다른곳이 아니라, 모두 한지역, 장소를 이야기 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결국 현재의 지명으로 아산만 지역이고 요즘 신주소와 같이 사고하면 아산만 안성천유역길 아산만 곡교천유역길 지역이지 않을까요? 긴글 송구합니다.
영상제작과 역사강의 대한 노고에 깊이 감사와 존경을 드립니다. 강의 중에 미추홀에 대한 부문이 특히 와 닿았습니다. 이와 관련하여, 일전에 “백제와 다무로였던 왜나라들”이란 책을 2013년에 출간하신 서강대 물리학과의 김영덕 명예교수님의 강의를 우연히 들은 적이 있는데요, 이분은 물리학 교수 은퇴 후 (어원으로 밝힌 우리 상고사” 등을 저술하신 박병식 선생님과 같이) 이두문자의 해석과 관련하여 상고사를 풀어나가시면서, 강의에서 이두문자의 견지에서 본다면 공주 수촌리를 미추홀로 보신다고 하는 점이 인상이 깊었습니다. 고대사를 연구하시는데에 있어서 이러판 이두학자들의 견해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고견을 여쭙고 싶습니다.
김용운,김영덕 교수님 주장을 빌어 저는 미추홀은 공주 수촌리도 포함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호무다(고모땅,곰땅,웅진)와(화)케 진씨 응신은 미추(미쯔,물)홀(고을,촌) 수촌에서 396년까지 이지역에서 왕으로 있다가 광개토 태왕때 쫒개서 하동,규수를 건너 세토나이카이를 따라 동정해서 397년 오사카,나라에 대와(화)왜나라를 건국한것 같습니다.기존에 있던 가야는 교토로 온긴것 같습니다.세월이 흘러 위례성이 함락되어 백제가 공주에 수도를 삼은건 우연이 아닌 어떤 세력이 그 이전에 있었다는 것이겠지요.
@@isjoo6501 홀로세 중기 서기전 4천년전 홍산시대 경기도,충청권 온도가 현재보다 평균기온 4~5도 높고 그래서 강수량이 많아 해수면이 현재보다 10~15미터 높았고 중국의 산동성은 두개의 큰산을 제외하고 나머지는 바다에 잠겨 있었다고합니다. 서기전15세기~ 10세기 부터 기온이 내려가고 건조화되어 강수량이 줄어 서기전후에는 해수면이 현재의 10미터 서기10세기쯤엔 현재의 5미터 높이까지는 해수면이 높아서 금강 상류까지 바닷물이 들어 왔다고 추정 가능합니다. 만조시에는 10미터 이상도 되겠네요. 그리고 크게 보면 지금은 빙하기라고 볼수 있겠네요. (고조선연구소 해수면 연구와 우실하 교수님 논문 참조)
"비류와 온조가 각기 도읍을 정한 곳으로 백성을 둘로 나누어 옮기었다. 비류는 미추홀(지금의 인천)에 정하고, 온조는 위례홀(지금의 서울 남쪽지역) 각기 도읍을 정하였는데, 미추홀은 바다 근처라 땅이 습하고 소금기가 많아 농사가 안 되니 백성들이 힘들어했고, 비류는 실패를 인정했으며, 얼마 지나지 않아 죽었다. 결론 결국 비류 세력은 온조 세력에게 흡수되었고 나라 이름을 십제로 했으며, 후에 백제로 바뀌었다." 이게 > 내용인데, 과연 그런가 하는 의문이 계속 있어왔다. 왜냐면 광개토대왕비문에 미추홀(미추성) 얘기가 나오기 때문이다. 서기369년 점령한 성 중 하나가 미추성이고, 그 때문에 이때까지도 비류백제가 멸망하지 않고 존재하지 않았나 하는 의문들이 나왔던 거다. 비류백제가 충남을 기반으로 요동 및 왜까지 담로제로 다스렸다는 학설이 있다. 에서 백제는 행정구역을 고마(도성)와 담로(읍)로 하여 다스렸는데 22담로는 왕의 자제와 친척들이 나눠 다스렸다. 그런데 광개토대왕의 남벌 때 정벌당하고, 미추성이 함락되니까 왕은 도망쳐나가 왜로 가서 응신천황이 되었다. 일본 야마토왕가의 시작에 대해 일본학자들도 사실상 15대 응신천황부터라고 보고 있다. 의 1~14대는 일본역사계 스스로도 엉터리라고 인정하는 거다. 미추홀이 어디냐? 이병도는 인천 문학산성으로 비정했다. 강단사학계는 쓰다 소기치, 이마니시 류, 이병도의 주장을 마치 당대에 쓰여진 1차사료처럼 여긴다. 기독교인이 성서 받들듯 검증없이 맹목적으로 따른다. 그러기에 인천 남구를 최근에 미추홀구로 이름까지 바꾸었다. 그러나 실제 문학산성 가보면 높이가 해발 213m밖에 안 된다. 전쟁이 일상인 고대에 그런 평지에 도성을 삼을 일도 없고, 그런 곳에 도성을 삼았다가는 금방 함락되고 끝날 거다. 김성호 박사는 에서 미추홀을 아산 인주 밀두리로 비정한다. "미추홀은 '인주'다"라는 12세기 기록에 근거한 비정이다. 그곳에는 서해에서 대륙으로 들어오는 '곡교천'이라는 별로 크지 않은 강이 있는데, 삽교천과 아산방조제 쌓기 전에는 온양 시내까지 서해 바닷물이 들어왔었다. 그런데 곡교천 양쪽으로 산성들이 대두산성(영인산), 물한산성(물앙성), 읍내성(탕정성), 학성산성, 꾀꼴성 등 20여개가 있다. 별로 크지도 않은 강 주변에 산성이 이렇게 많은 것은 방어가 매우 중요했음을 알 수 있다. 이런 여러 측면에서 볼 때 아산 인주를 비류백제로 보는 것이 더 타당하다. 남한 강단사학자들은 석박사학위 수여과정을 다 장악하고 있으면서, 이런 것 가지고 논문을 제출하면 논문 통과 자체가 안 되기 때문에 이런 연구 자체가 안 되게 하는 방법으로 이런 주장들을 사장시킨다. 김성호 박사의 주장은 여러 보강할 부분이 있긴 하지만 상당한 시사점을 던져줌에도 불구하고 총독부사관 일뽕을 종교도그마처럼 받아들인 강단사학자들에 의해 사장되고 말았다. 이런 식이니까 한국 역사학이 발전하지 못한다. 백제사의 수수께끼 핵심인 '비류백제'이므로 비류백제의 연구와 당시 야마토왜와의 관계에 대한 연구는 앞으로도 중요한 과제~~
제가 세계 역사 전문가들에게 비공식적으로 존경을 받고 있는 사람이라 우리 고대사에 대해 정확히 알고 있는데 경주는 지금 미국 아틀란타에 있고 신라왕들의 능도 아틀란타에 묻혀 있습니다. 즉 미국에 우리 고구려 백제 신라가 있었는데 조선말 서양 양놈들에 의해 이 조그만 한반도로 강제 이주 당한겁니다. 그전까지 우리는 미국땅에서 소위 말하는 인디언이라 불리며 찬란한 문명을 꽃피웠다가 미국에 우리의 뿌리를 빼앗겼습니다. 지금도 미국에 가면 대도시에 한인 타운이 남아있는데 이게 바로 우리 민족이 원래 미국에 거주하고 있었다는 중요한 근거가 됩니다. (EX: 신라방, 고려촌) 참고로 제가 언어에도 뛰어난 사람인데 고대 언어와 현대 언어의 발전 관계를 분석해 보면 하와이는 바로 우리 역사서에 기록하고 있는 다물도. 즉 대마도가 영어식 표현에 의해 변형된 이름입니다. 현재 한국과 일본 가운데 있는 대마도는 미국인들이 가짜로 만들어낸겁니다. 미국의 원래 이름이 미'합중국' 입니다. 그게 바로 우리 환국 12연방에서 유래한겁니다. 왜 전 세계 사람들은 United State of America = USA라고 하는데 왜 우리는 미국이라고 할까요? 미는 다물이 변환된 음입니다. 즉 우리의 뿌리를 언젠가 되찾자는 의미에서 미국이라고 부르고 있는겁니다.
유익한 강의 잘 들었습니다. 감사드립니다.온조백제와 비류백제가 있는데 삼국사기에 언급된 비류백제는 온조백제에 병합되지만 광개토대왕에 함락된 세력은 여 구태가 요서지역에서 세운 부여백제라는 설이 있습니다.미추홀(물과 강이 있는 터(성)의 비정은 아산지역이 얼추 맞은 가능성이 많은 것 같습니다.비류백제=부역백제는 같은 맥락으로 봐도 되는건지요?! 일본 만요슈(万葉集) 권1의1 수 웅락천황(雄酪天皇)편에 사로미추 야마토국은(虛見津(=斯盧彌鄒)山跡國者),사로 또는 서라(徐羅)는 신라의 고명(古名)이며 미추는 비류백제 또는 부여백제를 칭하며 야마토국은 야(耶)는 한국의 고어로 천이나 나라를 뜻하며 마(뫼 또는 메로 산이며 토(터=장소)로 야마토국은 물이 있고 산이 있는 좋은 장소라는 한국고어입니다.!!
