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 전에는 한국에서는 제대로된 장교나 하사관도 없었습니다 일본의 만주 주둔군 소위나 중위 대위들이 해방후 한국에서 고위 장성급을 맏았죠 그들은 만주에 있었기에 중국군 또는 중국공산당군 들과 전투한번 해본적이 없는 사람들이 대부분 이었습니다 그런 사람들이 해방후 한국에 들어와서 20대 후반 나이로 고위 장성직을 맡았고 국방부 장관이나 국방 부도 마찮가지 였습니다 그러니 준비해서 소련군이 지원해준 탱크와 포병까지 앞세워서 쳐들어온 북괴군을 막아낼수 있었겠습니까 미군조차 오산에서 대전까지 밀렸는데 .. 해방후 한국에는 경험도 능력도 없는 사람들이 모든것을 장악할수 밖에 없었고 그런자들은 부정부패하기 까지 했습니다 조선시대에는 원시적이라서 현대적인 체제를 경험하지 못했으니 .. 유재흥 장군은 일본군에서 제대로된 전투경험도 없었고 중대장(대위)를 하다가 그경험으로 한국군의 준장을 하였으며 6.25당시 군단장을 맡았는데 한국군의 장군들은 대부분이 25살 에서 32살이었습니다 경험도없는 어린장군들... 유재흥은 현리전투와 청천강 전투에서 군단을 버리고 도주하였고 군단의 사단장과 병사들은 미군이 준 대포와 트럭 및 온갖 무기와 식량을 버리고 도주하다 전멸에 가까운 참패를 당했교 그래서 한국군의 작전지휘권이 미군으로 넘어가게 된것입니다 사실 당시 젊은 장군들도 한국군을 믿을수 없었던 것이 빨치산 과 좌익들이 설치고 남로당과 군내부에서도 빨치산들이 있었으며 한국군 병사들은 조금만 불안하다 싶으면 명령을 무시하고 너도나도 도망가기 바빴습니다 조선말부터 여러전투에 서 나타나는 조선군들의 현상입니다 동학반군들도 지리산에서 일본군 10명에게 동학군 300명이 쫒겨서 도망가기도 하였고 서양인들과 전투에서도 고개숙이고 엉뚱한데 총질하기 바 빴던것이 한두번이 아닙니다 서양인들의 수많은 기록에 남아있습니다 그러니 ...
@@jeonggeunkim6002 식민사관이 담긴 정성스런글 잘 읽었습니다. 본인은 자각하지 못하겠지만, 조선X들은 이래서 안된다는 식의 부정적인 사건이나 역시 카더라를 써 놓으셨군요. 개전초 대전차 지뢰를 들고 적 탱크를 저지하기 위해 돌진했던 특종조라 불렸던 분들도 있었고, 강원도 춘천 지역을 3일동안 저지하고 오히려 적 2개 연대병력을 몰살시킨 전과도 있습니다. 일부는 님이 말씀하신 말이 맞는 말도 있지만, 진실과 현실은 역시 다를 수도 있습니다. 일본인 장교로 만주에서 1년정도 초년장교로 부역했다는 다카키 마사오라 욕먹는 박정희 대통령과 일본군 하사관으로 몇년을 근무하고도 그 진실을 숨겼던 도요다 다이쥬, 천황폐하라 부르며 재임시에도 고개를 숙여 존경해 마지않았던 대통령, 즉 김대중 대통령에 대한 평가를 달리하는 사람들과 같은 우는 범하지 말아야겠습니다. 그리고 부정적인 면을 살피고 잘못을 바로잡아야지, 확대 재생산은 하지말아야 하지 않을까요? 지금의 러우 전쟁만해도 수많은 사람들이 탈영을하고 도주합니다. 지금도 그런데 그때라고 달랐을까요? 지금 탈영이나 도주하거나 적국에 항복하거나 패전한 러우의 병사들을 3자의 입장에서 보는 사람들이 그 낙오자들을 비난합니까? 전쟁의 참혹함과 진실은 그 전쟁을 격는 사람들만이 알 수 있는 것일 겁니다. 침략당한 전쟁에서 부산까지 밀렸지만, 외세의 도움을 받아 끝까지 싸웠고, 휴전 그 시점까지도 한평의 땅이라도 더 차지하기 위해 목숨을 걸었던 대한의 군인들이 있었기에 지금의 우리가 있는 것이겠지요.
25 전에는 한국에서는 제대로된 장교나 하사관도 없었습니다 일본의 만주 주둔군 소위나 중위 대위들이 해방후 한국에서 고위 장성급을 맏았죠 그들은 만주에 있었기에 중국군 또는 중국공산당군 들과 전투한번 해본적이 없는 사람들이 대부분 이었습니다 그런 사람들이 해방후 한국에 들어와서 20대 후반 나이로 고위 장성직을 맡았고 국방부 장관이나 국방 부도 마찮가지 였습니다 그러니 준비해서 소련군이 지원해준 탱크와 포병까지 앞세워서 쳐들어온 북괴군을 막아낼수 있었겠습니까 미군조차 오산에서 대전까지 밀렸는데 .. 해방후 한국에는 경험도 능력도 없는 사람들이 모든것을 장악할수 밖에 없었고 그런자들은 부정부패하기 까지 했습니다 조선시대에는 원시적이라서 현대적인 체제를 경험하지 못했으니 .. 유재흥 장군은 일본군에서 제대로된 전투경험도 없었고 중대장(대위)를 하다가 그경험으로 한국군의 준장을 하였으며 6.25당시 군단장을 맡았는데 한국군의 장군들은 대부분이 25살 에서 32살이었습니다 경험도없는 어린장군들... 유재흥은 현리전투와 청천강 전투에서 군단을 버리고 도주하였고 군단의 사단장과 병사들은 미군이 준 대포와 트럭 및 온갖 무기와 식량을 버리고 도주하다 전멸에 가까운 참패를 당했교 그래서 한국군의 작전지휘권이 미군으로 넘어가게 된것입니다 사실 당시 젊은 장군들도 한국군을 믿을수 없었던 것이 빨치산 과 좌익들이 설치고 남로당과 군내부에서도 빨치산들이 있었으며 한국군 병사들은 조금만 불안하다 싶으면 명령을 무시하고 너도나도 도망가기 바빴습니다 조선말부터 여러전투에 서 나타나는 조선군들의 현상입니다 동학반군들도 지리산에서 일본군 10명에게 동학군 300명이 쫒겨서 도망가기도 하였고 서양인들과 전투에서도 고개숙이고 엉뚱한데 총질하기 바 빴던것이 한두번이 아닙니다 서양인들의 수많은 기록에 남아있습니다 그러니 ... 다만 월남전에서는 달라졌습니다
울아버지 1932년생인데 6.25터졌을때 만18살, 늘 배고픈 가난에 군대에 자원입대하셨대요. 군대가면 배는 안곯겠지 했는데 제주도에서 지리산에서 전투하며 참 많이 배가 고프셨대요. 같이 군대간 2살위 형님은 저에게는 큰아버지인데 팔공산 전투에서 전사하셨는데 시체도 못찾았다는군요. 아버지가 사는 마을에서 7명의 어린 청년들이 전쟁터에 가 2명이 살아 돌아왔고 울아부지가 그중 한명이었을만큼 운이 좋으셨는데 55살에 암으로 일찍 세상을 뜨셨어요. 근데 술만 드시면 '가랑잎이 휘날리는 전선의 달밤' 으로 시작하는 노래를 부르시고 우리를 못자게 하셨는데 지나보니 그게 다 PTSD였는데 그시대가 참 무식한 시대여서 서로 힘들어하며 그렇게 세월을 보냈습니다
625 전에는 한국에서는 제대로된 장교나 하사관도 없었습니다 일본의 만주 주둔군 소위나 중위 대위들이 해방후 한국에서 고위 장성급을 맏았죠 그들은 만주에 있었기에 중국군 또는 중국공산당군 들과 전투한번 해본적이 없는 사람들이 대부분 이었습니다 그런 사람들이 해방후 한국에 들어 와서 20대 후반 나이로 고위 장성직을 맡았고 국방부 장관이나 국방부도 마찮가지 였습니다 그러니 준비해서 소련군이 지원해준 탱크와 포병 및 전 투기들 수백대 까지 앞세워서 쳐들어온 북괴군을 막아낼수 있었겠습니까 6.25때 북괴군이 대량의 전투기를 운영한 사실을 국민들 대부분이 모릅니 다 그러나 초기에는 있었고 한국군에 큰피해를 주었지만 미국 극동공군에의해서 초기에 대부분이 격추가 되었습니다 러시아 전투기의 성능과 북괴군 조종사의 시력이 미군과는 비교조차 안되었습니다 그러나 지상에서는 미군조차 오산에서 대전까지 밀렸는데 ... 해방후 한국에는 일본군이 군대나 경 찰 행정 고위직을 하다가 물러갔으니 경험도 능력도 없는 사람들이 모든것을 장악할수 밖에 없었고 그런자들은 부정부패하기 까지 했습니다 조선 시대에는 원시적이라서 현대적인 체제를 경험하지 못했으니 ...
