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골이 당시 정복한 땅을 보면 경기도 강화도 따위 점으로도 보이지 않는 작은 섬에 불과하다. 지금의 강화도에 평지는 대부분 고려말부터 간척사업을 진행하여 조성되었고 고려가 몽골에 항쟁하던 그 당시에는 그마저도 농사를 짓을 만한 땅이 거의 없었다. 그리고 군사가 주둔했던 진영과 방어요새가 있었으며 엄연히 수도를 천도했기에 왕과 그 신하들이 있을만한 궁과 숙식시설을 갖추고 있었다. 그렇다면 이는 결코 작은 수와 규모가 아니었을텐데 당시 농지가 거의 없는 산으로 된 그것도 제주도 1/4도 안되는 작은 당시 강화도에서 어떻게 식량을 얻고 화살, 갑옷과 같은 소모성 군사용 물자를 보급했단 말인가? 몽골은 아시아를 넘어 유럽까지 이르는 세계제국을 건설했었다. 몽골군은 당대 중동문명의 정수로서 철옹성과 같은 성벽을 자랑했던 바그다드 뿐만 아니라 중국대륙의 거대한 황하와 양자강을 넘어 정복했던 다국적 군대로서 세계를 공포로 떨게했던 무소불위의 군대였다. 경기도 강화도로 가는 물살의 폭이 얼마나 된다고 몽골군이 그걸 40년 가까이 넘지 못했다는 것인지 도대체 대한민국 강단에 한국사를 한다는 인간들은 어떤 철면피를 썼기에 학문을 빙자한 대국민 사기질을 지금까지 벌여온건지 참으로 기괴하고 의아스럽다.
강도 강이라고하면 양자강을 뜻하죠. 산동반도부터 양자강까지 수많은 물줄기가 양자강으로 연결되어 강도라 부른거죠. 고려는 대륙남해부터 양자강 황하 하북 만주 연해주 한반도를 아우른 대국입니다. 고구려(고구리),백제,신라 ,대조영의 고구려(대진국,발해), 왕건의 고려(고리) 모두 대단하고 훌륭한걸 알게 됩니다. 우리나라의 역사도 광복되도록 많은 국민들이 교과서로 배운 가짜 역사가 아니라 진실된 역사에 관심을 갖어 주시기바랍니다. 진실된 역사는 우리나라를 더욱더 부국강병의 나라로 올라서게 방향을 잡아줍니다. 1.먼저 요의 위치를 올바로 알아야 합니다. 그동안 우리는 요가 어딘지 몰라 학교에서 배운 역사가 이상하게 느껴지는 부분이 많아도 무어라 반론하지 못했습니다. 진실된 요는 그런 의문점을 풀어줍니다. 요는 태행산맥입니다 황가가 " ㄴ"자로 꺽이는 곳 북쪽에 남북으로 길게뻗은 험한 산맥이 태행산맥이고 요입니다. 고대,중세,근대의 지도가 그 증거입니다. ㅡ근거. 천년전 비석지도 우적도, 대청광여도, 1927년 1949년 중공공산당지도, 1964년 대만군사지도 ㅡ 2.역사의 상식 ㅡㅡㅡ하와 강, 해를 알아야 합니다. 하는 황하 =한수(칸수) 강은 양자강을 뜻함 해는 화하족은 작은 물부터 큰물 모두 해 라하고 우리는 해(창해,동해...)와 수를 구분함.(낙수,사수,회수,한수,패수,살수(현재는 대사하)...등) "황하를 하라고 하라" ㅡ출처 사마천 사기 ㅡ 예날엔 황하를 하라고 한것을 알수 있습니다. 삼국(고구려,백제,신라)은 옛성인 후예의 묘의 후예다. ㅡ출처 삼국사기 백제본기ㅡ 우리나라의 국정역사기관은 원문 해석을 안해놓고, 강단사학은 감추고 외면하고 알려주지않고 있습니다 치우천황의 구리국에는 조이(하북) 구이(하남) 구리(요,여양) 래이(산동반도서쪽) 우이(산동반도동쪽) 도이(양자강하류) 회이(회수) 삼묘(양자강중류, 회수상류,형주)가 있다. 