제가 세계 역사 전문가들에게 비공식적으로 존경을 받고 있는 사람이라 우리 고대사에 대해 정확히 알고 있는데 경주는 지금 미국 아틀란타에 있고 신라왕들의 능도 아틀란타에 묻혀 있습니다. 즉 미국에 우리 고구려 백제 신라가 있었는데 조선말 서양 양놈들에 의해 이 조그만 한반도로 강제 이주 당한겁니다. 그전까지 우리는 미국땅에서 소위 말하는 인디언이라 불리며 찬란한 문명을 꽃피웠다가 미국에 우리의 뿌리를 빼앗겼습니다. 지금도 미국에 가면 대도시에 한인 타운이 남아있는데 이게 바로 우리 민족이 원래 미국에 거주하고 있었다는 중요한 근거가 됩니다. (EX: 신라방, 고려촌) 참고로 제가 언어에도 뛰어난 사람인데 고대 언어와 현대 언어의 발전 관계를 분석해 보면 하와이는 바로 우리 역사서에 기록하고 있는 다물도. 즉 대마도가 영어식 표현에 의해 변형된 이름입니다. 현재 한국과 일본 가운데 있는 대마도는 미국인들이 가짜로 만들어낸겁니다. 미국의 원래 이름이 미'합중국' 입니다. 그게 바로 우리 환국 12연방에서 유래한겁니다. 왜 전 세계 사람들은 United State of America = USA라고 하는데 왜 우리는 미국이라고 할까요? 미는 다물이 변환된 음입니다. 즉 우리의 뿌리를 언젠가 되찾자는 의미에서 미국이라고 부르고 있는겁니다.
이덕일 소장님 항상 이 내용에 대해서 해결되지 않는 궁금한 점이 있습니다. 백제계 혹은 가야계가 왜세력의 중심정치집단이 되었다는 가설은 유적유물등 자료들도 뒤받침되는게 많아서 설득력이 높아보이는데, 자기들의 모국이기도하고 뿌리기도 한 곳을 오히려 높여야 정상이고, 자기들을 중심백제로 바꾸는것도 가능할텐데, 왜 일본서기등에는 자기들의 발밑으로 백제,가야를 깔아서 복종의 대상으로 둔갑시켰을까하는 점입니다. 입맛대로 바꾸더라도 어떻게 자기네 뿌리를 격하시킬수 있었을까하는 의문도 있습니다. 이에 대해선 어떤 이해와 해석을 할수있는지 궁금합니다.
@@지수신-j6l 자기들을 중심백제로 조작하려면 스스로를 백제라고 해야하는데 일본서기에선 백제라는 국호를 하대하는 이민족의 명칭으로 사용하고 있어서요. 자기들의 뿌리라면 성스럽게 여겨야할 이름을 짖밟은것이니까 쉽게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거든요. 저에겐 잘 풀리지않는 의문점입니다. 이점에 대해선 어떤 해석과 견해를 이덕일 소장님께서 갖고계신지 궁금해서요.
(지나가며...) 이기훈의 '동이 한국사' 라는 책을 보면, 백제 내부의 지배층 변화(정권 찬탈)와 관련 있을 수 있다고 합니다. 정권 찬탈에 성공한 세력과 밀려나 이주한 세력이, 단지 같은 나라 출신이라 해서 서로 사이가 좋을 순 없겠죠. 아마 모르는 외국에 대해서보다 더 악감정이 더 클 겁니다 저 책에서는 백제가 신라 정권을 차지하기도 하고, 선비족이 백제 정권을, 흉노 세력이 신라 정권을 차지한 시기도 있다고 나와요. 우리의 머리 속에서는 한국의 고대 국가들이 다 단일한 우리 민족의 역사였을 것만 같은데, 아니라는 거죠. 심지어 저 책에서는 부여의 예족이 왜의 기원이며 둘은 사실상 같다고 보는데, 미국의 존 카터 코벨 박사의 책 중에도 '부여기마족과 왜'라는 제목의 책이 있어요. 부여계 유민 (신공황후)이 어떻게 한반도를 거쳐 일본 열도로 건너가 새 나라를 세웠는가에 대한 이야기죠
선생님 고대 중세사에대해 많은 공부가 되고 좋습니다. 시간이 되시면 선사시대 (구석기 신서키 시대)우리민족의 기원에 관련해서도 강의 부탁드립니다. 또 현대사에서 항일무장투쟁 193년대이후 해방이후 전쟁시기 까지 도 선생님의 의견을 듣고 싶습니다. 김구가 단정반대로 단독선거투표에 참여하지 않을것을 의견을 달리하셨는데 과연 김구가 단독선거에 참여했다고 달라졌을까요? 미군정이 일제보다 더 하면 더했고 온갖 부정선거는 이승만 정권때 쉽게 자기들에 유리하게 조작했었구 단독선거 자체도 강제 강압에 의해 시행된 것 아니었던가요 고대중세사도 중요하지만 현대사 특히 해방전후사에서도 일관된 관점으로 강의 부탁드립니다
저는 김성호박사님의 견해에 적극 동의하는사람입니다 물론 일본서기가 연도가 맞지않는건 알고있습니다만 그것을 연도부터다르다는것과 연도가다르다는건 해석이 다르다고봅니다 물론 일본은 펄쩍뛰겄지마는 오진 이전의 천황들은 일본의역사이면서도 한국의 역사입니다 그러니까 우리의역사가 반만년이라면 일본역시 반만년이랄수 있겠지요
일본서기나 고사기에 일본 왕들의 기록을 적으면서 神(귀신 신, 검신)을 사용한 왕이 4명이 있다.... 앞에 사용한 것이 이 있고... "신"을 앞에 사용한 까닭으로는 이는 두 사람인즉, 앞글자에 각각 "신" 을 머리로 사용하여 이를 구분하여 표현하였고, 이들이 각각 원래 한반도에서 출발한 지역이 주로 신라 지역이었던 탓이고 뒤에 사용한 것이 이 있고 뒤에 사용한 이유는.. 이 두 사람이 원래 한 인물이었으나 둘로 나뉘어 기록된 것을 나타내는 암호같은 것이라는 의미가 있는데 이들의 특징은 모두 한반도 백제에서 건너와 천황이 된 자를 의미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즉,어째든 神(검 신, 곰 신)의 훈이 있어, 우리 민족의 고어로서 임금을 의미하는 어휘로서 이두식으로 사용한 한자로 보아 부여=>고구려=>백제에서 그 기원이 출발한 것으로 여겨지며, 이는 또한 일본 천항가를구성하는 3 줄기를 구분하기 위해 그렇게표기한 것으로도 여겨진다. 즉, 가장 먼저 , 원래 부여에서 고구려를 거쳐 남하한 소서노 일행으로서, 비류 및 온조와 춘천에서 서로 갈라져 먼저 한반도 동부해안을 거쳐 일본으로 건너가 지금의 시마네현 이즈모에 도착한 선주 세력들에 의한 천황가(명치유신 때 조슈 번임)가 있었고 둘째로 , 비류와 온조에 의해 한반도 서부 및 서남부로 진출해 활동하다가 광개토대왕의 공격으로 부득이 일본으로 건너가 천황가 계보를 형성한 비류백제 줄기(이는 해씨를 말함)가 있었고 비류백제가 쇠약해지면서 비류백제의 고토(주로 북구주와 시코쿠 및 야마토 일대)를 온조백제(이는해씨의 별종인 부여씨임, 명치유신 때 사쓰마 번임)가 차지해 통치하다가 이역시 신라와 당나라의 공격으로 한반도의 터전을버리고 일본에서 새로이 천황가 계보를 잇는 줄기가 되었다.
신공왕후가 백제왕에게 점령한 땅을 주고 일본으로 왔다는 것을 다른 말로 해석하면 비류백제가 하나반도 여기 저기서 많은 전쟁에서 승리를 하다가, 광개토대왕에게 수도가 무너지고, 쫒기고 하니, 아예 일본내 땅으로 이주를 하면서, 기존의 땅이 온조백제로 넘어가니, 백제왕에게 주고 왔다고 한 것이 아닐까함 일본서기는 시대를 자꾸 지 맘데로 옮기지만, 전체적인 역사적인 사건의 결과는 반영하는 것이 아닌가함.
비류백제 강의 잘 들었습니다. 김성호/최진 씨 책을 읽은 적이 있는데, 비류백제가 광개토왕 침공 때 일본으로 가서 야마토왜를 세웠다는 점에서 일치하더군요. 응신이 웅진(공주)지역의 백제호족 성씨인 진씨 성을 썼고, 남바위를 쓰고 백제옷을 입었다는 등 여러 증거들이 있나 보더군요. 상당히 흥미로운데, 이덕일 님의 견해는 어떠하신지요? 역사에 대해 깊은 연구를 하셨으니 가르침을 주실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강단사학자들이 김성호 씨 설을 무시했다는 걸로 보아서는 김성호설을 채택하는 걸로 이해하면 되겠는지요? 일본학자들은 이 비류백제설에 대해 어떤 입장을 취하고 있는지요? 응신이 비류백제의 마지막 왕이라면 한국인이 건너가서 일본 최초의 통일왕국을 세운 것이 되는데. 일본학자 중에서도 양심적인 학자들은 자신의 연구성과를 정직하게 기록한 분이 분명히 있을 거라 생각됩니다만.
역사학 박사, 석사 과정을 장악한 주류사학의 카르텔 무지막지 하네요. 연구란 가능성이 있거나 새로운 주장, 과거주장을 반영한 다양한 연구에서 비롯되는데 자기 입맛에 안 맞다고 배격하는건 학자의 태도가 아니지요. 역사학이란, 다양한 학문을 풀어 헤쳐 놓고 과학적 토대로 유물을 접근하고, 문화, 생활방식, 의복, 도자기, 건축과 수학, 천문과 기후, ,,, 더 많은 학문이 결합된 역사임을 주류 사학계 교수들만 모르나 봅니다. 안타까운 우물안 교수...... 후대에 과학적 사실이 밝혀지면 그의 자손들이 얼마나 부끄러워 할까...
