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종로구 윤동주문학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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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Опубликовано: 14 дек 2024
  • 윤동주는 연희전문에 재학하던 시절, 벗이자 후배인 정병욱과 함께 종로구 누상동 소설가 김송 집에서 하숙하였다. 종로구는 윤동주가 잠시 거처하였던 인연을 살려 문학관을 건립했다.
    윤동주문학관이 들어선 곳은 원래 청운아파트를 위한 상수도 가압장이었다. 2005년 청운아파트가 철거되고 가압장은 용도 폐기되어 방치되어 있다가 2012년 리모델링을 통해 윤동주문학관으로 재탄생하였다.
    윤동주는 1917년 간도의 명동촌(지금의 길림성 용정시 명동촌)에서 아버지 윤영석과 어머니 김용 사이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1936년 중국 길림성 소재 민족학교인 명동학교(明東學校)를 졸업한 후 숭실중학교를 거쳐 광명중학교에 진학하여 시(詩)작품을 통한 항일민족정신의 기초를 닦았다.
    1938년 그는 연희전문학교에 진학한 후 송몽규 등과 함께 민족정신과 조국의 독립에 대하여 토론하였으며 '서시'·'별헤는 밤'·'무서운 시간'·'또다른 고향' 등 많은 항일민족시를 발표하면서 민족의 항일정신을 고취하였다.
    1942년 교토에 있는 동지사(同志社)대학의 영문과에 입학한 후 동지인 송몽규·장성언 등과 만나 일제의 강제적인 징병제를 반대하며 저항정신을 담은 시작품을 발표하는 등의 활동을 하는 한편 민족적 문학관을 확립하는데 힘썼으며 민족문화의 앙양 및 민족의식의 유발에 전념하던 중 일경에게 붙잡혔다.
    그는 교토지방재판소에서 징역 2년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르던 중 1945년 2월 16일 옥중에서 순국하였다.
    제공 : 항일영상역사재단(제작 2024.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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