삼묘는 강(양자강),회(회수),형주에 있다. ㅡ사마천 사기 ㅡ 하남위례성 =황하남쪽의 위례성 우리의 역사에서 하는 황하를 뜻합니다. 고구려는 황하를 한수(칸수=간수)라 불렀고 백제와 신라는 황하를 하라 불렀습니다. 그래서 비류와 온조를 한남왕으로 임명한 겁니다. 3.고구려 백제 전성기때 강병이 백만이고 북으로 유 연 제 노를 요 (굴복시킬 요)하고 남으로 오 월을 침 (빼앗을 침)하였다. ㅡ출처 삼국사기 구당서ㅡ 웅장한 우리의 역사기록입니다.대륙과 만주 연해주 한반도를 아우른 대국이란 증거입니다. 백제는 스스로 진 송 양 제 강좌(양자강좌측)을 붙잡고 있다. ㅡ출처 주서 , 북사 ㅡ 백제의 위치를 알수 있는 기록입니다. 진이 강(양자강)을 건너자 고구려와 백제가 찾아왔다. ㅡ출처 진서ㅡ 대륙에 고구려 백제가 있으니 찾아가지, 한반도에 있는 고구려,백제이면 진이 양자강을 건너는 것도 모르고 안다고해도 찾아갈 이유가 없는 겁니다. 신흥국이 강성해져 영역 가까이에 오니 여러가지뜻으로 찾아가 보는 거죠. "당 현종이 사천성 성도로 피난가자 신라가 사신을 보내 위로하였다. 신라는 강(양자강)에서 출발하여 성도에 도착했다" ㅡ출처 삼국사기 신라본기 ㅡ 우리나라 국사편찬회는" 양자강을 따라서"라고 오역을 하여 출발지점을 모르게 써놨죠. 우리나라의 국정역사기관들과 강단사학계에서 우리의 참역사를 감추고 알려주지 않고 있습니다. 송 제 양 진의 수도 말릉(건업=건강)동쪽에 백제의 탄현(침현)이 있고 회수와 사수 사이에 백제의 동명이 있고, 양자강 중류에 백제의 덕안이 있고, 대륙남해에 백제항이 있습니다. 또 백제의 태산이 산동반도에 있고,백제의 숭산이 낙양의 동쪽에 있고,우리나라 상여노래에 나오는 백제의 북망산이 낙양의 북쪽에 있습니다. 그 낙양에 해자와치가 있는 왕성터가 있습니다. 현재는 중공이 우리나라의 유적이라는 증거인 치를 제거한 상태지만 자료사진이 존재합니다. 우리의 참역사는 고대부터 고려까지 찬란하고 광대하고 휼륭합니다. 진실된역사룰 알수 있는 역사유튜버 책보고,우리역사히스토리, 이용훈박사의 찐삼국사를 추천합니다. 우리의 참역사에 관심을 가져주어야 역사도 광복이 되어 우리나라의 방향이 더욱더 부국강병의 나라로 갈 수 있습니다. 우리의 미래를 위해 역사에 관심을 가져주시기 바랍니다. 진실된 역사를... 진실된 역사 광복을 위해.... 진실된 역사로..... 함께 합시다!
1388년 음력 7월 12일 명이 북평에 행도를 설치 (비로소 도착하였음을 알림). 명의 선봉장격인 연왕이 행도를 설치. 연왕은 2년전에도 燕王. 새로운 점령지에서 새로운 燕지역의 시작. 음력 7월 22일 명이 산해위를 설치 (비로소 도착하였고 새로운 요서 요동의 시작) 음력 9월 15일 점령지에 대한 분봉 (秦王,晉王,周王,楚王,齊王,湘王,魯王,潭王,) 출발지~ 접경 전투지역(遼王). 분봉된 9개 지역을 점령하기 1년전의 요서 요동이 그 당시의 요서 요동.