모든것이 친일청산을 못한 부분이 많이 작용했겠지요. 지금 강단사학자들 만의 잘못은 아닐겁니다. 광복후 미군정은 학교선생이나 대학교수들을 일제치하에서 배우고 일본유학을 다녀온 사람들을 다시 등용해서 썻고 일본학자들이 만들어논 조선사로 배우면서 그 식민사학이 뼈 속까지 들어 찬 사람들이 아이들을 가르치며, 그 아이들이 커서 지금의 대한민국 역사학계를 점령한것이죠. 그 중심에는 이병도라는 사람이 있었고, 이병도는 죽기전까지 대한민국 역사학계의 대부로 불렸던 인물이죠. 이병도는 조선총독부 산하 조선사편수회에서 일본학자들과 같이 왜곡되어 폄하된 조선사35권을 만든 장본인입니다. 자신의 잘못을 알면서도 이를 숨기고 죽기직전까지 그 길을 갔던 사람입니다. 그 사람 밑에서 역사를 공부했던 현 강단사학자들은 그 것으로 박사학위를 받고 지금까지 기득권을 누리며 일본우익단체의 지원을 받으며 잘 살고 있으며 그 카르텔은 무너뜨리기 쉽지 않을겁니다.
역사라는게 새로운 사료와 고고학자료가 나오면 새로운 설이 등장해야하는데~ 일제시대 왜놈들이 틀을 잡아논 역사학을 주구장창 외우고만 있으니 ,,, 철학과 경제학이 융합하여 복잡계경제학이 나와 노벨상도 받고 하는데 ~ 더군다나 역사학은 문학, 지리학, 화학, 물리학과의 융합할 것이 너무도 많은데 ,, 우리 역사학은 자기들만의 리그에서 벗어나질 못하니 답답합니다.
미추홀(고대백제어??)= 수촌리 (공주) 미추= 미즈(mizu) 일본어 =물(수) 홀=골=고을=마을(촌) 의미가 동일합니다. 초기 미추홀 이란곳과 공주(웅진) 수촌리와 연관성은 분명히 있다고 보여지구요. 원래 비류백제가 터를 닦아놓았던 곳으로 한성백제 세력이 이주한건 아닌지 하는 생각도 드네요… 그런데 한편으론 삼국사기 기록인 비류 인천 미추홀 삽질 기록을 부정할수도 없는것이..김부식이 아무리 신라에 우호적으로 기록했다고해도 이미 다 철지난 고려시대에 무슨 이해관계가 있길래 비류에 대한 기록을 거짓으로 기록했을것 같지도 않고…
백제 땅에 대한 중국측 기록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위서 열전: 지다하습(地多下濕), 주서 이역열전: 토전하습(土田下濕), 북사: 토전습(土田濕), 수서: 궐전하습(厥田下濕). 이는 삼국사기에서 말한 미추홀의 토양 즉, 토습수함(圡濕水鹹)과 상당히 유사합니다. 그렇다면 중국측 기록 속의 백제는 삼국사기의 온조백제가 아니라 비류백제를 말하고 있단 얘기가 됩니다. 결국 비류의 자살로 끝나는 삼국사기 백제본기의 기록은 온조백제측에서 남긴 기록으로 분명 비류를 폄하하고 온조에게 정당성을 부여하는 정치적 의도를 갖고 후대에 기술된 것 같습니다. 선생님 강의 들으며 생각이 정리되는 느낌입니다. 감사합니다.
일본에 한번도 가 본 적이 없는 사람이군요. 일본에 가면 보통의 한국사람과 닮은 가는 눈을 가진 사람들과 한국사람들과는 다른 구리빛 피부의 동남아 계열의 사람들, 그리고 동남아계는 아니지만 얼굴형이 한국에는 잘 없는 사람들, 혼혈들이 있습니다. 몽골계는 한국보다 적은 것 같고... 아무래도 고려때 몽골이 한반도를 쑥대밭으로 만들면서 몽골인의 씨앗들을 많이 퍼뜨려서 그렇겠죠. 코로나 끝나면 일본일주 한번 해보세요. 사람들의 생김새를 자세히 관찰하면서... 참고로 지금의 도쿄는 옛날 고마군이었는데 고마=고(구)려 입니다. 고구려유민들이 지금의 도쿄도로 이주해서 정착해 살았었죠. 지금도 고구려의 후손들이 대를 이어 제사를 지내고 있습니다.
직전 댓글에서 오타가 있었네요. 이점 양지하시고. 이병도선생을 우습게 보시는거 같은데 저는 그분과 아무런 연관도 없 지만 그분을 그렇게 폄하할정도로 이선생께서 학문이 그렇게 깊고 고매하신가요? 그분이 역주한 삼국사기를 보셨나요? 그 당시 그런 각주를 달아서 역주한 실력은 아마도 이선생이 그분 계하에도 미치지 못할것이라는것을 아시길.....
이병도는 진짜 근대적 역사학, 즉 본문비판, 편집비판, 역사비판, 문화비판과 같은 선진적 역사연구방식에 무지한 한학자에 불과하죠. 더구나 만주국을 위해 한사군을 한반도에 설정한 일본제국주의사관의 프레임을 권위로 삼은 매국사학자죠. 중국 25사의 조선관련내용도 전혀 설명 못하는 엉터리 학자죠. 중국사에 따르면 백제는 요서에서 건국하고 국초에 백가제해하죠. 삼국사기에 따르면 마한의 지도아래 있다가 마한을 먹지요. 중국25사에 마한과의 외교문서는 5세기까지 나오죠. 결국 비류백제가 마한을 먹고 마한의 이름으로 통치하다가 광개토왕에게 쫒겨 일본으로 가 응신이 됐다는 김성호 학설은 한중일의 모든 사료를 일관되게 볼 때 설명력이 가장 크죠.
환단고기를 별로 인용하지 않는 분인데요 어떤부분에서 그러다고 보시는지 광개토대왕비문과 강당사학자가 아닌분들의 저술을 인용한 건데요 당신같은 식민사학에 쩌들은 사람들은 신빙성이 있든 없든 가리지 않고 유사사학이니 환빠니 하며 눈과 귀를가리고 타인까지도 알지 못하게 하죠 우리역사인데 좀 어깨뽕하면 안되나요 일본이나 중국처럼 없는 역사를 쓰는게 아니라 있었던 역사 있는 그대로 쓰자는데 뭐가 극우죠
존경하는 이덕일 선생님. 역사학자의 바른 양심으로 진실을 탐구하시는 그 노력과 열정에 정말 머리가 숙여집니다. 저는 일본에서 25년간 생활한 한국인으로서 역사엔 문외한이지만 오사카 나라 와카야마 오카야마 닛코 등 일본의 여러 유적지들을 돌아보며 단지 저의 육감으로 이것들은 왠지 옛 조상들이 만든것 같은 느낌을 강하게 받았습니다.이렇게 선생님의 설명을 들을때마다 일본과 한국의 정설로 알려진 역사들이 정말 날조 투성이구나 ! 하며 그간의 일본인들의 사고와 행동양식. 사회 분위기 정치에서의 우익 들의 행보가 뭔가 퍼즐이 끼워지듯 분석이 되어가는 느낌입니다.제 개인적 바램이 있다면 선생님의 이런 좋은 말씀들을 한국어로만 한다는게 너무 아깝고 조금 애석한 생각마저 듭니다. 일본어 번역자막을 붙여서 제 조상도 못 알어먹는 저 후안무치한 대부분의 일본사람들을 좀 깨우치는데 조금이나마 일조가 되었으면 합니다.언젠가 일본 왕실사람들이 이교수님의 강의를 듣고 눈물을 흘리고 무릎을 치며 대국민 양심선언으로 한국에 머리를 숙이고 사죄하는 그날이 오기를 상상해 봅니다. 그래서 혹시 일어 번역작업이 팔요 하시다면 제가 미력하지만 도와 드리겠습니다. 연락처는 네이버에 산가이버를 검색하시면 나옵니다. 늘 응원드립니다. 선생님 감사합니다.
제가 세계 역사 전문가들에게 비공식적으로 존경을 받고 있는 사람이라 우리 고대사에 대해 정확히 알고 있는데 경주는 지금 미국 아틀란타에 있고 신라왕들의 능도 아틀란타에 묻혀 있습니다. 즉 미국에 우리 고구려 백제 신라가 있었는데 조선말 서양 양놈들에 의해 이 조그만 한반도로 강제 이주 당한겁니다. 그전까지 우리는 미국땅에서 소위 말하는 인디언이라 불리며 찬란한 문명을 꽃피웠다가 미국에 우리의 뿌리를 빼앗겼습니다. 지금도 미국에 가면 대도시에 한인 타운이 남아있는데 이게 바로 우리 민족이 원래 미국에 거주하고 있었다는 중요한 근거가 됩니다. (EX: 신라방, 고려촌)
참고로 제가 언어에도 뛰어난 사람인데 고대 언어와 현대 언어의 발전 관계를 분석해 보면 하와이는 바로 우리 역사서에 기록하고 있는 다물도. 즉 대마도가 영어식 표현에 의해 변형된 이름입니다. 현재 한국과 일본 가운데 있는 대마도는 미국인들이 가짜로 만들어낸겁니다. 미국의 원래 이름이 미'합중국' 입니다. 그게 바로 우리 환국 12연방에서 유래한겁니다. 왜 전 세계 사람들은 United State of America = USA라고 하는데 왜 우리는 미국이라고 할까요? 미는 다물이 변환된 음입니다. 즉 우리의 뿌리를 언젠가 되찾자는 의미에서 미국이라고 부르고 있는겁니다.
처음듣는 아주 좋은 강의에 감사드립니다. 무언가 빠진 백제역사 인식이 보강되는 것 같아 아주 기쁨니다. 국민들이 깨어나야 사이비 역사학자들은 사라진다고 확신합니다.
이덕일박사님. 우리 국민들에게 항상 바른 역사 이야기 들려주셔서 감사합니다.
공부하지 않는, 또는 알면서도 역사왜곡에 앞장서는 강단사학자들. 대한민국에 제대로 역사공부한 우두머리가 나타나 그들을 일시에 몰아냈으면 좋겠습니다.
