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jh742일본은 조선을 강점한 적이 없습니다 조선왕조에서 해방 시키고 조선의 노예들에게 자유를 주었죠 막판에 미국을 공격하는 뻘짓을 하는 바람에 그 전쟁을 빌미로 징용이니 수탈이니 하는데.. 현실은 현재 한국인들이 아는 것과 배운것과 다릅니다 웃끼는게 조선때 쌍출신들의 자식들이 자신들에게 자유를 준 일본을 배척하더군요 한국인들은 역사를 잊은 민족이 어쩌고 하는데 내가 보기에 역사를 스스로 왜곡하는 건 한국인들입니다
내가 태어난 뒷집들이 부호들이 살던 적산가옥이였고 드라마나 영화에도 종종 등장 했는데 최근에 몇집이 헐리고 고층빌라등이 올라가는 걸보니 참 안타깝더군요 외갓집이 이북출신으로 60년대에 구입한 건너동네에 가장 큰 적산가옥이였는데 어릴때 몇년을 거기서 산적이 있지요 90년대에 도시계획으로 헐렸고 언젠가 다시 그런 곳에 살리라 생각 했지만.. 내가 우리 어른들만큼 능력이 안되는군요
초량시장 길을 쭉 따라 올라가다보면 나타나는 거대한 오카베로 불렸던 일본식 주택 집안에 연못에… 동산에 …앞뒤로 정원이있고… 해방후 철도청 고위 공무원들의 관사로 사용됐었죠. 관사촌이 끝나는 곳부터는 판자집이 즐비했었고…하긴 학교도 판자집이었는데… 저기는 산동네여서 위로는 수원지도있었고..집에서 부산 앞바다가 보이고 날이 맑으면 대마도가 보인다고했죠
다크투어 라고 하여 어두운 시대의 역사도 보존하고 있습니다. 서울역사, 한국은행 건물도 일본식 근대건축으로 보존하고 있습니다. 1995년 조선총독붇가 헐릴때도 문화재 위원들의 투표가 반반이었습니다. 경제적 여유가 있었다면 독립기념관으로 이전하여 보존하였을 것이라고 봅니다.
이쁘네요 방문해 보고 싶네요
많은걸 알아 갑니다.
멋지네요
예전에 기생집으로 사용된 집이네요. 어렸을 때 지나던 집을 여기서 다시 보게되어 반갑습니다. 동래 온천장에도 비슷한 집이 동래별장이라고 있지요.
이 집을 지은 목적은 부산의 철도청 관리의 집이었는데 2년후 일본으로 쫓겨가니까 기생집으로 활용된 것입니다. 이런 영상 보면 일본이 대만, 조선의 식민지배에 얼마나 집착하였는지 알 수 있습니다.
동래별장은 요리집으로 이용되었습니다. 지금도 계속하는지ᆢ 15년 전에 가족끼리 식사한 적이 한번 있는데 정원을 아주 잘 꾸며놓았더라구요 건축을 좋아해서 건물이나 주변을 구경하는 재미는 있었으나 일제강점기의 흔적들에 씁쓸함이 더 컸던 기억이 있습니다.
@@cjh742일본은 조선을 강점한 적이 없습니다
조선왕조에서 해방 시키고 조선의 노예들에게 자유를 주었죠
막판에 미국을 공격하는 뻘짓을 하는 바람에 그 전쟁을 빌미로 징용이니 수탈이니 하는데..
현실은 현재 한국인들이 아는 것과 배운것과 다릅니다
웃끼는게 조선때 쌍출신들의 자식들이 자신들에게 자유를 준 일본을 배척하더군요
한국인들은 역사를 잊은 민족이 어쩌고 하는데 내가 보기에 역사를 스스로 왜곡하는 건 한국인들입니다
여기 멋있네요~ 방문하고 싶어요
내가 태어난 뒷집들이 부호들이 살던 적산가옥이였고 드라마나 영화에도 종종 등장 했는데 최근에 몇집이 헐리고 고층빌라등이 올라가는 걸보니 참 안타깝더군요
외갓집이 이북출신으로 60년대에 구입한 건너동네에 가장 큰 적산가옥이였는데 어릴때 몇년을 거기서 산적이 있지요
90년대에 도시계획으로 헐렸고 언젠가 다시 그런 곳에 살리라 생각 했지만..
내가 우리 어른들만큼 능력이 안되는군요
건물 자체에는 일본의 문화, 혹은 당시에 시대상과 현재까지의 변화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건물임에 틀림 없지만, 뭔가 향수라는 단어는.. 듣기가 조금 불편하긴 했습니다. 그냥 개인적인 생각일 뿐 입니다. 좋은 영상 잘 감상하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적산가옥의 향수…일제강점기의 추억~크~~ 돌아가고싶은 그시절^^
왜 일제가옥이 우리 문화제로 지정되어 있는지 참 이해가 안 됩니다. 하루라도 빨리 때려 부숴야 합니다. 누군가 방화라도 했으면.. 저는 차마 못 하겠어요
향수라니 가당치도 않은 표현이 맞습니다 일제강점기 가옥이 그리움의 대상이 아니라 다시 반복되면 안될 뼈아픈 기억일 뿐입니다 제발 적절한 단어
, 구분은 좀 했으면 좋겠습니다
영화 장군의 아들 1편에 신현준이 정원에서 대화하는 장면이 있는데, 지금은 빌라로 사라진 정원이 보입니다.
