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 이태리 유학시절에 토리노 지역 작은 마을을 지나다가 차가 도랑에 빠지면서 사고가 나는 바람에 병원에 가게 됐음. 낯선 나라, 낯선 지역이라 그냥 집에 가고 싶었는데 차가 기울면서 머리도 부딪치고, 무릎 타박상까지 있어서 엑스레인지 CT인지 다 찍게 되었음. 치료하는 내내 아니 어떻게 이렇게 이태리말을 잘하냐~ 몇살이냐, 신통방통하다~ 등등 의사쌤들에게 귀여움을 독차지^^ 어린 나이에 놀라서 그랬던건지 갑자기 혈압이 상승~ ㅠㅠ 의사쌤들이 놀라서 입원해서 하루 지켜봐야 한다며 퇴원을 안시켜 줌~~ ㅠㅠ 결국 입원해서 하룻밤을 보내고 담날 아침에 퇴원을 하는데 치료비며 엑스레이 등등 사진촬영비, 약 값, 입원비 모두 공짜!!! 가면서 먹으라고 빵이며 와인이며 엄청 싸주셨음~~ 우리 병원에 온 외국인이 너가 처음이라며~~ ^^ 유학생활 시작한지 얼마 안되었을 때라서 많이 힘들었었는데 정말 감사하고 잊지못할 기억임. (돌아가는 길에 커피를 사려고 작은 바에 들어갔는데 지역뉴스에 나왔던 아이가 너냐며~~ 또 공짜로 커피를 줌~ㅋㅋ ) 인종차별도 심심찮게 겪었던 유학생활이었지만 이런 친절은 정말 평생 잊지 못함!!
90년대 미국인 보스의 딸이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에 가기 전 긴 여름 동안에 유럽여행을 엄마와 함께 자전거로 했었단다. 가는 중에 이태리를 거쳐가는 동안 어느 지역을 지나는데 그동네 청년들도 자전거를 타고 어슬렁 거리고 있다가 뒤따라 오더니 딸의 엉덩이를 쓰다듬고 지나갔었단다. 깜짝놀란 모녀는 불나게 서둘러 이태리를 떠나 옆 나라로 갔었다한다. 그런데 이런 좋은 이야기도 들으니 마음이 좀 더 훈훈해집니다. 어디든 사람나름이겠다는 생각을 다시하게 됩니다.
@@teddy_8figure 부분적으로만 맞는 말입니다. 첫 댓글 쓰신 분도 차별도 많이 받았지만 어느 시골에서는 대접을 받았다고 했듯이 장소에 따라 달랐다지 않습니까? 제가 예를 들었던 예도 그냥 지나가는 모녀가 성희롱을 당헀던 것이고요. 그리고 미국 흑인 여성들이 투표권을 갖게된 것은 1965년에야 있었던 일이고요. 흑인들 병원에도 받아주지 않아서 문제가 엄청 심했었지요. 한인들 중에 1960년대에 미국 유학하던 분이 시골에 가까운 대학촌에서 유학하던 시절 실험실에서 하얀 가운입고 실험을 늘 하던관계로 어떤 날은 그 가운 입은 채로 동네 수퍼마켓이라도 가면 사람들이 원숭이 보듯 취급하던 시절이었다지요. 동양인이나 흑인들이 백인 여성과 데이트라도 하면 백인남성들에게 봉변 당하는 경우도 많았고요. 1980년대에도 지나가면서 너의 나라로 가라하고 놀리고 지나가는 사람들도 많았고 1994년인가 4.29일 LA 폭동 때는 흑인들이 시내 중심부에서 결집해 시작했었는데 경찰들이 빠지면서 남북으로 난 큰 길을 중심으로 한 쪽은 관청 청사들이 있고 길 반대편은 할리우드인데 그 양쪽으로 나뉘어 각각 방어를 하면서도 그 길은터주어서 폭도들이 북쪽으로 계속 진격하며 건물들 훼파하며 가다가 북쪽의 한인 타운에 이르며 집중적으로 불질러서 엄청난 피해를 입었었고 그런 와중에도 경찰들은 전혀 움직이지도 않고 방치해서 한인들이 무장하고 단결해 지붕위로 올라가 남은 지역을 방어하며 일부는 총을 쏘며 다가가서 그들을 몰아냈다는 경찰의 일을 한인들이 했었다는 것은 잘 알려졌지요. 그 당시 그 장면들이 실시간으로 방송되면서 Roof-top Korean이란 이름으로 알려졌고 이 때를 계기로 Korean-American 이란 정체성이 분명하게 태어났다고 방송하는 앵커의 멘트를 들을 수 있었던 영상이 지금도 남아 있습니다. 그리고 아직도 코비드 펜데믹동안 동양인들 특히 여성들이 길을 가다가 뒤에서 갑자기 내리 갈기는 사람들 때문에 많은 사람들 특히 할머니들이 크게 다치거나 얼마는 총에 맞아 죽기도 했었습니다. 모두 특별한 이유도 없이 길가다가 또는 차에서 막 내리다가 당한 경우들 이었습니다. 지금 미국은 엄청난 양극화로 인해서 정신적으로도 내전 상태라고 말들합니다. 그리고 이것은 한국도 비슷하고 세계적으로도 확산 추세입니다. 모두 경제적으로 지나친 양극화가 불러온 불공평에 기인한 것이 매우 큽니다.
우리 아버지 고향이네요 괴산군 연풍리 아주 어릴때 서울에서 괴산까지 차멀미 때문에 초죽음이 되서 도착했던 기억 말고는 별다른 기억이 없는데 이 영상을 보니 한번 가보고 싶네요 아빠가 어릴적 여름에 자주 가셨다던 계곡도 가보고 싶구요 16살 어린 나이에 혼자 서울에 와서 노숙도 하고 수돗물로 배고픔을 달래고 사기도 당하고.. 평생 고생 많으셨던 우리 아빠 보고싶어요
제 아버지 고향은 근처 괴산군 청안면입니다. 8~90년대에는 한 번 갈 때마다 고생 좀 했죠. 여름마다 화양동과 쌍곡계곡에 갔었는데 기억이 드문드문 나네요. 어느덧 아버지 돌아가신지도 17년이나 흐르고 세월이 참 무상하기도 합니다. 제 아버지도 고생만 하시다 효도도 못햇는데 퇴직하자마자 가셨네요.....