내가 김성호 씨의 그 책을
토론토 대학 도서관에 기증한 일이 있다.
벌써 20년도 더 된 시기여서,
지금은 그것이 폐기되었는지는 모르겠으나
매우 귀중한 저술이었다.
중요한 것은 비류의 백제 역사가
어떻게 흔적도 없이 사라졌을까 하는
의문이 지금까지 그대로 남아 있다.
김성호 님은 그 당시 그 책에서
한국의 지명을 언어분포 추적을 통하여
일본 열도까지 분포하는 현상을 세밀하게
기술하고 있었다.
비류백제는 분명 일본 열도로 건너간 흔적이
현재도 남아 있는 것이다.
그분과 통화했던 추억이 있다.
정말 소중한 역사책 중 하나죠~
저도 한 권 소장하고 있습니다~
나도 소장중
저는 도서관에서 빌러 보았었는데 중고본이라도 다시 사놓아야겠네요 후편도 내신걸로 알고 있고요 윤내현교수의 고조선 연구도 도서관에서 빌러 보고 충격을 받았는데 당시 사려했더니 절판이 되었다가 다시 개정판이 나와서 얼른 샀죠
박사님 강의 듣고 또 들으면 역사의 로망을 느껴요.
비류백제...
벌써 20년도 넘은것 같은데
김성수 박사님의
씨성으로 보는 한일 민족의 기원
이라는 책에서 비류백제에 대해
알게 되었습니다
오늘 강의 깊이 공감하며, 20대 그당시 느꼈던 짜릿함과 흥분을 다시
느낍니다. 진심 감사합니다
이덕일소장님 ᆢ 최고
프랑스 파리에 살고 있는 교포입니다. 백제와 일본 시조에 관한 여러 궁금증이 풀리네요. 좋은 강의 고맙습니다.
이덕일소장님 존경합니다
감사드려요.^^
좋은 영상 감사합니다.
널리 널리 알려서 모든 사람들이 역사의 진실을 알았으면 합니다.
구독!!!!!!!!! 좋아요 ~~~~~~
비류백제가 야마토 倭를 건국한 것이라는 학설에 깊이 공감하게 되었습니다.
어째서 강단사학계는 이런 연구를 불신할까요? 허무맹랑한 얘기가 아닌데.
일본이 왜倭를 정복했음.
제가 세계 역사 전문가들에게 비공식적으로 존경을 받고 있는 사람이라 우리 고대사에 대해 정확히 알고 있는데 경주는 지금 미국 아틀란타에 있고 신라왕들의 능도 아틀란타에 묻혀 있습니다. 즉 미국에 우리 고구려 백제 신라가 있었는데 조선말 서양 양놈들에 의해 이 조그만 한반도로 강제 이주 당한겁니다. 그전까지 우리는 미국땅에서 소위 말하는 인디언이라 불리며 찬란한 문명을 꽃피웠다가 미국에 우리의 뿌리를 빼앗겼습니다. 지금도 미국에 가면 대도시에 한인 타운이 남아있는데 이게 바로 우리 민족이 원래 미국에 거주하고 있었다는 중요한 근거가 됩니다. (EX: 신라방, 고려촌)
참고로 제가 언어에도 뛰어난 사람인데 고대 언어와 현대 언어의 발전 관계를 분석해 보면 하와이는 바로 우리 역사서에 기록하고 있는 다물도. 즉 대마도가 영어식 표현에 의해 변형된 이름입니다. 현재 한국과 일본 가운데 있는 대마도는 미국인들이 가짜로 만들어낸겁니다. 미국의 원래 이름이 미'합중국' 입니다. 그게 바로 우리 환국 12연방에서 유래한겁니다. 왜 전 세계 사람들은 United State of America = USA라고 하는데 왜 우리는 미국이라고 할까요? 미는 다물이 변환된 음입니다. 즉 우리의 뿌리를 언젠가 되찾자는 의미에서 미국이라고 부르고 있는겁니다.
요즘 즐겨 보는 서강대 김영덕 교수 보면 일본 서기와 칠지도 무녕왕릉 삼국사기 구리거울 한국지명과 관련하여..탐정이 실마리 찾듯이 아주 명쾌하게 설명하네요..첨엔 좀 어렵게 들리나 몇번 들으면 알게 돼요
식민지 역사를 배우면서 가장 의문시 된 것 중의 하나가 미추홀의 위치와 소멸 시기였습니다.
인천의 문학산성을 가보면 도저히 도읍지로서는 이해가 안되는 위치였기 때문이었죠...
동 영상이 의문점을 확실히 해소해 줍니다.
감사합니다...
좋은 자료 감사히 보고 갑니다..
와! 시청자 분들 눈이 매의 눈이군요. 동영상 올리실 때마다 부담이 많으시겠군요. ^^
08:37 14대 '중애'는 '부여 기마족과 왜' (존 카터 코벨)에서 고령가야(대가야)의 왕으로 나오는 중애왕과 이름이 같네요.
진구왕후(신공왕후)의 남편 말입니다.
제가 세계 역사 전문가들에게 비공식적으로 존경을 받고 있는 사람이라 우리 고대사에 대해 정확히 알고 있는데 경주는 지금 미국 아틀란타에 있고 신라왕들의 능도 아틀란타에 묻혀 있습니다. 즉 미국에 우리 고구려 백제 신라가 있었는데 조선말 서양 양놈들에 의해 이 조그만 한반도로 강제 이주 당한겁니다. 그전까지 우리는 미국땅에서 소위 말하는 인디언이라 불리며 찬란한 문명을 꽃피웠다가 미국에 우리의 뿌리를 빼앗겼습니다. 지금도 미국에 가면 대도시에 한인 타운이 남아있는데 이게 바로 우리 민족이 원래 미국에 거주하고 있었다는 중요한 근거가 됩니다. (EX: 신라방, 고려촌)
참고로 제가 언어에도 뛰어난 사람인데 고대 언어와 현대 언어의 발전 관계를 분석해 보면 하와이는 바로 우리 역사서에 기록하고 있는 다물도. 즉 대마도가 영어식 표현에 의해 변형된 이름입니다. 현재 한국과 일본 가운데 있는 대마도는 미국인들이 가짜로 만들어낸겁니다. 미국의 원래 이름이 미'합중국' 입니다. 그게 바로 우리 환국 12연방에서 유래한겁니다. 왜 전 세계 사람들은 United State of America = USA라고 하는데 왜 우리는 미국이라고 할까요? 미는 다물이 변환된 음입니다. 즉 우리의 뿌리를 언젠가 되찾자는 의미에서 미국이라고 부르고 있는겁니다.
김성호 박사님의 에서
비류백제를 토픽으로 끌어낸 것과
일본사와 가야사를 재구성하는데 큰 영향을 준 것으로 평가되었다.
하지만..이 책에도....식민사학의 여러 잔재들을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다.
왜냐면....대방고지를 황해도로 본 내용들이 여러군데서 나오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방고지는 황해도가 될 수 없음을 이미 다 밝혀진 얘기다.
질문드려 봅니다.
이덕일 선생님 말씀에 미추홀의 위치는 "인주면 밀두리"로 비정해볼수 있다는 이야기를 전해 주셨습니다.
비류백제가 해상왕국이 되려면 밀두리가 해상교통로로의 입지가 되어야 하겠지요.
인천이 항구로서의 역할은 한것은 조수간만의 차이로 동력선이 다닌 근대 이후의 일입니다 미추홀이 인천이 아닌것은 명백한 것입니다
고대부터 근세까지 백제,신라,고구려뿐 아니라, 중국,일본등 동아시아 역사형성에 중요한 사건에 등장하는 지명에 관한 공통점에 관해서입니다.
부아악 / 비류,온조가 도읍을 정하기위해 올랐다는 부락산
미추홀 / 비류의 도읍지, 인주 밀두리(미두리)
웅천, 웅진 / (안성천, 초기 백제도읍 도기리 유적)
396년, 광계토대왕이 수군을 이끌고 백제 미추성에 상륙, 함락하고 한성까지 무너뜨림 (여기 한성은 하남위례성, 직산)
660년 기벌포, 부여성충과 흥수가 당의 침략해오면 기필코 지켜야 한다고 했던곳.
당나라군대가 백제사비성을 공격하기 위해 최초로 상륙했던곳,상륙한 당나라군대가 백제수비군의 저항이 거세어 고전끝에 겨우 승리를 거둔 곳. (영인산성에 오르면 그 의미를 알수 있음)
663년 백강 전투 (중국에서는 백강구, 일본에서는 백촌강). 백제부흥운동의 마지막전투 장소,일본역사의 전환점
676년 기벌포, 백제멸망후 신라군이 당나라군을 축출하여 삼국통일을 완수하는 마지막전투가 벌어진 곳 (삼국사기:백강이 곧 기벌포이다)
통일신라 당항성 / 당항성은 삼국시대부터 한반도에서 중국으로 가기위한 최적의 관문 (마한 54개국중 원양국에 속한땅)
원효대사 당나라 유학길 / 수도사 (안성천유역 팽성)
조선시대 객사리 (안성천유역 팽성, 중국사신이 머물던곳)
청일전쟁 풍도, 아산만 백석포 상륙 (일본군은 청군의 항로와 기항지, 어디로 올지 알고 있었다)
일제 군사주둔지
맥아더 상륙작전의 최적지 후보
현재의 주한미군 주둔지
해군2함대 사령부가 있는곳이 그곳 입니다
기존 사학이 당항성을 산동과 반도가 직선으로 제일 가까운 곳으로 짐작하는데 맞지 않습니다 항로가 잡히지 않습니다. 책상머리로 생각해서는 안됩니다.이덕일 선생님 처럼 복합적으로 사고해야 합니다
중국과 해로가 열리는 곳이 언제부터 인천이었고, 한강이었나?