625 전에는 한국에서는 제대로된 장교나 하사관도 없었습니다 일본의 만주 주둔군 소위나 중위 대위들이 해방후 한국에서 고위 장성급을 맏았죠 그들은 만주에 있었기에 중국군 또는 중국공산당군 들과 전투한번 해본적이 없는 사람들이 대부분 이었습니다 그런 사람들이 해방후 한국에 들어와서 20대 후반 나이로 고위 장성직을 맡았고 국방부 장관이나 국방 부도 마찮가지 였습니다 그러니 준비해서 소련군이 지원해준 탱크와 포병까지 앞세워서 쳐들어온 북괴군을 막아낼수 있었겠습니까 미군조차 오산에서 대전까지 밀렸는데 .. 해방후 한국에는 경험도 능력도 없는 사람들이 모든것을 장악할수 밖에 없었고 그런자들은 부정부패하기 까지 했습니다 조선시대에는 원시적이라서 현대적인 체제를 경험하지 못했으니 .. 유재흥 장군은 일본군에서 제대로된 전투경험도 없었고 중대장(대위)를 하다가 그경험으로 한국군의 준장을 하였으며 6.25당시 군단장을 맡았는데 한국군의 장군들은 대부분이 25살 에서 32살이었습니다 경험도없는 어린장군들... 유재흥은 현리전투와 청천강 전투에서 군단을 버리고 도주하였고 군단의 사단장과 병사들은 미군이 준 대포와 트럭 및 온갖 무기와 식량을 버리고 도주하다 전멸에 가까운 참패를 당했교 그래서 한국군의 작전지휘권이 미군으로 넘어가게 된것입니다 사실 당시 젊은 장군들도 한국군을 믿을수 없었던 것이 빨치산 과 좌익들이 설치고 남로당과 군내부에서도 빨치산들이 있었으며 한국군 병사들은 조금만 불안하다 싶으면 명령을 무시하고 너도나도 도망가기 바빴습니다 조선말부터 여러전투에 서 나타나는 조선군들의 현상입니다 동학반군들도 지리산에서 일본군 10명에게 동학군 300명이 쫒겨서 도망가기도 하였고 서양인들과 전투에서도 고개숙이고 엉뚱한데 총질하기 바 빴던것이 한두번이 아닙니다 서양인들의 수많은 기록에 남아있습니다 그러니 ...
25 전에는 한국에서는 제대로된 장교나 하사관도 없었습니다 일본의 만주 주둔군 소위나 중위 대위들이 해방후 한국에서 고위 장성급을 맏았죠 그들은 만주에 있었기에 중국군 또는 중국공산당군 들과 전투한번 해본적이 없는 사람들이 대부분 이었습니다 그런 사람들이 해방후 한국에 들어와서 20대 후반 나이로 고위 장성직을 맡았고 국방부 장관이나 국방 부도 마찮가지 였습니다 그러니 준비해서 소련군이 지원해준 탱크와 포병까지 앞세워서 쳐들어온 북괴군을 막아낼수 있었겠습니까 미군조차 오산에서 대전까지 밀렸는데 .. 해방후 한국에는 경험도 능력도 없는 사람들이 모든것을 장악할수 밖에 없었고 그런자들은 부정부패하기 까지 했습니다 조선시대에는 원시적이라서 현대적인 체제를 경험하지 못했으니 .. 유재흥 장군은 일본군에서 제대로된 전투경험도 없었고 중대장(대위)를 하다가 그경험으로 한국군의 준장을 하였으며 6.25당시 군단장을 맡았는데 한국군의 장군들은 대부분이 25살 에서 32살이었습니다 경험도없는 어린장군들... 유재흥은 현리전투와 청천강 전투에서 군단을 버리고 도주하였고 군단의 사단장과 병사들은 미군이 준 대포와 트럭 및 온갖 무기와 식량을 버리고 도주하다 전멸에 가까운 참패를 당했교 그래서 한국군의 작전지휘권이 미군으로 넘어가게 된것입니다 사실 당시 젊은 장군들도 한국군을 믿을수 없었던 것이 빨치산 과 좌익들이 설치고 남로당과 군내부에서도 빨치산들이 있었으며 한국군 병사들은 조금만 불안하다 싶으면 명령을 무시하고 너도나도 도망가기 바빴습니다 조선말부터 여러전투에 서 나타나는 조선군들의 현상입니다 동학반군들도 지리산에서 일본군 10명에게 동학군 300명이 쫒겨서 도망가기도 하였고 서양인들과 전투에서도 고개숙이고 엉뚱한데 총질하기 바 빴던것이 한두번이 아닙니다 서양인들의 수많은 기록에 남아있습니다 그러니 ... 다만 월남전에서는 달라졌습니다
한국에만 포로 수용소가 있었던 게 아니라 북한에도 갇힌 미군과 연합군 포로들이 있었쟎아요. 북중측도 이에 대항해서 고향에 돌아가고 싶지 않은 포로들이 있다는 것을 선전하고 싶었겠죠. 실제로 당시 중공에 자의로? 간 미군포로 러시아로 간 포로들도 소수 존재했습니다. 나중에 미국으로 다시 돌아온 분도 있었지만 그냥 거기서 살다 죽은 분들도 있다죠. 캠프내에서의 공산주의 특유의 선전선동이 아주 집요하고 혹독해서 거기 넘어간 일부가 있다고 하죠. 팟캐에서 들었던 내용에 의하면 그래서 미국인이 당시 중공에 가서 트럭 운전수로 배치되서 살다가 해빙무드 되는 때에 다시 미국 돌아왔다는 얘기하더군요.