강화도 일부가 2500 평 이라고 하는데 그 당시 2500평이 안되요 이해 되시는분 좀 알려주세요 강화도와 인근의 토지를 용처에 따라 나누다 여기에 지명은 어딜까 〈고종(高宗)〉 46년(1259) 9월에 강화(江華)의 토지 2,000결을 공름(公廩)에 소속시키고, 3,000결은 최의(崔竩)의 집에 소속시켰다. 또한 하음(河陰)·진강(鎭江)·해녕(海寧)의 토지는 제왕(諸王)과 재추(宰樞) 이하에게 차등을 두어 나누어 지급하였다. 1결은 산출된 곡식이 지게로 약 100짐 정도 되는 규모의 토지로 평수로는 대략 5천 평, 쌀 수확량으로는 300말 정도로 추산된다. 따라서 1천 결이면 평수로 약 500만 평, 쌀 수확량으로 30만 말 정도 된다
이런 역사에 무지한 사람들이 가스라이팅을 격으면서 교육을 받은 결과입니다 고려가 군사를 동원하면 40만이상을 동원하는데 전군이 강화도에 들어가서 결사항전 30년을 버티면 삼별초의 군사 최소 30만+식솔 150만=적어도 150만 이상이 30년을 농사지어서 자급자족을할수있어야 하는데 현재의 강화도는 아무리 간척사업을 많이해도 150만이 부대낄 터가 아님 나무로 취사 난방을해야하고 나무로 창과 활을 만들어야하고 활촉 창 칼을 만드는 철광산은 또어디서 ..? 상식적으로샹각해도 답나오는것임
@@TV-qf3pk 어쩔 수 없는 게 아니라...그 강화도가 수도 강화가 아니라는 것이다....합리적으로 생각해 봐라.. 저 좃만한 섬에서 40년을 버텼다? 상식적으로 말이 되는가?? 조선에서 제작 천하고금대총람편도(1666년), 청나라떄 제작된 대청광여도(1778)에 강화 지명이 산동반도에 있다...
인천 강화도가 몽고 침입으로 버틴 곳이라고?? 그 조그만 섬에 무슨 수도가 세워진다고 보냐?? 왕궁 터, 주춧돌이 있기나 하냐?? 말도 안되는 소리 좀 하지 마라. 고려의 수도는 개경이지 개성이 아니다... 마찬가지로 몽고 침입에 40년간 버텼다는 수도 강화도 인천의 강화도가 아니다... 고려사 원문과 지명을 제대로 찾아서 위치를 비정하고 해석하라.
한반도는 당시 고려영토 였으니 여기서 강도는 한반도를 지칭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화도는 일본을 지칭해서 한반도와 일본을 합쳐서 강화도라 칭할 수도 있지 않나 생각해 봅니다. 고려의 본국은 당연히 대륙에 있었고 오늘 날 일본은 조선 중기까지는 왜가 아닙니다. 고려 강도에 있는 송악산이 오늘 날 한반도 개성이라 보여집니다. 원나라가 대륙에 있는 강화도를 침략하지 못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일본은 백제가 망하고 그유민이 건너가서 일본이라부르기시작합니다 왜는 대륙의 하이난섬을 중심으로 해안가에있던 동이족의 별종을 왜라함 이들이 드스리는땅이 임나등 임 임나가 대륙이라는 말임 이왜와 일본은 다름 그런데 일본서기는 왜의 역사와 일본의 역사를 썪어서 일본서기를 만들고 역사를 왜곡하기시작함 자신들이 왜가 아님에도 왜가 자신들이라고 자가당착에 스스로빠져서 ㅋ
@@bamas26 학생 잘 들어요 제가 섬사람입니다 어디부터 설명을 해야하까요 일단 지금의 평야나 옥토는 그대로 생각하면 안되요 불과 100여년전엔 충남 금산옆 강진 나주 광천등 내륙에 포 즉 항구가 있었어요 그말은 지금 해수면이 다르다 입니다 그 결과 조선시대때 전라도 보다 경상도가 곡식 수확량이 많앗데요 그리고 섬은 물이 부족해서 많은 사람이 갑자기 들어가면 먹을 물이 없어요 지금도 섬에 물부족으로 고통받아 육지에서 보급받죠 그리고 왜 의심하냐면 산둥에 역사에 나오는 지명이 다 있어요 강화 교동 견자산등 고려때 피난가 36년 버틴 지역명이 말이죠 이게 우연일까요? 역사책에 나오는 백제성 200개 과연 어디에 있을까요? 근데 우연인지 모르겠지만 중국에 다 있죠 하물며 백제 성씨 집단촌까
고려의 江都는 중국대륙 양자강 에 있습니다~ 그곳에는 고려산 오련산 ... 고려 관련 지형지물이 그대로 남았는데 ~
저도 책보고님 알고 눈이 떠졌네요! 지네들도 왜곡 하다보면 어이가 없겠지! 말이 안되니ᆢ
아 그렇군요 왕릉은 반도 강화에 남기고
.
