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화 꽃말은 어머니의 사랑입니다. 따뜻하네요 그리고 댓글에 모카씨 아니면 모카골드 분명 나옴 목화 보급 100년 만에 조선 전체 퍼져 백성 모두가 따뜻하게 입을 수 있었습니다. 문익점의 손자로 알려진 문래는 실을 짜는 물레의 원래 이름이라하며 검색하면 몇몇은 그렇게 확인됩니다. 또 그의 형제 문영은 무명의 원래 이름이라는 설만 존재합니다. 지금의 문래동은..
그때문인가? 선조들로부터 가문에 내려오는 얘기를 보면 '신하는 두임금을 섬기지 않는다'는 선조의 명(?)덕에 조선시대에는 벼슬에 오른자가 없다는디.. 왕후의 가족으로 신하에 오른이가 하나 있는데 가문에서도 개차반으로 평가받는.. 뭐 어디까지나 구전이라 확인할 길을 없음..
무명도 무명이지만 목화가 서민들에게 싼 값으로 널리 보급되어서 더 많은 가난한 백성들이 겨울에 솜을 누벼서 옷도 따뜻하게 입을수 있고 이불도 따뜻하게 덮을수 있게 돼서 너무 고마운일이였다고 봐요 언뜻 들은 얘기로는 그전에는 무명이 귀해서 일반 백성들은 겨울에도 삼베옷을 입었다고 들었어요
조선은 매년 면포를 일본에 엄청 수출했지만, 고려시대만 해도, 고려는 일본에서 면포를 수입했습니다. 한반도 와 일본열도는 삼국시대와 통일신라, 고려시대때에 면화가 일부 지역에서 소량으로 생산했습니다. 일본에서는 면화를 지배해서 면포를 만들어 한반도에 수출했는데 통일신라, 고려가 수입했죠.
조선중기 이전까지도 우리나라는 여자가 시집가는 것이 아니라 남자가 장가들어 사는 모계사회 문화였기때문에 문익점의 집은 장인어른집과 가까웠고 그래서 장인이 목화씨 심는 일을 도왔던겁니다 남자들은 친아버지 보다 장인과 더 가깝게 지내곤 했습니다 장가 들어 산 세월이 더 길었으니까요
호치민이 목민심서를 좋아해서 항상 옆에 두고 봣다고 이 나라 어느 학자가 씨부리고 다니다가 호치민박물관인지 뭔지 거기서 근무하는 사람이 중국이 일본이 역사왜곡한다는 소리말아라~호치민은 목민심서를 몰랏다고 애기해 개망신당함! 근데 그 정부서 호치민고향에 길닦아줌~물론세금으로
삼국시대부터 목화를 재배하긴 했는데 잘 자라지 않아 소량만 수확이 가능할 만큼 귀해서 귀족과 부자들만 솜옷을 입고 솜이불을 덮었다고 함 왕족과 귀족들은 비단천에 솜을 넣어서 누벼서 옷을 만들어 입었음 이불도 비단에 솜을 넣어서 누벼서 만들어 사용 또 비단실과 무명실을 섞어서 옷감을 짜서 옷이나 이불을 만듦
중국은 위치상 실크로드를 통해 외국과 무역을 많이 해서 찬란한 역사를 꽃피울수 밖에 없었음 지리적 위치가 그럼 잘나서 그런게 아니고 우리가 일본에게 문화를 전수해준것과 같은거임 근데 우리는 중국을 고맙게 생각했으나 일본은 우리의 뒤통수를 쳤지 그리고 중국과 한국은 서로 문화를 주고 받으며 발전하는 관계였으나 우리는 일본에게 주기만 하는 식이였지요
제일 오해하고 있는 내용은 우리나라가 문익점때부터 처음으로 면화를 사용하게 됐다는 내용이다 이미 언제인지 모르지만 신석기 시대부터 인류는 천을 만들어 썼다 직조하는 도구들이 발견됐기때문이다 솜을 모아 실을 만들고 실로 천을 짜서 옷을 해입었던 것이다 그러니까 꽤 오래전부터 면화를 이용해 옷감을 사용했고 솜이불을 덮었다는 거지 원나라가 세계를 정복하다보니 그동안 우리가 심던 면화보다 더 품질이 좋은 목화였던거지 우리가 문익점 이후부터 처음으로 면화를 사용한게 아니다
목화 꽃말은 어머니의 사랑입니다. 따뜻하네요
그리고 댓글에 모카씨 아니면 모카골드 분명 나옴
목화 보급 100년 만에 조선 전체 퍼져 백성 모두가 따뜻하게 입을 수 있었습니다. 문익점의 손자로 알려진 문래는 실을 짜는 물레의 원래 이름이라하며 검색하면 몇몇은 그렇게 확인됩니다. 또 그의 형제 문영은 무명의 원래 이름이라는 설만 존재합니다. 지금의 문래동은..