625 전에는 한국에서는 제대로된 장교나 하사관도 없었습니다 일본의 만주 주둔군 소위나 중위 대위들이 해방후 한국에서 고위 장성급을 맏았죠 그들은 만주에 있었기에 중국군 또는 중국공산당군 들과 전투한번 해본적이 없는 사람들이 대부분 이었습니다 그런 사람들이 해방후 한국에 들어와서 20대 후반 나이로 고위 장성직을 맡았고 국방부 장관이나 국방 부도 마찮가지 였습니다 그러니 준비해서 소련군이 지원해준 탱크와 포병까지 앞세워서 쳐들어온 북괴군을 막아낼수 있었겠습니까 미군조차 오산에서 대전까지 밀렸는데 .. 해방후 한국에는 경험도 능력도 없는 사람들이 모든것을 장악할수 밖에 없었고 그런자들은 부정부패하기 까지 했습니다 조선시대에는 원시적이라서 현대적인 체제를 경험하지 못했으니 .. 유재흥 장군은 일본군에서 제대로된 전투경험도 없었고 중대장(대위)를 하다가 그경험으로 한국군의 준장을 하였으며 6.25당시 군단장을 맡았는데 한국군의 장군들은 대부분이 25살 에서 32살이었습니다 경험도없는 어린장군들... 유재흥은 현리전투와 청천강 전투에서 군단을 버리고 도주하였고 군단의 사단장과 병사들은 미군이 준 대포와 트럭 및 온갖 무기와 식량을 버리고 도주하다 전멸에 가까운 참패를 당했교 그래서 한국군의 작전지휘권이 미군으로 넘어가게 된것입니다 사실 당시 젊은 장군들도 한국군을 믿을수 없었던 것이 빨치산 과 좌익들이 설치고 남로당과 군내부에서도 빨치산들이 있었으며 한국군 병사들은 조금만 불안하다 싶으면 명령을 무시하고 너도나도 도망가기 바빴습니다 조선말부터 여러전투에 서 나타나는 조선군들의 현상입니다 동학반군들도 지리산에서 일본군 10명에게 동학군 300명이 쫒겨서 도망가기도 하였고 서양인들과 전투에서도 고개숙이고 엉뚱한데 총질하기 바 빴던것이 한두번이 아닙니다 서양인들의 수많은 기록에 남아있습니다 그러니 ... 다만 월남전에서는 달라졌습니다
@@토론배틀tv부끄러울건 또 무엇입니까. 영상에 나오듯 부당한 전쟁에 군대를 보낸 정부와 보내져서 간 군인들을 다른 차원으로 봐야할 것이고, 아버님같이 정당한 보상을 받은 분들은 제 임무를 다하셨으니 존경받아 마땅하지요. 부끄러워해야 할 주체는 제대로 보상하지 않은 당시 정부와 진상규범을 막은 정치권이구요.
박태균 교수님 예전 역사저널 그날에서 정말 인상깊게 뵈었습니다. 여기서 뵈니 정말 기쁘네요. 하시는 말씀이 참 품격이 다르십니다. 진짜 박교수님강의는 지금 한국의 노년층 중년층은 무조건 한번씩 들어야 될것같네요... 베트남참전 용사분들의 보상문제가 아직 시작조차 안됬다는게 너무 충격입니다. TT
625 전에는 한국에서는 제대로된 장교나 하사관도 없었습니다 일본의 만주 주둔군 소위나 중위 대위들이 해방후 한국에서 고위 장성급을 맏았죠 그들은 만주에 있었기에 중국군 또는 중국공산당군 들과 전투한번 해본적이 없는 사람들이 대부분 이었습니다 그런 사람들이 해방후 한국에 들어와서 20대 후반 나이로 고위 장성직을 맡았고 국방부 장관이나 국방 부도 마찮가지 였습니다 그러니 준비해서 소련군이 지원해준 탱크와 포병까지 앞세워서 쳐들어온 북괴군을 막아낼수 있었겠습니까 미군조차 오산에서 대전까지 밀렸는데 .. 해방후 한국에는 경험도 능력도 없는 사람들이 모든것을 장악할수 밖에 없었고 그런자들은 부정부패하기 까지 했습니다 조선시대에는 원시적이라서 현대적인 체제를 경험하지 못했으니 .. 유재흥 장군은 일본군에서 제대로된 전투경험도 없었고 중대장(대위)를 하다가 그경험으로 한국군의 준장을 하였으며 6.25당시 군단장을 맡았는데 한국군의 장군들은 대부분이 25살 에서 32살이었습니다 경험도없는 어린장군들... 유재흥은 현리전투와 청천강 전투에서 군단을 버리고 도주하였고 군단의 사단장과 병사들은 미군이 준 대포와 트럭 및 온갖 무기와 식량을 버리고 도주하다 전멸에 가까운 참패를 당했교 그래서 한국군의 작전지휘권이 미군으로 넘어가게 된것입니다 사실 당시 젊은 장군들도 한국군을 믿을수 없었던 것이 빨치산 과 좌익들이 설치고 남로당과 군내부에서도 빨치산들이 있었으며 한국군 병사들은 조금만 불안하다 싶으면 명령을 무시하고 너도나도 도망가기 바빴습니다 조선말부터 여러전투에 서 나타나는 조선군들의 현상입니다 동학반군들도 지리산에서 일본군 10명에게 동학군 300명이 쫒겨서 도망가기도 하였고 서양인들과 전투에서도 고개숙이고 엉뚱한데 총질하기 바 빴던것이 한두번이 아닙니다 서양인들의 수많은 기록에 남아있습니다 그러니 ...
@@김동욱-i5b 세금은 소득이 있을 때 얼마만큼 내도록 법률 등으로 정해놓았지요. 그런데 월남전 파병 장병 월급에서 그런 식으로 장병들이나 국민들이 납득할만한 정도로 국가가 가져갔나요? 90% 정도 되는 게 납득이 되세요? 로또 당첨금도 그만큼 안 가져가요. 젊은이들이 남의 나라에서 남의 전쟁으로 목숨 바쳤는데 어떻게 그렇게 가져갈 수 있단 겁니까?
보수에는 왜 홍준표, 유승민을 제치고 윤석열을 뽑았느냐 물을 수 있음. 그런데 그가 왜 대통령이 됐는가에 양심이 있으면 본인들이 뉴스타파의 보도를 무시하고 검찰총장에 임명한 것이나 부동산 실패에 대해 얘기해야 재집권 의지가 있는거지 도덕적인 훈계만 하기에는 이명박근혜처럼 보수에서 만든 사람이 아니고 정치적 명분은 진보에서 제공해준 사람이다.
박태균교수님 같은 지성인들이 곳곳에.계셔서 한국은 민주주의. 경제 모두 이루어 낼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삼국 고려 조선에도 민족의 운명을 아름답게 만들어 내고자 한 지성인들과 민중지도자들이 곳곳에 계셨겠지요. 한민족이 이렇게 면면히.이어져 온 이유가 다 있겠지요. 그 모든 분들께 감사합니다
국사를 이런 식으로 배울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지난 화부터 들었던 모든 내용이 다 생소합니다.
박태균 교수님 감사합니다.
저널리스트 유시민님(😉)과 조변호사님, 알릴레오북스 고맙습니다.
국사를 감성과 추론으로 카더라. 진실은 추악할수도 숭고할수도 있습니다.
625 전에는 한국에서는 제대로된 장교나 하사관도 없었습니다 일본의 만주 주둔군 소위나 중위 대위들이 해방후 한국에서 고위 장성급을 맏았죠 그들은 만주에 있었기에 중국군
또는 중국공산당군 들과 전투한번 해본적이 없는 사람들이 대부분 이었습니다 그런 사람들이 해방후 한국에 들어와서 20대 후반 나이로 고위 장성직을 맡았고 국방부 장관이나 국방
부도 마찮가지 였습니다 그러니 준비해서 소련군이 지원해준 탱크와 포병까지 앞세워서 쳐들어온 북괴군을 막아낼수 있었겠습니까 미군조차 오산에서 대전까지 밀렸는데 .. 해방후
한국에는 경험도 능력도 없는 사람들이 모든것을 장악할수 밖에 없었고 그런자들은 부정부패하기 까지 했습니다 조선시대에는 원시적이라서 현대적인 체제를 경험하지 못했으니 ..