.살때는 중국 강화에....신기하네여
지금 강화도에서 몽고군을 30년버틸수있다고생각하나? 해수면이지금보다 낫았을것이고 3년포위하고있어도 다아 굶어죽지 고려가 엄청큰나라였기때문에 몽골이 먹지못했다고보면됨
반도의 고려왕릉은 전반기는 반도에는 없읍니다 후기 고려가 대륙에서 밀려나게되서 후기의 왕릉은 일부 있을수있으나 모두 가묘일것입니다
@@bamas26 고려왕릉 대부분이 중국 동부에 있습니다. 한반도에 고려 왕릉 몇 개 없어요
강화도는 지금의 중국땅에 있습니다
몽골이 당시 정복한 땅을 보면 경기도 강화도 따위 점으로도 보이지 않는 작은 섬에 불과하다. 지금의 강화도에 평지는 대부분 고려말부터 간척사업을 진행하여 조성되었고 고려가 몽골에 항쟁하던 그 당시에는 그마저도 농사를 짓을 만한 땅이 거의 없었다. 그리고 군사가 주둔했던 진영과 방어요새가 있었으며 엄연히 수도를 천도했기에 왕과 그 신하들이 있을만한 궁과 숙식시설을 갖추고 있었다. 그렇다면 이는 결코 작은 수와 규모가 아니었을텐데 당시 농지가 거의 없는 산으로 된 그것도 제주도 1/4도 안되는 작은 당시 강화도에서 어떻게 식량을 얻고 화살, 갑옷과 같은 소모성 군사용 물자를 보급했단 말인가? 몽골은 아시아를 넘어 유럽까지 이르는 세계제국을 건설했었다. 몽골군은 당대 중동문명의 정수로서 철옹성과 같은 성벽을 자랑했던 바그다드 뿐만 아니라 중국대륙의 거대한 황하와 양자강을 넘어 정복했던 다국적 군대로서 세계를 공포로 떨게했던 무소불위의 군대였다. 경기도 강화도로 가는 물살의 폭이 얼마나 된다고 몽골군이 그걸 40년 가까이 넘지 못했다는 것인지 도대체 대한민국 강단에 한국사를 한다는 인간들은 어떤 철면피를 썼기에 학문을 빙자한 대국민 사기질을 지금까지 벌여온건지 참으로 기괴하고 의아스럽다.
여기 강화도가~~아니요😊~~산둥반도 쪽~~이라는 주장들이 나오고있소😊
강도 강이라고하면 양자강을 뜻하죠. 산동반도부터 양자강까지 수많은 물줄기가 양자강으로 연결되어 강도라 부른거죠.
고려는 대륙남해부터 양자강 황하 하북 만주 연해주 한반도를 아우른 대국입니다.
고구려(고구리),백제,신라 ,대조영의 고구려(대진국,발해), 왕건의 고려(고리) 모두 대단하고 훌륭한걸 알게 됩니다.
우리나라의 역사도 광복되도록 많은 국민들이 교과서로 배운 가짜 역사가 아니라 진실된 역사에 관심을 갖어 주시기바랍니다. 진실된 역사는 우리나라를 더욱더 부국강병의 나라로 올라서게 방향을 잡아줍니다.
1.먼저 요의 위치를 올바로 알아야 합니다. 그동안 우리는 요가 어딘지 몰라 학교에서 배운 역사가 이상하게 느껴지는 부분이 많아도 무어라 반론하지 못했습니다. 진실된 요는 그런 의문점을 풀어줍니다.
요는 태행산맥입니다
황가가 " ㄴ"자로 꺽이는 곳 북쪽에 남북으로 길게뻗은 험한 산맥이 태행산맥이고 요입니다. 고대,중세,근대의 지도가 그 증거입니다.
ㅡ근거. 천년전 비석지도 우적도, 대청광여도, 1927년 1949년 중공공산당지도, 1964년 대만군사지도 ㅡ
2.역사의 상식 ㅡㅡㅡ하와 강, 해를 알아야 합니다.