신라가 중국과의 교류를 위해서 항구로서 중요시 한곳이 한강이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라고 생각합니다
김유신 탄생지와 웅천의 지역의 유래, 삼국의 각축장이 어디였을지 생각해봐야 합니다.
백강의 위치를 이케우치 히로시의 금강하구, 안재홍과 전영래의 동진강설이 있지만, 김재봉 선생의 안성천 하구설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보다가 역사속에서 위치가 분분한 곳이 모두 하나의 장소, 지역이 아닌가 생각해 보았습니다.
지명이 달라서 다른곳이 아니라, 모두 한지역, 장소를 이야기 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결국 현재의 지명으로 아산만 지역이고
요즘 신주소와 같이 사고하면
아산만 안성천유역길
아산만 곡교천유역길 지역이지 않을까요?
긴글 송구합니다.
길다 해도 잘못된 것은 없습니다.
분명한 사실을 지적하는 과정에서는
길이 같은 것은 아무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좋은 지적을 보였습니다.
박수.
비류백제의 근거지가 미추홀이고 내포지방 아니었을까요 ᆢ 그리고 신라는 비류백제를 왜라고 부르고 ᆢ 벽골재를 쌓고 살던 신라가 왜에 밀려서 밀려서 경주까지 ᆢ ㅎㅎ 상상해 보았습니다 ᆢ
신라김씨는 어쩌면 신나라가 망하고 ᆢ 산동지방에서 건너왔고 ᆢ 동진강유역에서 살다가 비류백제에 밀려서 밀려서 경주까지 ᆢ 경주로서는 지배계급이 바뀌는 ᆢ그리고 광개토대왕이 등장하여 ᆢ 비류백제는 일본으로 ᆢ
감사드립니다!
응원합니다
#비류백제 미처 몰랐습니다. 관심있게 보고 듣고 읽겠습니다. 일본 15대 천왕으로 이어지는군요.
#이덕일역사TV #이덕일역사 #이덕일TV
김성호 박사의주장을 적극찬동합니다.
응신천황의 근거지가 충남 성환이란 학설도 소개합니다.
영상제작과 역사강의 대한 노고에 깊이 감사와 존경을 드립니다. 강의 중에 미추홀에 대한 부문이 특히 와 닿았습니다. 이와 관련하여, 일전에 “백제와 다무로였던 왜나라들”이란 책을 2013년에 출간하신 서강대 물리학과의 김영덕 명예교수님의 강의를 우연히 들은 적이 있는데요, 이분은 물리학 교수 은퇴 후 (어원으로 밝힌 우리 상고사” 등을 저술하신 박병식 선생님과 같이) 이두문자의 해석과 관련하여 상고사를 풀어나가시면서, 강의에서 이두문자의 견지에서 본다면 공주 수촌리를 미추홀로 보신다고 하는 점이 인상이 깊었습니다. 고대사를 연구하시는데에 있어서 이러판 이두학자들의 견해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고견을 여쭙고 싶습니다.
공주는 물이 짜지 않고 습하지 안아서 ㅠ
김성호박사께서 업그레이드된 책을 내셨더군요 "일본은 구다라百濟 망명정권"라는 책입니다
김용운,김영덕 교수님 주장을 빌어 저는 미추홀은 공주 수촌리도 포함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호무다(고모땅,곰땅,웅진)와(화)케 진씨 응신은
미추(미쯔,물)홀(고을,촌) 수촌에서 396년까지 이지역에서 왕으로 있다가
광개토 태왕때 쫒개서 하동,규수를 건너
세토나이카이를 따라 동정해서 397년
오사카,나라에 대와(화)왜나라를 건국한것 같습니다.기존에 있던 가야는 교토로 온긴것 같습니다.세월이 흘러 위례성이 함락되어
백제가
공주에 수도를 삼은건 우연이 아닌 어떤 세력이 그 이전에 있었다는 것이겠지요.
백제는 방어와 교역을 원활한 지형인 강과 산을 끼고 수도를 삼는 경향이 있었죠
한강 유역에서 밀려난 백제가 금강유역에 수도를 정한건 자연스러운 거라봅니다
저도 김용운 교수님 유튜브를 보았는데, 한일 양국에서 오래 살아서 객관적으로 역사를 볼 수 있는 입장에 있고,
실제로 상당히 균형잡힌 시각을 갖고 계시고, 역사지식이 해박하여 믿음이 가더군요.
미추홀 지형 특성이 땅이 습하고 물이 짜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공주는 그렇지 않는 내륙 지역입니다
지형 특성으로 볼때 해안가 하천의 하구 지역으로 토사의 퇴적으로 생긴 지역인듯 합니다
@@isjoo6501 홀로세 중기 서기전 4천년전
홍산시대 경기도,충청권 온도가 현재보다
평균기온 4~5도 높고 그래서 강수량이 많아 해수면이 현재보다 10~15미터 높았고 중국의 산동성은 두개의 큰산을 제외하고 나머지는 바다에 잠겨 있었다고합니다.
서기전15세기~ 10세기 부터 기온이 내려가고 건조화되어 강수량이 줄어 서기전후에는 해수면이 현재의 10미터
서기10세기쯤엔 현재의 5미터 높이까지는 해수면이 높아서 금강 상류까지 바닷물이 들어 왔다고 추정 가능합니다.
만조시에는 10미터 이상도 되겠네요.
그리고 크게 보면 지금은 빙하기라고 볼수 있겠네요.
(고조선연구소 해수면 연구와 우실하 교수님 논문 참조)
미추홀의 "홀" 표기는 고구려식 표기방식인즉 어쩌면 더 북쪽에 있지 않았을까요. 요동반도 남단이거나 황해도쪽이거나
천관우 선생하고 헷갈리셨네.
천관우 선생은 한국일보 조선일보 동아일보.
일본서기의 주인공을 왜가 아니라 백제로 보면 딱딱 맞아떨어진다고 하셨슴.
저도 비류백제와 온조백제가 더 현실성있다고 생각합니다
"비류와 온조가 각기 도읍을 정한 곳으로 백성을 둘로 나누어 옮기었다. 비류는 미추홀(지금의 인천)에 정하고, 온조는 위례홀(지금의 서울 남쪽지역) 각기 도읍을 정하였는데, 미추홀은 바다 근처라 땅이 습하고 소금기가 많아 농사가 안 되니 백성들이 힘들어했고, 비류는 실패를 인정했으며, 얼마 지나지 않아 죽었다. 결론 결국 비류 세력은 온조 세력에게 흡수되었고 나라 이름을 십제로 했으며, 후에 백제로 바뀌었다."
이게 > 내용인데, 과연 그런가 하는 의문이 계속 있어왔다. 왜냐면 광개토대왕비문에 미추홀(미추성) 얘기가 나오기 때문이다. 서기369년 점령한 성 중 하나가 미추성이고, 그 때문에 이때까지도 비류백제가 멸망하지 않고 존재하지 않았나 하는 의문들이 나왔던 거다.
비류백제가 충남을 기반으로 요동 및 왜까지 담로제로 다스렸다는 학설이 있다. 에서 백제는 행정구역을 고마(도성)와 담로(읍)로 하여 다스렸는데 22담로는 왕의 자제와 친척들이 나눠 다스렸다. 그런데 광개토대왕의 남벌 때 정벌당하고, 미추성이 함락되니까 왕은 도망쳐나가 왜로 가서 응신천황이 되었다. 일본 야마토왕가의 시작에 대해 일본학자들도 사실상 15대 응신천황부터라고 보고 있다. 의 1~14대는 일본역사계 스스로도 엉터리라고 인정하는 거다.
미추홀이 어디냐? 이병도는 인천 문학산성으로 비정했다. 강단사학계는 쓰다 소기치, 이마니시 류, 이병도의 주장을 마치 당대에 쓰여진 1차사료처럼 여긴다. 기독교인이 성서 받들듯 검증없이 맹목적으로 따른다. 그러기에 인천 남구를 최근에 미추홀구로 이름까지 바꾸었다. 그러나 실제 문학산성 가보면 높이가 해발 213m밖에 안 된다. 전쟁이 일상인 고대에 그런 평지에 도성을 삼을 일도 없고, 그런 곳에 도성을 삼았다가는 금방 함락되고 끝날 거다.
김성호 박사는 에서 미추홀을 아산 인주 밀두리로 비정한다. "미추홀은 '인주'다"라는 12세기 기록에 근거한 비정이다. 그곳에는 서해에서 대륙으로 들어오는 '곡교천'이라는 별로 크지 않은 강이 있는데, 삽교천과 아산방조제 쌓기 전에는 온양 시내까지 서해 바닷물이 들어왔었다. 그런데 곡교천 양쪽으로 산성들이 대두산성(영인산), 물한산성(물앙성), 읍내성(탕정성), 학성산성, 꾀꼴성 등 20여개가 있다. 별로 크지도 않은 강 주변에 산성이 이렇게 많은 것은 방어가 매우 중요했음을 알 수 있다. 이런 여러 측면에서 볼 때 아산 인주를 비류백제로 보는 것이 더 타당하다.
남한 강단사학자들은 석박사학위 수여과정을 다 장악하고 있으면서, 이런 것 가지고 논문을 제출하면 논문 통과 자체가 안 되기 때문에 이런 연구 자체가 안 되게 하는 방법으로 이런 주장들을 사장시킨다. 김성호 박사의 주장은 여러 보강할 부분이 있긴 하지만 상당한 시사점을 던져줌에도 불구하고 총독부사관 일뽕을 종교도그마처럼 받아들인 강단사학자들에 의해 사장되고 말았다. 이런 식이니까 한국 역사학이 발전하지 못한다.