유재흥 장군은 일본군에서 제대로된 전투경험도 없었고 중대장(대위)를 하다가 그경험으로 한국군의 준장을 하였으며 6.25당시 군단장을 맡았는데 한국군의 장군들은 대부분이 25살
에서 32살이었습니다 경험도없는 어린장군들... 유재흥은 현리전투와 청천강 전투에서 군단을 버리고 도주하였고 군단의 사단장과 병사들은 미군이 준 대포와 트럭 및 온갖 무기와
식량을 버리고 도주하다 전멸에 가까운 참패를 당했교 그래서 한국군의 작전지휘권이 미군으로 넘어가게 된것입니다 사실 당시 젊은 장군들도 한국군을 믿을수 없었던 것이 빨치산
과 좌익들이 설치고 남로당과 군내부에서도 빨치산들이 있었으며 한국군 병사들은 조금만 불안하다 싶으면 명령을 무시하고 너도나도 도망가기 바빴습니다 조선말부터 여러전투에
서 나타나는 조선군들의 현상입니다 동학반군들도 지리산에서 일본군 10명에게 동학군 300명이 쫒겨서 도망가기도 하였고 서양인들과 전투에서도 고개숙이고 엉뚱한데 총질하기 바
빴던것이 한두번이 아닙니다 서양인들의 수많은 기록에 남아있습니다 그러니 ...
@@jeonggeunkim6002 식민사관이 담긴 정성스런글 잘 읽었습니다.
본인은 자각하지 못하겠지만, 조선X들은 이래서 안된다는 식의 부정적인 사건이나 역시 카더라를 써 놓으셨군요.
개전초 대전차 지뢰를 들고 적 탱크를 저지하기 위해 돌진했던 특종조라 불렸던 분들도 있었고, 강원도 춘천 지역을 3일동안 저지하고 오히려 적 2개 연대병력을 몰살시킨 전과도 있습니다.
일부는 님이 말씀하신 말이 맞는 말도 있지만, 진실과 현실은 역시 다를 수도 있습니다.
일본인 장교로 만주에서 1년정도 초년장교로 부역했다는 다카키 마사오라 욕먹는 박정희 대통령과 일본군 하사관으로 몇년을 근무하고도 그 진실을 숨겼던 도요다 다이쥬, 천황폐하라 부르며 재임시에도 고개를 숙여 존경해 마지않았던 대통령, 즉 김대중 대통령에 대한 평가를 달리하는 사람들과 같은 우는 범하지 말아야겠습니다.
그리고 부정적인 면을 살피고 잘못을 바로잡아야지, 확대 재생산은 하지말아야 하지 않을까요?
지금의 러우 전쟁만해도 수많은 사람들이 탈영을하고 도주합니다. 지금도 그런데 그때라고 달랐을까요?
지금 탈영이나 도주하거나 적국에 항복하거나 패전한 러우의 병사들을 3자의 입장에서 보는 사람들이 그 낙오자들을 비난합니까?
전쟁의 참혹함과 진실은 그 전쟁을 격는 사람들만이 알 수 있는 것일 겁니다.
침략당한 전쟁에서 부산까지 밀렸지만, 외세의 도움을 받아 끝까지 싸웠고, 휴전 그 시점까지도 한평의 땅이라도 더 차지하기 위해 목숨을 걸었던 대한의 군인들이 있었기에 지금의 우리가 있는 것이겠지요.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시청했습니다. 너무 유익한 방송이네요. 박태균교수님 정말 고맙습니다.
한국전쟁은 정말 어려운 공부입니다. 박 선생께 늘 감사하고 있습니다.
25 전에는 한국에서는 제대로된 장교나 하사관도 없었습니다 일본의 만주 주둔군 소위나 중위 대위들이 해방후 한국에서 고위 장성급을 맏았죠 그들은 만주에 있었기에 중국군
또는 중국공산당군 들과 전투한번 해본적이 없는 사람들이 대부분 이었습니다 그런 사람들이 해방후 한국에 들어와서 20대 후반 나이로 고위 장성직을 맡았고 국방부 장관이나 국방
부도 마찮가지 였습니다 그러니 준비해서 소련군이 지원해준 탱크와 포병까지 앞세워서 쳐들어온 북괴군을 막아낼수 있었겠습니까 미군조차 오산에서 대전까지 밀렸는데 .. 해방후
한국에는 경험도 능력도 없는 사람들이 모든것을 장악할수 밖에 없었고 그런자들은 부정부패하기 까지 했습니다 조선시대에는 원시적이라서 현대적인 체제를 경험하지 못했으니 ..
유재흥 장군은 일본군에서 제대로된 전투경험도 없었고 중대장(대위)를 하다가 그경험으로 한국군의 준장을 하였으며 6.25당시 군단장을 맡았는데 한국군의 장군들은 대부분이 25살
에서 32살이었습니다 경험도없는 어린장군들... 유재흥은 현리전투와 청천강 전투에서 군단을 버리고 도주하였고 군단의 사단장과 병사들은 미군이 준 대포와 트럭 및 온갖 무기와
식량을 버리고 도주하다 전멸에 가까운 참패를 당했교 그래서 한국군의 작전지휘권이 미군으로 넘어가게 된것입니다 사실 당시 젊은 장군들도 한국군을 믿을수 없었던 것이 빨치산
과 좌익들이 설치고 남로당과 군내부에서도 빨치산들이 있었으며 한국군 병사들은 조금만 불안하다 싶으면 명령을 무시하고 너도나도 도망가기 바빴습니다 조선말부터 여러전투에
서 나타나는 조선군들의 현상입니다 동학반군들도 지리산에서 일본군 10명에게 동학군 300명이 쫒겨서 도망가기도 하였고 서양인들과 전투에서도 고개숙이고 엉뚱한데 총질하기 바
빴던것이 한두번이 아닙니다 서양인들의 수많은 기록에 남아있습니다 그러니 ... 다만 월남전에서는 달라졌습니다
반드시 소장하고 읽어야할 책인것 같습니다. 한국인으로서 현재의 나의 존재를 이해할 수 있고 그것은 내 삶과 따로 떼어질 수 없을테니까요. 귀한 시간 감사합니다. 바로 구입합니다!
조수진님은 늘 ‘모르는 사람’의 입장에서 부끄러움 없는 호기심과 알아가는 감탄으로 진행하십니다. 정말 적어도 책으로 갖는 대담에서는 최고에요. 국회의원이 됐어도 잘 하셨겠지만 알리레오 북스의 애청자로서는 참으로 다행입니다!
아 정말 행복해진다... 이렇게 수월하게 익힐 수 있음에 제작진과 출연진 노무현재단에 깊이 감사드립니다.
아이고 고맙습니다😍
↟↖️
근데 어째서 부엉이 바위에서 뛰어 내렸을까
@@엄윤호-y7d에효 …
[이슈 한국사] 10년전에 읽었는데 저자가 나와서 설명하니 더 재미 있고 새롭네요
박태균님의[한국 전쟁],[베트남 전쟁]도 읽었습니다 강추합니다
박태균교수님으롱부터
한국전쟁과 베트남전쟁의 이면을 잘 알게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정말 멋진 토론입니다. 동북아 문제인 줄 알았는데, 유로시아 문제이고, 동남아 문제이고, 결과적으로 세계적 문제로 다뤄졌던 우리의 '존재'. 세계속의 우리의 존재에 대한 정체성을 좀 더 심층깊게 스스로 돌이켜볼 필요가 있던 편입니다. 감사합니다.
유 선생님 말씀에 동감합니다. 웃픈 일이죠. 전작권 환수가 안 된 게 지금으로선 정말 다행이라니...