밀수범이 아니라 친원파 역적반란도당 이었다니.. 도둑이 아니라 개새끼라니..
???
백성 전체가 따뜻하게?? ㅋㅋㅋ 좆선이 어떤나라인지 모름?
꽃말은 조선시대부터 있던거임?? ㅋㅋㅋ
@@김동선-d7h 아뇨 지금의 꽃말이요 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어릴때 문익점 생가 근처에 살았습니다.. 보다가 문득 그 행복한 기억이 떠오릅니다..
그리운 그 시절이 문득 떠오르네요 물도 맑고 공기도 좋았는데.. 경상남도 산청..
어딘지 몰라 검색해봤는데 너무 좋아보이네요 아니 근데 간디고등학교...? 눈에 확 들어오네요 ㅎㅎㅎ
단성 사셨나 보내요
전 자주 근처를 지나가지요
고려면 1천 넘었는데 무슨 니가 문익점 집애서 살아 ㅋㅋㅋㅋㅋ 구라도 머리가 좋아야 치지ㅋ 콘크리트 아파트도 천년안에 무너진다ㅋ
@@관운장KOR 다시 읽고 오세요 ㅋㅋㅋㅋ 다른 사람한테 욕하기 전에 읽은걸 제대로 이해했는지부터 확인 하셔야죠 ㅎㅎ
@@관운장KOR난독증인가..
사실, 문익점은 줄타기엔 재주가 없었음... 정몽주 쪽에 붙어 이성계일파에게 당할 뻔 했지만... 목화씨는 문익점이란 이미지와 소극적인 태도 덕에 조선 때도 나름 대우 받았음. 역시 한 우물만 파는게 진리...
후대에 여러 야사를 통해 인정받았더라구요 ㅎㅎ 정치는 아닌 거로
그때문인가?
선조들로부터 가문에 내려오는 얘기를 보면
'신하는 두임금을 섬기지 않는다'는 선조의 명(?)덕에 조선시대에는 벼슬에 오른자가 없다는디..
왕후의 가족으로 신하에 오른이가 하나 있는데 가문에서도 개차반으로 평가받는..
뭐 어디까지나 구전이라 확인할 길을 없음..
문익점이 가져온 목화씨는 추위에 강한 개량종이라고 들었습니다만
목화로 만든 옷감이 무명인데 문익점때 처음 도입된것이 아니라 고구려시대때부터 있었다고 들었어요
그게 맞나요?