백제사의 수수께끼 핵심인 '비류백제'이므로 비류백제의 연구와 당시 야마토왜와의 관계에 대한 연구는 앞으로도 중요한 과제~~
제가 세계 역사 전문가들에게 비공식적으로 존경을 받고 있는 사람이라 우리 고대사에 대해 정확히 알고 있는데 경주는 지금 미국 아틀란타에 있고 신라왕들의 능도 아틀란타에 묻혀 있습니다. 즉 미국에 우리 고구려 백제 신라가 있었는데 조선말 서양 양놈들에 의해 이 조그만 한반도로 강제 이주 당한겁니다. 그전까지 우리는 미국땅에서 소위 말하는 인디언이라 불리며 찬란한 문명을 꽃피웠다가 미국에 우리의 뿌리를 빼앗겼습니다. 지금도 미국에 가면 대도시에 한인 타운이 남아있는데 이게 바로 우리 민족이 원래 미국에 거주하고 있었다는 중요한 근거가 됩니다. (EX: 신라방, 고려촌)
참고로 제가 언어에도 뛰어난 사람인데 고대 언어와 현대 언어의 발전 관계를 분석해 보면 하와이는 바로 우리 역사서에 기록하고 있는 다물도. 즉 대마도가 영어식 표현에 의해 변형된 이름입니다. 현재 한국과 일본 가운데 있는 대마도는 미국인들이 가짜로 만들어낸겁니다. 미국의 원래 이름이 미'합중국' 입니다. 그게 바로 우리 환국 12연방에서 유래한겁니다. 왜 전 세계 사람들은 United State of America = USA라고 하는데 왜 우리는 미국이라고 할까요? 미는 다물이 변환된 음입니다. 즉 우리의 뿌리를 언젠가 되찾자는 의미에서 미국이라고 부르고 있는겁니다.
정리 감사합니다.
앞으로 강단 사학자 호칭은 너무 아까우니 버리고 , 격이 낮은 용어가 없을까요 예를 들자면 뜨네기 사학자 등
식민사학자
토왜사학자!
기회주의자들이지요!
역사매국놈들
좀비강단사기꾼들.
이들이 무슨 학자고 교수
인가?
유익한 강의 잘 들었습니다. 감사드립니다.온조백제와 비류백제가 있는데 삼국사기에 언급된 비류백제는 온조백제에 병합되지만 광개토대왕에 함락된 세력은 여 구태가 요서지역에서 세운 부여백제라는 설이 있습니다.미추홀(물과 강이 있는 터(성)의 비정은 아산지역이 얼추 맞은 가능성이 많은 것 같습니다.비류백제=부역백제는 같은 맥락으로 봐도 되는건지요?!
일본 만요슈(万葉集) 권1의1 수 웅락천황(雄酪天皇)편에 사로미추 야마토국은(虛見津(=斯盧彌鄒)山跡國者),사로 또는 서라(徐羅)는 신라의 고명(古名)이며 미추는 비류백제 또는 부여백제를 칭하며 야마토국은 야(耶)는 한국의 고어로 천이나 나라를 뜻하며 마(뫼 또는 메로 산이며 토(터=장소)로 야마토국은 물이 있고 산이 있는 좋은 장소라는 한국고어입니다.!!
'부여 백제'는 성립하지 않습니다. 백제는 실제 존재하지 않았고, 우리가 세뇌 당한 소위 백제는 실제로는 '남부여'입니다. 고리(소위 고구려) 역시 부여의 일파입니다.
선우휘님 알아요. 돌아가신후 이와나미 세계에서 특집이 나왔어요
같은 주장을 일본인 학자 이시와타리 신이치로(石渡信一郎)가 『백제에서 건너온 응신천황 기마민족왕조의 성립(百済から渡来した応神天皇 騎馬民族王朝の成立)』이란 자신의 책에서 했죠.
제가 세계 역사 전문가들에게 비공식적으로 존경을 받고 있는 사람이라 우리 고대사에 대해 정확히 알고 있는데 경주는 지금 미국 아틀란타에 있고 신라왕들의 능도 아틀란타에 묻혀 있습니다. 즉 미국에 우리 고구려 백제 신라가 있었는데 조선말 서양 양놈들에 의해 이 조그만 한반도로 강제 이주 당한겁니다. 그전까지 우리는 미국땅에서 소위 말하는 인디언이라 불리며 찬란한 문명을 꽃피웠다가 미국에 우리의 뿌리를 빼앗겼습니다. 지금도 미국에 가면 대도시에 한인 타운이 남아있는데 이게 바로 우리 민족이 원래 미국에 거주하고 있었다는 중요한 근거가 됩니다. (EX: 신라방, 고려촌)
참고로 제가 언어에도 뛰어난 사람인데 고대 언어와 현대 언어의 발전 관계를 분석해 보면 하와이는 바로 우리 역사서에 기록하고 있는 다물도. 즉 대마도가 영어식 표현에 의해 변형된 이름입니다. 현재 한국과 일본 가운데 있는 대마도는 미국인들이 가짜로 만들어낸겁니다. 미국의 원래 이름이 미'합중국' 입니다. 그게 바로 우리 환국 12연방에서 유래한겁니다. 왜 전 세계 사람들은 United State of America = USA라고 하는데 왜 우리는 미국이라고 할까요? 미는 다물이 변환된 음입니다. 즉 우리의 뿌리를 언젠가 되찾자는 의미에서 미국이라고 부르고 있는겁니다.
이덕일 소장님 항상 이 내용에 대해서 해결되지 않는 궁금한 점이 있습니다.
백제계 혹은 가야계가 왜세력의 중심정치집단이 되었다는 가설은 유적유물등 자료들도 뒤받침되는게 많아서 설득력이 높아보이는데,
자기들의 모국이기도하고 뿌리기도 한 곳을 오히려 높여야 정상이고, 자기들을 중심백제로 바꾸는것도 가능할텐데,
왜 일본서기등에는 자기들의 발밑으로 백제,가야를 깔아서 복종의 대상으로 둔갑시켰을까하는 점입니다. 입맛대로 바꾸더라도 어떻게 자기네 뿌리를 격하시킬수 있었을까하는 의문도 있습니다.
이에 대해선 어떤 이해와 해석을 할수있는지 궁금합니다.
@@지수신-j6l 자기들을 중심백제로 조작하려면 스스로를 백제라고 해야하는데 일본서기에선 백제라는 국호를 하대하는 이민족의 명칭으로 사용하고 있어서요. 자기들의 뿌리라면 성스럽게 여겨야할 이름을 짖밟은것이니까 쉽게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거든요. 저에겐 잘 풀리지않는 의문점입니다. 이점에 대해선 어떤 해석과 견해를 이덕일 소장님께서 갖고계신지 궁금해서요.
(지나가며...) 이기훈의 '동이 한국사' 라는 책을 보면, 백제 내부의 지배층 변화(정권 찬탈)와 관련 있을 수 있다고 합니다. 정권 찬탈에 성공한 세력과 밀려나 이주한 세력이, 단지 같은 나라 출신이라 해서 서로 사이가 좋을 순 없겠죠. 아마 모르는 외국에 대해서보다 더 악감정이 더 클 겁니다
저 책에서는 백제가 신라 정권을 차지하기도 하고, 선비족이 백제 정권을, 흉노 세력이 신라 정권을 차지한 시기도 있다고 나와요. 우리의 머리 속에서는 한국의 고대 국가들이 다 단일한 우리 민족의 역사였을 것만 같은데, 아니라는 거죠.
심지어 저 책에서는 부여의 예족이 왜의 기원이며 둘은 사실상 같다고 보는데, 미국의 존 카터 코벨 박사의 책 중에도 '부여기마족과 왜'라는 제목의 책이 있어요. 부여계 유민 (신공황후)이 어떻게 한반도를 거쳐 일본 열도로 건너가 새 나라를 세웠는가에 대한 이야기죠
모용선비가 어떻게 갈라졌어 흩어져 있는가을 찾는 것도 백제를 찾는 한가지 방법이라고 하는데 선생님 어떻게 생각 하시는지요?
김성호선생책 1982년입니다 30년후에 '일본은 구다라 망명정권'
선생님 고대 중세사에대해 많은 공부가 되고 좋습니다.
시간이 되시면 선사시대 (구석기 신서키 시대)우리민족의 기원에 관련해서도 강의 부탁드립니다.
또 현대사에서 항일무장투쟁 193년대이후 해방이후 전쟁시기 까지 도 선생님의 의견을 듣고 싶습니다.
김구가 단정반대로 단독선거투표에 참여하지 않을것을 의견을 달리하셨는데 과연 김구가 단독선거에 참여했다고 달라졌을까요? 미군정이 일제보다 더 하면 더했고 온갖 부정선거는 이승만 정권때 쉽게 자기들에 유리하게 조작했었구
단독선거 자체도 강제 강압에 의해 시행된 것 아니었던가요
고대중세사도 중요하지만 현대사 특히 해방전후사에서도 일관된 관점으로 강의 부탁드립니다
저는 김성호박사님의 견해에 적극 동의하는사람입니다 물론 일본서기가 연도가 맞지않는건 알고있습니다만 그것을 연도부터다르다는것과 연도가다르다는건 해석이 다르다고봅니다 물론 일본은 펄쩍뛰겄지마는 오진 이전의 천황들은 일본의역사이면서도 한국의 역사입니다 그러니까 우리의역사가 반만년이라면 일본역시 반만년이랄수 있겠지요
일본서기나 고사기에 일본 왕들의 기록을 적으면서
神(귀신 신, 검신)을 사용한 왕이 4명이 있다....
앞에 사용한 것이 이 있고...
"신"을 앞에 사용한 까닭으로는
이는 두 사람인즉, 앞글자에 각각 "신" 을 머리로 사용하여
이를 구분하여 표현하였고,
이들이 각각 원래 한반도에서 출발한 지역이
주로 신라 지역이었던 탓이고
뒤에 사용한 것이 이 있고
뒤에 사용한 이유는..