정낭각 이라고 해서 예전 요정이었지요 지금은 옆에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서 집의 많은부분이 잘려나가고 원집만 남아 있는곳 입니다 예전에는 적산가옥이 많이 있었는데 지금은 많이 없어졌습니다
앗~어린시절부터 학창시절까지 정란각 바로 뒤쪽에 살았었죠~그 때 이쁜 언냐들 무지 많았음 ㅎㅎㅎㅎㅎ
해방 이후에 일본에 대한 향수를 느꼈다고요? 부산시민들이요? 아님 남아있던 일본인들?
향수란걸 느낄수도 있죠… 안좋았던 시절도 충분히 향수가 될수 있습니다
근대역사로서 보존하여 다시는 이런 어두운 식민 역사가 반복되지 않도록 해야합니다
초량시장 길을 쭉 따라 올라가다보면 나타나는 거대한 오카베로 불렸던 일본식 주택
집안에 연못에… 동산에 …앞뒤로 정원이있고…
해방후 철도청 고위 공무원들의 관사로 사용됐었죠. 관사촌이 끝나는 곳부터는 판자집이 즐비했었고…하긴 학교도 판자집이었는데…
저기는 산동네여서 위로는 수원지도있었고..집에서 부산 앞바다가 보이고 날이 맑으면 대마도가 보인다고했죠
어릴적 살던 충무동집도 적산가옥이였습니다... 목조건물에 다다미방이 있고, 오시리라고부르던 벽장도있었고..
차를 팔고 했었는데 이제 사진전시를 하게 되었나봐요
예전에는 지금크기의 2배였다고 하네요. 빌라지을때 팔렸다고 들었어요
향수? 향수우우?????
ㅎㅎㅎㅎ
고관이라는 버스정류장 이름 이제 기억이 새로와지네요. 그것이 일본동네 의미한것 이제 알게되네요.
요즘 동두천 가면 일본 민속촌을 지어 놓고 이런 양식의 료칸을 만들어 1박에 몇십만원 받는데 예약이 엄청 대기중이다. 즉 일본에 안가고 료칸 분위기를 느끼고 싶은 2030에게 여기를 료칸으로 만들어 영업해도 좋을듯,,
일본적산가옥. 나도 부산아미동 적산가옥에서 유년시절을 보냇고. 2023 거곳을 64년만에 방문하니 모두 철거하엿고 좁은 골목이 되고 25게단이 세멘트 가 깔려 차가 올라갈수있게 만던 현대식 해뜨는 마을이라고 이름까지 바뀐 현실인 이시대😢
대저동
집일본주소
번덕마을
오세요 님
적산가옥으로 불러주세요.
일본은 적이 아니에요
일본집에 살아 보면
일본에서는 지금도 일년에 4백명이나 얼어 죽는다는 말이 실감난다
단어선택이잘못되었어요 향수라뇨 거북하다 참나
기승전 정치 얘기...갈라치기 지겨워
안타깝다. 소유주들 마음이겟지만 저걸 팔아치우다니....ㅡㅡ 문화에 너무 문외한
치욕의역사
치욕의 역사
잊지도 말고 반복해서도 안될 역사죠
그당시에 전세계가 약육강식시대라는것을모르나 치욕이라 치욕당할나라꼴이었기에 치욕당했지 지금에서누굴탓하리
@@김규원-t6f그니까 잊지말고 조심해야죠.
얼마나 많이 애새끼 낳았을까
이쁘긴한데 음침하네.향수보다는 궁금증이겠지.
부산의 자존심이 아니라면... 때려 부숴 없애겠지...
조선총독부도 없애는데 무슨 역사의 가옥...
이런 기분 나쁜 집은
불태워 버렸어야 한다
일제의 잔재. 당장 철거해라 !
아직도 철거가 안됐구나
그동네가 그렇지 뭐
임마 목포, 군산가보니 적산가옥 천지더만
어디서 개구라질이고 전만아
@@김영길-t4d 글세말이야 다른데도 다 있는데 왜 이동네만 욕할까? 이유가 있겠지?ㅋㅋㅋㅋㅋㅋㅋ
다크투어 라고 하여 어두운 시대의 역사도 보존하고 있습니다. 서울역사, 한국은행 건물도 일본식 근대건축으로 보존하고 있습니다. 1995년 조선총독붇가 헐릴때도 문화재 위원들의 투표가 반반이었습니다. 경제적 여유가 있었다면 독립기념관으로 이전하여 보존하였을 것이라고 봅니다.
이걸 꼭 치욕의 역사만이 아닐것이다
길이 보존해야 한다. 사실 일본이 패전
후 돌아갈 때 그들에게 폭행이나 약탈
행위가 없었다는 건 뭘 말하는지