개량종은 명확하지 않아 넣지 않았어요
영상에도 넣었지만 백제 면직물도 목화속 식물 초면으로 만들었다고 추정하네요 몰랐지만 만들면서 알았어요
제가 기억하기로는 전에 들어온 종은 강남쪽에서 들어와 추위에 약해 죽었고.. 문익점때 들어온 면호씨는 상대적으로 추위에 강해서... 한반도에 자생하게 되었다고 알고 있습이다
@@뿌리깊은나무-d9z 비슷해요 아마 그 전에 들어왔던 건 인도산으로 추정합니다 추위에 약할 수 밖에 없죠 댓글 고마워요
그 전에 인도산 목화씨가 들어왔다는 기록이 어디있습니까? 능산리에서 발굴된 면직물도 백제에서 사용되었다는 것이지 목화를 재배했다는 기록은 없습니다. 수입품을 사용한 것인지 재배한 것인지 확인되지 않습니다.
무명도 무명이지만 목화가 서민들에게 싼 값으로 널리 보급되어서 더 많은 가난한 백성들이 겨울에 솜을 누벼서 옷도 따뜻하게 입을수 있고 이불도 따뜻하게 덮을수 있게 돼서 너무 고마운일이였다고 봐요 언뜻 들은 얘기로는 그전에는 무명이 귀해서 일반 백성들은 겨울에도 삼베옷을 입었다고 들었어요
우리 국사 선생이 문익점은 밀수를 한 도둑놈이라고 하더니 아니군
밀수아님 !
국사생이 매국논가 보네. 국민에 헌신한 문익점을 매도하는거 보니…
전라도라면 그럴수있음.
중국에서 봤을땐 그럴수있죠
그 선생이 전교조 친중 친북파셨군요
뭐 쭝궈린의 관점에서 보면 밀수꾼 맞기는 한데...
국사선생이 어디출신인지...
왜놈들이 안중근 의사를 테러범이라고 욕하는거와 다를 바가...
여하튼 거짓이라니 밀수범 누명은 벗었을 지 몰라도 그쪽 국사선생의 생각은...
시에서 주머니에넣어왔단게 와전되 붓으로 둔갑. 암튼 쌀쌀해지는계절 따스한옷감을준 문샘 감사합니다
가져온것도 아니라던디
님이 입는 옷은 공장에서 만들어집니다;;
문익점의 목화는 그 후 그다지 사용되지 않았어요. 우리나라 면은 미국의 육지면이 대부분이죠
요즘은 기능성 나일론 소재나 오리털 넣은 파카를 대부분 입던데요
가져온거 맞음
진양정씨 중시조 정천익입니다^^ 파이름은 까먹었네요.;;;;
와 중시조였네요 진양 정씨 메모
목화덕분에 문익점의 인기가 너무 좋아서 조선 태종때 반란 가능성 조금이라도 있는 사람들 모조리 숙청하는 과정에서 문익점은 절대 못건드렸음. 사실 정치적으로 보면 문익점과 태종은 그렇게 친한 사이가 아니었음에도 못건드림.
어쨌든 그당시로서는 파격적으로다가
문익점 선생님이 목화씨를 가져와서 심었다는 것과 그로인해 옷을 만들어 입었다는 거 아이가!
경남 산청군 신안면 안봉리 안봉이 문익점 생가입니다!
맞습니다 훔쳐오지 않았다! 당당하다
혹시 bgm이 뭔가요?
서글픈 봄을 노래한다 뮤팟 무료곡이요
뭐..이래저래 우리나라에 들여온건 맞네요..
그 의도가 어찌됐든 결과는 좋은거자나요~😅😅
참 멋지신 분
가져온 건 문익점이지만, 실재로 재배해 키워낸 건 그 장인이란 얘기네.