이 두 사람이 원래 한 인물이었으나 둘로 나뉘어 기록된 것을
나타내는 암호같은 것이라는 의미가 있는데
이들의 특징은 모두
한반도 백제에서 건너와 천황이 된 자를 의미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즉,어째든 神(검 신, 곰 신)의 훈이 있어,
우리 민족의 고어로서 임금을 의미하는 어휘로서
이두식으로 사용한 한자로 보아 부여=>고구려=>백제에서
그 기원이 출발한 것으로 여겨지며,
이는 또한 일본 천항가를구성하는 3 줄기를 구분하기 위해
그렇게표기한 것으로도 여겨진다.
즉, 가장 먼저 , 원래 부여에서 고구려를 거쳐 남하한 소서노 일행으로서,
비류 및 온조와 춘천에서 서로 갈라져
먼저 한반도 동부해안을 거쳐 일본으로 건너가
지금의 시마네현 이즈모에 도착한 선주 세력들에 의한
천황가(명치유신 때 조슈 번임)가 있었고
둘째로 , 비류와 온조에 의해 한반도 서부 및 서남부로 진출해 활동하다가
광개토대왕의 공격으로 부득이 일본으로 건너가
천황가 계보를 형성한 비류백제 줄기(이는 해씨를 말함)가 있었고
비류백제가 쇠약해지면서
비류백제의 고토(주로 북구주와 시코쿠 및 야마토 일대)를
온조백제(이는해씨의 별종인 부여씨임, 명치유신 때 사쓰마 번임)가 차지해 통치하다가
이역시 신라와 당나라의 공격으로 한반도의 터전을버리고
일본에서 새로이 천황가 계보를 잇는 줄기가 되었다.
신공왕후가 백제왕에게 점령한 땅을 주고 일본으로 왔다는 것을 다른 말로 해석하면
비류백제가 하나반도 여기 저기서 많은 전쟁에서 승리를 하다가,
광개토대왕에게 수도가 무너지고, 쫒기고 하니,
아예 일본내 땅으로 이주를 하면서, 기존의 땅이 온조백제로 넘어가니,
백제왕에게 주고 왔다고 한 것이 아닐까함
일본서기는 시대를 자꾸 지 맘데로 옮기지만, 전체적인 역사적인 사건의 결과는 반영하는 것이 아닌가함.
우리는 이런말이 있지요.
자식중에 말 안듣는 자식을 호적에서 파내야돼
왜하고 한반도는 서로 다툼이 생기니 삼국사기에서는 호적을 파낸거네요.
호적에서 파낼정도로 왜로 가기전 한반도에 큰사건을 일으키고 떠난게 아닌가 생각드네요.
진짜 지명은 시대마다 다른데 참... 어처구니 없는게 많기는 합니다.
비류백제가 망하고 온조백제에 흡수되서도 지명은 그대로 썼을 가능성도 있겠군요
서로 남도 아니고 거부감이 없었을테고
주민도 그대로였을테니 원래 부르던이름으로 불렸을 가능성이 크겠죠
하남 위례성이 중국 황하를 기준으로
남쪽에 있는 도시는 아닌가요?
기억납니다~ 그때 이런 내용이 좀 있었죠~ 대충 기억납니다~
요서에 있던 부여왕 구태가 남하해서 백제와 합쳐서 근초고왕때 전성기를 누렸다는 말이 있던데요
비류백제 강의 잘 들었습니다. 김성호/최진 씨 책을 읽은 적이 있는데, 비류백제가 광개토왕 침공 때 일본으로 가서 야마토왜를 세웠다는 점에서 일치하더군요.
응신이 웅진(공주)지역의 백제호족 성씨인 진씨 성을 썼고, 남바위를 쓰고 백제옷을 입었다는 등 여러 증거들이 있나 보더군요.
상당히 흥미로운데, 이덕일 님의 견해는 어떠하신지요? 역사에 대해 깊은 연구를 하셨으니 가르침을 주실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강단사학자들이 김성호 씨 설을 무시했다는 걸로 보아서는 김성호설을 채택하는 걸로 이해하면 되겠는지요?
일본학자들은 이 비류백제설에 대해 어떤 입장을 취하고 있는지요? 응신이 비류백제의 마지막 왕이라면 한국인이 건너가서 일본 최초의 통일왕국을 세운 것이 되는데.
일본학자 중에서도 양심적인 학자들은 자신의 연구성과를 정직하게 기록한 분이 분명히 있을 거라 생각됩니다만.
박사님 백제 관미성 위치는 어디인가요?
갈단업자들의 페해는 해가 갈수록 진화하군요.
30년 전이나 지금이나 세상이 다 바뀌는데 강단업자들은 제자리죠ㅡ
정치가 썩엇다 한들 강단업자들에 비하면 샘물이죠.
마지막 남은 최후의 적폐가 강단업자들 입니다..
비류 백제가 한반도 남부에 있었다면, 그리고, 그 비류 백제가 광개토대왕의 공격으로 일본으로 건너 갔다면, 그들은 한반도의 남부의 연고권을 주장을 할 수 있습니다. 그들이 쓴 역사서에도 한반도 남부와의 연관성을 나타냅니다.
하옇튼 학창시절 역사 배운걸 생각해보면,,,,,,일맥이 상통하지 않았다,,,,,,,,,,,,,,,고조선 찔끔,,고구려,ㅡ고려 ,신라,백제등 강역이 말이 안되고 어정쩡 햇어,,
일제가 호태왕비에 손질한 이유가 이거라고 봅니다. 그걸 역이용해서 임나설에 명분으로 삼은거 같아요. 가야나 백제가 일본을 지배한 역사적 주장은 왜 그게 다뤄지지 않는걸까요?
백제라는게 이름만 똑같이 쓰고 서로 독립적인 별개의 나라들이 아니라 연방국의 성격이 강했읍니다. 전체백제의 왕은 진왕이라고 있었는데 초기에는 소위말하는 비류백제의 왕이 진왕을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읍니다.
삼국사 일설에 백제 시조가 비류라는 기록도 나오는 바 비류백제의 가능성이 있겠군요.
고구려왕은 대왕이라하면 안되고 태왕이라고 해야하지 않나요? 그리고 미추홀과 하남은 반도가 아닌 대륙에 있다는 설이 더 역사적 신빙성이 더 있지 않나요?
화랑세기에 대해서 좀더 알고싶습니다
역사학 박사, 석사 과정을 장악한 주류사학의 카르텔 무지막지 하네요.
연구란 가능성이 있거나 새로운 주장, 과거주장을 반영한 다양한 연구에서 비롯되는데 자기 입맛에 안 맞다고 배격하는건 학자의 태도가 아니지요.
역사학이란, 다양한 학문을 풀어 헤쳐 놓고 과학적 토대로 유물을 접근하고, 문화, 생활방식, 의복, 도자기, 건축과 수학, 천문과 기후, ,,, 더 많은 학문이 결합된 역사임을
주류 사학계 교수들만 모르나 봅니다. 안타까운 우물안 교수...... 후대에 과학적 사실이 밝혀지면 그의 자손들이 얼마나 부끄러워 할까...
모든것이 친일청산을 못한 부분이 많이 작용했겠지요. 지금 강단사학자들 만의 잘못은 아닐겁니다.
광복후 미군정은 학교선생이나 대학교수들을 일제치하에서 배우고 일본유학을 다녀온 사람들을 다시 등용해서 썻고
일본학자들이 만들어논 조선사로 배우면서 그 식민사학이 뼈 속까지 들어 찬 사람들이 아이들을 가르치며, 그 아이들이 커서 지금의 대한민국 역사학계를 점령한것이죠.
그 중심에는 이병도라는 사람이 있었고, 이병도는 죽기전까지 대한민국 역사학계의 대부로 불렸던 인물이죠. 이병도는 조선총독부 산하 조선사편수회에서 일본학자들과 같이 왜곡되어 폄하된 조선사35권을 만든 장본인입니다. 자신의 잘못을 알면서도 이를 숨기고 죽기직전까지 그 길을 갔던 사람입니다. 그 사람 밑에서 역사를 공부했던 현 강단사학자들은 그 것으로 박사학위를 받고 지금까지 기득권을 누리며 일본우익단체의 지원을 받으며 잘 살고 있으며 그 카르텔은 무너뜨리기 쉽지 않을겁니다.
일본에는 이미 신석기 시대부터 사람들이 건너가 살고 있었어요. 가야인부터 외국인 취급이었는데 ㅋ 백제인은 말할 것도 없지요. ㅋ
외백제는 어디선가 본듯한데... 지금 중국 영토인 왕검성 지역 부근 인듯합니다.
다른 백제를 다룬 비류와 온조가 서로 싸웠다고 하더라구요. 대륙 세력과
반도 세력과 싸웠다고 하던데 사실 인지요?
분규가 좀 있었던 것은 사실이나 항상 그렇지 않았읍니다. 백제연방국인데.. 전쟁을 한다면 내전이지요. 삼국사기에 초기부터 서술한 한성백제는 한동안 공주 진왕(전체 백제왕)의 담로 비슷한 위치에 있었읍니다.
다무로 고마
이병도와 강단사학자들 참 이상한 사람들이네요. 세종실록에 세종대왕도 고구려 수도와 백제 수도 위치를 모른다고 했는데....... 감히! 지들이 정하면 다 역사가 되는 식민사학의 풍토가 참 한심합니다.
공주시 수촌리가 있는데 수촌을 일본어로 읽으면 미쓰홀이라 합니다...비류 백제가 서남부에 뿌리내렸다는 증거 같습니다..