하는 황하 =한수(칸수)
강은 양자강을 뜻함
해는 화하족은 작은 물부터 큰물 모두 해 라하고
우리는 해(창해,동해...)와 수를 구분함.(낙수,사수,회수,한수,패수,살수(현재는 대사하)...등)
"황하를 하라고 하라"
ㅡ출처 사마천 사기 ㅡ
예날엔 황하를 하라고 한것을 알수 있습니다.
삼국(고구려,백제,신라)은 옛성인 후예의 묘의 후예다.
ㅡ출처 삼국사기 백제본기ㅡ
우리나라의 국정역사기관은 원문 해석을 안해놓고, 강단사학은 감추고 외면하고 알려주지않고 있습니다
치우천황의 구리국에는
조이(하북)
구이(하남)
구리(요,여양)
래이(산동반도서쪽) 우이(산동반도동쪽)
도이(양자강하류)
회이(회수)
삼묘(양자강중류, 회수상류,형주)가 있다.
삼묘는 강(양자강),회(회수),형주에 있다.
ㅡ사마천 사기 ㅡ
하남위례성 =황하남쪽의 위례성
우리의 역사에서 하는 황하를 뜻합니다. 고구려는 황하를 한수(칸수=간수)라 불렀고
백제와 신라는 황하를 하라 불렀습니다.
그래서 비류와 온조를 한남왕으로 임명한 겁니다.
3.고구려 백제 전성기때 강병이 백만이고 북으로 유 연 제 노를 요 (굴복시킬 요)하고 남으로 오 월을 침 (빼앗을 침)하였다.
ㅡ출처 삼국사기 구당서ㅡ
웅장한 우리의 역사기록입니다.대륙과 만주 연해주 한반도를 아우른 대국이란 증거입니다.
백제는 스스로 진 송 양 제 강좌(양자강좌측)을 붙잡고 있다.
ㅡ출처 주서 , 북사 ㅡ
백제의 위치를 알수 있는 기록입니다.
진이 강(양자강)을 건너자 고구려와 백제가 찾아왔다.
ㅡ출처 진서ㅡ
대륙에 고구려 백제가 있으니 찾아가지, 한반도에 있는 고구려,백제이면 진이 양자강을 건너는 것도 모르고 안다고해도 찾아갈 이유가 없는 겁니다. 신흥국이 강성해져 영역 가까이에 오니 여러가지뜻으로 찾아가 보는 거죠.
"당 현종이 사천성 성도로 피난가자 신라가 사신을 보내 위로하였다.
신라는 강(양자강)에서 출발하여 성도에 도착했다"
ㅡ출처 삼국사기 신라본기 ㅡ
우리나라 국사편찬회는" 양자강을 따라서"라고 오역을 하여 출발지점을 모르게 써놨죠.
우리나라의 국정역사기관들과 강단사학계에서 우리의 참역사를 감추고 알려주지 않고 있습니다.
송 제 양 진의 수도 말릉(건업=건강)동쪽에 백제의 탄현(침현)이 있고 회수와 사수 사이에 백제의 동명이 있고, 양자강 중류에 백제의 덕안이 있고, 대륙남해에 백제항이 있습니다.
또 백제의 태산이 산동반도에 있고,백제의 숭산이 낙양의 동쪽에 있고,우리나라 상여노래에 나오는 백제의 북망산이 낙양의 북쪽에 있습니다. 그 낙양에 해자와치가 있는 왕성터가 있습니다. 현재는 중공이 우리나라의 유적이라는 증거인 치를 제거한 상태지만 자료사진이 존재합니다.
우리의 참역사는 고대부터 고려까지 찬란하고 광대하고 휼륭합니다.
진실된역사룰 알수 있는 역사유튜버 책보고,우리역사히스토리, 이용훈박사의 찐삼국사를 추천합니다.
우리의 참역사에 관심을 가져주어야 역사도 광복이 되어 우리나라의 방향이 더욱더 부국강병의 나라로 갈 수 있습니다. 우리의 미래를 위해 역사에 관심을 가져주시기 바랍니다.
진실된 역사를...
진실된 역사 광복을 위해....
진실된 역사로.....
