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사님 말씀대로 고려-거란전쟁 3대 전투중 하나가 통주전투인데 야습 딸깍으로 강조 납치한걸로 간략히 전투패배 양상을 5분 남짓 연출한게 아쉽네요 ..ㅠㅠ 어떻게 통주전투가 10분도 안되는 분량으로 날라가는지..ㅎㅎ;; 말씀하신대로 서경전투의 긴박함과 서사는 드라마에서 잘 녹아내기를 바라네요. 오늘도 좋은 영상 감사합니다 ^^
박사님 궁금한점이... 양규장군이 진짜 용맹한 장군인건 알겠는데 흥화진 결사대 700명과 통주에서 수습한 병력 1000명 총 1700명으로 어떻게 거란족이 점령한 곽주성 거란군 6000명을 공성전으로 무찌르고 고려백성들 구원했나요? 커뮤니티에서는 운석이 떨어졌느니 어쩌니하는데 이거 팩트 진짜 궁금합니다. 양규장군,강감찬 장군은 이번 드라마로 배우고 검색해보니 거의 이순신장군급이던데.. 와 고려남자들 진짜 리스펙합니다ㅠㅠ 너무 멋져!
운석이 떨어진게 아니라 그날 유성이 떨어졌다는거임. 전투의 구체적 장면을 묘사한 기록이 없고 단지 고려사에 곽주성을 지키는 6000명의 거란군을 모두 목을 배고 포로 7000명을 통주성으로 옮겼다고 되어있어요. 아마 성안에 내응자가 있어서 성문을 열어주었고 야밤에 기습한 그런 상황이었던것 같음. 제대로 공성전으로 성을 함락하려면 최소 지키는 군사보다 5배는 많아야되니까요.
그냥 이렇게 생각하면 되겠죠? 강조가 무려 30만의 대군을 이끌고도 허무하게 적에게 사로잡혔듯이 적들 역시 안이하게 대처했거나 양규장군의 기발한 계책이 있었겠죠. 정확한 전투장면을 기록한건 없으니 정확하게 모르겠으나 강조가 어이없이 사로잡힌거나 1700명이 6000명의 적을 이건거나 마찬가지라고 보면 되겠죠.
13:22 병사와 말은 쉬어야 한다. 🐎 박사님 이야기를 들으면서, 남의 일이라고 너무 쉽게 말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군인이니까...', '남자가 그 정도는....', '교사라면....' 등등의 말을 하면서 비난하는 게 갑질이란 걸 모르는 걸까요? 우리가 역사를 배우는 이유 중 하나가 자신과 다른 입장에서 생각해 보는 능력을 키우기 위해서가 아닐까 싶네요.
오늘도 중요한 전쟁사 배우고 갑니다. 확실히 거란제국 대 고려군의 서경 공방전이 진짜 치열하게 중요한 전쟁이었군요. 근데 역시 고려시대는 보면 볼수록 중세 일본, 중세 유럽처럼 중세 봉건제 국가 같은 느낌이 강한것같습니다. 고려의 지방 영주(호족)들이 다 자신만의 개인 군대를 가지고 있었고 지역군 조직도 빨랐던걸 보면... 확실히 고려군이 조선군보다 훨씬 더 군사력이 막강했던 이유가 이런데서 나오는것같아요.
지방 호족들이 다 군대를 가지고 있으니, 개경의 중앙정부도 상시적으로 지방 호족들을 제압할 3~4만명의 상비군을 둘 수 밖에 없었죠. 이 호족들이 언제 연합해서 개경을 뒤통수칠지 모르니 대규모의 잘 훈련된 상비군을 둘 수밖에 없었던 것이죠. 이러한 잠재적 경쟁관계, 긴장관계가 고려군의 수준을 높은 수준으로 끌어올리고 유지하게 된 힘이라고 생각합니다. 대한민국의 방위산업이 세계적으로 잘 나가는 이유도, 북한과의 군사적 대결 및 경쟁 체제가 큰 몫을 했죠. 북한이라는 존재가 없었다면 대한민국의 방위산업이 이만큼 잘 나갔을까 싶습니다.
1178년에는 개경에 살던 국인(国人) (개경인) 들이 청주로 내려가 살았는데, 이때 청주인들이 청주에 있던 국인(国人)들을 거의 다 몰살시켜버린 사건이 있었습니다. 이때 다른 국인(国人)들이 결사대를 결성해서 저항했는데, 결국 전사자를 100명정도 내고 청주인들에게 패배했죠. 또 1201년 경주의 별초군이 영주와 사이가 좋지 않아 그 해에 영주성을 공격했다가 패주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개경의 중앙정부가 경주를 칠 계획까지 세웠었죠. 국인, 청주인 등의 단어를 보면 전근대 일본인 쵸슈인, 사츠마인처럼 고려, 일본이라는 큰 틀 속에서 개별적인 정체성을 가지고 있던 게 아닌가 생각이 됩니다.