미추홀이 인천인줄 알고 살았는데
그말을 믿고 있던 내가 어리석었군요
이병도를 박사라 칭한다는 자체가
수치스러운 일입니다
전세계가 다 한국이구만
미추홀 인천이 맞을거여요. 왜냐하면 백제는 대해상왕국이었어요. 수도가 바다가 아니면 불가하죠
미추홀이 요동반도 아닌가요
아산 인두지역이 비류백제의 성 🏰 이며 미추홀이어야만 온조백제와 존립할 명분임
그럼 인천의 미추홀이름도 진짜가 아닌거네요ㅜㅜ
식민사학자들이 다 죽고나면
올바른 역사가 전달되겠죠
역사라는게 새로운 사료와 고고학자료가 나오면 새로운 설이 등장해야하는데~ 일제시대 왜놈들이 틀을 잡아논 역사학을 주구장창 외우고만 있으니 ,,, 철학과 경제학이 융합하여 복잡계경제학이 나와 노벨상도 받고 하는데 ~ 더군다나 역사학은 문학, 지리학, 화학, 물리학과의 융합할 것이 너무도 많은데 ,, 우리 역사학은 자기들만의 리그에서 벗어나질 못하니 답답합니다.
비류백제인지는 모르겠지만 백제의 미추성이 광개토대왕의 남정 시 정복 당한거고. 위치는 아직 모른다 이네요.
미추홀은 임진강 변에 있으며, 한반도에는 없습니다
비류백제는 남당유고 아니면 증명이 힘들 껍니다. 남당유고 많이 참조해 주세요~!
담노=탐라 ???.
사무라이는 백제 싸울아비 (속어: 사울뱅이)) 에서 유래된것입니다. 일본천황도 자신이 백제의 후손임을 인정.
좌파든 우파든 안타깝게도
이런역사에 관심들이없다
대통령될사람은 제대로된 우리역사 공부를 했으면합니다.
그리고 우리의 국학을 통해서도 역사를 유추 해 보는것도 좋을듯 싶습니다.
국학=>국악
이병도,이기백, 식민사관에 지멋대로 한 사기꾼!
적어도 모든 강단 사학들을 능가하고도 남는 역사 연구,지원 자금을 마련한다.!
미추홀(고대백제어??)= 수촌리 (공주)
미추= 미즈(mizu) 일본어 =물(수)
홀=골=고을=마을(촌)
의미가 동일합니다. 초기 미추홀 이란곳과 공주(웅진) 수촌리와 연관성은 분명히 있다고 보여지구요.
원래 비류백제가 터를 닦아놓았던 곳으로 한성백제 세력이 이주한건 아닌지 하는 생각도 드네요… 그런데 한편으론 삼국사기 기록인 비류 인천 미추홀 삽질 기록을 부정할수도 없는것이..김부식이 아무리 신라에 우호적으로 기록했다고해도 이미 다 철지난 고려시대에 무슨 이해관계가 있길래 비류에 대한 기록을 거짓으로 기록했을것 같지도 않고…
김용운 교수님이 주장하는 미추홀의 해석과 동일하군요.
먹고살기 힘들쥬
삼국사기 일본서기 중국 문허들과 고고학적인 금석문 어디에 중국사인 백제가 중국과 일본 열도를 지배 했다고 나오는지? ㅋㅋㅋ
응 안나옴 ㅋㅋㅋ
담로=다무로
백제 땅에 대한 중국측 기록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위서 열전: 지다하습(地多下濕), 주서 이역열전: 토전하습(土田下濕), 북사: 토전습(土田濕), 수서: 궐전하습(厥田下濕).
이는 삼국사기에서 말한 미추홀의 토양 즉, 토습수함(圡濕水鹹)과 상당히 유사합니다.
그렇다면 중국측 기록 속의 백제는 삼국사기의 온조백제가 아니라 비류백제를 말하고 있단 얘기가 됩니다. 결국 비류의 자살로 끝나는 삼국사기 백제본기의 기록은 온조백제측에서 남긴 기록으로 분명 비류를 폄하하고 온조에게 정당성을 부여하는 정치적 의도를 갖고 후대에 기술된 것 같습니다. 선생님 강의 들으며 생각이 정리되는 느낌입니다. 감사합니다.
뭔 비류백제입니까.ㅡ 요서의 송양에 도읍한 가칭 비류국의 비류와 소서노는 일찍 죽어 그 신민들이 온조를 모셔와 요서백제가 시작된것입니다.
일본이 나라세운것도 담로중하나 아닌가요?
대표적 친일 언론 조선일보가 왜 옷에 안 맞게 왜 그랬대요? 심심했나? 전두환 정권 때인데...
일본 동남아시아 인들
이예요
일본에 한번도 가 본 적이 없는 사람이군요. 일본에 가면 보통의 한국사람과 닮은 가는 눈을 가진 사람들과 한국사람들과는 다른 구리빛 피부의 동남아 계열의 사람들, 그리고 동남아계는 아니지만 얼굴형이 한국에는 잘 없는 사람들, 혼혈들이 있습니다. 몽골계는 한국보다 적은 것 같고... 아무래도 고려때 몽골이 한반도를 쑥대밭으로 만들면서 몽골인의 씨앗들을 많이 퍼뜨려서 그렇겠죠. 코로나 끝나면 일본일주 한번 해보세요. 사람들의 생김새를 자세히 관찰하면서... 참고로 지금의 도쿄는 옛날 고마군이었는데 고마=고(구)려 입니다. 고구려유민들이 지금의 도쿄도로 이주해서 정착해 살았었죠. 지금도 고구려의 후손들이 대를 이어 제사를 지내고 있습니다.
이 박사님 혀가 조금 길었다면 아주 좋았을 껄 하는 생각이구요..발음이 조금 정확치 않아서 아쉽네요. 절대로 박사님을 공격하려고 하는 의도는 없습니다..
증산도는 아니시겠죠
이덕일 소장님은 정통파 역사학자라고 할 수 있는 분이십니다.
역사의 진실을 밝히기 위해 문헌연구, 현지답사 등을 게을리하지 않으시죠~
기존 개념 버리시고 아메리카 대조선
봐주세요. 17세기이전 해수면 상승의한
지리상 변화. 김종문 고지도 강의.
서울대 천문학 교수 박창범 삼국시대 개기일식자리...
조선일보를 옹호하는 건가요
직전 댓글에서 오타가 있었네요.
이점 양지하시고.
이병도선생을 우습게 보시는거 같은데
저는 그분과 아무런 연관도 없 지만
그분을 그렇게 폄하할정도로 이선생께서 학문이 그렇게 깊고 고매하신가요?
그분이 역주한 삼국사기를 보셨나요?
그 당시 그런 각주를 달아서 역주한 실력은 아마도 이선생이 그분 계하에도 미치지 못할것이라는것을 아시길.....
지식을 사리사욕에 사용하던 놈들인데 뭐 지식따위가 대단한거라고~~~
먼저 인간이 되어야지
근본적인 사고력 결여된 사람이 ᆢ그런 실무적 실력있다 한들 결국 일제 식민 사학 하수인 불과 ᆢ각주 해제 그것도 대학원생 시키면 그만ᆢ아님 자신이 일인 학자 대학원생 수준 인간이었거나 ᆢ그란 실무적 실력보다 방향성 중요 ᆢ당신은 이덕일 교수 책 읽고 하는 소리인가?
이병도는 진짜 근대적 역사학, 즉 본문비판, 편집비판, 역사비판, 문화비판과 같은 선진적 역사연구방식에 무지한 한학자에 불과하죠. 더구나 만주국을 위해 한사군을 한반도에 설정한 일본제국주의사관의 프레임을 권위로 삼은 매국사학자죠. 중국 25사의 조선관련내용도 전혀 설명 못하는 엉터리 학자죠. 중국사에 따르면 백제는 요서에서 건국하고 국초에 백가제해하죠. 삼국사기에 따르면 마한의 지도아래 있다가 마한을 먹지요. 중국25사에 마한과의 외교문서는 5세기까지 나오죠. 결국 비류백제가 마한을 먹고 마한의 이름으로 통치하다가 광개토왕에게 쫒겨 일본으로 가 응신이 됐다는 김성호 학설은 한중일의 모든 사료를 일관되게 볼 때 설명력이 가장 크죠.
이병도의 논문을 한 번 제대로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그 사람은 주장만 요란하게 할 뿐이지,
근거가 아예 없거나 억지논리일 뿐입니다.
당연히 많은 사람들이 그를 우습게 보는 게 당연하죠~
이덕일 소장님을 이병도 따위와 비교하는 건 실례입니다~
이병도는 일제시대에 일본에서 학위를 따고 서울대에서 교수직을 하면서 상당히 친일적인 사학자로 유명해요
환단고기를 이용하시는 분이군요 개수작
환단고기 귀한 줄알아야지. 그 시대엔 지식인들 모두 상식적으로 알고있던 사실. 환국,배달을 얼마나 많이 언급했는데.. 일제강점이후로 매국식민사학이 장악하면서 환빠뇨 폄훼되고 공격 당하지만..
환단고기 비판 가능 하지만 더 황당한 중국 일본 사서들 대해서도 개수작이라 해라 ᆢ개수작아
환단고기를 별로 인용하지 않는 분인데요
어떤부분에서 그러다고 보시는지
광개토대왕비문과 강당사학자가 아닌분들의 저술을 인용한 건데요
당신같은 식민사학에 쩌들은 사람들은
신빙성이 있든 없든 가리지 않고
유사사학이니 환빠니 하며 눈과 귀를가리고
타인까지도 알지 못하게 하죠
우리역사인데 좀 어깨뽕하면 안되나요
일본이나 중국처럼 없는 역사를 쓰는게 아니라 있었던 역사 있는 그대로 쓰자는데 뭐가 극우죠
반론에는 타당한 사유와 논거가 필요한디, 너는 어느놈의 끄나뿔인고?
얼어뒈질 소리하고 자빠졌네. 이런 것이 우라질 개망발을 개수작임.
역사를잘못가르치는교육은배지 말라 강단사학자들은만은각성하길
응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