11년 전이였습니다. 그땐 사소한 실패가 너무 크게 다가올때였어요. 스스로를 가둬놓은 저를 소중한친구 둘이서 꺼내주고 무작정 자전거를 타고 부산으로 달려갈때였죠. 저도 수많은 친절을 받았습니다. 식당에선 가면서 먹으라고 음식을 싸주셨고 냉면 맛집을 물어보니 그곳까지 데려가서 사주시던 대구 아저씨 갑자기 어디서 왔냐 물어보시면서 간식사먹으라고 만원을 꼭쥐어주시던 아저씨 대구 놀러왔으면 구경이라도 하라면서 외출을 허가해주시던 찜질방아주머니 아직도 그 호의를 기억합니다 고맙습니다.
해외 여행에서 저런 작은 친절에 큰 감동을 받곤하지. 20년전 유럽배낭여행중 이탈리아 베네치아에 도착했는데 계속되는 불친절과 인종차별에 지쳐 있었다. 그러다 어느 한 레스토랑에 들어갔는데 오징어먹물파스타가 너무 맛나서 막 접시까지 핥아먹을정도로 맛있게 먹었는데 쉐프 할아버지다 나오셔서 어느나라사람이냐고 물어보고 음식설명해주시고 같이 사진도 찍어주셨다. 서비스도 줬던걸로 기억한다. 그동안의 불친절에 대한 불쾌감이 한꺼번에 날아가는 순간이었다.
@@이름-q4j8t 어딜가나 사회문제는 많지요 그래도 한국이 좋습니다 미국도 겉보기만 좋지 실상은 너무나도 어지러워요 왜 이민자들이 돈 많이 벌거나 늙으면 다시 한국 들어가는 이유를 20년넘게 살다보니 느낍니다 허나 한국에 계신 한국분들은 헬조선이라고 하죠.. 다들 자기 사는곳이 제일 못마땅하게 생각하는거죠 뭐 그래도 한국짱 최고입니다
연풍! 기억이 납니다. 특전사 시절 천리행군중 미칠듯한 더위로 인해 지칠대로 지치고 목마름으로 인해 너무 힘들었는데 우리를 언제부터 보신건지 마을 하나 빨리 극복하는중에 멀리서 할머니 한분이 빨간 다라이에 엄청 시원한 포도즙이랑 냉수를 가지고 오셨지요.. 그냥 냉수에 포도즙인데.. 그날 그맛을 잊을수없고 아직도 감사한 마음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충북 괴산군의 괴는 槐(회화나무 괴)를 사용합니다. 지금날에는 회화나무와 느티나무를 정확하게 구분 할 수 있지만, 예전에는 회화나무와 느티나무가 같은 종으로 취급 받았습니다. 괴산군의 시초는 신라의 찬덕이라는 장군이 가잠성에서 백제군에게 100일동안 공격을 받아 위기에 처하게 되었는데, 찬덕은 항복하지 않고 성 안의 느티나무에 머리를 들이 받고 자결 하였습니다. 추후 태종 무열왕이 이 찬덕 장군의 굴하지 않는 뜻을 높게 받들어 지역명을 찬덕 장군이 자결한 느티나무의 뜻을 담아 '괴산'이라고 짓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한글로는 좀 괴상한 느낌이 있지만, 회화나무 괴라는 한자는 꽤나 존귀한 뜻이 담겨있습니다. 우리 궁궐에서도 이 회화나무를 많이 심었습니다. 당시 사람들은 회화나무엔 잡귀신이 감히 범접을 못하는 좋은 기운이 있다고 믿었거든요.
진짜 몰래카메라같은ㅜㅜ어떻게 사람들이 다 같이 모여 짜기라도 한듯 도시를 넘어 갈때마다 저렇게 다 친절을 베풀어주시고 챙겨주시는지..요즘은 다른게 아니라 저런분들이 애국자인거임. 국격을 더 높여주고 나라 이미지에도 긍정적인 이미지들을 심어주어서 다시 재방문하게끔 해주고 경제적인 부분에서도 도움을 주게끔하는게. 다들 복 많이 받으세요
대학때 남해 욕지도 갓엇는데… 충무터미널이엇던가??? 새벽에 고속버스터미널에서 배터미널까지 택시기사님이 우리 충무김밥 사주셧던 것 기억난다. 여자 둘이라…처음 보는 사람의 친절이 너무 낯설어서 쫄아가지고 감사인사도 제대로 못햇는데… 섬 들어와서 사주신 김밥 먹으면서 너무 감사해서 눈물 낫엇어.
Nice video 👍
우와 진짜다
와..... 찐이다
와우 인터레스팅 본인입니다
영상 잘 보고 있습니다!
thx.
연풍이라는 지명의 뜻을 풀어서 보면 '풍년이 이어지는 곳'이라고 합니다. 주민분들의 마음 씀씀이가 아주 풍년이군요. 선량한 사람들의 인생에 밝고 따뜻한 일만이 가득하기를
역시 인심은 곳간에서 나오는 군요
원래 한국사람들 양놈보면 쫄아서 잘해줌. 중국놈들은 즈그들 중화사상 땜에 안 그러고 힌국이랑 일본놈들이 심함.
지역명대로 살아가시는 선행에 박수를 보냅니다
한국에 이름이 그렇게 이쁜곳이 존재했다니 배워갑니다
주민분들의 마음 씀씀이가 풍년이다
정말 그런듯 하네요
1990년 이태리 유학시절에 토리노 지역 작은 마을을 지나다가 차가 도랑에 빠지면서 사고가 나는 바람에 병원에 가게 됐음.
낯선 나라, 낯선 지역이라 그냥 집에 가고 싶었는데
차가 기울면서 머리도 부딪치고, 무릎 타박상까지 있어서 엑스레인지 CT인지 다 찍게 되었음.