고려군이 조선군보다 막강하다뇨. ㅋㅋㅋ 조선은 중앙집권화로 똘똘 뭉쳐서 말단 고울단위에서 조차 의병이 일어나는데, 고려는 서경같은 대도시 조차 뿔뿔히 갈려서 자기나라 중앙정부랑 싸우는 판인데.. ㅋㅋ 그리고 고려거란전쟁도 거란이 중국과 패권을 다투는 대국이고 1차전으로 예방주사까지 맞았는데도 2차전은 임진왜란, 3차전도 소배압이 현종 블러핑에 안속았으면 병자호란꼴 날뻔한 전쟁이에요. 거란이 청태종 같은 전략을 취했으면 고려의 시스템으로 진즉에 망했어요. 한국사 전체를 봐도 1~2위 대패인 통주전투와 갈라수전투가 고려시대때 일어났어요. 그리고, 한반도를 위협한 적들도 나름 걔네들 방식으로 중앙집권화를 한 나라들이라는걸 잊지 말아야 합니다. 중앙집권화를 하지 않은 거란? 여진? 몽골? 일본? 시스템의 문제로 애초에 침략 자체를 못해요. ㅋㅋㅋㅋ
박사님! 질문이 있는데요. 홍화진 전투에 대한 고려사 기록과 양규열전에 홍화진이 포위되었다라는 기록만 있고, 전투가 있었다는 한자 글자 기록이 없어. 첫번째 전투로 묘사된 홍화진 전투가 묘사된 드라마나 다큐가 거짓이라고 하는데, 이에 대한 반박 좀 해주세요. 제가 역사에 대해 잘 몰라서 반박을 못했습니다. 심지어 거란의 황제는 고려백성을 죽인적이 없고, 상까지 내리고 양규가 있는 성으로 보낸 기록만 있지 양민을 학살하지도 않았다고 합니다. 이게 말이 되는건지 . 설명 좀 부탁드립니다.
사실 을쓴 고려사 는 조선 때 전부 없에고 세종 때 김종서 등 이 사대 의 예,즉 성리학 에 맞게 다시쓴게 고려사 입니다.특히 중국 을 깔보거나 앂는 글 은 전부 없에고 고려 또한 중국 의 신하 인 국가 란 걸 집어 넣은 거지요.참 이런걸 볼때마다 과연 세종 이 성군 인가 를 생각 해 봅니다.
철령의 북, 동, 서쪽은 옛날 개원(開原)에 속했으므로 그 토착 군민(軍民)인 여진(女眞), 달단(韃靼), 고려인(高麗人) 등을 요동이 통할하도록 하고, 철령의 남쪽은 예부터 고려에 속했으므로 인민(人民)은 모두 그 나라 관할에 속하도록 하라. 경계(境界)와 강역(疆域)을 바로 잡으니 각기 지키도록 하며,
충분히 궁금할 수 있는 합리적 의문이라고 보네요. 하나의 설로서는 신라 때 경주를 동경이라 부르고, 평양은 서북에 있긴 하지만 동경만큼이나 중요한 도시라는 의미로 동등성의 차원에서 의미로도 대칭을 맞춘다는 차원에서 서경이라고 했다하는 주장이 있습니다. 엄밀한 방위를 생각했다기보다 이런 역사적 맥락으로 직관적이고 관습적으로 이해하여 나온 명칭같습니다 ^^ 말씀하신대로 지리적으론 서북쪽, 특히 북쪽에 가까운 방위인건 맞지요~
2 철령위 설치 사건의 전말 1387년 12월, 명나라의 황제 홍무제(洪武帝)는 호부(戶部)에 다음과 같이 명령을 내리고 이를 외교문서로 작성해 고려국왕(高麗國王)에게 보내도록 하였다. 철령의 북, 동, 서쪽은 옛날 개원(開原)에 속했으므로 그 토착 군민(軍民)인 여진(女眞), 달단(韃靼), 고려인(高麗人) 등을 요동이 통할하도록 하고, 철령의 남쪽은 예부터 고려에 속했으므로 인민(人民)은 모두 그 나라 관할에 속하도록 하라. 경계(境界)와 강역(疆域)을 바로 잡으니 각기 지키도록 하며, 다시는 침범하고 넘어서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
문제) 개성으로부터 바로 [북쪽]인 북한의 평양이 고려의 [서경]이다. 참 or 거짓 1. 참이라면 --> 고려시대 사람들 모두 북쪽을 서쪽으로 인식했다. 2 거짓 --> 고려의 서경은 북한의 평양이 아니다. 중국 25사 중 하나인 [원사 ]에 적힌 내용 ; [현재 평양]은 [과거의 평양] 이 아니다.