함께 합시다!
책보고방송,오제성방송보시고 다시 방송하시길 바랍니다.
1388년 음력 7월 12일 명이 북평에 행도를 설치 (비로소 도착하였음을 알림). 명의 선봉장격인 연왕이 행도를 설치. 연왕은 2년전에도 燕王. 새로운 점령지에서 새로운 燕지역의 시작.
음력 7월 22일 명이 산해위를 설치 (비로소 도착하였고 새로운 요서 요동의 시작)
음력 9월 15일 점령지에 대한 분봉 (秦王,晉王,周王,楚王,齊王,湘王,魯王,潭王,) 출발지~ 접경 전투지역(遼王).
분봉된 9개 지역을 점령하기 1년전의 요서 요동이 그 당시의 요서 요동.
지도 를 보면 하음 + 양점 두곳을 합쳐서 지금의 강화군 하점면 으로 ~ㅎ 그리고, 요녕성 심양시 위에 있는 봉천 봉두산 이 하점면에 존재함~ 추론해 보건데 고려의 영토는 발해만 황해 를 내해로 끼고있던 강대한 황제국이 었다
내가 강화도를 가봤는데 기병 1천기만 있으면 하루도 안되서 다 초토화시킬수 있겠구만 뭔 30년? 구라도 적당껏 까야지 한심한 것들 쯔쯔쯔
강화도는 고려의 강화가 아녀요. 고려때 강화는 산둥반도 지명이지 여가 아니라고. 고려가 조선보다 작었는데 어떠케 수도가 4개나 있었겄냐? 그걸 믿는 얘들이 더웃긴다 사천리였던 조선도 수도가 하난데.
식민사학자들 열심이다. 역사팔고 민족팔고 밥줄 떨어질까봐.
고구려 백제 고려는 백만 대군을 운영했던 군사 강국이었다~ 자랑스런 우리역사를 축소 왜곡하지 말자~
한반도의 강화도 고려때는 지금보다 더 좁았을 섬에 10만가구 이상이 50만명 이상이 30년동안 살 수 있었다고 생각하시는가?
지금의 강화땅을 천년을 파보시라 뭐 나오는게 있는지..
식민반도역사조작무리들은 반성하고 광명찾읍시다.
여기가 맞다면 왜? 복원 안할까? 혹시 여기가 아니니 복원할수 없을수 있다.
강화도 일부가 2500 평 이라고 하는데 그 당시 2500평이 안되요 이해 되시는분 좀 알려주세요
강화도와 인근의 토지를 용처에 따라 나누다 여기에 지명은 어딜까
〈고종(高宗)〉 46년(1259) 9월에 강화(江華)의 토지 2,000결을 공름(公廩)에 소속시키고, 3,000결은 최의(崔竩)의 집에 소속시켰다. 또한 하음(河陰)·진강(鎭江)·해녕(海寧)의 토지는 제왕(諸王)과 재추(宰樞) 이하에게 차등을 두어 나누어 지급하였다.
1결은 산출된 곡식이 지게로 약 100짐 정도 되는 규모의 토지로 평수로는 대략 5천 평, 쌀 수확량으로는 300말 정도로 추산된다. 따라서 1천 결이면 평수로 약 500만 평, 쌀 수확량으로 30만 말 정도 된다
河陰은 현재의 江陰을 말하고
서쪽 100리에 鎭江이 있고
남쪽 450리에 海寧이 있습니다. 혹시 강화를 찾더라도 준비되지 않은 공개는 혼란을 초래할수 있음을 조금은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강화도가 우리나라 강화도가 아니니까 가능하지. 에휴 식민사관 ㅉㅉ
몽고군은 배 타고 양자강 건너 월남까지 가고 배타고 일본도 갔는데 강화도를 못 건넜다는 건 .......ㅎㅎㅎㅎ
중국 장두구 한국어 강도 고려서와 알치
강화지명 변천사에는 지금 강화도 역사에서 명칭 1232년 강화군 1377 강화부
조선시대 1895년 강화도 명칭 처음 등장 ㅡㅡ그럼 고려사의 강화도는 어디릴까
지금의 강화도는 조선시대 이전에는 역사에 강화도 라는 명칭이 없었다는 것이다
아시는 분 좀 알려주세여
한반도 지명은 모두 1921년 3월 1일에 개명한 것입니다.