네 두분 다 대단한 분이시죠
문익점할아버지는 당시 고려말최고부자였고(재벌)이였고 그시대 목화씨는 밀수품목이 아니였어요
조선건국을 반대하여 죽을뻔했지만 그시대 최고 재벌이라서 그리고 이성계를 아끼고 이뻐해주신
할머니가 문씨여서 살았습니다
어릴적엥 교과서로 배운거니 교육청을 압색해라
반란군 역적으로 가르쳐야
무슌소립니꽈.. 적폐로 낙인찍고 교육부장관 쇼숑해야쥐요 훠훠
근데 이내용도사실 아닐수있자나
그의 장인보단 목화의 장인 ㅋㅋㅋㅋㅋ
아이고 웃어줘서 고맙습니다
오늘도감사하며 목화커피를 마십니다
전 목화빵
모카 ㅋ
😂😂
조선은 매년 면포를 일본에 엄청 수출했지만, 고려시대만 해도, 고려는 일본에서 면포를 수입했습니다. 한반도 와 일본열도는 삼국시대와 통일신라, 고려시대때에 면화가 일부 지역에서 소량으로 생산했습니다. 일본에서는 면화를 지배해서 면포를 만들어 한반도에 수출했는데 통일신라, 고려가 수입했죠.
도움되는 댓글 너무 고마워요
@@역사일출 일본의 면화재배는 17세기라고 나오는데 통일신라 고려가 수입했다는건 거짓같네요
일본 면이 고려때 수입되었다? 기록 확인했나요?
@@로벨리아-n6j 이이화 역사학자의 저서에 나왔습니다. 또한 발해 사신이 일본에 갔을때에 일본 덴노가 발해사신에게 솜을 하사한 기록도 봤구요.
일본에 면직법을 전수해준게 우리나라인데?
장인어른 아니었으면 실패로 남았을ㅋㅋ
그는 진짜 장인이었어요
조선중기 이전까지도 우리나라는 여자가 시집가는 것이 아니라 남자가 장가들어 사는 모계사회 문화였기때문에 문익점의 집은 장인어른집과 가까웠고 그래서 장인이 목화씨 심는 일을 도왔던겁니다 남자들은 친아버지 보다 장인과 더 가깝게 지내곤 했습니다 장가 들어 산 세월이 더 길었으니까요
그렇지 .. 훔쳐올리가 있나.. 여하튼 못된것들이 역사왜곡 했네
중국에서 훔쳐왔데 😢
호치민이 목민심서를 좋아해서 항상 옆에 두고 봣다고 이 나라 어느 학자가 씨부리고 다니다가 호치민박물관인지 뭔지 거기서 근무하는 사람이 중국이 일본이 역사왜곡한다는 소리말아라~호치민은 목민심서를 몰랏다고 애기해 개망신당함! 근데 그 정부서 호치민고향에 길닦아줌~물론세금으로
@@미니-q4g 좌파 시인 고은 이란 자가 망상으로 만들어낸 소리 라더군요. 호치민이 목민심서를 좋아했다는 개소리.
이런거 만들때 자료의 출처를 밝히세요 그래야 객관성이 올라갑니다
알려진 우리 역사서의 이야기인 고려사, 조선왕조실록의 이야기는 따로 출처가 필요없다고 생각합니다 짧은 1분에 방해만 될 뿐이죠
개인의 기록이나 야사는 설명을 합니다
그럼 목화솜 들여오기전
추운 겨울에 무얼 입었을까?
입긴 했지만 비쌌죠
귀족들이나 부자들은 비단옷을 입었고 동물의 가죽(소가죽을 많이 사용 했다함)이나 털로 옷이나 이불을 만들어 쓰기도 함 서민들은 겨울에도 그냥 삼베옷을 여러겹 겹쳐 입었는데 추위를 견디지 못해서 얼어죽은 사람들이 많았다고 해요
삼국시대부터 목화를 재배하긴 했는데 잘 자라지 않아 소량만 수확이 가능할 만큼 귀해서 귀족과 부자들만 솜옷을 입고 솜이불을 덮었다고 함 왕족과 귀족들은 비단천에 솜을 넣어서 누벼서 옷을 만들어 입었음 이불도 비단에 솜을 넣어서 누벼서 만들어 사용 또 비단실과 무명실을 섞어서 옷감을 짜서 옷이나 이불을 만듦
어쨌던 목화씨는 문익점이네
네 맞습니다 ㅎㅎ
왜? 문익점을 깎아 내리죠? 무슨 원수가 졌나.?