우리 역사는 왜곡되었어요. 고려의 천리산성만 하더라도 실재 존재하지도 않는데 지도상에 천리산성이라 적어놨고. 북한 지역은 산이 험준해서 산성 자체가 필요가 없는 곳임. 그리고 산에다가 1천리나 산성을 만들다고 생각해보면 끔직한 일이죠. 기계도 업는 시절에 손으로 일이라 돌을 산위로 지고 날라서.. 아무튼 천리산성은 가짜라는 생각이드네요
만리장성처럼 진짜 장성을 쌓는게 아니라... 말씀하신대로 험준한 산세를 이용해 뚫고 나갈만한 곳글에 산성을 설치해 일천리에 이르는 방어선을 구축했다는 뜻이라고 한국사 시간에 배웠습니다. 등산객들이 등산을 갈 수 있는 길과 다르게 수천명의 병력이 군수물품을 가지고 이동할 수 있는 길은 확실히 제한되니까용.
왜 서경이라하냐고?? 애초에 신라수도를 동경이라 부름 그리고 서쪽에도 하나 만든게 서경 평양임 왜 북경이라 안했냐고? 어떤 정신나간 나라가 동서부터 나누지 동하고 북을 나눔? 동경과 서경은 1대 태조 왕건이 나눈거고 남경은 이후 한참 뒤에 11대 문종이 남경 만든거임 왕건이 동경 서경 남경 한꺼번에 나눈게 아니라고 어디가서 정신나간소리하지말어
임용한 박사님 최고야 👍 항상 응원합니다
임용한은 내빵셔틀이었디ㅡ
임용한 박사님최고 짱짱 👍 😍 💗 😘 💕 ❤️ 👍 🎉❤❤❤❤❤
근디드라마수준.ㅎㄷ
앞으로 역사드라마나 영화만들때는 임용한박사님 꼭 모셔서 만들었으면 좋겠습니다 😊😊
진정한 이야기꾼이십니다.설명이 착착귀에 붙어 쏙쏙들어오네요.
요즘 영상은 편집도 한결 깔끔해지고 보기 너무 좋네요~ 항상 좋은 강의 감사히 보고 있습니다 박사님
박사님 말씀대로 고려-거란전쟁 3대 전투중 하나가 통주전투인데 야습 딸깍으로 강조 납치한걸로 간략히 전투패배 양상을 5분 남짓 연출한게 아쉽네요 ..ㅠㅠ 어떻게 통주전투가 10분도 안되는 분량으로 날라가는지..ㅎㅎ;; 말씀하신대로 서경전투의 긴박함과 서사는 드라마에서 잘 녹아내기를 바라네요. 오늘도 좋은 영상 감사합니다 ^^
딸깍!ㅋㅋㅋㅋ근데 제 사견이지만 주인공이 강감찬 귀주대첩이고 32화 분량이라 했으나 비중상 어쩔수없이 줄인거 같습니다
아무래도 패배한 전투라 비중을 확 줄인거같네요
교수님도 야전사령관 같은 복장이시네요!!
멋지십니다!
제발 이번 서경전투는 재대로 나와주었으면 ㅠㅠ
지채문 장군님 활약은 확실히 제대로 나올듯
30만대 20만 붙는 전투도 말에서 떨어지는 몇장면 보여주고 넘어갔는데
서경전투도 보나마나지 ㅋ ㅋ
항상 흥미로운 영상 감사합니다😳ㅎㅎ
박사님 박사님 좋은 내용 들을께 생겼네요
감사합니다 박사님
사낭해여❤❤❤❤❤❤❤
드라마보다 박사님 이야기가 더 유익하고
재미있네요!
댓글보니 박사님 참힘드실것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항상 응원합니다😢
역시 믿고보는 임박사님 역사이야기 ㅋㅋㅋ
진짜 박사님이 토전사에서 고려거란전쟁이 왜 영화로 안나왔지라고하셨는데 드라마로써 바람이 이루워지셨내요ㅋㅋ언제나 잼나게 보고있습니다❤
편의점 담배사가듯이 강조납치하는 거란군보고 어이없어서 보러옴 ㅋㅋㅋ
😂😂
드라마 보다가 벙쪘는데 사령관 막사 경계를 어떻게 했길래 진짜 ㅋㅋ 당시 거란이 중원에 후진 멸망시키고 송나라에서 조공까지 받을 정도였으니 이런 거란하고 버틴것만 해도 대단하죠
바둑 두던 알바 강조 검거 ㅋㅋ
그장면때문에 재미가 급감함;;
근데 팩트임 ㅋ 재미를 떠나서 사실인데?