치료하는 내내 아니 어떻게 이렇게 이태리말을 잘하냐~ 몇살이냐, 신통방통하다~ 등등 의사쌤들에게 귀여움을 독차지^^ 어린 나이에 놀라서 그랬던건지 갑자기 혈압이 상승~ ㅠㅠ 의사쌤들이 놀라서 입원해서 하루 지켜봐야 한다며 퇴원을 안시켜 줌~~ ㅠㅠ
결국 입원해서 하룻밤을 보내고 담날 아침에 퇴원을 하는데 치료비며 엑스레이 등등 사진촬영비, 약 값, 입원비 모두 공짜!!! 가면서 먹으라고 빵이며 와인이며 엄청 싸주셨음~~ 우리 병원에 온 외국인이 너가 처음이라며~~ ^^ 유학생활 시작한지 얼마 안되었을 때라서 많이 힘들었었는데 정말 감사하고 잊지못할 기억임.
(돌아가는 길에 커피를 사려고 작은 바에 들어갔는데 지역뉴스에 나왔던 아이가 너냐며~~ 또 공짜로 커피를 줌~ㅋㅋ )
인종차별도 심심찮게 겪었던 유학생활이었지만 이런 친절은 정말 평생 잊지 못함!!
90년대 미국인 보스의 딸이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에 가기 전 긴 여름 동안에 유럽여행을 엄마와 함께 자전거로 했었단다. 가는 중에 이태리를 거쳐가는 동안 어느 지역을 지나는데 그동네 청년들도 자전거를 타고 어슬렁 거리고 있다가 뒤따라 오더니 딸의 엉덩이를 쓰다듬고 지나갔었단다. 깜짝놀란 모녀는 불나게 서둘러 이태리를 떠나 옆 나라로 갔었다한다.
그런데 이런 좋은 이야기도 들으니 마음이 좀 더 훈훈해집니다. 어디든 사람나름이겠다는 생각을 다시하게 됩니다.
이태리 분들에게 잊혀지지 않을 베품을 받으셨네요
원래 그 나라 언어를 할줄알면 그 자체로 신뢰를 보입니다. 만약 언어를 할줄 모르면 외국인이라고 무시하는게 기본입니다.
@@teddy_8figure 부분적으로만 맞는 말입니다. 첫 댓글 쓰신 분도 차별도 많이 받았지만 어느 시골에서는 대접을 받았다고 했듯이 장소에 따라 달랐다지 않습니까?
제가 예를 들었던 예도 그냥 지나가는 모녀가 성희롱을 당헀던 것이고요.
그리고 미국 흑인 여성들이 투표권을 갖게된 것은 1965년에야 있었던 일이고요. 흑인들 병원에도 받아주지 않아서 문제가 엄청 심했었지요. 한인들 중에 1960년대에 미국 유학하던 분이 시골에 가까운 대학촌에서 유학하던 시절 실험실에서 하얀 가운입고 실험을 늘 하던관계로 어떤 날은 그 가운 입은 채로 동네 수퍼마켓이라도 가면 사람들이 원숭이 보듯 취급하던 시절이었다지요. 동양인이나 흑인들이 백인 여성과 데이트라도 하면 백인남성들에게 봉변 당하는 경우도 많았고요. 1980년대에도 지나가면서 너의 나라로 가라하고 놀리고 지나가는 사람들도 많았고 1994년인가 4.29일 LA 폭동 때는 흑인들이 시내 중심부에서 결집해 시작했었는데 경찰들이 빠지면서 남북으로 난 큰 길을 중심으로 한 쪽은 관청 청사들이 있고 길 반대편은 할리우드인데 그 양쪽으로 나뉘어 각각 방어를 하면서도 그 길은터주어서 폭도들이 북쪽으로 계속 진격하며 건물들 훼파하며 가다가 북쪽의 한인 타운에 이르며 집중적으로 불질러서 엄청난 피해를 입었었고 그런 와중에도 경찰들은 전혀 움직이지도 않고 방치해서 한인들이 무장하고 단결해 지붕위로 올라가 남은 지역을 방어하며 일부는 총을 쏘며 다가가서 그들을 몰아냈다는 경찰의 일을 한인들이 했었다는 것은 잘 알려졌지요. 그 당시 그 장면들이 실시간으로 방송되면서 Roof-top Korean이란 이름으로 알려졌고 이 때를 계기로 Korean-American 이란 정체성이 분명하게 태어났다고 방송하는 앵커의 멘트를 들을 수 있었던 영상이 지금도 남아 있습니다.
그리고 아직도 코비드 펜데믹동안 동양인들 특히 여성들이 길을 가다가 뒤에서 갑자기 내리 갈기는 사람들 때문에 많은 사람들 특히 할머니들이 크게 다치거나 얼마는 총에 맞아 죽기도 했었습니다. 모두 특별한 이유도 없이 길가다가 또는 차에서 막 내리다가 당한 경우들 이었습니다.
지금 미국은 엄청난 양극화로 인해서 정신적으로도 내전 상태라고 말들합니다. 그리고 이것은 한국도 비슷하고 세계적으로도 확산 추세입니다. 모두 경제적으로 지나친 양극화가 불러온 불공평에 기인한 것이 매우 큽니다.
세상에 너무따뜻한 추억이네요😊❤
괴산군 시민분들 존경합니다. 당신들의 마음과 배려로 인해 대한민국이 빛을 바랍니다.
군민입니다만
@풀버젼야뎡저장소-d6m그 썩어빠진것들을 찍어주는 국민이 우매한거지
빛을 발합니다
바라면 족댄거고
ㄷ
연풍면 행촌리에서 군생활했습니다
마을분들 정말 친절하십니다
여름에 대민지원나가면 배터질정도로 과일 챙겨주시고 겨울에는 힘들다며 따뜻한 차 나눠주시는분들이 엄청많습니다
덕분에 군생활 즐겁게 잘했던기억이나네요
군인들 등처먹었던 어느동네하고는 다르네요
심기부대?
@@Gang_ster10 거긴 북한임 그냥 안지켜도 됨
37사 110연대 2대대 5중대 연풍면 행촌리 심기부대 출신입니다 ~~ 반가워요~~
@@Gang_ster10양구...