조선시대에도 고려시대에도 역사적 지명은 모두 대륙의 지명을 말하는 것입니다.
거기가 고려의 강화도가 아니니까 그렇지. 미련하다..
KBS 역사스페셜 - 120개의 대제방, 강화평야는 바다였다 / KBS 20010630 방송
고려제국의 땅을 줄여놓아서 그렇지.
여기를 찾아야 한다
신축한 국자감에 공자의 진영을 봉안하다 고려사 원문이미지
세가 권제24
날짜 | 1251년 08월 06일 (음)
8월 갑오 공자[宣聖]의 초상[眞]을 새로 창건한 화산동(花山洞)의 국자감(國子監)에 봉안하였다.
간척지 강화 무슨 바다에 중성을
더 보고싶은데..ㅠㅠ
대박이네 강화도에 유적 궁궐 왕릉 다 남아 있고 강화도에 쌀 많이 나요
ㅁ ㅜ야 국사시간에 졸았나?
고려때 거서 버틸려고 간척까지 한게 기록에 남아 있어요
대박이네
유사역사학
국사시간에 졸았덬 사람들에겐 직방이네
간척해서 강화도 면적 구한뒤 전체 면적당 쌀 생산량 구해도 인구 7만이 소비할 쌀이 안나옴니다 ㅋㄷ
이런 역사에 무지한 사람들이 가스라이팅을 격으면서 교육을 받은 결과입니다 고려가 군사를 동원하면 40만이상을 동원하는데 전군이 강화도에 들어가서 결사항전 30년을 버티면 삼별초의 군사 최소 30만+식솔 150만=적어도 150만 이상이 30년을 농사지어서 자급자족을할수있어야 하는데 현재의 강화도는 아무리 간척사업을 많이해도 150만이 부대낄 터가 아님 나무로 취사 난방을해야하고 나무로 창과 활을 만들어야하고 활촉 창 칼을 만드는 철광산은 또어디서 ..? 상식적으로샹각해도 답나오는것임
산동에도 오련산 견자산이 있지...
고려에서 홍건적 주구들이 왜이렇게 날뛰었나?
고려 만리지국
좋은영상 잘봤습니다 역시 고려는 이름값하네요
유학자들 얼마나 썩어빠졌으면.
섬으로 천도하는게 제 정신입니까? 배수진은 가망없는 싸움에 죽을 각오로 임한다는 건데...그 이후의 무신정권의 행적과 하나도 맞지 않습니다.
40년 궁궐터흔적 하나 없는 강화도가 강화로 둔갑한 현실....고려강화는 다른 곳에서 찾아야죠...
그때는 어쩔수없어죠
@@TV-qf3pk 어쩔 수 없는 게 아니라...그 강화도가 수도 강화가 아니라는 것이다....합리적으로 생각해 봐라.. 저 좃만한 섬에서 40년을 버텼다? 상식적으로 말이 되는가?? 조선에서 제작 천하고금대총람편도(1666년), 청나라떄 제작된 대청광여도(1778)에 강화 지명이 산동반도에 있다...
강화도 서쪽으로 돌아 들어가면 되는데 어떻게 이걸 막아! ㅋㅋ
강화도가 그렇게 배가 드나들기 어려웟다면 당연히 당시 강화도에서 배로 물고기 잡아 사는 사람들도 없어야 하지!
@@예언자-d5t 군사적 상륙이랑 물고기 잡는거랑 같나 ㅋㅋ
@@안녕봄안녕 그니까 당연히 강화에 배 타고 고기 잡는 어부가 존재 할 거고 그렇다면 같은 방식으로 강화로 들어 갈 수 있다는 거잖아! 생각 좀 하고 토 달지?
강화도는 지금의 한반도 전체다 몽골을 피해서 대륙에서 한반도로 피신한거지 멍청한 사람들 ㅋ
고려시대 강화도는 산동반도
인천 강화도가 몽고 침입으로 버틴 곳이라고?? 그 조그만 섬에 무슨 수도가 세워진다고 보냐?? 왕궁 터, 주춧돌이 있기나 하냐?? 말도 안되는 소리 좀 하지 마라.