유익한 방송 늘 감사합니다 ㅎㅎ
박사님 궁금한점이... 양규장군이 진짜 용맹한 장군인건 알겠는데 흥화진 결사대 700명과 통주에서 수습한 병력 1000명 총 1700명으로 어떻게 거란족이 점령한 곽주성 거란군 6000명을 공성전으로 무찌르고 고려백성들 구원했나요? 커뮤니티에서는 운석이 떨어졌느니 어쩌니하는데 이거 팩트 진짜 궁금합니다.
양규장군,강감찬 장군은 이번 드라마로 배우고 검색해보니 거의 이순신장군급이던데.. 와 고려남자들 진짜 리스펙합니다ㅠㅠ 너무 멋져!
운석이 떨어진게 아니라 그날 유성이 떨어졌다는거임. 전투의 구체적 장면을 묘사한 기록이 없고 단지 고려사에 곽주성을 지키는 6000명의 거란군을 모두 목을 배고 포로 7000명을 통주성으로 옮겼다고 되어있어요. 아마 성안에 내응자가 있어서 성문을 열어주었고 야밤에 기습한 그런 상황이었던것 같음. 제대로 공성전으로 성을 함락하려면 최소 지키는 군사보다 5배는 많아야되니까요.
@@이동준-f5h 이런저런 상황이나 전략 감안해도 양규장군 대단했네요. 좋은 답변 감사합니다.
그냥 이렇게 생각하면 되겠죠? 강조가 무려 30만의 대군을 이끌고도 허무하게 적에게 사로잡혔듯이 적들 역시 안이하게 대처했거나 양규장군의 기발한 계책이 있었겠죠. 정확한 전투장면을 기록한건 없으니 정확하게 모르겠으나 강조가 어이없이 사로잡힌거나 1700명이 6000명의 적을 이건거나 마찬가지라고 보면 되겠죠.
소수기는 해도 일방병들이 아니라 특전사 처럼 직업군인들이 아닐까 합니다. 밤에 야습했다고 하니 진짜로 몰래 성벽 기어 올라가서 문열었을 수도 있고여 ㅎㅎ
뭔가가 떨어졌다는 건 은유적인 표현 아님???
2부 48시간째 대기중, 구독 좋아요 알람 눌렀네요 ㅠㅠ
귀한 영상 감사합니다
14:38 통주 전투에 대한 박사님의 간단 요약 ㅋㅋㅋㅋ
13:22 병사와 말은 쉬어야 한다. 🐎
박사님 이야기를 들으면서, 남의 일이라고 너무 쉽게 말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군인이니까...', '남자가 그 정도는....', '교사라면....' 등등의 말을 하면서 비난하는 게 갑질이란 걸 모르는 걸까요?
우리가 역사를 배우는 이유 중 하나가 자신과 다른 입장에서 생각해 보는 능력을 키우기 위해서가 아닐까 싶네요.
이번주 방영분 보면서 비교할 수 있어서 좋아요!
좋다😂
복장 멋지십니다
고거전이랑 타이밍 아다리가 너무 이쁘게 올라왔네요 곧있으면 평양 전투할텐데 ㅋㅋㅋ
오늘도 중요한 전쟁사 배우고 갑니다. 확실히 거란제국 대 고려군의 서경 공방전이 진짜 치열하게 중요한 전쟁이었군요. 근데 역시 고려시대는 보면 볼수록 중세 일본, 중세 유럽처럼 중세 봉건제 국가 같은 느낌이 강한것같습니다. 고려의 지방 영주(호족)들이 다 자신만의 개인 군대를 가지고 있었고 지역군 조직도 빨랐던걸 보면... 확실히 고려군이 조선군보다 훨씬 더 군사력이 막강했던 이유가 이런데서 나오는것같아요.
지방 호족들이 다 군대를 가지고 있으니, 개경의 중앙정부도 상시적으로 지방 호족들을 제압할 3~4만명의 상비군을 둘 수 밖에 없었죠.
이 호족들이 언제 연합해서 개경을 뒤통수칠지 모르니 대규모의 잘 훈련된 상비군을 둘 수밖에 없었던 것이죠.
이러한 잠재적 경쟁관계, 긴장관계가 고려군의 수준을 높은 수준으로 끌어올리고 유지하게 된 힘이라고 생각합니다.
대한민국의 방위산업이 세계적으로 잘 나가는 이유도, 북한과의 군사적 대결 및 경쟁 체제가 큰 몫을 했죠.
북한이라는 존재가 없었다면 대한민국의 방위산업이 이만큼 잘 나갔을까 싶습니다.
1178년에는 개경에 살던 국인(国人) (개경인) 들이 청주로 내려가 살았는데,
이때 청주인들이 청주에 있던 국인(国人)들을 거의 다 몰살시켜버린 사건이 있었습니다.
