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철학과굴뚝청소부]알튀세르1편 과학적 맑스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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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Опубликовано: 20 сен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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Комментарии • 5

  • @london3843
    @london3843 4 года назад +1

    알튀세르 구조쥬의 넘 어려워여

    • @jongilj
      @jongilj  4 года назад +1

      저도 어렵네요 ㅜ ㅜ 더 쉽게 이해할수 있도록 더 공부하려구요

  • @user-uz9ge5yx7d
    @user-uz9ge5yx7d 5 лет назад +1

    저는 알튀세르를 좋아하지 않아요. 저는 맑스주의자인데 알튀세르를 좋아하지 않아요. 알튀세르는 제 철학에서는 맑스적이지 않아서요. 저 대학때 알튀세르를 PD운동권에 소개하신 분이 이진경님인데 정말 싫었습니다. 저는 구조주의자입니다. 맑스의 구조주의와 알튀세르의 구조주의는 같은 단어를 사용하지만 사실은 전혀 다른 단어라고 생각합니다. 맑스는 포이에르바하에 관한 테제에서, 그리고 고타강령 비판에서 "노동은 신성하지 않다."라고 일갈하면서 자신의 첫 저작활동인 독일이데올로기 시절부터, 공산당 선언을 작성했을 때부터 일관되게 그렇게 말했다고 술회합니다. 맑스는 자기파괴, 자기 부정을 위한 실천을 통해서 주체를 발견할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맑스의 사유는 얼핏 헤겔의 유물변증법에 일치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헤겔이 신성에 복무하고 마는 그 결론을, 칸트의 그 결론을, 그것들을 관통하기 위한 힘을 시간이라는, 사적 진입, 사적 인식을 통해서, 그러한 시간에 편승한 인간의 인식만이 자유를 얻을 수 있고, 공동체와의 동질감, 공동체의 발전을 꾀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이 사유는 니체의 사유와도 너무나 일치합니다. 이 사유는 베르그송의 사유에서도 엿보이고요. 에리히 프롬이 사랑받기를 포기하고 사랑하기에만 집중하자고 주장하는 것, 그러면서 스스로가 "내가 맑스의 적전제자다!"라고 말하는 것에서. 맑스의 인식론에서, 그러니까 헤겔과 다른 맑스의 유물변증법은 헤겔이 관념에 그치는 유물이지만, 맑스는 스피노자와 마찬가지로 인간의 감정은 물질을 토대로 발생한다는 동양 성리학적 관념을 지니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말이 길어졌네요. 그래서...어쨌든 저는 알튀세르가 싫어요. 맑스주의의 현상에 대한 반현상으로써 맑스를 인식하는 순간, 맑스는 거기에 갇히니까요. 맑스는 확정된 것, 그리고 확정화되려는 것들을 모두 부수려고 하는 인식을 가졌는데요. 그래서 모두가 동의할 수 있는 것은 가장 미분화된 것을 제시하자는 시도로 자본론을 저술하자고 한 것이고요. 이 주장은 푸코가 담론의 방식으로 시도했고, 아도르노가 푸코의 연구성과를 알고서 그게 맞다고 인정한 것이고, 네그리가 감옥에서 출소하고 아우또노미아를 주장하면서 동의한 것이기도 하고요. 이 드러냄으로써, 제대로 드러냄으로써 맑스주의의 시작을 이해해야만 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알튀세르가 싫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