고마운 분을 제가 감히? 아닙니다
붓자루 안에 넣어왔다고 배웠는데 아닌가 보네요ㅋㅋ
매국 친원파 반란역적 도당
야사의 기록들이 때로 진짜처럼 알려지는 경우가 있죠
역사 배울때 든 생각 씨바 넓고넓은 땅덩이서 홈치려면 얼마든지 훔치고 돈몇푼 주면 충분한것을 몰래 숨겨서 가져온것이라고 배울때 어린 나이였지만 개소리라 느꼈다
역적인 것은 안비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중국애들이 원래 잘 안줘요 티벳에도 문성공주가 누에 몰래 가져가고 상추씨도 통제가 심했죠
나도 같은 생각..
@L.QuiNes 등신 그넓은 재배지에서 목화씨 빼돌리기 힘들정도라 생각하다니 바보냐 아님 바보인척하는거냐 눈에 불을켜고 잡고 단속해도 안잡히는게 도둑들인데 니 대가리는 가능할걸로 보이다니 대단할 따름이다
그래도 누군가 목화씨를 가져오지않았다면 그걸로 연구한 장인도 없었겠죠^^;
맞습니다 모두 훌륭한 분이라고 생각해요
역시나 천익이 최고다!
역적놈이었구나
안녕하세요 남평 문씨 중조상 문익점님의 23대 후손 문성민입니다...
감사합니다.
ㅎㅎ 고마워요
오타, 남평으로❤
@@joomoon1651 문씨 남편이라고 하신 것 같은데....
@@역사일출 ?
남평
고추도 마찬가지임 고대에 한반도에도 고추는 있었으나 다량생 고추가 임란후 들어온거임
맞습니다 고추도 함께 들어왔어요
문익점 선생님 덕분에 우리가 지금 모카커피를 저렴하게 마실수 있는거다
😂😂😂😂😂😂😂
도매니져 ! 어딨어 !
문익점 선생님 덕분에 우리가 지금 솜사탕을 저렴하게 먹을 수있는 것임..ㅋㅋ
저거 내가 가져온 건데 .... 그때 포청천 하고 전조한테 걸려서 디질뻔 했는데 ㅠ
네?
당시의 목화재배 현황을 연구하여 실체적 진실을 찾을 필요가 있다고생각합니다.
비단에 흰옷을 입은 지가 언젠데 저 때 비로소 목화씨를 들여왔다는 건지...의아스러웠었음.
그 이전 삼국시대도 목화가 있긴 했는데 우리나라에서 재배가 까다로운 아열대지방 목화씨만 있었고 문익점이 들여온건 개량종으로 재배가 잘 되었다고 해요
말이 안되죠 우리 의복이랑 고대그리스 의복을 보면 수준차이가 심한데 그런 나라의 후손이 면직물이 없었을까
@@user-rq8rh3si3m문익점이 개량종 목화를 들여오기전부터 베틀도 있었고 누에고치에서 실을 뽑아 비단도 만들고 모시와 명주실을 혼합해 천을 직조해서 귀족들의 옷도 지어 입었다고 해요
인생은 문익점처럼
덕분에 모카라떼 잘 마시고 있습니다
조세호 초상화가가 왜 나오노???
가져온건 사실이니 씨앗이고 잘 가꾸는이가 있으니 😊
삼국시대에도 솜옷을 입었다
수입해서 가져온 확률이 높습니다
양털 로 솜 만들수 있죠.
목화 솜이 훨씬 싸죠.