순교 한 후손 분들이 나누어주는 모든것이 마음을 나누어주는걸로 제 마음도 따뜻해지네요
인심에서 곳간 열리지
너무 아름다운곳~
저 외국인도 얼마나 예의가 바르면 주변에서 저러겠어요~
친절또한 상대적인것~❤
이 외국인은 우리들의 조그마한 관심과 친절에도 그나라에가서도 죽을때까지 연풍이라는곳은 절대잊지못할겁니다.
연풍은. 파주에도 잇는데
충북 괴산군 연풍면 문경세재 앞동네
아 진짜 그렇겠네요
중부내륙 타고 내려가다보면 나오는 그곳
저 외국인에겐 진짜 늙어서도 옛날에 그랬다~ 하고 말하고 다닐듯,,
연풍 분들 나라빛나게 해주셨네
세계 거지 다모이겠네
@@부추전-c3q 거지라니 비행기 값이 더비싸긋네 ㅋㅋㅋ
문경에서 서울을 향하는 길 이화령을 넘어 구비구비 고갯길을 내려가면 그림같은 아담한 첫 마을이 나오는데 그곳이 연풍입니다.
문경이 고향인 제 느낌에는 산 속 샹그릴라 같은 동네입니다. 참 아늑하고 정감이 드는 마을..
@@perpixl5421 실제로 비행기 표값만 들고 한국와서 거지짓하는 백인들 많아서 하는 소리인듯. 길거리에서 동냥하는 백인거지들이 그런류임.
연풍주민여러분
고맙습니다
우리 아버지 고향이네요 괴산군 연풍리
아주 어릴때 서울에서 괴산까지 차멀미 때문에 초죽음이 되서 도착했던 기억 말고는 별다른 기억이 없는데 이 영상을 보니 한번 가보고 싶네요
아빠가 어릴적 여름에 자주 가셨다던 계곡도 가보고 싶구요
16살 어린 나이에 혼자 서울에 와서 노숙도 하고 수돗물로 배고픔을 달래고 사기도 당하고..
평생 고생 많으셨던 우리 아빠 보고싶어요
제 아버지 고향은 근처 괴산군 청안면입니다. 8~90년대에는 한 번 갈 때마다 고생 좀 했죠. 여름마다 화양동과 쌍곡계곡에 갔었는데 기억이 드문드문 나네요. 어느덧 아버지 돌아가신지도 17년이나 흐르고 세월이 참 무상하기도 합니다. 제 아버지도 고생만 하시다 효도도 못햇는데 퇴직하자마자 가셨네요.....
@@준일-l9g 저희 아버지 고향도 괴산군 청안면 입니다. 지금은 고향집 자리에 새로 집 지으셔서 주말에만 들어가며 지내시는데.. 건강하시면 좋겠네요
오.. 엄마고향인데요. 연풍에서 젤 잘사는집이었다고 ,, 할머니 살아계실땐 자주 갔었는데 그립네요.
연풍에 가본적은 없지만....정말 따뜻한마을이네요....그분한테는 절대 잊을수없는 기억으로 남을거 같아요....멋지십니다....
마을 이름도 예쁜 괴사군 연평이람니다
잘못 썻네요 연풍이예요
옥수수 고추가 유명하죠
저도 초등어린시절 괴산으로 목욕탕을다녔어요
그때만해도 저희시골마을중엔 제일 큰 마을이였죠
시외버스 터미널도 있었고
새롭네요
@@구름-b6l 괴산군 입니다~^^
진짜 저런 곳 가면 어르신분들이 엄청 챙겨주심.. 눈에 띄기만 하면 잡아서 과일 깎아주시고 잘 곳은 있냐부터 물어보심😢 진짜 그 순간 찡해짐😭❤
세상이 너무흉흉해서 무서울것같기도한뎅 ㅠㅠ
외국인, 특히 백인이라면 이상하게, 귀잖게 구지 하지 않아도 될것을, 도를 넘어 친절하고 호하게 대함. 대한민국 보다 더 못살고 더 형변 없는 백인 나라들이 유럽에 너러저 있다는 걸 모른지.
그렇게 2번찍게됨
근데 귀농하는 젊은이들한테는 왜 그렇게 텃새부리고 쫓아낸대요??
@@sss0232어딜가나 있는 정치병자.니가 찍은 1번이나 남들이 찍은 2번이나 그나물에 그밥이란다.ㅉㅉㅉ
미국서 이런 영상보면 마음이 뭉클해요~ 역시 우리나라 인심은 풍년입니다..
지방 출장이 잦은 저는
연풍휴게소, 조령휴게소를 항상 들립니다.
음식도 정말 맛있고, 훌륭한 대접을 박고 나오는 휴게소 입니다
유흥 대접
예쁘고 잘생긴 백인들만 한국에 많이 왔으면 좋겠다
요즘 대접은 박고 나오나요??
댓글 이 미친 인간들 ㅋㅋ
@@안중근_安重根 혹스 그 여동생이 니 여동생?ㅋㅋㅋ
연풍. 정말 훈훈한 바람이 부는 동네네요.
이런곳 특... 한국인은 이런 친절을 기대할 수 없다.
대구 태극기 ㅋㅋ
@@YTIM-gx5pu그냥 좋은 뜻으로 준거 같기는한데. 그 동네는 태극기를 들 자격이 없다 생각함.
@@punggay.. 이건또 뭔 지역비하냐???
밀양 보고있나?
양심이란 그런거야!!!
교활하고 비열하게 사는게 똑똑하게 사는 것 같지만...
그래봐야 말로는 비참할 뿐!!!
이분 영상 봤는데 친절로 기억에 남는건 한국사람보단 이분에게 현금 5만원 선뜻 투척했던... 한국으로 돈벌러온 외국인 노동자였어요... 본인도 살기 힘들텐데...진짜 선하디선한 그분이 제일 기억에 남네요!!!
외노자들한테 한국은 천국이자 기회의땅입니다,..
한국에서 2~400만원 벌어서 고향가면
한국으로 치환하면 억대연봉 중산층 직행버스 탑니다.. 5년만 일해서 고향으로가면 평생 일 안해도 될정도로 부자가 되요
불쌍하다는 이미지가 있는데 반대입니다
요즘 우리나라 젊은 세대들에게서 정이 점점 많이 없어진거같은데 이분들의 이런 모습을 본받아 우리도 정을 많이 나누고 서로가 행복한 세대가 되면 좋겠다 그렇게되면 대한민국도 다 행복해지지 않을까?