이때 다른 국인(国人)들이 결사대를 결성해서 저항했는데,
결국 전사자를 100명정도 내고 청주인들에게 패배했죠.
또 1201년 경주의 별초군이 영주와 사이가 좋지 않아
그 해에 영주성을 공격했다가 패주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개경의 중앙정부가 경주를 칠 계획까지 세웠었죠.
국인, 청주인 등의 단어를 보면 전근대 일본인 쵸슈인, 사츠마인처럼
고려, 일본이라는 큰 틀 속에서 개별적인 정체성을 가지고 있던 게 아닌가 생각이 됩니다.
고려군이 조선군보다 막강하다뇨. ㅋㅋㅋ 조선은 중앙집권화로 똘똘 뭉쳐서 말단 고울단위에서 조차 의병이 일어나는데, 고려는 서경같은 대도시 조차 뿔뿔히 갈려서 자기나라 중앙정부랑 싸우는 판인데.. ㅋㅋ 그리고 고려거란전쟁도 거란이 중국과 패권을 다투는 대국이고 1차전으로 예방주사까지 맞았는데도 2차전은 임진왜란, 3차전도 소배압이 현종 블러핑에 안속았으면 병자호란꼴 날뻔한 전쟁이에요. 거란이 청태종 같은 전략을 취했으면 고려의 시스템으로 진즉에 망했어요. 한국사 전체를 봐도 1~2위 대패인 통주전투와 갈라수전투가 고려시대때 일어났어요. 그리고, 한반도를 위협한 적들도 나름 걔네들 방식으로 중앙집권화를 한 나라들이라는걸 잊지 말아야 합니다. 중앙집권화를 하지 않은 거란? 여진? 몽골? 일본? 시스템의 문제로 애초에 침략 자체를 못해요. ㅋㅋㅋㅋ
오~ 오늘은 마이크 상태나 영상이 너무 좋습니다😮
드라마에서도 기대
12월 9일 생신 축하드립니다
그 다음 이야기가 긍굼한데요,, 이걸로 끝인가요?
구독자 10만 기원합니다.
박사님! 질문이 있는데요. 홍화진 전투에 대한 고려사 기록과 양규열전에 홍화진이 포위되었다라는 기록만 있고, 전투가 있었다는 한자 글자 기록이 없어. 첫번째 전투로 묘사된 홍화진 전투가 묘사된 드라마나 다큐가 거짓이라고 하는데, 이에 대한 반박 좀 해주세요. 제가 역사에 대해 잘 몰라서 반박을 못했습니다. 심지어 거란의 황제는 고려백성을 죽인적이 없고, 상까지 내리고 양규가 있는 성으로 보낸 기록만 있지 양민을 학살하지도 않았다고 합니다. 이게 말이 되는건지 . 설명 좀 부탁드립니다.
지들 기록엔 좋은것만 써둔거죠 대부분의 고대 역사가 지들 유리한것만 써두는데 그걸 그대로 믿고 해석하는 학자는 없습니다.
제일 멀리해야할 사람들이 그런 사람들이에요 문장 하나에 집착해서 믿는사람들요, 역사 동영상 댓글 보면 환빠들도 왜이리 많은지,,, 박사님한테도 훈수질 하니 말다했죠.
포위만 한거면 그건 그거대로 대단한거죠. 후방을 공격할 수 있는 적을 공격조차 못했다는거니까.
전투가 없었다라기보다는 거란이 후퇴할때 홍화진에서 튀어나와서 공격했다 기록을 보면 점령을 못했다 또는 전투없이 지나 갔다 둘중에 하나인데 40만이 쳐들어 오는데 그냥 지나갔다라고는 보기에는 어렵다? 이런식으로 추론 가능
사실 을쓴 고려사 는 조선 때 전부 없에고 세종 때 김종서 등 이 사대 의 예,즉 성리학 에 맞게 다시쓴게 고려사 입니다.특히 중국 을 깔보거나 앂는 글 은 전부 없에고 고려 또한 중국 의 신하 인 국가 란 걸 집어 넣은 거지요.참 이런걸 볼때마다 과연 세종 이 성군 인가 를 생각 해 봅니다.
근데 압록강이 현재의 압록강이 맞는지요?
급 궁금 합니다
고려사에는 압강으로 표기됨.. 서경이 평양이라니..ㅡㅡㅡ참나..
속편을 어서 올려주시옵소서 장군
흥화진도 있어요!
아니 교수님 제일 재미있는 부분에서 끊으시면 ... ㅎㅎㅎ
서경전투는 좀 신경써서 연출해주면😊 좋을텐데
박사님 개전 초기 흥화진에서 7일을 사수 한 양규장군덕에 거란황제의 전략이 전면 수정 된 부분은 엉청 큰 공적이 아닌가 싶은데요..