요즘으로보면 산업스파이인가
숨긴 기술이 아니니 스파이는 아니죠
@@역사일출도둑질은맞죠
끄며진 이야기라길레 붓뚜껑이 아니라 똥구멍에 넣어서 밀수 했다고 예상 했는데 흠
사탄도 울고 가겠네요 엉덩이였음... 고려 항문에 힘 쓴 문익점이 됐겠네요
잘못된. 내용입니다
세종의 사제문과 세조의 사제문에
3년 유배사실을 실었읍니다
그리고 이황 남명의 대학자도 이를 기록하였읍니다
그리고 고려사는1413년 태조실록입니다
우리나라 역사를 보면서 삼우당 선생이 저평가 된 사항은 고려사람으로 조선 개국을 반대하였기 때문입니다
솔직히 식물 씨앗 하나 못들고와서 붓통에 넣어왔겠냐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라 반은 구라다.
우린 구라의 역사를 보고 꿈꾸니
우리나라 최초의 산업스파이...
산업스파이 - 다른 기업의 기밀 정보를 입수하여 고의적으로 유출하는 사람
널린 목화씨였습니다 금지품목도 아니었구요
최고의 산업스파이는 최무선이었죠
아직도 이거짓말이 통해 전세계가 우리나라이다 이것이 팩트 인데
한 단어로 요약: 밀수꾼
역시 장인은 장인이다
장인은 정말 대단하죠
이수지가~기황후였어?? 환생?
ㅎㅎㅎㅎㅎ
정천익선생의 노력이 많이 알려지지 않은 듯
맞습니다 장인의 노력이 덜 알려졌죠 진짜 장인인데
모카씨 모카골드
어허~
정천익 😊😊 더큰 도둑놈
문익점 😮😮 목화씨 도둑놈
목화씨 장인어른 정천익 😊😊😊😊
❤ 고려시대 기황후 😮 원나라 공민왕 😊😊
저 뻥 안치고 문익점니의 조상이에요
뭐든, 목적의식이 분명한 사람은 뭐라도 해낸다는 교훈?
Si dal 내가 국사시간에 배운것 중에 도대체 사실인게 있긴하냐?
도대체 뭐가 진실인지 모르겠네.
이승복의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도 꾸며낸 이야기라 하고,
이 스토리도 그렇고, 또 여러 이야기가 후대에 만들어진 이야기...
ㅎ 우리 한테 좋은것만 믿자구요 ㅎㅎㅎㅎ
문익점이 원나라에서 개량종 목화씨를 들여온것은 맞는데 붓대롱에 숨겨 들어올 만큼 원나라의 감시가 있었던건 아니었다고 해요
공산당이 싫어요 하지도 않았는데 어린애를 죽였으니, 빨갱이들이 진짜 악날한 인간들인거죠.
보따리상 항문에 숨겨 들어왔다는……
네?
만화인물한국사 애니에서봐습니다 전혀 몰랐내요 배우고갑니딘
기분 좋은 댓글이네요 고마워요
그걸 밀수업자 라고 하지.
90년대엔 음악 문익점도 있음.
왜 왕족사를 역사라고 하나요. 문명 문화 건축 예술등등 이런게 역사입니다.
ㅅㅂ 도데체가 뭘 믿어야 하는건지
ㅎㅎㅎ 기록으론 주머니에 넣어 왔다 가 맞습니다 이걸 믿으세요 어려우시면 검색해보세요~
부민후 문익점...백성을 추위에서 구한 명문가의 고려 충신!
위인전은 읽을 필요가없다
백시대때 발견했다고 재배를 한건아니고 수입해서입은 거다 재배해서 입은건 문익점이 맞다
그시대 밀수가 없었겠나 ㅋㅋㅋㅋㅋㅋ 지금처럼 국경에 철조망 두른것도 아니고
ai 로 읽는거 듣기 힘들다 😢😢
어색하죠 최대한 어색하지 않게 노력 중입니다 고마워요
사진이 항문익점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역사를 다시 배워야 하는가...