교수님 잘 듣겠습니다
유시민 작가님 조 변호사님 늘 감사합니다
소중한 방송 감사합니다! 박태균 교수님❤
4:20
어렵고 지루할 수 있는 역사 주제로 재밌게 풀어주셔서 고맙습니다. 지난주 들으면서 막 불끈불끈 열 받았어요 ㅠㅠㅠ 이승만 ㅠㅠㅠ
울아버지 1932년생인데 6.25터졌을때 만18살, 늘 배고픈 가난에 군대에 자원입대하셨대요. 군대가면 배는 안곯겠지 했는데 제주도에서 지리산에서 전투하며 참 많이 배가 고프셨대요.
같이 군대간 2살위 형님은 저에게는 큰아버지인데 팔공산 전투에서 전사하셨는데 시체도 못찾았다는군요.
아버지가 사는 마을에서 7명의 어린 청년들이 전쟁터에 가 2명이 살아 돌아왔고 울아부지가 그중 한명이었을만큼 운이 좋으셨는데 55살에 암으로 일찍 세상을 뜨셨어요.
근데 술만 드시면 '가랑잎이 휘날리는 전선의 달밤' 으로 시작하는 노래를 부르시고 우리를 못자게 하셨는데 지나보니 그게 다 PTSD였는데 그시대가 참 무식한 시대여서 서로 힘들어하며 그렇게 세월을 보냈습니다
그 당시를 겪으신 분들은 트라우마로 술에 쩔어 사신분들 많았죠.. 저희 큰아버지도 50대 초에 가셨어요..
625 전에는 한국에서는 제대로된 장교나 하사관도 없었습니다 일본의 만주 주둔군 소위나 중위 대위들이 해방후 한국에서 고위 장성급을 맏았죠
그들은 만주에 있었기에 중국군 또는 중국공산당군 들과 전투한번 해본적이 없는 사람들이 대부분 이었습니다 그런 사람들이 해방후 한국에 들어
와서 20대 후반 나이로 고위 장성직을 맡았고 국방부 장관이나 국방부도 마찮가지 였습니다 그러니 준비해서 소련군이 지원해준 탱크와 포병 및 전
투기들 수백대 까지 앞세워서 쳐들어온 북괴군을 막아낼수 있었겠습니까 6.25때 북괴군이 대량의 전투기를 운영한 사실을 국민들 대부분이 모릅니
다 그러나 초기에는 있었고 한국군에 큰피해를 주었지만 미국 극동공군에의해서 초기에 대부분이 격추가 되었습니다 러시아 전투기의 성능과 북괴군
조종사의 시력이 미군과는 비교조차 안되었습니다 그러나 지상에서는 미군조차 오산에서 대전까지 밀렸는데 ... 해방후 한국에는 일본군이 군대나 경
찰 행정 고위직을 하다가 물러갔으니 경험도 능력도 없는 사람들이 모든것을 장악할수 밖에 없었고 그런자들은 부정부패하기 까지 했습니다 조선
시대에는 원시적이라서 현대적인 체제를 경험하지 못했으니 ...
625 전에는 한국에서는 제대로된 장교나 하사관도 없었습니다 일본의 만주 주둔군 소위나 중위 대위들이 해방후 한국에서 고위 장성급을 맏았죠 그들은 만주에 있었기에 중국군
또는 중국공산당군 들과 전투한번 해본적이 없는 사람들이 대부분 이었습니다 그런 사람들이 해방후 한국에 들어와서 20대 후반 나이로 고위 장성직을 맡았고 국방부 장관이나 국방
부도 마찮가지 였습니다 그러니 준비해서 소련군이 지원해준 탱크와 포병까지 앞세워서 쳐들어온 북괴군을 막아낼수 있었겠습니까 미군조차 오산에서 대전까지 밀렸는데 .. 해방후
한국에는 경험도 능력도 없는 사람들이 모든것을 장악할수 밖에 없었고 그런자들은 부정부패하기 까지 했습니다 조선시대에는 원시적이라서 현대적인 체제를 경험하지 못했으니 ..
유재흥 장군은 일본군에서 제대로된 전투경험도 없었고 중대장(대위)를 하다가 그경험으로 한국군의 준장을 하였으며 6.25당시 군단장을 맡았는데 한국군의 장군들은 대부분이 25살
에서 32살이었습니다 경험도없는 어린장군들... 유재흥은 현리전투와 청천강 전투에서 군단을 버리고 도주하였고 군단의 사단장과 병사들은 미군이 준 대포와 트럭 및 온갖 무기와
식량을 버리고 도주하다 전멸에 가까운 참패를 당했교 그래서 한국군의 작전지휘권이 미군으로 넘어가게 된것입니다 사실 당시 젊은 장군들도 한국군을 믿을수 없었던 것이 빨치산
과 좌익들이 설치고 남로당과 군내부에서도 빨치산들이 있었으며 한국군 병사들은 조금만 불안하다 싶으면 명령을 무시하고 너도나도 도망가기 바빴습니다 조선말부터 여러전투에
서 나타나는 조선군들의 현상입니다 동학반군들도 지리산에서 일본군 10명에게 동학군 300명이 쫒겨서 도망가기도 하였고 서양인들과 전투에서도 고개숙이고 엉뚱한데 총질하기 바
빴던것이 한두번이 아닙니다 서양인들의 수많은 기록에 남아있습니다 그러니 ...
@@jeonggeunkim6002 그렇다고 아무 군경험없는
사람을 장교를 시킬수는없쟎아요 ? 그것도 전쟁통에
너무 마음이아픕니다 ㅠㅠ 평생을 괴로워하셨겠죠 그 시절을 지낸분들중 제정신인사람이 몇이나 될까요
역사는 다른 과목과 달리 가르치는 사람이 어떤 사상을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 배우는 사람들의 의식을 지배 할 수 있는데 박태균 교수님의 지식 뿐만 아니라 건강한 의식이 배우는 학생들에게 전달 될수 있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25 전에는 한국에서는 제대로된 장교나 하사관도 없었습니다 일본의 만주 주둔군 소위나 중위 대위들이 해방후 한국에서 고위 장성급을 맏았죠 그들은 만주에 있었기에 중국군
또는 중국공산당군 들과 전투한번 해본적이 없는 사람들이 대부분 이었습니다 그런 사람들이 해방후 한국에 들어와서 20대 후반 나이로 고위 장성직을 맡았고 국방부 장관이나 국방
부도 마찮가지 였습니다 그러니 준비해서 소련군이 지원해준 탱크와 포병까지 앞세워서 쳐들어온 북괴군을 막아낼수 있었겠습니까 미군조차 오산에서 대전까지 밀렸는데 .. 해방후
한국에는 경험도 능력도 없는 사람들이 모든것을 장악할수 밖에 없었고 그런자들은 부정부패하기 까지 했습니다 조선시대에는 원시적이라서 현대적인 체제를 경험하지 못했으니 ..
유재흥 장군은 일본군에서 제대로된 전투경험도 없었고 중대장(대위)를 하다가 그경험으로 한국군의 준장을 하였으며 6.25당시 군단장을 맡았는데 한국군의 장군들은 대부분이 25살
에서 32살이었습니다 경험도없는 어린장군들... 유재흥은 현리전투와 청천강 전투에서 군단을 버리고 도주하였고 군단의 사단장과 병사들은 미군이 준 대포와 트럭 및 온갖 무기와
식량을 버리고 도주하다 전멸에 가까운 참패를 당했교 그래서 한국군의 작전지휘권이 미군으로 넘어가게 된것입니다 사실 당시 젊은 장군들도 한국군을 믿을수 없었던 것이 빨치산
과 좌익들이 설치고 남로당과 군내부에서도 빨치산들이 있었으며 한국군 병사들은 조금만 불안하다 싶으면 명령을 무시하고 너도나도 도망가기 바빴습니다 조선말부터 여러전투에
서 나타나는 조선군들의 현상입니다 동학반군들도 지리산에서 일본군 10명에게 동학군 300명이 쫒겨서 도망가기도 하였고 서양인들과 전투에서도 고개숙이고 엉뚱한데 총질하기 바
빴던것이 한두번이 아닙니다 서양인들의 수많은 기록에 남아있습니다 그러니 ... 다만 월남전에서는 달라졌습니다
팩트로 승부하는 역사학자.......멋집니다.