영상에 나오신 마음 좋으신 분들 모두 복 받으시고 건강하시길 바랍니다
밀양안가서 다행...😂
길 물어보는줄알고 멈춰서 들어보면 다 도를 아십니까 #@&!@& 뭣도모를때 설문조사 잠깐만 해달라고 해서 기다려줬더니 삥뜯어가고
젊은 세대들이 정이 없어진건 똥팔육 세대들이 착하게 살거나 남에게 친절을 베풀면 호구로 만들어버려서 사람들이 좀 예민해짐...
아름다운 댓글 나이쓰
한국인한테나 잘해라 군인은벌레취급하고 ㅋㅋ 사기는 한국인끼리치면서 위선자마냥 미국처럼 대단한 선진국에 ㅂ빨할생각말고
괴산군 연풍면...
문경새재 넘어 첫동네..
맞아요 ㅎㅎ 매년 종주 때마다 보는 동네 정겹네요
백인들 한테는 굽신굽신친절
동남아 이xx 저xx 매타작
@@pathorder2664 ..... 동남아 애들 한테도 친절해...
백인들 한테는 굽신굽신친절
동남아 이xx 저xx 매타작
괴산...나름추억있는지역입니다.
대한민국의 정이란 문화입니다 좋은 구경 구서 구석 하세요~~^^
항상 자극적인 영상만 보이다가 이렇게 우리 나라를 빛내주고 있는 사람들이 있었는지 미처 몰랐네요😢
연풍 괴산군 연풍면입니다 정말 진짜 순하고 정다운 사람들이 살으는 괴산군 입니다
멎지네요 나의 고향 괴산! 굿~
돌아가신 아버지 고향 입니다. ❤❤
@@artiepoque멋 병ㅅ아
@@arsenal1-j6z사는게 힘들어요?
괴산에 팬션 갔을때 사장님도 너무 좋으셨어요 세상 친절해서 기억에 많이 남아요😊
세상에ᆢ😮😮
너무 가슴 따뜻해지는 영상이네요❤❤
아직 살아있는 대한민국♡♡
늘 건강한 삶 되시길~~😊😊
아직까진 시골이나 지방소도시는 정이 많은듯요
한국와서 좋은인상 좋은 이미지 받아줘서
이렇게 정을 나눠주신(괴산군 연풍) 모녀분 및 많은분들~~^^
정받아서 감동받은 이분도 너무너무 감동 고맙습니다~♡♡♡♡♡
모두 복 받으세요~🧧🧧🧧
ㅋㅋㅋㅋㅋㅋㅋㅋ 신안같은 곳 갔으면 어찌됐을지 끔찍한데 ㅋㅋ
@@롤롤-m1n ㅋㅋㅋㅋㅋ 몇 주 걸릴 여정이 15년이 되는 현상
아우 눈물나 ㅠㅠ 그럼요 마음은 다 같아요 ,, 즐거운 여행 되셨길바래요
백인이니까 대접했다는것만기억하세요.
동남아인이었다면 위아래로 훑었음
@@zoozeonja158동남아+ 7시방향으로 지나갔으면 섬으로 팔려가서 춘식이행이지
대한민국 국민이면 모두 이런 마음일거예요
대한민국은 옛날부터 나그네에게 왜 대접을 잘 하는건지 대학교수님께 강의를 들었는데 정말 수긍이 가더군요
엔딩 연출 지린다 그냥 나레이션으로 ‘연풍입니다!’ 라고 하면 슴슴했을텐데 영상으로 돌아와서 닉케이가 ‘What is the name of this place?’하고 대답해주는게 ㄹㅇ 소름
place가 아니고 village 입니다~
놀구있네
축구하네
솔직히 채널장이 편집 ㅈㄴ잘하긴함. 명작영화 엔딩 연출급
👍 👍 👍 👍 👍 👍 👍
한국의 어르신들 멋집니다. ㅎㅎ
뭔가 한국인특이 뭔가 나누어주고싶은 마음이 다 있엌ㅋㅋㅋㅋ 정이 가득한.. 뭔가 멋잇고 기특하자나 한국인이 저래도 다들 응원해주는데 외국인이 이러니
우리나라를 일주하는 모~든 외국 사람들을 조금씩 응원해 주는 것은 좋네요...
연풍 뿐 아니라 먹는것 힘든일 기쁜맘 아픈맘 뭐든지 나누려고 한 국민이 대한민국이었습니다 제발 예전같이 아름다운 세상이되게 우리 모두 노력합시다 특히 정치인
그러게요. 우리는 참 정이 많은 사람들 이었는데요..
연노랑풍선같은 따뜻한 마음씨에,
저 또한 마음이 따뜻해져갑니다
11년 전이였습니다. 그땐 사소한 실패가 너무 크게 다가올때였어요.
스스로를 가둬놓은 저를 소중한친구 둘이서 꺼내주고 무작정 자전거를 타고 부산으로 달려갈때였죠. 저도 수많은 친절을 받았습니다. 식당에선 가면서 먹으라고 음식을 싸주셨고 냉면 맛집을 물어보니 그곳까지 데려가서 사주시던 대구 아저씨
갑자기 어디서 왔냐 물어보시면서 간식사먹으라고 만원을 꼭쥐어주시던 아저씨 대구 놀러왔으면 구경이라도 하라면서 외출을 허가해주시던 찜질방아주머니 아직도 그 호의를 기억합니다 고맙습니다.
연풍은 충북 괴산인데 부산이며 대구며 경상도 얘기만 하시네요?
@@qwp-lo9qr
영상보고 좋은 기억 되살려 댓들 단건데 무슨 딴지 걸고 자빠졌냐?
한국을 찾는 외국인들에게 베푸는 사소한 친절이 나중에는 더큰 보답으로 돌아오는거임..그렇게 따지면 우리나라 방방곡곡 모두가 정이많은곳이야😊 외국은 물한컵도 돈받고 화장실도 돈받고 아무튼 공짜가없어
@@chattercats7596 그럴거면 사람들이 도와준 기억이면 아무거나 막 써도 되겠네?