말씀 들으니 서경공방전이 어떻게 다뤄질지 궁금하네요
박사님. 고려는 호족의 사병이 존재하는 체계 였는데 중앙에서 호족의 사병을 동원하려면 호족과 합의를 봐야하는 체계였나요?
동원령 내리면 징발 할 수 있는걸로암
이때 고려가 3차 귀주대첩후 역으로 바로 군대를 이끌고 요나라로 처들어 갈수는 없었나요???
전쟁광 임용한 박사님
피디님 인트로 노래 좀 괜찮을걸로 해주세요 그리고 편집좀 잘좀 해주세요
평양성에서 한성이라고 적힌 벽돌이 나왔는 데 우린 왜 계속 평양을 서경이라 부르나??
박사님 모자가 이상한데요? 고려 투구로 바꿔써주십시오 ㅎㅎ
지역방위를 위해 지역민들로 군을 만들면 강하지만 위험한 세력이 되는군요
ㅇㅏ누가 360번째 좋아요 가져갔어ㅡㅡ
으앗! 여기서 끊으시다니요!
근데 드라마에서 전투 스킵이 너무심하네여 ㅋㅋ
????: 뭐 아군이 항복한다고? 그러면 항복문서를 들고가는 애들을 잡아 죽이면 항복을 못하겠네?
12월 9일은
내 자동차보험 만기일입니다 ㅋㅋㅋ
거란-송 전쟁보다 큰 고려-거란 전쟁인데 그럼 거란이 송보다 고려를 더 부담스러워했다는 건데
정말 지금의 압록수와 평양일까요?
하참.... 이런 학자들이 그렇다고 설명하는데 그럼 도대체 어디가 압록강이고 평양이라 생각하는데요? 진짜 환빠들은 정치병자들과 같은 정신병자들같아요.
@@왕건-n6f ㅋㅋㅋㅋㅋ 환빠들의 정신병은 불치병입니다
다른데 같다는 느낌이 드는 순간 환빵이 되는 겁니다. 고대의 면적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몽골이 그 작은 나라가 유라시아 지배한거 믿으세요? 땅덩어리 크기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또 일제가 고려의 강역을 축소시켰다는 얘기인가요? ㅋㅋㅋㅋㅋ
일제가 한반도의 공룡을 멸종시켰다는 얘기도 있습니다 ㅋㅋㅋㅋㅋㅋ
@@삐용삐용-s8p 그놈의 식민사관 운운이 지겹지도 않은가봐요 저애들은 ㅋㅋㅋㅋ
철령의 북, 동, 서쪽은 옛날 개원(開原)에 속했으므로 그 토착 군민(軍民)인 여진(女眞), 달단(韃靼), 고려인(高麗人) 등을 요동이 통할하도록 하고, 철령의 남쪽은 예부터 고려에 속했으므로 인민(人民)은 모두 그 나라 관할에 속하도록 하라. 경계(境界)와 강역(疆域)을 바로 잡으니 각기 지키도록 하며,
거란에는 소배압이 있었고
고려에는 강감찬이
있었다.
양규죠 강감찬은 3차
서경(평양) 이 어느 편에 서느냐에 따라 나라가 갈라질 수 있다???
지금도 똑같네
거란군이 청수강까지 진격하다
임자 거란군[丹兵]이 청수강(淸水江)에 도착하자, 안북도호부사 공부시랑(安北都護府使 工部侍郞) 박섬(朴暹)이 성을 버리고 도망가 주민들이 모두 흩어졌다
거란 정찰부대 속에 고려 배신 길잡이들 끼여 활약했겠지요
모든 전쟁에는 그 지역 출신들의 압잡이 활동이 있었습니다.
근데 정작 드라마에서는 제작비 아낄려고 서경전투장면은 프리패스
궁금한게 평양이 왜 서경인가요. 북경도 아니고..
궁금하면 스스로 답을 찾으세요 사료 다 읽어보고 고고학 발굴 조사 찾아 보고요.
충분히 궁금할 수 있는 합리적 의문이라고 보네요. 하나의 설로서는 신라 때 경주를 동경이라 부르고, 평양은 서북에 있긴 하지만 동경만큼이나 중요한 도시라는 의미로 동등성의 차원에서 의미로도 대칭을 맞춘다는 차원에서 서경이라고 했다하는 주장이 있습니다. 엄밀한 방위를 생각했다기보다 이런 역사적 맥락으로 직관적이고 관습적으로 이해하여 나온 명칭같습니다 ^^ 말씀하신대로 지리적으론 서북쪽, 특히 북쪽에 가까운 방위인건 맞지요~
드라마에 20분도 안나온듯
그래서 드라마 9화에 최수종이 서경에서 활약하는 걸로 나올 듯 ㅋㅋ
2 철령위 설치 사건의 전말
1387년 12월, 명나라의 황제 홍무제(洪武帝)는 호부(戶部)에 다음과 같이 명령을 내리고 이를 외교문서로 작성해 고려국왕(高麗國王)에게 보내도록 하였다.