고려의 수도는 개경이지 개성이 아니다... 마찬가지로 몽고 침입에 40년간 버텼다는 수도 강화도 인천의 강화도가 아니다...
고려사 원문과 지명을 제대로 찾아서 위치를 비정하고 해석하라.
45년 버틴 강화도 근데 선조는 강화도로 도망안가고 만주로 도망갔나? 근데 곡식은 버틸만하게 생산됐나? 내 생각엔 개구라다
늦어서... 강화도로 가려했는데. 늦어서 남함 산성으로 국사시간에 나와요
그때도 강화쌀 유명 했다는... 한국 사람이신가요?
@@bamas26 얘야 그건 병자호란 이때두 하루만에 개박살 결국 남한상성으로 도망친겨 임진왜란
강화도 고려수도는 구라야. 중국동부 지역 강도가 진짜 고려 강화
일제 식민사학으로 역사왜곡을 받는 21세기 강단사학자들. 없는걸 있는것 처럼 만드는게 진짜 엄청난 사기네. 영상물 잘못 만들었다고 시인하고 사과영상 만들어라.
뭔 지금의 한반도 강화도에서 어떻게 막냐 ㅋㅋㅋㅋ 소설을 써라
이 강화 그강화가 아닌건 지나가는 삼척동자 도 알고만 이런 헛소리 하는 방송도 있네요
교육방송이 불확실한 역사를
거기는 강도가 아니라 강화도
한반도는 당시 고려영토 였으니 여기서 강도는 한반도를 지칭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화도는 일본을 지칭해서 한반도와 일본을 합쳐서 강화도라 칭할 수도 있지 않나 생각해 봅니다.
고려의 본국은 당연히 대륙에 있었고 오늘 날 일본은 조선 중기까지는 왜가 아닙니다.
고려 강도에 있는 송악산이 오늘 날 한반도 개성이라 보여집니다.
원나라가 대륙에 있는 강화도를 침략하지 못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일본은 백제가 망하고 그유민이 건너가서 일본이라부르기시작합니다
왜는 대륙의 하이난섬을 중심으로 해안가에있던 동이족의 별종을 왜라함 이들이 드스리는땅이 임나등 임 임나가 대륙이라는 말임 이왜와 일본은 다름 그런데 일본서기는 왜의 역사와 일본의 역사를 썪어서 일본서기를 만들고 역사를 왜곡하기시작함 자신들이 왜가 아님에도 왜가 자신들이라고 자가당착에 스스로빠져서 ㅋ
천혜요새? 물들어오면 배로 상륙하면 끝 머가 요새냐? 오히려 물자 부족으로 다 굶어죽지
한강을 통해 서울로 들어오는 길목에 있는 요새긴하죠... 그런데 내륙에서 오는 방향은 방어가 잘 안됨
@@박종민-e7z 고려시대에 무슨 요새? 화살로 멀 어쩜? 바다를 암?
지금도 강휴ㅏ쌀 많이 나고 유명햐요
강화도 커요 안에 대학이 2개나 닜어뇨
@@bamas26 학생 잘 들어요 제가 섬사람입니다 어디부터 설명을 해야하까요 일단 지금의 평야나 옥토는 그대로 생각하면 안되요 불과 100여년전엔 충남 금산옆 강진 나주 광천등 내륙에 포 즉 항구가 있었어요 그말은 지금 해수면이 다르다 입니다 그 결과 조선시대때 전라도 보다 경상도가 곡식 수확량이 많앗데요 그리고 섬은 물이 부족해서 많은 사람이 갑자기 들어가면 먹을 물이 없어요 지금도 섬에 물부족으로 고통받아 육지에서 보급받죠 그리고 왜 의심하냐면 산둥에 역사에 나오는 지명이 다 있어요 강화 교동 견자산등 고려때 피난가 36년 버틴 지역명이 말이죠 이게 우연일까요? 역사책에 나오는 백제성 200개 과연 어디에 있을까요? 근데 우연인지 모르겠지만 중국에 다 있죠 하물며 백제 성씨 집단촌까
@@bamas26 야 너 중국넘이지? 이래서 국적기 표기 의무화 해야됨
동내 이장집 정도를 가지고 생쇼 수천년 수억년 된것도 아니고 흔적도못찾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