@@qwp-lo9qr그래도 되지 않을까요?
해외 여행에서 저런 작은 친절에 큰 감동을 받곤하지. 20년전 유럽배낭여행중 이탈리아 베네치아에 도착했는데 계속되는 불친절과 인종차별에 지쳐 있었다. 그러다 어느 한 레스토랑에 들어갔는데 오징어먹물파스타가 너무 맛나서 막 접시까지 핥아먹을정도로 맛있게 먹었는데 쉐프 할아버지다 나오셔서 어느나라사람이냐고 물어보고 음식설명해주시고 같이 사진도 찍어주셨다. 서비스도 줬던걸로 기억한다. 그동안의 불친절에 대한 불쾌감이 한꺼번에 날아가는 순간이었다.
우리나라 국인들은 참 친절하고 나눔에 주저하지 않고 등등 너무 친절하지요
자랑스런 대한민국 국민여러분. 멋져요
외국한테만 잘하고 내부는 대충하고 😅
@@lIIIlIllIIllIlllIlIIlIIIl 위에 댓글들 보니 다른분들도 많이 도움 받았다던데 뭔 그렇게 마음이 팍팍하세요? 내국인은 물론 손님오면 잘대해주는건 기본 아닐까요?
@@lIIIlIllIIllIlllIlIIlIIIl그냥 조선족아니면 장애인 ㅋㅋ
외국인도 아니고 외국, 내국인도아니고 내국도 아니고 내부 ㅋㅋㅋㅋ
그냥 모자른인간😅
역시 마음 따뜻한 우리나라 사람들~~
자랑스런 연풍 주민분들 고맙습니다.
백인이니까 대접했다는것만기억하세요.
동남아인이었다면 위아래로 훑었음
ㅋㅋ 그럴 수도
부정못할거 같네요 ㅠ
우리나라 청년도 미국에서 자전거 여행하며 수많은 미국분들이 도와주더군요. 혈맹끼리는 서로 돕는게 맞습니다.
대빨
미국이 우리 혈맹 아니래요ㅠ
인류애를 왜 동맹으로 격하시키냐ㅋㅋㅋ
혈맹 드립은 개오바…
좌빨이 몇명이야… 하나 둘이 석삼 너구리…
한국의 위상을 크게 높여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미국 살면서 느낀게 한국인 정은 정말 어디가도 무시 못한다 정말 따듯한 민족성이다 그 어느 민족도 가족한테도 못할 따듯함을 남에게 배풀어주는게 한국인다 한국인으로 산다는거에 자부심갖자 비록 나라는 조그만한 나라지만 그 어느 큰 나라보다 똑똑하고 잘산다
그거는 잘 모르겠지만 사회문제가 아직 많다고 생각합니다...
@@이름-q4j8t 어딜가나 사회문제는 많지요 그래도 한국이 좋습니다 미국도 겉보기만 좋지 실상은 너무나도 어지러워요 왜 이민자들이 돈 많이 벌거나 늙으면 다시 한국 들어가는 이유를 20년넘게 살다보니 느낍니다 허나 한국에 계신 한국분들은 헬조선이라고 하죠.. 다들 자기 사는곳이 제일 못마땅하게 생각하는거죠 뭐 그래도 한국짱 최고입니다
너무 정이 깊어서 그런지 자국민 관광객들 상대로 바가지 씌우는 장사꾼들이 많나 보네요 ^^
신안은 도덕책
@@Reichsarmee 네 가이드들은 지들도 영어 못하면서 ㅋㅋ 가이드라치고 엄청 비싸게 돈 불러서 뜯어먹죠 어딜가나 가이드는 사기꾼들입니다
연풍! 기억이 납니다. 특전사 시절 천리행군중 미칠듯한 더위로 인해 지칠대로 지치고 목마름으로 인해 너무 힘들었는데 우리를 언제부터 보신건지 마을 하나 빨리 극복하는중에 멀리서 할머니 한분이 빨간 다라이에 엄청 시원한 포도즙이랑 냉수를 가지고 오셨지요.. 그냥 냉수에 포도즙인데.. 그날 그맛을 잊을수없고 아직도 감사한 마음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평생의 기억을 선물해 주셨네요ㅜㅜ감동
손주같아서 그러셨을 겁니다.
배탈은 안 났수?
@@호쿠지비치 좀 깝치지말고 낄데 안낄데 구분좀 해라;
@@호쿠지비치 인생 살기 힘들지? ㅋㅋ 힘내라
정말 어떤주제 어떤사람들도 생생하게 기억나게하는 연출 잘보고있어요 응원할께요
저도 예전에 자전거 여행할 때 길에서 포도도 얻어먹고 인심이 좋았는데, 지금도 그런 인심이 남아있다니 참 놀랍네요
밀양 같은 곳이 있는 반면
연풍 같은 곳도 있어 그나마 다행이다 싶네요
베풀어 주신 친절에 감동 받았습니다.
20년전 충청도 강원도 무전여행 했던 기억이나네요. 밥주시고 잠도 재워주시고, 차태워주시분들 정말 감사했습니다. 우리나라 인심은 정말 좋아요
혹시 충청도에 있는 조령산 휴양림식당이였을까요!?
@@얀이마마 아닌거 같아요. 제 기억이 확실치 않치만 조령산으로는 안갔네요.
예전 국종할때 충주의 국밥집에서 아침먹고 가는데 주인아주머니가 국종중이시냐고 대단하다고 칭찬해주시면서 서비스로 주신 사이다 국밥도 맛있었는데 사이다도 꿀맛이였습니다 감사합니다.
외국인만이 아니라 우리나라 사람에게도 서로 친절히 잘대해주자구요.
원래 충청도분들이 친절한편아닌가용?
@@soribada0206 충청도는 안살아봐서 몰것는데 강원도는 친절한듯
강원도는 모르겠는데 경상도는 친절한듯
@@생각민수경상도는 친절하기보단 이기적인 동네지
경상도는 모르겠는데 경기도는 친절한듯
강아지 안고 참외 먹고있는거 너무 훈훈하고 귀여움😂😂😂
할머니가 칼 들고 수박 들이미는데
안먹을 수가 있을까?