철령의 북, 동, 서쪽은 옛날 개원(開原)에 속했으므로 그 토착 군민(軍民)인 여진(女眞), 달단(韃靼), 고려인(高麗人) 등을 요동이 통할하도록 하고, 철령의 남쪽은 예부터 고려에 속했으므로 인민(人民)은 모두 그 나라 관할에 속하도록 하라. 경계(境界)와 강역(疆域)을 바로 잡으니 각기 지키도록 하며, 다시는 침범하고 넘어서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
서경으로 모이는 영웅들 지채문 대도수 강민첨 조원 법언 쓰래기는 탁사정
녹음하실때 제발 목소리를 크게하고 마지막 음악소리는 작게 해 주세요
@@onsdad0930못 배워서 그럼
전투만 연구하면 서경전투가 제일 다이나믹 할지 몰라도, 시청자 입장에서는, 끝이나지않고 그냥 싸우고 하루는 이기고 하루는 지고 그러면 식상하지 않겠어요? 나라도 그런 드라마는 그냥 안보겠어요.
말위에 사람이 타고 자면 말이 쉴 수가 있나??? 상관없나?
항복받으루 오는 사신을 죽인다
서경이 평양이라고 알았으면 드라마에서 중요성을 더 알았을건데
서경전투라고 안하고 통수전투라고 해도 될듯
이건 드라마 연출쪽 문제지만....
강조에게 그래도 충신이었다 라는 프레임을 주고 싶었으면.... 통주전투를 그딴식으로 말아먹으면 안됐죠...... 뭔 패배에도 개연성을 줘야지......
초딩이 각본을 쓴줄 알았음.
성종이 아니라 현종 아닌가요?
거란황제가 성종이라고
생각해보니 예전에 토전사에서 현종 도피썰 푸시면서 이거 드라마로 안만드나 하셨던게 생각나네요
스토리 전개시 다른 사설 없이 내용만 쭉 설명을 해주세요
다양한 내용을 앞 뒤로 말하니 무슨말 하는지 모를 정도에요
제 생일이 음력 12월 9일...
이 분 식민사학자 라는 합리적 의심이 든다. 거란족은 중국 북경 서북쪽 태행산맥 너머 안문관 바깥쪽에 있는 민족인데 그 먼데서 평양까지 온다고? 평양을 서경으로 해석하면 식민사학자 임.
근데 왜 추울때 한겨울에 쳐들어 왔을까요? 좋은 계절에 침입하지....
강이 얼어서 말타고 오기 쉽다고 들었어요
초원의 풀이 모두 없어지고 무엇보다 특별한 도하장비 없이 압록강을 도하하기 좋음
유목민족은 보통 겨울에 옵니다.
겨울 말곤 지들도 먹을게 많고 풍족하니깐요
서경이면 베이징 아니냥
문제) 개성으로부터 바로 [북쪽]인 북한의 평양이 고려의 [서경]이다. 참 or 거짓
1. 참이라면 --> 고려시대 사람들 모두 북쪽을 서쪽으로 인식했다.
2 거짓 --> 고려의 서경은 북한의 평양이 아니다.
중국 25사 중 하나인 [원사 ]에 적힌 내용 ; [현재 평양]은 [과거의 평양] 이 아니다.
고거전 합법 스포일러 방송
그 서경은 지금의 평양 아닙니다. 오히려 북경이 서경
대륙설 주장하는 놈들 특 : 허구헌날 국경선이 어쩌니 저쩌니 소리 밖에 안함 ㅋㅋㅋ
저는 늘 궁금한 것이 나올때마 역사에 가정이란 없다는 뜻은 누가 왜 어떤 뜻으로 한말인가요?
나무위키에서 보면 그런말 한 사람도 없고 랑케?가.한말은 심하게 과장한 말이라든데
고려시대 지금의 평양이 서경이라는 말은 맞지가 않습니다 정확히 표현하면 북경입니다
뭐가 맞지않음?? 서경이 평양 맞음
우리 역사는 왜곡되었어요. 고려의 천리산성만 하더라도 실재 존재하지도 않는데 지도상에 천리산성이라 적어놨고. 북한 지역은 산이 험준해서 산성 자체가 필요가 없는 곳임. 그리고 산에다가 1천리나 산성을 만들다고 생각해보면 끔직한 일이죠. 기계도 업는 시절에 손으로 일이라 돌을 산위로 지고 날라서.. 아무튼 천리산성은 가짜라는 생각이드네요
하지만 고려의 천리장성 축조 기록은 있으니,
아마 고구려 시대의 천리장성을 개축한거일 가능성이 높다고 해야할까요?