교수님을 이곳에서 뵐수있어 너무 행복합니다
명불허전 유작가님의 신간ᆢ
현재 베스트셀러 1위
잘 읽고 있습니다
샤방샤방 조변님 사랑합니다
박태균 교수님 때문에 역전다방에서 정말 많이 배웠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늘 어디에 있으시던 건강하세요 어디에 계시던 응원합니다. 늘 교수님 볼 생각에 수요일이 좋았는데 지금도 너므 그립고 보고싶습니다.
감사합니다 바로알게 되었습니다 너무나 소중한 방송입니다 존경하는 세분 모두 응원합니다👍👍👍👍💙💙💙💙
정말 모르는 부분을 알게되서 다행이도 감사 합니다.평소에도 역사를 좋아 해서 관심을 가지고 듣고 배우고 읽고 하는 분야인데 또 이렇게 배우네요..존경하는 분들께 배움은 늘 고맙고 대행이다 라고 생각합니다
포로문제가 이정도로 복잡할 줄은 몰랐네요. 지금까지 단순히 포로들을 본국으로 돌려보내는게 그렇게 어려운일인가 라고만 생각했어요.
@@kl-dp2qv지금 상영중인 뉴스타파가 제작한 영화 판문점이 이 포로문제 잘 다루고 있어서 유익했습니다 강추합니다 !
덕분에 저희도 많이 공부했습니다.
한국에만 포로 수용소가 있었던 게 아니라 북한에도 갇힌 미군과 연합군 포로들이 있었쟎아요. 북중측도 이에 대항해서 고향에 돌아가고 싶지 않은 포로들이 있다는 것을 선전하고 싶었겠죠. 실제로 당시 중공에 자의로? 간 미군포로 러시아로 간 포로들도 소수 존재했습니다. 나중에 미국으로 다시 돌아온 분도 있었지만 그냥 거기서 살다 죽은 분들도 있다죠. 캠프내에서의 공산주의 특유의 선전선동이 아주 집요하고 혹독해서 거기 넘어간 일부가 있다고 하죠. 팟캐에서 들었던 내용에 의하면 그래서 미국인이 당시 중공에 가서 트럭 운전수로 배치되서 살다가 해빙무드 되는 때에 다시 미국 돌아왔다는 얘기하더군요.
박교수님 정말 팬입니다 😊
저희 아버지 고엽제 후유증으로 췌장암으로 25년 전에 돌아가셨어요.. ㅠ 말씀 듣다보니 너무 한스럽고 화가납니다.. 그분들의 죽음은 정말 개죽음밖에 안되네요.. 하 ...
@@얄리얄리-s6u 췌장암이 고엽제 후유증이라는 말은 또 첨 들어보네요.. 췌장암이 고엽제 후유증이라는 근거는 어디서 찿아볼수 있을까요? 댁이 지금 못먹고 못사는 이유도 파월해서 인가요??
6.25전쟁 정전협정의 진짜 의미, 베트남전쟁에 대한 부끄러운 인식.. 많이 배웠습니다.
625는 북이 반격한 날짜를 의미합니다
625전에도 내전은 있었음
우크라도 14년부터 내전이 있었음 ~ 근데 22년 침략으로 가르침 ㅋㅋ
한마디로 세뇌
625 전에는 한국에서는 제대로된 장교나 하사관도 없었습니다 일본의 만주 주둔군 소위나 중위 대위들이 해방후 한국에서 고위 장성급을 맏았죠 그들은 만주에 있었기에 중국군
또는 중국공산당군 들과 전투한번 해본적이 없는 사람들이 대부분 이었습니다 그런 사람들이 해방후 한국에 들어와서 20대 후반 나이로 고위 장성직을 맡았고 국방부 장관이나 국방
부도 마찮가지 였습니다 그러니 준비해서 소련군이 지원해준 탱크와 포병까지 앞세워서 쳐들어온 북괴군을 막아낼수 있었겠습니까 미군조차 오산에서 대전까지 밀렸는데 .. 해방후
한국에는 경험도 능력도 없는 사람들이 모든것을 장악할수 밖에 없었고 그런자들은 부정부패하기 까지 했습니다 조선시대에는 원시적이라서 현대적인 체제를 경험하지 못했으니 ..
유재흥 장군은 일본군에서 제대로된 전투경험도 없었고 중대장(대위)를 하다가 그경험으로 한국군의 준장을 하였으며 6.25당시 군단장을 맡았는데 한국군의 장군들은 대부분이 25살
에서 32살이었습니다 경험도없는 어린장군들... 유재흥은 현리전투와 청천강 전투에서 군단을 버리고 도주하였고 군단의 사단장과 병사들은 미군이 준 대포와 트럭 및 온갖 무기와
식량을 버리고 도주하다 전멸에 가까운 참패를 당했교 그래서 한국군의 작전지휘권이 미군으로 넘어가게 된것입니다 사실 당시 젊은 장군들도 한국군을 믿을수 없었던 것이 빨치산
과 좌익들이 설치고 남로당과 군내부에서도 빨치산들이 있었으며 한국군 병사들은 조금만 불안하다 싶으면 명령을 무시하고 너도나도 도망가기 바빴습니다 조선말부터 여러전투에
서 나타나는 조선군들의 현상입니다 동학반군들도 지리산에서 일본군 10명에게 동학군 300명이 쫒겨서 도망가기도 하였고 서양인들과 전투에서도 고개숙이고 엉뚱한데 총질하기 바
빴던것이 한두번이 아닙니다 서양인들의 수많은 기록에 남아있습니다 그러니 ... 다만 월남전에서는 달라졌습니다
저희 어버지는 베트남참전했고 고엽제로 돌아가셨어요...보상은 없었습니다...너무 늦었지만 진상규명 꼭 필요한것 같아요...
저희 아버님께서 고엽제 피해를 인정받으셔서 누렸던 호사에 부끄러워집니다, 선생님의 부친께서도 동등히 누렸어야 할 부분이 누군가의 탐욕의 결과로 사라져버린 부분에 유감을 표합니다. 고인의 명복을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저희 아버지도 고엽제 피해로 돌아가셨는데.. 그 전에 제대시점에서 국가유공자가 되셔서 연금인상등의 보상이 있었습니다만 2년만에 돌아가셨죠.
맞습니다.
@@토론배틀tv부끄러울건 또 무엇입니까. 영상에 나오듯 부당한 전쟁에 군대를 보낸 정부와 보내져서 간 군인들을 다른 차원으로 봐야할 것이고, 아버님같이 정당한 보상을 받은 분들은 제 임무를 다하셨으니 존경받아 마땅하지요. 부끄러워해야 할 주체는 제대로 보상하지 않은 당시 정부와 진상규범을 막은 정치권이구요.
@@lupin9305 부당한 전쟁이라니요. 민주주의 이념 수호를 위한 전쟁의 파병이었고, 그로인해 우리나라가 좀더 부강해지는 계기가 된 전쟁입니다. 피흘려 쓰러져간 대한의 건아들을 부당한 전쟁의 일원으로 폠훼하지 않았으면합니다.