ㅋㅋㅋ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야이씨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ㅋㅋㅋㅋ 이렇게도 해석이 되는군. ㅎㅎㅎ
웃으면서 먹어라 ㅋㅋㅋ
한국의 모든분들이 친절하지 않을까요. 정 이. 많은 나라니까😊
눈물의여왕 촬영지 연풍성지네요
연풍성당 다녀왔는데 예쁜성당입니다.
연풍 이름도 이쁘구나. 가본적도 없고 들어본적도 없는 마을이구만 이렇게 내 맘에 들어오네
한자가 맞는지 모르겠지만 연풍이라... 부드러운 바람이 분다라는 뜻인가? 그렇게 한 여행객의 마음을 움직이게 만들었네.
延豊 입니다
풍년이 이어지다 정도같네요
인심이 풍년이긴 하네요
제비연 인줄. 제비바람
대한민국인심 최고지요~~^^
미소를 짓게 만드는 영상이네요. 항상 따뜻한 한국이었으면 좋겠습니다.
와~~감동에쓰나미
정 많은민족 !자부심갖자구요
우리나라 이런 어른들이 계셔서 얼마나 감사한지. 이십년전에 대학때 새벽 등산할때도 어른들이 과일이랑 간식을 많이 챙겨주셔서 배부르게 하산했었어요.
연풍시민분 모두 감사합니다 ^^
저 여행객은 가슴이 얼마나 따뜻하고 그득한 여행이 됫을까요ᆢ^^
군민 이죠
@@gear4 면민 이죠. 괴산군 연풍면
@@glove7786 그래서 군민은 아니고?
백인이니까 대접했다는것만기억하세요.
동남아인이었다면 위아래로 훑었음
캬 연풍.. 부산~인천 국토종주(633km)할때, 백두대간 이화령 고개(550m) 오르고 내려가면 있는 동네가 연풍이었지.. 자전거 여행하면 어르신들이 관심 많이 가져주시고, 평상에서 한숨자도 되냐고 여쭤보면 흔쾌히 쉬다가라 하시며, 시원한 물도 가져다주시고 등목도하고 너무 좋았던 기억들
대한민국 국민 은 정말 인간적 이죠 .적패 기득권 정치인들만 빼면 한국은 아름다운 나라 .조건 하나 .
썩은 정치인들 을 뿌리채 뽑아 버리지 않는 한 ..희망 없다
연풍 순한 바람ᆢ 아 너무 눈물 나게 이쁜 이름이다. 괴산은 괴상한데 연풍이라니 최고로 이뿌다. 🎉
충북 괴산군의 괴는 槐(회화나무 괴)를 사용합니다.
지금날에는 회화나무와 느티나무를 정확하게 구분 할 수 있지만, 예전에는 회화나무와 느티나무가 같은 종으로 취급 받았습니다.
괴산군의 시초는 신라의 찬덕이라는 장군이 가잠성에서 백제군에게 100일동안 공격을 받아
위기에 처하게 되었는데, 찬덕은 항복하지 않고 성 안의 느티나무에 머리를 들이 받고 자결 하였습니다. 추후 태종 무열왕이 이 찬덕 장군의 굴하지 않는 뜻을 높게 받들어 지역명을 찬덕 장군이 자결한 느티나무의 뜻을 담아 '괴산'이라고 짓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한글로는 좀 괴상한 느낌이 있지만, 회화나무 괴라는 한자는 꽤나 존귀한 뜻이 담겨있습니다.
우리 궁궐에서도 이 회화나무를 많이 심었습니다. 당시 사람들은 회화나무엔 잡귀신이 감히 범접을 못하는 좋은 기운이 있다고 믿었거든요.
보통 마을이름에 들어가는 풍은 풍년할때 풍(豊) 일겁니다
연풍은 풍년이 이어지다 라는 뜻입니다.
괴산의 괴는 느티나무 괴지만 항상 괴이할 괴라고 억까당하는 ㅠ
저렇게 친절을 베푸다가 언제 돌변할지도 머르는 상황인데도 내어주고 믿고하는 마음이 너무 대단해요
외국인을 통해 우리나라 연풍이란곳을 알았다..😂
크......멋진 말이네요
👍
저두요!ㅎ
언제나 시민들은 따뜻하다
현명하다
사랑하며살아가자
그것보다도중요한것이있을까
여러나라를 다녀봐도 근본이 다른 우리나라 어느지역이나 지금도 인심이 넘치는 남여노소 주민들이 사는곳이 전 대한민국이라 생각합니다. 😊
더위와 여러가지로 힘든 시절인분들 모두에게 최고의 행운이 함께하길 바래봅니다. 🎉
유튜버 이름은 Nick K 입니다. 자동 자막이 있어서 어느 정도 이해하실 수 있을거에요!
저 미국인여행유투버..한국여행하는사람이 최소 인사말 정도는 배워와야지..한국어 한마디도못함 .. 그저그런 미국인인데.. 국뽕 미친한국인들 후원하고 응원해줌
@@제로슈가-t8m 전세계 돌아다니는앤데 ㅋㅋ 안녕하세요 정도면 훌륭한거지 ㅋㅋ 한군데 오래있는 유튜버가아님
@@2_1_0_1_2 일본에서 영어강사하면서 10년째살고있는데 무슨 소리죠?ㅋㅋ 방학때 휴가 여행하는 겁니다~ 라이브에서 이야기했어요~ 그리고 한국말 못하는데 뭔소리죠ㅋㅋ
@@제로슈가-t8m 너 니 이름 한자랑 영어로 쓸줄이나 아냐? ㅋㅋㅋ 참나 어이가 없어서. 한국 놀러오면 한국어 다 알아야하냐? 별거 가지고 다 오지랖이야 ;; 참 .. 세상에는 별난 사람들도 많다
@@제로슈가-t8m수십년동안 한국에서만 갇혀있다가 어쩌다 동남아 패키지 여행으로 가이드 끼고 돌아댕기는 틀딱들이 뭔 훈수를 ㅋㅋㅋㅋ
연풍분들 다 천사분이시네요
애국인들이 모여 있는 자랑스러운 도시네요!😊
감사합니다.