조금 다르게 알고 있는 몇몇 역사들이 있잖아요 행주대첩에 백성들이 참여했다거나 살수대첩이 수공으로 알려져있는 그런 것들
하지원 주인공이던 기황후나오는 드라마. 진짜 어이없더라.
왜곡됐죠 ㅎㅎ
임진왜란 이후, 국내 유입되었다는
고추도 마찬가지입니다.
고춧가루로 버무린 김치는 최소 1천년이 넘습니다.
한반도의 야생고추는 적어도 70만년 이상되었으며,
중공 백제의 유민들은 고춧가루로 담근 김치를 담궈 먹고 있었습니다.
.
라틴어로 매운걸 피카라고 하는데 뺄갛다는 뜻입니다 기원은 그 보다 더 오래됐을 겁니다
@@user-rq8rh3si3m 라틴어 알지도 못하면서 헛소리 하네. 라틴어로 매운건 칼리둠 이나 푸루스 라고 하지 피카 라고 하지 않는다.
결국엔 밀수 아냐? 중국이 우리보고 베낀다고 화내는데 이런 거 보고 자랑스럽다고 교과서까지 실리고. 내로남불 오지네.
중국은 위치상 실크로드를 통해 외국과 무역을 많이 해서 찬란한 역사를 꽃피울수 밖에 없었음 지리적 위치가 그럼 잘나서 그런게 아니고 우리가 일본에게 문화를 전수해준것과 같은거임 근데 우리는 중국을 고맙게 생각했으나 일본은 우리의 뒤통수를 쳤지 그리고 중국과 한국은 서로 문화를 주고 받으며 발전하는 관계였으나 우리는 일본에게 주기만 하는 식이였지요
밀수 의 뜻을 몰라서 이런 개헛소리 하나?
밀수라는건 정부가 금지하는 물품을 가지고 국경을 넘는걸 말한다.
목화를 수출하는걸 원나라가 법으로 막은적이 없고, 고려에선 당연히 수입하는걸 법으로 막은적이 없는데, 어떻게 밀수가 성립되는가?
@@davidjacobs8558 아무도 안막는데 붓통에는 왜 숨긴거야? 그냥 싸이코라서 그런거야? ㅋㅋㅋ 헛소리하고 자빠졌네. 설마 교과서에 실린 내용을 모르쇠로 나갈 건 아니지?
@@davidjacobs8558 개소리하고 자빠졌네? 그렇게 당당하면 왜 붓통에 숨겨서 들어왔냐? 국뽕에 취하는구나.
최초의 밀수
제일 오해하고 있는 내용은 우리나라가 문익점때부터 처음으로 면화를 사용하게 됐다는 내용이다
이미 언제인지 모르지만 신석기 시대부터 인류는 천을 만들어 썼다
직조하는 도구들이 발견됐기때문이다
솜을 모아 실을 만들고 실로 천을 짜서 옷을 해입었던 것이다
그러니까 꽤 오래전부터 면화를 이용해 옷감을 사용했고 솜이불을 덮었다는 거지
원나라가 세계를 정복하다보니 그동안 우리가 심던 면화보다
더 품질이 좋은 목화였던거지
우리가 문익점 이후부터 처음으로 면화를 사용한게 아니다
비단, 모시, 양털 은 훨씬 전부터 당연히 있었죠.
외국에 팔려가서 봉지팔아 성공한 기황후두고 자랑스럽다며 드라마까지 만들고...참 낯뜨거웠었지.
산업스파이...
산업 스파이.. 까진 아니고 ㅎㅎ 반출금지가 아닌데요?
요즘같으면 중국산 미확인 식물종자 밀수혐의로 체포
지금과 비교가 되질 않지만 만약 비교하자면 로열티를 내야하나
이분덕에 커피를마시지
외국인도 그렇게 좋아한답니다 아이유는 밥 대신..
남평문씨가 진짜 인재가 너무 많음
문씨도 인재가 많죠
죄인도 있나요?