박태균 교수님 좋습니다 ㅎㅅㅎ
역전다방 계속 하셨으면 좋았을텐데 반갑고 아쉽습니다
매년 10조 이상을 미국에 뜯기는데 ㅋㅋ군주권은 왜 계속 가지고 있을까??
그냥 미국을 위한 미국만을 위한 썰을 푸는 사람이네요
박태균교수님, 감사합니다.
너무 유익합니다 이런 최고의 지식인분들의 대화를 편하게 들을 수 있다니 너무 좋습니다
박태균 교수님... 깊이있는 한국전쟁과 월남참전사 공부 잘했습니다. 감사합니다.
지금껏 알고 있던 우리의 전쟁 이야기는 빙산의 일각이었단 생각이 드네요.
유익한 시간 만들어주신 세 분께 감사할 따름...😊
한국현대사민간교과서. 읽어보고나서 정말 동감합니다. 개정판도 기대합니다.
유 형님 새 책 구매했습니다. 기다림이 설렘이네요. 돈 쓰고 기분 좋을 때가 제일 행복해요 !
감사드립니다 🙏
응원합니다
좋아요 수고 하십니다 항상 응원 합니다
베트남 전쟁의 진상과 한국군 참전에 대한 우리의 성찰이 이제 정말 필요한 것 같습니다.
이제 월남 참전 군인들도 굉장히 고령화 되어서
다 떠나고 진상규명해봐야 효과가 반감 됩니다.
늦었지만, 마지막 기회라 생각하고 당장 국가적 차원에서 규명해야합니다.
절대 못하죠 주권이없는데
@@conatus1521 50년전 일에 대해서 진상규명해서 미국한테 돈받아서 건설한 포철 경부고속도로 이런거 원상복구 하시게?? 파월을 해서 그 희생으로 후손들이 배부르고 등따숩고 살고 있는데,, 배부르고 등따숩게 만들었더니, 인민재판 하자는 거니?? 그런거 따지지 말고 니그조상 일제시대 조선시대때 머했는지 고하고 인민재판함 해보자.. 생각이 없어도 졸 없는것들이 설쳐대는 세상이 됐으니 .. 참네..
이런 주제가 좋네요~
재미있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박태균 교수님 예전 역사저널 그날에서 정말 인상깊게 뵈었습니다. 여기서 뵈니 정말 기쁘네요.
하시는 말씀이 참 품격이 다르십니다.
진짜 박교수님강의는 지금 한국의 노년층 중년층은 무조건 한번씩 들어야 될것같네요...
베트남참전 용사분들의 보상문제가 아직 시작조차 안됬다는게 너무 충격입니다. TT
값진 강의 잘 들었습니다
감사합니다
도움이 되셨다니 다행입니다.
이분이 찐이구나! 😊
좋은시간이였습니다
눈물이 난다... 베트남전 관련.... 늘 하고싶던 말인데.... 이런 논점과 매락이 빨리 전 국민에게 퍼지길.....😅
조변의 진행 넘 맛갈나요
정치판 보단 더 어울립니다
팟팅^^♡♡
사실을 사실대로, 알아야 할 것을 알려주는, 알릴레오 북스! 사랑합니다.
오늘 유시민작가님 말씀대로 박태균교수가 쓴 민간교과서(이슈 한국사)사러 서점에 들릴까 합니다 책과는 넘사벽처럼 쌓고 살앗는데 이제는 허무를 때가 온거 같네요
박태균 역사학자의 좋은 책들을 자주 읽고 싶네요. 고맙습니다. 책 사서 보겠습니다.
정말 좋은 채널, 진짜 강의와 지식들.
훌륭한 내용에 또다시 감동받고 선물받은 느낌이 듭니다.
대담같은 책읽기에 역사를 관통하는 통찰까지...
사랑하고 감사합니다~
너무나 유익한 시간! 고맙습니다.
일반인이 알 수 없었던 부분들을 알려주심으로 퍼즐이 맞춰지는 느낌입니다,감사합니다!!!♡♡♡
전시작전권때문에
존심상한다는 유시민작가님
표정이 개구져ㅎ 웃겼어요
알릴레오가있어 주말이
행복합니다
조근조근 설명해주신
박태균교수님
감사합니다
유익한 한국사 이야기들이 좋네요!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역사를 제대로 알수있는 프로그램 너무 재밌게 듣고 감사합니다
너무나 좋은강의 정말 감사합니다
모르는 부분, 미쳐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하고
많이 배웠습니다
정말 모든 국민들이 함께
봤으면 좋겠는데
그렇지못한 현실이 안타깝습니다
판문점을 보기 전에 봤으면 좋았을 내용이네요! 유익한 내용을 이렇게 편하게 들을 수 있다니 너무 감사할 뿐입니다..💛
많이 배웠습니다. 다시 깊히 생각해 보게 되어 뜻 깊은 시간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배트남전우로써 고엽제 로 고생하며 제돼로 보상도 받지 못하고 힘들게 살아온날이 ' 하여간 감사드립니다 얄아주신 분이 계셔서 행복합니다 댕 큐 써
국방티비 역전다방에 박태균 교수님 계속 나오셨어야 하는데... 너무 군사 관점으로 치우쳐 있어서 역사적 의미를 다루지 못하는 것이 너무 안타깝더라구요. 오늘 알릴레오는 역전다방 한국전쟁편의 부족헌 부분을 채워주는 거 같아요^^
민간 역사교과서!! 박태균교수 책 모두 읽어보고 싶어졌다
너무 감명깊게 영상을봐서
책을 구매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잘 읽겠습니다. ^^
작전통수권이 우리 정부에 없다는것에 안심을 하게되는 작금의 현실이 씁쓸합니다 ㅠㅠ
625 전에는 한국에서는 제대로된 장교나 하사관도 없었습니다 일본의 만주 주둔군 소위나 중위 대위들이 해방후 한국에서 고위 장성급을 맏았죠 그들은 만주에 있었기에 중국군
또는 중국공산당군 들과 전투한번 해본적이 없는 사람들이 대부분 이었습니다 그런 사람들이 해방후 한국에 들어와서 20대 후반 나이로 고위 장성직을 맡았고 국방부 장관이나 국방
부도 마찮가지 였습니다 그러니 준비해서 소련군이 지원해준 탱크와 포병까지 앞세워서 쳐들어온 북괴군을 막아낼수 있었겠습니까 미군조차 오산에서 대전까지 밀렸는데 .. 해방후
한국에는 경험도 능력도 없는 사람들이 모든것을 장악할수 밖에 없었고 그런자들은 부정부패하기 까지 했습니다 조선시대에는 원시적이라서 현대적인 체제를 경험하지 못했으니 ..
유재흥 장군은 일본군에서 제대로된 전투경험도 없었고 중대장(대위)를 하다가 그경험으로 한국군의 준장을 하였으며 6.25당시 군단장을 맡았는데 한국군의 장군들은 대부분이 25살
에서 32살이었습니다 경험도없는 어린장군들... 유재흥은 현리전투와 청천강 전투에서 군단을 버리고 도주하였고 군단의 사단장과 병사들은 미군이 준 대포와 트럭 및 온갖 무기와
식량을 버리고 도주하다 전멸에 가까운 참패를 당했교 그래서 한국군의 작전지휘권이 미군으로 넘어가게 된것입니다 사실 당시 젊은 장군들도 한국군을 믿을수 없었던 것이 빨치산
과 좌익들이 설치고 남로당과 군내부에서도 빨치산들이 있었으며 한국군 병사들은 조금만 불안하다 싶으면 명령을 무시하고 너도나도 도망가기 바빴습니다 조선말부터 여러전투에
서 나타나는 조선군들의 현상입니다 동학반군들도 지리산에서 일본군 10명에게 동학군 300명이 쫒겨서 도망가기도 하였고 서양인들과 전투에서도 고개숙이고 엉뚱한데 총질하기 바
빴던것이 한두번이 아닙니다 서양인들의 수많은 기록에 남아있습니다 그러니 ...