한국에서 좋은추억들 많이 남기시고
안전하고 행복한 여행되시길❤
연풍 사람들 한국의 따듯함을 보여주셔셔 감사합니다
대한민국에만 존재하는 '정'이라는 것입니다! 자랑스런 문화 이지요!
근데 정은 전세계 어디에나 있어요. 그 단어가 우리나라에만 존재하는 단어인것 같아요ㅎㅎ
"단풍이란 말은 일본과 핀란드에만 존재한대"
라도에서는 존재안합니다 아; 해외지 ;;
보자마자 참외부터 깎기 시작한다 ㅋㅋㅋㅋㅋㅋㅋㅋ 이거 너무 한국으르신들 특징 한줄 요약 같음
아직 따듯한 세상이네요! 감사합니다❤
연풍~~ 한번 가봤는데
주민센터?가 멋진 한옥으로 되있고 아주 깔끔한 곳이였어요. 시골에 집이 있다면 여기였으면 좋겠다라고 생각했던 곳.
국토종주 해본 사람들은 다 저기서 자봤거나 밥이라도 먹고 갔을 듯. 이화령 넘어 구비구비 달리다 보면 도착하는 작은 도시지만 아름다웠던 곳~
이화령 건너서 연풍들리고 좀만더가면 다시 추풍령.....
마음이 따뜻해지는 영상이네요😊❤
저도 자전거 여행할때 너무 많은 친절을.받았습니다. 우리나라 너무 좋은 분들 많아요.
근데 팥빙수를 참 좋아하시네요ㅋㅋ 즐겁고 건강한 여행길 되세요
내가 봐도 친절이 감동이긴 하다ㅎㅎ 저 외국인 배부르겠다ㅋㅋㅋㅋ
어릴땐 친구와 자전거 전국일주할때가 생각이 나네요
자전거포 사장님이 잘곳 없을거라고 쪽방내어주고 어느산중턱할머님은 포도 씻어주시고 밥도먹고 가라고 하시고
밥먹을때 반찬무한리필도 상당히 많았음(원래무한아님)
국도에 펑크나서 쪼그려앉아 타이어
떼우고있을때 멈춰서 도와준다던분이8분은
댔었던듯 트럭에 실어서 그다음 도시까지 태워주신다고도하고 경찰차도 서서 도와준다고 하고
걸어서라도 갈거에요 하고 사양했지만
너무 기분이 좋았었어요
한국인의 정이다.
역시 한국인들의 따뜻한 마음 어디 안가네요
멋진 여행 되셨나요?
다음번에도 또 오 ㅏ주세요.
이영상 보니 괴산(학군교)에서 군복무 했었는데 야외 훈련중에 마을분들이 쉬원한 물이랑 먹을거 나눔 밖았던 좋은 기억이 떠오르네용~ ^^
아..ㅜㅜ 왜 내가 눈물이 나지? ㅜㅜㅜㅜㅜㅜ
대구에서 서울가는 버스에서 자꾸 옆에 어르신들이 음식을 주셔서 😅 서울 사람들은 매너가 좋았고 지방 주민들은 마음이 좋았어요. ㅎㅎㅎ 시험치느라 힘든 시기였는데 그런 한국이 요즘은 삭막하다는 말을 자꾸 들으니 슬픈데 여전히 따뜻한 분들이 많나보네요.
천주교산자로써 감동입니다. 감사합니다.
ㅎㄷㄷㄷ 고향 인군 작은 마을 이군요...역시...한국인의 정..대단합니다. 조만간 고향가는길 들려서 냉면먹고 가야겠네요. ㅋㅋ
진짜 몰래카메라같은ㅜㅜ어떻게 사람들이 다 같이 모여 짜기라도 한듯 도시를 넘어 갈때마다 저렇게 다 친절을 베풀어주시고 챙겨주시는지..요즘은 다른게 아니라 저런분들이 애국자인거임. 국격을 더 높여주고 나라 이미지에도 긍정적인 이미지들을 심어주어서 다시 재방문하게끔 해주고 경제적인 부분에서도 도움을 주게끔하는게. 다들 복 많이 받으세요
대학때 남해 욕지도 갓엇는데…
충무터미널이엇던가???
새벽에 고속버스터미널에서 배터미널까지 택시기사님이 우리 충무김밥 사주셧던 것 기억난다. 여자 둘이라…처음 보는 사람의 친절이 너무 낯설어서 쫄아가지고 감사인사도 제대로 못햇는데… 섬 들어와서 사주신 김밥 먹으면서 너무 감사해서 눈물 낫엇어.
통영 욕지도요 ^^ 옛충무가 현통영이예요.
대학교 4학년때 친구랑 둘이 자전거로 3주동안 전국일주 하고있을때 자주 씻지도 못해 지저분한 상태에서 국도변 식당에 들어갔는데 사장님이 밥 많이 먹고 식당 뒷편에 수돗가 있으니 등목 시원 하게 하고 가고 갈때는 얼음물까지 챙겨주시는데 정말 너무 감사했습니다
ㅜㅜ 눈물나 맘 너무 따수워져요 ㅠ
인간미가 있는세상이네요
이렇게 명소 하나를 알아갑니다😊
와 무슨 작정하고 찍은 다큐같아요!!울나라국민들이 친절하긴 하죠
와씨 나 군대 있을때도 휴가때 연풍에서 버스가 20분 막이렇게 있다가 출발하는데 아다리 맞으면 집으로 직행하는 버스로
갈아타라고 아저씨들이 옆버스로 환승시켜주고 그랬는데
역시 아직도 훈훈하네 벌써 20년지났는데 ㅎ
연풍분들 감사합니다
진짜 우리나라 사람이라 하는말이 아니라 한국인들은 정말 친절 배려 남을 생각하는 순수한 마음이 많으신것 같아요~ 해외 나가봐요 절대그런게 없슴 ㅎㅎㅎ
연풍 처음 들어봤는데 이름이 너무 낭만적이고 예뻐요!!!!
연풍면 주민들...참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