@@옼케발 어느 역사서에도 천리장성 이란 단어 자체가 안나옵니다. 일제 넘들이 고려 국경을 축소시킬려고 일부러 천리장성을 지어낸것임
고려 천리장성은 유적으로 남아있다 ㅋㅋㅋㅋㅋㅋ 그리고 군사에 대해 무식한 놈이 아는척은 하려고 그러고있냐
만리장성처럼 진짜 장성을 쌓는게 아니라... 말씀하신대로 험준한 산세를 이용해 뚫고 나갈만한 곳글에 산성을 설치해 일천리에 이르는 방어선을 구축했다는 뜻이라고 한국사 시간에 배웠습니다.
등산객들이 등산을 갈 수 있는 길과 다르게 수천명의 병력이 군수물품을 가지고 이동할 수 있는 길은 확실히 제한되니까용.
그럼 너가 잃어버린 고토 수복해 와 그럼 너의 말이 입증된다
무능하고 멍청한 강조와 서경 반역 세력때문에 레알 고려 망할 뻔
드라마 고려거란전쟁은
흥화진 전투이후는
애들 소꼽장난 수준으로 전락함
한심한 사극으로 다시 돌아감
출연인원보면 한심함
모자 안어울림
당태종이 태종 무열왕인데 이때 만들어진 고려의 영역이 이렇다라고 보면 되네요.
평양이 서경인적이 없고 북경이었고 남경은 일본에 있었는데 경주가 되었고 서경은 중국의 산동반도에 있었음, 조선이기 때문에 중국에서는 조나라라고 불렸음.
맞습니다 이괄 장군이 이성계의 선조죠. 이태백이 삼촌이고...
이세민도 조선인이고...😅
무슨 신천지도 아니고 환빠광신도들은 느그들끼리 채널만들어 놀아라
환빠가 또..
이런 모질이들은 좀 패야돼
고려거란전쟁 드라마에선 전투신이 하나도 없이 바로 몽진 ㅋㅋ 쓰레기 양아치 프로그램이더라구요
너무 웃기지 않나요 ? 개성과 평양이 바로 옆인데 , 개성이 수도이고 평양이 서경이다 ? 이거 완전 엉터립니다. 어느 미친 나라가 걸어서 몇시간 밖에 안걸리는 거리에 수도를 또 만들어요 ?
209km면 딱 천리행군 절반 거리네요 현대 대한민국 군인들도 천리행군을 10일 동안 합니다. 딱 절반 걸어서 5일이라 치면 꽤 먼데요?
왜 엉터리에요?? 그냥 그런거지 그게 왜 엉터리에요?? 무슨 말인지 모르겠네요.
군대 정상적인 행군속도면 하루에 30킬로갑니다.....
뭐가 웃긴지 모르겠네 역사 시간에 공부 안 함? 왜 수도로 삼았는지 배경지식이 아예 없는 듯
네, 하나도 안 웃기네요
아니 제작비 한계가 있는데
뭘 바란거야 ㅋㅋㅋㅋ
뒤에 나올 전투 안볼건가
한국사 똑바로 가르쳐라 서경이 평양맞냐?
맞다
맞는데 정신병 있음??
서경이 왜 서경이라 칭하였는가요? 개경의 서쪽이라서 서경 아닌가요? 그럼 개경이 지금의 개성이라고 하는데 지금평양이 개성의 서쪽인가요? 글구 지금의 압록강과 청천강이 그때의 압록이고 살수가 맞는가부터 고증하고 방송을 해야 역사왜곡이 아닐까요?
하나의 잠재적인 설로서 주장하시는건 이해하지만, 임용한 박사님은 역사학자로서 더 많이 고증되어있고 더 합리적인 개연성이 있고 학계에서 두루두루 합의를 거친 내용을 중점으로 이야기하시니까요.. 물론, 다른 이견을 가지실 수는 있겠지만 대게는 그렇다는 것 입니다.
왜 서경이라하냐고?? 애초에 신라수도를 동경이라 부름 그리고 서쪽에도 하나 만든게 서경 평양임
왜 북경이라 안했냐고? 어떤 정신나간 나라가 동서부터 나누지 동하고 북을 나눔?
동경과 서경은 1대 태조 왕건이 나눈거고 남경은 이후 한참 뒤에 11대 문종이 남경 만든거임
왕건이 동경 서경 남경 한꺼번에 나눈게 아니라고
어디가서 정신나간소리하지말어
지도 보면 평양이 개성보다 서쪽에 있는데 뭐가 문제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