박태균 교수님 버치문서와 해방정국 책도 구매 해서 잘 읽고 있습니다. 책 두 권 모두 너무 좋아요🥰
이번 방송은 정말 감사합니다.
진짜 몰랐던 부분이 많았네요.
유익했습니다.
덕분에 좋은 공부가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반평생 ㅡ까막눈이었는데 이로써 한걸음 나가보내요.
감사합니다.
영상을 쭈~욱 시청하고 나서 드는 생각은 한가지네요
'감사합니다'
박태균 교수님 개정판 빨리 내주세요.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베트남전에 참전했던 어르신 한분아는데 트라우마가 평생을 간다하시며 힘들어하시더라구요
아직도 살라계신 참전군인분들에게 지원이 필요하다고 생각이드네요
미국에서 준 전투금을 정부가 착복하고 10분의1 만 줬다는 기록을 본적이 있어요
이후 유신헌법에 이중배상 금지조항을 넣어놔서 배트남전 참전 용사들이 보상 못받게 하려고 했죠 그게 지금까지 남아있습니다
그 돈으로 국가 발전에 사용 했다고 했었죠..권력자가 개인적으로 사용 했으면 문제가 되지만 공공을 위해 사용 했으면 괜찬다고 봅니다 다만 그 참전용사분들께는 합당한 보상을 해줬어야 했는데, 그게 없다는게 잘못 된거죠
@@김동욱-i5b목숨 걸고 받은 월급을 공공을 위해 쓰는 게 옳다니~당신 월급도 공공을 위해 90% 써보자구요
@@양준수-r9u 세금도 같은 개념인데, 땀 흘려 번 돈으로 세금 왜 내요? 님은 세금 내지 마세요 대신 공공시설물 고속도로 공원 도로 다 쓰지마셈
@@김동욱-i5b 세금은 소득이 있을 때 얼마만큼 내도록 법률 등으로 정해놓았지요. 그런데 월남전 파병 장병 월급에서 그런 식으로 장병들이나 국민들이 납득할만한 정도로 국가가 가져갔나요? 90% 정도 되는 게 납득이 되세요? 로또 당첨금도 그만큼 안 가져가요. 젊은이들이 남의 나라에서 남의 전쟁으로 목숨 바쳤는데 어떻게 그렇게 가져갈 수 있단 겁니까?
너무 유익한 시간이었습니다
박태균 교수님 감사합니다
오늘도 잘듣겠습니다.
제가 시골에서 나무가지 죽이는 제초제를 뿌려서 압니다만,얼마나 독한 화학물질이냐면,뿌리다가 감나무에 조금 묻었는데 35년이 넘은 지금도 약을 맞은 그감나무는
지금도 크지도 않고 나무잎과열매까지도 형태가 쪼글쪼글 하게 열립니다.
박태균 교수님 이야기 할 기회를 좀 주세요, 말 끊어서 얘기를 제대로 들을수 없네요
베트남전의 실상을 더 구체적으로 알게 해주신 박태균교수님께 감사드립니다
6.25에 대해서도 그렇고요
개정판, 기대합니다
누가 그를 대통령으로 만들었나? 그를 대통령으로 만든 그 집단은 지금 행복한가? 모두가 고통에 빠진 대한민국
보수에는 왜 홍준표, 유승민을 제치고 윤석열을 뽑았느냐 물을 수 있음. 그런데 그가 왜 대통령이 됐는가에 양심이 있으면 본인들이 뉴스타파의 보도를 무시하고 검찰총장에 임명한 것이나 부동산 실패에 대해 얘기해야 재집권 의지가 있는거지 도덕적인 훈계만 하기에는 이명박근혜처럼 보수에서 만든 사람이 아니고 정치적 명분은 진보에서 제공해준 사람이다.
김진표 회고록이 오늘 화제이던데 문이 추 윤 둘다 해임하든지 적어도 윤은 잘랐어야 했다..
@@nationalroad123 남탓 할 필요 없음. 국민이 어리석고 그 정도 수준이라서 그럼. 이글에 달린 댓들만 봐도 이 나라 국민들이 얼마나 무지한지 답 나옴.
@@user-bns699단편적으로말하지마세요.
그런식으로말하면애초에검찰총장을만든게잘못이지요.이제와머언소용이있어요.
누군긴 누굽니까? 국민이 만들어줬죠 ㅋㅋㅋㅋ 이걸 남 탓하는 건 그냥 민주주의를 부정하는 거.
한국전쟁 이해하는데 다큐 '판문점' 강추합니다. 박태균교수의 '이슈 한국사'도 꼭 읽어보겠습니다.
잘 들었습니다 감사합니다 😂
잘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교수님의 한국사랑이 감동적이네요
이번에 너무 재미있어요! 바로 서점에서 책 사갑니다 !!!
박태균교수님 같은 지성인들이 곳곳에.계셔서 한국은 민주주의. 경제 모두 이루어 낼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삼국 고려 조선에도 민족의 운명을 아름답게 만들어 내고자 한 지성인들과 민중지도자들이 곳곳에 계셨겠지요. 한민족이 이렇게 면면히.이어져 온 이유가 다 있겠지요. 그 모든 분들께 감사합니다
좋은책 소개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읽어봐야겠어요!
재미와 감동을 동시에 준 강의
감사합니다. 많이 배웠습니다.
박태균 원장님 역전다방에서 잘 보고 있었는데 갑작스레 그만둬서 아쉬웠는데 여기서 뵙니 반갑네요 ㅎㅎ
저는 책읽기 1일 입니다 초6 딸아이와 읽고싶어요 저도 지적인 활동으로.행복해지고 싶어요
오늘도 굿 지식인으로부터 배웠다.감사해요.
" * 이슈 한국사 ~~ 박태균 * "
- 杵 者 님 -
🎉 고맙습니다 👋 🎆 💕
6.25가 신이 일본에 내린 선물이라고. 떠들고 다니면 우리가 기분좋을까. 정말 공감 가네요..
정말 유익한 대담.. 감사히 잘 들었습니다.
박교수님의 명쾌한 해설 잘 들었습니다
결국 다 군인들 목숨값으로 나라가 이익을 챙긴게 된거군요. ㅠ.
참전군인 분들에 대한 예우와 보상이 필요합니다.
감사합니다❤
유시민 선생님은 박교수님의 담백한 이야기를 종종 자기 중심으로 몰고가려는 느낌
박교수다 당황했을듯
기다렸습니다!!
언제나 감사합니다!
공감합니다^^
한국전쟁은 단순하게 625로만 접근할게 아니라 동아시아 30년전쟁사를 함께보면 좀더 이해가 잘 되더라고요~~~도올 동아시아 30년 전쟁사
뉴욕에 사는 학부모인데 너무 좋은 책같은데 혹시 책내용을 영어로 볼수있는 곳이 있을까요? 저희아이가 한국 근대사에 혹이심이 많아서요. 그리고 외국에 사는 한국아이들은 필독해야 할듯합니다.
@@sadoyah 호기심
조수진 변호사님 안경 쓰시니까 지적인 이미지가 더해져 미모가 빛을 발합니다. 안경 계속 착용해 주세요.
새로운 사실을 알았습니다. 교수님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아 참 들을만한 대화였습니다!
교수님 강의한번 들어보고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