@@Hong_to 업슴돠
@@user-tz4pq1kk1g모룹니돠 훠훠훠
@@Hong_toㅋㅋㅋㅋㅋㅋ
우리가 깝훼목화를 마실수있는 EU
나라에서 시키지도 않은 밀수꾼이 왜 위인???
온나라 품종 다 쌔벼 오면 위인전에서 추앙받것소?
불법은 아니잖아요 ㅎㅎ
역사는 기록하고 . 한국이라는 나라?도 기록한다 ..역사를 왜곡한자 망한다!!
김형곤
중국산.....
결국 라떼는 🐕 풀뜯어먹는 역사를 배웠다는
얘기군... 짜증난다 정말. 😡😡😡
외에 많아요 행주산성 행주치마나 살수대첩 등등
그냥가져온거는 팩트
반출금지가 아닌 것도 팩트
@@역사일출 채널장이 나서면 어떡해요
@@user-6le9ux5 팩트로 댓글 쭉 달리면 재밌겠다 생각해서... ㅎㅎ
목화가 없었겠냐? 주로 귀하게 수입하다가 대규모 재배를 시작했다는거지. 고려땅은 지금의 한반도에 국한되지않는다.
맞습니다 그거때문에 아프리카에서 노예를 대규모로 들여왔고
산업혁명에 성공한 남한과 노예 플랜테이션산업에 의전하던 북한 사이 갈등이 생겨 일어난 전쟁이 6 25전쟁이죠
재배가 잘 되는 개량종 목화였던거 같아요
도대체 진실이.무었인지
교과서가 거짓인가요
그럼 진실을 학생들에게 가르쳐야지
여전히 잘못 알려진 역사가 많아요
좀 이상하더라 ..
고려후기에 목화가 들어 온게. 아니네 ....
삼국시대 이전부터. 입었어
고구려 벽화봐바 ...
있긴 있었지만 품종이 안 좋아서 잘 자라지 않아서 귀했죠
그렇지.....
고려 이전에도 면화를 재배했구나!!
맞습니다 다만 추위에 약하고 적게 만들었던 것으로 봐요
귀양을 다른나라에서 한다고? 범죄자를 다른나라로 유배보냈다고?
그렇게 알려졌지만 아니다 로 설명했어요 ㅎㅎ
고려사람이 원나라로 귀양을 간다는것 자체가 말이안됨.
이사람 말고도 7-80년대 교과서 내용중 상당수가 허구임. 그런데 그때는 우리나라나 북한이나 똑같이 가상의 영웅 만들기에 열을 올리는시기였음
당시는 기록보다 구두로 전해지면서 조금씩 이야기가 달라졌다고 봐요
한민족 중 영웅, 위인들이 일천 하니까, 민족적 자긍심을 키워주기 위해서 일제시대에 독립운동가들이 시작한 역사왜곡이죠.
기황후 와꾸 실화냐...
하지원에서 저게 저렇게 되네
ㅎㅎㅎ 나이가 든 모습이에요
저 그림이 몽골 원제국 황후의 의상은 맞음.
그런데 기황후 인지, 다른 황후 인지는 확실치 않고. 또 저런 원제국 황후 초상화들은 모습이 거의다 비슷함.
판다도 몰레 들여오지 렌트 안해도 되게
저짝 전문가는 혼자일땐 아무것도 못함
전세계에 위용을 떨쳤던 원나라는 기황후가 들어오고나서 망국의 길로 들어섬.결국 여몽 전쟁은 고려의 승리로 😅
타국으로. 귀향 ?
잘한거지만 대단한 위인으로 배울건 아니라고 본다.
이 계기로 모든 백성이 입을 수 있게 대중화를 시켰어요
위인 맞아요 그 전에는 목화가 귀해서 백성들에게 널리 보급 되지 못했다고 들었어요 아마 목화씨가 있었어도 잘 자라지 못했던 품종이었던거 같아요
목화라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